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13

석탄기 구축된 틀이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되돌아와 그 틀을 죽였다

거대 곤충과 석탄층. 어디까지가 증거이고 어디부터가 너무 매끈한 설명일까?

Han Qin · 읽는 데 약 36분 · 공개일

1 석탄은 고르게 묻혀 있지 않다

지구의 석탄은 지질시대 전체에 골고루 나뉘어 묻혀 있지 않다. 유난히 한 시기에 몰려 있다. 약 3억 5천만 년 전부터 2억 5천만 년 전까지, 그 1억 년이다. 오늘날 우리가 땅속에서 캐내어 태우는 석탄의 상당 부분은 그때의 늪에서 왔다. 중국 산시성에서 캐는 석탄도 많은 양이 바로 그 시절 늪이 변한 것이다.

이 기간의 앞쪽 절반을 석탄기라고 부른다. 1822년 영국 지질학자 두 사람이 붙인 이름으로, 뜻은 말 그대로 ‘석탄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캐낸 석탄도, 산업혁명 때 증기기관의 아궁이에서 타던 석탄도 대부분 이 지층에서 나왔다. 중국어 번역명도 곧장 뜻을 드러낸다. ‘돌 석(石)’과 ‘숯 탄(炭)’을 붙인 ‘석탄’이 옛 중국어에서도 바로 이 연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뒤쪽 절반은 페름기다.

식물은 그보다 1억 년도 더 전에 이미 육지에 올라와 있었고, 그 뒤로도 2억 년 넘게 살아왔다. 그런데 어째서 하필 이 시기에 그렇게 많은 탄소가 대기로 돌아가지 않고 땅속에 묻혔을까.

‘그렇게 많다’는 말에는 숫자를 붙일 수 있다. 지층과 유기탄소, 동위원소 자료를 함께 놓고 추산하면, 석탄기는 지난 약 5억 년 동안 지구 전체에서 탄소가 가장 빠르게 묻히던 시기다. 모형이 계산한 최고치는 연간 약 7,800만 톤의 탄소다. 다만 위아래로 그 절반가량의 차이가 날 수 있다.

어느 탄광에서 직접 재어 얻은 값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장기 평균을 계산한 수치다. 묻힌 탄소가 모두 모여 석탄이 된 것도 아니다. 상당량은 바다 밑과 호수 밑 진흙 속에 흩어져 들어갔다가 훗날 검은 셰일이 되었다. 석탄은 그 가운데 가장 눈에 잘 띄고, 가장 짙게 모여 있는 부분일 뿐이다.

비교할 숫자를 하나 놓아 보자. 지금 인류가 한 해 동안 대기로 내보내는 탄소는 이 최고치의 대략 백 배쯤 된다. 석탄기가 그토록 많은 석탄을 묻어 둔 비결은 속도가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 한자리에 맞아떨어진 여러 조건이었다.

이제 석탄이 어떻게 생기는지부터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뒤에 나올 논쟁이 모두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석탄의 전신은 이탄이다. 식물이 죽은 뒤 완전히 썩지 못한 채 쌓인 것으로, 원예용품점에서 파는 검갈색의 푹신한 이탄 배양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탄이 쌓이려면 아주 구체적인 조건 하나가 필요하다. 물이다.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미생물이 식물의 유해를 빠르게 분해해 버린다. 반면 오랫동안 물에 잠긴 곳에는 산소가 잘 들어가지 못해 분해가 느려진다. 새로 자란 식물은 계속 죽어 위에 쌓이는데, 아래쪽은 아직 다 썩지 못한다. 그렇게 생기는 곳이 이탄 늪이다.

오늘날 열대의 이탄지에서도, 북쪽 지방의 물이끼 늪에서도 같은 일이 계속된다. 물에 잠겨 있는 동남아시아의 이탄 늪 숲은 석탄기 석탄 늪에 가장 가까운 살아 있는 견본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렇게 쌓인 이탄이 다시 묻히고, 눌리고, 열을 받으면 물과 휘발 성분이 빠져나간다. 남은 탄소는 점점 더 짙게 농축된다. 이것이 석탄이다.

그러니 석탄이 만들어지려면 단순히 ‘식물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 조건을 한꺼번에 만족해야 한다. 첫째, 식물이 만들어 내는 양이 분해되는 양보다 많아야 한다. 둘째, 뿌리가 놓인 층이 오랫동안 물로 포화되어 산소가 부족해야 한다. 셋째, 분지가 가라앉는 속도와 이탄이 자라 올라가는 속도가 대체로 맞아야 한다.

가장 쉽게 지나치는 것이 세 번째 조건인데, 실은 아주 중요하다. 가라앉는 속도가 너무 느리면 이탄 표면이 오랫동안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러면 산화와 화재, 하천의 침식이 이미 쌓인 탄소를 깎아 없앤다.

반대로 너무 빨리 가라앉거나 상대 해수면이 너무 빨리 높아져도 안 된다. 깊은 물과 토사가 늪을 덮어 버린다. 어느 한쪽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들어맞는 범위가 따로 있는 문제다. 석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극단적인 조건이 아니다. 여러 조건이 동시에, 그리 넓지 않은 구간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얼마나 빨리 가라앉아야 적당할까. 대략 이탄이 높아지는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이탄은 해마다 1~2밀리미터씩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땅속에 묻힌 뒤에는 물이 빠지며 아주 단단하게 눌린다. 이탄 10여 미터가 있어야 두께 1미터의 석탄이 나온다. 석탄으로 환산하면 1년에 0.1~0.2밀리미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두께 1미터의 탄층 뒤에는 흔히 수천 년에서 1만 년이 넘는 늪의 시간이 들어 있다.

분지가 이렇게 조금씩 내려앉으면 새로 채울 자리가 끊임없이 생긴다. 그 자리를 이탄이 한 층 한 층 메우며 올라간다. 지질학에서는 이 빈자리를 ‘퇴적 수용 공간’이라고 한다. 뒤에서도 여러 번 돌아올 말이다.

석탄이 만들어진 지역 역시 무작위로 흩어져 있지 않았다. 후기 석탄기의 대표적인 거대 석탄 늪은 당시의 적도대에 모여 있었다. 오늘날 나뉘어 있는 대륙들은 그 무렵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합쳐지는 중이었다. 판게아다.

대륙들이 차츰 맞붙던 그때, 지금의 북아메리카 동부와 유럽 서부에서 중부에 이르는 지역은 옛 적도를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화북과 화남 같은 지괴도 열대 또는 낮은 위도에 있었다.

동시에 남쪽의 곤드와나에서는 고위도 지역 대부분이 빙하 작용을 겪고 있었다. 지금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남극, 오스트레일리아, 인도가 그때는 아직 한 덩어리였다. 이런 위도 배치에는 지각 구조상의 위치가 긴밀하게 겹쳐졌다. 유라메리카 대륙의 바로 앞에서는 산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산의 무게가 앞쪽 지각을 눌러 아주 넓은 분지를 만들었다. 끊이지 않되 지나치게 빠르지는 않은 침강이 새로운 퇴적 수용 공간을 계속 내주었다.

화북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석탄 늪이 있었다는 사실은 뒤의 한 절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자료이기도 하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석송 습지가 크게 쇠퇴할 때, 동쪽에서는 비슷한 습지 식물이 페름기까지 살아남았다.

마지막으로 볼 것은 석탄을 만든 식물이다. 바로 이 대목이 다음 절의 논쟁을 좌우한다. 후기 석탄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석탄 늪에서 가장 중요한 석탄 재료는 나무처럼 자란 석송류였다.

