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09

에디아카라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들

잎이나 매트리스처럼 생긴 생명은 왜 아직도 익숙한 분류에 들어맞지 않을까?

Han Qin · 읽는 데 약 34분 · 공개일

1 열다섯 살 소년

1957년 봄, 잉글랜드 중부 레스터 근처의 찬우드 숲. 열다섯 살 소년이 친구 둘과 암벽을 타러 갔다가 버려진 채석장 벽에서 잎 모양의 자국을 보았다. 길이는 20센티미터가 넘었다. 가운데 축 하나를 따라 양옆으로 가지가 가지런히 뻗어 있었다. 깃털 같기도, 고사리 잎 같기도 했다.

소년의 이름은 로저 메이슨이었다. 그는 그 자국을 탁본으로 떠서 집에 가져왔다. 지역 목사였던 아버지는 레스터 대학교의 지질학자 트레버 포드를 알고 있었다.

포드는 현장을 찾아가 확인한 뒤 이듬해 정식으로 논문을 내고 이름을 붙였다. 속명은 찬우드에서, 종명은 메이슨에게서 따왔다. 차르니아 마소니였다. 그 화석은 지금도 레스터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메이슨 자신도 훗날 지질학자가 되었고, 말년에는 우한의 중국지질대학에서 가르쳤다.

그것을 처음 본 사람이 메이슨은 아니었다. 한 해 전, 역시 열다섯 살이던 티나 네거스라는 소녀가 같은 숲에서 비슷한 자국을 보았다.

소녀가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곳 암석은 선캄브리아 시대의 것이고, 선캄브리아 시대 암석에는 화석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 경험이 이 화석의 발견사에 기록된 것은 반세기가 지난 뒤였다.

거기서 다시 20년쯤 거슬러 올라가면 레스터에 또 다른 소년이 있었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시골로 화석을 찾으러 다녔다. 아버지는 당시 레스터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학장이었다. 소년은 훗날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되었다.

애튼버러는 노년에 이렇게 말했다. 찬우드에 가서 찾아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그곳 암석은 선캄브리아 시대 것이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4절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그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에도 내력이 있었다. 다윈부터가 『종의 기원』에서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캄브리아기의 화석은 처음부터 몹시 복잡한데, 그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20세기 중반이면 캄브리아기 이전 지층에는 크고 구조가 복잡한 생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교과서의 상식이었다. ‘선캄브리아 시대의 대형 화석’ 한 점은 바로 그 빈틈에 떨어졌다.

그전에도 비슷한 것들이 몇 차례 보고되었다. 그때마다 두 마디가 앞을 막았다. 암석의 나이를 잘못 짚었거나, 애초에 생물의 흔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868년, 지금은 캐나다에 속하는 뉴펀들랜드에서 원반 모양 자국들이 발견되었다. 1872년 캐나다 지질조사소의 고생물학자 빌링스가 여기에 이름을 붙였다. 당시에는 복잡한 생명이 생기기 전이라고 여기던 지층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후대 학자들은 차라리 이 원반들을 무기적으로 생긴 결핵체로 해석하려 했다.

20세기 말에 모식표본을 다시 연구하고서야 그 이름은 제자리를 되찾았다. 1930년대 무렵에는 독일 학자들이 남서아프리카, 지금의 나미비아에서 몸이 연한 대형 생물의 화석들을 기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캄브리아 시대의 대형 동물을 받아들일 만한 틀이 없었다. 이 자료들은 오랫동안 캄브리아기의 것으로 놓고 해석되었다.

돌파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은 1946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발견이었다. 스물일곱 살 지질학자 스프리그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 산맥의 에디아카라 구릉에서 버려진 갱도 몇 곳을 다시 채굴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다가 사암 한 덩이를 뒤집었고, 거기에 찍힌 원반 모양 자국을 보았다고 한다. 1947년 발표한 논문 제목에서 그는 그것을 플린더스 산맥의 전기 캄브리아기 해파리라고 불렀다. 다만 ‘전기 캄브리아기’ 뒤에 괄호를 붙이고, 그 안에 물음표 하나를 넣었다. 그 물음표에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한 사람이 남아 있다. 이것은 너무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되었을 수는 없다.

찬우드가 달랐던 점은 화석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그 암석층의 나이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근거는 지역의 층서 관계와 위아래 암석층의 대비였다. 화석은 하나도 동원하지 않았다.

연대의 증거와 화석의 증거가 서로 독립되어 있었다. ‘사실 그 암석층은 캄브리아기 것이다’라는 퇴로는 여기서 막혔다. 남은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선캄브리아 시대에도 크고 복잡한 생물이 있었음을 인정하거나, 이 자국이 생물의 것이 아님을 입증하거나. 그런데 그 잎의 규칙적인 모양 때문에 두 번째 길도 걷기가 어려웠다.

