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10

캄브리아기 상전이는 설명이자 가림막이다

캄브리아기에 ‘폭발’한 것은 몸일까, 삶의 방식일까, 우리가 볼 기회일까?

Han Qin · 읽는 데 약 34분 · 공개일

1 5억 년 전의 어느 바닷바닥

약 5억 1,800만 년 전, 지금의 윈난성 쿤밍 근처 청장은 따뜻하고 얕은 바다였다. 당시 지구의 육지는 대부분 남반구에서 서로 이어져 있었다. 곤드와나라는 거대한 대륙이었다. 땅 위는 아직 벌거숭이였다. 식물도 동물도 없었다.

화남은 적도 부근을 떠다니는 작은 땅덩어리였고, 사방을 따뜻한 얕은 바다가 에워쌌다. 하루는 대략 스물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달은 지금보다 가까웠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더 컸다.

바닷바닥의 진흙 위로 삼엽충 몇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간다. 몸은 왼쪽, 가운데, 오른쪽의 세 갈래로 나뉘고, 등에 마디마디 이어진 갑옷 조각이 물속에서 빛난다. 부드럽고 통통한 다리가 쌍쌍이 달린 벌레 하나는 등에 두 줄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채 해면 무더기에 매달려 있다. 진흙 속에서는 머리에 기다란 더듬이 한 쌍을 단 절지동물이 기어 나온다. 단단한 겉껍질을 두른 모습이 오늘날의 새우와 무척 닮았으면서도, 어느 새우와도 같지 않다.

물속에는 이 바다에서 가장 큰 사냥꾼이 헤엄친다. 아노말로카리스다. 몸길이는 반 미터쯤, 그보다 큰 것도 있다. 몸 양옆에는 지느러미처럼 일렁이는 납작한 엽들이 줄지어 있고, 머리 앞에는 가시 달린 커다란 집게 모양 부속지가 한 쌍 뻗어 있다. 집게 두 자루를 내민 듯하다. 입은 이빨판이 고리 모양으로 둘러싼 구조여서, 벌리면 파인애플을 가로로 썬 한 조각 같다.

짧은 자루 끝에 커다란 겹눈이 하나씩, 한 쌍 달려 있다. 이 동물이 삼엽충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물어 부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2023년에는 집게에 걸리는 힘을 컴퓨터로 모의실험한 연구가 나왔다. 그 집게는 몸이 연한 먹잇감을 붙잡는 데 더 알맞았으리라는 결론이었다.

삼엽충의 눈도 특별하다. 겹눈을 이루는 작은 수정체 하나하나가 투명한 방해석 결정 한 알이다. 결정의 광축은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돌로 세상을 보는 동물이었다. 이 돌눈은 화석 속에서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2011년, 연구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캥거루섬의 조금 더 젊은 암층에서 아노말로카리스류의 잘 보존된 겹눈 화석을 발견했다. 눈 하나에 낱눈이 1만 6,000개 넘게 달려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곤충보다도 많다.

몸길이가 몇 센티미터인, 작은 물고기 같은 동물도 몸을 흔들며 헤엄친다. 1999년 시베이 대학교의 수더간 등은 청장 화석에서 이런 동물 두 종류를 알아보았다. 몸 안에는 척삭 한 가닥이 지나가고, 겹친 갈매기표 모양으로 꺾인 근육 마디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척추동물의 일부다. 너와 나의 먼 조상은 그때 이 바다에 있었다.

청장 화석은 신경이 보일 만큼 세밀하다. 2012년 윈난 대학교와 영국, 미국의 연구자들은 푸셴후이아라는 절지동물 화석에서 보존된 뇌를 알아보았다. 그 구조는 오늘날 곤충과 갑각류의 뇌에 이미 상당히 가까웠다. 5억여 년 전의 작은 머리 하나가 이암 속에 짙은 그림자를 남긴 것이다.

청장에는 아직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한 동물들이 있다. 베툴리콜리아라는 무리는 몸이 앞뒤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쪽은 아가미구멍이 한 줄 뚫린 상자 같고, 뒤쪽은 마디가 있는 꼬리 같다.

2001년 수더간 등은 이들을 위해 새로운 문 하나를 세웠다. 그 뒤 어떤 연구자는 후구동물의 이른 곁가지로 보았고, 다른 연구자는 또 다른 자리에 놓았다. 몸길이 몇 센티미터의 작은 동물이 분류학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 세월이 20년을 넘었다.

진흙 속에는 새예동물이라는 또 다른 벌레 무리도 묻혀 있다. 몸은 소시지 같고, 앞쪽에서는 가시가 둘러선 주둥이를 뒤집어 내밀 수 있다. 그것을 내밀었다 거두었다 하며 진흙을 파고든다. 청장에서도 버지스에서도 흔했고, 오늘날 바닷바닥의 진흙 속에도 얼마 안 되는 후손이 산다. 다음 절에서 만날, 캄브리아기의 시작을 정해주는 탐색 굴도 아마 이들의 조상에 해당하는 동물이 팠으리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이 동물들은 겹겹의 황록색 이암 속에 보존되어 있다. 눈과 창자, 다리의 가는 털까지 남았다. 청장의 화석은 본래 검은 탄소막과 황철석으로 이루어진 얇은 층이었다. 지표에서 풍화를 겪으면 흔히 녹슨 쇠의 빛깔과 연한 붉은빛으로 바뀐다. 황록색 이암을 바탕으로 드러난 모습은 돌 위에 가는 붓으로 정교하게 그린 중국의 공필화 같다. 1984년 7월 1일, 중국과학원 난징지질고생물연구소의 허우셴광은 청장의 마오톈산에서 이암 한 조각을 쪼개다가 몸이 연한 절지동물 한 마리를 온전한 모습으로 보았다. 나중에 나라오이아라고 불린 동물이다.

그 순간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젖은 바윗면 위에서 금방이라도 헤엄칠 듯했다는 것이다. 청장 생물군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지금은 200종 넘게 기재되었고, 2012년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은 캄브리아기를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 가운데 하나다. 후베이의 칭장은 윈난의 청장과 거의 같은 시대이고, 윈난의 관산은 조금 뒤, 구이저우의 카이리는 더 뒤다. 화석 산지들이 시간순으로 줄을 선다. 사진첩의 앞뒤 몇 장을 넘겨보듯, 같은 바다가 수천만 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 볼 수 있다.

그보다 앞선 수십억 년 동안 지구를 채운 것은 주로 미생물이었다. 거기에 9편에서 만난, 납작하고 정체도 분명치 않은 에디아카라 생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수천만 년 사이에 바다 곳곳이 눈과 다리와 껍데기를 갖추고, 뒤쫓기도 달아나기도 하는 동물로 가득해졌다. 오늘날 동물의 문 대부분에서 그 이른 구성원을 이 시기의 암석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다. ‘캄브리아’는 영국 웨일스의 옛 이름에서 왔다. 1835년 영국 지질학자 세지윅이 웨일스 일대에서 화석이 들어 있는 가장 오래된 지층에 그 이름을 붙였다.

다윈은 이 일로 고민했다. 『종의 기원』에서 그는 복잡한 동물이 캄브리아기에 느닷없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신의 이론이 마주한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했다.