많은 탄층에서 석송류는 식물 생물량의 60~80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금도 살아 있는 석송은 숲 바닥에 붙어 자라는 작은 풀이다. 대부분 키가 몇 센티미터에서 몇십 센티미터에 그친다.

하지만 석탄기 석송류는 수십 미터 높이의 나무로 자랄 수 있었다. 줄기 껍질에는 잎이 떨어진 자국이 마름모꼴로 빽빽하게 남아, 물고기 비늘처럼 칸칸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속의 이름도 인목, 곧 ‘비늘 나무’다. 예전 연구에서는 이들이 십몇 년 만에 수십 미터까지 치솟았으며, 일부 종류는 포자를 한 번 만들고 죽었으리라고 추정했다.

반면 근래에는 대부분 수백 년을 살았을 것으로 계산한 연구도 있다. 수십 미터짜리 나무 한 그루가 십몇 년을 살았는지, 수백 년을 살았는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석탄기의 석탄 늪은 오늘날 어떤 숲과도 닮지 않았다. 인목의 줄기는 곧게 뻗었고 거의 가지를 치지 않았다.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갈라지며, 가늘고 긴 잎이 무성한 수관을 펼쳤다.

그 아래에는 나무가 된 양치식물도 있었고, 나무가 된 속새도 있었다. 속새는 거대한 아스파라거스처럼 마디마디 이어져 있었다. 꽃도 없고, 잔디 같은 풀도 없고, 새도 없었다. 땅은 일 년 내내 물에 잠겨 있었다. 뿌리는 아래로 파고들기보다 진흙 속에서 옆으로 넓게 퍼졌다.

이 나무들은 오늘날의 침엽수처럼 두꺼운 목재 기둥으로 몸을 떠받치지 않았다. 두툼하게 발달한 바깥 껍질과 피층에 의지했다. 줄기 안에서 진짜 목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작을 수도 있었다.

비유하자면 속까지 꽉 찬 통나무보다는, 바깥 벽은 두껍고 속은 빈 기둥에 가까웠다. 게다가 바깥 껍질의 조직은 목재와 화학 조성이 달랐고, 분해되기 어려운 정도도 달랐다. 그러니 ‘석탄이 많다는 것은 썩기 힘든 목재가 엄청나게 묻혔다는 뜻’이라는 직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무가 많이 죽는다고 석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높이와 침강, 식물의 생산량이라는 세 요소가 동시에 좁은 구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2 석탄 형성을 둘러싼 논쟁

널리 퍼져 있는 설명이 하나 있다. 식물이 먼저 리그닌을 발명했는데, 균류는 수천만 년이 지나서야 나무를 먹는 방법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수천만 년 동안 식물의 유해가 썩지 못하고 쌓여 석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리그닌은 나무를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왜 분해하기 어려운지는 12편의 끝에서 다뤘다. 구조가 불규칙하고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단위가 없는데, 대부분의 효소는 규칙적인 구조에 맞추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무척 그럴듯하게 들린다. 다만 처음 제안된 생각은 이 버전보다 훨씬 신중했다.

1990년, 한 연구자는 육상식물 조직의 화학 조성과 분해자의 진화가 육상의 유기탄소 순환을 바꿀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생대에는 리그닌 분해자가 드물었거나 그 능력이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육상에서 나온 유기탄소가 더 높은 비율로 보존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녀가 제안한 생각의 핵심은 백만 년 단위까지 정확히 시점을 짚어 낼 수 있는 ‘균류 스위치’가 아니었다. 생물의 진화가 유기탄소의 순환 속도를 바꾼다는, 긴 시간 규모의 가설이었다. 더 강한 버전이 널리 퍼진 것은 주로 분자계통학 시대에 들어서다. 2012년에 나온 분자 연구가 아주 매력적인 시간상의 일치를 제시했다.

먼저 백색부후부터 보자. 백색부후균은 자신이 먹고 남긴 나무의 모습에서 이름을 얻었다. 리그닌을 허물어 놓으면 남은 섬유가 희게 보이고, 찢을 때 가닥가닥 뜯어진다. 또 다른 무리인 갈색부후균은 반대로 한다. 셀룰로스를 먹고 리그닌을 남긴다. 나무는 갈색으로 변하고, 마르면 작은 네모 조각들로 갈라진다.

연구진은 균류의 유전체 31개를 분석했다. 그중 12개는 이 연구를 위해 새로 염기서열을 읽은 것이었다. 특히 백색부후균이 리그닌을 산화하는 데 쓰는 특정 효소 무리의 역사를 추적했다.

그 결과, 균류의 한 큰 분류군의 조상으로 이어지는 계통에서 이 효소들이 늘어났다는 역사가 재구성되었다. 그 조상은 백색부후 방식의 분해 능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늘날 숲에서 흔히 보는 버섯도 대부분 이 큰 분류군에 속한다.

시점은 균류 화석으로 보정한 분자시계를 이용해 추정했다. 그 분류군이 생겨난 때의 중심 추정치는 약 2억 9천만 년 전이었다. 마침 석탄기가 끝난 직후다. 후기 석탄기의 막대한 석탄 형성은 그보다 앞서 있었고, 완전한 백색부후식 분해 체계의 확장은 대략 석탄 형성의 정점 뒤를 잇는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2억 9천만 년 전’을 정확한 지층 위치에 박아 둔 못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균류의 분자시계는 화석 보정점이 드물다는 점, 계통수가 갈라지는 방식, 사용한 모형의 영향을 받는다. 해당 분기점의 신뢰구간은 ‘석탄기가 끝난 때’ 자체의 지층 연대 오차보다 훨씬 넓다.

이 가설에는 뚜렷한 장점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구분해 낼 수 있고 검증도 가능한 생물학적 혁신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백색부후형 효소 체계가 언제 생겼는지 찾으면 된다. 또 석탄과 유기탄소 매몰, 대기 산소의 상승과 이산화탄소의 하락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이어 줄 수 있다.

더구나 유전체 연구는 백색부후와 갈색부후의 서로 다른 영양 전략에 관련 유전자군의 확장과 여러 차례의 소실이 따랐음을 실제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분해 능력도 진화한다’는 판단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진짜 논쟁은 더 강한 명제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이 효소 체계가 늦게 나타난 것이 후기 고생대 석탄 형성 정점의 필수 조건이었는가. 나아가 주된 원인이었는가. 이것은 ‘균류의 리그닌 분해 능력에 중요한 진화가 있었다’는 말과 다른 이야기다. 2016년의 한 논문은 제목부터 직설적이었다. 균류 진화의 지연은 고생대 석탄 형성의 정점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반론을 추리면 적어도 여섯 가지다. 첫째, 석탄을 만든 식물 상당수는 애초에 ‘리그닌 덩어리’가 아니었다. 앞 절에서 보았듯 석송류는 생물량의 약 60~80퍼센트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바깥 껍질 조직은 현대 수목의, 리그닌이 많이 쌓인 목재와는 달랐다.

따라서 ‘리그닌이 쌓여 석탄 형성의 정점이 생겼다’는 전제는 가장 중요한 석탄 형성 식물에서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이탄이 쌓이려면 리그닌이 전혀 썩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이탄지에는 온전한 균류와 미생물 분해 체계가 있는데도 유기물이 대량으로 쌓인다. 순수하게 남는 양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량에서 분해량을 뺀 차이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물로 포화된 상태, 낮은 산소, 산성 환경, 영양분의 제한만으로도 분해를 충분히 늦출 수 있다.

