1 일벌 한 마리의 일생
밀랍으로 지은 육각형 방의 뚜껑을 물어뜯고 일벌 한 마리가 기어 나온다. 알을 낳은 지 스물하루째 되는 날이다. 어미는 여왕벌이다. 한 벌무리에 한 마리뿐인 여왕벌은 바쁜 철이면 하루에 알을 천 개에서 이천 개씩 낳는다. 아비는 수벌 한 마리다. 이 일벌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죽었다.
일벌의 일생은 빽빽한 일정으로 차 있다. 대체로 나이가 들 때마다 맡는 일이 바뀐다. 처음 며칠은 벌집 청소다. 막 비워진 방을 깨끗이 핥아 여왕벌이 다시 알을 낳을 수 있게 한다.
다음은 유모 차례다. 머리에 있는 샘에서 젖빛을 띤 걸쭉한 물질을 분비해 애벌레에게 먹인다. 우리가 로열젤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조금 더 자라면 배 아래의 밀랍샘에서 얇은 밀랍 조각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벌집을 고치고 방을 짓는다. 그다음에는 벌집 입구에서 보초를 선다. 들어오는 벌을 한 마리씩 냄새 맡아 보고, 같은 무리가 아니면 들여보내지 않는다.
보초를 서는 일벌에게는 거꾸로 난 갈고리가 달린 침이 있다. 사람이나 다른 포유류를 쏘면 갈고리가 피부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독주머니와 이어진 침이 몸에서 뜯겨 나가고, 일벌은 얼마 못 가 죽는다. 피부에 남은 침은 그 뒤에도 계속 독을 밀어 넣는다. 그러니 꿀벌에게 쏘였을 때는 되도록 빨리 침을 긁어내야 한다.
대략 세 주가 지나서야 일벌은 처음으로 꿀을 모으러 밖으로 나간다. 먹이를 모으는 일은 가장 고된 일이다. 여름철 일벌은 보통 다섯 주에서 여섯 주밖에 살지 못한다. 마지막 두세 주는 거의 내내 밖을 날아다닌다. 날개 가장자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지고, 끝내 들에서 죽는다.
일벌 한 마리가 평생 만들어 내는 꿀은 티스푼의 12분의 1쯤이라는 추산이 흔히 인용된다. 그렇다고 일의 순서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양봉가가 벌무리에서 먹이를 모으는 벌들을 빼내면, 어린 유모벌들이 며칠 안에 예정보다 일찍 꿀을 따러 나선다.
먹이를 모으던 일벌은 돌아오면 벌집판 위에서 8자 모양의 춤을 춘다. 한가운데의 직선 구간이 가리키는 방향은 태양을 기준으로 꿀이 있는 곳의 방향을 뜻하고, 그 직선 구간에서 몸을 흔드는 시간은 그곳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이 춤의 언어를 풀어낸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프리슈다. 그는 이 공로로 1973년 다른 동물행동학자 두 사람과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튼튼한 벌무리에는 여름이면 일벌이 이삼만 마리에서 오륙만 마리까지 산다. 모두 암컷이지만, 압도적인 대다수는 평생 번식하지 않는다. 이들이 온 힘을 다해 길러 내는 것은 여왕벌의 자식, 곧 자신들의 동생들이다.
벌집 안의 수벌은 수백 마리에 불과하다. 일벌보다 덩치가 크고, 커다란 두 눈은 머리 꼭대기에서 맞닿는다. 침이 없고, 꿀을 따지도 집안일을 하지도 않는다. 유일한 쓸모는 밖으로 나가 다른 무리의 새 여왕벌과 짝짓기하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꽃이 줄면 일벌들은 살아남은 수벌을 입구 밖으로 끌어내고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중국에서 기르는 꿀벌은 두 종류다. 하나는 토종인 중국재래꿀벌이다. 몸집이 작고 추위에 강하며, 산속에 드문드문 핀 꽃에서도 꿀을 모은다. 다른 하나는 20세기 초부터 들여온 이탈리아꿀벌이다. 몸집이 크고 꿀을 많이 생산해 오늘날 양봉장의 주력을 이룬다. 두 벌의 사회 구조는 대체로 같다.
일벌과 여왕벌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두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여왕이 낳은 수정란들도 유전자 조합이 모두 같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암컷의 발달 경로를 밟을 잠재력이 있다. 유충이 무엇을 얼마나, 언제 먹는지가 유전자 발현 등을 통해 그 길을 바꾼다. 적절한 여왕벌 먹이를 지속해서 공급받는 유충과 일벌용 먹이를 받는 유충은 다른 길로 자란다.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은 유충의 DNA에 화학적 표지를 붙이는 효소의 활성을 낮췄다. 일벌 조건에서 기른 유충 가운데 상당수가 여왕벌의 특징을 나타냈다. 어릴 때의 영양과 유전자 조절은 생식 능력의 발달을 서로 다른 길로 이끌 수 있다. 먹이가 모든 유전자를 다시 쓴다는 뜻도, 일벌은 하나같이 알을 낳지 못한다는 뜻도 아니다. 일부 일벌은 여전히 미수정란을 낳고, 그 알에서는 수벌이 자란다.
이 일은 다윈을 몹시 골치 아프게 했다. 그는 1859년 『종의 기원』에서 번식하지 못하는 일개미나 일벌을 특별히 어려운 문제로 꼽으며, “처음에는 극복할 수 없으며 내 이론 전체에 치명적인 문제라고 여겼다”고 썼다. 자연선택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개체를 통해 작용한다. 그렇다면 자식을 낳지 않는 개체의 형질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가.
다윈은 스스로 답 하나를 내놓았다. 소를 기르는 일에 빗댄 답이었다. 고기 맛이 좋은 소를 잡아먹으면 그 소에게는 더 이상 자손이 없지만, 소를 기르는 사람은 같은 가문에서 다른 소를 찾아 교배시킬 것이다. 좋은 육질은 그렇게도 전해진다. 선택은 개체뿐 아니라 가문에도 작용할 수 있다. 이 비유 안에, 그 뒤 백 년 넘게 이어질 논쟁의 씨앗이 이미 들어 있었다.
생물학자들은 꿀벌처럼 사는 사회를 진사회성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미국의 곤충학자 바트라가 1966년 인도의 꼬마꽃벌을 연구하며 쓰기 시작했다. 이후 세 가지 조건으로 정리되었다. 같은 집에 번식만 맡는 구성원과 번식하지 않거나 거의 하지 않는 구성원이 있고, 적어도 두 세대의 성체가 한집에서 함께 살며, 자신이 낳지 않은 애벌레도 함께 돌본다는 것이다. 이 세 조건을 정리해 정착시킨 것은 주로 미국의 벌 연구자 미치너의 1969년 작업과 윌슨이 1971년에 펴낸 『곤충의 사회』였다.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의 것은 세고, 바깥의 것은 세지 않는다. 그 선은 일련의 판정 기준처럼 사람이 그을 수도 있고, 막 한 겹처럼 자연이 그을 수도 있다. 진사회성의 세 조건은 드넓은 사회생활의 영역에 사람이 그어 놓은 선이다.
그 선 안에는 누가 들어갈까. 명단은 많은 사람이 짐작하는 것보다 길다. 모든 개미, 모든 흰개미, 꿀벌, 침없는벌과 뒤영벌, 꼬마꽃벌의 일부, 그리고 말벌과에 속하는 쌍살벌과 땅벌류가 들어간다.