160여 년이 흐른 지금, 대폭발은 진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의 하나가 되었다. 동시에 한마디로 넘겨버리기 쉬운 사건이 되기도 했다. 이번 편에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 폭발 가운데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고, 무엇이 우리의 관측에서 만들어졌는가. 또 그것을 한 차례의 ‘상전이’라고 부르면, 대체 무엇이 설명되는가.

2 벌레가 판 굴 위에 박힌 못

캄브리아기는 어느 날 시작되었을까. 그 질문의 답은 날짜가 아니라 장소다.

지질연대표의 많은 경계선은 세계 어딘가의 실제 암벽에 있는 한 점으로 정의된다. 이 층 위는 새 시대, 아래는 옛 시대다. 이런 점을 흔히 ‘황금못’이라고 부른다. 14편에서 다시 만나고, 23편에서는 따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캄브리아기의 못은 캐나다 뉴펀들랜드섬 남동부, 뷰린반도의 포천헤드에 있는 해안 절벽에 박혀 있다. 정확히는 채플아일랜드층이라는 지층 가운데, 원래 제2부층으로 구분했던 층의 밑면에서 2.4미터 위다. 이 점은 캄브리아기와 고생대, 현생누대의 시작을 한꺼번에 정한다. 현생누대란 ‘눈에 보이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미국 지질학자 채드윅이 1930년에 지은 이름으로, 그 이전의 길고도 긴, 생명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시대와 대비된다.

그 뒤 캄브리아기는 다시 몇 개의 작은 층서 단위인 ‘조’로 나뉘었고, 각 조의 시작에도 못 하나씩이 필요해졌다. 그중 네 개는 중국에 있다. 후난성 화위안의 파이비, 후난성 구장의 뤄이시, 구이저우성 젠허의 우류–쩡자옌 단면, 그리고 저장성 장산의 두이볜이다.

이 못 하나를 고르는 데 20년이 걸렸다. 1972년 국제지질과학연맹은 전담 실무그룹을 만들었다. 세계 곳곳의 후보 단면을 답사하고, 거듭 비교하고 논쟁한 끝에 1992년에야 투표로 결정했다.

1992년 투표 때 경쟁 후보 가운데는 중국의 한 장소도 있었다. 윈난성 진닝의 메이수춘이다. 이곳 지층에는 캄브리아기 극초기의 소형 패각 화석이 대량으로 들어 있었고, 중국 지질학자들이 여러 해에 걸쳐 연구해왔다. 최종 선택은 포천헤드였다.

포천헤드의 못은 어느 동물의 몸에 박힌 것이 아니다. 어떤 행동이 남긴 흔적에 박혔다. 이 생흔화석은 거의 수평인 주 통로를 따라 위아래와 좌우로 작은 탐색 굴들이 비스듬히, 규칙적으로 뻗어나간 모양이다. 지층 밑면에서 보면 아몬드 모양의 작은 혹들을 한 줄로 이어놓은 것 같다.

흔히 하는 해석은 이렇다. 벌레처럼 생긴 좌우대칭 동물이 진흙 속을 나아가면서 사방을 더듬어 먹을 것을 찾았다. 그것이 누구였는지, 그 몸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생누대의 시작은 신원 미상의 동물이 먹이를 찾던 한 동작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 흔적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삼엽충은 훨씬 나중에 나타나며, 각 대륙의 초기 삼엽충은 지역색도 강하다. 소형 패각 화석은 더 일찍 나오지만, 흩어진 조각인 경우가 많아 어디에 속하는지 알기 어렵다. 복잡한 굴은 흔한 암석에도 남는다. 흔적을 만든 동물의 몸 자체가 보존될 필요도 없으면서, 복잡한 동물의 활동을 가리켜준다.

그러다 난처한 일이 벌어졌다. 2001년, 9편에서 데스마스크 모형을 제시했던 겔링 등이 포천헤드를 다시 조사했다. 못에서 3미터 조금 넘게 아래로 내려간 곳과 4미터 넘게 내려간 곳 모두에서 그 지표 생흔이 나왔다. 못에서 7~15미터 아래에도 모양이 비슷한 같은 속의 굴이 있었다. 정의로서의 못은 그 때문에 옮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흔적이 처음 나타나는 바로 그 자리에 못을 박았다’는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았다.

나이도 달라지고 있다. 2019년 나미비아의 한 지층 묶음 꼭대기에서 비슷한 생흔이 보고되었다. 화산재층 두 장 사이에 끼어 있었고, 화산재의 연대는 각각 약 5억 3,900만 년 전과 약 5억 3,860만 년 전이었다.

캄브리아기가 약 5억 3,88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수치는 이 자료에도 일부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2026년에 이를 재검토한 연구는 더 오래된 그 흔적들이 다른 종류의 굴이라고 제안했다. 연대가 믿을 만하게 정해진 지표 생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도, 실은 약 5억 3,300만 년 전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치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주로 세계 각지의 경계 부근에 있는 화산재에서 나온다. 오만과 나미비아의 지층에도 경계 가까이 화산재층이 끼어 있다. 지르콘으로 측정한 연대는 그 숫자를 거듭 현재 쪽으로 끌어왔다.

캄브리아기의 시작을 나타내는 숫자는 수십 년 동안 몇 번이고 바뀌었다. 20세기 후반에는 약 5억 7,000만 년 전이었다가, 1990년대 초에는 약 5억 4,400만 년 전으로 고쳐졌다. 2004년에는 5억 4,200만 년 전, 2012년에는 5억 4,100만 년 전, 2022년에는 5억 3,880만 년 전이 되었다. 포천헤드 암벽 위의 물리적인 그 점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캄브리아기의 나이는 바뀌지만 캄브리아기의 경계는 그대로다.

3 실제로 일어난 순서

그 시기의 화석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한 번의 굉음 대신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이 보인다.

캄브리아기가 시작되기 전에, 9편에서 만난 클라우디나는 이미 단단한 껍데기를 갖추고 있었다. 껍데기에는 포식자가 뚫은 구멍도 있었다. 캄브리아기 처음 수백만 년 동안 바닷바닥은 ‘관의 세계’였다. 온갖 가느다란 관, 원시적인 이빨 모양의 작은 구조, 해면의 골침. 화석 목록은 짧았다. 그중에는 길이가 고작 1~2밀리미터인 갈고리 모양의 작은 가시도 있다. 몇 개씩 모여 나오는데, 오늘날 화살벌레가 입가에 달고 먹이를 붙잡는 갈고리와 무척 닮았다. 알려진 가장 이른 포식자의 ‘이빨’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다음에 소형 패각 화석이 나온다. 밀리미터 크기의 광물질 조각들이다. 작은 모자 같은 껍데기, 비늘, 골편, 가느다란 관. 메이수춘과 세계 각지의 같은 시기 지층에서 석회암을 산으로 녹이면 수천, 수만 알을 걸러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수십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석회암을 한 덩이씩 아세트산에 담가 몇 주씩 기다리곤 한다. 그리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남은 찌꺼기에서 하나하나 골라낸다.

소형 패각 화석은 동물 한 종류를 뜻하지 않는다. 여러 물건을 담아놓은 바구니다. 동물 한 마리가 죽으면 모양이 제각각인 골편 수십, 수백 개로 흩어지는 일이 흔하다. 쇠사슬 갑옷 한 벌이 풀어져버린 것과 같다. 주워 담는 것은 모양이 서로 다른 작은 조각들이다.