식물이 들어오는 양이 분해되어 나가는 양보다 계속 많기만 하면, ‘어떤 생물도 리그닌을 먹을 줄 모르는’ 특별한 시기가 필요하지 않다. 백색부후균이 오래전부터 존재하는데도 오늘날 이탄지는 바로 그렇게 쌓인다. 동남아시아의 일부 이탄 늪에서는 이탄 두께가 십몇 미터에서 20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여섯 가지 반론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이 이것이다. 그 가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조건은 지금의 지구에서 충족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탄은 여전히 쌓인다.

셋째, 석탄기에도 썩었다는 증거가 있다. 후기 고생대 식물 조직에는 생물에 의한 분해와 침식, 균류 활동의 흔적이 널리 남아 있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보존된 일부 화석 절편을 보면, 균사가 세포 안으로 파고든 모습이 보인다. 작은 절지동물이 갉아 만든 굴과 남겨 놓은 배설물 알갱이도 보인다.

넷째, 분자시계의 연대 정밀도만으로 ‘석탄의 끝이 곧 백색부후의 시작’이라고 입증할 수 없다. 중심 연대는 석탄기와 페름기의 경계에 가깝지만 신뢰구간이 넓다. 게다가 ‘백색부후 조상의 분기점’, ‘효소가 확장된 분기점’, ‘오늘날 의미에서 리그닌을 완전히 무기화하는 능력’은 정확히 같은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다.

다섯째, 백색부후균이 등장한 뒤에도 지구에서는 거대한 탄전이 거듭 만들어졌다. 페름기에도,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걸쳐서도, 신생대에도 중요한 석탄 형성기가 있었다.

세계 석탄 자원이 어느 시대에 형성되었는지 펼쳐 보면, 약 2억 9천만 년 전에 석탄 형성이 영구히 끝난 흔적은 없다. 오늘날 중국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탄전 가운데 하나인 오르도스 분지의 선둥 탄전도 쥐라기 석탄이다. 그때는 백색부후균이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여섯째, 석탄 형성의 정점은 기후와 분지의 역사에 더 잘 들어맞는다. 후기 고생대가 유별났던 것은 오랫동안 습윤한 적도 기후와, 판게아가 합쳐지며 만들어 낸 거대한 퇴적분지가 우연히 겹쳤기 때문이다. 식물은 왕성하게 자랐다. 물높이는 높아 분해를 제한했다. 동시에 분지는 적당한 속도로 가라앉으며 보존할 자리를 계속 만들어 냈다.

그러니 양쪽이 다투는 명제는 사실 같은 것이 아니다. 2012년 연구가 입증한 것은 나무를 분해하는 그 효소 체계에 재구성할 수 있는 진화사가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논문이 부정한 것은 그 효소 체계의 늦은 등장이 전 세계 석탄 형성의 정점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두 문장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현재로서 가장 나은 답은 기후와 지각 변동, 분지 쪽에 있다. 서로 다른 위도와 분지, 백색부후가 등장한 뒤 거듭 나타난 대규모 석탄 형성기까지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해자가 퇴장한 것은 아니다. 유기물이 살아남아 보존되는 비율은 여전히 분해자에 따라 달라졌을 수 있다.

두 요인의 무게는 서로 다르다. 분해자가 정하는 것은 같은 식물 유해 더미에서 몇 할이나 남느냐다. 기후와 분지가 정하는 것은 그런 더미가 얼마나 넓은 땅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쌓이느냐다. 석탄기가 정말로 특별했던 까닭은 주로 뒤쪽에 있다.

균류 쪽에도 장점은 있다. 예측이 날카롭다. 석탄 형성의 정점보다 앞선 백색부후 화석 하나를 찾거나, 분자시계의 해당 분기점을 다시 계산해 더 과거로 옮기기만 해도 그 설명은 버티지 못한다. 기후와 분지 쪽에는 그렇게 한곳을 날카롭게 찌르는 검증점이 없다. 대신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증거가 훨씬 많다. 옛 위도, 분지의 침강사, 탄층 두께, 바닷물의 전진과 후퇴, 고토양의 습도, 빙하 주기. 하나하나를 따로 조사할 수 있다.

3 아무도 재어 보지 못한 산소

유기탄소가 많이 묻히면 왜 산소가 높아지는지, 그 작동 원리는 분명하다. 광합성은 이산화탄소에 든 탄소를 유기물로 환원하면서 산소를 내놓는다. 하지만 그 유기물이 뒤이어 호흡에 쓰이거나 썩거나 타 버리면, 전체 효과는 대략 상쇄된다.

환원된 탄소의 일부가 산화 순환을 빠져나와 퇴적암 속에 오래 묻혀야만, 장기적으로 산소를 순증가시키는 원천이 남는다. 직감만으로 생각하면 놓치기 쉬운 대목이다. 광합성이 내놓은 산소의 대부분은 유기물이 다시 산화할 때 도로 소비된다.

숲의 생물량이 아무리 엄청나도 탄소가 결국 대기로 돌아간다면, 장기적인 산소 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중립이다. 오래 남는 산소의 공급원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량이 아니라 순환에서 빠져나가는 비율이다. 저금통과 같다. 들어오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나가는 돈이 거의 그만큼이면, 모이는 것은 쓰지 않은 그 작은 몫뿐이다.

바로 여기서 앞 절의 논쟁이 다시 연결된다. 분해자의 능력이 바꾸는 것이 바로 이 탈출 비율이다. 기후와 분지 조건이 바꾸는 것은, 높은 탈출 비율이 얼마나 넓은 곳에서 얼마나 오래 이어지느냐다. 그렇다면 산소의 최고치는 대체 얼마였을까.

그 숫자에는 여러 문제가 걸려 있다. 거대 곤충이 그것 덕분에 몸을 키웠는가. 산불은 얼마나 자주 났는가. 석탄 늪에 들어 있던 탄소가 불타 공기로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그러니 숫자가 어떻게 나오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3억 년 전의 산소 농도를 직접 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신 모형을 만든다. 지구 표층에서 탄소와 황이 드나드는 모든 경로를 방정식으로 쓴다. 화산이 얼마를 내놓는지, 풍화가 얼마를 소비하는지, 유기물이 얼마나 묻히고 또 얼마나 산화되어 돌아오는지. 그런 다음 동위원소 기록으로 각 양의 범위를 제한하고, 시간에 따른 산소의 변화를 풀어낸다.

따라서 이 값은 측정한 것이 아니라 계산한 것이다. 모형이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하느냐는 그 안에 넣는 숫자가 얼마나 정확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공기에서 산소는 약 21퍼센트를 차지한다. 초기 모형들은 석탄기와 페름기의 산소 최고치를 약 35퍼센트까지 올려 잡았다. 2006년의 모형은 후기 고생대에 폭넓은 산소 고점을 제시했고, 페름기의 최댓값은 약 30퍼센트였다.

2014년에는 이런 종류의 모형에 들어가는 입력값 68개를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동시에 변화시키는 체계적인 연구가 처음 나왔다. 눈앞에 조절 손잡이 68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각각을 그럴듯한 범위 안에서 임의로 한 번씩 돌리고 계산한다. 다시 돌리고, 다시 계산한다. 그렇게 1만 번 계산한 뒤 결과가 어디에 모이는지 보는 것이다.

결과는 중요했다. 중앙값 예측에서도 후기 고생대의 높은 산소 정점은 여전히 남았다. 중앙값 곡선의 최고점은 30퍼센트를 넘었다.

