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무리의 발자국
2010년 1월, 《네이처》에 발자국 한 무리가 실렸다. 폴란드 남동부 시비엥토크시스키에산맥의 버려진 채석장에서 나온 발자국이었다. 지명은 자헤우미에. 백운암을 캐던 곳으로, 발자국은 겹겹이 쌓인 백운암의 층리면에 찍혀 있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바르샤바대학교의 젊은 고생물학자 니에지비에츠키였다. 그는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의 알베리와 함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암석 표면에는 자국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발가락이 있고, 앞발과 뒷발이 구분되며, 번갈아 걸었다. 가장 잘 보존된 보행렬 하나에서는 대각선 짝으로 움직이는 걸음걸이가 엿보인다. 왼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이 함께 움직이는, 오늘날의 도마뱀 같은 걸음이다. 두 줄의 발자국 사이에는 배를 끌고 간 고랑이 없다. 이 동물은 몸을 받쳐 들어 올린 채 걸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로 물밑을 밀고 나갈 때는 대체로 몸이 바닥에 붙어 있다. 물속에서는 부력이 체중의 대부분을 대신 떠받친다. 뭍에 나오면 부력은 사라진다. 체중은 조금도 줄지 않는다.
몸길이 1미터인 물고기도 물속에서는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제자리에 떠 있을 수 있다. 그 물고기를 뭍으로 꺼내 놓으면 제 머리조차 들지 못한다. 몸을 땅에서 띄워 받치려면 팔다리가 있어야 하고, 무게를 견디는 어깨띠와 골반이 있어야 하며, 주저앉지 않는 척추도 있어야 한다.
발자국 크기는 제각각이다. 보폭으로 추정하면 작은 발자국을 남긴 동물의 몸길이는 약 40~50센티미터다. 가장 큰 발자국은 너비가 약 26센티미터로, 이를 바탕으로 보면 가장 큰 개체는 몸길이가 2미터를 넘었을 수도 있다. 어떤 발자국에는 발가락 끝이 찍어 놓은 작은 삼각형 구덩이도 보인다.
놀라운 것은 연대다. 이 발자국들은 약 3억 9천만 년 전의 것이다. 당시 알려져 있던 가장 오래된 네발동물의 뼈보다 1천만 년 이상 앞선다. 교과서에는 유명한 행렬이 있다. 유스테놉테론, 판데리크티스, 틱타알릭, 아칸토스테가, 이크티오스테가. 뒤로 갈수록 네발동물을 더 닮고, 살았던 시기도 늦어진다. 지느러미가 차츰 다리로 바뀌고, 물은 조금씩 등 뒤로 물러난다. 그중 ‘반은 물고기, 반은 짐승’이라는 모습에 가장 가까운 틱타알릭은 약 3억 7천5백만 년 전에 살았다. 이 발자국들은 그 행렬 전체보다 앞에 찍혀 있다.
발자국은 발이 남긴다. 발이 제 발자국보다 늦게 생길 수는 없다. 그런데 화석 기록에서는 발자국이 먼저고, 발은 나중이다.
발자국의 나이는 이렇게 정했다. 발자국이 있는 층 자체에는 직접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광물이 없다. 그보다 약 15미터 위에 작은 화석들이 든 층이 있는데, 이미 알려진 특정 시간 구간에 해당한다. 그 시간 구간의 절대연령은 다른 곳에서 방사성 연대측정법으로 구한 것이다.
2010년에는 당시의 지질시대표에 따라 약 3억 9천5백만 년 전으로 환산했다. 2015년 시대표가 갱신되면서 같은 시간 구간은 약 3억 9천만~3억 9천1백만 년 전으로 보정되었다. 지층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눈금과 읽는 법이 함께 바뀐 것이다.
곧 의문이 제기되었다. 2015년 미국의 루커스는 여러 지역의 데본기 네발동물 발자국을 다시 검토했다. 그는 자헤우미에의 자국들이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배열도 충분히 규칙적이지 않아 믿을 만한 발자국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분변 화석도 섞여 있었고, 일부는 물고기가 물밑에서 먹이를 찾거나 둥지를 만들며 파 놓은 구덩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고기도 실제로 ‘걷는다’. 2011년 시카고대학교 연구진은 아프리카폐어가 물밑에서 가늘고 긴 배지느러미 한 쌍을 번갈아 내디디며, 몸을 바닥에서 들어 올려 앞으로 걷는 모습을 촬영했다.
‘좌우를 번갈아 움직인다’는 것만으로 발가락 달린 다리가 있었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원래 논문의 저자들은 이렇게 응답했다. 폐어의 지느러미는 채찍처럼 가늘고 진짜 발가락도 없어, 그렇게 깊고 서로 또렷이 떨어진 발가락 자국을 만들 수 없다. 먹이를 찾다 생긴 구덩이로는 앞발과 뒷발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몇몇 보행렬도 설명할 수 없다. 다툼의 대상은 가장 잘 남은 소수의 보행렬이었다. 어느 쪽도 채석장에 있는 구덩이를 모조리 진짜 발자국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가장 흥미로운 결과 하나는 이크티오스테가에서 나왔다. 2012년 영국 왕립수의과대학 연구진은 이크티오스테가의 뼈를 스캔해 컴퓨터에 넣고, 관절을 하나씩 돌려 보았다. 각 관절이 최대 몇 도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결론은 이랬다. 알려진 가장 초기의 네발동물 가운데 하나인 이 동물은 도마뱀처럼 다리를 번갈아 내디딜 수 없었다. 오히려 물범이 뭍에 오를 때처럼 앞다리로 몸을 받쳐 앞으로 밀고, 몸의 뒷부분은 질질 끌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중국 동남부 해안의 갯벌에서는 말뚝망둑이 이렇게 걷는다. 썰물이 되면 굵은 가슴지느러미 한 쌍으로 몸을 받치고, 진흙 위를 폴짝폴짝 뛰며 벌레를 쫓는다. 볼을 부풀려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아가미가 마르지 않게 하기도 한다.
이 결과는 정반대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이렇다. 가장 초기의 네발동물조차 그런 걸음을 걷지 못했다면, 자헤우미에의 발자국은 네발동물이 남긴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이렇다. 그 발자국을 남긴 동물은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네발동물 골격의 주인보다 더 잘 걸었다. 아직 그 동물의 뼈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화석 기록 자체만으로는 둘 중 어느 쪽인지 판정할 수 없다. 202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장 오래된 파충류 발자국을 연구한 논문도 여전히 이 보행렬을 팔다리 있는 네발동물의 출현 시점을 제약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이 논쟁이 어떻게 끝나든, 논쟁은 더 일반적인 사실 하나를 드러냈다. 발자국과 뼈에 필요한 보존 조건은 서로 다르다. 동물 한 마리가 축축한 진흙 위에 발자국 수백 개를 남기면서도, 그곳에서는 단 한 번도 죽지 않을 수 있다.
그 동물은 하천 바닥이나 호수 한가운데서 죽을 수도 있다. 그런 곳은 사체를 묻어 줄 수 있지만 발자국은 좀처럼 남기지 않는다. 자헤우미에의 발자국층에는 뼈가 거의 없다. 그곳 암석은 처음에는 해안 조간대의 갯벌로 해석되었다. 2018년 원래 연구팀이 다시 조사한 뒤에는, 생겼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는 얕은 호수들이 이어진 곳에 더 가깝다고 보았다. 호숫물이 불고 빠지며 진흙 바닥이 젖었다 말랐다 했다는 것이다. 네발동물이 맨 처음 해안에서 활동했는지 호숫가에서 활동했는지, 이 발자국 자체에 대한 해석도 아직 바뀌고 있다.
