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숲에서 사슴 한 마리가 죽었다
숲에서 사슴 한 마리가 죽었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며칠 안에 사체가 썩기 시작한다. 까마귀와 여우, 딱정벌레가 조금씩 몸을 해체하고, 뼈는 이곳저곳으로 끌려간다. 몇 달이 지나면 땅 위에는 흩어진 뼈 몇 개만 남는다. 햇볕과 비에 그대로 노출된 뼈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표면에 가느다란 실금이 생기고, 그 금을 따라 한 겹씩 벗겨지다가, 마침내 조각조각 부서진다.
이 과정을 해마다 지켜본 사람이 있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베어런스마이어는 1975년부터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초원에서 죽은 누와 얼룩말, 코끼리의 뼈에 번호를 붙였다. 몇 년마다 돌아와 다시 살피기를 40년 넘게 계속했다.
그녀는 뼈의 풍화 정도를 여섯 단계로 나누었다. 그 초원에서 지표에 드러난 뼈는 대개 10~15년이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파편이 된다. 같은 뼈도 하늘을 향해 햇볕을 받는 쪽이 땅에 닿은 쪽보다 빨리 풍화되는 경우가 많다.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뼈는 탁 트인 곳의 뼈보다 더디게 삭는다. 뼈의 운명을 따지려면 어느 면이 위를 향했는지까지 셈에 넣어야 한다.
그러니 지표에 놓인 골격에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십수 년이다. 숲과 초원에서 해마다 죽는 동물은 거의 모두 이 길을 간다.
바다 밑도 피난처는 아니다. 고래가 죽어 심해로 가라앉으면 상어와 먹장어, 게가 먼저 살을 먹어 치운다. 뒤이어 작은 동물들이 떼 지어 뼈에 터를 잡고 수십 년을 산다.
2002년에는 미국 몬터레이만의 심해에서 고래 뼈만 먹고 사는 벌레 무리까지 발견되었다. 입도 소화관도 없는 이 벌레는 뿌리 같은 조직을 뼈에 박고 산을 분비해 뼈를 녹인다. 그런 다음 몸속 세균의 도움으로 뼈에 든 콜라겐과 지방을 소화한다. 화석은 결코 보통의 결과가 아니다. 화석은 예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구학자들의 추산으로는 지금껏 태어난 사람을 모두 합하면 천억 명이 넘는다. 하지만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와 그 조상의 화석은 전 세계 것을 다 모아도 수천 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 대부분은 이 하나, 턱뼈 한 조각이다. 이 글에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 예외는 어떤 규칙에 따라 골라지는가.
화석이 되려면 우선 그 십수 년 안에 묻혀야 한다. 홍수가 실어 온 토사에 덮여도 되고, 산사태에 묻혀도 되고, 호수나 강에 빠져도 된다. 대개의 숲 바닥에는 그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이 일련의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을 화석생성론, 곧 타포노미라고 한다. 1940년 소련의 고생물학자 예프레모프가 붙인 이름으로, ‘매장의 법칙’이라는 뜻이다. 그는 몽골 고비 사막에서 공룡을 발굴했고, 나중에는 소련에서 가장 이름난 SF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장편소설 『안드로메다 성운』을 썼다.
이것은 첫 관문일 뿐이다. 묻힌 뒤에도 관문은 줄줄이 이어진다.
초기의 화학적 환경은 뼈가 계속 녹을지, 광물로 치환되어 고정될지를 결정한다. 공극수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산성도는 어떤지, 산소는 얼마나 있는지, 주변의 미생물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녹아 없어질지 남을지를 가른다. 이 단계는 화학 반응답게 빠르다. 흔히 몇 년에서 몇십 년이면 된다.
더 깊이 내려가면 압력이 뼈를 납작하게 누른다. 일찍 광물화된 것은 입체 구조를 지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얇은 한 장이 된다. 더 깊이 묻히면 지열이 달구면서 광물과 남은 유기물을 바꾸어 놓는다.
그다음에는 가장 큰 행운이 필요한 단계가 기다린다. 다시 지표로 돌아와야 한다. 지하 10킬로미터에 영원히 묻혀 있는 화석은 우리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퇴적물 대부분의 운명은 그대로 땅 밑에 묻혀 있는 것이다.
지표로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파괴가 시작된다. 산화,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작용, 나무뿌리, 흐르는 물. 모든 암석층에는 ‘채집할 수 있는 시간의 창’이 있다. ‘너무 깊어서 채집할 수 없는 때’와 ‘드러난 지 너무 오래되어 이미 망가진 때’ 사이에 끼어 있는 창이다.
마지막 관문은 이제 자연의 과정이 아니다. 누군가 그곳에 가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기록해야 한다. 1996년 랴오닝성 베이퍄오의 한 농민이 집 근처 산비탈에서 솜털이 몸을 둘러싼 작은 공룡 화석을 파냈다. 나중에 시노사우롭테릭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일대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깃털 공룡 산지가 된 것은 절반은 1억여 년 전의 화산재와 호수 덕분이고, 절반은 돌판을 뒤집던 현지의 수천, 수만 쌍의 손 덕분이다.
암석 노두가 길가에 있는지, 연구자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생물 무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지, 표본이 이름을 붙일 만큼 온전한지. 하나하나가 결국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갈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2022년 최근 수십 년의 세계 고생물학 연구를 집계한 결과, 화석 데이터 생산의 약 97퍼센트에 고소득국과 중상위 소득국 연구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지역에서 지표에 노출될 수 있는 퇴적암의 면적을 기준으로 삼은 다른 연구에서는 북미와 유럽 밖의 평균 표본추출 강도가 두 지역의 약 4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이 관문들을 하나의 사슬로 써 보면 가장 중요한 성질이 드러난다. 이 사슬은 곱셈이다. 고리마다 1보다 작은 확률이 있고, 그 확률을 연달아 곱해야 한다. 각 확률은 앞선 관문을 통과했다는 조건 아래의 값이다. 관문들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가정은 아니다.
어느 한 고리라도 0에 가까우면 뒤의 고리들이 아무리 높아도 만회할 수 없다. 어떤 분류군이 기록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개 그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다.
두 번째 성질은 더 중요하다. 고리마다 걸러 내는 대상이 다르다. 부패는 연한 것을, 운반은 가벼운 것을, 압밀은 속이 빈 것을, 지열은 유기물을, 채집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걸러 낸다. 체마다 구멍의 모양이 다르다. 끝까지 도달한 것들은 ‘모든 체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 한 무리’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바다 밑에 원래 동물 100종이 살았고, 50종은 껍데기가 있고 50종은 없었다고 하자. 남은 화석은 100종 가운데 무작위로 뽑힌 10종이 아니다. 껍데기가 있던 50종 가운데 10종일 것이다.