하지만 그 절대 높이는 대중 과학 도표가 풍기는 인상만큼 확실하지 않았다. 1만 번 계산한 값 가운데 양끝을 제외한 가운데 95퍼센트의 범위는, 정점 부근에서 그림을 읽으면 대략 22~45퍼센트에 걸쳐 있었다. 산소 추정값의 불확실성을 혼자 좌우하는 매개변수가 하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확실성은 여러 탄소 저장고와 황 저장고, 동위원소 값과 풍화 매개변수에 나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이것만 정확히 재면 곡선의 범위가 좁아진다’고 할 만한 핵심 매개변수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길도 있다. 암석 속에서 산소의 양을 간접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지질학에서는 이를 대리지표라고 한다. 숯이 그중 하나다. 석탄 덩어리에 섞인, 검고 희미한 비단 광택이 돌며 건드리면 검은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가느다란 조각들이 있다. 숯처럼 생긴 그것이 바로 3억 년 전 산불이 남긴 숯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산불이 붙고 계속 타려면 산소가 충분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산소 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연소실에 실제 식물 연료를 넣고 불을 붙였다. 육상식물과 같은 연료가 지속해서 탈 수 있는 산소의 하한은 대략 16~17퍼센트 근처였다. 지금의 산소 농도도 이 선보다 불과 4~5퍼센트포인트 높다.

산소가 더 적으면 불을 붙였다고 해서 불길이 스스로 퍼져 나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어느 시대든 산불이 난 자리에서 만들어진 숯이 널리 발견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독립적인 제약 조건이 된다. 당시 대기 산소가 오랫동안 이 범위보다 낮았을 가능성은 작다는 뜻이다.

반대 방향으로도 따져 볼 수 있다. 한때는 산소가 35퍼센트라면 지구상에 숲이 거의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고산소 연소 실험에서는 산소가 약 35퍼센트인 조건에서도 실제 숲의 연료가 물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탔다. 전 지구에 끝없는 화재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산불은 가능한 범위를 좁혀 줄 뿐, 단순하고 절대적인 상한선을 주지는 않는다. 모형과 대리지표는 큰 틀의 결론에서는 일치한다. 후기 석탄기에서 전기 페름기는 산소가 낮은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세밀한 결론에서는 차이가 크다. 정점이 약 26퍼센트였는지, 30퍼센트였는지, 35퍼센트를 넘었는지는 아직 정밀하게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일부 새로운 지구화학적 산소 추정값과 고전적인 모형 사이의 간극이 크다.

이미 나온 자료 가운데는 후기 고생대의 일부 시기에서 약 15퍼센트라는 낮은 값을 제시한 것도 있다. 이는 앞서 본 약 16퍼센트의 불길 확산 하한에 가깝거나 그보다 낮아, 널리 남아 있는 숯 기록과 동시에 들어맞기 어렵다. 이런 충돌은 이른바 ‘직접 대리지표’ 역시 시료가 얼마나 밀폐된 채 보존되었는지, 나중에 물질이 드나들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보정했는지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대리지표라고 해서 저절로 모형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당시 산소는 오늘날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크고, 대부분의 모형은 30퍼센트 안팎을 제시한다. 정확히 26인지, 30인지, 35를 넘었는지는 아직 결론이 없다. 널리 알려진 ‘35퍼센트’는 그중에서도 높은 편에 속하는 추정값 하나일 뿐이다.

4 자보다 긴 날개

석탄기의 가장 유명한 주민은 터무니없이 큰 절지동물들이다. 하늘에도 처음으로 날아다니는 동물이 등장했다. 날개 달린 곤충으로 확실하게 인정되는 가장 오래된 화석은 석탄기에서 나온다.

메가네우라 모니는 잠자리의 먼 친척이다. 맨 처음 발견된 표본에는 네 날개가 모두 상당 부분 남아 있었다. 날개 한 장의 길이가 약 32센티미터다. 학생들이 쓰는 자 하나보다도 길다.

양쪽 날개에 몸통 너비까지 더해 추산하면 날개폭은 약 65~70센티미터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편 너비와 비슷하다. 오늘날 날개폭이 가장 큰 잠자리류도 십몇 센티미터에서 20센티미터 정도에 그친다. 메가네우라는 사냥꾼이었다. 다리마다 단단한 가시가 줄지어 돋아 있었고, 다리들을 오므려 공중에서 다른 날벌레를 낚아챘다.

땅을 기던 동물은 더 컸다. 아르트로플레우라류는 노래기처럼 생긴 다지류다. 2018년 영국 바닷가에서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사암 덩어리 하나가 깨지면서, 그 안에 있던 외골격의 일부가 드러났다. 연구는 2021년에 발표되었다.

너비와 마디의 비율을 바탕으로 추산한 전체 길이는 약 1.9~2.6미터, 체중은 약 50킬로그램이었다. 사람 하나가 누운 것보다 길다. 다만 발견된 것은 몸의 한 부분뿐이고, 온몸의 크기는 그 조각에서 계산한 값이다.

큰 곤충들도 대부분 날개만 남았다. 그러므로 화석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큰 곤충이 얼마나 컸는가’를 말할 때 실제로 재는 것은 몸무게가 아니라 날개다.

이들은 무엇 덕분에 그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산소다. 이 설명을 이해하려면 곤충이 어떻게 숨을 쉬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곤충에게는 폐가 없다. 혈액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주된 체계도 없다. 대신 몸 표면에 작은 구멍들이 줄지어 있다. 공기는 그 구멍으로 들어가, ‘기관’이라 부르는 관들이 끊임없이 갈라지는 통로를 지난다. 관은 갈라질수록 가늘어지고, 끝내 조직 바로 옆까지 닿는다. 산소가 혈액에 실려 조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관을 따라 줄곧 확산해 가는 것이다. 굵은 기관에서는 몸의 움직임으로 능동적인 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한 확산의 제약은 주로 조직에 닿기까지의 마지막 거리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확산에는 물리적인 제한이 있다. 거리가 멀수록 느려진다. 정확히는 순수한 확산으로 일정 거리를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그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난다.

거리가 두 배면 시간은 네 배가 된다. 그래서 곤충의 몸이 두 배로 굵어져 조직과 관 사이의 거리도 두 배가 되면, 산소가 확산해 가는 데 네 배의 시간이 걸린다.

동물의 몸이 굵어져 조직이 기관에서 더 멀어지면, 기관계에는 더 넓은 단면적이나 더 많은 가지, 혹은 더 강한 환기가 필요해진다. 산소가 높으면 공기와 조직 사이의 산소 분압 기울기가 커진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같을 때, 같은 관망으로도 더 많은 산소를 보낼 수 있다.

이 가설은 검증 가능한 예측을 내놓는다. 저산소 환경에서는 큰 몸이 더 일찍 한계에 부딪혀야 한다. 곤충이 커질수록 몸 안의 공간에서 기관에 내어 주는 비율도 점점 커져야 한다. 실제로 딱정벌레를 삼차원으로 조사한 연구에서는 몸집이 큰 종일수록 기관에 쓰는 공간이 몸의 크기보다 더 빠르게 늘었다. 특히 다리가 몸통에 연결되는 좁은 통로에서 그랬다.

실험에서 실제로 얼마나 커졌는지가 이 절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2009년에는 초파리의 몸집이 커지는 방향으로 인위선택을 한 연구가 있었다. 산소 분압이 각각 약 10퍼센트, 21퍼센트, 40퍼센트 산소에 해당하는 조건에서 11세대 연속으로 선택했다.

정상 산소와 고산소 집단에서는 평균 질량이 약 11~17퍼센트 늘었다. 몸집 분포의 상위 사분위에서는 약 25~32퍼센트의 증가가 가능했다. 그러나 핵심 결과는 따로 있었다. 산소 21퍼센트와 40퍼센트 사이에는 선택에 대한 반응의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뚜렷한 차이는 저산소가 큰 몸을 향한 선택을 억눌렀다는 것이었다.