뜻밖의 구성원도 있다. 일본 연구자들은 1977년 일부 진딧물이 싸움만 전담하고 자신은 더 자라 번식하지 않는 병정진딧물을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병정진딧물은 앞다리가 굵고 머리에 뾰족한 뿔이 있다. 무당벌레 애벌레나 꽃등에 구더기가 기어오면 덤벼들어 뿔로 찌르고 다리로 움켜잡는다. 적과 함께 죽는 일도 흔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건조 지대 아카시아나무에는 총채벌레 몇 종이 벌레혹 속에서 무리를 이루어 사는데, 이들에게도 병정이 있다.
바다에도 있다. 1996년 미국의 더피는 중앙아메리카 벨리즈의 산호초에서 해면의 관 속에 사는 딱총새우 한 종을 발견했다. 한 무리가 수백 마리인데 알을 낳는 암컷은 한 마리뿐이고, 나머지는 문을 지키거나 싸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긴나무좀 한 종은 살아 있는 유칼립투스 줄기에 굴을 파고 사는데, 이들에게도 평생 알을 낳지 않는 일꾼이 있다.
가장 뜻밖인 것은 포유류 두 종이다. 동아프리카 건조 지대의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몸길이가 10센티미터 안팎이고, 털이 거의 없으며, 피부는 쭈글쭈글하다. 땅속에 길이를 모두 합치면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굴을 판다. 한 무리에 평균 칠팔십 마리, 많으면 삼백 마리 가까이 살지만 번식하는 암컷은 한 마리뿐이다. 아프리카 남부의 다마라랜드두더지쥐도 비슷하게 산다.
벌거숭이두더지쥐 이야기에는 그보다 앞선 한 장면이 있다. 1970년대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곤충학자 알렉산더는 강의 중 이런 추론을 했다. 척추동물에도 진사회성 동물이 있다면, 아마 땅속에 살면서 커다란 뿌리나 땅속줄기를 먹고, 열대의 건조한 점토 지대에 사는 설치류일 것이라고.
나중에 누군가 그에게 그런 동물이 정말 있다고 알려 주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였다. 198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교의 자비스가 이 동물의 무리에서는 암컷 한 마리만 번식한다고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예측과 발견이 그렇게 만났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수명도 유난히 길다. 같은 크기의 생쥐는 보통 이삼 년을 살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실험실에서 삼십 년 넘게 살며 늙어서도 사망률이 거의 높아지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번식하는 암컷을 대개 ‘여왕’이라고 부른다.
이상한 점은 그뿐이 아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피부는 산에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체온은 냉혈동물처럼 굴 안의 온도에 따라 오르내린다. 2017년 연구자들이 산소가 전혀 없는 상자에 넣자, 이들은 의식을 잃은 채 18분을 버티다가 다시 공기 속에 놓였을 때 살아났다. 심장과 뇌가 일시적으로 과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바꾼 덕분이다. 다른 포유류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능력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명단의 생물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몇 번이나 생겨났는지, 왜 생겨났는지, 어떤 화석을 남겼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아울러 생물학자들이 이 문제로 반세기 넘게 다퉈 온 쟁점이 대체 무엇인지도 묻는다.
2 열다섯 번인가 다섯 번인가
흰개미부터 보자. 생김새도 개미 같고 이름에도 ‘개미’가 들어가며 살아가는 모습마저 비슷하지만, 흰개미와 개미는 가까운 사이가 전혀 아니다. 개미는 꿀벌, 말벌과 함께 벌목에 속한다. 흰개미의 친척은 바퀴벌레다.
2007년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연구자 세 명이 DNA로 바퀴벌레와 흰개미의 가계도를 다시 그렸다. 흰개미는 바퀴벌레 가계도 안쪽에 들어 있었고, 나무를 먹는 한 무리의 바퀴벌레와 가장 가까웠다. 연구자들은 논문 제목을 ‘한 목의 죽음’이라고 붙였다. 흰개미는 더 이상 독립된 목이 아니다. 고도로 특화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바퀴벌레의 한 갈래다.
가장 가까운 그 친척은 크립토케르쿠스속의 나무바퀴다. 북아메리카와 러시아 극동, 중국 일부 산림의 썩은 나무 속에 산다. 한 쌍이 평생 함께 지내며 썩은 나무에 낸 굴에서 새끼들과 산다. 자식들은 몇 년이 지나서야 집을 떠난다. 더 중요한 점은 이들이 장내 원생동물의 도움으로 나무를 소화한다는 것이다. 갓 부화한 새끼 바퀴벌레에게는 이 미생물이 없다. 부모의 항문에서 미생물이 든 액체를 핥아 먹어야 물려받을 수 있다.
흰개미도 장내 미생물을 이런 방식으로 주고받는다.
충분히 자란 큰 흰개미 군체의 집 안에서 여왕의 배는 손가락만큼 굵게 부풀어 오른다. 길이도 몇 센티미터에 이른다. 희고 커다란 그 몸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해서 일개미가 먹이를 먹여 주고 몸을 닦아 준다. 하루에 알을 만 개 넘게 낳는 것으로 추정되며, 십수 년 혹은 그 이상 산다. 곁에는 처음 함께 집을 지었던 왕이 줄곧 머문다. 한집이 한 가족이고, 부모는 오래 살며, 자식은 먹이를 받아먹느라 집에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조건들이 모이면 흰개미 사회까지 남은 거리는 이미 멀지 않다.
흰개미 전체에서 진사회성의 기원은 한 번으로 센다. 오늘날 모든 흰개미가 진사회성이며, 그들의 공통 조상도 이미 그랬기 때문이다. 개미도 마찬가지다. 현재 만 사천여 종의 개미가 모두 사회생활을 하므로, 이 역시 한 번이다.
기원은 한 번이지만 그 뒤에 갈라져 나온 삶의 방식은 놀랄 만큼 다양하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군대개미는 고정된 집이 없다. 일개미 수십만에서 백만 마리 이상이 함께 행군하다가, 밤이면 서로의 몸을 걸어 살아 있는 임시 숙영지를 만든다. 여왕개미와 애벌레를 그 한가운데에 감싼다.
중국 남부의 베짜기개미는 나무 위에서 잎으로 집을 짓는다. 일개미들이 한 줄로 늘어서 큰턱으로 두 잎의 가장자리를 끌어당기면, 다른 일개미들은 큰턱에 애벌레를 물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애벌레가 뽑아내는 실이 잎 가장자리를 꿰맨다. 진나라 때 혜함이 쓴 『남방초목상』에는 광저우 일대 사람들이 이 개미를 집째 주머니에 넣어 팔고, 감귤나무에 걸어 해충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른 생물학적 방제 기록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이 쓰인 때는 보통 서기 304년으로 잡는다.
꽃벌과 말벌 쪽은 훨씬 복잡하다. 꿀벌과에서 꿀벌, 침없는벌, 뒤영벌, 난초벌이 속한 갈래의 사회성은 한두 번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꼬마꽃벌과에서는 진사회성이 여러 번 생겨났고, 그 뒤 여러 계통이 다시 홀로 사는 생활로 돌아갔다. 말벌과에서는 쌍살벌과 땅벌류의 사회성이 독립적으로 생겨났다.
쌍살벌의 집은 종이로 되어 있다. 큰턱으로 죽은 나무와 나무껍질에서 섬유를 긁어낸 뒤 침을 섞어 씹어 반죽을 만든다. 그것을 발라 회색이나 갈색의 얇은 종이를 한 겹씩 쌓는다. 1719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레오뮈르는 말벌이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에게 사람도 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직 헝겊 조각으로 종이를 만들었다.
