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14

페름기 말 구축된 틀이 통째로 비워지다

대멸종을 한 범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시간과 장소, 작동 방식을 나누어 본다.

Han Qin · 읽는 데 약 34분 · 공개일

1 페름기의 마지막 바다

약 2억 5200만 년 전, 대륙 대부분은 판게아로 모여 북극 부근에서 남극 쪽까지 거대한 집게처럼 뻗어 있었다. 안쪽에는 따뜻한 바다가, 바깥에는 지구의 큰 부분을 덮는 대양이 있었다. 남중국 같은 지괴는 아직 따로 떨어져 동쪽 바다에 놓여 있었다.

판게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곳은 독일의 기상학자 베게너가 쓴 책의 1920년 판이다. ‘모든 육지’라는 뜻이다. 대륙이 움직인다고 주장한 탓에 그는 생애 후반 내내 동료들에게 문외한 취급을 받았다. 대륙의 품에 안긴 바다에는 훗날 지질학자들이 그리스 신화 속 바다 여신의 이름을 빌려 고테티스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의 중국 화남 지방은 당시 이 바다에 떠 있는 땅덩어리였다. 사방을 따뜻한 얕은 바다가 에워싸고 있었고, 메이산에 켜켜이 쌓인 석회암은 바로 그곳에 가라앉은 퇴적물이다.

그 얕은 바다는 생명으로 북적였다. 바다 밑에는 암초가 솟아 있었다. 주로 석회질 해면이 쌓아 올린 암초였고, 오래전에 사라진 무리의 산호와 태형동물도 한몫했다. 암초의 틈과 주변 해저에는 완족동물이 빽빽하게 살았다. 조개처럼 두 장의 껍데기를 벌리고, 둥글게 늘어선 섬모로 바닷물 속의 작은 입자를 걸러 먹었다.

바다나리는 줄기 달린 꽃송이처럼 물살에 흔들렸다. 바닥의 진흙 위에는 쌀알만 한 유공충이 굴러다녔다. 얼마나 많았던지 그것들만 쌓여 석회암 지층 하나를 이루기도 했다. 삼엽충도 아직 있었다. 겨우 몇 종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미 2억 7천만 년이 넘도록 바다에서 살아온 동물이었다.

육지도 한산하지 않았다. 검 같은 송곳니를 갖추고 몸길이가 2~3미터에 이르는 고르고놉스류가 당시 육지의 으뜸가는 사냥꾼이었다. 몸에 골판을 두른, 코뿔소 같은 체격의 파레이아사우루스류는 강가에서 식물을 뜯어 먹었다. 화남의 열대 늪에는 잎이 유난히 큰 기간토프테리스가 자랐다. 오늘날 화남의 여러 탄광에서 캐는 석탄은 바로 그 페름기 후기 숲이 변한 것이다.

페름기는 약 2억 9,900만 년 전에 시작되어 4천만 년 넘게 이어졌다. 고생대의 마지막 기였다. 고생대는 ‘오래된 생명’이라는 뜻인데, 이 시대가 끝나는 선을 그은 것이 바로 이번 편에서 이야기할 사건이다.

이것이 페름기의 마지막 바다였다. 페름기라는 이름은 러시아 우랄산맥 서쪽 기슭의 페름에서 왔다. 1841년 영국 지질학자 머치슨이 그곳을 답사하다가 독립된 한 묶음을 이루는 지층을 보고,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이 시기에 이름을 붙였다.

그에 앞서 머치슨은 웨일스의 옛 부족 이름을 따 실루리아기라는 이름도 지어 놓았다. 중국어로 페름기를 ‘이첩기’, 곧 두 겹의 시대라고 옮긴 것은 독일에서 이 시기의 지층이 위아래 두 층으로 뚜렷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지질학적 시간으로 거의 눈 한 번 깜박일 사이에, 이 바다가 텅 비었다. 암초가 무너졌고, 암초를 만들던 산호는 단 한 종도 남지 않았다. 해저에서 가장 흔하던 완족동물은 소수로 밀려났다.

쌀알만 한 유공충은 거의 사라졌다. 삼엽충은 완전히 퇴장했다. 현재 추정으로는 바다에 살던 속의 약 60퍼센트, 종의 약 80퍼센트가 다음 시대에 들어서지 못했다. 어느 자를 가져다 대든, 지구 생명사에서 가장 큰 멸종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숫자는 ‘해양 생물 종의 96퍼센트가 멸종했다’는 것이다. 이 숫자에도 내력이 있다. 1979년 시카고의 라우프가 《사이언스》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라우프는 컴퓨터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고생물학자였다. 1960년대에 벌써 몇 개의 변수만으로 가능한 모든 고둥 껍데기 모양을 계산해 냈고, 자연의 껍데기들은 그 가운데 아주 작은 영역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에게는 멸종 이전의 해양 생물 종 목록이 없었다. 그런 목록은 오늘날에도 없다. 손에 쥔 것은 그보다 상위 단계의 자료, 화석 기록에 남은 과와 속이었다. 이것들은 종보다 훨씬 믿을 만했다. 과는 구성원 하나만 남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으로 치며, 종 하나를 알아보는 것보다 과 하나를 알아보는 일이 더 쉽다. 그는 당시 과의 약 절반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우프는 아주 영리한 방법을 썼다. 현생 성게를 살펴본 것이다. 한 속에 평균 몇 종이 들어 있는가. 한 과에는 평균 몇 속이 들어 있는가. 이 계층 구조를 알면 거꾸로 계산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과가 한꺼번에 사라지려면 도대체 몇 종이 죽어야 하는가.

답은 ‘최대 96퍼센트’였다. 3년 뒤 라우프는 동료 세프코스키와 함께 해양 화석의 과 목록으로 다섯 차례 대멸종을 그려 냈다. 페름기 말은 그 곡선에서 가장 깊이 팬 골짜기였다.

1984년 두 사람은 그 곡선에서 또 하나를 읽어 냈다. 대멸종이 약 2,600만 년마다 일어나는 듯했다. 이를 설명하려고 어떤 천문학자들은 태양에 보이지 않는 동반성이 있어서, 한 바퀴 돌 때마다 혜성을 휘저어 내태양계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했다. 그 별에는 ‘복수의 여신’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그 별은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고, 주기 자체를 믿는 사람도 점점 줄었다. 그가 먼저 안 것은 얼마나 많은 과가 죽었느냐였다. 그런 다음 그만한 과가 사라지려면 몇 종이나 죽어야 하는지 거꾸로 계산했다.

원래 논문이 쓴 표현은 ‘최대’였다. 96은 그 계산에서 나온 상한이다. 이후 연구들은 이 숫자를 낮추었다. 한 가지 이유는 초기의 자료 집성이 페름기 말보다 약 800만 년 앞서 일어난, 규모가 더 작은 멸종까지 한데 합쳐 놓았다는 데 있다. 두 사건을 장부 한 줄에 적었으니 낙폭도 당연히 커졌다. 그 작은 멸종은 약 2억 6천만 년 전에 일어났는데, 시기가 중국 서남부의 대규모 현무암 분출과 맞아떨어진다. 오늘날 쓰촨성 어메이산 금정의 절벽이 바로 그렇게 켜켜이 쌓인 현무암이다.