이 초파리 실험에서는 저산소가 큰 몸을 향한 선택의 반응을 억눌렀지만, 고산소는 보통 공기보다 더 큰 증가를 만들지 못했다. ‘부족하면 제한된다’는 쪽을 지지하지, ‘많으면 저절로 거대해진다’는 결과는 아니다. 다만 초파리 열한 세대로 잠자리의 수천만 년 진화를 단정할 수는 없다. 오늘의 잠자리를 고산소 공기에서 키운다고 석탄기가 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후에는 잠자리 유충을 산소가 약 12퍼센트, 21퍼센트, 31퍼센트인 환경에서 키운 연구도 있었다. 고산소 환경에서 자란 잠자리는 성충이 된 뒤 날개폭이 최대 약 15퍼센트 더 컸다. 다만 곤충의 무리가 달라지면 반응도 같지 않았다.

이것은 같은 세대의 곤충이 서로 다른 공기에서 자랐을 때의 차이다. 수천만 년에 걸친 진화가 아니다. 게다가 15퍼센트 더 커진다고 잡아도, 지금 가장 큰 잠자리의 날개폭을 60~70센티미터로 끌어올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6년에는 생리학을 직접 조사한 연구가 이 인과관계의 핵심 작동 원리를 겨냥했다. 결론은 이랬다. 세기관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체계를 통한 산소 공급은 곤충의 거대화를 제한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전자현미경으로 여러 곤충 종의 비행근 속에서 가장 가는 단계의 기관을 세었다. 대부분의 종에서 이 가는 관들이 차지하는 것은 비행근의 약 1퍼센트, 때로는 그보다 적은 공간뿐이었다.

산소가 정말 모자란다고 해도 근육 안에는 관을 몇 가닥 더 늘릴 자리가 넉넉했다. 고전 모형이 예상한, 더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한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고산소를 후기 고생대 곤충 거대화의 충분한 기작적 원인으로 더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산소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증명은 아니다. 이 연구가 주로 겨냥한 것은 ‘기관 말단의 수동 확산이 넘을 수 없는 몸집의 상한을 만든다’는 특정 기작이다.

다른 설명들도 있다. 그 연구의 저자들은 천적의 증가와 외골격 자체의 물리적 한계 같은 다른 요인에서 원인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화석 곤충의 날개 길이 기록 1만 500건 이상을 모았다. 석탄기부터 쥐라기 말까지 최대 날개 길이는 줄곧 산소 모형을 따라갔지만, 백악기 초에 이르러 관계가 달라졌다. 산소 조건이 다시 유리해져도 최대 날개 길이는 새로운 생물학적 요인에 제한되었다.

그 연구의 저자들은 날아다니는 척추동물, 특히 새의 등장을 중요한 압력으로 보았다. 물속에 사는 유충의 산소 제약이라는 길도 있다. 잠자리류의 어린 시절은 물속에서 진행되고, 물에 든 산소는 공기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후기 고생대의 높은 대기 산소가 물의 용존산소를 늘려 유충기의 산소 제약을 덜어 주었을 수 있다.

이것은 성충의 기관 확산 한계와는 다른 기작이다. 왜 수생 유충을 가진 일부 무리가 고산소에 특히 민감할 수 있는지도 설명해 준다. 모든 육상 절지동물이 한꺼번에 커졌다는 뜻은 아니다.

끝으로 표본 추출의 문제가 있다. 화석 곤충의 최대 크기는 보통 각 시간 구간에서 알려진 가장 긴 날개로 나타낸다. 따라서 이런 극단값은 표본 수에 유난히 민감하다. 어떤 지층에 곤충 화석이 풍부하게 보존된 산지 하나가 있기만 해도, 그 시기의 ‘최대 몸집’이 갑자기 올라갈 수 있다.

더 중요한 점도 있다. 거대화는 모든 절지동물 무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산소가 높은 기간 내내 이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산소와 최대 몸집이 시간상으로 맺는 관계는 통계적 상관이지, 일대일로 작동하는 스위치가 아니다.

5 한 주기 안에서도 부호가 바뀌는 되먹임

이제 연결 고리를 펼쳐 놓고 각각의 증거가 얼마나 강한지 표시해 보자. 생산성이 높은 습지에 알맞은 분지 침강이 더해지면, 이탄과 유기탄소의 순매몰량이 늘어난다.

강하다. 환원된 탄소가 오랫동안 표층 순환에서 빠져나가면, 대기 이산화탄소는 줄고 산소의 순공급원은 늘어난다. 기작의 증거는 강하다. 다만 단위 시간당 실제로 이동하는 양에는 중간 정도의 불확실성이 있다.

후기 석탄기에서 전기 페름기에 이르는 고해상도 복원은 이산화탄소의 진폭이 아주 컸음을 보여 준다. 석탄기 최말기에는 궤도 주기에 따라 약 150~700ppm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궤도 주기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의 모양, 자전축의 기울기와 방향이 대략 2만 년에서 40만 년에 이르는 주기로 서서히 바뀌는 것을 말한다. 빙상도 그에 따라 커졌다 작아지고, 이산화탄소도 함께 오르내린다. 전기 페름기의 일부 기록은 약 100ppm이라는 극히 낮은 값까지 제시한다.

비교해 보자. 지금의 대기 이산화탄소는 400ppm을 넘는다. 지난 빙기의 가장 추웠던 때도 약 180ppm이었다. 식물의 기공이나 고토양 같은 대리지표에는 오차가 크므로, 100이라는 숫자를 정확한 전 지구 평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후기 고생대의 이산화탄소가 현생누대의 저점에 들어갔다’는 큰 틀의 결론은 상당히 견고하다.

한 기후 모형은 여기서 더 나아간 결과도 보여 주었다. 태양 복사에너지가 지금보다 약했던 후기 고생대의 조건에서, 이산화탄소가 약 40ppm 아래로 내려가면 모형 속 지구는 온통 얼어붙은 상태에 들어갔다.

실제 지구가 안정적인 눈덩이 지구 상태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계산은 후기 석탄기에서 전기 페름기의 낮은 이산화탄소가 기후계를 강한 얼음 피드백이 작동하는 영역 가까이까지 밀어 넣기에 충분했음을 보여 준다.

낮은 이산화탄소에 곤드와나의 고위도 위치, 산맥 형성에 따른 풍화가 더해져 후기 고생대의 빙상이 확장되었다. 새로 솟아오른 산을 빗물이 씻어 내리면, 암석은 풍화하면서 공기 속 이산화탄소를 조금씩 흡수한다. 산맥 형성과 풍화가 하는 역할이 이것이다. 상관관계가 강하고 모형의 뒷받침도 강하다. 그러나 단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 빙하기가 남긴 빙하 퇴적물은 지금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남극, 오스트레일리아에 흩어져 있다. 100여 년 전 베게너가 대륙이동을 논증할 때 내놓은 증거 가운데 하나도 이것이었다. 이 대륙들을 곤드와나로 다시 맞춰 놓으면, 빙하의 흔적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종합 연구는 후기 고생대 대빙하기를 약 3억 7천만 년 전부터 2억 6천만 년 전까지, 앞뒤로 1억 년 안팎에 걸친 시기로 본다. 빙상이 가장 넓었던 때는 중·후기 석탄기에서 전기 페름기다. 동물이 등장한 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빙하기였다. 그렇다고 하나의 거대한 얼음덮개가 1억 년 동안 꼼짝없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빙상이 커지고, 물러나고,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는 여러 단계의 연속이었다.