기이한 물건 한 점의 문제를 해저 전체의 문제로 바꿔놓은 곳은 뉴펀들랜드였다. 1967년, 뉴펀들랜드 메모리얼 대학교의 인도 출신 대학원생 미스라는 아발론반도 남쪽 해안의 선캄브리아 지층을 지도에 옮기다가 바닷가 암반 위에서 수백, 수천 점의 화석을 보았다. 그 해안은 미스테이큰 포인트, 곧 ‘잘못 짚은 곶’이라 불렸다. 옛 해난 사고에서 온 이름이었다. 안개 낀 날 선장들이 이곳을 근처의 다른 곶으로 착각하고 키를 꺾었다가 암초에 부딪히곤 했다.

그곳의 많은 층리면은 화산재에 순식간에 덮였다. 폼페이처럼 군집 전체가 살던 자리에 그대로 묻혔다. 남은 것은 해저의 한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같은 층리면 위의 개체들은 모두 같은 때 살아 있었다.

그러니 밀도를 셀 수 있고, 배열을 살필 수 있고, 크기 분포를 비교할 수 있었다. 미스테이큰 포인트는 2016년 세계유산에 올랐다. 러시아 백해 연안의 절벽도 또 하나의 보고다. 이곳의 연구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어 눈과 얼음이 녹으면 절벽이 한 겹씩 무너져 새로운 화석층을 드러낸다. 원래 얕은 바다였던 곳이다. 개체가 정교하게 보존되어 몸과 그 몸이 남긴 행동의 흔적을 같은 층리면 위에서 연결할 수 있다.

이 시대 자체가 정식 지질시대 단위가 된 것은 2004년이었다. 하한을 정하는 표준 단면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 산맥의 한 개울 골짜기에 선정되었다. 암반에 박힌 동판 표지가 그 선의 위치를 가리킨다. 약 6억 3,500만 년 전이다. 국제 지질연대표에 새로운 ‘기’가 추가된 것은 약 120년 만이었다. 이름은 에디아카라기였다.

시대는 정해졌지만 소속은 정해지지 않았다. 하나의 시간 틀 안에 전혀 다른 몸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번 편은 사람들이 이 몸들을 칸에 넣으려고 거듭 시도한 이야기다. 그리고 왜 그 칸들이 번번이 이 몸들을 담지 못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2 무엇이 있었나

우선 모양부터 살펴보자. 어디에 속하는지 서둘러 정하지는 말고.

일찍부터 알아본 큰 무리 가운데 하나는 차르니아 같은 잎 모양 생물이다. 지금은 레인지오모르프류라고 통틀어 부른다. 그 이름은 나미비아에서 나온 랑게아라는 속에서 왔다. 랑게아는 그곳을 조사했던 독일 지질학자 랑게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같은 단위가 몸 안에서 되풀이되며 재귀적으로 뻗는다는 점이다. 중심축에서 1차 가지가 나고, 그 가지는 다시 전체와 닮은 2차, 3차, 심지어 4차의 작은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부분 하나를 확대해도 전체와 같은 모양이 보인다. 나무의 잔가지와 줄기는 모양이 서로 다르다. 반면 이 화석들은 어느 단계의 단위를 보아도 같은 무늬를 되풀이한다.

정량 연구로 구한 프랙털 차원은 속마다 다르지만 대략 1.6에서 2.4 사이였다. 제한된 두께 안에 표면적을 극도로 많이 욱여넣었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산호, 부채산호, 균사체, 식물도 가지를 뻗는 형태로 자란다. 하지만 한 단계 안에 다음 단계가 들어가고, 매 단계가 전체를 복제하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식물처럼 보이지만 햇빛으로 살지는 않았다. 미스테이큰 포인트의 군집들은 수심 수백 미터가 넘는 깊은 바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살았다. 그 넓은 표면적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영양분과 산소를 흡수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번식도 했다. 2015년 케임브리지 연구진은 숲의 나무 분포를 분석하는 통계 기법을 빌려 뉴펀들랜드의 암반 세 곳에 있는 천 점 넘는 개체의 위치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방추형 잎 모양 생물 한 종류가 무더기무더기 모여 있었다. 무더기마다 큰 개체를 작은 개체들이 에워쌌다. 딸기가 땅 위로 포복줄기를 뻗어 새 포기를 만드는 모습과 닮은 배열이었다.

잎 모양 생물들의 크기 차이는 매우 컸다.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것도 있었고, 잎 모양이나 방추형 개체 가운데는 미터 단위까지 자라는 것도 있었다. 극단적인 것은 2미터에 가까웠다.

납작한 달걀꼴에 가로줄이 있는 무리에서는 디킨소니아가 가장 눈에 띈다. 스프리그가 당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광무국장이던 디킨슨을 기려 붙인 이름이다. 중국어 이름에 들어 있는 ‘해파리’라는 말은 초기에 잘못 알아본 흔적이다.

길이는 4밀리미터 미만에서 약 1.4미터까지였다. 전체가 얇고 납작했고, 세로축을 따라 갈비뼈 같은 단위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타원형 에어매트리스 같았다. 같은 층리면에 손톱만 한 것부터 세숫대야만 한 것까지 온갖 크기가 가득 깔린 경우가 흔했다. 덕분에 어떻게 자랐는지 볼 수 있었다. 한쪽 끝에서 새 단위가 하나씩 더해지고, 기존 단위는 몸과 함께 폭이 넓어졌다.