2016년 미국의 스탠리는 두 멸종을 다시 분리해 계산했다. 그 결과 페름기 말에 해양 생물 속의 약 62퍼센트가 사라진 것으로 나왔다. 여기서 다시 종으로 거슬러 계산하되, 같은 속에 속한 종들은 함께 죽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자 약 81퍼센트가 나왔다.

이 80퍼센트 역시 속에서 추산한 수치다. 계산할 때는 한 속에 보통 몇 종이 있는지, 같은 속의 종들이 함께 죽는지, 보존된 속 안의 종 수가 실제 상황을 대표할 수 있는지 가정해야 한다. 가정이 조금 바뀌면 답도 조금 바뀐다. ‘속의 약 60퍼센트, 종의 약 80퍼센트’가 오늘날 비교적 신중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재난의 무게를 재는 데 가장 맞지 않는 것은 과 수준의 숫자다. 과는 속 하나만 남아 있어도 ‘존속’으로 기록된다. 한 과가 100개 속에서 하나의 속으로 줄어도 과 단위 통계에서는 여전히 온전하다. 실상은 99퍼센트를 잃었는데도 말이다.

2 6만 년

이 멸종을 가장 정확하게 재는 시계는 중국에 있다.

저장성 창싱현에는 메이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일찍부터 주민들이 석회암을 캐던 곳이다. 산비탈에 드러난 회색 암석의 층들은 2억 5천만 년 전 바다 밑바닥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난징지질고생물연구소의 진위간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곳에서 한 층씩 시료를 채취하고, 각 층의 화석을 하나하나 동정했다. 2000년 그들은 《사이언스》에 메이산의 멸종 기록을 발표했다. 수많은 종이 아주 얇은 몇 개의 암석층 안에서 한꺼번에 사라져 있었다.

쓰촨성 광위안의 상쓰와 저장성 창싱의 다른 몇몇 노두 역시 이 멸종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면이다. 2011년 난징지질고생물연구소의 선수중 등이 화남의 여러 단면을 종합해, 멸종이 일어난 시간을 20만 년 이내로 좁혔다.

많은 지질시대 경계는 세계 각지와 대비하기 좋은 지층 단면에 기준점, 이른바 ‘황금못’을 정해 정의한다. 모든 경계가 이 방식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23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2001년 국제층서위원회는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의 경계를 메이산 단면의 27층에 정했다. 기준은 코노돈트라고 하는 미세 화석 가운데 한 종류가 처음 나타나는 지점이다. 코노돈트는 오래전에 멸종한, 뱀장어를 닮은 작은 동물의 입에 있던 이빨 모양 구조다. 크기가 1밀리미터도 안 되고 형태가 빠르게 변해, 해양에서 쌓인 지층을 구분하는 데 가장 유용한 자 가운데 하나다.

1856년 러시아의 판데르가 이 작은 것들을 처음 기재했다. 가느다란 톱니가 줄지어 선 듯하고, 현미경으로 보면 호박색이었다. 이것이 대체 어떤 동물의 입에 달려 있었는지는 100년 넘게 고생물학자들을 괴롭힌 수수께끼였다.

1983년에야 연구자들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부근의 석탄기 지층에서 코노돈트 한 벌을 고스란히 지닌 동물의 전체 흔적을 찾아냈다. 길이 몇 센티미터의, 뱀장어처럼 생긴 부드러운 작은 동물이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눈 한 쌍이, 입에는 잔 이빨이 둥글게 나 있었다. 이 ‘황금못’은 중국에 박혀 있으며, 오늘날 그곳은 지질공원이다.

메이산에는 더욱 귀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화산재다. 그곳의 석회암 사이에는 얇은 화산재층이 촘촘히 끼어 있다. 풍화되어 흰색이나 노란색 점토가 된 층들이다. 회색 석회암 사이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재는 시베리아가 아니라 당시 남중국 주변 화산들에서 왔다. 9편의 지르콘 시계는 결정 형성과 우라늄-납 체계의 폐쇄를 기록한다. 재가 땅에 떨어져야 시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분출 시기에 가깝게 형성되고 이후 교란되지 않은 결정을 가려 재층의 연대를 제한한다. 메이산에는 이런 시계가 유난히 촘촘하다.

201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연구자들이 이 화산재층들의 연대를 다시 측정했다. 메이산의 25층 자체가 화산재에서 변한, 두께 몇 센티미터의 흰 점토층이다. 현지 지질학자들은 회흑색 석회암 속에서 이 층을 단번에 알아본다.

메이산 단면 앞에 서면 기구 없이도 그 선을 볼 수 있다. 25층 아래의 석회암을 깨면 완족동물의 껍데기와 쌀알만 한 유공충이 곧잘 나온다. 몇 층 위로 올라가면 암석은 단조로워지고 화석은 드물어진다. 주 멸종의 시작은 25층 바닥, 끝은 28층으로 잡는다.

이 두 지점 바로 곁의 화산재 연대는 각각 2억 5,194만 1천 년 전과 2억 5,188만 년 전이다. 오차는 양쪽 모두 3만 년 안팎에 불과하다. 두 연대를 빼면 이렇게 된다. 주 멸종은 약 6만 1천 년 동안 이어졌으며, 오차는 약 4만 8천 년이다.

같은 기기와 같은 표준물질로 측정한 두 연대를 빼면 일부 계통오차는 서로 상쇄된다. 그래서 ‘이 두 층의 간격은 약 6만 년이다’가 ‘이 층은 몇 년 전 것이다’보다 더 믿을 만하다. 메이산의 이 구간은 퇴적층도 아주 얇다. 연구자들은 6만 1천 년을 주 멸종이 지속된 시간의 상한으로 본다.

또 다른 방법은 천문 주기가 지층에 남긴 리듬을 세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약 8만 3천 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길은 모두 10만 년 이내를 가리킨다.

6만 년은 얼마나 짧은가.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때부터 세어도 대략 그 정도다. 지구 생명사의 눈으로 보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죽음이다.

그동안 바닷물이 달아올랐다. 코노돈트의 인산염에는 당시 바닷물의 산소 동위원소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온도로 환산하면 메이산 일대 표층 바닷물은 주 멸종 기간에 약 섭씨 23도에서 33도로 올랐고, 이후에도 높은 온도를 유지했다.

중국지질대학의 쑨야둥 연구진은 남중국 기록을 바탕으로 삼첩기 초기 수백만 년 동안 적도 표층수가 약 40도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목욕물 같은 온도이며 오늘날 대부분 열대 해역의 평상시 수온보다 훨씬 높다. 이런 고온이 지속되고 산소까지 부족하면 많은 해양 동물의 서식 공간이 크게 줄고 죽을 수도 있다. 다만 견디는 온도와 시간은 종, 순응, 노출 기간에 따라 달라지므로 몇 시간이나 며칠로 일괄 단정할 수 없다.

탄소도 심하게 요동쳤다. 탄소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두 가지 안정한 형태가 있다. 살아 있는 생물은 가벼운 쪽을 선호하므로 석탄과 석유, 갖가지 유기물에는 가벼운 탄소가 유난히 많다.