유라메리카 대륙은 당시 적도에 있어 얼음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곳의 지층에 기록된 것은 얼음 자체가 아니라 얼음의 메아리였다. 남쪽 빙상이 커지면 바닷물이 얼음 속에 갇혀 전 지구 해수면이 낮아졌다. 빙상이 물러나면 해수면은 다시 높아졌다. 그런데도 ‘석탄이 후기 고생대 대빙하기를 일으켰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치다.

적어도 네 묶음의 변수를 나란히 놓아야 한다. 곤드와나가 남극을 가로질러 자리했다는 고지리적 위치. 판게아의 결합과 육지·바다 배치의 변화. 산맥 형성으로 강화된 규산염 풍화. 그리고 해양 순환, 화산 탈기, 궤도 강제력의 변화다.

고리 하나하나는 홀로 놓아도 버틴다. 탄소 매몰이 이산화탄소를 낮춘다. 강하다. 낮은 이산화탄소는 빙상 확장에 유리하다. 강하다. 하지만 이들을 ‘석탄이 대빙하기를 일으켰다’는 유일한 인과 사슬로 잇는 순간 증거가 모자라진다. 각 고리에 다른 입력도 들어오기 때문이다.

얼음의 양이 바뀌면 전 지구 해수면이 크게 오르내린다. 강하다.

후기 석탄기를 다룬 연구들은 대체로 얼음의 양이 변하면서 해수면의 변동폭이 수십 미터에서 약 100미터 이상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일부 종합 연구의 최고치는 거의 120미터에 닿는다. 해수면은 해안 분지의 지하수위와 퇴적 수용 공간을 좌우한다. 그에 따라 이탄 늪은 거듭 생겨나고, 드러나고, 물에 잠긴다. 강하다.

해수면이 낮아지면 대륙붕과 해안 평야가 드러나고 하천은 바닥을 더 깊이 파고든다. 원래 있던 이탄지는 산화되고 깎여 나갈 수 있다. 이후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다시 오르면 지하수위도 높아진다. 낮은 평야에 다시 물이 차고, 알맞은 단계에서 이탄 늪이 자리 잡는다.

바다가 계속 밀려 들어오면 석호나 삼각주, 얕은 바다의 퇴적물이 이탄지를 덮어 탄층으로 보존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함탄층의 퇴적 주기에서는 고토양, 석탄, 쇄설암, 얕은 바다의 탄산염암이나 셰일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렇게 포개진 지층은 한 장의 기록과 같다. 여기는 한때 땅이었다. 그다음에는 늪이 되었고, 강이 운반한 진흙과 모래에 덮였다가, 마지막에는 바닷물에 잠겼다. 그런데 이 한 묶음이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난다. 같은 쪽을 거듭 베껴 쓴 낡은 장부처럼. 베껴 쓴 한 번 한 번이 빙상이 커졌다 작아진 한 차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지층들은 석탄기를 꾸며 주는 장식이 아니다. 그 되먹임 고리가 남긴 직접적인 기록이다. 석탄 한 층, 진흙과 모래 한 층, 바다에서 쌓인 퇴적물 한 층, 다시 석탄 한 층. 그 박자기가 종이 위에 남긴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한 번은 이 박자기가 유난히 급하게 내려앉았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탄광 두 곳에서 광부들이 탄층을 캐낸 뒤 고개를 들자, 3억 년도 더 된 숲 한 덩어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천장 암석에 원래 모습 그대로 찍힌 채 약 10제곱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연구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큰 지진 한 번으로 이 늪이 갑자기 해수면 아래로 내려앉았고, 몇 달 만에 진흙과 모래로 봉해졌다. 높이가 40미터를 넘는 석송, 나무처럼 자란 속새, 나무고사리가 모두 탄층 꼭대기에 뿌리를 박은 채 제자리에 남았다. 해수면이 낮을수록 석탄이 잘 생기는 것도, 높을수록 잘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석탄이 만들어지려면 물높이와 퇴적 수용 공간이 맞아떨어지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빙하에 따른 해수면의 진동은 오히려 한 분지 안에서 그 창을 거듭 열고 닫는다. 이 고리야말로 전체 되먹임에서 가장 분명한 부분이면서, 가장 쉽게 거꾸로 서술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한 방향으로 증폭되는 양의 피드백이 아니다.

빙하가 늘어 바다가 물러나면 이탄이 노출되어 덜 보존될 수 있다. 그런데 뒤이은 바다의 전진은 물높이를 올리고 이탄을 빠르게 묻는다. 따라서 하나의 주기 안에서도 피드백의 부호가 바뀐다. 빙하기는 석탄 형성을 거의 연속적인 과정에서, 해수면이라는 박자기가 거듭 켰다 껐다 하는 과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불 역시 부호를 바꿀 수 있는 요소다. 산소가 많으면 젖은 식물도 더 쉽게 탄다. 당시의 석탄에서는 어디서나 숯을 찾아볼 수 있다. 불 한 번이 식물 탄소의 일부를 태워 곧장 대기로 돌려보내는 동시에, 다른 일부는 다시 분해되기 아주 어려운 숯으로 만든다. 앞쪽은 매몰을 줄이고 뒤쪽은 매몰을 늘린다. 같은 불이 브레이크도 밟고 가속페달도 밟는 셈이다. 어느 몫의 탄소를 묻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더 긴 시간 규모로 보면, 후기 석탄기 유라메리카의 적도대에서는 계절성과 건조화의 신호가 점점 뚜렷해졌다. 오랫동안 물에 잠기는 석송 습지는 줄고, 빈틈을 재빨리 차지하는 양치식물과 나무고사리는 늘었다. 뒤이어 계절적 가뭄을 견디는 종자식물이 갈수록 넓은 땅에서 우세해졌다.

이 변화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난 것도, 한순간에 뒤집힌 것도 아니었다. 유라메리카에서는 습지 식물의 교체가 두드러졌지만, 화북을 비롯한 동쪽의 다른 저위도 지역에서는 석송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석탄 형성 생태계가 페름기까지 이어졌다.

6 우림이 섬으로 조각나다

약 3억 500만 년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드넓게 이어져 있던 석탄 늪 숲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조각났다. 2010년의 한 연구는 여기에 강렬한 이름을 붙였다. ‘석탄기 우림 붕괴’다. 그곳 석탄 늪의 식물상이 한 차례 바뀌었다는 사실은 식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연구의 새로운 점은 그것을 사지동물의 운명과 연결해 하나의 온전한 생태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당시 늪의 사지동물은 생김새부터 제각각이었다. 도롱뇽 같은 것도 있고, 다리 없이 뱀처럼 생긴 것도 있고, 몸이 길쭉해 악어 같은 것도 있었다. 이 이야기대로라면 한 덩어리로 이어졌던 우림은 축축한 ‘생태적 섬’들로 쪼개졌다.

사지동물은 각자의 섬에 갇혀 따로 진화했다. 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종류가 점점 늘었다. 논문은 눈에 띄는 숫자도 보고했다. 지역 군집에서 과 수준의 다양성이 약 20과에서 7과로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는 종보다 두 단계 위의 분류 단위다. 개와 늑대, 여우가 같은 과에 들어간다.