양쪽에 놓인 단위들이 정확한 거울대칭인지, 조금씩 어긋나 있는지는 줄곧 논쟁의 초점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차이지만 그 무게는 컸다. 정확한 거울대칭은 환형동물에서 볼 수 있는 체절의 특징이다.

왼쪽 단위가 오른쪽 두 단위 사이의 틈과 마주 보는 배열은 현생 동물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가로줄이 보인다고 끝이 아니다. 어떤 가로줄인지부터 보아야 한다.

세 갈래 방사대칭을 보이는 무리의 대표는 트리브라키디움이다. 보통 지름 몇 밀리미터에서 5센티미터 정도의 둥근 얕은 부조처럼 보존된다. 가운데서 굽은 주팔 세 개가 약 120도 간격으로 뻗어나와 같은 방향으로 휘돈다. 날개가 셋인 바람개비 같다.

유체역학 모의실험에 따르면 이런 몸은 물의 흐름을 바꾸어 물속 입자가 특정 위치에 내려앉게 할 수 있다. 현생 동물에서는 좌우대칭, 방사대칭, 다섯 갈래 방사대칭에 해당하는 분류군이 이미 있다. 다섯 갈래 방사대칭은 불가사리와 성게가 속한 문에 해당한다. 하지만 다 자란 몸이 세 갈래 방사대칭인 문은 현생 동물에 하나도 없다.

뚜렷한 좌우대칭에 먹이를 먹은 흔적까지 연결되는 것은 킴베렐라다. 이름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화석 수집가 킴버를 기린 것이다. 그는 1964년 오스트레일리아 중부로 탐사를 가던 길에 사고로 숨졌다. 킴베렐라의 몸은 타원형에서 서양배 모양까지였고, 앞뒤와 좌우가 있었다. 큰 것은 10여 센티미터에 이르렀다.

몸 화석과 함께 거듭 발견되는 것은 부채꼴로 배열된 쌍쌍의 긁힌 자국이다. 자국은 하나하나 반지름을 바꾸어가며 이어졌다. 한자리에 앉은 사람이 갈퀴로 앞의 땅을 긁되, 한 번 긁을 때마다 조금씩 방향을 돌린 듯했다. 긁어 먹은 것은 해저를 덮고 있던 미생물 매트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자국들이 종종 사체 하나에 곧장 이어진다는 것이다. 누가 긁었는지 볼 수 있다.

생흔화석은 대부분 누가 남겼는지 모른다. 몸과 흔적의 짝을 맞추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 층위 높아진다. 무언가 움직였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먹이를 먹은 방향, 동작의 반복, 일을 하는 기관이 바닥에 닿는 방식까지 알려준다. 다만 긁어 먹는 기관 그 자체는 화석에 남지 않았다.

몸을 진흙에 반쯤 묻고 사는 무리도 있었다. 나미비아의 에르니에타는 주머니나 컵처럼 생긴 입체적인 몸이었다. 수많은 개체가 반쯤 퇴적물에 꽂힌 자세로 보존되어 있다. 복원할 때에도 진흙 속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야 한다.

이 무리는 다른 것들과 함께 논의되는 일이 많다. 누빈 자국, 줄지어 선 관, 작은 방으로 나뉜 외양이 공통되기 때문이다. 칸칸이 박음질한 요처럼 보인다. 서로 닮은 외양, 함께 묶이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다.

관 모양 화석에는 가장 잡다한 것들이 섞여 있다. 무리 지은 가늘고 긴 연한 관, 센티미터 크기의 유기질 관, 그리고 컵 모양 마디를 하나씩 포개어 이룬 클라우디나가 있다. 클라우디나는 이미 광물질 껍데기를 갖추었고, 알려진 동물 가운데 가장 일찍 단단한 껍데기를 만든 축에 든다. 이름은 미국 고생물학자 클라우드를 기린 것이다.

생흔화석은 조금씩 복잡해졌다. 더 이른 지층에도 단순하게 표면을 끌고 간 자국과 매트 밑에서 먹이를 먹은 흔적은 있었다. 약 5억 5,100만 년 전에서 5억 3,900만 년 전 사이에는 연속해서 이동한 흔적과 얕은 굴이 더 뚜렷해졌다. 에디아카라기의 흔적은 대부분 미생물 매트의 표면이나 바로 아래 몇 밀리미터에서 몇 센티미터 깊이의 얕은 층에 머물렀다. 퇴적층 전체를 대규모로 뒤섞는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수치다. 육안으로 보이는 대형 생물 화석 기록 전체를 놓고 보면 크기의 범위는 적어도 천 배에 걸친다. 몇 밀리미터부터 거의 2미터까지다. ‘에디아카라 생물’에 전형적인 크기란 없다.