바닷물 속 탄소가 갑자기 가벼워졌다면 유기물이나 땅속에서 온 탄소가 대량으로 밀려들었다는 뜻이다. 메이산의 탄소 동위원소는 멸종 약 6만 년 전부터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유기물이나 마그마에서 나온 많은 탄소가 바다와 대기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한 층에서는 탄소 동위원소가 수천 년에서 1~2만 년 사이에 급격히 한쪽으로 튀었다가 되돌아온다. 지질 기록에서는 거의 순간적인 변화다. 하지만 탄소 순환 전체의 불안정은 40만 년 넘게 이어졌다. 이 세 가지 기간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일을 말한다. 탄소 유입이 시작된 때, 가장 거센 한 차례의 유입, 그리고 전체 체계가 안정을 되찾는 데 걸린 시간이다.

탄소는 들어오는 총량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 지구에는 자체 온도조절기가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면 기후가 따뜻해지고 비가 많아져 암석의 풍화가 빨라진다. 풍화는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조금씩 거두어, 마지막에는 해저의 석회암 속에 저장한다.

이 온도조절기는 느리다. 제대로 돌아가려면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이 필요하다. 탄소가 수천 년 동안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온도조절기는 미처 반응하지 못한다. 그 전에 바닷물이 뜨거워지고, 산성화되고, 산소가 부족해진다. 1~2만 년 사이의 그 급격한 도약은 바로 이 ‘미처’를 말한다.

주 멸종이 한 막이었는지 여러 막이었는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메이산과 화남의 몇몇 단면에서 얻은 고해상도 기록은 생물의 손실이 두 차례의 집중된 파동으로 일어났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메이산의 퇴적층은 너무 얇다. 수심마다 달랐을 산소 부족의 정도 때문에, 장소에 따라 마지막 출현 시점이 어긋났을 가능성도 있다. 11편에서 이야기한 마지막 출현의 앞당겨짐은 짧은 멸종에 긴 꼬리가 달린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비교적 신중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메이산의 주된 위기는 10만 년 이내에 압축되어 있다. 그 안에 몇 번의 파동이 있었는지는 더 두꺼운 단면이 답해 주어야 한다.

3 시베리아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오늘날 시베리아 북부의 푸토라나고원은 현무암이 층층이 쌓인 대지다. 강 계곡 양쪽의 산비탈이 거대한 계단처럼 한 단 한 단 겹쳐 올라간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지형을 ‘트랩’이라고 부른다. 스웨덴어로 ‘계단’이라는 말에서 온 이름이다. 이 계단들이 바로 페름기 말 화산 활동의 흔적이다. 지금은 세계유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외딴 고원 가운데 하나로, 헬리콥터를 타거나 물길을 따라가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용암이 한 번 흐르고 나면 그 층의 두께만 수십 미터에 달할 수 있다. 그렇게 한 층이 다음 층을 누르며 쌓였다. 노릴스크 일대에서는 전체 두께가 3천 미터를 넘는다.

연대 모형에 따르면 화산 활동의 첫 단계에서는 약 30만 년 만에 전체 용암과 화산쇄설물의 약 3분의 2가 분출했다. 부피는 약 100만 세제곱킬로미터. 중국 전체를 100미터 넘는 두께의 현무암으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2021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부근의 한 화산이 반년 동안 분화해 내놓은 용암은 약 0.15세제곱킬로미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수천 수만 명이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100만 세제곱킬로미터는 그런 분화가 수백만 번 잇달아 일어나는 양이다.

깊은 곳의 암상과 암맥, 관입체, 훗날 침식되어 없어진 부분까지 모두 합하면 마그마 체계 전체는 수백만 세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문헌에 나오는 ‘200만’, ‘300만’, ‘500만 세제곱킬로미터’의 차이는 대개 용암만 세었는지 마그마 체계 전체를 세었는지에서 비롯된다.

이 마그마의 일부는 오늘날에도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린다. 북극권의 노릴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니켈과 팔라듐 산지 가운데 하나다. 광상은 당시 땅속으로 밀려 들어간 마그마 덩어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도시는 1930년대 강제노동수용소의 수감자들이 동토 위에 세웠다. 한 해 중 한 달 반은 해를 볼 수 없고, 지금도 외부로 이어지는 도로나 철도가 없다. 오가는 길은 비행기와 북쪽 항로에 의지한다.

이 현무암과 멸종을 연결한 것은 훗날의 일이다. 1991년 미국 버클리의 연구자들이 아르곤 동위원소로 시베리아 현무암의 나이를 측정했는데, 페름기 말과 거의 겹쳤다. 그때부터 화산이 첫손에 꼽히는 용의자가 되었다.

하늘에서 범인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2001년에는 경계의 점토층에서 발견한 새장 모양 탄소 분자 안에 지구 밖에서 온 헬륨이 들어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2004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북서쪽 바다 밑의 한 구조가 충돌구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후 다른 연구실들은 이 증거들을 재현하거나 확인하지 못했다. 18편에서 만날 소행성과 달리, 페름기 말에는 지금껏 널리 인정받는 충돌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화산과 멸종의 시간 관계는 세 구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첫 구간에서는 전체 용암의 약 3분의 2가 주 멸종에 앞선 약 30만 년 동안 차례로 분출했다. 그런데도 생물권은 곧바로 무너지지 않았다.

두 번째 구간, 약 2억 5,190만 년 전에는 지표의 분출이 멈추었다. 마그마는 지하로 방향을 틀어 암층 사이에서 옆으로 퍼져 나갔다. 바로 이때가 메이산의 주 멸종 시간대와 겹친다. 세 번째 구간에서는 분출이 다시 시작되어 멸종 뒤까지 이어졌다. 세 구간 가운데 멸종과 맞아떨어지는 것은 한가운데의 그 짧은 구간뿐이다. 공교롭게도 용암이 위로 솟구치지 않고 땅속을 파고들던 때다.

마그마는 지하에서 옆으로 퍼지며 퇴적암의 층과 층 사이로 밀려들었다. 식은 뒤에는 판 모양 암체가 되었는데, 이를 암상이라고 한다. 마그마가 파고든 곳은 퉁구스카분지였다. 그 지층에는 소금과 석회암, 석탄, 석유가 있었다. 하필이면 모두 열을 가하면 가장 곤란해지는 것들이었다. 석탄과 석유는 가열되면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내놓고, 석회암은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다. 소금은 마그마와 반응해 황과 염소를 포함한 기체를 내놓는다.

퉁구스카분지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에게 낯익다. 1908년 우주에서 날아온 작은 천체가 이 숲 위에서 폭발해 2천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의 나무들을 한꺼번에 쓰러뜨렸다. 2억 5천만 년 전에는 그 똑같은 땅 아래에 뜨거운 마그마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염소와 브로민을 포함한 기체가 성층권까지 올라가면, 20세기에 인간이 만든 프레온처럼 오존층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4절에서 보겠지만, 경계 부근의 꽃가루와 포자에는 이 일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2009년 노르웨이 연구자들은 암상 가설을 제안했다. 환경에 미치는 효과를 결정한 것은 분출한 마그마의 양이 아니라, 마그마가 무엇을 구웠느냐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의 연대 측정은 멸종 시기를 최초의 암상 무리와 다시 맞추어 놓았다. 똑같은 1세제곱킬로미터의 마그마라도 깊은 곳에서 결정화하거나 척박한 현무암 위로 분출할 때와, 층층이 쌓인 석탄과 소금 속으로 파고들 때는 대기로 내보내는 탄소와 황, 할로젠의 양이 몇 배씩 달라질 수 있다.