그 갑옷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다시 맞춰졌다. 시리우스 파세트라는 화석 산지는 그린란드 지질조사소의 연구자들이 1984년에 발견했다. 청장이 발견된 바로 그해다.

1990년 영국과 덴마크의 연구자들은 그린란드 북부 시리우스 파세트에서 할키에리아의 온전한 화석을 찾아냈다. 길이가 몇 센티미터인 동물의 등에 여러 모양의 골편이 빽빽하게 덮여 있었고, 머리 쪽과 꼬리 쪽에는 작은 껍데기가 하나씩 얹혀 있었다. 서로 다른 분류군의 것으로 여겼던 조각들이 사실은 한 몸의 일부였던 것이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레나강과 그 지류인 알단강 양쪽 강변에는 캄브리아기 절벽이 길게 이어진다. 지층이 책장처럼 켜켜이 포개져 있다. 초기 캄브리아기의 몇몇 조는 토모트처럼 이 일대의 작은 지명에서 이름을 따왔다. 1950~1960년대 소련 고생물학자들은 이곳에서 소형 패각 화석을 체계적으로 모아, 캄브리아기 최초의 동물들을 처음으로 순서에 맞게 늘어놓았다.

약 5억 2,500만 년 전에는 골격을 갖춘 동물이 더 풍부해졌다. 완족동물과 히올리테스류, 고배동물이라는 해면 무리가 있었다. 그중 고배동물은 미생물과 함께 얕은 바다에 캄브리아기 최초의 대규모 동물초를 세웠다. 고배동물은 벽이 이중인 작은 컵들처럼 생겼다. 컵의 벽에는 작은 구멍이 가득하고, 높이는 대부분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얕은 바닷바닥에 무더기무더기 서 있었다.

이들은 1,000만 년 넘게 번성하다가 캄브리아기 중기에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그 뒤 지구의 생물초에는 오랫동안 빈자리가 남았고, 한참 후에야 다른 동물들이 그 자리를 맡았다. 약 5억 2,100만 년 전에는 최초의 삼엽충이 나타났다. 중국 전기 캄브리아기에 가장 흔한 삼엽충의 하나가 레들리키아다.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으며, 양 볼에서 기다란 가시가 뻗는다. 윈난, 구이저우, 산시의 셰일에서 곳곳에 보이는 화석이어서, 지질학을 배우는 많은 학생이 맨 처음 익히는 삼엽충이기도 하다.

좀 더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대륙에서 가장 이른 삼엽충이 기록에 들어오는 시기는 약 5억 2,100만~5억 2,000만 년 전으로 거의 같다. 차이는 약 100만 년이며, 대륙 사이 지층을 대비할 때의 오차와 비슷하다. 약 5억 2,000만 년 전에는 최초의 극피동물이 나타났다. 약 5억 1,800만 년 전 청장의 연한 몸 동물군에서는 절지동물과 척삭동물, 그 밖의 수많은 무리가 이미 크게 분화해 있었다.

아주 작은 동물도 보존되었다. 산시성 남부 콴촨푸 일대의 약 5억 3,500만 년 전 지층에는 인산염으로 보존된 밀리미터 크기의 작은 동물이 대량으로 들어 있다.

2017년 시베이 대학교의 한젠 등은 그곳에서 크기가 고작 1밀리미터인 동물 한 종류를 기재했다. 온몸에 주름이 잡히고 입을 크게 벌린 사코리투스다. 처음에는 인간이 속한 후구동물의 가장 이른 구성원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다. 그러나 2022년 더 완전한 스캔을 해보니, 실은 다른 큰 동물 무리의 초기 구성원이었다. 오늘날 곤충과 선충의 먼 친척이었다. 1밀리미터짜리 작은 것 하나가 5년 만에 족보를 갈아탔다.

캄브리아기 내부의 조 구분도 아직 전부 확정되지는 않았다. 시작점에 못을 박지 못한 조가 몇 개 남아 있다. 여러 대륙에서 서로 대응시키기 좋으면서 출현도 충분히 갑작스러운 화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폭발’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이 연속된 과정 가운데 어디를 폭발이라 부르느냐에 달려 있다.

5억 3,000만 년 전부터 5억 2,000만 년 전까지를 잡으면 약 1,000만 년이다. 캄브리아기 밑 경계부터 삼엽충이 나올 때까지 세면 약 1,800만 년. 캄브리아기 이전의 준비 과정까지 넣으면 약 3,000만 년이다.

한 가지 더 기억할 점이 있다. ‘어느 문이 처음 나타났다’는 말은 많은 경우 그 문의 총군이 처음 식별되었다는 뜻이다. 9편에서 총군과 관군을 구별했다. 캄브리아기 동물 한 마리가 분명 어느 문의 한 갈래에 속하면서도, 오늘날 그 문을 떠올릴 때 익숙한 모습은 전혀 갖추지 않았을 수 있다.

오늘날의 소형 동물 문 가운데는 캄브리아기 화석으로 이견 없이 인정받은 것이 없는 무리도 많다. 편형동물과 유형동물이 그런 예다. 1밀리미터 이하이고 단단한 구조도 전혀 없는 동물은 캄브리아기 기록에 무엇을 남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기록에 없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4 기록에 빛이 들어오다

캄브리아기가 그토록 풍성해 보이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관측하는 우리 쪽에 있다.

첫 번째 통로는 연한 몸이 보존되는 창이다. 1909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월컷은 캐나다 로키산맥의 버지스 고개 일대에서 몸이 연한 동물들이 보존된 검은 셰일을 발견했다.

월컷은 당시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수장이었고, 여름마다 가족과 함께 산으로 채집을 떠났다. 부인이 탄 말이 산길에서 미끄러지다가 납작한 돌 하나를 발로 차 뒤집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꼭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버지스 셰일은 그때부터 이름을 떨쳤다. 그곳 동물들은 해저 절벽 아래에 살았다. 비탈에서 진흙 흐름이 거듭 쏟아져 내려와 그 자리에서 동물들을 산소 부족한 진흙 속에 재빨리 묻었다. 사체를 먹는 동물과 세균이 손댈 틈도 없이 몸은 점토에 눌려 얇은 검은 막으로 남았다.

월컷은 평생 표본을 6만 점 넘게 모았고, 동물 대부분을 기존의 문 안에 밀어 넣었다. 그곳에서 가장 흔한 동물은 길이가 고작 2센티미터인 절지동물 마렐라였다. 머리에서 긴 가시 두 쌍이 뻗는 동물로, 채집된 표본이 2만 점을 넘는다.

60년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휘팅턴과 그의 제자 콘웨이 모리스, 브리그스가 이 표본들을 다시 연구했다. 많은 동물이 알려진 어느 문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파비니아라는 동물은 머리에 눈이 다섯 개 달리고, 앞에는 소방호스 같은 긴 코가 뻗어 있었다. 코끝에는 집게 하나가 달렸다. 1972년 휘팅턴이 학술회의에서 복원도를 보여주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농담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노말로카리스의 이야기는 더 꼬여 있다. 커다란 집게 한 쌍은 이미 1892년에 새우의 몸통으로 기재된 적이 있다. 둥근 고리 모양의 입은 해파리로 여겨졌다.