속과 종이 얼마나 되는지도 고정된 정수 하나로 답할 수 없다. 전문 데이터베이스는 기재된 대형 생물종을 약 200종으로 정리한다. 역대의 명명 목록을 더 넓게 모으면 속명은 약 247개까지 센다. 그중 정리자가 유효하다고 보는 것은 약 164개다. 그 안에도 같은 생물에 다른 이름을 붙인 동의어와 정체가 불확실한 화석이 잔뜩 섞여 있다.

이름을 붙이는 일에도 사람의 자취가 묻어난다. 2018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작은 원반 하나에는 막 퇴임한 미국 대통령을 기려 오바무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같은 해, 건포도만 한 타원형 작은 화석에는 아텐보리테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린 시절 찬우드로 화석을 찾으러 가지 않았던 그 사람을 기린 이름이다. 한 무리에 구성원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유효하다고 판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판정은 지금도 계속 고쳐지고 있다.

3 어떤 칸들에 넣어보았나

첫 단계는 현생 동물의 문에서 닮은 것을 하나씩 찾는 일이었다.

스프리그는 1947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원반형 생물을 곧바로 해파리라고 기재했다. 발견을 『네이처』에 보냈지만 반려되었다. 이듬해 런던에서 열린 국제지질학대회에서 발표했을 때도 거의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전환점을 만든 사람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애들레이드 대학교에서 가르치던 글레스너였다. 1950년대 말, 그는 에디아카라 구릉의 화석을 세계 각지의 비슷한 자료와 비교해 캄브리아기 이전의 것임을 확인했다. 스프리그 자신은 나중에 석유 탐사로 일을 바꾸었다. 그리고 플린더스 산맥 북쪽 끝의 목장 하나를 사들여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만들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글레스너와 동료들의 기본 구상은 이랬다. 원반이나 방사형 몸은 해파리 같은 강장동물에, 잎 모양 몸은 바다깃에, 좌우로 단위가 반복되는 납작한 몸은 환형동물이나 절지동물에 대응시켰다. 이 틀이 매력적인 이유는 간단했다. 선캄브리아 시대에 이미 현대 동물 문의 초기 구성원이 있었다면, 기묘한 외양도 ‘불완전하게 보존된 익숙한 동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디킨소니아는 한때 명시적으로 환형동물에 들어갔다. 1966년에는 가로로 반복되는 단위를 체절로 해석했고, 1972년에는 갯지렁이 같은 다모류로 복원했다. 하지만 나중에 쏟아져 나온 표본에서도 확실한 입, 항문, 창자, 측각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가 마디로 나뉜 흔적도 없었고, 좌우의 ‘체절’은 서로 어긋나 있을 가능성마저 있었다.

차르니아 같은 생물은 오랫동안 바다깃에 넣었다. 중심축이 있고 양옆에 ‘잎’이 반복되어 멀리서 보면 무척 닮았다. 바다깃은 자포동물이다. 한 그루 전체가 수많은 작은 폴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폴립마다 촉수와 입이 있다. 오늘날에도 깊은 바다의 진흙 바닥에 무리 지어 서 있으며, 건드리면 빛을 내는 것도 있다.

그런데 차르니아의 가지를 이루는 것은 한 단계 더 작은 자기 닮음 단위다. 폴립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멀리서 보면 닮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만들어진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 ‘현대 동물 문의 조상들’은 나중에 하나씩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느 경우든 판별 기준 하나가 더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 연구에서 가장 많이 쓴 것은 윤곽의 유사성이었다. 원반은 해파리 같고, 깃털 같은 잎은 바다깃 같고, 가로줄은 환절 같았다.

현대 계통학이 요구하는 것은 다른 분류군과 비교할 수 있는 상동 형질이다. 2편에서 이 차이를 다루었다. 닮은 모습은 공통 조상에게서 왔을 수도 있고, 따로 진화한 끝에 비슷해졌을 수도 있다. 계통수를 세우는 데 쓸 수 있는 것은 전자뿐이다. 에디아카라기의 본뜬 화석에는 외곽선과 반복 단위, 표면 무늬만 남은 경우가 많다. ‘닮았다’를 더는 근거로 쳐주지 않으면 문을 진단하는 데 쓸 형질이 얼마 남지 않는다.

두 번째 방안은 판을 새로 짰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자일라허는 평생 생흔화석을 연구한 사람이었다. 1989년 무렵 그는 이 생물들이 동물계와 나란히 놓이는 별개의 큰 분류군이며, 이제는 모두 멸종했다고 제안했다. 나중에 벤도비온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이들이 같은 ‘에어매트리스’식 구조를 공유한다고 보았다. 몸이 액체로 찬 작은 방들의 행렬로 되어 있어, 얇은 방석을 누벼놓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논증에는 명확한 기능적 논리가 있었다.

많은 화석은 크면서도 몹시 얇다. 방이 반복되면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커진다. 확실한 입이나 소화계가 보이지 않는 표본도 많다. 그래서 그는 이들이 몸 표면 전체로 용존 유기물을 흡수하거나 공생 미생물에게서 에너지를 얻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모형 안에서는 거대한 면적, 작은 두께, 반복되는 방이 모두 같은 생리적 제약에서 나온다.