11편에서는 화석 기록이 하나의 체라고 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체가 있다. 발자국을 거르는 체 하나, 뼈를 거르는 체 하나. 각각 다른 곳을 향해 입구가 나 있다. 두 체가 걸러 낸 것을 연대순으로 한 줄에 세워 얻는 것은, 서로 다른 두 표본 추출 과정에서 각각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시점이다. 그 일이 실제로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는 따로 찾아야 한다.
2 육상 진출의 시간표
뭍에 오르는 일 역시 하나의 행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낸 일이 아니다. 육상 생명의 기록을 시간순으로 늘어놓으면, 서로 관계없는 선발대들이 보인다. 맨 앞과 맨 뒤 사이는 수십억 년이나 벌어져 있다.
약 34억 8천만 년 전, 서오스트레일리아 필바라에는 육상 온천의 퇴적물로 해석되는 지층이 있었다. 온천 주변에 특유한 규산질 침전물, 간헐천이 뿜어낸 돌, 미생물이 남겼을 가능성이 있는 얇은 층들이 들어 있다. 2017년 이 연구를 발표한 저자들은 이를 현재 가장 오래된 육상 생명의 후보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이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은 어느 온천 가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육상 생태계 전체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약 32억 2천만 년 전, 남아프리카의 조간대와 하천 퇴적물에는 미생물 매트가 넓게 깔려 있었다. 반복해서 노출되고 말라 갈라진 흔적이 남아 있다. 진정한 식물이 나타나기 거의 30억 년 전부터, 육지 가장자리에는 이미 살아 있는 얇은 층이 있었다. 볕에 말랐다가 물에 젖고, 물에 젖었다가 다시 볕에 말랐다.
약 6억 3천5백만 년 전, 중국 화남 지역의 한 동굴 퇴적층에는 황철석으로 치환된 실 모양 미화석이 있다. 이 동굴들은 빗물이 암석을 녹여 만든 것이며, 화석은 지표나 얕은 지하에 있었다. 원래 연구자들은 이를 균류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약 5억 년 전, 식물이 아직 뭍에 오르기 전에도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 근처의 옛 해안 모래언덕에는 무언가가 기어 다녔다. 그곳 사암의 층리면에는 발이 많은 동물의 보행렬이 줄줄이 남아 있다. 촘촘한 발자국 두 줄 사이로 무언가를 끈 자국이 나 있으며, 길이가 2미터를 넘는 것도 있다.
모래알의 모양과 층리는 그곳이 물속이 아니라 바람이 쌓아 올린 모래언덕이었음을 알려 준다. 보행렬을 남긴 동물의 몸은 남아 있지 않다. 연구자들은 새우도 닮고 지네도 닮은 절지동물 무리가 바다에서 모래사장으로 기어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알을 낳으러 왔을 수도 있고, 그저 무언가를 피하려던 것일 수도 있다.
이번에도 발자국이 몸보다 먼저였다. 나중에 캐나다 퀘벡의 같은 시대 조간대 지층에서, 다리 사이 간격이 이 보행렬과 맞아떨어지는 동물의 몸 화석이 나왔다. 몸은 마디로 나뉘고 꼬리 끝은 길고 뾰족한, 오래전에 멸종한 절지동물이었다. 오늘날의 노래기 같은 무리와 먼 친척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아마 썰물을 틈타 모래사장에 올랐다가 바다로 돌아가기를 거듭한 탐색자들이었을 것이다.
약 4억 7천만 년 전, 아르헨티나에 포자들이 나타났다. 포자벽의 구조가 오늘날의 이끼류 식물과 매우 비슷해, 현재 널리 인정되는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육상 식물의 증거 가운데 하나다. 포자는 그것을 만든 식물이 이미 있었다고 말해 준다. 그 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말해 주지 못한다.
약 4억 3천만 년 전부터 지층에는 한 개체의 전체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육상 식물이 나타난다. 키는 몇 센티미터. 잎도 없는 줄기가 둘로 갈라지고, 다시 둘로 갈라지며, 끝마다 포자를 담은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다. 그중 하나가 쿡소니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식물학자 쿡슨을 기려 붙인 이름이다.
당시 육지의 식생은 아마 물가에 깔린, 높이 몇 센티미터짜리 초록 융단 같았을 것이다. 중국 윈난성 취징 일대의 4억여 년 전 지층에서도 이런 초기 육상 식물이 무더기로 나온다. 식물의 육상 진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산지다.
약 4억 1천여만~4억 2천여만 년 전. 연대에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스코틀랜드 동해안 스톤헤이븐에서 아마추어 화석 애호가 뉴먼이 해안의 바위를 두드리다 작은 노래기 한 마리를 꺼냈다. 그의 본업은 버스 운전사였고, 이 노래기의 종명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갔다. 몸에는 기문, 곧 몸 표면에서 공기가 드나드는 작은 구멍이 보존되어 있었다. 동물이 공기를 호흡했다는 가장 오래된 직접 증거 가운데 하나다.
약 4억 7백만 년 전, 스코틀랜드의 라이니 처트는 육상 생태계 하나를 통째로 제자리에서 규질 물질 속에 봉인했다. 식물 세포, 균류의 균사, 식물 몸속으로 들어간 균류, 지의류를 닮은 공생체, 자그마한 절지동물까지 들어 있다. 6편과 11편에서도 다룬 곳이다.
같은 시기 육지에는 당시 가장 높은 것이 서 있었다. 프로토탁시테스다. 그 ‘줄기’는 지름이 1미터, 높이가 8미터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무는 아니었다. 안은 가느다란 관들이 서로 얽힌 구조였다.
오랫동안 거대한 균류로 여겨졌으나, 2025년에는 이미 완전히 멸종한 독립된 무리로, 균류와도 식물과도 다르다는 연구가 나왔다. 높이 몇 센티미터의 초록 융단 사이에 몇 미터짜리 기둥들이 서 있었다. 지금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약 3억 9천만 년 전에는 폴란드의 그 발자국들. 약 3억 7천5백만 년 전에는 틱타알릭과 가장 초기 네발동물들의 뼈.
이 시간표에는 세균과 고세균, 서로 다른 진핵 미생물들, 균류, 식물, 그리고 동물의 여러 차례에 걸친 독자적인 육상 진출이 들어 있다. 절지동물 안에서도 한 번이 아니었다. 분자계통학에서는 노래기가 속한 다지류, 곤충이 속한 육각류, 거미가 속한 거미강이 서로 독립적으로 여러 차례 뭍에 올랐다고 본다. 곤충의 조상과 거미의 조상은 같은 선발대가 아니었다. ‘절지동물의 육상 진출’이라는 한마디는 적어도 세 개의 서로 다른 역사를 뭉뚱그린다. 저마다 시기가 있고, 장소가 있고, 경로가 있다.
시간표 속 연대 차이도 어떻게 쟀는지 잘 보아야 한다. 가장 오래된 포자는 약 4억 7천만 년 전 것이다. 전체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식물은 그보다 약 4천만 년 늦다.