꼬마꽃벌은 아주 작다. 여름이면 사람의 팔에 내려앉아 땀을 핥는 일이 많아서 영어로는 ‘땀벌’이라고 한다. 흙 속에 가늘고 긴 굴을 파고 양옆에 새끼를 기를 방을 만든다. 중국어 이름인 ‘굴벌’도 아마 여기서 왔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세어 가면 동물의 진사회성은 모두 몇 번 독립적으로 생겨났을까. 초기의 종설 논문들은 흔히 열 번 남짓에서 열다섯 번쯤이라는 수를 제시했다.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대학교의 다 실바가 한 연구를 내놓았다. 최신 벌목 가계도를 바탕으로 각 종의 사회생활을 일곱 등급으로 부호화한 뒤 조상의 상태를 추정했다. 결과는 이랬다. 넓은 뜻의 진사회성은 꽃벌과 말벌에서 적어도 열다섯 번 독립적으로 생겨났다. 개미의 한 번은 여기에 넣지도 않았다. 반면 계급의 분화가 이미 되돌릴 수 없고 무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형태는, 벌목 전체에서 다섯 번뿐이었다.
같은 연구, 같은 계통수에서 나온 열다섯 번과 다섯 번은 모두 맞다. 서로 다른 것을 센 수이기 때문이다. 앞의 수는 ‘번식 분업과 공동 양육이 생겼는가’를 세고, 뒤의 수는 ‘돌이킬 수 없이 번식 능력을 잃은 계급이 생겼는가’를 센다.
현장에서 보면 둘의 차이는 뚜렷하다. 꼬마꽃벌 무리의 ‘일벌’에게는 온전한 난소가 있다. 여왕벌이 죽으면 그중 몇 마리가 알을 낳기 시작한다. 불과 며칠 안에 볼 수 있는 변화다.
붉은불개미의 일개미에게는 어릴 때부터 난소가 없다. 여왕개미가 죽어도 어미가 될 길이 없다. 앞의 경우는 잠시 낳지 않는 것이고, 뒤의 경우는 평생 낳을 수 없는 것이다.
홀로 사는 생활로 돌아가는 모습은 꼬마꽃벌에서 가장 잘 보인다. 어떤 꼬마꽃벌은 고도가 낮고 따뜻한 곳에서 일 년에 두 차례 새끼를 기른다. 첫 번째 자식들 가운데 딸들이 남아 일벌이 된다. 하지만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여름이 짧아 한 차례밖에 기르지 못한다. 같은 종이 다시 홀로 사는 벌이 되는 것이다. 이쪽 끝에서는 진사회성과 독거 생활 사이의 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드나듦 때문에 셈이 틀어지기도 한다. 지금 홀로 사는 한 계통의 조상이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되돌아온 것인데, 이를 ‘줄곧 홀로 살았다’고 처리하면 어떻게 될까. 옆의 사회성 계통을 독립적인 기원 한 번으로 더 세게 된다. 8편에서 다세포성의 기원 횟수를 다룰 때 만났던 것과 같은 문제다.
3 자매 사이의 산술
이 계산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낸 사람은 영국의 해밀턴이었다. 1960년대 초 그는 런던의 대학원생이었다. 연구 주제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드물었고 지도교수도 별로 돌봐 주지 않았다. 그는 종종 워털루역 대합실에 혼자 앉아 계산을 했다. 1964년 『이론생물학 저널』에 두 편의 논문을 연달아 발표했지만, 처음 몇 년 동안은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해밀턴은 나중에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00년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한 가설을 검증하려고 콩고의 열대우림으로 가서 침팬지 분변 표본을 모았다. 영국에 돌아온 뒤 병이 났다. 당시에는 말라리아라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나중의 부검에서 사인은 대량의 위장관 출혈로 밝혀졌다. 예순세 살이었다.
그의 핵심 생각은 전설처럼 전해지는 농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영국의 유전학자 홀데인이 술집에서 셈을 해 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형제 두 명, 아니면 사촌 여덟 명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형제는 평균적으로 나와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한다. 둘을 합하면 나 하나와 같다. 사촌은 8분의 1이므로 여덟 명이 있어야 하나가 된다.
해밀턴은 이 농담을 하나의 규칙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아주 짧은 식으로 쓸 수 있다. 어떤 행동이 남에게 주는 이득에 나와 그 사람의 혈연도를 곱한 값이, 그 행동 때문에 내가 치르는 비용보다 크면 그 행동을 하려는 성향은 집단 안에서 퍼질 수 있다. 훗날 해밀턴 법칙이라 불리게 된 규칙이다. 그 바탕의 이론은 혈연선택이다.
여기서 ‘이타적’이라는 말은 기술적인 용어일 뿐이다. 자신의 번식은 줄이고 남의 번식은 늘린다는 뜻이며, 의도를 말하지 않는다. 일벌은 여왕벌이 자기 어미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혈연계수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해밀턴은 매력적인 숫자 하나도 찾아냈다. 꿀벌, 개미, 말벌에게는 특이한 성 결정 방식이 있다. 수정란은 암컷으로 자라고, 수정되지 않은 알은 그대로 수컷이 된다. 수컷에게는 염색체가 한 벌뿐이어서 수컷이 만드는 정자는 모두 똑같다.
그 결과는 이렇다. 아버지가 같은 딸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절반이 완전히 같고, 어머니에게서 받은 절반도 평균적으로 그중 절반이 같다. 모두 더하면 자매 사이의 혈연도는 4분의 3이다. 그런데 암벌과 자기 딸 사이의 혈연도는 2분의 1뿐이다. 자매가 딸보다 더 가깝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듯했다. 직접 딸을 낳기보다 어미를 도와 여동생 몇 마리를 더 기르는 편이 이득이라니, 이 곤충들에서 번식하지 않는 일꾼이 거듭 나타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이 설명은 수십 년 동안 교과서에서 널리 통했다.
그러나 뒤이어 하나씩 힘을 잃었다. 첫째, 여왕벌은 수벌 한 마리와만 짝짓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꿀벌 여왕은 혼인비행을 위해 집을 나가 공중에서 수벌 십여 마리와 짝짓기한다. 교미가 끝난 수벌은 생식기가 끊어져 여왕벌 몸 안에 남고, 곧 죽는다.
여왕벌은 이 정자를 몸속 저정낭에 보관한다. 모두 수백만 개다. 이후 이삼 년, 때로는 그보다 더 오래 수정란을 하나씩 낳을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쓴다. 그러니 한 벌무리의 일벌들은 아버지가 십여 마리로 갈린다. 어머니만 같은 이부 자매 사이의 혈연도는 4분의 1에 불과하다.
둘째, 일벌이 기르는 것은 여동생만이 아니다. 남동생도 기른다. 암벌과 자기 남자 형제 사이의 혈연도는 4분의 1뿐이다. 남동생과 여동생을 함께 계산하면 그만큼의 이점도 사라질 수 있다.
셋째, 흰개미는 암수 모두 염색체가 두 벌이다. 그 특이한 성 결정 방식이 없는데도 사회성이 가장 강한 곤충 가운데 하나다. 넷째, 벌목에서 기재된 종은 십수만 종이고 압도적인 대다수는 홀로 산다. 4분의 3이라는 수가 정말 결정적이었다면, 대부분은 진작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야 한다.
문제의 무게중심을 본격적으로 옮긴 것은 2008년의 한 연구였다. 영국 리즈대학교의 휴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교와 영국 셰필드대학교의 동료 몇 명과 함께 꽃벌, 개미, 말벌 260여 종의 짝짓기 기록을 모아 가계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진사회성이 생겨난 매 순간, 조상인 어미가 수컷 몇 마리와 짝짓기했는지를 물었다.