기체마다 작용도 다르다. 이산화황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분출하면 높은 대기에 작은 황산염 입자가 생긴다. 이 입자들은 햇빛을 가려 몇 년 동안 지표를 식힌 뒤, 비와 함께 떨어져 산성비가 된다.

반면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대기에 오래 머물며 지구를 장기간 덥힌다. 그저 ‘화산 가스’라고 뭉뚱그리면 방향이 정반대인 이 두 효과가 한데 섞인다.

유난히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증거도 있다. 2011년 캐나다 연구자들은 북극 고위도 지역의 페름기 말 암층에서 특이한 입자를 발견했다. 속이 비고 작은 구멍이 뚫린 구형 탄소 입자였다. 오늘날 석탄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비산재와 거의 똑같았다. 연구자들은 시베리아의 마그마가 광대한 석탄층에 불을 붙였고, 그 매연과 먼지가 바람에 실려 당시 북극해를 건너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내려앉았다고 보았다.

이 가설에도 빈틈은 있다. 광범위한 암상 관입은 약 50만 년 동안 이어졌다. 6만 년의 주 멸종보다 대략 열 배 긴 시간이다. 2017년 연구의 저자들도 그 기간 안에서 더 집중적으로 기체가 방출된 한 차례를 찾아야 한다고 인정했다.

연대를 측정한 암상 중 상당수는 주 멸종보다 분명히 나중 것이다. 방출된 탄소 기체의 총량은 수천에서 수만 기가톤으로 추산된다. 오차가 열 배 이상 벌어지는 것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퇴적물을 구웠는지, 그 안에 탄소가 얼마나 있었는지, 기체 가운데 얼마가 정말 지표까지 빠져나왔는지에 따라 값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4 어떻게 죽었는가

기체가 대기로 들어간 뒤에는 변화가 꼬리를 물었다.

첫 번째는 열과 산소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이 뜨거울수록 녹아 있을 수 있는 산소는 줄어든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냉혈동물의 대사는 빨라져 필요한 산소가 늘어난다. 2018년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자들은 먼저 수십 종의 현대 해양 동물을 실험실에서 측정한 자료를 모았다. 게 한 마리나 물고기 한 마리는 얼마나 뜨겁고 산소가 얼마나 부족한 물까지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런 다음 이 두 가지를 모형 하나에 넣었다. 온도 상승은 공급과 수요 양쪽에서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산소 공간’을 압박한다. 못의 물은 얕아지는데 물고기는 물을 더 많이 마시게 된 셈이다.

이 모형은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을 내놓았다. 고위도 지역에서 멸종이 더 심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찬물에는 원래 산소가 많이 녹아 있다. 그곳 동물들이 적응한 것도 바로 산소가 풍부한 물이었으므로, 따뜻해진 뒤 잃는 비율이 가장 컸을 것이다. 화석 기록과 맞추어 보니 들어맞았다. 모형은 속 수준에서 일어난 손실의 주요 부분도 재현했다.

바다 동물들도 달아나 보았다. 중국지질대학교의 쑹하이쥔 등이 멸종 전후의 해양 화석을 정리하자, 멸종 뒤 한동안 열대의 얕은 바다에서 종이 유난히 드물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평소라면 ‘적도에 가장 많고 양극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다양성 분포가 거의 평평해졌다. 적도는 너무 뜨거워 머물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훨씬 작은 규모로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해양학자들이 종합한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바다의 산소량은 약 2퍼센트 줄었다. 연안에는 ‘죽음의 구역’이 늘고 있다. 그곳의 바닥 가까운 물은 산소가 너무 부족해 물고기와 게가 살 수 없다.

두 번째는 산소 부족, 나아가 독성이다. 철과 미량 원소, 유기 분자의 기록은 모두 산소가 부족한 바닷물이 크게 확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가장 생생한 증거는 한 무리의 세균이 지닌 색소에서 나왔다.

녹색황세균은 빛도 필요하고 황화수소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곳에서만 산다. 햇빛이 닿으면서 물속에 황화수소도 있는 곳이다. 정상적인 바다에서는 이 둘이 멀리 떨어져 있다. 빛은 위에 있고 황화수소는 깊은 곳에 있으며, 그 사이에는 산소가 든 물층이 놓여 있다.

2005년 연구자들은 메이산과 서호주의 경계 퇴적층에서 이 세균 색소의 잔해를 찾아냈다. 독이 든 물이 햇빛이 닿는 깊이까지 밀고 올라왔던 것이다. 오늘날의 흑해가 바로 그런 층상 구조의 바다다. 수심 100~200미터 아래에는 산소가 없고 황화수소가 가득하다. 녹색황세균은 산소가 있는 층과 황화수소가 있는 층의 경계에 놓인 얇은 띠에 산다. 그곳에 남은 빛은 수면의 극히 작은 일부뿐이지만, 이들은 그 빛으로도 살아간다.

이런 상태에는 지역별·수심별 구역 차이가 있다. 온 대양이 동시에 황화수소 한 솥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황화수소가 바다 표면에서 대기로 빠져나와 해안의 육지를 중독시키고, 심지어 오존층까지 파괴했으리라는 가설도 있다.

오존층에 관해서는 간접적인 증거 하나가 있다. 경계 부근의 암층에서 기형 꽃가루와 포자가 자주 발견된다. 네 개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고 모양도 비뚤어져 있다. 2018년 연구자들은 한 종류의 왜성 소나무를 자외선을 강화한 실내 생장상에서 키웠다. 그 나무가 만든 꽃가루에도 같은 기형이 나타났고, 자외선 조사를 멈추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는 산성화다. 붕소는 바닷물에서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그 비율은 산도에 따라 달라진다. 생물은 껍데기를 만들 때 한쪽 형태를 선호한다. 따라서 껍데기 속 붕소 동위원소로 당시 바닷물의 산도를 거꾸로 알아낼 수 있다.

2015년과 2020년 영국과 독일의 연구자들은 각각 이 방법을 써서 당시의 탄산염과 보존 상태가 좋은 완족동물 껍데기에서 멸종 기간의 뚜렷한 산성화를 읽어 냈다. 영국 연구는 그 시기가 두 번째 멸종 파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2억 5천만 년 전의 껍데기 하나가 그 바다가 얼마나 산성이었는지 말해 준 것이다.

pH는 로그 척도다. 영점 몇 단위 떨어졌다고 하면 별것 아닌 듯하지만, 수소 이온 농도는 두 배, 때로는 그 이상 늘어난다. 바닷물에서 탄산칼슘을 얻어 껍데기를 만드는 동물에게는 껍데기를 짓기가 더 힘들어지고, 이미 지은 껍데기도 더 쉽게 녹는다는 뜻이다. 오늘날 바다의 pH는 산업혁명 이후 약 0.1 낮아졌다. 해양학자들은 일부 실험에서 작은 고둥 무리인 익족류의 얇은 껍데기에 이미 녹아드는 흔적이 생긴 것을 보았다.