그보다 앞선 밀리미터 크기의 조직 조각도 식물 몸체로 친다면, 간격은 약 2천만 년으로 줄어든다. 4천만 년과 2천만 년은 두 배 차이다. 바뀐 것은 오직 ‘무엇을 식물 화석으로 치느냐’다. 1절에서 본 발자국과 뼈의 간격도 이렇게 잰 것이다. 양 끝을 각각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그 사이의 길이가 정해진다.
3 육지라는 공간은 만들어졌다
관다발식물이 나타나기 전에도 대륙 표면은 벌거벗은 암석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네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 기반암과 물리적 풍화로 부서진 암석 조각. 화학적 풍화를 겪은 풍화층.
토양 생성 과정에서 층위를 형성할 수 있는 고토양. 그리고 표면을 덮은 미생물 매트, 지의류를 닮은 군집, 이끼류를 닮은 피복. 여기서는 풍화가 무엇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암석은 공기와 물에 노출되면 변한다. 물리적 풍화는 얼고 녹는 작용, 온도 차이, 마모가 암석을 잘게 부수는 것이다. 화학적 풍화는 물과 물에 녹아 있는 물질이 광물과 반응하여 일부 성분을 녹여 내고 다른 성분을 남기는 것이다. 화학적 풍화가 일어나려면 꼭 식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전혀 없는 행성에서도 물과 암석은 똑같이 반응한다.
차이는 나중에 등장한 뿌리, 균류의 균사, 유기산, 호흡으로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반응의 위치와 강도와 생성물을 바꾸었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사막에서도 이 층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막의 지표에는 흑갈색의 얇은 껍질이 덮여 있다. 남세균과 지의류, 이끼류가 점액으로 모래알을 붙여 만든 것으로, 생물 토양피각이라고 한다. 모래를 붙들고 얼마간의 물을 잡아 둔다. 발로 한 번 밟아 부서뜨리면 다시 자라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초기 육상 식물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쓸모 있는 오늘날의 비교 대상은 숲이 아니라 은화식물 지피다. 이끼와 지의류, 미생물이 지면에 바짝 붙어 펼쳐 놓은 그 층이다.
이 층은 먼지를 가로채고 수분을 유지하며, 광물 입자가 유기산과 균사에 오랫동안 접촉하도록 한다. 관다발식물 이전의 대륙을 ‘매트의 세계’로 그려 보는 이들도 있다. 핵심은 미생물 매트가 생태계 공학자로서 대륙의 풍화와 영양분 순환을 바꾸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식물이 나타나기 전에도 대륙 표면에는 살아 있는 층이 있어 풍화와 영양분의 행방을 바꾸고 있었다. 그 층은 얇고 낮았으며 땅에 붙어 있었다.
그러므로 나중에 관다발식물이 가져온 변화는 ‘없던 것이 생겼다’는 변화가 아니다. 두께와 깊이, 이동하는 물질의 양이 자릿수를 달리할 만큼 바뀐 것이다. 이 점에는 실험으로 직접 확인한 수치도 있다.
오늘날의 우산이끼를 이용해 초기 육상 식물과 균류의 시스템을 모사한 연구가 있다. 식물이 없는 대조군에 비해 식물과 균류가 함께 있을 때 현무암의 칼슘 방출은 약 3~7배, 인 방출은 약 9~13배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연구는 그럴듯한 수사에 제동을 거는 아주 중요한 결과도 함께 내놓았다.
입자 규모의 반응 속도를 영향이 미치는 전체 깊이에 걸쳐 적분하면, 약 0.1미터의 얕은 층에만 몸을 고정한 초기 식물의 총풍화 플럭스는 나중에 뿌리가 약 0.75미터, 혹은 그보다 깊이 뻗은 나무에서 나타나는 값의 10분의 1 이하였을 수 있다. 이 두 수치를 나란히 놓으면 유용한 원칙 하나가 나온다.
국소적인 속도와 지구 전체의 플럭스는 서로 다른 양이다. 어떤 시스템이 접촉면 1제곱센티미터마다 풍화를 몇 배씩 높이더라도, 영향을 미치는 깊이가 고작 10센티미터 정도라면 지구 전체의 총량은 나중의 숲에 한참 못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생물이 풍화를 크게 가속했다’고 할 때는 어느 양을 말하는지 반드시 물어야 한다. 한 과정이 국소적으로 훨씬 빨라졌다고 지구 전체의 총량까지 훨씬 커지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공간 규모를 실제로 바꾼 것은 뿌리가 깊어지는 일이었다.
얕은 헛뿌리는 주로 지표의 몇 센티미터에서 몇십 센티미터까지를 바꾼다. 데본기에 진정한 뿌리계와 나무 형태의 몸체가 차츰 등장하자, 반응의 전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토양의 두께, 공극 구조, 비탈면의 안정성, 지하로 들어가는 유기탄소가 모두 달라졌다. 여기서 인은 두 얼굴을 가진다.
식물과 균근은 잘 녹지 않는 광물 속 인을 이용할 수 있는 인으로 바꾼다. 그중 일부가 지표 유출수에 실려 바다로 나가면, 해양의 생산력과 유기탄소 매몰을 높일 수도 있다.
따라서 같은 ‘광물의 잔여물’이 육지에서는 먼저 생물 자원이 되고, 육지를 떠난 뒤에는 수중 생태계로 들어가는 투입물이 된다. 인의 이 여행은 지금도 계속된다. 농민이 밭에 뿌리는 인산 비료는 대부분 옛 해저에 쌓인 인광석에서 온다. 뿌린 인 가운데 일부는 작물이 흡수하고, 일부는 빗물을 따라 강과 호수로 흘러들어 조류가 대량으로 번성하게 한다. 7절에서 보겠지만, 데본기의 숲도 같은 일을 했을지 모른다.
유기물은 그보다 나중에야 점점 많아진 건축 재료다. 육상 생물이 널리 자리 잡기 전에도 지표에는 이미 자원이 있었다. 빛, 이산화탄소, 물, 암석 속 인과 철과 칼륨 같은 원소가 있었다. 정말 부족했던 것은 현지의 생산자가 끊임없이 보충하고, 표층에서 거듭 순환할 수 있는 유기물 저장고였다.
이 메커니즘은 훗날 퇴적 기록에 거시적인 신호를 남겼다. 약 35억 년에 걸친 육성 퇴적 기록을 종합한 연구에서는, 초기 육상 식물이 등장한 뒤 충적 환경의 이질 퇴적물이 뚜렷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다른 실험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깊은 뿌리를 가진 숲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초기 식물의 유기물만으로도 점토의 응집을 촉진해, 진흙이 강물에서 범람원으로 더 쉽게 가라앉게 할 수 있었다. 응집이란 원래 물에 떠서 흘러가던 작은 입자들이 서로 붙어 큰 덩어리가 되고, 그 덕분에 가라앉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글자 그대로 ‘잔여항이 건축 재료가 되는’ 사례다. 식물의 대사가 남긴 유기물은 본래 생산의 산출물이었다. 그것이 점토 입자가 뭉치는 방식을 바꾸어 더 안정적인 세립질 범람원을 만들었다. 그 고운 입자층은 다시 물과 양분을 더 잘 붙들고 뿌리가 내리기 좋은 새로운 바탕이 되었다.