이 수를 비례해서 늘려 봐야 원래의 100종은 절대 되살릴 수 없다. 화석 기록은 다시 선별된 목록이다. 무작위로 솎아 냈다면 일정한 가정 아래 원래의 개체 수 등을 통계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도 비율을 곱하는 것만으로 전체 종 목록이 복원되지는 않는다. 다시 선별했다면 남은 것에 체계적인 편향이 새겨져 있으므로 비례 계산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 글의 나머지는 모두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2 재료는 동등하지 않다
똑같이 단단한 껍데기라도 남을 가능성은 열 배 이상 차이 날 수 있다. 가장 선명한 예가 두 종류의 탄산칼슘이다.
조개껍데기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에는 흔한 결정 형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비교적 안정한 방해석이다. 영국 도버의 새하얀 절벽은 크기가 몇 마이크로미터밖에 안 되는 방해석 조각이 무수히 쌓여 이루어졌다. 바다에 사는 단세포 조류의 껍데기가 백악기 후기 3천만여 년 동안 바다 밑으로 겹겹이 내려앉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라고나이트, 곧 선석이다. 묻힌 뒤의 환경에서는 쉽게 녹거나 서서히 방해석으로 바뀐다. 아라고나이트라는 이름은 이 광물이 처음 기재된 산지인 스페인의 몰리나데아라곤에서 왔다.
화학 성분은 같아도 배열이 달라지면 운명이 달라진다. 진주와 조개껍데기 안쪽의 반짝이는 진주층은 아라고나이트다. 굴 껍데기는 대부분 방해석이다.
대부분의 달팽이 껍데기는 아라고나이트다. 오늘날 산호초를 만드는 산호의 골격도 아라고나이트다. 완족동물의 껍데기는 대개 방해석이다. 이 차이가 화석 기록에 얼마나 깊은 자국을 남겼는지는 4절에서 보게 된다.
어떤 동물이 어느 재료를 쓸지는 각자의 계통에서 아주 오래전에 정해졌다. 그런데 그 대가는 수억 년 뒤의 암석층에서 치른다. 2000년 영국의 연구자 두 사람이 스웨덴 고틀란드섬의 4억여 년 전 암석층에서, 아주 이른 시기에 이산화규소가 채워져 사실상 ‘동결’된 조개껍데기층을 발견했다.
이들은 그 층을 바로 옆의 그런 보호를 받지 못한 암석층과 비교했다. 규화로 보호된 껍데기층에서는 연체동물이 종수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했지만, 보호되지 않은 층에서는 약 3퍼센트뿐이었다. 아라고나이트를 쓰는 연체동물이 거의 통째로 녹아 사라진 것이다.
같은 바다 밑에 살던 같은 동물 무리인데, 한쪽의 껍데기는 남았고 다른 쪽은 사라졌다. 사라진 쪽은 화석 기록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달라지는 것은 ‘어느 분류군이 더 풍부해 보이는가’다. 표본 몇 개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런 용해 손실은 지역마다 차이가 커서, 시대와 퇴적분지를 두루 가로질러 쓸 수 있는 하나의 환산율은 없다.
인산칼슘으로 된 이와 뼈, 비늘은 대체로 훨씬 오래 버틴다. 뼈 안에 원래 있던 유기물이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두고는 한 차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논쟁이 있었다. 2005년 미국의 슈바이처는 6천8백만 년 전 티라노사우루스의 다리뼈 조각을 약산에 담갔다. 광물을 녹이고 나자 혈관처럼 생긴 탄력 있는 가느다란 관들이 남았다.
그것이 원래의 조직인지, 아니면 나중에 세균이 남긴 막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상어 한 마리는 평생 이빨을 만 개 넘게 갈아 치운다. 덕분에 상어 이빨은 가장 흔한 척추동물 화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몸길이가 10미터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의 거대 상어가 있다. 이름부터 ‘큰 이빨’이라는 뜻인 이 상어에 관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이빨과 몇몇 척추뼈에 기대고 있다. 온전한 연골 골격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치아의 법랑질은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이다. 포유류 화석 연구의 상당 부분은 곧 치아 연구다. 공룡 시대의 작은 포유류 가운데는 지금도 이 몇 개로만 알려진 것이 많다. 연구자들은 치아 교두의 배열을 보고 벌레를 먹었는지 식물을 먹었는지 추론한다.
인산염은 매장 초기에 연조직을 복제할 수도 있다. 다만 조건이 몹시 까다롭다. 너무도 쉽게 썩는 근육을 복제하려면 대개 죽은 지 며칠 안에 광물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산화규소는 생물의 골격을 이루기도 하고, 나중에 조직 안으로 스며들어 채우기도 한다. 일본 다테야마의 온천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이산화규소가 풍부한 온천물에 나무토막을 담가 두자 7년 안에 이산화규소가 무게의 4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건이 맞으면 광물에 의한 고정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지질학적 시간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페트리파이드 포리스트 국립공원에는 2억여 년 전의 나무줄기들이 사막에 가로누워 있다. 나이테 하나하나가 색색의 석영으로 바뀌었다. 뼈도 마찬가지다. 공룡 뼈 화석의 공극에는 흔히 광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뼈의 미세 구조는 그대로인데 무게는 원래보다 훨씬 무겁다.
절지동물의 겉껍질은 또 다른 재료다. 주로 키틴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부패 실험을 해 보니 겉껍질의 유기 구조 일부는 선택적으로 남을 수 있었고, 안쪽의 연한 조직은 훨씬 빨리 사라졌다.
그래서 곤충 화석은 흔히 그 껍질이다. 근육과 내장, 신경은 벌써 없어지고 없다. 오래된 곤충 가운데는 날개 한 쌍만 남은 것도 많다. 3억 년 전 날개를 펼친 폭이 약 70센티미터에 이르렀던 거대 잠자리도 프랑스의 한 탄광에서 나온 날개 화석으로 처음 정체를 드러냈다.
식물도 같다. 목질화된 부분은 연한 부분보다 잘 썩지 않고, 잎 표면의 왁스와 큐틴은 한 겹의 유기막을 남길 수 있다. 옛 잎을 들여다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윤곽과 기공, 표피세포의 무늬다. 세포 안에 있던 것은 진작 사라졌다.
식물에는 좀처럼 부서지지도 않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꽃가루와 포자의 바깥벽이다. 극도로 안정한 고분자로 되어 있어서 진한 산에 던져 넣고 담가 두어도 망가지지 않는다.
지질학자들이 암석을 녹이고 나면 흔히 수천, 수만 알의 오래된 꽃가루가 남는다. 그 꽃가루는 지층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 당시 주변에 어떤 식물이 자랐는지 알려 준다. 석유를 찾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이것으로 시추공의 암석층을 서로 대조했다.
3 연한 몸이 남는 몇 가지 통로
단단한 껍데기가 없는 몸도 남을 수 있다. 다만 아주 좁은 몇 갈래 통로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는 탄소질 압축막이다. 1909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월컷은 캐나다 로키산맥의 버지스 셰일에서 검은 박막으로 눌린 연한 몸의 동물 무리를 발견했다. 촉수와 다리, 장의 윤곽이 모두 남아 있었다.