몸통은 처음에는 해삼으로, 그 뒤에는 해파리와 해면이 겹쳐진 화석으로 해석되었다. 세 부분에는 이름도 따로따로 붙었다. 1985년에야 휘팅턴과 브리그스가 그것들이 한 동물의 몸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보았다.

등에 가시 두 줄이 솟고 아래로 말랑한 육질 다리들이 한 줄로 늘어선 또 다른 동물은 운명이 더 기묘했다. 1977년 복원할 때 몸을 거꾸로 세워버렸다. 가시는 다리가 되고, 다리는 등 위의 촉수가 되었다. 이름부터 할루키게니아, 환각 같은 동물이었다. 1991년 연구자들이 청장에서 나온 가까운 친척과 대조하고서야 바로 뒤집어놓았다. 2015년에는 어느 끝이 머리인지도 알아냈다.

버지스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2014년 캐나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의 카롱 등은 원래 산지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마블캐니언에서 새 버지스형 화석 산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불과 몇 주 동안 표본 수천 점을 모았고,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새로운 종이었다. 중국 구이저우의 카이리 생물군은 버지스와 연대가 비슷하며, 몸이 연한 동물도 대량으로 보존하고 있다. 청장과 버지스 사이의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다.

버지스 셰일은 1980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나중에는 캐나다 로키산맥 공원군에 합쳐졌다. 지금은 안내원과 동행해 산길을 몇 시간 걸어가야만 볼 수 있다.

버지스와 청장 같은 화석 산지는 50곳 넘게 알려져 있으며 여러 고대 대륙에 흩어져 있다. 2019년에는 시베이 대학교의 푸둥징 등이 후베이성 창양의 칭장 생물군을 보고했다. 약 5억 1,800만 년 전의 생물군이다. 표본 4,000점 넘게 모아 확인한 분류군 가운데 절반이 넘는 것이 새로 알려진 것이었다. 해파리와 빗해파리, 가냘프고 몸이 연한 동물이 대량으로 나왔다. 같은 시대의 청장과도 구성은 사뭇 달랐다.

화석 산지 하나가 바다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버지스와 청장은 전 세계적으로 연한 몸이 유난히 잘 보존되던 시간의 창 안에 있는 두 장소다. 이런 창은 캄브리아기 중기에서 후기로 가면서 뚜렷하게 줄어든다. 산지만 바꾸어도 우리가 보는 ‘동물 다양성’은 몇 배씩 달라질 수 있다. 한 정량 비교에서는 청장에 기록된 분류군 수가 나이가 비슷한 시리우스 파세트보다 약 300퍼센트 많아 네 배쯤 되었고, 버지스의 대표적인 옛 채석장보다 약 27퍼센트 많았다.

더 작은 창도 하나 있다. 11편에서 만날 스웨덴의 ‘냄새나는 돌’, 오르스텐이다. 후기 캄브리아기의 석회암 결핵체를 산에 담가 녹이면 1밀리미터 안팎의 입체적인 절지동물이 나온다. 다리의 뻣뻣한 털까지 그대로다. 청장과 버지스의 사진으로도 선명하게 잡히지 않던 한 층이 여기서 보인다. 해저 진흙 틈에 살던 가장 작은 동물들이다.

두 번째 통로는 골격의 출현이다. 지질학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여러 계통이 저마다 광물질의 단단한 몸 부분을 갖추었다. 재료도 탄산칼슘, 인산칼슘, 이산화규소로 제각각이었다.

동물의 탄산칼슘 골격만 따져도 서로 독립적으로 생겨난 횟수가 적어도 스무 번쯤은 된다고 추정한다. 껍데기와 골편, 관과 외골격이 생기자, 얕은 바다의 흔한 석회암이나 셰일에도 알아볼 만한 조각이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달라진 것은 동물이 얼마나 많았느냐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동물이 눈에 보일 수 있느냐도 달라졌다. 실제 종수가 꾸준하고 완만하게 늘어났더라도, 골격이 생기는 것만으로 다양성 곡선에 가파른 상승 구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골격은 새로운 보존 방식도 낳았다. 삼엽충 한 마리는 평생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그때마다 해저에 빈 껍데기 한 벌을 남긴다. 지층 속 삼엽충 화석 가운데 상당수는 실은 벗어놓은 헌 옷이다. 동물 한 마리가 ‘화석’을 여러 점 남길 수 있는 셈이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동물은 더 쉽게 보존될 뿐 아니라, 여러 번 보존되기도 더 쉽다.

세 번째 통로는 암석 자체다. 2024년 북아메리카의 층서 데이터베이스와 고생물 데이터베이스를 비교한 연구가 나왔다. 에디아카라기 말에서 후기 캄브리아기까지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해양 퇴적암의 양은 다섯 배 넘게 되었다. 화석 수와 해양 퇴적암의 양 사이 상관계수는 0.8 이상이었다. 11편에서는 이 상관관계를 읽는 두 가지 방식을 다룰 것이다.

이 세 통로가 합쳐서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는지는 지금으로서는 떼어 계산할 수 없다. 다양성의 봉우리 하나를 ‘40퍼센트는 실제 방산, 60퍼센트는 보존 효과’로 나눠줄, 널리 합의된 보정계수는 없다.

5 네 개의 곡선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굳어진 표현이 과학 문헌에 들어온 것은 대략 1960년대다. 이 말이 늘 같은 양을 일관되게 가리켰던 적은 없다.

서로 다른 곡선이 적어도 네 개 있다. 어떤 분류군이 처음 나타난 시점, 종과 속의 수, 몸 구조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생태가 얼마나 복잡한지다. 네 곡선은 같은 박자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생태의 복잡성은 직접 그려볼 수 있다. 2008년 미국의 연구자들은 화석 속 위 내용물과 분변화석, 물린 자국, 입 구조의 형태를 바탕으로 청장과 버지스의 먹이그물을 한 가닥씩 연결했다. 누가 누구를 먹고, 누구에게 먹히며, 포식자의 층위는 몇 단계인지 그려나갔다.

그렇게 그린 그물은 구조상 오늘날 바다의 먹이그물과 이미 상당히 비슷했다. 5억여 년 전 바다에도 먹고 먹히는 관계가 어엿한 그물을 이루고 있었다.

몸 구조가 얼마나 다른지를 나타내는 ‘형태적 차이도’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값이다. 옷가게에 빗대보자. 한 가게는 셔츠를 1,000종류 판다. 다른 가게의 상품은 열 가지뿐인데, 셔츠와 바지, 신발, 모자, 우산을 각각 한두 종류씩 판다.

앞의 가게는 상품의 가짓수가 많고, 뒤의 가게는 상품 사이의 차이가 크다. 동물마다 몇 가지 몸의 특징을 점수로 매긴다고 해보자. 몸에 마디가 있는가, 부속지는 몇 쌍인가, 좌우대칭인가.

그러면 동물 한 종류는 다차원 공간의 점 하나가 된다. 그 점들이 얼마나 넓게 흩어져 있는지가 차이도다. 종수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동물 열 종은 넓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서로 닮은 동물 1만 종은 조그만 한 구석에 몰릴 수도 있다.