이 순환의 방향을 보자. 식물이 먼저 진흙의 침강 방식을 바꾸었고, 그렇게 바뀐 진흙은 식물에 더 알맞아졌다. 산출물이 다음 차례의 투입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륙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 공을 모두 생물에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23년의 전 지구 고지형 모델은 대륙에 퇴적물 덮개가 쌓여 뿌리내리는 식물에 맞는 토양이 생길 수 있는지를 지각 구조, 고기후, 침식, 그리고 바다로 물이 빠져나가지 않는 내륙 분지가 좌우한다고 제시했다. 이 연구는 초기 육상 식물의 확장이 한때 척박한 토양 조건에 제한받았다고까지 보았다. 강은 가장 분명한 반례다.
예전에는 ‘식물이 나타난 뒤에야 깊고 굽이치며 하나의 물길로 흐르는 강이 생겼다’고 흔히 썼다. 하지만 식생 이전 시대에도 깊은 하도와 단일 물길의 굽이치는 하도가 있었다. 오늘날 식생이 없는 환경은 물론 화성 모델에서도, 진흙이나 얼음, 그 밖의 메커니즘이 강둑을 뭉쳐 붙드는 힘을 제공하기만 하면 굽이치는 물길이 생기는 데 식생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식물이 실제로 바꾼 것은 발생 확률과 안정성, 이동 속도, 이질 퇴적물의 보존이다. 따라서 더 적절한 것은 양방향 모델이다. 지각 구조와 기후, 대기가 먼저 생존의 경계 조건을 마련한다. 그리고 생물이 들어오면 그 경계 조건 자체를 바꾼다.
4 이 속들은 한 줄의 계단이 아니다
1절의 교과서 속 행렬로 돌아가 보자. 이 물고기들은 세계 곳곳에서 나왔다. 유스테놉테론은 캐나다 퀘벡의 미구아샤에서 나왔다. 해안 절벽에 화석이 워낙 많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고고나수스는 서오스트레일리아의 고고에서 나왔다. 그곳 물고기 화석은 석회암 단괴 속에 갇혀 있어, 산으로 돌을 녹여 내면 입체적인 두개골을 꺼낼 수 있다. 판데리크티스는 라트비아, 틱타알릭은 캐나다 북극권, 아칸토스테가와 이크티오스테가는 그린란드 동부에서 나왔다.
2002년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고인류연구소의 주민 등은 닝샤의 후기 데본기 지층에서 네발동물의 아래턱뼈 하나를 찾았다. 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데본기 네발동물 화석으로, 당시 네발동물이 오늘날 중국이 놓인 옛 대륙에 이미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아래턱 하나가 이 동물들의 지도를 지구 반 바퀴만큼 동쪽으로 넓혔다.
유스테놉테론의 가슴지느러미 안에는 이미 위팔뼈, 노뼈, 자뼈에 대응하는 몸쪽 뼈들이 있었다. 하지만 먼 쪽은 여전히 지느러미 구조와 지느러미줄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동물이 중요한 까닭은 ‘이미 육지에 진출하고 있었다’는 데 있지 않다. 팔다리의 몸쪽 골격을 이루는 기본 재료가 완전히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 안에 벌써 있었다는 데 있다.
고고나수스는 특히 좋은 모자이크를 보여 준다. 두개골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원시적인 반면, 분수공 주변과 가슴지느러미의 뼈대는 예상보다 훨씬 네발동물에 가까운 특징을 지녔다. 형질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나씩 덧붙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판데리크티스는 몸이 낮고 납작하며, 눈은 등 쪽으로 치우쳐 있다. 가슴지느러미 안에는 이미 굵고 튼튼한 뼈들이 연이어 자리 잡았다. 지느러미 먼 쪽의 뼈에서는 훗날 손목과 발가락 부위에서 나타나는 위치 관계의 일부가 보인다. 하지만 아직 지느러미다.
틱타알릭은 비늘과 아가미, 지느러미줄기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낮고 납작한 두개골, 등 쪽의 눈, 눈에 띄게 커진 갈비뼈를 갖추었다. 어깨띠와 두개골이 기능적으로 분리되면서 생긴 ‘목’도 있었다.
목은 따로 짚어야 한다. 물고기는 두개골과 어깨띠가 이어져 있어 고개를 돌릴 수 없다. 다른 쪽을 보려면 몸 전체를 돌려야 한다. 어깨띠와 두개골이 떨어지면 머리가 따로 움직일 수 있다. 다만 틱타알릭의 먼 쪽 뼈들은 여전히 지느러미 안에 싸여 있고, 바깥 가장자리에는 지느러미줄기가 있었다. 실제로 서로 떨어져 나온 발가락은 없었다.
그러니 ‘손목 같은 뼈’를 아직 손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2014년 연구에서는 틱타알릭의 골반이 처음 알려진 것보다 유난히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정한 발가락 달린 팔다리가 나오기 전에, 뒷다리가 주도하는 추진 능력이 이미 강해지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 골반에는 여전히 네발동물식의 완전한 엉치뼈 연결이 없었다.
2020년에는 엘피스토스테게의 온전한 표본 하나가 지느러미 안에 이미 여러 발가락에 대응하는 일련의 골격 요소가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도 지느러미줄기가 여전히 이를 덮고 있었다. ‘발가락의 골격 배치가 먼저 지느러미 안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핵심 자료다. ‘지느러미가 갑자기 발이 되었다’는 그림은 한층 더 맞지 않게 된다.
아칸토스테가의 이야기 자체가 다시 뒤져 찾은 이야기다. 1970년 케임브리지의 지질학과 학생 하나가 그린란드 동부를 조사하다 눈에 띈 뼈 화석 몇 점을 챙겨 와 박물관 서랍에 넣어 두었다.
십여 년 뒤 케임브리지의 고생물학자 클라크가 그의 야외 조사 노트를 읽었다. 1987년 그녀는 노트를 따라 조사대를 이끌고 그 비탈을 다시 찾아가, 온전한 아칸토스테가들을 발굴했다. 1990년 그녀와 동료들이 아칸토스테가의 앞다리를 발표했다. 손가락이 여덟 개였다.
아칸토스테가에게는 이미 발가락 여덟 개가 달린 팔다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헤엄치기 위한 꼬리 구조와 오랫동안 체중을 지탱하기에는 그다지 알맞지 않은 팔다리 등, 물속 생활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발가락이 있다’와 ‘실제로 육지에서 잘 걷는다’가 아주 선명하게 갈라진다. 발가락은 육상 생활 능력의 동의어가 아니다.
게다가 다섯이 아니라 여덟이다. 다섯이라는 수는 나중에야 굳어졌다. 아칸토스테가는 여덟, 이크티오스테가는 일곱, 러시아의 툴레르페톤은 여섯으로 발가락 수가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네발동물의 손가락은 다섯 개’라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 아니라, 나중에 하나로 모인 결과다.
그런데 다섯으로 모인 뒤에는 이 수가 몹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네발동물에서 조상의 상태는 다섯이다. 이 동물들 가운데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이크티오스테가였다.
1932년 스웨덴의 한 고생물학자가 그린란드 동부에서 가져온 화석을 바탕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동물은 ‘가장 오래된 네발동물’의 표준적인 모습이었다. 박물관 복원도 속에서는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물가에 서 있었다. 이크티오스테가의 몸통과 갈비뼈는 아칸토스테가보다 튼튼하다.
하지만 관절을 3차원으로 복원한 결과, 이 동물 역시 오늘날의 도롱뇽처럼 발을 내디디지는 못했다. 그러니 실제 모습은 한 줄의 계단이 아니라 형질 행렬이다.