네 번째는 산성화와 비슷하지만 별개의 일이다. 바닷물의 이산화탄소가 늘면 동물의 체액 속 이산화탄소도 함께 올라가, 혈액과 체액이 산성으로 기운다. 이를 고탄산혈증이라고 한다. 문과 창문을 닫은 채 사람이 빽빽한 회의실에 오래 있으면 어지럽고 졸릴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충분히 높은 농도로 쌓이면 혈액의 산·염기 균형도 바꿀 수 있다.

어떤 동물은 탄산칼슘 껍데기를 만들지 않는데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능력이 떨어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다른 동물은 두꺼운 껍데기를 만들면서도 체액 조절을 잘할 수 있다. 바깥에서 일어난 변화는 같아도 서로 다른 몸에 닿으면 압력의 형태가 달라진다.

대기 역시 이 변화를 기록했다. 2021년과 2022년 연구자들은 차례로 화석 식물의 탄소 동위원소와 고토양 속 탄산염을 이용해,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의 교체기에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4~6배로 늘었다고 추산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때 가벼운 탄소를 선호한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많을수록 더 뚜렷하게 골라 잡는다. 잎 한 장이 작은 기체 측정기인 셈이다.

이 몇 가지는 서로 겨루는 답이 아니다. 현재의 종합 연구는 이들을 하나의 사슬로 잇는다. 많은 탄소와 황이 대기로 들어가 온도 상승과 산소 부족, 산성화를 불렀고, 이 셋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 서로 겹쳐 작용했다.

요인이 여럿인 사슬에는 위험이 하나 있다. 관측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마다 다른 요인을 하나 더 보태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열로 인한 산소 부족 모형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무엇이 보여야 하는지를 먼저 말했고 화석 기록이 그 말에 답했기 때문이다.

5 누가 살아남았는가

이제 질문을 바꾸어 보자. 누가 살아남았으며, 왜 살아남았는가.

2007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놀 등이 한 가지 생각을 내놓았다. 당시의 압력이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와 온도 상승, 산소 부족, 산성화였다면, 동물이 죽을지 살지는 몸의 구조에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숨을 쉬는지, 혈액은 어떻게 도는지, 대사가 빠른지, 체액의 산·염기를 조절할 수 있는지,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얼마나 쓰이는지. 먼저 환경의 작동 방식으로부터 생존자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하는지를 도출한 뒤, 화석에서 대조하는 방법이다. 틀릴 수 있는 생각이다.

가장 위험한 조합은 두껍고 무거운 탄산칼슘 골격에 아주 낮은 대사율, 매우 약한 호흡과 순환 능력이 겹치는 경우였다. 암초를 만드는 산호와 석회질 해면, 여러 완족동물과 태형동물, 극피동물이 모두 이쪽 끝에 놓인다. 대부분 평생 해저에 붙박인 채 섬모로 천천히 물을 거른다. 호흡 색소가 따로 없고, 체액의 산·염기도 거의 조절하지 않는데, 껍데기에는 많은 탄산칼슘이 필요하다.

반대쪽 끝에는 스스로 물을 움직여 호흡하고, 대사가 비교적 높으며, 순환계가 더 발달한 동물들이 있다. 혈액에 산소를 나르는 색소가 있고 체액의 산·염기를 조절할 수 있는 동물들, 곧 여러 연체동물과 절지동물, 그리고 물고기다. 이런 형질이 한 속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확률을 바꿀 뿐이다.

2011년 미국의 클래펌과 페인은 이 생각을 다변량 통계에 넣었다. 골격의 광물 성분, 생리적 완충 능력, 생활 방식, 지리적 분포 범위를 동시에 놓고, 어느 것이 한 속의 멸종 여부를 가장 잘 예측하는지 살펴보았다. 생리에 따른 선택성은 뚜렷했다.

분포가 넓은지는 이번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넓게 분포하는 분류군일수록 멸종하기 어렵다. 국지적 재난 하나가 전부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페름기 말의 압력은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넓은 분포라는 보험이 효력을 잃었다.

2022년에는 화남의 해양 생물 1,200여 속을 놓고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어떤 특성으로 멸종을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지 스스로 찾게 한 연구도 나왔다. 알고리즘은 연구자들의 가설을 미리 몰랐다. 찾아낸 것은 수심 범위, 한 속 안의 종 수, 껍데기 성분, 생리적 특성이었다. 이후 연구자들은 1천 개가 넘는 속으로 호흡계의 산소 운반 능력을 검증하고, 현생 근연 동물로 온도 상승과 저산소에 대한 내성을 직접 측정했다. 그 결과를 멸종 모의실험에 다시 넣자 화석 기록과 비슷한 선택성이 나왔다.

바다나리는 거의 전멸했다. 단 한 계통만 경계를 넘었고, 오늘날 바다의 모든 바다나리는 그 계통의 후손이다. 성게도 마찬가지다. 라우프가 환산에 사용한 바로 그 동물 무리도 거의 전부 사라질 뻔했다. 오늘날의 모든 성게는 경계를 넘은 한두 계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완족동물의 사례는 유난히 선명하다. 이것도 11편에서 말한 체와 관련이 있다. 완족동물의 껍데기는 대개 방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해양 동물 가운데 화석 기록이 가장 온전하다. 그래서 그 손실도 가장 또렷하게 보인다.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보자. 사방산호와 판상산호는 고생대의 얕은 바다에서 2억 년 넘게 암초를 만들었지만, 이 경계에서 한 종도 남지 않았다. 방추충류 유공충은 쌀알만 하고 물레의 가락처럼 생겼다. 페름기 후기 열대의 얕은 바다에는 이것만으로 석회암층이 켜켜이 쌓일 만큼 많았는데, 경계에서 거의 전멸했다.

중국어에서 방추충을 가리키는 ‘䗴’이라는 글자는 지질학자 리쓰광이 만들었다. 젊은 시절 영국 버밍엄대학교로 유학한 그는 훗날 중국 북부의 방추충류 연구로 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1927년에는 중국 북부 방추충류에 관한 연구서를 냈고, 이들을 이용해 화북의 석탄 함유 지층을 구분했다. 석탄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그는 훗날 신중국의 초대 지질부 장관이 되었다. 쌀알만 한 유공충은 페름기 바다에서 산을 이룰 만큼 많았고, 2억여 년 뒤에는 사람들이 산속에서 석탄을 찾도록 도왔다. 완족동물은 고생대 해저에서 가장 흔한 여과섭식자였으며, 여러 연체동물보다 훨씬 큰 손실을 입었다.