1989년 미국의 굴드는 버지스 셰일을 다룬 『원더풀 라이프』를 펴냈다. 제목은 1946년 미국 영화 『멋진 인생』에서 빌려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보게 된다. 굴드는 캄브리아기 초에 몸 구조의 다양성이 폭발했고, 그 뒤로는 다시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았다. 그 기묘한 동물들은 저마다 독립된 문을 대표하며, 이후의 역사는 그것들을 덜어내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생명의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틀면 살아남는 동물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책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훗날 콘웨이 모리스는 그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창조의 도가니』를 썼다. 그 동물들은 대부분 알려진 문에 넣을 수 있으며, 진화를 다시 돌려도 비슷한 해법에 거듭 도달하리라는 주장이었다.

한쪽은 버지스 표본을 직접 연구한 사람, 다른 쪽은 버지스 이야기를 온 세상에 들려준 사람이었다. 둘은 책을 통해 공개적으로 맞붙었다. 콘웨이 모리스가 즐겨 든 예는 눈이다. 동물에서 상을 맺는 눈은 서로 독립적으로 여러 번 나타났다. 문어의 눈과 사람의 눈은 구조가 비슷하지만 각자 생겨났다.

1992년 브리그스, 포티, 윌스는 이를 정량적으로 시험했다. 캄브리아기 절지동물과 현대 절지동물을 같은 형태 분석에 넣었다. 현대 절지동물이 펼쳐 보이는 차이의 범위는 캄브리아기와 대체로 비슷했다. 캄브리아기에 형태가 빠르게 진화한 것은 맞지만, 그 뒤에는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최대치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논쟁은 ‘형태 공간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어떤 형질을 고르고 거리를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굴드의 책은 버지스 셰일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동물, 피카이아로 끝난다. 길이 몇 센티미터의 납작한 몸에, 등 쪽으로 척삭 같은 구조가 한 가닥 뻗어 있다. 당시에는 척삭동물의 가장 이른 대표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굴드는 테이프를 다시 돌렸을 때 피카이아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훗날 척추동물도 우리도 없을 것이라고 썼다. 나중에 발견된 청장의 밀로쿤밍기아와 하이코우이크티스는 피카이아보다 오래되었고 물고기에도 더 가깝게 생겼다. 그 문장의 주인공은 바뀔 수 있다.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두 책의 차이는 결국 우연과 필연의 다툼이다. 굴드가 강조한 것은 우연이었다. 다시 재생하면 결말은 완전히 달라진다. 콘웨이 모리스가 강조한 것은 필연이었다. 생명이 갈 수 있는 길은 실은 많지 않아서, 다시 틀어도 비슷한 곳에 다다른다. 양쪽 모두 버지스 화석에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예를 찾을 수 있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기묘한’ 동물들도 나중에는 하나씩 자리를 찾았다. 아노말로카리스는 절지동물 줄기군의 한 갈래이며, 할루키게니아는 벨벳벌레의 먼 친척이다. 벨벳벌레는 지금도 열대림의 낙엽과 썩은 나무 속에 산다. 몸은 부드럽고 짧고 통통한 다리가 쌍쌍이 달렸다. 사냥할 때는 머리 양옆에서 한 줄기씩, 두 줄기의 점액을 쏘아 작은 벌레를 들러붙게 한다. 오파비니아도 절지동물의 줄기 계통에 놓인다. 그들이 덜 기묘해진 까닭은 우리가 그들을 놓을 자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는 관찰의 창에서도 편향이 생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과거가 밀어주는 힘’이라고 부른다. 2018년 영국의 버드와 맨은 오늘까지 살아남은 계통들이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계통의 무작위 표본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초기에 빠르게 퍼지고 큰 다양성을 확보한 계통일수록 지금까지 버텼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현생 문’을 기준으로 캄브리아기를 돌아보면, 당시에 가장 성공적으로 뻗어나갔던 무리들에 자연히 시선이 모인다. 그래서 현생 문들이 하나같이 아주 이르게, 아주 빠르게 나타난 듯 보인다. 특별한 생물학적 기제가 없어도 된다. 우리가 결과 쪽에서 거꾸로 보고 있다는 사실만 유의하면 된다.

반대 방향의 증거도 마찬가지로 단단하다. 굴과 이동 흔적은 갈수록 복잡해지며, 이는 동물에게 단단한 껍데기가 있었는지와 무관하다. 여러 대륙에서는 수천만 년 사이에 서로 독립적인 광물화 체계들이 나타났다.

삼엽충은 여러 대륙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약 5억 1,800만 년 전의 연한 몸 화석 산지 여러 곳에는 이미 서로 깊이 갈라진 수많은 분류군이 들어 있다. 이 네 가지 사실은 네 종류의 기록에 걸쳐 있다.

굴, 광물질의 단단한 부분, 탄소질로 남은 연한 몸은 서로 다른 경로로 보존된다. 그래도 어떤 암석이 남고 드러나며 채집되는지에 따른 편향은 공유한다. 완전히 독립된 세 증거는 아니다. 그렇다고 광물화 하나만으로 이 기록들에 나타난 복잡화를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광물화는 ‘첫 출현’을 부풀릴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생태가 복잡해진 일을 설명할 수는 없다.

2019년 삼엽충의 형태 형질을 이용해 캄브리아기 전체의 진화 속도를 추정한 연구에서는 속도가 대체로 일정했다. 삼엽충이 대량으로 등장할 때쯤이면, 주요 몸 설계의 차이를 만들어낸 그 한 차례의 빠른 변화는 상당 부분 이미 지나갔다는 뜻이다. 설명해야 할 ‘빠름’은 더 이르고 기록도 더 빈약한 시기로 밀려난다.

6 왜 하필 그때였을까

왜 5억여 년 전이었을까. 여러 설명이 있고, 저마다 한 부분씩을 짚는다.

우선 시점부터 보자. 캄브리아기가 시작될 때는 마지막 눈덩이 지구 빙하기가 끝난 지 채 1억 년도 지나지 않았다. 얼어붙었던 지구가 녹고 나자 바다와 대기의 화학 상태가 크게 요동쳤다. 9편에서 만난 에디아카라 생물은 해빙 뒤의 이 시기에 등장했다. 동물의 부상은 전 지구적 격변들이 잇달아 지나간 바로 뒤를 밟고 온 셈이다.

첫 번째 설명은 산소다. 4편에서 보았듯 산소의 역할은 강도를 나누어 말해야 한다. 가장 약한 주장은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산소가 부족한 바다에서는 육식 동물의 비율이 눈에 띄게 낮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큰 동물은 산소가 충분해야 한다.

중간 강도의 주장은 ‘캄브리아기 전후에 문턱을 넘었다’는 것이다. 2015년의 한 연구는 전기 캄브리아기에 산소가 있는 해저의 면적이 늘어나고 있었다고 추론했다. 가장 강한 주장은 ‘한 차례의 급격한 산소 증가가 폭발을 직접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쪽의 증거가 가장 약하다. 최근의 종합 추정에서 캄브리아기의 산소는 지금의 10~40퍼센트였을 수 있다. 범위가 넓다. 동물 자신도 바다의 산화 상태를 바꾸고 있었으므로, 인과의 방향은 거꾸로일 수도 있다.

포식의 증거는 화석 몸에 쓰여 있다. 미국의 배브콕이 캄브리아기 삼엽충을 대량으로 조사하자, 물렸다가 아문 상처를 지닌 개체가 많이 나왔다. 가장자리에서 뜯겨 나간 부분이 나중에 다시 자라나 있었다.