이 방안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 역시 모두를 담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킴베렐라는 방향을 잡아 먹이를 먹고, 디킨소니아는 움직이며 먹은 자국을 남긴다. 말기에는 단단한 껍데기를 두른 관 모양 동물도 있다. ‘입 없이 온몸의 표면으로 흡수한다’는 단일 모형에 이들을 모두 밀어 넣을 수는 없다. 잎 모양 생물만 보더라도 삼차원으로 복원해보면 어떤 가지는 이음매를 따라 열려 있다. 밀폐된 공기주머니 같지 않다.

세 번째 방안은 미국 오리건 대학교의 리탤랙에게서 나왔다. 그는 1990년대부터 전형적인 에디아카라 화석 가운데 일부가 지의류에 가까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에는 『네이처』에 논문을 내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일부 화석층이 사실은 고토양이며 이 생물들이 육지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 근거에는 층리면의 균열과 결핵체, 토양을 닮은 층의 순서, 그리고 그가 토양 형성 과정의 변화로 해석한 동위원소가 들어 있었다. 어떤 디킨소니아는 압밀된 뒤에도 상당한 높낮이를 유지했다. 부드러운 수생 생물의 사체보다 질긴 것처럼 보였다.

먼저 퇴적학에서 반론이 나왔다. 이 화석층에는 물결 자국이 있고, 폭풍이 밀고 온 모래층이 있다. 명백한 해성 지층과 연속해서 이어지며, 같은 생물 가운데 일부는 바다에서 생긴 석회암에서도 나온다.

지구화학의 논쟁은 그 화학적 변화가 오직 토양 형성으로만 가능한가에 집중되었다. 초기 속성작용, 해저 미생물 매트, 해성 공극수도 복잡한 화학적 분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모형을 지금도 옹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네 번째 방안은 거대한 단세포 또는 다핵 생물이었다. 2003년에는 에디아카라 해저를 주로 미생물 매트와 거대 원생생물이 차지했을 것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일부 유형은 오늘날 깊은 바다에 사는 거대한 유공충류 생물과 연결되었다.

오늘날의 심해저에도 실제로 세포 하나가 10센티미터 넘게 자라는 그런 생물이 있다. 이 방안은 입이나 창자, 근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대하고 핵이 많으며, 얇고 표면적이 넓은 몸도 담아낼 수 있다.

문제는 분자계통학으로 보면 그 현생 생물들이 유공충 안에서 상당히 늦게 갈라져 나온 가지라는 데 있었다. 5억 6,000만 년 전의 잎 모양 생물을 여기에 바로 붙이려면 그 역사를 크게 앞당겨야 한다. 그래서 2011년에는 이런 단순한 대응을 부정하는 연구가 나왔다. 다만 방으로 나뉜 화석 가운데 일부가 대형 원생생물일 가능성은 남겨두었다.

다섯 번째 방안은 가장 소박했다. 어떤 자국은 애초에 생물 한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7년 몇몇 원반 화석을 연구한 사람들은, 그중 일부가 미생물 매트 안에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실 모양 생물들이 모여 자라면서 생겼다고 제안했다.

뉴펀들랜드의 원반은 처음에 무기 결핵체로 여겨졌다. 나중에는 원반 모양으로 분류한 수많은 ‘속’이 서로 다른 잎 모양 생물의 부착반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같은 생물이 서로 다르게 매몰된 모습일 수도, 미생물 매트의 구조일 수도 있었다. ‘원반 모양 자국 하나는 원반형 생물 하나다’라는 가정은 화석화 과정을 연구하는 매몰학이 일찌감치 깨뜨린 가정 가운데 하나였다.

이 방안들은 하나가 앞의 것을 대체하는 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현대 동물의 문, 별개의 큰 분류군, 지의류, 거대 원생생물, 미생물 집단이 서로 다른 속에서 각기 부분적으로 성립했다. 같은 더미 위로 여러 장의 그물을 한꺼번에 던져, 저마다 일부를 덮은 모습에 더 가까웠다.

4 풀린 것은 일부뿐

2018년 발표된 한 연구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박사과정생 보브롭스키는 러시아 백해 연안으로 갔다. 그가 찾는 디킨소니아는 바닷가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에 박혀 있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들어가 몸에 밧줄을 묶고 절벽에 매달린 채 사암을 한 덩이씩 쪼아냈다. 그 일대에는 곰과 모기밖에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표본이었다. 백해의 이 암석층들은 수억 년 동안 아주 깊이 묻힌 적도, 심하게 가열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일부 디킨소니아 화석에는 극히 얇은 유기물 막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막에 온전한 분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에 닳고 남은 분자의 탄소 골격뿐이었다. 5편에서 콜레스테롤 같은 분자들을 이야기했다. 진핵생물에는 흔하고 세균에는 드문 것들이다. 동물의 몸에서는 그중 탄소가 27개인 종류가 주를 이룬다. 조류와 균류는 탄소 28개나 29개인 동족 분자를 많이 쓴다.