결과는 이랬다. 여덟 번의 독립적인 기원 모두에서 조상인 어미는 수컷 한 마리하고만 짝짓기했다. 암컷 하나가 수컷 여럿과 짝짓기하는 방식은 진사회성 무리가 형성된 뒤 여러 계통에서 나중에 나타났다. 장애물로 여겼던 것이 사회의 형성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붐스마는 이 생각을 단혼 가설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한 부부가 평생 서로하고만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들은 모두 친형제자매다. 서로의 혈연도는 2분의 1로, 자기 자식과의 혈연도와 같다. 집에 남아 부모의 어린 자식들을 돌보는 일과 밖으로 나가 직접 자식을 낳는 일이 혈연이라는 항목에서는 동점이 된다. 이때 돕는 쪽의 효율이 조금만 높아도 남는 편이 이득일 수 있다.
이 비유는 흰개미도 설명한다. 흰개미의 집은 왕과 여왕 한 쌍이 세우며, 둘은 평생 함께 산다. 집 안의 자식들은 모두 친형제자매다. 높은 혈연도를 얻는 데 그 특이한 성 결정 방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면 충분하다.
개미의 여왕은 한때의 짝짓기를 평생 쓰는 일을 극한까지 밀고 간다. 평생 혼인비행을 하는 그날만 짝짓기하고, 정자를 몸속 작은 주머니에 저장한 뒤 몇 년에서 몇십 년에 걸쳐 하나씩 꺼내 쓴다. 실험실의 검은정원개미(Lasius niger) 여왕 한 마리는 거의 스물아홉 해를 살면서 내내 젊을 때 저장한 그 정자를 썼다.
그렇다고 단혼이 답의 전부는 아니다. 벌목에는 단혼으로 짝짓기하면서 홀로 사는 종이 아주 많다. 이들은 일벌을 진화시키지 않았다. 도우면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 직접 나가 혼자 해낼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집을 어디에 짓는가, 애벌레에게 먹이를 계속 줘야 하는가. 이런 생태적 조건이 저울의 기울기를 정한다. 단혼은 문을 열어 준다. 들어갈지는 문밖의 풍경에 달려 있다.
4 반세기에 걸친 장부 논쟁
해밀턴 법칙 말고도 다른 계산법이 있다. 그 출발점에는 더 별난 사람이 있다. 미국의 화학자 프라이스는 젊을 때 원자폭탄 개발 사업에 참여했고, 나중에는 기자도 하고 컴퓨터 회사에서도 일했다. 1967년 런던에 와서 유전학을 독학했다. 해밀턴의 논문을 읽고 방정식 하나를 도출했는데, 오늘날 프라이스 방정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를 본 해밀턴은 크게 놀랐고, 두 사람은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가 되었다.
프라이스는 말년에 신앙이 매우 깊어졌다. 자기 돈과 물건을 런던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모두 나눠 주었다. 1975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해밀턴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프라이스에게는 또 다른 업적이 있다. 동물들이 싸울 때 왜 끝장을 보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일이 많은지를 다룬 논문을 메이너드 스미스와 함께 썼다. 1973년 『네이처』에 실린 이 논문은 동물행동 연구에 게임이론을 들여왔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뒤의 8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프라이스 방정식은 집단 안에서 어떤 형질이 변하는 과정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데 쓰인다. 벌무리를 예로 들면, 한쪽은 벌집과 벌집 사이의 차이다. 일벌이 많고 일을 잘하는 집이 새 집을 더 많이 만들어 냈는가. 다른 쪽은 한집 안의 차이다. 같은 집에서 몰래 알을 더 많이 낳은 일벌이 자기 자손을 더 많이 남겼는가.
앞의 것을 집단 간 선택, 뒤의 것을 집단 내 선택이라고 부른다. 불임 일벌이라는 제도가 널리 퍼지려면, 집과 집 사이에서 생기는 이득이 집 안에서 몰래 번식하려는 힘을 눌러야 한다.
같은 총계도 다른 방식으로 나눠 적을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얻었는가, 친척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으며 거기에 혈연도를 곱하면 얼마인가’로 적는 방식이 해밀턴의 혈연선택이다. 회사 이익을 부서별로 나눌 수도, 제품별로 나눌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총액은 같아도 장부의 생김새는 다르다. 이미 1992년에 연구자들은 많은 모형에서 이 두 분해 방식이 수학적으로 서로 환산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0년 이 장부 논쟁은 가장 격렬한 국면을 맞았다. 하버드대학교의 노왁, 타르니타, 윌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혈연선택 이론이 요구하는 수학적 조건이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진사회성을 연구하는 데는 집단유전학과 군체의 생활사 모형을 직접 쓰면 충분하며, 포괄적합도는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 논쟁에서 가장 뜻밖의 편에 선 사람은 윌슨이었다. 그는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개미학자였다. 1975년 펴낸 『사회생물학』은 다름 아닌 해밀턴의 혈연선택을 동물계 전체로 확장해 알린 책이었다. 그로부터 35년 뒤, 그는 반대편에 섰다. 2021년 말 미국에서 아흔두 살로 세상을 떠났다.
윌슨이 개미를 연구하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사고가 얽혀 있다. 일곱 살 때 미국 남부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물고기의 등지느러미에 오른쪽 눈을 찔렸다. 그 눈은 나중에 시력을 잃었다.
남은 한쪽 눈은 가까운 것은 잘 봤지만 먼 것은 잘 보지 못했다. 그는 훗날 새나 포유류를 볼 수 없어서 손 가까이에 있는 작은 것들을 보았고, 그렇게 평생 개미를 보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퓰리처상을 두 번 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독일의 횔도블러와 함께 쓴 『개미』였다.
2011년 3월 『네이처』에 반론이 실렸다.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해 첫 번째 저자가 된 사람은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애벗이었다. 공동 서명한 연구자는 137명으로, 생물학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연명이었다.
이들은 상대가 포괄적합도가 적용되는 수학적 범위를 오해했으며, 그 이론이 내놓은 예측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성비, 일벌끼리의 감시, 짝짓기 횟수가 협력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혈연 이론의 예측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자료로 검증된 사례라는 것이다. 같은 호에는 별도로 작성된 다른 반론들도 실렸다. 그 뒤 양쪽은 각자 논문을 계속 발표했고, 지금까지 어느 쪽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논쟁을 끝까지 따라가면 무게가 서로 다른 세 문장을 가려낼 수 있다. 첫째, 선택으로 생긴 어떤 변화든 장부를 두 방식으로 나눠 쓸 수 있다. 이 점에는 양쪽이 대체로 동의한다. 둘째, 계수를 상황에 맞춰 정의하도록 허용하면 어떤 모형이든 사후에 넓은 뜻의 해밀턴식으로 쓸 수 있다. 이것도 대체로 성립한다.
셋째 문장은 가장 범위가 좁다. 혈연도, 이득, 비용이라는 세 수를 미리 측정해서 그 간단한 부등식에 넣는 것만으로 진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가. 일벌 한 마리의 역할이 집 안에 이미 일벌이 몇 마리 있는지에 달려 있을 때, 이를테면 일정한 수가 모여야 비로소 집을 지을 수 있을 때는 이득과 비용이 더 이상 고정된 수가 아니다. 그러면 이 문장이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논쟁의 실질적인 갈림길은 주로 이 셋째 문장에 있다.