1984년 중국과학원 난징 지질고생물연구소의 허우셴광은 윈난성 청장의 마오톈산에서 이암 한 조각을 쪼갔다가 단단한 껍데기가 없는 온전한 절지동물 한 마리를 보았다. 이로써 버지스보다 약 천만 년 더 오래된 청장 생물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장은 2012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지금까지 200종 넘게 기재되었으며, 많은 종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눈과 마디진 다리를 갖고 있다.
월컷은 평생 버지스에서 표본을 6만 점 넘게 채집했다. 그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중 상당수를 서랍에서 다시 꺼내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들이 나왔다. 탄소질 압축막은 전체 윤곽과 내장의 평면상 위치를 잘 남긴다. 두께는 거의 잃는다. 납작하게 눌린 표본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인산염화다. 스웨덴 남부에는 검은 석회암 단괴가 있는데, 현지에서는 ‘악취 나는 돌’이라 부른다. 쪼개면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연구자들이 이 돌을 산에 담가 서서히 녹인 뒤 걸러 내면 5억 년 전, 크기 1밀리미터 안팎의 작은 절지동물이 나온다. 입체적이며 다리의 센털까지 남아 있다. 인산염이 충분히 일찍 침전하면 근육과 소화관을 세포 수준까지 복제할 수 있다. 하지만 허용되는 시간은 죽은 뒤 며칠뿐이다.
세 번째는 황철석화다. 19세기 말 미국 뉴욕주의 한 시냇가 셰일에서 4억5천만 년 전의 삼엽충 무리가 나왔다. 온몸이 금빛 황철석으로 치환되어 있었고, 대개 남지 않는 다리와 더듬이까지 있었다.
예일대의 비처는 여러 해에 걸쳐 이들을 연구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삼엽충의 다리와 더듬이를 이토록 온전히 볼 수 있었다. 황철석화가 일어나려면 철과 황, 미생물, 유기물의 분해가 시간과 공간에서 한데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황철석이 산화되면 거꾸로 화석을 파괴한다. 한때 살려 주었던 것이 훗날 다시 망가뜨릴 수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메셀 채석장은 또 다른 압축막을 보여 준다. 4천7백만 년 전 호수 바닥이었던 이곳의 오일 셰일에는 배 속에 새끼를 밴 작은 말과 깃털 색을 알아볼 수 있는 새, 위 속에 남은 마지막 식사가 누워 있다. 1970~80년대, 버려진 이 광산은 하마터면 쓰레기 매립장이 될 뻔했다. 주민과 과학자들이 여러 해 맞서 싸운 끝에 주정부가 사들였고, 1995년에는 세계유산이 되었다.
역시 독일에 있는 바이에른의 졸른호펜에는 입자가 몹시 고운 석회암이 있다. 19세기에 석판 인쇄용 판재로 쓸 정도로 고왔다. 채석공들이 돌판을 한 장씩 들추다가 1861년 깃털 자국 하나를 드러냈고, 얼마 뒤에는 시조새를 드러냈다. 백 년이 훌쩍 지난 뒤에도 그곳에서 나온 시조새 표본은 십여 점뿐이다.
네 번째는 규화다. 6편에서 다룬 스코틀랜드의 라이니 처트는 4억 년 전 식물을 세포째 규질 안에 봉해 놓았다.
다섯 번째는 호박이다. 미얀마의 호박에는 9천만여 년 전의 곤충과 거미, 깃털, 심지어 작은 도마뱀 한 마리까지 갇혀 있다. 센털과 표피의 세부가 올올이 드러난다.
19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고 많은 사람이 호박 속 모기에게서 공룡 DNA를 꺼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실제로는 호박 안에 온전해 보이는 ‘연조직’이 흔히 빈 공간이나 얇은 막, 남은 색소일 뿐이다. DNA는 남지 않았다.
형태가 완벽하다고 분자까지 완벽하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2015년 중국지질대학의 싱리다는 미얀마 북부 미치나의 호박 시장에서 깃털 달린 작은 꼬리 조각이 들어 있는 호박을 보았다. 2016년 논문이 발표되면서 어린 공룡의 꼬리로 확인되었다. 9천9백만 년 전의 꼬리였다. 깃털의 세부는 물론 뼈까지 그 안에 있었다.
여섯 번째는 냉동과 건조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에서는 가죽과 털, 근육이 붙은 매머드가 발굴되었고, 알프스의 빙하에서는 5천3백 년 전의 아이스맨이 걸어 나왔다.
눈에 보이는 조직이 남아 있어도 분자 정보는 여전히 조금씩 줄어든다. 2012년 한 연구는 뉴질랜드에서 멸종한 모아의 다리뼈 158점을 측정했다. 그 결과 특정 길이의 미토콘드리아 DNA 조각은 평균 반감기가 약 521년이었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읽을 수 있는 조각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것이 모든 환경에 통하는 숫자는 아니다. 낮은 온도에서는 반감기가 훨씬 길어질 수 있다. 2022년에는 그린란드 북부의 200만 년 전 퇴적물에서 환경 DNA가 해독되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사체를 보존하는 일과 읽을 수 있는 유전 정보를 보존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 통로들 밖에서도 환경 자체가 선별한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라브레아 타르 구덩이에는 수만 년 동안 동물들이 끊임없이 아스팔트에 빠져들었고, 수백만 점의 화석이 나왔다.
상식대로라면 초식동물이 육식동물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그런데 이곳의 포유류 화석은 약 90퍼센트가 육식동물이다. 들소 한 마리가 빠져 꼼짝 못 하면 그걸 먹으려는 늑대와 검치호가 무리 지어 거듭 찾아왔다가 함께 빠졌기 때문이다. 이 구덩이가 남긴 것은 덫이 다시 골라 낸 명단이다.
한 연구는 현생 해양 군집과 화석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하면서 ‘어떤 현생 속에 화석 기록이 있는가’를 척도로 삼았다. 화석 기록이 있는 비율은 원양 군집에서 약 15퍼센트, 천해와 심해 군집에서 약 34퍼센트, 산호초에서 약 44퍼센트, 해산에서 약 51퍼센트였다.
천해와 심해는 큰 차이가 없다. 결정적인 것은 흔히 매장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잡느냐이다. 산소가 부족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산소가 없으면 몸집 큰 청소동물은 물러가지만, 혐기성 미생물은 여전히 분해한다. 실험에서는 무산소 조건만으로 연조직을 지킬 수 없었다. 초기 광물화나 점토의 흡착, 또는 빠른 탈수가 함께 필요했다.
몸집과 개체수도 선별에 관여한다. 지난 약 4억8천5백만 년 동안의 해양동물 9,408개 속을 분석한 결과, 몸집이 작은 속은 전반적으로 표본에 잡히기가 더 어려웠다.
수가 많은 분류군은 표본도 많고, 첫 출현과 마지막 출현도 실제로 생겨나고 사라진 시점에 더 가깝다. 드문 분류군은 첫 출현이 뒤로 밀리고 마지막 출현은 앞으로 당겨진다. 이 점은 5절에서 다시 쓰게 된다.