흉터가 있는 삼엽충 가운데 약 70퍼센트는 몸의 오른쪽에 상처가 있었다. 포식자가 오른쪽에서 무는 습관이 있었거나 삼엽충이 왼쪽으로 달아나는 습관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나왔다. 청장과 버지스의 분변화석에도 삼엽충 껍데기 조각이 흔히 섞여 있다.

산소에는 덜 눈에 띄는 쓰임도 있다. 동물의 몸을 받치는 단백질인 콜라겐은 피부와 인대, 뼈에 들어 있다. 콜라겐 합성의 핵심 단계 하나에는 분자 산소가 필요하다. 큰 동물의 몸은 콜라겐으로 뼈대를 세워야 하므로, 산소가 부족하면 그 뼈대 자체를 세울 수 없다는 주장이 이미 1970년에 나왔다.

두 번째 설명은 포식이다. 먹잇감 쪽도 방도를 찾았다. 캄브리아기의 일부 삼엽충은 이미 배 쪽으로 몸을 말 수 있었다. 공벌레처럼 둥글게 웅크려 부드러운 배와 다리를 단단한 껍데기 안에 숨겼다. 오르도비스기에는 이 재주가 아주 흔해졌다.

포식자가 있으면 운동 능력과 감각, 방어 장치와 골격이 모두 쓸모를 얻는다. 군비 경쟁이 벌어진다. 클라우디나 껍데기에 뚫린 구멍은 경계 아래에 있다. 포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캄브리아기는 그것이 점점 격해진 시기다. 영국의 파커는 ‘불 켜기’ 가설을 제안했다. 눈이 생기면서 사냥꾼은 처음으로 먼 거리에서 먹이를 볼 수 있게 되었고, 먹잇감에게도 처음으로 은신처와 갑옷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 주장을 『눈 깜짝할 사이에』라는 책으로 썼다.

세 번째 설명은 바닷바닥의 변화다. 9편에서 보았듯 에디아카라의 해저에는 질긴 미생물 매트가 넓게 깔려 있었다. 진흙 속에 굴을 파는 동물이 늘면서, 안정된 매트 표면은 차츰 부드럽고 물을 머금은, 뒤섞인 진흙 바닥으로 바뀌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이 혁명은 단계적으로 일어났고, 추정도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어떤 모형에서는 전기와 중기 캄브리아기 해저의 평균 혼합 깊이를 1센티미터도 안 되는 몇 밀리미터로 본다. 다른 연구에서는 전기 캄브리아기에 이미 상당한 혼합층이 생겼다고 본다. 어느 쪽이든 오늘날 해저의 혼합 깊이인 5~10센티미터와는 거리가 멀다. 원인도 결과도 동물이다. 동물이 굴을 파서 해저를 바꾸었고, 달라진 해저가 다시 동물을 바꾸었다.

이것은 과정이 어떻게 빨라지는지를 설명한다. 그 시작이 어디서 왔는지는 따로 찾아야 한다. 승자와 패자도 있었다. 미생물 매트 위에 누워 먹고살던 동물들, 에디아카라식 삶은 몇몇 구석으로 밀려났다. 7편에서는 선캄브리아기 후기, 특히 약 7억~6억 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다양성이 크게 줄어든 일을 보았다. 10억 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한결같이 감소했다는 뜻은 아니다. 캄브리아기의 여러 해저 환경에서는 그 영역이 더 좁아졌다.

네 번째 설명은 발생의 도구상자다.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루이스는 수십 년간 연구해온 초파리 돌연변이를 발표했다. 어떤 돌연변이는 초파리에 날개 두 쌍을 만들었다. 원래 평형봉이 나던 마디가 또 하나의 날개 달린 가슴마디로 바뀐 것이다.

그는 이 연구로 1995년 노벨상을 받았다. 동물의 몸이 머리에서 꼬리까지 어떻게 배열되는지를 조절하는 유전자들을 호메오틱 유전자라고 한다. 초파리에서는 돌연변이 하나로 더듬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가 돋을 수 있다.

비교유전체 연구를 보면, 이런 유전자와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 경로는 캄브리아기보다 훨씬 전에 동물의 공통 조상에게 이미 있었다. 일부는 동물보다도 오래되었다. 눈도 마찬가지다.

1995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발터 게링은 초파리로 놀라운 실험을 했다. 눈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 하나를 다리와 날개에서 켜자, 그곳에 겹눈이 추가로 생겨났다. 더 놀라운 것은 같은 유전자를 생쥐의 것으로 바꾸어도, 초파리 몸에는 여전히 초파리의 겹눈이 생겼다는 점이다.

곤충과 포유류의 눈은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를 켜는 것은 똑같은 오래된 스위치다. 5편과 8편에서도 같은 모양의 이야기를 만났다. 부품이 먼저 있고, 쓰임은 나중에 달라진다. 언제 달라졌는지는 유전체만으로 대답할 수 없다.

캄브리아기 초의 바닷물에는 인 역시 유난히 많았다. 윈난성 쿤밍 근처 쿤양 일대에는 캄브리아기 극초기의 인광암층이 있다. 중국 최대급 인광석 광상 가운데 하나다. 메이수춘은 바로 그 곁에 있으며, 그곳 소형 패각 화석의 상당수가 인광암에 보존되어 있다. 영양분이 많아지면 바다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생물도 많아진다.

다섯 번째 설명은 바닷물의 화학이다. 11편에서는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대부정합을 다룬다. 그곳에는 수억 년에 해당하는 지층이 한 페이지도 남지 않았다. 2012년 미국의 피터스와 게인스는 캄브리아기 초에 바닷물이 오랫동안 풍화된 대륙 위로 대규모로 밀려들면서, 칼슘과 인, 칼륨 같은 이온을 대량으로 바다에 씻어 넣었다고 제안했다. 껍데기를 만드는 비용이 갑자기 싸졌다는 것이다. 화학은 껍데기 만들기가 왜 쉬워졌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눈과 다리는 설명하지 못한다.

마지막은 ‘단 하나의 방아쇠는 없었다’는 종합적인 입장이다. 맞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사후에 작성한 목록으로 변하기도 가장 쉽다. 들어맞지 않는 관측이 있으면 요인 하나를 더 넣어 메우면 된다. 유용한 설명이 되려면 미리 분명히 말해야 한다. 어떤 요인이 어느 사건보다 먼저 나타나야 하는가. 어떤 환경에서 가장 강해야 하는가. 그 요인이 없다면 무엇을 볼 수 없어야 하는가.

7 분자시계와 화석

다윈은 일찍이 이 점을 예견했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자신의 이론이 옳다면 캄브리아기 맨 아래 지층이 쌓이기 전에 틀림없이 기나긴 시간이 흘렀을 것이며, 세상은 이미 생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우리가 아직 그 흔적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썼다. 100여 년 뒤 분자시계가 그 문장에 숫자를 달아주었다.

분자시계는 화석으로 보정해야 한다. 가장 이른 확실한 화석은 최소한의 나이를 알려준다. 가령 최초의 삼엽충이 있다는 것은 절지동물과 그 가까운 친척이 이미 그 전에 갈라졌다는 뜻이다.