노왁 연구진의 군체 생활사 모형은 어미 한 마리에서 시작한 집이 자라고, 새 집을 내보내고, 끝내 죽는 과정을 추적한다. 계산 결과는 이랬다. 딸이 집에 남아 일벌로 살아가게 하는 변이가 쉽게 퍼지려면, 집이 아직 작아 일벌이 두세 마리뿐일 때부터 뚜렷한 이득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문턱은 혈연도의 소수점 뒷자리가 아니라 맨 처음 몇 마리의 일벌에 있다.
뒤영벌의 일생은 그 문턱을 잘 보여 준다. 봄이면 뒤영벌 여왕 한 마리가 땅굴에 홀로 집을 짓는다. 직접 나가 꽃가루를 모으고 직접 알을 품는다. 이 몇 주 동안 여왕이 나가면 집은 비게 된다. 비 한 차례나 쥐 한 마리만으로도 지금껏 애쓴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첫 일벌들이 방에서 나오고 나면 여왕은 집에 남아 알 낳는 일에만 매달릴 수 있다. 그 순간 집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이 결론은 단혼 가설과 충돌하지 않는다. 단혼이 말하는 것은 유전적 조건이고, 생활사 모형이 말하는 것은 생태적 보상이다. 둘 다 필요할 수 있다.
5 갈등은 얼마나 낮아졌는가
일벌이 평생 번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번식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꿀벌의 일벌은 대개 난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만 억눌려 있을 뿐이다. 이를 누르는 첫 번째 힘은 여왕벌의 몸에서 나는 냄새다.
1950년대 영국의 버틀러는 여왕벌의 큰턱샘이 어떤 물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벌들이 여왕벌을 핥고 서로 먹이를 나눠 주는 동안 이 물질은 벌무리 전체로 퍼져 일벌의 난소 발달을 억제했다. 그는 이를 ‘여왕 물질’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주성분이 지방산의 일종임이 밝혀졌다.
여왕벌이 늙거나 죽으면 벌무리는 유난히 큰 왕대를 서둘러 몇 개 짓는다. 평범한 암컷 애벌레 몇 마리의 먹이를 로열젤리로 바꿔 새 여왕벌로 기른다. 가장 먼저 방에서 나온 새 여왕벌은 연구자들이 ‘여왕벌의 피리 소리’라고 부르는 가늘고 날카로운 삑삑 소리를 낸다. 그러고는 다른 왕대를 찾아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경쟁자를 그 안에서 쏘아 죽인다. 결국 한 벌무리에는 여왕벌 한 마리만 남는다.
여왕벌이 죽었는데 새 여왕을 길러 낼 시간이 없으면 일벌의 난소가 발달해 알을 낳기 시작한다. 그 알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수벌이다. 새로운 일벌을 얻지 못하는 벌무리는 몇 주 뒤부터 쇠퇴한다.
그러나 여왕벌이 있어도 틈을 빠져나가는 일벌은 있게 마련이다. 일벌은 짝짓기한 적이 없으므로 낳는 알은 수정되지 않은 알이고, 그 성 결정 방식에 따라 수벌로만 자란다. 1989년 영국의 래트니크스와 미국의 비셔는 벌무리에 두 번째 관문이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일벌들이 방을 순찰하며 일벌이 낳은 알을 찾아 먹어 치우는 것이다.
이 상호 감시는 효율이 대단히 높다. 실험에서 넣어 준 일벌의 알은 얼마 못 가 90퍼센트 이상이 사라졌다. 그 결과 여왕벌이 있는 벌무리에서 일벌이 낳은 수벌은 전체 수벌의 천분의 1쯤에 불과하다. 일벌의 번식을 주로 억누르는 것은 여왕벌이 아니라 일벌들 서로다.
왜 일벌은 자매의 알을 먹을까. 혈연선택은 계산할 수 있는 답을 내놓았다. 여왕벌이 수벌 십여 마리와 짝짓기하면, 일벌과 어머니만 같은 자매의 아들 사이의 혈연도는 여왕벌의 아들, 곧 자기 남동생과의 혈연도보다도 낮다. 그렇다면 자매의 알을 어미의 알로 바꾸는 일은 혈연 장부상 이득이다.
이 추론은 예측도 하나 내놓았다. 여왕벌이 한 번만 짝짓기하는 종에서는 일벌끼리의 혈연도가 높으므로 상호 감시가 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예측은 자료가 모두 모이기 전에 나왔고, 뒤이은 비교 연구가 이를 뒷받침했다.
성비도 측정 가능한 갈등의 한 자리다. 1976년 미국의 트리버스와 헤어가 계산했다. 그 성 결정 방식에서 여왕벌은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가깝다. 따라서 암수 자식에게 같은 양을 투자하려 한다. 반면 일벌은 남동생보다 여동생과 혈연도가 세 배 높으므로, 암컷 쪽으로 3 대 1로 기운 비율을 원한다. 연구자들이 개미를 살펴보니 실제로 암컷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었다. 같은 집에 사는 어미와 딸이 원하는 비율은 서로 다르다.
방어선이 뚫리는 일도 있다. 남의 집 번데기를 빼앗아 와 일개미로 부리는 개미를 노예사냥개미라고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 영국 남부에서 직접 관찰한 붉은노예사냥개미를 적었다. 이들은 다른 종류의 검은 개미 번데기를 빼앗아 왔고, 그 번데기들은 자란 뒤 남의 집에서 일했다.
뒤영벌 집 안의 갈등은 눈으로도 보인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일벌들이 직접 알을 낳기 시작해 여왕벌과 수벌 낳기 경쟁을 벌인다. 일벌과 여왕벌이 서로 밀치고 상대의 알을 몰래 먹는다. 때로는 일벌들이 여왕벌을 에워싸 공격해 죽이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경쟁기라고 부른다.
뒤영벌 가운데는 뻐꾸기뒤영벌이라는 부류가 있다. 자기 일벌은 없이 다른 뒤영벌의 집으로 들어가 원래 있던 여왕을 죽이거나 억누른다. 그리고 그 집 일벌들에게 자기 새끼를 기르게 한다.
꿀벌에는 더 철저한 사례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꿀벌은 일벌도 짝짓기 없이 암컷이 될 알을 낳는다. 태어나는 것은 거의 자기 복제다. 1990년 양봉가들이 케이프꿀벌 무리를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로 옮겼다. 그때부터 케이프 일벌 한 마리에서 이어진 복제 계통이 현지 아프리카꿀벌의 집을 하나씩 침입해 알을 낳고 벌무리를 무너뜨렸다. 날아다니는 기생충 같았다.
갈등은 더 깊은 곳에도 숨어 있다. 붉은불개미의 집 가운데는 여왕이 한 마리인 집도 있고, 수십에서 백여 마리인 집도 있다. 어느 쪽으로 갈지를 정하는 것은 아주 긴 염색체 구간 하나다.
2013년 연구자들은 이 구간이 일종의 ‘사회 염색체’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정한 버전을 지닌 일개미는 그 버전이 없는 여왕을 죽인다. 붉은불개미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다. 2004년 중국 광둥성에서 발견된 뒤로 남부의 여러 성에 퍼졌다. 논밭둑 위에 솟은 부드러운 흙더미 하나하나가 그 집이다.
따라서 일개미에게 난소가 하나도 없더라도 집 안의 여러 여왕 사이, 어미와 일개미 사이, 심지어 같은 일개미 안에서 아버지에게 온 유전자와 어머니에게 온 유전자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차이가 남을 수 있다. 갈등은 아주 낮아졌지만, 0이 되지는 않았다. 8편에서 다세포 몸 안의 갈등을 이야기했을 때와 같은 모양이다.