삼엽충은 따로 말해야 한다.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의 바다에서 대단히 중요했던 이들은 페름기 말에는 얼마 안 되는 종만 남아 있었다. 이들의 마지막은 오래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가장 번성한 동물도 죽는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번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은 동물들 역시 저마다 다른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혀 모양의 얇은 껍데기를 지닌 완족동물 한 무리는 껍데기에 탄산칼슘 대신 인산칼슘과 키틴을 쓰며 살아남았다. 가까운 친척들은 지금도 중국과 일본 연안의 갯벌에 살고, 현지 사람들이 캐서 먹는다. 중국에서는 흔히 ‘바다 콩나물’이라는 뜻의 하이더우야라고 부른다. 자그마한 껍데기 뒤로 반투명한 긴 자루가 달린 모습이 콩나물을 닮았다. 이 무리는 캄브리아기부터 지금까지 겉모습이 별로 달라지지 않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자주 불린다.

이매패류도 손실이 작지 않았지만 여러 계통이 경계를 넘었다. 이들은 아가미로 능동적으로 물을 끌어들이며 혈액 순환도 더 활발하다. 일부 복족류와 암모나이트, 갑각류, 코노돈트에서도 경계를 넘어간 구성원들이 있었다.

암모나이트는 아주 적은 계통만 남았지만, 트라이아스기에 다시 수백 개 속으로 갈라져 대양을 뒤덮었다. 한 분류군이 경계를 넘을 때 얼마나 남아 있느냐와, 그 뒤 얼마나 다시 불어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해저의 주인도 바뀌었다. 고생대의 바다 밑은 완족동물의 세상이었지만 중생대 이후에는 이매패류와 고둥이 우세해졌다. 오늘날 바닷가에서 껍데기를 주우면 거의 전부 이매패류와 고둥이다. 완족동물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미국 고생물학자 굴드는 이 두 무리를 ‘밤에 서로 스쳐 지나가는 배’에 비유했다. 하나는 물러나고 하나는 나아갔다. 주인이 바뀌는 그 순간이 바로 페름기 말이었다.

생존자 명단은 ‘공교롭게도 그 몇 가지 항목에서 구성이 알맞았던’ 동물들의 목록처럼 읽힌다. 완충 능력이 높은 분류군에서도 멸종한 속이 있고, 완충 능력이 낮은 분류군에서도 살아남은 구성원이 있다.

모형이 예측하는 것은 확률의 차이다. 반례 한두 개로 무너뜨릴 수 없다. 같은 큰 계통에 속한 속들은 조상을 공유하며 몸의 구조도 공유한다. 이들을 서로 독립된 자료점으로 취급하면 생리의 역할을 부풀리게 된다. 현대의 분석은 계통적 근연관계까지 모형에 함께 넣는다.

6 육지에서는

육지에서도 큰일이 일어났다. 다만 바다만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페름기 후기, 남쪽 대륙의 고위도 지역에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우점종은 글로소프테리스, 잎이 혓바닥처럼 생긴 나무였다. 1912년 영국의 스콧은 탐험대를 이끌고 남극점에 도착한 뒤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몇 달 후 수색 구조대가 그들의 텐트를 찾았을 때, 썰매 위에는 빙하 가장자리에서 주워 온 암석 약 16킬로그램이 실려 있었다. 그 안에 글로소프테리스 잎 화석이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그 돌들을 끌고 걸었다. 남극대륙이 한때 숲으로 뒤덮였고 남쪽의 여러 대륙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초기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화석들이었다.

글로소프테리스라는 이름은 혀 같은 잎에서 왔다. 종자식물이며, 일부는 잎에 씨가 달렸다. 페름기 후기에는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인도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남극대륙까지 어디에나 있었다. 그 분포 지도 자체가 남쪽 대륙들이 한때 이어져 있었다는 증거다.

2019년 연구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분지에서 꽃가루와 포자, 화산재의 고정밀 연대를 이용해, 이 글로소프테리스 숲의 붕괴가 메이산의 주된 해양 멸종보다 약 37만 년 앞섰다고 밝혔다. 남아프리카의 카루분지는 오랫동안 육지와 바다의 동시 멸종을 보여 주는 대표 단면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20년의 고정밀 연대 측정은 그곳의 생물 교체가 더 일렀다고 보았고, 2026년에는 그 유명한 ‘멸종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나왔다. 이 연구는 수백 미터 두께의 지층, 지르콘의 고정밀 연대, 여러 지점의 고지자기와 고토양 동위원소를 종합했다. 결론은 고전적인 그 멸종선이 같은 순간을 가리키는 경계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견해는 아직 논쟁 중이다. 한편 2024년 화남의 옛 열대 지역에서 나온 육상 기록은 정반대의 순서를 제시했다. 육지의 위기가 바다보다 나중이었다.

신장 지무싸얼의 다룽커우 일대에도 페름기에서 트라이아스기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하천·호수 퇴적층이 있다. 그 안에는 디키노돈트류의 뼈와 꽃가루, 포자, 화산재가 들어 있어, 중국에서 육지 쪽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면이 된다.

여러 장소를 함께 놓고 보면 고위도의 식생은 더 일렀고, 카루의 동시성은 도전을 받고 있으며, 화남의 열대는 더 늦었다. 육지에는 모든 단면이 함께 그 6만 년 안으로 고정해 주는 멸종선이 없다. 고위도의 숲과 열대의 식생, 내륙의 사지동물은 애초에 마주한 압력도, 반응하는 속도도 다를 수 있다.

현재의 기록만으로는 식물의 전 지구적 멸종 비율을 믿을 만한 숫자로 제시할 수 없다. 페름기의 하늘에는 날개를 펼치면 약 7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잠자리의 친척들도 날고 있었다. 이들은 트라이아스기까지 날아가지 못했다. 곤충 기록은 보존 상태가 유달리 좋은 몇몇 화석 산지에서만 나오므로, 이것 역시 전 지구의 백분율로 환산하기 어렵다.

경계 부근의 육성층에서는 가늘고 긴 실 모양 미화석도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균류로 해석한 사람들이 있었다. 숲이 넓게 죽어 가면서 썩는 나무가 먹이가 되어 균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생각했다.

뒤에는 그 실 모양 구조가 조류에 더 가깝다는 해석도 나왔다. ‘균류 급증’ 이야기는 두 해석 사이에 남았다. 다음 편은 전기 삼첩기의 수백만 년짜리 석탄 공백도 다룬다. 정의와 연대 척도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약 500만~700만 년으로 추정한다. 석탄을 만드는 생태계의 부재를 기록한 것이지, 모든 숲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조상도 이 선 위에 있었다. 페름기 말 육지의 키노돈트류 한 무리가 훗날 포유류의 조상으로 이어지는 계통이었다. 몸집은 고양이만 하거나 더 작았다.

남아프리카 카루분지에서는 트라이아스기 가장 이른 시기의 화석 하나가 나왔다. 키노돈트 한 마리가 자기 땅굴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다친 양서류 한 마리가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연구자들은 방사광 스캔으로 굴 안의 모습을 속속들이 확인했다. 땅속으로 숨는 것은 가장 나쁜 시기를 버티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른다.

육지에서 가장 유명한 생존자는 리스트로사우루스다. 학명은 ‘삽 도마뱀’이라는 뜻으로, 납작한 얼굴을 가리킨다. 돼지만 한 몸집의 초식동물로 디키노돈트류에 속한다. 입에는 거북처럼 각질의 부리가 있었고 위턱에는 작은 엄니 한 쌍이 나 있었다.