4 얼마나 빠뜨렸는가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빠뜨렸을까. 먼저 오래된 추산 하나를 보자. 1977년 한 연구는 당시 알려진 현생 동물 약 124만 종을 바탕으로, 화석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약 10만 종, 8퍼센트쯤이라고 추정했다.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지, ‘결국 반드시 화석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계산을 뒷받침하는 것은 한 사람이 20여 년에 걸쳐 만든 목록이다. 시카고의 셉코스키는 1970년대부터 고생물학 문헌을 샅샅이 뒤지며 해양동물 속마다 첫 출현과 마지막 출현을 카드와 컴퓨터에 기록했다. 끝내 3만 개 넘는 속이 모였다.
그는 1999년 쉰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목록은 3년 뒤 동료들이 정리해 출판했다. 오늘날 고생물학 데이터베이스에는 화석 산출 기록이 백만 건 넘게 들어 있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연구자가 한 건씩 입력한 결과다.
더 쓸모 있는 것은 질문을 바꾸는 일이다. 한 분류군이 일정한 시간 구간에서 표본에 잡힐 확률은 얼마나 될까. 1999년 미국 시카고대의 푸트와 셉코스키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약 2만4천 개 속 가운데 1만6천여 개를 사용했고, 시간 구간 하나의 길이는 평균 약 530만 년이었다.
방법은 출석을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한 학생이 월요일에도 있고 수요일에도 있는데 화요일 출석부에만 이름이 없다면, 화요일에도 있었지만 호명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속이 첫 구간과 셋째 구간에 모두 나타나는데 둘째 구간에 없다면, 둘째 구간에도 분명 살아 있었으나 채집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살아 있는데 빠뜨린’ 경우가 얼마나 잦은지 세면 각 구간의 표본추출 확률을 거꾸로 추정할 수 있다. 원래 세상에 속이 모두 몇 개 있었는지 알 필요가 없다.
결과의 차이는 놀라웠다. 구간마다 표본에 잡힐 확률이 완족동물은 약 0.9, 두족류는 약 0.8~0.9, 삼엽충은 약 0.7~0.9였다.
갯지렁이 같은 바다의 다모류는 겨우 약 0.05였다. 같은 시간 척도에서 가장 잘 잡히는 분류군과 잘 잡히지 않는 분류군 사이에 거의 스무 배의 차이가 났다.
완족동물이 맨 앞에 놓인 것은 2절에서 말한 방해석 껍데기와 무관하지 않다. 껍데기가 단단하고 안정한 데다 흔히 얕은 바다 밑에서 넓게 무리 지어 산다. 조개처럼 생겼고 껍데기도 두 장이지만, 아예 다른 문에 속하는 동물이다. 두 껍데기가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로 놓인다.
고생대의 얕은 바다에는 어디나 이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수백 종만 남아 차갑고 깊은 물속에 숨어 산다. 열 구간마다 한 구간을 빠뜨리는 것과 스무 구간 중 한 구간에서만 채집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처지다.
단단한 껍데기 없이 몇몇 특별한 보존의 창에서만 보이는 분류군은 이 계산에 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출석 확인법에는 ‘첫 구간과 셋째 구간에는 있고 둘째 구간에는 없는’ 기록이 충분히 필요하다. 그 패턴이 너무 드물면 표본추출 확률이 낮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방법으로는 그 값을 신뢰할 만하게 추정할 수 없다. 값이 작은 것과 자료가 부족해 추정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일이다.
보존 여건이 훨씬 더 나쁜 분류군도 있다. 해파리는 몸의 90퍼센트 이상이 물이라 죽은 지 며칠이면 풀어져 버린다. 전체 화석 기록을 통틀어 해파리라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곳에서만 나온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메이즌 크리크에는 3억여 년 전 하구의 진흙 속에 수천, 수만 개의 철질 단괴가 들어 있다. 쪼개 보면 간혹 납작해진 해파리 한 마리가 보인다. 이것은 특별한 사례이지, 보통의 일이 아니다. 새도 잘 보존되지 않는다. 뼈가 속이 비고 얇아서 누르면 부서진다. 새 화석 가운데는 뼈 몇 개만 띄엄띄엄 남은 것이 많다.
완전성을 재는 방법은 더 있다. 현생 과에 화석 구성원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비율은 대체로 속이나 종 수준의 비율보다 높다. 어떤 속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골격까지 온전하다는 뜻도 아니다. ‘이 동물을 발견했다’는 것과 ‘그 해부 구조를 얼마나 아는가’는 별개다.
암석 자체도 오래될수록 적어진다는 식으로 단순하지 않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매크로스트랫 데이터베이스는 약 3만3천9백 개의 층서 단위를 한데 모았다.
시대별 암석량 곡선에는 계단도 있고 봉우리와 골도 있다. 분지가 생기고 사라지며, 바닷물이 들어오고 물러가는 대로 오르내린다. 생물이 생겨나는 양상이 완전히 매끈하더라도 표본을 얻을 수 있는 암석량이 출렁이면 화석 개수에도 봉우리와 골이 생긴다.
암석층 사이에는 통째로 빠진 페이지들도 있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암벽에는 유명한 경계면이 하나 있다. 아래에는 십수억 년 전의 오래된 암석이 있고, 그 위를 5억여 년 전의 사암이 곧장 덮는다. 그 사이 수억 년에서 10억 년 넘는 시간이 그곳에는 단 한 페이지도 남지 않았다.
‘우리가 발견한 화석종이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종의 몇 퍼센트인가’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전 지구적 숫자가 없다. 지금까지 존재한 종의 총수는 수십억 년 동안의 종분화율과 멸종률, 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리고 표본에 한 번도 잡히지 않은 수많은 계통에 달려 있다.
현생 종 역시 공정한 비교 기준이 아니다. 그들부터가 역사 속 멸종의 체를 통과한 생존자다. ‘우리는 천분의 일밖에 발견하지 못했다’거나 ‘백분의 일밖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은 특정한 가정 아래 계산한 추정이지, 측정한 결과가 아니다.
5 곡선의 모양은 어떻게 바뀌는가
체는 수를 줄이기만 하지 않는다. 모양도 다시 그린다.
첫 번째 효과에는 이름이 있다. 1982년 미국의 시뇨르와 립스가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했고, 이후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생물 100종이 모두 같은 날 사라졌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종은 화석이 흔하고 어떤 종은 드물다. 흔한 종은 그날에 아주 가까운 암석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드문 종이 마지막으로 보존된 것은 훨씬 오래전일 수 있다. 십 년에 한 번씩만 보이는 것이 3년 전에 죽었다 한들 알 도리가 없다. 그러면 그래프에는 ‘차츰 줄어드는’ 곡선이 그려진다. 실제로는 하루 안에 모두 사라졌는데도.
이 효과를 몸소 겪은 연구자가 있다. 미국 워싱턴대의 워드는 1980년대 스페인 바스크 해안의 수마이아에서 암모나이트를 채집했다.