이 특징들을 펼쳐 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형질들이 모두 한꺼번에 변한 것은 아니며, 그 선후관계도 기능에 대한 직관을 따르지 않는다. 직관대로라면 ‘육지에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발가락, 체중을 견디는 골반, 목, 공기 호흡이 한꺼번에 갖추어지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기록에서는 목이 발가락보다 먼저고, 발가락뼈의 배치가 지느러미줄기의 소실보다 먼저다. 골반의 강화가 엉치뼈와의 연결보다 앞서고, 발가락이 생긴 뒤에야 효율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계통수에서 더 안전한 표현은 ‘이 속들이 네발동물 줄기군의 서로 다른 가지에 분포한다’는 것이다. ‘유스테놉테론이 판데리크티스가 되고, 판데리크티스가 틱타알릭이 되었다’가 아니다.
대부분은 곁가지에서 얻은 표본이며, 살았던 시기가 서로 겹칠 수도 있다. 틱타알릭은 지도를 보고 찾아냈다.
연구팀은 먼저 계통발생상 비어 있는 구간의 연대와 얕은 물의 척추동물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퇴적 환경을 바탕으로 탐색 지도를 그렸다. 목표는 잘 드러난 후기 데본기의 하천 및 삼각주 퇴적암이었다. 엘즈미어섬에는 마침 그런 노두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본격적인 야외 조사는 1999년 무렵에 시작되었고, 핵심 골격은 2004년에 발견되어 2006년에 발표되었다. 시카고대학교의 슈빈과 필라델피아 자연과학원의 데슐러가 이끌었다. 그들은 북극의 얼어붙은 땅에서 네 번의 여름을 뒤진 끝에, 지층 밖으로 드러난 납작한 두개골 하나를 보았다.
이름은 현지 이누이트 원로들에게 부탁했다. 이누이트어로 얕은 물에 사는 커다란 민물고기를 뜻한다. 이것이 교과서에 실릴 만한 사례인 까닭은 바로 ‘동물이 틀림없이 뭍에 오를 줄 알았으니 육지에 오르는 동물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동물을 찾았다고 해서 훗날 네발동물의 직계 조상이었다는 사실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입증된 것은 지도를 제대로 그렸다는 점이다. 그 시대, 그런 암상에서 정말 이런 동물을 찾을 수 있었다. 슈빈은 나중에 이 경험을 베스트셀러로 썼다.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당신 안의 물고기》다. 틱타알릭에서 출발해 사람의 손과 폐, 귀 속에 남아 있는 물고기의 옛 부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다.
이제 1절로 돌아가자. 그 발자국들이 인정된다면, 물고기에서 네발동물로의 전환이 실제로 일어난 시점은 발자국의 연대보다 앞서야 한다.
그렇다면 원래 몸 화석을 놓고 배열한 지층상의 순서는 일종의 착시일 수 있다. 그렇다고 틱타알릭이 전이형으로서 갖는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계통발생에서 전이형이란 조상 형질과 파생 형질을 모자이크처럼 함께 간직한 계통을 뜻한다. 그로부터 파생된 무리가 아직 나타나기 전 시대에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더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한 곁가지는 더 파생된 후손 계통과 얼마든지 같은 시대에 살 수 있다. 오늘날의 폐어가 바로 눈앞의 예다. 오래된 특징을 많이 간직한 채 우리와 동시대에 살아 있다.
그러므로 그 발자국들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틱타알릭 같은 화석은 물고기 지느러미가 팔다리로 바뀌는 과정의 여러 형태적 단계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 동물들은 발가락 달린 네발동물이 이미 존재한 뒤에 살았다.
202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장 오래된 파충류 발자국을 연구한 논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추산했다. 오늘날 모든 네발동물의 가장 최근 공통 조상은 대략 엘피스토스테게, 틱타알릭과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어쩌면 조금 더 빨랐을 수도 있다. 이것이 힘을 실어 주는 것은 길게 이어지는 유령 계통과 공존이지, 가지런히 교대하는 한 줄의 조상 행렬이 아니다.
5 팔다리를 만드는 도구는 팔다리보다 오래되었다
물고기의 쌍지느러미와 네발동물의 팔다리는 많은 공통 유전자의 조절을 받는다. 2021년의 폐어 유전체 연구는 특히 중요하다. 오스트레일리아폐어의 유전체는 사람의 약 열네 배로, 당시 해독된 동물 유전체 중 가장 컸다. 안에는 반복되는 조각들이 빼곡했다.
그 연구에서는 폐어의 지느러미 먼 쪽에 이미 여러 ‘팔다리 같은’ 발현 양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도구는 이미 있었다’를 ‘물고기 유전자에 손가락이 이미 쓰여 있었다’로 격상시킬 수는 없다.
2025년의 기능 실험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네발동물이 팔다리 끝부분에 쓰는 한 조절 영역이, 물고기에서 원래 총배설강 등의 구조에 쓰이던 옛 네트워크로부터 통째로 차출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통째로 차출’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보아야 한다.
다른 곳의 발생에 이미 관여하던 조절 영역을 다른 부위, 다른 시기의 발생에도 쓰게 되었다는 뜻이다. 옮겨진 것은 쓰임이지, DNA 조각이 몸의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물리적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다.
2016년 시카고대학교에서는 제브라피시로 실험했다. 배아 속 세포에 표지를 붙여 계속 추적했더니, 지느러미 끝의 가느다란 지느러미줄기로 자라는 세포와 네발동물 배아에서 손가락으로 자라는 세포가 같은 부류의 유전자 발현 영역에서 나왔다. 물고기의 지느러미줄기와 우리의 손가락은 같은 세포 무리가 향한 두 갈래의 행선지다.
부품은 오래되었다. 배선의 쓰임이 새롭다. 변화가 언제나 한 가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조절 관계를 한 덩어리로 다시 쓸 수도 있다. 5편과 8편에서도 비슷한 모양을 만났다.
5편에서는 도구상자가 체제보다 먼저라고 했고, 8편에서는 부품이 먼저 있고 쓰임이 달라진다고 했다. 여기서는 그 메커니즘 하나가 구체적으로 보인다. 조절 영역을 통째로 차출하는 것이다. 작은 개조를 배제하는 말은 아니다. 새 쓰임을 위해 모든 배선을 처음부터 만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팔다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는 물고기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네발동물이 벌써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 뜻은 그 유전자들이 당시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은 왜 나타났을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고, 저마다 어려운 점도 있다.
얕은 물과 복잡한 바닥. 수위가 낮고 식물 부스러기가 쌓인 복잡한 바닥에서는, 부속지로 몸을 받치고 방향을 돌릴 수 있는 몸이 유리하다. 어려운 점은 이런 특징이 온전히 물속 생활에만 쓰여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적인 건조. 물이 간헐적으로 마르면 공기를 호흡하고 물웅덩이 사이를 옮겨 다니는 능력이 선택되었을 수 있다. 어려운 점은 ‘저산소를 견딘다’와 ‘지표에서 체중을 받치며 걷는다’가 서로 다른 두 적응의 축이라는 것이다.
물속의 저산소. 물고기에게 폐와 공기 호흡은 육상 운동보다 먼저 생길 수 있다. 다만 이 가설은 발가락과 골반보다는 호흡을 더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포식자 피하기. 잠깐 물 밖으로 나오면 어떤 수중 포식자에게 잡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지표는 동시에 수분 손실, 체중 지탱, 체온 같은 새로운 문제를 들여온다.