멸종 뒤 이 동물은 남아프리카 카루의 초기 트라이아스기를 거의 독차지했다. 어떤 지층에서는 척추동물 화석의 90퍼센트 이상이 리스트로사우루스다. 남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신장, 남극대륙에서도 발견되었다.

1969년 미국 고생물학자 콜버트는 남극대륙의 산비탈에서 리스트로사우루스의 뼈를 찾아냈다. 육상 동물이 대양을 헤엄쳐 건널 수는 없었다. 이 발견은 남쪽 대륙들이 한때 이어져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2020년 연구자들은 남극에서 나온 리스트로사우루스의 엄니를 잘라 생장 무늬 사이에 빽빽한 스트레스 선들이 겹겹이 들어 있음을 보았다. 오늘날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남기는 흔적과 몹시 비슷했다. 남극의 긴 극야를 겨울잠과 비슷한 상태로 버텼을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몸의 속도를 이렇게 늦추는 능력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고르고놉스류는 경계를 넘지 못했다. 그들이 비운 자리는 곧 다른 파충류 계통인 지배파충류가 차지했다. 그 안에서 훗날 악어와 익룡, 공룡이 갈라져 나왔다. 리스트로사우루스가 멸종 뒤의 황야를 뒤덮고 있을 무렵, 공룡의 먼 조상은 아마 몸집이 작고 팔다리가 가늘고 긴 파충류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육지와 바다에서는 선택의 규칙이 다르다. 해양 동물에게는 탄산칼슘의 양과 호흡 방식, 체액 조절 능력을 이용해 앞서의 위기 모형을 검증할 수 있다.

육상의 사지동물과 식물은 바닷물의 탄산염 체계 속에 잠겨 있지 않다. 이들에게 닥치는 위험은 온도와 가뭄, 식생, 산불, 독성 기체, 자외선의 조합에서 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 양쪽에서 정말 닮은 점은 하나뿐이다. 그전에 수가 많았거나 오래 살아왔다는 사실은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보장이 되지 않는다. 글로소프테리스는 한때 남쪽 숲 전체를 차지했고, 카루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지동물 여러 계통도 이 시기에 사라졌다.

7 재난 뒤의 바다

멸종 직후의 바다는 불안할 만큼 비어 있었다. 해저에는 암초도, 넓게 펼쳐진 완족동물 무리도 없었다. 진흙과 모래를 뒤섞던 동물도 줄었다. 많은 곳의 퇴적물에는 가느다란 층리가 한 겹 한 겹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다 밑에서 움직이는 동물이 거의 없을 때의 모습이다.

화남의 여러 얕은 바다 단면에서는 경계 바로 위의 암층에 곧장 한 가지가 나타난다. 미생물암이다. 남세균 같은 미생물이 퇴적물을 한 층 한 층 달라붙게 하며 자라 만든 돌이다. 모양은 콜리플라워 같기도 하고 찐빵 같기도 하다. 화남과 이란, 튀르키예의 같은 시기 지층에서 모두 발견된다.

이들은 캄브리아기 이전의 바다에는 어디에나 있었다. 이후 동물이 많아지자 갉아 먹고 뒤섞는 활동에 밀려 소수의 극한 환경으로 물러났다. 멸종이 이들을 먹던 동물을 치워 버리자, 다시 순식간에 얕은 바다 밑을 뒤덮었다. 9편에서 이야기했듯 에디아카라의 미생물 매트는 나중에 등장한 동물들에게 해체되었다. 여기서는 해체하던 동물이 사라졌고, 매트가 돌아왔다.

동물 가운데서는 몇몇 종이 재난 뒤의 주인공이 되었다. 클라라이아라는 작은 이매패류는 껍데기가 얇고 납작했으며, 초기 트라이아스기의 바다 밑에 빽빽하게 깔렸다. 구이저우와 광시의 일부 셰일 층면은 거의 온통 그 껍데기다. 중국에서 알프스까지 발견된다.

크고 복잡한 산호초가 널리 돌아오기까지는 흔히 약 800만~1000만 년이 걸린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전기 삼첩기에도 작은 해면-미생물초가 일부 지역에 있었다. 동물이 만든 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기에는 오늘날의 산호초를 만드는 무리인 돌산호가 중요해졌다. 고생대 사방산호가 그대로 살아남은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정확한 조상 관계는 아직 논쟁 중이다.

바다의 새 주인공들도 금세 왔다. 안후이성 차오후 일대의 약 2억 4,800만 년 전 암층에서 주둥이가 짧은 작은 해양 파충류가 나온 적이 있다. 어룡 계통의 가장 이른 구성원 가운데 하나다. 멸종에서 겨우 약 400만 년이 지난 뒤, 육지의 파충류는 벌써 바다로 돌아가 사냥하고 있었다.

혀 모양의 완족동물과 일부 몸집 작은 복족류도 이때 유난히 흔했다. 고생물학자들은 이들을 재난 뒤 급증하는 분류군이라고 부른다. 다른 동물이 없어지자 빈 바다 밑으로 빠르게 퍼졌다가, 생태계가 서서히 회복하면 다시 평범한 자리로 물러나는 무리다. 회복에는 수백만 년이 걸렸다. 그것은 다음 편의 이야기다.

가장 뜨거웠던 곳이 가장 오래 비어 있었다. 트라이아스기 초반 수백만 년 동안 적도 부근의 바다와 육지에서는 한동안 물고기와 파충류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은 온도가 조금 낮은 중·고위도에 머물렀다. 적도는 생명이 성긴 띠가 되었다.

이 생존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된 모습이 있다. 작다는 것이다. 멸종 뒤 많은 분류군에서 개체의 크기가 뚜렷하게 줄었다. 어떤 이들은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에서 이름을 빌려 이를 ‘릴리퍼트 효과’라고 불렀다. 높은 온도와 산소 부족, 모자란 먹이는 모두 몸집이 작은 동물이 더 잘 살아남게 하거나, 동물이 미처 다 자라지 못하게 했을 수 있다.

한 무리의 종은 멸종하고 다른 무리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을 종 수준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75년 미국의 스탠리는 종 선택이라는 생각을 제안했다. 종을 ‘태어나고’ ‘죽는’ 단위로 보는 것이다. 만약 어떤 종들이 분포가 얼마나 넓은지, 개체군이 어떻게 흩어져 있는지처럼 종 전체에만 있는 속성 때문에 새 종을 더 쉽게 만들거나 덜 쉽게 멸종한다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한 계통의 구성을 바꿀 수 있다.

1986년에는 이를 두 수준으로 나눈 논의가 나왔다. 어떤 종들이 다른 종들보다 더 많은 후손 종을 남기는 것, 이것을 정렬이라고 한다. 그 차이를 종 전체에만 있는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에만 종 선택이라고 부른다.

페름기 말은 구체적인 검증 사례를 제공한다. 분포 범위는 종이나 속 전체의 속성이다. 동물 한 마리에게 분포가 넓으냐 좁으냐를 물을 수는 없다.

분포 범위가 한 분류군을 꾸준히 보호할 수 있다면 종 선택의 후보가 된다. 그러나 5절에서 이미 보았듯 이번에는 분포 범위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힘을 발휘한 호흡 색소와 순환 방식, 껍데기 성분은 동물 개체 하나하나의 몸에 있는 형질이다.