그런 최소 나이들을 계통수 하나에 여럿 배치하고, 유전자가 변하는 속도를 더해야 화석이 없는 분기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추산할 수 있다. 분자시계가 제시하는 동물의 기원은 대체로 화석보다 이르다. 2004년의 한 연구는 좌우대칭동물의 공통 조상을 약 6억 5,000만~5억 7,000만 년 전에 놓았다.

동물 계통수 맨 밑에서 처음 갈라진 가지가 어느 쪽인지도 아직 논쟁 중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해면이 가장 먼저 갈라져 나간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신경도 근육도 없으며, 구조가 가장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유전체 분석에서는 빗해파리가 맨 밑에 놓인다. 빗해파리는 신경과 근육을 갖추고, 줄지어 난 섬모로 물속을 헤엄치며 무지갯빛을 낸다. 2023년 염색체에서 유전자들이 놓인 순서를 비교한 연구도 빗해파리가 먼저 갈라졌다는 해석을 다시 지지했다. 그렇다면 신경과 근육은 두 번 이상 생겼을 수 있다. 또는 해면에게도 한때 있었다가 나중에 사라졌을 수 있다.

캄브리아기 이전에도 확실한 좌우대칭동물은 있었다. 9편에서 만난 킴베렐라와 이링기아는 이미 5억 5,000여만 년 전에 바닷바닥에서 먹이를 긁어 먹고 기어 다녔다.

어떤 분자시계 연구는 동물 관군의 공통 조상에 대한 추정의 중심값을 약 7억여 년 전에 놓는다. 반면 2024년에 다시 보정한 연구는 그 시기를 에디아카라기 초까지 늦추었다. 추정치 대부분은 캄브리아기 화석보다 수천만 년에서 1억여 년 이르며, 각각의 신뢰구간도 흔히 1억 년에 이를 만큼 넓다.

분자시계 자체가 나이를 너무 오래 잡을 수도 있다. 동물의 계통들이 막 갈라지던 무렵 몸집이 작고 세대교체가 빨랐다면, 유전자가 변하는 속도도 그 뒤보다 훨씬 빨랐을 수 있다.

나중의 느린 속도로 거슬러 계산하면 갈라진 시점은 너무 먼 과거로 밀려난다. 계통수의 여러 부분에서 속도가 달라질 수 있도록 어떻게 모형에 담을 것인가. 분자시계 연구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대목이다.

격차가 얼마나 큰지는 어느 두 끝점을 비교하느냐에 달려 있다. 6억 5,000만~6억 년 전의 분기를 5억 3,800만 년 전의 복잡한 굴과 비교하면, 차이는 6,000만~1억 1,000만 년이다.

5억 2,100만 년 전의 뚜렷한 동물 화석과 비교하면 8,000만~1억 3,000만 년이다. ‘분자시계에 따르면 동물은 화석보다 1억 년 먼저 생겼다’고 할 때, 그 1억 년은 특정한 두 끝점 사이를 잰 값이다.

9편에서 보았듯, 2024년 화남의 한 연구는 에디아카라기의 해면 비슷한 화석을 해면동물의 관군에 넣었다. 캄브리아기 이전에도 더 이른 동물을 가리키는 단서들이 있다. 구이저우성 웡안의 약 6억 년 전 인광암에서는 1998년부터 크기가 몇백 마이크로미터밖에 안 되는 구형 화석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어왔다. 안에는 분열 중인 세포가 둘, 넷, 여덟 개씩 들어 있다. 동물 배아가 난할하는 모습 같다.

그것들이 동물의 배아인지에 대해서는 20여 년 동안 논쟁이 이어졌다. 다른 단세포생물의 휴면체에 더 가깝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6억여 년 전 암석에서는 해면만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진 분자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 분자에 다른 기원이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동물은 아마 캄브리아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몸집이 작고 몸이 연해서, 남긴 흔적이 적고 알아보기도 어려웠을 뿐이다.

몸집이 작은 동물은 원래 흔적을 남기기 어렵다. 오늘날 바닷바닥에서 진흙 한 줌을 아무렇게나 퍼 올려도 그 안에 1밀리미터 이하인 작은 동물이 수백, 수천 마리씩 들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선충과 요각류, 아주 작은 환형동물들이다. 이들은 해저 동물의 대부분을 이루지만 거의 화석이 되지 않는다. 캄브리아기 이전의 동물이 대체로 이런 작은 것들이었다면,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주지 못한다.

이는 옛날 사진을 현상하는 일과 조금 닮았다. 필름이 노출되는 순간 이미 상은 맺혀 있다. 다만 보이지 않는다. 현상액에 담가야 조금씩 떠오른다. 동물의 계통은 훨씬 전에 이미 ‘노출’되었고, 캄브리아기는 그것이 암석 속에서 현상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흔히 제시하는 절충은 이렇다. 계통의 분기는 일찍 일어났지만, 그때 동물은 작고 연하며 수가 적고 생태적으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시 수천만 년이 흐르는 동안 몸집과 골격, 운동 능력과 수가 함께 늘어났고, 그제야 이 계통들이 보통의 화석 기록에 들어왔다. 분자시계가 제약하는 것은 계통이 언제 갈라졌는지다. 캄브리아기 기록이 주로 보여주는 것은 그 계통들이 언제부터 눈에 보이게 되었는지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보존에 잘 견디는 단단한 몸 부분을 가진 분류군에서는 화석이 그 기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경우 분자 추정과 가장 이른 화석의 연대는 흔히 잘 맞는다.

가장 큰 불일치는 아직 단단한 몸 부분이 없던, 줄기군 깊숙한 단계에 몰려 있다. 단단한 부분이 있는 분류군에서 두 방법 자체가 더 정확해진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화석 쪽의 감도가 높아진 것이다.

8 상전이와 가림막

‘상전이’는 물리학에서 빌려온 말이다. 물은 섭씨 0도에서 얼음이 된다. 온도는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물 분자의 배열은 갑자기 무질서한 상태에서 가지런한 상태로 바뀐다. 물리학자는 이렇게 임계점을 넘은 뒤 상태가 갑작스럽게 바뀌는 일을 상전이라고 한다. 솔깃한 비유다. 캄브리아기에도 지구의 생명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선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연작은 어떤 순간들을 설명하면서 ‘상전이’라는 말을 몇 번 썼다. ‘캄브리아기는 한 차례의 상전이였다’고 하면 무언가 설명한 듯 들린다. 여기서는 그 뜻을 가능한 한 좁게 정해놓고, 캄브리아기가 그 자격을 갖추는지 살펴보자.

이 연작에서 상전이는 선택의 단위가 바뀌는 순간을 뜻한다. 원래 저마다 복제되고 각자 적합도를 지니던 단위들이, 하나로 번식하는 새로운 상위 수준에 통합된다. 아래 수준 단위들의 독립성은 체계적으로 사라진다. 이 정의에는 ‘크다’, ‘빠르다’, ‘중요하다’ 같은 말이 없다. 묻는 것은 하나다. 누가 선택받고 있는가.

5편의 미토콘드리아가 한 예다. 자유롭게 살던 세균이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가 독립해서 살 능력을 잃었다. 그 뒤에는 합쳐진 몸 전체가 하나로 복제되고 선택받는다. 8편의 다세포성도 한 예다. 세포는 더 이상 제각기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번식하는 몸을 이룬다. 가장 넓게 헤아리면 이 일은 45번 일어났다. 그러니 이 판별 기준은 ‘대단한 사건’을 고르는 기준이 아니다. 특정한 구조 변화 하나를 가려낼 뿐이며, 그런 변화는 상당히 흔할 수도 있다.