결과는 이랬다. 디킨소니아의 막에서 탄소 27개인 종류의 비율은 약 93퍼센트였다. 화석 바로 위아래 몇 밀리미터 떨어진 암석에서는 10퍼센트 안팎에 불과했다.

같은 사암 안에서, 몇 밀리미터를 사이에 두고 분자 구성이 완전히 달랐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디킨소니아가 동물이라고 판단했다. 이름을 붙인 지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외형에 기대지 않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동물’이라는 판단이었다. 어느 문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외부 오염을 배제하기 위해 두 종류의 검사를 더 했다. 첫째는 공간이었다. 나중에 암석으로 스며든 석유에서 온 신호라면 화석과 배경이 비슷해야 했다. 화석의 윤곽을 정확히 따라 농축될 이유가 없었다. 둘째는 성숙도였다. 시료가 열로 변한 정도는 매우 낮았다. 고온에서 만들어진 뒤 이동해온 석유와는 맞지 않았다.

2025년 무렵에는 이 데이터를 다시 살핀 연구가 나왔다.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두 가지 의문이 있었다. 비정상적인 이성질체 비율은 외부 석유에서 온 것이 아닐까. 또 원래 연구가 절대 함량과 총유기탄소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아, 일부 배경 보정은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없었다.

재검토의 결론은 ‘디킨소니아에만 농축되는’ 양상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오염 기작을 현재로서는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신호는 여전히 원래 생물에서 온 것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했다. 다만 현존 데이터로는 오염의 모든 가능성을 깨끗이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콜레스테롤 자체가 동물만의 것은 아니다. 다른 진핵생물 가운데도 소량을 합성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무게를 갖는 것은 거의 한쪽으로 쏠린 비율, 화석과 주변 암석의 대비, 그리고 다른 증거들과의 일치다.

디킨소니아 자신도 다른 증거를 남겼다. 러시아의 이반초프는 백해의 암반에서 일부 디킨소니아 뒤로 몸과 같은 모양의 자국이 점점 옅어지며 줄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생물 매트에 엎드려 배 쪽으로 밑에 있는 것을 소화하고 흡수한 뒤, 다 먹으면 조금 옮겨가 다시 엎드렸던 것이다.

그 자국의 행렬은 식탁이었다. 2022년 보브롭스키가 속한 연구팀은 킴베렐라 화석 속 분자도 분석했다. 그 결과 몸 안에 창자가 있었고, 먹은 것은 조류와 세균이라고 보았다.

반면 디킨소니아에서는 창자의 징후를 찾지 못했다. 배 전체를 바닥에 붙이고 흡수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두 동물, 두 가지 먹는 법이 수억 년 전의 분자에 적혀 있었다.

킴베렐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해파리로 여겨졌고, 나중에는 상자해파리로 분류되었다. 1997년 러시아의 페돈킨과 미국의 바고너는 백해의 수많은 표본을 바탕으로 이를 바닥에 사는 동물로 복원했다. 앞뒤와 좌우가 있고, 배 쪽에는 근육질 발이 있으며, 등은 질긴 덮개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것을 ‘연체동물을 닮은 좌우대칭동물’이라고 불렀다. 그 뒤에는 러시아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쌍을 이룬 긁힌 자국과 사체가 함께 거듭 발견되었다.

‘좌우대칭동물’이라는 데까지는 발판이 단단하다. ‘연체동물의 가까운 친척’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 말이다. 화석에는 치설, 외투막, 아가미가 보존되어 있지 않고, 전형적인 껍데기도 없다. 오늘날 더 신중한 표현은 이렇다. 좌우대칭동물일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연체동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가설이다.

중국에서도 하나 나왔다. 2019년 중국과학원 난징지질고생물연구소의 천저 등은 후베이성 이창, 양쯔강 싼샤 지역의 스반탄에서 마디가 있는 벌레 한 종류를 발견했다. 이창의 옛 이름을 따서 이링기아라고 명명했다.

몸은 마디마디 나뉘고 좌우가 대칭이다. 몸 뒤에는 스스로 기어가며 만든 길이 곧바로 이어져 있다. 약 5억 5,100만 년 전에서 5억 3,900만 년 전 사이에 능동적으로 기어 다닌 좌우대칭동물이었다.

최근에는 더 정밀한 소속도 밝혀지고 있다. 2022년 찬우드에서 또 하나의 화석이 나왔다. 가느다란 줄기 위에 컵 한 쌍이 올라앉아 있고, 컵의 입구에는 촉수 흔적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자포동물의 관군에 넣었고,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이른 포식동물의 하나로 보았다. 속명은 ‘새벽의 등불’이라는 뜻이며, 종명은 애튼버러를 기린다. 어린 시절 찬우드에 오지 않았던 소년의 이름은 결국 이 숲에 남았다. 2024년에는 중국 남부의 한 연구에서 해면처럼 생긴 화석을 해면동물의 관군에 넣기도 했다.