구성원 모두가 그런 몸을 지녔기 때문에 한 속 전체가 멸종하면 속과 종 수준의 정렬이 일어난다. 하지만 원인은 개체의 생리에서 위로 올라가며 설명할 수 있다. 대멸종이 더 높은 수준의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쪽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멸종의 통계 단위는 실제로 종과 속이며, 종의 분포와 개체군 구조, 생태적 폭은 실제로 그 종의 멸종 확률을 바꾼다. 게다가 대멸종은 극히 짧은 시간에 종들을 통째로 지울 수 있다. 반대편은 더 엄격한 조건을 요구한다. 생사를 정말 가른 것이 개체들이 공통으로 지닌 내열성, 저산소 내성, 산·염기 조절 능력이라면 종 수준의 사라짐은 개체 수준의 원인을 합산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정렬은 일어났다. 그렇다고 선택의 단위가 종으로 옮겨 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키에 따라 걸러 낼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 무리가 새로운 생물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8 살아남았다고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이 연재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의 것은 셈에 넣고, 밖의 것은 넣지 않는다. 한 벌의 판별 기준처럼 사람이 그은 선일 수도 있고, 막 한 겹처럼 자연이 그은 선일 수도 있다.

이번 편의 선은 고생대의 바다가 2억 년 동안 그려 온 분업 지도다. 누가 암초를 짓고, 누가 물을 걸러 먹고, 누가 진흙 위를 기고, 누가 물속을 헤엄치는가. 암초와 완족동물의 초원, 쌀알만 한 유공충이 깔아 놓은 해저. 그 구조 전체가 6만 년 만에 비워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더 나은 무리였을까. 1991년 라우프는 작은 책 한 권을 썼다. 제목부터 바로 이 질문을 던졌다. 《멸종: 나쁜 유전자 때문인가, 나쁜 운 때문인가》.

그의 뜻은 대멸종에서 일어난 죽음의 상당 부분이 평소의 ‘좋고 나쁨’과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빗발치는 총탄처럼, 누가 맞느냐에는 운이 꽤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비유도 들었다. 총알이 휩쓸고 지나간 전장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반드시 가장 잘 훈련받은 병사들은 아니다.

라우프는 책에서 멸종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빗발치는 총탄이다. 누가 죽고 사느냐는 몸과 무관하다. 또 하나는 공정한 게임이다. 평소에 잘 적응했던 생물은 재난 속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나머지 하나를 그는 ‘영문 모를 멸종’이라고 불렀다. 죽음은 선택적으로 닥치지만, 선택되는 형질은 평소의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거나 심지어 정반대다. 페름기 말의 증거는 세 번째에 가장 가깝다.

순전히 운만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의 여러 절에서 보았듯 호흡과 순환, 껍데기의 성분은 모두 경계를 넘을 확률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평소 의미의 ‘좋음’도 아니다. 섭씨 33도에 산소는 적고 이산화탄소는 많은 물에서 대사를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은 그 환경에서 적합도가 더 높다. 그것은 운이 아니라 몸의 능력이다. 다만 그 채점 기준은 특정 위기 환경의 것이며 일부 압력은 전기 삼첩기까지 이어졌다. 시대를 넘어 변하지 않는 자는 아니다.

사방산호라는 이름은 몸속 격벽이 4의 배수로 배열되어 있다는 데서 왔다. 많은 사방산호가 홀로 자랐고, 구부러진 소뿔 같은 모양이라 흔히 뿔산호라고 불린다. 고생대 석회암을 깨다 보면 어렵지 않게 나온다.

오늘날 바다에서 암초를 만드는 산호는 다른 무리다. 격벽이 6의 배수로 배열되어 있어 육방산호라고 부른다. 이들이 암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트라이아스기 중기다. 사방산호는 그 이전 2억 년 넘는 바다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고생대의 암초를 지었고, 분포는 대단히 넓었으며, 수도 엄청났다. 그러나 그 특정한 순간에는 두껍고 무거운 탄산칼슘 골격과 비교적 약한 호흡 능력이 합쳐져 하필 위험이 가장 높은 칸에 들어갔다. 그들이 나빠진 것이 아니다. 환경이 채점 기준을 바꾼 것이다.

‘멸종 전에 우세했다’는 말도 쪼개서 검증할 수 있다. 한 장소에서 얼마나 흔했는가, 화석에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가, 분포가 얼마나 넓었는가, 한 분류군에 속과 종이 얼마나 많았는가. 분포 범위는 이미 검증했다. 이번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출현 빈도는 표본을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도 함께 나타내므로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한 분류군에 속이 많으면 순전히 통계상으로도 생존자 하나를 남길 가능성이 더 커진다.

몇 가지를 함께 놓고 보아도 ‘번성할수록 안전하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기준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수만 년이었다. 2억 년 넘게 이어져 온 몸의 구조 한 벌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부적격 판정을 받은 몸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사방산호와 방추충류, 삼엽충은 그 뒤로 암석에만 남았다. 완족동물은 살아남았지만 다시는 해저의 주인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수만 년짜리 시험 한 번이 그 뒤 2억 5천만 년 동안 바다의 모습을 정했다.

굴드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생명의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아 같은 출발점에서 한 번 더 틀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까. 페름기 말이 내놓는 답은 이렇다. 다시 틀 때 그 6만 년 동안의 온도와 산소, 바닷물의 화학 조건만 바꾸어도 생존자 명단의 절반 이상이 달라질 수 있다.

구축된 틀이 담을 수 없으면서 없애 버릴 수도 없는 부분을 이 연재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이번 편의 잔여항은 증거 바깥에 있지 않다. 사라진 분류군에는 이름이 있고, 분포가 있고, 풍부도가 있으며, 200년 동안 연구되어 왔다.

체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메이산에는 화산재가 촘촘히 끼어 있고 탄산염이 연속으로 이어지며, 코노돈트가 지층을 아주 잘게 나누어 준다. 이 사건의 기록은 고생대 전체에서도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잔여항은 우리가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 하나에 있다. 환경을 건너도 달라지지 않는 자 한 자루다.

그런 자가 있다면 ‘멸종에서 누가 살아남는가’는 우열의 문제가 되고, 생존자 명단은 순위표처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료에서 잴 때마다 측정되는 것은 조건과 묶여 있는 형질들의 조합이다.

온도와 산소, 바닷물의 화학 조건을 다른 조합으로 바꾸면 똑같은 분류군들의 순서도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은 검증할 수 있다. 같은 분류군들을 다른 멸종 사건에 놓고, 위험 순서가 그대로 유지되는지 보면 된다.

이미 그렇게 하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결과에서는 사건을 건너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순서가 보이지 않는다. 18편에서는 같은 질문을 들고 또 다른 멸종으로 들어갈 것이다.

판별 기준은 여전히 거르고 있다. 그 백분율은 여전히 다시 계산되고 있다. ‘최적’이라는 말에는 지금껏 서로 다른 사건에 두루 쓸 수 있는 정의가 없다.

관련 연구와 사실 확인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