육지의 먹이 쫓기. 네발동물이 나타나기 전부터 육지에는 이미 식물과 균류, 절지동물이라는 자원이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초기 네발동물의 이빨과 위 내용물만으로 어떤 형태적 혁신이 뭍에서의 사냥 때문에 일어났다고 독립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시각의 기회. 물속에서 공기 쪽으로 바라보면 유효 시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제시한 연구가 있다. 물속에서는 몇 미터를 보지만, 공기 중에서는 수십 미터에서 백여 미터까지 볼 수 있다. 또 연구자들은 진정한 육상 네발동물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눈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눈확 크기는 약 세 배가 되었고, 눈은 머리 양옆에서 정수리 쪽으로 옮겨 갔다. 오늘날 물속에 엎드려 눈만 내놓은 악어와 같다.
눈이 커진 것은 공기 중에서 멀리 볼 수 있어야 그 비용을 건지기 때문이다. 물속에서는 아무리 눈이 커도 그렇게 멀리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동물이 아직 물속에 있을 때 일어났다. 이 역시 ‘능력이 용도보다 앞선’ 사례다. 그리고 그 방향은 바로 물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쪽이었다.
이 가설의 장점은 수치로 다룰 수 있다는 데 있다. 물의 탁도와 빛의 감쇠가 주어지면 유효 시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어려운 점은 다른 가설들과 같다. 눈은 다른 이유로도 커질 수 있다. 이를테면 탁한 물에서 사냥하기 위해서다. 이 가설들이 공통으로 부딪히는 가장 큰 난점은 역사적 인과관계를 되풀이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형태가 얕은 물에서의 기동성, 호흡, 고개를 들어 살피는 일, 잠깐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을 한꺼번에 개선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뼈만으로는 맨 처음 어떤 선택압이 작용했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어려운 까닭은 당시 이 압력들이 동시에 존재했고, 형태에 요구하는 바도 서로 겹쳤기 때문이다. 뼈 하나에는 ‘처음에는 주로 어느 일 때문에 선택되었는지’가 기록되지 않는다.
가장 신중한 서술은 이렇다. 여러 수중 생태 압력이 먼저 ‘지표에서도 쓸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냈고, 그 뒤 이 능력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새로 조합되었다.
6 모든 해법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육지가 몸에 던지는 문제는 구체적이며, 어느 해법도 공짜가 아니다. 수분 손실. 공기의 수증기압은 대개 조직 내부보다 훨씬 낮으므로, 드러난 축축한 표면에서는 어디서나 물이 계속 증발한다. 식물의 해법은 큐티클층과 왁스질이고, 동물의 해법은 각질화된 체표나 외골격이다.
그런데 같은 표면에서 기체 교환과 수분 손실 방지는 서로 충돌한다. 식물의 기공은 바로 이 충돌의 산물이다. 이산화탄소가 들어오려면 열려야 하고, 열리면 물이 빠져나간다.
이 절충의 값은 계산할 수 있다. 식물은 탄소 원자 하나를 고정할 때마다 물 분자 수백 개를 잃는다. 큰 나무 한 그루는 맑은 여름날 하루에 물 수백 리터를 뿌리에서 잎으로 올려 보내고, 다시 기공을 통해 공기 중으로 내보낼 수 있다. 숲 위의 구름도 상당수는 이렇게 생긴다.
이산화탄소만 들여보내고 물은 못 나가게 할 방법은 없다. 둘이 같은 구멍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상 식물의 물 살림 전체가 이 구멍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언제 열 것인가, 얼마나 크게 열 것인가, 얼마나 오래 열어 둘 것인가.
이 조절에는 감지가 필요하다. 수분을 느끼고, 빛을 느끼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느껴야 한다. 단순한 구멍 하나 뒤에 제어 시스템 전체가 매달려 있다. 이 시스템은 나중에야 생겼다. 가장 초기의 육상 식물은 기공을 조절하는 능력이 오늘날의 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따라서 기공은 단순히 공기를 들이는 장치가 아니라, 조절 가능한 절충 장치다. 중력과 지탱. 물속의 부력이 사라지면 몸 자체의 무게를 구조가 감당해야 한다. 식물의 해법은 목질화와 관다발 조직이다. 이 둘은 몸을 지탱하는 일과 먼 거리까지 물을 나르는 일을 함께 해결했다.
동물의 해법은 뼈와 근육의 재조직이다.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발가락이 있다고 체중을 효율적으로 받치며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팔다리가 있다’에서 ‘걸을 수 있다’까지는 골반과 척추, 근육이 붙는 방식 전반을 다시 바꾸어야 한다. 물고기 한 마리를 육지에 놓으면 지느러미가 있어도 제 몸을 받치지 못한다.
기체 교환 자체. 산소는 물속보다 공기 중에서 훨씬 빨리 확산한다. 그러므로 산소 공급이라는 관점에서는 공기가 더 좋은 매질이다. 진짜 문제는 교환 표면이 축축해야 하는데, 축축한 표면에서는 물이 빠져나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육상 생물의 호흡 기관은 대체로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다. 폐도 기관계도 교환 표면을 몸속에 감춘다.
그러려면 환기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공기를 능동적으로 들여보냈다가 내보내야 한다. 아가미에도 물이 지나가야 하며, 많은 물고기는 물을 능동적으로 펌프질한다. 공기를 환기하는 일 역시 에너지를 쓰고, 근육과 신경 제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육지에서는 호흡이 더 쉽다’는 말은 화학적인 면에서만 성립한다. 기계적인 면에서는 그 나름의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호흡 방식도 몸의 크기를 제한한다. 곤충은 기관으로 공기를 조직에 보내며, 확산뿐 아니라 능동적인 환기도 이용한다. 몸이 커지면 공급 거리와 관이 차지하는 공간이 제약이 된다. 다만 산소 공급만이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편에서는 지금보다 산소가 많았던 석탄기를 다룬다. 그때 잠자리의 먼 친척 중에는 날개폭이 70센티미터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두 가지를 더 짚어 두자. 온도. 물은 열용량이 커서 온도가 천천히 변한다. 반면 지표의 일교차는 물속의 수십 배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도마뱀은 아침에 먼저 돌 위에 엎드려 한동안 볕을 쬐고, 몸이 따뜻해져야 달릴 수 있다. 초기 네발동물도 아마 해를 따라 사는 법을 익혀야 했을 것이다.
자외선. 물은 파장이 짧은 자외선의 대부분을 흡수하지만, 지표에는 그 장벽이 없다. 4편에서는 오존의 두 임계값을 다루었다. 지표를 자외선에서 지켜 주는 방어막은 산소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뒤에야 마련되었다.
번식. 헤엄치는 정자를 필요로 하는 수정 방식은 번식을 얇은 물막에 묶어 둔다. 식물 쪽에서는 나중에 씨앗과 꽃가루가, 동물 쪽에서는 나중에 양막란이 등장했다. 가장 오래된 씨앗은 데본기 말에 나타났고, 양막란은 그보다 더 늦었다. 모두 이번 편에서 다루는 시기의 끝자락이거나 그 이후다.