이 사례들은 보존 상태가 충분히 특별하고 진단 형질이 충분히 많으면 에디아카라 화석도 엄밀한 계통 분석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믿을 만한 결론이 멈추는 곳은 흔히 ‘동물’, ‘좌우대칭동물’, ‘골격을 가진 동물’이라는 층위다. 기재된 대형 생물종 약 200종 가운데 독립적인 분자 증거가 있거나, 몸과 흔적의 짝이 맞거나, 진단 형질이 충분한 것은 아주 작은 일부뿐이다.

5 칸과 나무

나머지 대다수는 어디에 걸려 있는가. 이를 보려면 먼저 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아야 한다.

계, 문, 강, 목, 과, 속, 종. 이 분류 계급의 뼈대는 스웨덴의 린네에게서 왔다. 1735년 그가 펴낸 『자연의 체계』 초판은 대판으로 고작 11쪽이었다. 계, 강, 목, 속, 종의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문과 과는 후대 사람들이 넣었다. ‘문’이라는 단계는 1866년 독일의 헤켈이 더했다.

린네가 하려던 일은 창조주가 만든 만물의 목록을 쓰는 것이었다. 아직 진화론이 없던 때였다. 종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칸을 그려놓고 사물들을 하나씩 넣으면 되었다.

칸을 잘못 고르기도 했다. 초판에서는 고래를 물고기와 함께 놓았다. 1758년 제10판에 가서야 린네는 폐로 숨 쉬고,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인다는 근거로 고래를 포유동물로 옮겼다.

등장하자마자 칸을 터뜨리는 것도 있었다. 1799년 오리너구리 가죽 한 장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런던으로 보내졌다. 오리의 주둥이, 비버의 꼬리, 수달의 털가죽이었다.

대영박물관의 쇼는 이를 조사하면서 누군가 다른 동물의 몸에 오리 주둥이를 꿰매 붙여 장난을 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가위까지 들고 봉합선을 찾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알을 낳는다는 사실이, 새끼에게 젖도 먹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오늘날 오리너구리는 가시두더지와 함께 포유동물 안에서 독립된 한 가지를 이룬다.

이 체계의 핵심은 포개어 넣기다. 모든 분류군은 더 높은 어떤 분류군 안에 통째로 들어가야 한다. 속 하나는 과 하나 안에 완전히 들어가고, 과 하나는 목 하나 안에 완전히 들어간다. 반은 안에, 반은 밖에 걸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동물은 30여 개의 문으로 나뉘며, 문마다 진단표가 있다. 척삭동물은 척삭이 있어야 하고, 절지동물은 마디진 부속지와 외골격이 있어야 하며, 연체동물은 외투막이 있어야 한다.

다윈 이후 사람들은 이 칸을 족보로 다시 해석했다. 정식 분류군이라면 ‘어떤 공통 조상과 그 조상의 모든 후손’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질문은 ‘무슨 이름을 붙일까’에서 ‘남아 있는 어떤 형질로 어느 가지와 고유한 조상을 공유함을 입증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쪽은 쳐주고, 바깥쪽은 쳐주지 않는다. 한 벌의 판별 기준처럼 사람이 긋는 선일 수도 있고, 막 한 겹처럼 자연이 긋는 선일 수도 있다. 이번 편의 구축된 틀은 바로 이 칸들이다. 칸마다 진단 형질 목록 하나가 경계를 긋는다.

화석 한 점을 발굴했다고 해보자. 어떤 현생 동물 문에서 훗날까지 유지한 특징 하나가 있다. 더 오래된 특징 몇 개도 있고,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진 자기만의 특징도 있다.

그 화석은 그 문에 속하는가. 그렇다고 하자니 그 문의 특징을 모두 갖추지 못했다. 아니라고 하자니 분명 그 문과만 공유하는 것이 하나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이런 경우를 위해 한 쌍의 개념을 만들었다. 관군은 어떤 현생 분류군에 속한 모든 현생 구성원의 가장 가까운 공통 조상과, 그 조상의 모든 후손을 합친 것이다.

줄기군은 이미 멸종한 곁가지들이다. 다른 어떤 현생 분류군보다 그 관군에 가깝지만, 관군의 공통 조상이 나오기 전에 갈라져 나갔다. 관군과 줄기군을 합치면 총군이라 부른다.

고래가 좋은 예다. 오늘날의 모든 고래와 돌고래, 그리고 이들의 가장 가까운 공통 조상이 남긴 모든 후손이 고래의 관군이다. 5,000만 년 전, 지금의 파키스탄 일대에는 늑대만 한 동물이 살았다. 파키케투스다.

1981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진저리치는 파키스탄 북부 지층에서 나온 이 동물의 두개골을 보고했다. 다리가 네 개였고 강가를 걸어 다녔지만, 귓속 뼈는 이미 고래만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다른 어떤 현생 동물보다 고래에 가깝지만 고래 관군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고래의 줄기군이다. 고래라고 하자니 걸어 다닌다. 고래가 아니라고 하자니 귓속에 고래의 뼈가 들어 있다.