6 화석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제도가 언제 자리 잡았는지, 화석이 내놓는 연대는 꽤 구체적이다.
호박은 나무의 수지가 변한 것이다. 나무줄기에 상처가 나면 끈끈한 수지가 흐른다. 기어가던 작은 곤충이 들러붙고, 새로 흘러나온 수지가 겹겹이 덮는다. 흙에 묻힌 채 수백만 년이 지나면 단단한 호박이 된다. 작은 곤충의 억센 털과 겹눈까지 고스란히 남길 수 있다.
호박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개미 화석들 가운데 일부는 약 1억 년 전 것으로, 주로 미얀마 북부와 프랑스에서 나온다. 미얀마의 이 호박은 카친주의 후카웅 계곡에서 산출된다. 약 9,900만 년 전, 백악기 중기 열대우림에서 흐른 수지다.
그중에는 기묘하게 생긴 ‘지옥개미’도 있다. 큰턱은 위로 휜 낫 한 쌍 같고, 머리에는 뿔까지 나 있다. 2020년 연구자들은 약 9,900만 년 전의 호박 한 조각을 기술했다. 안에서는 지옥개미 한 마리가 큰턱과 머리뿔로 약충 한 마리를 움켜잡고 있었다. 사냥의 그 한순간이 수지에 봉인된 것이다.
2016년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막 박사학위를 마친 바든과 그곳의 지도교수 그리말디는 같은 시대의 호박에서 같은 종 개미의 일개미와 날개 달린 여왕개미를 구별해 냈다. 한 호박 조각 안에 여러 일개미가 빽빽하게 모여 있는 사례도 있었다. 약 1억 년 전 개미에게는 이미 형태가 구분되는 계급이 있었고, 무리를 이루어 살았을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같은 해 연구자들은 미얀마 호박에서 흰개미의 병정, 일꾼, 날개 달린 번식 개체를 기술했다. 연대는 역시 약 9,900만 년 전이었다. 더 오래된 흰개미 화석은 스페인과 영국 등의 약 1억 3천만 년 전 백악기 전기 지층에서 나온다. 러시아 자바이칼 지역에는 쥐라기와 백악기의 경계 무렵 기록도 있다.
꽃벌의 역사는 그보다 조금 짧다. 2006년 당시 가장 오래된 꽃벌 화석으로 기술된 것은 미얀마 호박 속의 작은 벌이었다. 약 1억 년 전 것으로, 몸길이는 3밀리미터가 채 안 되고 말벌의 특징도 일부 남아 있었다. 가장 오래된 침없는벌 화석은 미국 뉴저지주의 호박에서 나왔으며, 연대는 6천여만 년 전이다.
흥미로운 숫자는 호박 속 곤충 가운데 개미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백악기 호박에서는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천만 년 뒤의 발트해 호박에서는 약 5퍼센트로, 더 나중의 도미니카 호박에서는 20퍼센트 이상으로 올라간다.
개미는 1억 년 전에도 있었지만, 정말로 어디에나 널리 퍼진 것은 공룡이 멸종한 뒤의 일이다. 왜 그토록 오래 기다려야 했을까. 흔히 제시되는 설명 하나는 꽃피는 식물과 관련이 있다. 백악기 후기에 속씨식물 숲이 넓어지면서 낙엽층이 두꺼워지고 작은 곤충이 많아졌다. 땅 위에서 먹이를 찾는 개미에게 사냥감과 은신처가 더 생긴 것이다. 이 설명은 아직 논의 중이다.
발트해 연안의 호박은 약 4천만 년 전 것이다. 그곳 해변에서는 지금도 파도에 밀려온 호박을 주울 수 있으며, 그 안에는 흔히 개미가 갇혀 있다.
중국에도 이런 창이 있다. 랴오닝성 푸순의 탄광에서는 약 5천만 년 전 호박이 나온다. 그 안에는 개미, 벌, 여러 작은 곤충이 들어 있다. 중국의 연구자들은 최근 여러 해 동안 미얀마 호박의 곤충도 대거 기술했다. 초기 개미와 흰개미도 그 안에 포함된다.
호박으로 입증할 수 있는 데에는 경계가 있다. 한 조각 안에 날개 없는 일개미와 날개 달린 여왕개미가 함께 있다면, 형태가 두 종류로 나뉘었다는 것은 입증한다. 하지만 그 일개미의 난소가 비어 있었다는 것까지 입증하지는 못한다. 번식 분업이라는 조건은 오늘날 살아 있는 친척에게서 과거로 거슬러 추정할 수밖에 없다.
집도 화석이 된다. 흔적화석이라고 한다. 1990년대 미국 애리조나주 페트리파이드 포리스트 국립공원에서 약 2억 2천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의 ‘흰개미 집’이 보고된 적이 있다. 사실이라면 흰개미의 사회생활을 공룡 시대의 시작까지 끌어올리는 발견이었다. 그러나 뒤이은 연구자들이 다시 살펴보니, 그 구조물이 반드시 흰개미가 만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부는 거대한 식물 뿌리계가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날 흰개미가 남기는 흔적도 규모가 놀랍다. 2018년 연구자들은 위성영상으로 브라질 북동부의 건조한 숲에 있는 흰개미 흙더미를 세었다. 약 2억 개였다. 하나하나가 높이 2~3미터이고, 서로 10~2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전체 분포 면적은 약 23만 제곱킬로미터로 영국 본토와 비슷했다. 흙더미에서 흙을 채취해 연대를 재니, 어떤 것은 거의 4천 년 전부터 있었다.
이 흙더미들은 집이 아니다. 한 종류의 흰개미가 굴을 파면서 밖에 쌓아 놓은 버럭이다. 브라질의 그 흙더미들을 모두 합친 부피는 10세제곱킬로미터로 추정된다. 기자의 대피라미드 4천 개와 맞먹는다.
중국 사람들이 흰개미와 씨름한 역사도 오래되었다. 『한비자』에는 “천 장의 제방도 땅강아지와 개미의 굴 때문에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나중에 “천 리 제방이 개미구멍에 무너진다”는 성어가 되었다. 중국 남부 강들의 큰 제방 속 ‘개미구멍’은 사실 흰개미 집인 경우가 많다. 오늘날에도 창장강과 주장강 연안에서는 제방 안의 흰개미를 찾아 방제하는 일을 따로 맡은 사람들이 있다.
아프리카의 큰 흰개미들은 집 위에 높이 몇 미터짜리 흙탑을 쌓는다. 탑 안에는 통로가 가득하다. 낮에는 뜨거운 공기가 올라가고 밤에는 찬 공기가 내려오며 집 안의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낸다. 숨 쉬는 폐와 같다. 1996년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완공된 한 사무용 건물은 설계자가 흰개미 탑의 환기 방식을 참고했다. 보통의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도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다.
흰개미는 버섯도 기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큰 흰개미류는 씹어 잘게 만든 식물로 집 안에 해면처럼 구멍이 많은 버섯밭을 만들고, 특정한 균류를 기른다.
이 균류가 흰개미 집 위로 땅을 뚫고 올라오면, 윈난 사람들이 우기에 앞다퉈 먹는 지쭝, 곧 흰개미버섯이 된다. 흰개미버섯 한 송이 아래에는 반드시 흰개미 집 하나가 있다.