다시 말해 이번 편의 시간대에는, 뭍에 오른 생물 대부분이 번식하려면 여전히 물가로 돌아가야 했다. 감각계도 다시 짜야 했는데, 이 점은 흔히 놓친다. 빛은 물속보다 공기 중에서 훨씬 덜 산란하고 덜 약해진다. 소리의 전파 속도와 임피던스도 공기와 물에서 완전히 다르다.
귀가 좋은 예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몸을 그대로 통과해 속귀까지 전해질 수 있다. 공기 중에서는 소리가 몸에 부딪히면 대부분 튕겨 나가므로, 공기의 미약한 진동을 증폭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가운데귀에 있는 등자뼈라는 작은 뼈는, 물고기에게는 원래 턱과 아가미뚜껑을 받치는 뼈였다. 초기 네발동물이 그 용도를 옮겼고, 차츰 소리를 전하는 귓속뼈가 되었다.
그러므로 같은 감각 기관도 두 매질에서는 유효 거리, 방향을 구분하는 능력, 신호 대 잡음비를 모두 다시 계산해야 한다. 다시 계산한 결과가 늘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앞 절의 시거리 사례는 좋아지는 방향이었다. 이번 편에서 기억할 것은, 이런 해법 자체가 다시 새로운 의존을 만든다는 점이다.
큐티클층은 수분 손실을 줄이지만 몸 표면 전체의 물질 교환 능력도 줄인다. 목질화는 지탱할 힘을 주지만, 분해하기 어려운 재료를 만들어 낸다. 교환 표면을 몸속에 감추면 건조 문제를 해결하지만, 환기 메커니즘 한 벌이 필요해진다.
이것은 앞선 여러 편에서 세운 명제와 같은 모양이다. 수선은 잔여항을 없애지 않는다. 잔여항의 자리를 옮긴다. 3편에서는 그 원형을 보았다. 막 한 겹이 희석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삼투압을 만들어 냈다. 육상 진출은 같은 모양이 다른 규모에서 되풀이되는 일이다.
물리적 제약을 하나 해결할 때마다, 계속 유지해야 하는 구조가 한 벌씩 늘어난다. 그리고 그 구조 자체가 다음 차례의 제약 조건이 된다. 리그닌은 여기서 가장 깔끔한 예다. 몸을 지탱하고 물을 나르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식물 조직을 더 분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당시 어떤 생물이 얼마나 잘 분해할 수 있었는지는 오늘 남은 석탄층만 보고 거꾸로 단정할 수 없다.
리그닌은 구조가 불규칙하고 정해진 반복 단위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효소는 규칙적인 구조에 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오늘날의 제지 공장에서도 목재 펄프에서 리그닌을 제거하려면 화학 약품을 많이 써야 한다.
값싼 종이를 오래 두면 누렇게 변하고 잘 부스러지는 데에는, 남은 리그닌이 서서히 산화하는 것도 한몫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일이 논쟁 전체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질문은 이것이다. 리그닌이 잘 분해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왜 석탄기에 그토록 많은 탄소가 묻혔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해법의 잔여물’은 어떻게 다른 생물의 자원이 되었을까. 왜 일부는 분해되고 일부는 땅속에 묻혔을까. 다음 편에서 그 질문을 이어 간다.
7 첫 번째 숲
데본기의 육지에서 변화가 가장 컸던 때는 중기와 후기였다. 나무가 나타났다.
2019년 미국 뉴욕주 카이로 마을 근처의 버려진 채석장 바닥에서, 연구자들이 약 3억 8천6백만 년 전 숲의 흔적을 드러냈다. 수천 제곱미터의 암반 위에 나무 뿌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떤 나무는 뿌리가 사방으로 십여 미터 뻗었고, 곁뿌리가 갈라지고 또 갈라져 이미 오늘날의 나무와 무척 닮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숲 가운데 하나다.
멀지 않은 길보아에서는 19세기의 홍수가 강둑을 파헤치며 거의 같은 시대의 화석 나무 그루터기들을 드러낸 적이 있다. 1920년대 뉴욕시가 그곳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또 한 무더기가 나왔다. 2010년 댐을 보수할 때 인부들이 위쪽 암석층을 걷어 내자, 옛 숲의 바닥 전체가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그곳이 다시 덮이기 전에 서둘러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위치를 지도로 그렸다.
뉴욕주의 그 숲에는 생김새가 더 기묘한 나무도 있었다. 2007년 연구자들이 온전한 수관을 찾아냈다. 몇 미터 높이의 맨줄기 하나가 솟고, 꼭대기에는 솔 같은 가지들이 한 다발 달려 있다. 잎은 없고, 가지는 하나씩 떨어진다. 거대한 야자수 같기도 하고, 거꾸로 꽂아 놓은 빗자루 같기도 하다.
중국에도 같은 시대의 숲이 있다. 2019년 베이징대학교 등의 연구자들은 안후이성 신항의 채석장에서 약 3억 6천5백만 년 전의 석송 숲을 알아보았다. 드러난 면적은 적어도 25만 제곱미터였다. 암반 위에는 나무줄기 밑동들이 원래 자리 그대로 서 있었고,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7~8미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숲이다.
그 무렵 가장 성공한 나무는 아르카이옵테리스였다. 키가 20미터를 넘을 수 있었고, 목재는 이미 오늘날의 소나무나 측백나무류와 비슷했다. 하지만 잎은 양치식물을 닮았고 포자로 번식했다. 데본기 말에는 북아메리카에서 중국까지, 거의 모든 대륙에 살았다.
나무가 가져온 것은 깊이였다. 뿌리가 얕은 식물은 지표의 몇 센티미터에서 십여 센티미터 깊이의 흙밖에 바꾸지 못한다. 나무뿌리는 풍화의 전선을 1미터, 몇 미터 아래로 밀어 내렸다.
토양이 두꺼워지고 층이 생겼으며, 지하에는 유기탄소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데본기 대기의 이산화탄소는 뚜렷이 줄었다. 많은 연구자는 숲의 확장이 암석의 풍화를 가속하여, 대기 속 탄소를 대량으로 토양과 해양 퇴적물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본다.
숲을 바다의 재난과 연결하는 가설도 있다. 뿌리계가 풍화를 가속하고 인 같은 양분을 얕은 바다로 대량으로 흘려보내면 조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죽은 조류가 분해되며 해저의 산소를 다 써 버린다. 후기 데본기에 여러 차례 일어난 해양의 산소 부족과 멸종에는 이 과정도 한몫했을 수 있다.
이 사슬은 고리마다 증거가 있고, 고리마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14편의 페름기 말에서 다시 보겠지만, 대멸종의 원인은 대개 하나가 아니다.
숲은 불도 가져왔다. 들불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탈 수 있는 식물과 충분한 산소다. 영국 웨일스 접경 지역의 4억여 년 전 지층에서는 이미 가장 오래된 숯이 발견되었다. 그때 육지에 탈 것이 있었고 공기 중 산소도 불이 붙기에 충분했다는 뜻이다. 데본기 후기로 가면 숯은 점점 흔해진다.
흙 속도 북적이기 시작했다. 데본기에 이르면 흙 속의 작은 절지동물은 균을 먹는 것, 썩는 식물을 먹는 것으로 나뉘었고, 이들을 잡아먹는 작은 거미강 동물도 있었다. 토양 먹이그물이 모습을 갖추었다. 죽은 식물, 균사, 분변이 다음 생물들의 밥그릇이 되었다.