그곳 절벽은 백악기 마지막 암석층들을 바닷가에 겹겹이 펼쳐 놓고 있다. 처음에 그는 경계선보다 수십 미터 아래에서부터 암모나이트가 한 종씩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암모나이트가 서서히 쇠퇴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돌아와 한 층씩 더 꼼꼼히 찾자, 경계선에 바짝 붙은 암석층에서 종들이 하나둘 다시 나왔다.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암모나이트는 아마 경계선에서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그전에 보았던 ‘쇠퇴’는 충분히 채집하지 못한 탓이었다.
공룡을 두고도 같은 논쟁이 있었다. 미국 몬태나주 헬크리크층에서는 마지막 공룡 뼈가 경계선 약 3미터 아래에 있었다. 이를 근거로 거대한 충돌 전부터 이미 공룡이 쇠퇴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991년 미국의 시한은 대규모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그곳을 샅샅이 뒤졌다. 경계선 아래 암석층을 몇 구간으로 나누고 구간마다 똑같은 노력을 들여 찾았다. 그 결과 마지막 200여만 년 동안 공룡이 점차 줄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화석이 기록되는 평균 비율이 일정하고 각각의 기록이 독립적이라는 단순한 모형을 생각하자. 이 효과는 계산할 수 있다. 한 분류군의 화석이 평균 백만 년에 한 번 채집된다고 하자. 실제로 사라진 시점과 마지막으로 알려진 화석 사이의 간격은 평균 약 백만 년이고, 95퍼센트의 경우 약 300만 년을 넘지 않는다.
천만 년에 한 번만 채집된다면 평균 간격은 천만 년이다. 실제 끝에 가까이 갈수록 알려진 분류군의 수는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점점 더 많은 계통에서 이미 ‘마지막으로 채집된 순간’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경계 아래에서 층마다 줄어든다’는 사실만으로 생물학적인 점진적 쇠퇴를 증명할 수는 없다.
같은 논리를 거꾸로 놓으면 첫 출현의 지연이 된다. 계통은 이미 생겨났어도, 마침 보존되고 또 발견되기까지 한 첫 화석은 대개 그보다 조금 늦다.
‘알려진 가장 오래된 화석’이 주는 것은 기원이 적어도 그만큼은 오래되었다는 하한이다. 박쥐가 눈에 띄는 사례다. 오늘날 박쥐는 약 1,400종으로 포유류의 5분의 1쯤을 차지한다. 하지만 뼈가 가늘고 동굴이나 숲속에서 죽는 경우가 많아 화석은 드물다.
알려진 가장 이른 온전한 박쥐 골격 몇 구는 미국 와이오밍주의 약 5천2백만 년 전 호수 바닥 퇴적물에서 나왔다.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이미 날 수 있는 박쥐이며, 날개뼈의 구조는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날지 못하던 데서 날게 되기까지의 그 구간은 화석에서 텅 비어 있다.
두 번째 효과는 ‘현재의 끌어당김’이라고 한다. 젊은 암석일수록 덜 파괴되었고 지표에 드러나기도 쉽다. 더 중요한 것은 현생 분류군의 존재 자체가 오늘날까지 계속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연구자에게 알려 준다는 점이다.
현생 속이 아주 오래된 암석층에서 한 번이라도 나왔다면, 전통적인 집계에서는 첫 출현부터 오늘날까지 모든 구간에 그 속이 있었다고 센다. 멸종한 속에는 이런 무료 연장이 주어지지 않는다. 7절에서 이야기할 실러캔스가 그렇다. 6천만여 년 동안 화석 하나 없지만 지금도 살아 있다는 이유로 층서적 생존 범위가 단숨에 현재까지 늘어난다. 그리하여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곡선이 더 높이 올라간다.
얼마나 올라가는지는 실제로 재야 한다. 2003년 시카고대의 야블론스키 등은 현생 이매패류를 조사했다. 화석 기록이 있는 현생 속과 아속 958개 중 906개는 사실 최근 500만 년의 암석층에서도 이미 채집된 적이 있었다.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메운’ 부분을 빼고 나니 현재의 끌어당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신생대 이매패류 다양성 증가의 약 5퍼센트뿐이었다. 편향은 실재한다. 그러나 이 분류군에서는 전체 추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세 번째 효과는 암석량이다. 1976년 미국 로체스터대의 라우프는 시대별 해양 화석의 다양성이 남아 있는 퇴적암의 양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 가지 설명은 암석이 많으면 표본을 얻을 기회도 많아지고 화석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다른 설명은 해수면 상승이다. 백악기에는 한때 바닷물이 북미 내륙으로 들어와 멕시코만에서 북극해까지 이어지며 대륙을 둘로 갈랐다.
오늘날 미국 캔자스주의 밀밭 아래에는 그 내해에 살던 모사사우루스와 거대한 물고기들이 묻혀 있다. 해수면이 오르면 얕은 바다의 면적이 넓어진다. 해양생물이 실제로 더 많아지기도 하고, 해양 지층이 더 많이 남기도 한다. 둘 다 실제로 일어난다.
다양성을 곧바로 암석량으로 나누어 보정하면 진짜 생태적 신호까지 함께 지워 버릴 수 있다. 모형을 비교해 보면 이 두 관계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네 번째 효과는 유난히 좋은 화석 산지 자체에서 나온다. 한 연구는 6억1천만 년 전부터 300만 년 전까지의 특이 보존 화석군 약 694개를 모아, 이들이 시간과 공간에서 무리 지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떤 보존의 창이 열리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연한 몸의 형태가 기록 속으로 한꺼번에 들어온다. 폭발처럼 보인다. 창이 닫히면 함께 퇴장한다. 쇠퇴처럼 보인다.
다섯 번째 효과는 이름 붙이기 자체에서 나온다. 1879년 미국의 마시는 브론토사우루스에 이름을 붙였다. 1903년 다른 학자는 그것이 마시가 그보다 2년 앞선 1877년에 이름 붙인 아파토사우루스와 같은 동물이라고 보았다. 먼저 붙인 이름이 우선한다는 규칙에 따라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은 폐기되었다.
그런데도 백 년 넘게 박물관 표지판과 우표에는 그 이름이 계속 찍혔다. 2015년 수십 점의 표본을 세밀하게 비교한 연구는 둘의 차이가 충분히 크다고 판단했다. 브론토사우루스는 다시 독립된 속으로 복귀했다.
2002년 북미 화석 포유류를 표본으로 삼은 연구는 현재 받아들여지는 종명 가운데 약 24~31퍼센트가 결국 무효로 판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 때문에 다양성이 30퍼센트 넘게 과대평가되었을 수 있다. 반대로 실제로는 여러 종인 것을 모호한 이름 하나에 밀어 넣으면 종 풍부도가 낮아진다. 화석종은 보존될 수 있는 형태를 기준으로 나누지만, 생물학적 종은 서로 교배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단단한 부분의 형태가 같은 여러 종은 화석에서 하나로 셀 수밖에 없다.