개미는 목축도 한다. 많은 개미가 진딧물 무리를 지키며 더듬이로 등을 살살 두드린다. 그러면 진딧물은 엉덩이에서 당분이 든 감로 한 방울을 내보낸다. 개미는 그것을 마시고, 그 대가로 진딧물에게서 무당벌레를 쫓아 준다. 마당의 사계장미 가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남아메리카의 잎꾼개미도 균류를 기른다. 잎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 집으로 나르지만 잎 자체를 먹는 것은 아니다. 잎으로 균을 기른 다음 그 균을 먹는다. 분자시계로 추정하면 개미의 버섯농사 역사는 약 5천만~6천만 년이다. 큰 잎꾼개미 집 하나에는 일개미 수백만 마리가 살고, 땅속에는 버섯을 기르는 방이 수백 개 있다.
분자시계의 원리는 두 종의 DNA 차이를 비교하고, 변화 속도가 대체로 일정하다고 보고 둘이 언제 갈라졌는지를 거슬러 계산하는 것이다. 분자시계가 제시하는 기원 시점은 흔히 화석보다 이르다.
개미의 기원을 분자시계로 추정한 값은 대개 약 1억 4천만 년 전이다. 가장 오래된 개미 호박보다 수천만 년 앞선다. 이 차이가 어디서 생기는지는 19편에서 따로 다룬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규모를 보자. 2022년 독일과 중국 홍콩의 연구자들이 세계 각지의 현장 조사 거의 500건을 모았다. 지구의 개미는 약 2경 마리로 추정되었다. 건조 탄소량으로 환산하면 약 1,200만 톤으로, 전 세계 야생 조류와 야생 포유류를 합친 양보다 많다.
하지만 다른 양을 재면 결론도 달라진다. 개미는 만 사천여 종, 흰개미는 약 삼천 종으로, 곤충 전체에 견주면 많지 않다. 꽃벌은 이만 종이 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그중 일부뿐이다. 압도적인 대다수는 암벌 한 마리가 홀로 집을 짓고 홀로 알을 낳는다. 홀로 사는 꽃벌과 말벌은 ‘사회를 진화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성 친척보다 훨씬 많은 종으로 갈라졌다.
따라서 ‘진사회성은 크게 성공했다’는 말은 개체수와 무게로는 맞지만 종수로는 맞지 않는다. 일개미 수백만 마리가 사는 집 하나는 무게로 치면 거대한 덩어리지만, 종을 셀 때는 하나일 뿐이다. 무엇을 재어 줄 세우느냐가 누가 첫째인지를 정한다.
7 세 가지 질문과 하나의 스펙트럼
10편에서는 층위의 전환이 정말 일어났는지 판단할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원래 독립적으로 번식하던 단위가 그 능력을 잃었는가. 전체로서 번식하는 새로운 단위가 생겨났는가. 아래 층위의 갈등이 체계적으로 억제되었는가. 이제 진사회성을 하나씩 대조해 보자.
첫째 기준에는 ‘진사회성’ 전체를 놓고 그렇다거나 아니라고 답할 수 없다. 계통들을 스펙트럼 위에 늘어놓아야 한다. 한쪽 끝에는 기초적인 진사회성을 보이는 꼬마꽃벌, 쌍살벌, 뒤영벌이 있다.
이들의 일벌에게는 온전한 난소가 있다. 알을 낳지 않는 것은 여왕벌이 억누르기 때문이고, 계절이 맞지 않거나 집 안 사정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왕벌이 죽으면 뒤를 이어 알을 낳는 일벌이 나온다. 이쪽 끝은 첫째 기준을 일부만 충족한다고 봐야 한다.
꿀벌은 중간에 있다. 일벌은 여왕벌처럼 짝짓기해 새로운 암컷 계통을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대개 난소가 남아 있어 수컷이 될 알은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꿀벌의 일벌이 ‘번식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압도적인 대다수가 평생 번식하지 않으며, 정상적인 번식 경로는 막힌 채 수벌을 낳을 좁은 틈만 남아 있다.
다른 끝에는 일부 개미와 침없는벌이 있다. 붉은불개미와 혹개미류 같은 개미의 일꾼은 발달 과정에서부터 난소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왕개미가 죽어도 어떤 수를 써도 어미가 될 수 없다. 이쪽 끝에서는 첫째 기준이 강하게 충족된다.
개미 안에서도 사정은 같지 않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는 Diacamma속에는 통상적인 여왕 계급이 없고, 교미한 일개미인 ‘가머게이트’가 번식을 맡는다. 이 속의 일부 종에서 가머게이트는 갓 우화한 동료의 가슴에 달린 작은 부속기관 한 쌍, 젬마를 물어뜯어 교미를 막는다. 이것은 아직 자라지 않은 날개싹이 아니다. 없애는 것은 난소 자체가 아니라 교미를 통한 번식의 길이다.
흰개미는 또 다르다. 무리는 극도로 안정되어 있고 병정, 일꾼, 번식 개체의 구분도 뚜렷하다. 그런데 많은 흰개미 종의 일꾼에게는 발달의 가소성이 남아 있다. 왕과 여왕이 죽으면 일부 일꾼은 몇 차례 더 탈피해 대신 번식하는 개체가 될 수 있다.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다는 것과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별개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첫째 기준에서 점수가 더 낮다. 다른 암컷들의 난소가 자라지 않은 것은 여왕에게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여왕이 죽으면 암컷 몇 마리가 자리를 놓고 격렬하게 싸운다. 이긴 개체는 몸이 길어지고 번식을 시작한다. 가까운 친척인 다마라랜드두더지쥐도 번식하지 않는 구성원이 평생 집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적지 않은 개체가 비 온 뒤 흙이 부드러워졌을 때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짝을 찾고 새살림을 차린다.
둘째 기준은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가장 강하다. 벌무리는 하나의 몸처럼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 새끼를 기르는 구역은 일 년 내내 대략 섭씨 34~35도로 유지된다. 더우면 일벌이 입구에서 날갯짓하고 집 안에 물을 뿌려 식힌다. 추우면 한 덩어리로 뭉쳐 비행근을 떨면서 열을 낸다.
어느 한 마리의 벌이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무리 전체가 조절한다. 개미의 집 하나에도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새 집을 내보내고, 끝내 죽는 일생이 있다. 미국의 휠러는 이미 1911년에 「유기체로서의 개미 군체」를 발표하며 개미 무리를 하나의 몸에 빗댔다. 여왕개미와 수개미는 생식세포에, 일개미는 체세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런 무리를 ‘초개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무리가 ‘자식을 낳는’ 방식에는 크게 다른 두 가지가 있다. 꿀벌은 분봉을 한다. 기존 여왕벌이 일벌의 절반보다 훨씬 많은 수를 데리고 떠나 다른 곳에 온전한 새 무리를 세운다. 하나의 몸이 곧바로 둘로 나뉘는 것과 같다.
갈라져 나온 벌무리는 먼저 근처 나뭇가지에 매달려 윙윙거리는 커다란 공처럼 뭉친다. 정찰벌 수백 마리가 사방으로 나무 구멍을 찾으러 나간다. 돌아오면 벌 공의 표면에서 춤으로 보고한다. 같은 장소를 마음에 들어 하는 정찰벌이 점점 늘어나고, 어느 한곳의 지지자가 일정 수에 이르면 무리 전체가 함께 그곳으로 날아간다. 미국의 꿀벌 연구자 실리는 이 과정을 『꿀벌의 민주주의』라는 책으로 썼다.