데본기는 멸종으로 끝났다. 바다의 판피어는 거의 모두 사라졌고, 살아남은 척추동물은 전반적으로 작아졌다. 몸집 작은 물고기와 네발동물이 우세해졌다.
멸종 뒤에는 네발동물 화석이 다시 1천만 년 넘게 거의 텅 빈다. 고생물학자들은 미국 학자 로머의 이름을 따 이 구간을 ‘로머의 공백’이라 부른다. 2016년 무렵 스코틀랜드 남부 접경 지역의 하천과 호수 퇴적물에서 이 시기의 네발동물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공백은 비로소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하나의 체다. 그 시기 네발동물은 아마 줄곧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죽은 곳이 우리가 표본을 채집할 수 있는 지층으로 남는 경우가 드물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육상 진출은 10편에서 말한 층위 전환에 해당할까. 그때의 판정 기준은 원래 저마다 복제하던 단위들이 새롭고 통합적으로 번식하는 상위 개체 안에 묶였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뭍에 오른 물고기는 여전히 한 마리 한 마리가 따로 번식하는 물고기이고, 뭍에 오른 식물도 여전히 한 포기 한 포기의 식물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육상 진출은 층위를 바꾸지 않았다.
바뀐 것은 다른 것이었다. 행성 하나의 표층이다. 태양에너지의 고정이 물속에서 대륙으로 넓어졌다. 유기탄소가 토양과 범람원에 머물기 시작했다.
광물성 양분은 뿌리와 균사, 낙엽을 거쳐 순환하며, 더는 암석에서 바다로 곧장 흘러가기만 하지 않았다. 먼저 온 생물이 살아 있는 동안 뒤에 올 생물이 마주할 환경을 바꾸었다. 그 변화는 이들이 죽은 뒤에도 남았다. 토양 한 층은 그것을 만든 식물이 죽고 나서도 수천 년 동안 존속할 수 있다.
층위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과 행성 하나의 표층을 다시 썼다는 것은 동시에 참이다. 이름표를 붙이는 것보다 어느 변수가 바뀌었는지 분명히 하는 편이 더 쓸모 있다.
8 잔여항이 건축 재료가 되다
제목에서는 육상 진출이 한 환경의 잔여항을 건축 재료로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데본기의 강가에서는 거의 글자 그대로의 뜻이다.
3절에서 그 실험을 다루었다. 초기 식물이 내보낸 유기물은 강물 속 작은 점토 입자들을 뭉치게 해 범람원에 가라앉힐 수 있었다. 식물의 대사가 남긴 것은 원래 생산의 부산물이었는데, 그냥 흘러가 버릴 진흙을 붙잡아 두었다.
남은 고운 진흙은 물과 양분을 더 잘 머금고 뿌리내리기에도 좋아, 더 많은 식물이 자라게 했다. 늘어난 식물은 다시 더 많은 유기물을 내보냈다. 죽은 세포와 낙엽은 토양 유기물이 되고, 균사는 광물을 파고들어 양분을 풀어 놓았다. 썩은 뿌리는 공극과 탄소를 남겼고, 미생물 매트가 분비한 점액은 모래알을 붙들었다. 산출물이 다음 차례의 투입물이 되었다.
4편의 산소도 배출물이었지만, 순환은 달랐다. 산소를 만드는 세균은 산소를 폐기물로 내보냈고, 그것은 대기와 바다를 다시 썼다. 그렇다고 산소 만들기가 더 쉬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산소를 만드는 세포에 골칫거리가 늘었다. 산소가 일으키는 손상을 없애기 위해 전용 효소를 만들어야 했다.
육상 진출의 이런 순환에는 되먹임이 있다. 한 번 시작되면 스스로 강화된다. 35억 년의 육성 퇴적물을 종합한 연구가 측정한 것이 바로 이 계단이다. 강가의 이질 퇴적물은 초기 육상 식물이 등장한 뒤 뚜렷하게 늘었고, 다시는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다윈이 마지막으로 쓴 책은 지렁이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집 정원과 근처 밭에서 수십 년 동안 관찰하고, 지렁이가 내놓은 분변토의 양을 쟀다. 지렁이는 해마다 지하의 고운 흙을 지표로 올려 보냈다. 그 양은 땅 위의 돌과 고대 로마 유적을 서서히 흙 속에 묻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떤 생물이 먹고 배설하면, 배설한 것이 다음 흙층이 된다. 생태학자들은 나중에 이런 생물에 생태계 공학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장 흔히 드는 예는 댐을 짓는 비버다. 댐 하나가 개울이 흐르는 골짜기 전체를 다시 쓴다.
생명이 육지를 만든 것은 아니다. 대륙의 지형과 암석, 물, 기후, 퇴적 분지는 원래 지구가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2023년의 그 고지형 모델은 식물이 뿌리내릴 흙이 충분한지를 분지와 기후가 먼저 정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먼저 경계 조건이 있고, 생물이 들어오면 그 경계 조건이 바뀌기 시작한다.
뭍에 오른 결과는 오늘날에도 보인다. 2018년 전 세계 생물량을 집계한 연구에 따르면, 육상 식물은 지구 전체 생물량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알려진 종도 대부분 육지에 산다. 4억여 년 전 물가에 깔려 있던 높이 몇 센티미터의 초록 융단이 자라, 오늘날 이 행성의 살아 있는 물질에서 압도적인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의 것만 셈에 넣고, 선 밖의 것은 빼놓는다. 선은 사람이 그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일련의 판정 기준이다. 자연이 그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막 한 겹이다.
이번 편의 선은 물가다. 한쪽에서는 살 수 있고, 다른 쪽에서는 살 수 없다. 자연이 그은 선이지만, 그 선을 넘어간 생물들이 줄곧 다시 긋는다. 뭍에 오른 무리마다 선을 조금씩 육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구축된 틀이 담아내지 못하면서 없애 버리지도 못하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 부른다. 이번 편의 잔여항은 순서다. 1절의 그 발자국들이 인정된다면, 뼈만으로 세운 선후관계가 곧 형질을 얻은 선후관계는 아니다. 전이형이라 불리는 화석들은 정작 자신이 기록하지 못한 그 구간보다 뒤에 놓인다. 화석들은 줄곧 박물관 서랍 속에 누워 있었고, 100년도 넘게 연구되었다. 문제는 두 개의 체에 있었다.
발자국에는 축축하면서도 너무 깊지 않은 진흙 표면이 필요하고, 다음 퇴적층이 재빨리 덮어 주어야 한다. 뼈에는 물속의 퇴적 중심지나, 그 밖에 사체가 흩어지지 않게 해 줄 곳이 필요하다.
두 곳은 대개 같은 곳이 아니다. 동물 한 마리가 두 곳을 모두 오가며, 한 곳에는 발자국을 남기고 다른 곳에는 뼈를 남길 수 있다. 그 뼈는 다른 체로 들어갔고, 그 체의 입구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판정 기준은 아직도 거르고 있다. 그 발자국들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워 놓은 순서는 여전히 두 체에서 한 구간씩 꺼내 이어 붙인 것이다.
관련 연구와 사실 확인 자료
- Nature (2025) · Co-option of an ancestral cloacal regulatory landscape during digit evolution
- Westneat et al. (2003) · Tracheal respiration in insects visualized with synchrotron X-ray imaging
- Nelsen et al. (2016) · Delayed fungal evolution did not cause the Paleozoic peak in coal production
- Prototaxites taiti · Study published in 2026 after a 2025 pre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