이 효과들이 바꾸는 것은 제각각이다. 마지막 출현의 앞당김과 첫 출현의 지연은 양 끝점을 바꾸고, 현재의 끌어당김은 기울기를 바꾼다. 암석량은 곡선 전체의 굴곡을 바꾸며, 특이 보존이 몰려 나타나는 현상은 어떤 형태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를 바꾼다. 이름 붙이기는 세는 단위 자체를 바꾼다. 보정법 하나는 보통 그중 한 가지밖에 다루지 못한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편향이 어느 값을 얼마나 바꾸었느냐이다.
6 체만으로 봉우리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시리즈의 첫 편에서 이미 맞닥뜨린 질문이 있다. 봉우리 하나가 온전히 체 때문에 생겨날 수 있을까.
우선 형식을 분명히 써 보자. 관측된 수는 대략 네 가지를 곱한 값이다. 실제 사건의 발생률, 보존될 확률, 나중에 다시 지표에 드러날 확률, 채집되고 동정될 확률. 네 가지 모두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아주 유용한 규칙이 하나 있다. 실제 발생률이 일정하고, 시대가 오래될수록 보존 확률이 낮아지며, 나머지 두 항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관측된 분포는 젊은 쪽에서 오래된 쪽으로 줄곧 내려갈 뿐이다. 최고점은 가장 젊은 끝에 생기고, 중간에는 봉우리를 만들 수 없다. 중간에 봉우리를 만들려면 다른 것이 필요하다. 실제 발생률 자체가 오르내리거나, 보존 또는 노출 확률이 들쑥날쑥하거나, 몇 가지 과정이 포개지거나, 시간의 창이 잘리거나, 연대가 섞이거나 초기화되어야 한다.
첫 편에서는 달 암석의 연대가 약 39억 년 전에 몰려 있는 봉우리를 이야기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그 봉우리는 보존 과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유는 마지막 항목에 있다. 오래된 충돌 용융암이 뒤이은 충돌로 거듭 부서지고 다시 녹으면서 동위원소 시계가 번번이 되돌려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대의 초기화이지, 단순히 오래될수록 적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바다 밑 조개껍데기 더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방사성탄소로 껍데기의 연대를 하나씩 재 보면, 오래된 껍데기가 해저에 누워 있던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이 마모되고 녹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결과 추론해 낸 ‘어느 시기에 조개가 유난히 많았다’는 봉우리가 현재 쪽으로 끌려온다. 어긋나는 것은 봉우리의 시점 자체다.
암석의 연대에도 같은 문제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광물 알갱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잭힐스의 오래된 역암층에 들어 있는 지르콘이다. 약 44억 년 되었다.
전 세계에서 연대를 측정한 수십만 개의 지르콘은 나이가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 몇 개의 높은 봉우리로 몰려 있고, 그 봉우리들은 대륙이 모여 초대륙을 이루던 시기와도 자주 맞아떨어진다. 한쪽은 그때 지각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른 쪽은 대륙이 충돌할 때 생긴 암석이 깊이 묻혀 쉽게 파괴되지 않으므로, 보존이 봉우리를 만들었다고 본다. 두 편이 다투는 것은 바로 이 절의 질문이다.
반대 방향의 사례도 보아야 한다. 희소화는 처음부터 화석을 위해 고안된 방법이 아니었다. 1968년 미국의 해양생태학자 샌더스는 심해와 천해의 진흙 속 벌레와 조개를 비교하려 했다. 곳마다 퍼 올린 진흙의 양이 달랐다. 그는 각 표본을 같은 개체수로 환산한 다음 비교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1975년 라우프는 이 방법을 화석 다양성에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원리는 탐조에 빗대면 쉽다. 한 사람이 공원에서 열 시간 동안 새를 보고, 다른 사람은 백 시간 동안 보았다면 후자가 기록한 새의 종수가 당연히 더 많을 것이다.
두 공원을 비교하려면 둘의 노력을 같은 수준에서 끊어야 한다. 가령 둘 다 처음 본 새 200마리까지만 세는 것이다. 라우프가 이렇게 처리한 뒤에도 고생대 이후 성게 과의 수가 늘어나는 추세는 남았다. 그것은 실제 증가였다.
더 나은 방식으로 기준을 맞추는 방법은 암호전에서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블레츨리 파크의 튜링과 그의 조수 굿은 독일군 암호책을 해독하기 위해 한 추정법을 고안했다. 이미 가로챈 암호 가운데 단 한 번만 등장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면,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전체에서 대략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굿이 이를 발표했다. 굿은 나중에 영화감독 큐브릭의 자문역도 맡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말하는 컴퓨터를 구상하는 데 힘을 보탰다. 오늘날 고생물학자들은 같은 발상을 쓴다. 두 시간 구간에서 같은 수의 표본을 채집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두 구간의 표본이 ‘잠재적인 모집단에서 같은 비율을 포괄하도록’ 요구한다. 수를 고정하는 것보다 공평하다.
저마다 장점이 있는 방법은 몇 가지 더 있다. 하나는 확률과정을 이용해 기원과 멸종, 표본추출의 속도를 동시에 추정하는 것이다. 첫 출현과 마지막 출현을 더는 실제 시작과 끝으로 여기지 않는다.
또 하나는 화석이 없는 암석을 대조군으로 삼는 방법이다. 화석이 없는 암석층의 양마저 다양성 곡선과 함께 오르내린다면 표본추출로 설명할 근거가 더 강해진다. 표본추출의 메커니즘을 공유하지 않는 여러 증거, 곧 다양성과 형태적 차이, 생태적 기능이 같은 지점에서 꺾이는지 보는 방법도 있다. 반대로 데이터베이스 하나의 집계에만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봉우리가 표본추출 강도의 봉우리와 정확히 나란히 움직인다면 맨 먼저 의심할 것은 관측 과정이다.
이 모든 방법에는 공통의 경계가 있다. 모형은 매개변수에 적어 넣은 부재만 보정할 수 있다. 분류군마다 백만 년에 대략 몇 번 채집되는지 알면, 보이지 않는 양 끝점을 추정할 수 있다.
암석의 면적을 안다면 그것을 모형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보존 과정이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한 번도 남기지 않았고 독립적인 대조 자료도 없다면, 데이터 자체는 아직 몇 개의 분류군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지 모형에 알려 줄 수 없다.
데이터가 무한히 많아도 이 값은 정할 수 없다. 데이터 안에 그 값에 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는 이것을 식별 불가능성이라고 한다. 앞에서 다룬 전 지구적 속 수준 추정은 몸이 극도로 연한 분류군을 제외했다. 여러 값을 함께 추정하는 모형도 ‘적어도 한 번은 나타난’ 분류군을 토대로 삼는다. 두 방법은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그곳이 이 경계다.
7 네 가지 없음
이제 ‘없다’를 나눌 수 있다. 아래의 네 가지는 이 글에서 따로 정리한 구분이다. 문헌에서는 층서통계학과 화석생성론, 과학철학에 흩어져 있다.
첫째,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 둘째, 존재했으나 발견할 수 있는 유해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데이터에서는 둘이 완전히 똑같을 수 있다. 둘 다 기록이 0이다.