중국 남부 사람들은 대부분 혼인비행을 본 적이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비가 내린 뒤 후텁지근한 저녁이면 불빛 아래로 날개 달린 작은 벌레가 갑자기 떼 지어 날아든다. 땅에 내려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날개가 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를 ‘다수이이’, 곧 큰 물개미라고 부른다. 대개 흰개미의 번식 개체들이 혼인비행을 하는 것이다. 한 쌍씩 내려앉아 날개를 떼고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뒤따라 기어가며 새 집을 지을 곳을 찾는다.
대부분의 개미도 혼인비행을 한다. 기존 집에서 날개 달린 여왕개미와 수개미가 수천에서 수만 마리씩 나온다. 짝짓기를 마친 여왕개미는 혼자 땅에 내려앉아 날개를 떼고 굴을 파 새 집을 시작한다. 그 사이에 어미가 딱 한 마리뿐인 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셋째 기준은 고도로 발달한 진사회성 곤충에서 증거가 강하다. 앞서 살펴본 수치들이 그 증거다. 다만 여기서도 갈등이 낮아질 뿐, 0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 기준을 함께 놓으면, 기초적인 진사회성의 꽃벌과 말벌은 셋 모두를 일부만 충족한다. 영구적으로 번식하지 못하는 계급이 있는 개미와 침없는벌에서는 셋 모두 훨씬 강하게 충족된다. 2절의 두 숫자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열다섯 번 이상은 이 스펙트럼에 들어선 횟수이고, 다섯 번은 되돌릴 수 없는 쪽 끝까지 간 횟수다.
8 층위 전환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1995년 영국의 메이너드 스미스와 헝가리의 서트마리가 책 한 권을 썼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젊을 때 항공기 설계 엔지니어였고, 20대에 이르러서야 동물학으로 길을 바꿨다. 해밀턴과 같은 세대에서 게임이론을 진화생물학에 들여온 사람이었다.
책 제목은 『진화의 중대한 전환』이었다. 분자에서 세포로, 원핵에서 진핵으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이어지는 생명사의 ‘중대한 전환’ 여덟 가지를 꼽았다. 그중 한 항목은 원문에서 이렇게 쓰였다. 홀로 사는 개체에서, 번식하지 않는 계급을 가진 집단으로.
핵심은 ‘번식하지 않는 계급’이라는 말이다. ‘홀로 사는 생활에서 어떤 형태든 사회생활로’라고 쓰지 않았다. 번식하지 않는 구성원을 전환의 중심에 놓았다. 201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웨스트와 동료들은 이 목록을 손보면서도 이 항목은 남겨 두었다. 아울러 ‘내부 갈등을 어떻게 억제하는가’도 전환 과정에 명시했다.
이 시리즈 앞부분에서 다룬 몇 차례의 층위 전환은 답이 비교적 깔끔했다. 5편에서는 세균 하나가 다른 세포 안으로 편입되어 미토콘드리아가 되었다. 세 기준이 모두 성립했다.
8편에서는 하나의 세포에서 다세포 몸이 자라나고 생식세포와 체세포가 나뉘었다. 역시 세 기준이 모두 성립했다. 이번에는 세 기준을 충족하는 정도가 하나의 스펙트럼을 따라 퍼져 있다.
연속된 범위의 한쪽 끝에서 붉은불개미 일개미는 난소가 없다. 번식 단위로서 군체의 중요성이 뚜렷하므로 군체별 생존과 번식을 비교하는 일이 특히 유용하다. 그렇다고 개체 수준의 선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쪽 끝에서는 일부 땀벌의 일벌이 번식을 이어받을 수 있어 개체 간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두 수준은 함께 작용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은 각 사례에서 어느 쪽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려내는 것이다.
미국의 퀠러와 스트라스먼은 기억하기 쉬운 관점을 제안했다. 어떤 것이 하나의 개체다운지 알려면 두 가지를 보라는 것이다. 내부의 협력이 얼마나 높은가, 내부의 갈등이 얼마나 낮은가. 세포 하나, 다세포 몸 하나, 붉은불개미 집 하나, 꼬마꽃벌 무리 하나를 이 두 기준에 따라 같은 그림 위에 놓을 수 있다. 그 사이에는 자연이 그어 둔 틈이 없다.
가운데의 드넓은 영역은 과도기가 아니다. 기초적인 진사회성을 보이는 꽃벌과 말벌은 ‘개미가 되어 가는 것들’이 아니다. 자기 자리에서 이미 수천만 년을 살았고, 일부는 홀로 사는 생활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이들은 스펙트럼에 정착해 사는 주민이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글의 상전이를 단지 ‘있다’고만 적을 수는 없다. 정확히 적으면 이렇다. 일부 계통에서는 완료되었고, 다른 일부 계통에서는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이것은 어정쩡하게 양쪽을 달래는 말이 아니다. ‘진사회성’이라는 이름표 자체를 판정 기준으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계통을 판단하려면 세 질문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구축된 틀에 담기지도 않고 없앨 수도 없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이번 글의 잔여항은 둘이다.
하나는 스펙트럼 자체다. 행동으로 억눌리는 상태에서 생리적으로 억제되는 상태로, 발달 과정에서 이미 정해지는 상태로, 다시 해부학적으로 난소 자체가 없는 상태로 이어진다.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다. 세 판정 기준이 그 위에 선을 긋지만,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지점은 없다.
다른 하나는 그 장부 논쟁이다. 양쪽이 실험실에서 하는 실험도 같고, 현장에서 세는 집도 같다. 다투는 것은 같은 과정을 ‘나와 친척’으로 적을지, ‘집 사이와 집 안’으로 적을지다. 이 논쟁의 일부는 정말 장부 쓰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
이득과 비용을 고정된 수로 다룰 수 있을 때는 두 장부의 대응 관계가 잘 보인다. 일벌 한 마리의 기여가 이미 있는 일벌 수에 달려 있다면, 그 수치도 군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고정 계수의 단순한 부등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혈연 선택은 사후 적합만 가능하고 집단 선택만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두 틀 모두 이런 상호의존을 구체적인 모형에 담을 수 있다. 비교할 것은 군체의 형성과 번식을 얼마나 명확히 기술하는지, 어떤 값을 측정할 수 있는지, 어떤 예측이 사실에 의해 틀렸다고 판명될 수 있는지다.
다윈은 그때 맛있는 소 한 마리로 선택의 단위를 개체에서 가문으로 옮겼다. 150년이 지난 뒤에도 생물학자들은 선택이 대체 일벌 한 마리에 놓이는지, 한 가문에 놓이는지, 아니면 벌집 전체에 놓이는지를 놓고 다툰다. 그 일벌 삼만 마리는 여전히 꿀을 모으고, 애벌레에게 먹이를 주고, 보초를 서고, 자매가 몰래 낳은 알을 먹어 치운다.
판정 기준은 아직도 걸러 내고 있다. 무리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게 되는 전환의 횟수는 여전히 부호화의 문턱에 따라 달라진다. 잠시 낳지 않는 상태와 평생 낳을 수 없는 상태 사이에 모두가 인정하는 절단점은 아직 없다.
관련 연구와 사실 확인 자료
- da Silva (2021) · Life History and the Transitions to Eusociality in the Hymenoptera
- Kucharski et al. (2008) · Nutritional control of reproductive status in honeybees via DNA methylation
- Gardner, West & Wild (2011) · The genetical theory of kin selection
- Marshall (2011) · Group selection and kin selection: formally equivalent approaches
- Universidade de São Paulo (2025) · The 113-million-year-old Brazilian ant fossil
- Baratte, Peeters & Deutsch (2006) · Testing homology of Diacamma gemmae and 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