이 이야기에는 패자도 있고 승자도 있다. 물을 떠날 수 없는 양서류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양막류는 살아남았다. 양막류란 마른 땅에 알을 낳을 수 있는 사지동물의 한 갈래로, 오늘날의 파충류와 새, 포유류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알은 작은 물웅덩이 하나를 자체적으로 품고 있다. 배아는 그 안에서 자라므로 알을 낳으러 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양막류는 더 건조해진 환경에 잘 맞았다. 어떤 것은 식물만 먹기 시작했고, 어떤 것은 다른 동물만 먹었다. 먹고사는 방식이 한꺼번에 다양해졌다.

식물 쪽의 변화는 확실하다. 다만 ‘붕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느낌보다는 느렸다. 처음에는 빨리 자라고 빈자리가 나면 먼저 차지하는 양치식물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다음 짧은 기간에 지배적이던 나무 모양의 석송류가 급격히 쇠퇴하고 나무고사리가 우세해졌다. 나무고사리는 말 그대로 나무처럼 자라는 양치식물이다. 지금 중국 남쪽 지방의 계곡에서 볼 수 있는 헤고 같은 것도 그 한 종류다.

여기서는 포자와 꽃가루의 기록이 특히 중요하다. 줄기와 잎은 그것이 묻힌 작은 숲 한 조각만을 대표한다. 하지만 포자와 꽃가루는 바람과 물을 타고 멀리 퍼지므로 넓은 지역의 식생을 기록할 수 있다.

고토양은 별개의 단서를 더해 준다. 이 사건 전후의 일부 고토양은 물에 잠기는 시간이 짧아지고 배수가 좋아졌음을 보여 준다. 두 단서는 같은 방식으로 보존된 것이 아닌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왜 건조해졌는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훨씬 적다. 한 설명은 식물의 급변을 짧고 강렬한 곤드와나 빙하 확장과 연결한다. 같은 연구 흐름 안에도 다른 설명이 남아 있다. 더 오랫동안 이어진 온실 온난화 역시 대륙 내부를 건조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물이 바뀌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논란이 있는 것은 이야기의 동물 쪽 절반이다. 2018년의 한 연구는 전 세계의 종 수준 자료를 새로 정리하고 표본 추출 강도를 보정했다.

결과는 이랬다. 석탄기 사지동물의 보정 전 종수는 표본 수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보정한 뒤에는 후기 석탄기의 다양성이 먼저 늘어났고, 정말 뚜렷한 감소는 오히려 석탄기와 페름기의 경계 부근에 더 집중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생물지리 네트워크 분석이 ‘우림 붕괴 이후 각 지역의 고유종이 뚜렷하게 늘었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기 페름기에 보인 것은 오히려 넓은 분포의 신호였다. 같은 동물들이 더 많은 곳으로 퍼져 갔다. 섬으로 고립되었다는 연결 고리는 자료에서 찾을 수 없었다.

2023년의 추가 연구 역시 표본 추출을 가리켰다. 초기 사지동물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다양성과 지역 고유성의 변화 가운데 상당 부분은 지층과 화석 산지를 얼마나 많이 조사했는지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이번에 표본 추출이 만들어 낸 것은 가짜 하강 곡선이 아니었다. 여기서 표본추출의 편향이 흔드는 것은 곡선만이 아니다. 그 곡선으로 설명한 생태 메커니즘의 근거도 흔들릴 수 있다.

곤충 쪽의 정량적인 멸종 곡선은 그만큼 견고하지도 않다. 함탄층의 곤충 기록은 소수의 화석 밀집 산지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지금은 믿을 만한 전 지구 수치를 제시할 수 없다.

이 사건은 흔히 말하는 다섯 차례 대멸종의 반열에도 들지 못한다. 대륙마다 같은 때에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석송 석탄 늪이 크게 줄었을 때도, 화북을 비롯한 동쪽 열대에는 여전히 석송류 습지가 있었다.

네이멍구 우다에는 ‘식물의 폼페이’라고 불리는 화석 산지가 있다. 약 2억 9,800만 년 전, 이미 페름기에 들어선 뒤였다. 며칠 사이 쏟아진 화산재가 이탄 늪 숲 하나를 서 있던 자리 그대로 묻어 버렸다.

가지에는 잎이 아직 붙어 있다. 어떤 작은 나무는 잎과 가지, 줄기와 구과가 한꺼번에 보존되었다. 수관 위로 높이 솟아 있던 나무 가운데에는 시길라리아 같은 거대한 석송류도 있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석송 숲이 무대에서 물러났을 때, 화북의 숲은 아직 서 있었다.

따라서 더 알맞은 표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저위도 습지의 대규모 재편이다. ‘붕괴’라는 이름은 기억하기 쉽다. 바로 그 쉽다는 점 때문에, 앞뒤가 있고 지역마다 달랐던 과정을 한순간으로 눌러 담아 버린다.

7 함탄층은 무엇을 골라 남겼는가

탄층은 연료일 뿐만 아니라 몹시 편향된 보존 장치이기도 하다. 늪에 잠긴 식물 조직에는 때로 일찍부터 광물이 스며들어 가득 찬다. 그렇게 단단한 덩어리가 된 것을 콜볼, 곧 탄구라고 한다.

광부들은 탄구를 반기지 않는다. 단단한 데다 타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면 고식물학자에게는 보물이다. 잘라서 얇게 갈아 보면 뿌리와 줄기, 잎과 포자낭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대의 건조한 고지대 식물보다 석탄기 습지 식물을 훨씬 잘 안다. 머릿속에 그리는 석탄기는 거의 통째로 석탄 늪이다. 그 인상 자체가 이 편향된 보존 장치의 산물이다. 중요한 것은 편향이 어느 쪽을 향하느냐다.

표본 몇 개를 무작위로 덜 모은 문제가 아니다. 특정 생태 유형 하나를 체계적으로 확대해 보여 주는 문제다. 그리고 하필 바로 그 유형의 식물들이 석탄 형성 논쟁에서 다루는 주된 대상이다.

다시 말해 석탄을 만든 식물을 우리가 아주 자세히 아는 것은, 그들이 우연히 가장 좋은 보존 조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존 조건이 바로 석탄 자체다.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석탄이 되지 않은 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훨씬 덜 안다.

이 비대칭에는 직접적인 결과가 있다. 석탄 형성 논쟁의 양쪽은 모두 석탄 속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을 논한다. 얼마나 목질화되었는지, 바깥 껍질의 비율이 얼마인지, 조직이 얼마나 분해되기 어려운지를 따진다. 하지만 ‘같은 시대 고지대에는 무엇이 자랐고, 그 조직의 화학 조성은 어땠으며, 그 유기물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해서는 견줄 만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 논쟁은 체계적으로 편향된 표본 위에서 진행된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의 논증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쪽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가 제한된다.

편향은 양과 모양만 바꾸지 않는다. ‘애초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도 바꾼다. 우리가 ‘석탄을 만든 식물의 목질화 정도가 석탄 형성량을 결정했는가’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은, 탄구가 그 식물을 세포 수준까지 보존해 주었기 때문이다.

고지대 식물에는 같은 질문을 그만큼 세밀하게 던지기 어렵다. 화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석탄 늪의 기록과 같은 해상도로 비교할 표본이 드물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조긴스 해안 절벽은 지금 세계유산이다. ‘석탄 시대의 갈라파고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편향이 남아 있다. 지층 속에 석화된 석송 나무 그루터기들이 꼿꼿이 서 있다. 나무가 죽은 뒤 속부터 썩어 비면서, 수직으로 난 구멍들이 남은 것이다.