1938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남아프리카 이스트런던 박물관의 젊은 직원 라티머는 저인망 어선이 잡아 온 물고기들 사이에서 길이가 1미터 넘고 비늘에 푸른빛이 도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지느러미는 살이 붙은 짧은 다리 같았다. 그녀는 택시 기사를 설득해 그 크고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박물관으로 옮겼다. 하지만 온 도시를 뒤져도 들어갈 만한 냉동고가 없었다. 내장을 지키지 못해 결국 표본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화학 교수 스미스가 정체를 알아보았다. 실러캔스의 한 종류였다.
화석 기록에서 이 물고기 무리의 가장 젊은 구성원조차 6천만 년이 넘었기에, 사람들은 줄곧 공룡과 거의 같은 때에 멸종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계속 있었다. 인도양 서부의 깊은 물속에. 화석을 남기지 않았고, 그곳으로 찾으러 간 사람도 없었을 뿐이다.
1997년에는 미국의 한 생물학자가 신혼의 아내와 함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어시장에서 다른 종의 실러캔스를 보았다. 이렇게 기록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분류군을 고생물학자들은 ‘라자루스 분류군’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죽었다가 되살아난 라자루스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식물에도 있다.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국립공원 순찰원이 시드니 북서쪽 깊은 협곡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키 큰 침엽수 몇 그루를 보았다.
화석에서는 흔하지만 오래전에 사라졌으리라 여겼던 오래된 침엽수 무리였다. 야생의 다 자란 나무는 수십 그루뿐이고, 위치는 지금도 비밀이다. 2019~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철에 불길이 협곡 가장자리까지 닥치자, 소방대원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협곡으로 내려가 급수관을 깔고 물을 주었다. 항공기에서는 난연제를 뿌렸다. 그렇게 나무들을 지켜 냈다.
이 두 가지 ‘없음’을 구분하려면 다른 것이 필요하다. 만약 존재한다면 애초에 우리가 발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이것은 곧바로 계산할 수 있다. 서로 독립적인 조사마다 대상이 존재할 때 그것을 발견할 확률이 정해져 있다면, 여러 번 연속 발견하지 못할 확률은 ‘한 번 발견하지 못할’ 확률을 거듭 곱한 값이다.
한 번의 조사에서 발견할 확률이 90퍼센트라면, 대상이 존재하는데도 세 번 모두 찾지 못할 확률은 천분의 일뿐이다. 이때 ‘찾지 못했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한 증거가 된다. 한 번의 발견 확률이 1퍼센트뿐이라면, 대상이 존재하더라도 열 번 모두 찾지 못할 확률이 여전히 약 90퍼센트다. 둘 다 ‘여러 번 연속 찾지 못한’ 경우지만, 놓칠 확률은 천 배 가까이 차이 나며 증거의 무게도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고 조사 후에도 존재할 확률이 90퍼센트라는 뜻은 아니다. 그 질문에는 조사 전에 존재한다고 믿을 근거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필요하다.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강한 증거인지는 ‘존재한다면 발견되었어야 할 확률’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찾지 못했다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다’라는 격언은 너무 단정적인 말이다. 가설이 참일 때 증거를 찾을 확률이 거짓일 때보다 높기만 하면, 찾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가설을 어느 정도 약화한다. 문제는 얼마나 약화하느냐뿐이다. 층서의 신뢰구간은 일찍부터 이 원리를 도구로 만들었다. 고르게 나오던 수많은 화석이 갑자기 끊기면 실제 끝점을 아주 좁게 가둘 수 있다. 애초에 천만 년에 한 번씩만 모습을 드러내던 종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실제 끝점의 범위를 거의 좁히지 못한다.
셋째, 유해는 남았지만 우리가 묻는 속성을 담고 있지 않다. 골격은 몸집과 관절, 성장에 답할 수 있으나 피부색에는 대개 답할 수 없다.
얼마나 읽어 낼 수 있는지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경조직의 형태와 크기, 치아와 관절, 골격의 비율과 뼈 조직, 마모와 부상과 질병, 산지와 층서적 위치는 대체로 직접 읽을 수 있다.
피부와 깃털의 구조, 일부 색깔, 근육과 내장, 식성, 운동 방식, 성장 속도, 번식 행동은 특수한 보존이나 간접적인 지표에 기대야 한다. 호박은 표피의 미세 구조를 남기고, 이른 인산염화는 근육을 남기며, 안정동위원소는 생리와 환경의 실마리를 준다.
17편에서는 화석 속 멜라노솜으로 공룡 깃털의 색을 어떻게 읽는지 다룰 것이다. 완전한 유전체, 어느 한순간의 유전자 발현, 신경의 상태, 물리적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은 울음소리와 행동은 대체로 복원할 수 없다.
단백질은 DNA보다 훨씬 오래 버틴다. 2019년 연구자들은 중국 광시의 한 동굴에서 나온 약 190만 년 전 기간토피테쿠스의 어금니 하나에서 법랑질 단백질의 서열을 읽어 냈다. 이를 통해 기간토피테쿠스가 오랑우탄과 가까운 친척이라고 판단했다. 모아 뼈에서 구한 그 500여 년의 반감기는 바로 속성 정보의 수명을 말한다. 형태의 수명보다 훨씬 짧다.
넷째, 질문 속의 양이 주어진 범위 안에서는 정의되지 않는다. 4편에서는 대산소화 사건 무렵의 멸종률에 분모가 없다고 했다. 당시 미생물 화석은 그저 작은 공들일 뿐이라, 한 종인지 열 종인지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의 경계는 ‘그 무렵의 화석’에 있다. 연구자가 추적할 수 있는 단위를 정의하기만 하면, 형태종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 단위의 출현율과 소멸률을 정의할 수 있다.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자나 분모, 비교 단위에 일관된 방식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떤 지질 시대가 본래부터 멸종을 논하는 일을 금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첫째와 둘째는 구분할 수 있을까. 빈칸 하나만 보아서는 구분할 수 없다. 다만 탐지 확률을 빌리면 간접적으로 가를 수 있다. 같은 시대의 같은 종류 암석에서 몸집과 단단한 껍데기가 비슷한 ‘대조 분류군’은 잘 보존되는데 대상 분류군만 줄곧 없다면, ‘존재했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설명은 점점 무리해진다.
반대로 비슷한 연한 몸의 동물들이 모두 보존되지 않았다면, 대상의 부재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 같은 ‘마지막 출현’도 두 분류군에서 지니는 무게가 열 배 이상 다를 수 있다.
8 체의 모양은 보정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가장 쉽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결론이 있다. 화석 기록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1992년의 한 검증이 이 걱정에 답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노렐과 노바체크는 둘 다 오랫동안 야외에서 화석을 파 온 사람들이다. 몇 년 뒤 이들의 팀은 몽골 고비 사막에서 알 둥지 위에 엎드린 공룡을 발굴했다. 앞다리를 펼쳐 한 둥지의 알을 감싼 모습이 오늘날 알을 품는 새와 똑같은 자세였다.