뒤에서 또 다른 후보를 만나게 된다. 16편의 진사회성이다. 개미와 꿀벌의 집단에서는 대부분의 개체가 번식을 포기하고, 둥지의 집단 전체가 몸 하나처럼 선택받는다.

이 개념은 영국의 메이너드 스미스와 헝가리의 서트마리가 1995년에 함께 쓴 『진화의 중대한 전환』에서 왔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6편에서 만난, 원래 비행기를 설계하던 생물학자다. 두 사람은 생명의 역사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중대한 전환을 열거했다. 분자들이 막에 싸여 같은 복제 체계에 들어간 일,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홀로 살기에서 분업하는 사회 집단으로의 전환, 그리고 인간의 언어다.

그 목록은 여기서 쓰는 판별 기준보다 넓다.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의 변화도 포함한다. 캄브리아기 동물의 방산은 그 목록에 없다.

판별 기준은 확인할 수 있는 세 질문으로 나눌 수 있다. 원래 따로 번식하던 단위가 독립해서 번식할 능력을 잃었는가. 적합도를 하나로 지니는 새로운 번식 실체가 생겼는가. 아래 수준 단위들 사이의 갈등이 어떤 기제에 의해 체계적으로 억제되는가. 세 조건이 모두 성립해야 수준이 바뀌었다고 부른다.

12편과 14편에서는 같은 자를 들이대어 육상 진출과 페름기 말 대멸종도 재볼 것이다. 캄브리아기에 대보면 세 조건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

다세포동물은 캄브리아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 캄브리아기에 기록된 변화, 곧 골격과 부속지, 눈과 커진 몸, 포식과 굴 파기는 모두 이미 있던 동물 개체라는 수준 안에서 일어났다. 먹이그물과 생태계는 복잡해졌고, 서로 다른 동물들의 운명도 점점 더 얽혔다. 하지만 생태계 전체가 하나로 번식하는 실체가 된 것은 아니다.

캄브리아기 뒤에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방산이 있었다. 약 4억 8,000만~4억 5,000만 년 전 오르도비스기에 해양 동물의 속 가짓수는 몇 배로 늘어났다. 완족동물과 태형동물, 산호, 앵무조개류가 잇달아 분화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오르도비스기 생물 대방산이라고 부른다.

다양성의 증가 폭은 캄브리아기보다 컸는데도, 이를 ‘폭발’이라 부르는 사람은 드물다. 어느 구간에 어떤 꼬리표가 붙는지는 어느 구간을 먼저 보았고 먼저 이야기로 만들었느냐에도 일부 달려 있다.

반대로 정말 수준이 바뀌는 순간들은 흔히 조용하다. 8편에서 보았듯 세포들이 모여 몸을 이루는 일은 마흔다섯 번 안팎으로 일어났다.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 실과 덩어리만 조금 남겼고, 화석에서 알아보기도 어렵다. 사건이 장관인가와 수준이 바뀌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캄브리아기에서 달라진 것은 다른 세 가지다. 기존의 동물 개체들이 더 다양한 몸 구조로 조직되었다. 동물 사이의 생태적 관계가 갈수록 복잡해졌다. 화석 기록에서 볼 수 있는 정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다른 판별 기준, 가령 생태적 복잡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캄브리아기는 아주 앞자리에 설 것이다.

이 말에는 서로 바꾸어 쓸 수 없는 두 가지 용법이 있다. ‘상전이’가 서로 맞물린 여러 변수가 문턱을 넘으면서 전체 상태가 빠르게 바뀌는 일을 뜻할 뿐이라면, 캄브리아기를 그렇게 묘사해도 좋다. 그러나 ‘상전이’에 선택 단위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캄브리아기에는 현재 그런 증거가 없다.

환자에게 ‘체질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진단처럼 들리지만, 실은 증상을 다른 말로 옮긴 것일 뿐이다. 병이 대체 어느 장기에 생겼는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앞의 뜻을 슬그머니 뒤의 뜻으로 바꿔치기하면, 그 말은 설명에서 가림막으로 변한다. ‘이것은 상전이였다’고 말하는 순간 문제가 풀린 듯하다. 하지만 어느 문제에 답한 것인가. 선택 단위가 달라졌다는 것인가. 여러 변수가 함께 빨라졌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구간에서 우리의 렌즈에 갑자기 빛이 더 들어왔다는 것인가.

같은 위험은 다른 커다란 말들에도 숨어 있다. 어떤 일을 ‘혁명’, ‘폭발’, ‘도약’이라고 부르면 무언가 설명했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커다란 말 하나가 많은 것을 아우를수록, 구체적으로 어느 변수를 가리키는지 더 물어야 한다.

이 연작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의 것은 세고, 밖의 것은 세지 않는다. 판별 기준처럼 사람이 그은 선일 수도 있고, 막처럼 자연이 그은 선일 수도 있다. 이번 편의 구축된 틀은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꼬리표가 그어놓은 선이다. 그 안에는 우리 눈에 보인 폭발이 들어 있다.

구축된 틀에 담기지 않으면서 없앨 수도 없는 부분을 이 연작은 잔여항이라 부른다. 이번 편의 잔여항은 깔끔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캄브리아기에 보이는 다양성 가운데 얼마가 실제 방산에서 왔는가. 얼마가 골격이 생기면서 흔한 지층도 화석을 받아들이게 된 데서 왔는가. 얼마가 전 세계적으로 연한 몸이 보존되던 한 시기의 창에서 왔는가. 또 얼마가 해양 퇴적암의 양이 다섯 배가 된 데서 왔는가. 각각의 보존 방식이 연한 몸, 단단한 몸 부분, 미세한 몸과 굴에 미치는 작용은 완전히 다르다. 공통의 분모가 없다.

이것들을 함께 놓으면 캄브리아기는 대략 이런 모습이다. 동물은 더 이른 시기에 이미 조용히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몸집이 작고 몸은 연했다. 수천만 년 사이 여러 계통이 저마다 껍데기와 골편을 갖추고, 눈과 붙잡고 달릴 수 있는 부속지를 얻었다. 진흙 속에 파는 굴은 점점 복잡해졌다. 포식자는 쫓고 먹잇감은 달아났다.

동시에 바닷물이 대륙으로 밀려들었다. 화석을 남길 수 있는 암석은 몇 배로 늘었다. 몸이 연한 동물까지 진흙 속에 온전히 눌려 남을 수 있던, 좀처럼 오지 않는 시간의 창도 열렸다. 실제로 일어난 변화와 눈에 보이게 된 변화가 같은 시기에 포개져, 함께 그 ‘폭발’을 만들어냈다.

그 못은 아직 포천헤드에 박혀 있다. 못에서 3미터 조금 넘게 내려간 곳에는, 본래 그 못으로 표시하려던 벌레의 굴이 누워 있다. 최근의 재검토를 따르면 그 굴 자체의 가장 오래된 믿을 만한 연대조차, 굴로 표시한 경계보다 500만~600만 년 더 젊을 수 있다. 판별 기준은 아직도 걸러내고 있다. 못은 다시 박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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