작은 사지동물과 절지동물, 육상 달팽이 가운데 어떤 것은 그 안에 떨어져 나오지 못했다. 어떤 것은 처음부터 거기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빠르게 밀려든 진흙과 모래가 이들을 봉해 버렸다. 1852년 지질학자 두 사람이 이곳의 나무 그루터기 화석 하나를 깨다가 사지동물 한 마리의 뼈를 찾아냈다. 그 뒤로 이런 그루터기는 작은 동물을 찾으러 가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숲 바닥에서 살던 작은 동물들’은 유난히 잘 보존될 기회를 얻었다.

곤충은 석탄 늪 가까이의 호수나 삼각주에 쌓인 고운 진흙, 혹은 특별한 화석 산지에 자주 남는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메이존 크리크가 그런 곳이다. 3억 년도 더 전 삼각주의 진흙과 모래가 몸이 무른 동물까지 철질 결핵체 안에 봉해 두었다. 노천 채탄으로 수천, 수만 개의 결핵체가 지표로 올라왔다. 하나를 깨면 양치식물 잎이 나올 수도 있고, 해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몸이 거의 온통 물인 해파리는 보통 화석을 남기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여기에는 ‘털리 몬스터’라는 동물도 있다. 지금은 일리노이주의 주 화석이다. 생김새가 하도 기묘해서 척추동물인지 아닌지를 아직도 다툰다. 프랑스에서 나온 그 메가네우라 화석들 역시 석탄 덩어리 자체가 아니라, 함탄층 부근의 세립질 퇴적물에서 나왔다.

이렇듯 화석 기록은 습지와 강·호수의 가장자리, 저지대 생물군을 우선해서 크게 보여 준다. 계절적으로 건조한 고지대 군집은 뚜렷하게 과소평가된다. 4절에서 본 표본 추출 문제가 여기서 나온다. 곤충의 최대 날개 길이는 화석 밀집 산지에 유난히 민감한데, 그런 산지의 분포 자체가 습지에 가까운 환경으로 기울어 있다.

조긴스의 그루터기에는 후속 이야기도 있다. 확실하게 인정되는 가장 오래된 양막류 몸 화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긴스의 속 빈 그루터기에서 발견되었다. 약 3억 1천여만 년 전의 것으로, 길이 20여 센티미터짜리 작은 도마뱀처럼 생겼다. 그런데 2025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약 3억 5,6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톱이 있는 사지동물의 발자국이 보고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양막류형 발자국으로 해석했다.

이 해석이 성립한다면 양막류의 기원은 적어도 석탄기 맨 처음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발자국이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때 이미 양막류 같은 발을 지니고 육지를 걷는 동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껍데기 있는 알을 낳았는지는 발자국이 말해 줄 수 없다.

12편에서 육지 진출을 다룰 때도 한 번 마주쳤다. 발보다 발자국이 먼저 나온다. 이번이 두 번째다. 까닭도 같다. 발자국을 남기는 곳과 뼈가 묻히는 곳이 같은 종류의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자국과 뼈 가운데 무엇이 먼저 나타나는지를 곧바로 그 능력이 언제 생겼는지의 시계로 삼을 수는 없다.

8 환경이 되돌아온 것이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다

이제 제목으로 돌아가자. 제목의 ‘구축된 틀’은 생명이 스스로 세워 놓은 체계를 가리킨다. 석송 늪 하나와, 그 늪이 탄소를 묻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구축된 틀이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되돌아와 그 틀을 죽였다’는 말은 장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인과응보 이야기가 아니다.

연결은 이렇다. 늪이 탄소를 땅속에 묻으면 이산화탄소가 내려간다. 낮아진 이산화탄소에, 남극 부근을 차지한 곤드와나와 암석 풍화를 가속하는 조산대가 더해지면서 남쪽 빙상이 확장된다.

빙상이 커졌다 물러날 때마다 전 지구 해수면도 오르내린다. 해수면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해안의 늪은 거듭 생겨나고, 드러나고, 물에 잠긴다. 끝내 점점 건조해지는 기후와 점점 잘게 쪼개지는 습지가 탄소를 묻던 그 조합을 해체한다.

하지만 이 장치가 자살한 것은 아니다. 5절에서 보았다. 한 차례의 해수면 변동도 앞 절반에서는 이탄을 깎아내고, 뒤 절반에서는 다시 묻는다. 오히려 박자기에 가깝다. 대빙하기 전체의 책임을 석탄에게 돌릴 수 있는 문헌도 없다.

이 연재에서는 구축된 틀에 담기지 않으면서 없애 버릴 수도 없는 몫을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이번 편의 잔여항은 설명 자체에 있다. 하나의 사건 수사와 같다. 물증은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달라지는 것은 어느 물증들을 이어 어떤 이야기로 만드느냐다.

교과서에도 실린 두 인과 사슬을 이번 편에서 모두 풀어 보았다. 하나는 ‘균류가 늦게 와서 석탄이 생겼다’는 것이다. 풀어 놓으면 강도가 전혀 다른 두 문장이 된다. 그 효소 체계에는 진화사가 있다. 이 말은 버틴다. 그 체계가 늦게 등장한 탓에 석탄 형성의 정점이 생겼다. 이 말은 버티지 못한다.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섞은 데서 바로 그 유행하는 버전이 나왔다.

다른 하나는 ‘산소가 높아서 벌레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떠받친 받침점은 기관 말단의 확산에 넘을 수 없는 몸집의 상한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2026년 생리학 연구는 그 받침점을 빼냈다. 산소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증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그 전체 연결은 이 받침점에 기대 서 있었다.

두 사슬을 해체한 방식은 달랐다. 첫 번째는 문장 하나를 둘로 나누고 원래의 논증을 다시 읽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 장치 자체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었다.

두 방식 모두 새 화석 하나 없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런 잔여항에는 앞선 몇 편에서 보지 못했던 성질이 있다.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치는 방법은 화석을 더 찾는 것이 아니라, 기작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있다.

그렇게 풀어 놓은 뒤에도 현상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석탄은 그대로 있다. 후기 석탄기에서 전기 페름기는 여전히 오늘날 석탄 자원의 유달리 큰 몫을 남겼다.

높은 산소의 증거도 남아 있다. 대부분의 모형과 숯은 오늘날보다 높은 산소를 뒷받침한다. 거대 곤충도 남아 있다. 길이 32센티미터인 그 날개가 거기 있다. 석송 숲의 급격한 쇠퇴도 여전히 포자와 꽃가루 기록에 보인다.

바뀐 것은 그 현상 하나하나를 어느 인과 사슬에 이어 놓느냐뿐이다. 다시 쓰인 것은 세계가 아니라, 그 현상들을 꿰어 놓은 우리의 연결선이다.

다른 과학 이야기를 읽을 때도 이렇게 시험해 볼 수 있다. ‘갑이므로 을이다’라는 문장을 만나면 먼저 둘로 나누어 보자. 갑은 정말인가. 갑이 을의 주된 원인인가. 어느 문장이 버티는지 따로 살펴보는 것이다.

다음에 석탄 한 덩이를 집어 들면 이렇게 읽어 보자. 물에 잠긴 석송 숲 하나, 마침 알맞게 내려앉던 분지 하나, 남쪽 빙상 하나의 팽창과 후퇴, 그리고 거듭 밀려왔다 물러간 바다. 그것을 아궁이에 던지는 일은 이 장치가 수천만 년 동안 해 온 일을 몇 분 만에 거꾸로 재생하는 것이다.

지금 우세한 것은 기후와 분지 쪽이다. 균류 쪽이 탈락한 것은 아니다. 균류의 분기점 연대는 여전히 다시 계산되고 있고, 거대 곤충도 온전한 새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 판정 기준은 아직 걸러 내는 중이다.

관련 연구와 사실 확인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