1992년의 검증에서 이들은 척추동물 24개 무리를 골랐다. 손에는 서로 상관없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오직 뼈의 모양으로 추론한 계통도였다. 누구와 누가 더 가깝고, 누가 먼저 갈라졌는가. 추론할 때는 암석층의 연대를 전혀 보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이 동물들이 지층에 처음 나타나는 순서였다. 두 순서는 따로 구성했다. 뼈로 추론한 계통수에 지층의 연대를 미리 넣은 것이 아니다. 다만 둘 다 같은 진화의 역사를 반영한다. 화석의 첫 출현이 무작위 잡음뿐이라면, 해부학으로 추론한 분기 순서와 일치할 이유가 없다.
결과는 24개 무리 가운데 18개에서 두 순서가 유의하게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뼈의 모양이고 하나는 암석층의 순서다. 서로 무관한 두 자가 같은 앞뒤를 재어 냈다. 2000년 영국 브리스톨대의 벤턴 등은 검증을 계통도 1천 개로 확대했고, 오래된 암석층에서도 이 일치가 뚜렷하게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록은 찢겨 있다. 하지만 큰 틀의 순서까지 뒤죽박죽이 될 만큼 찢기지는 않았다. 화석으로 세운 앞뒤 순서는 대체로 믿을 수 있다. 계통도로 거꾸로 화석 기록을 ‘메울’ 때도 조심해야 한다. 표본이 빈약하면 계통도 자체도 부정확해질 수 있다.
살아 있는 군집과 죽은 군집도 대조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대의 키드웰 등은 여러 해 동안 해안에서 살아 있는 조개류와 바다 밑에 쌓인 빈 껍데기를 따로 세어 왔다.
빈 껍데기 더미에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의 시간이 섞여 있다. 그래도 종별 개체수의 순위는 살아 있는 군집과 뚜렷하게 일치한다. 데이터 85세트를 종합한 연구에서는 대조 결과의 90퍼센트 이상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걸러지는 과정을 거쳤지만 원래의 생태 구조가 뒤엉킨 실타래로 변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살아 있는 군집과 죽은 껍데기가 맞지 않는 곳에도 정보가 있다. 키드웰은 오염물질 배출과 저인망 어업, 양식으로 인간이 바꾸어 놓은 해안에서는 빈 껍데기 더미가 흔히 인간이 오기 전의 군집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다 밑 죽은 껍데기가 아무도 쓴 적 없는 옛 장부가 된 것이다. ‘편향되어 있다’와 ‘정보가 없다’ 사이에는 아주 먼 거리가 있다.
1982년 라우프와 셉코스키는 셉코스키가 정리한 해양동물 과 목록으로 현생누대의 다섯 차례 대멸종을 그려 냈다. 그 뒤 40여 년 동안 이 곡선은 이 글에서 다룬 모든 편향의 문제를 놓고 거듭 추궁받았다. 희소화와 포괄도를 적용하고, 암석량과 현재의 끌어당김을 따져 보았다. 곡선의 세부는 많이 바뀌었지만 다섯 차례 대멸종은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 지켜야 할 원칙이 하나 나온다. 표본추출 편향을 만능 설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떤 봉우리든 골이든, 방산이든 쇠퇴든 사후에 모두 표본추출 탓이라고 할 수 있다면, ‘표본추출’이라는 설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셈이다.
더 나은 질문은 구체적이다. 어떤 분류군, 어떤 시간 척도, 어떤 환경, 어떤 형질에 대해 이 표본추출 계획을 썼을 때, 기록은 실제 신호의 어떤 성질을 보존하며 오차는 얼마나 되는가. 질문은 무겁고 길지만 답할 수 있다. 같은 전 지구적 화석 기록 안에서도 구간마다 표본에 잡힐 확률이 약 0.9인 분류군과 약 0.05인 분류군이 있다. ‘화석 기록은 전체적으로 얼마나 완전한가’라는 질문에는 의미 있는 하나의 답이 없다.
이 글의 구축으로 돌아가자.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의 것은 셈에 넣고, 선 밖의 것은 넣지 않는다. 그 선은 일련의 판정 기준처럼 사람이 그을 수도 있고, 한 겹의 막처럼 자연이 그을 수도 있다. 이 글의 선은 체가 긋는다. 모든 체의 구멍을 통과한 것은 기록에 들어가 셈에 들고, 통과하지 못한 것은 기록 안에서 없는 것이 된다.
앞선 열 편에서도 여러 종류의 ‘없음’을 만났다. 같은 빈칸은 아니다. 7편에서는 현생누대 기록을 중원생대와 더 비교하기 쉬운 수준으로 낮추어 표본추출한 뒤, 차이가 얼마나 남는지 보자는 대조를 제안했다. 이런 방법은 질문을 진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료를 정리하고 비교 조건을 밝혀야 하며, 설명이 하나만 남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더 일하면 이 빈칸을 좁힐 수는 있지만 한 번에 없앨 수 있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8편에서 다룬, 멀리 나아가지 못한 수십 차례 다세포성의 기원은 온전히 보인다. 다만 자연적인 단위가 없는 자 하나 때문에 뒤쪽으로 밀려났을 뿐이다. 9편의 에디아카라 생물들은 표본이 수천, 수만 점이다. 하지만 분류 격자의 칸마다 이들이 아직 다 갖추지 못한 형질 묶음을 요구한다. 10편의 캄브리아기 다양성에서는 실제 방산과 골격화, 연한 몸의 보존 창, 암석량이 각각 얼마나 기여했는지 깔끔하게 나누어 낼 수 없다.
구축된 틀에 담기지 않으면서 없애 버릴 수도 없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이 글의 잔여항은 기록에 없는 압도적 다수다. 앞선 글들의 잔여항은 좌표축에 있었고, 격자에 있었고,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 계수들 속에 있었다.
이 글의 잔여항은 체 안에 있다. 그런데 체의 모양은 보정할 수 있다. 마지막 출현에는 신뢰구간이 있고, 속 수준의 표본추출률에는 출석 확인법이 있다. 다양성에는 희소화와 포괄도가 있다. 기원과 멸종, 보존을 함께 추정할 수 있고, 암석의 양은 지질도에서 잴 수 있으며, 연구 편향은 노출된 암석의 면적과 대조해 측정할 수 있다.
이 체는 부분적으로 보정할 수 있는 관측 과정이지, 블랙박스가 아니다. 앞에서 나온 도구 하나하나는 어느 한 번의 오독에 떠밀려 생겨났다. 수마이아에서 워드가 본 암모나이트, 라우프의 성게, 야블론스키의 이매패류. 체의 모양은 번번이 속은 끝에 조금씩 재어 낸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남겨 두자. 보정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긴 부분이다. 어느 통로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들의 총수는 이 기록으로 알아낼 수 없다. 분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분모를 모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기록만으로 ‘몇 퍼센트를 놓쳤다’고 계산할 수 없다. 거기에 무언가 있었을 수도, 없었을 수도 있다. 이 기록은 답해 주지 않는다.
판정 기준은 계속 거르고 보정 모형도 바뀐다. 그래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부분의 총수는 지금의 기록으로 계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