줄기군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동물을 위해 마련되었다. 문을 총군으로 정의한다면 줄기군의 구성원도 얼마든지 그 문 안에 넣을 수 있다.

에디아카라의 골칫거리는 그보다 한 단계 앞에 있다. 줄기군의 깊은 곳에 있는 구성원은 어떤 문이 훗날까지 유지한 형질을 한두 개만 지녔을 수 있다. 나머지는 조상의 모습이며, 거기에 나중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기만의 것들이 더해져 있을 수 있다.

현대 동물 문의 완성된 진단표만 들이대면 어느 문과도 닮지 않았다. 문을 끝없이 아래쪽으로 늘리면 이번에는 그 문의 전통적인 진단 기준이 비어버린다. 계통수는 끊임없이 갈라지는 가지이고, 분류 계급은 칸칸이 나뉜 상자다. 앞의 것을 뒤의 것에 넣으면 늘 칸 사이에 끼는 것이 생긴다.

더 깊은 문제도 있다. 많은 표본에는 줄기군의 어느 자리에 놓을지 결정할 만큼의 형질조차 없다. 가지 하나, 원반 하나, 줄지어 난 가로무늬는 서로 다른 계통에서 각자 생겨날 수 있다.

사암에 본뜬 화석이 가장 잘 남기는 것은 전체 윤곽, 상대적인 크기, 몸의 앞뒤, 반복 양식, 가지가 갈라지는 순서, 표면 무늬, 부착 방식, 그리고 크기가 서로 다른 개체를 늘어놓아 얻는 성장 순서다. 몸과 이동 자국이 같은 층에 있으면 움직인 방향도 더할 수 있다.

가장 흔히 빠지는 것은 공교롭게도 계통 관계에 가장 유용한 내부 형질이다. 배엽, 신경, 근육, 소화관, 체강, 혈관, 입과 항문, 감각기관 같은 것들이다. 표면의 홈 하나가 해부학적 구조인지, 썩으면서 생긴 주름인지, 모래에 눌린 자국인지는 그 자체가 흔히 논쟁거리가 된다.

같은 화석도 형질을 어떻게 코드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자리에 놓일 수 있다. 의견 차이의 일부는 화석을 데이터로 바꾸는 바로 그 단계에서 생긴다.

담기지 않는 것 앞에서 취할 수 있는 동작은 두 가지다. 자일라허는 첫 번째를 했다. 기존 칸에 들어가지 않으면 동물계와 나란히 놓을 커다란 칸을 하나 더 만든다.

현대의 형태군 접근법은 두 번째를 한다. 우선 레인지오모르프류, 디킨소니아형류, 에르니에타형류라고 부른다. 이름은 눈에 보이는 몸의 구조만 설명한다. 이들이 하나의 단일계통인 문이나 계를 이룬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분명히 하고, 누구인지는 일단 비워둔다.

계를 하나 더 보탠다고 해도, 모르는 관계에 이름을 붙였을 뿐 빠진 정보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는 것은 아니다.

6 세 군집군

에디아카라 화석은 보통 세 군집군으로 나눈다. 가장 대표적인 산지에서 이름을 따온 아발론, 백해, 나마다. 이 구분은 2003년의 통계 분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자들이 세계의 대형 생물 화석 속들을 출현 장소에 따라 군집 분석했더니 뚜렷한 세 집합이 나왔다.

아발론 군집군은 약 5억 7,500만 년 전에서 5억 6,000만 년 전으로 가장 오래되었다. 대표적인 곳은 뉴펀들랜드의 미스테이큰 포인트와 잉글랜드의 찬우드다. 군집은 주로 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 살았다. 해저에는 프랙털 구조의 잎 모양 생물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원반 하나로 진흙에 몸을 고정한 것도 있었고, 큰 것은 해저 위로 1미터 넘게 솟았다. 엽록소 없는 낮은 숲 같았다.

기어 다니는 것은 드물었다. 미스테이큰 포인트에서는 화석 채집이 금지된다. 연구자는 암반에서 복제 틀을 뜨거나 사진을 찍거나 삼차원 스캔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관람객도 안내원을 따라 암반에 올라서기 전에는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어야 한다.

백해 군집군은 약 5억 6,000만 년 전에서 5억 5,000만 년 전이다. 대표 산지는 러시아 백해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닐페나에서 연구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고대 해저를 한 층씩 통째로 벗겨냈다. 암반마다 디킨소니아, 트리브라키디움, 킴베렐라와 그 흔적들이 본래 모습대로 놓여 있었다. 벗겨낸 암반은 원래 위치에 맞춰 야외에 다시 펼쳐놓았다. 바닥재를 한 장씩 맞춰 깐 듯해서, 고대의 해저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볼 수 있다.

이곳에는 무더기로 자라는 관 모양 생물이 있다. 연구자들은 연구 책임자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푸니시아 도로테아라고 불렀다. 알려진 동물 가운데 가장 일찍 유성생식을 했을 후보의 하나다. 2026년 이 화석들은 플린더스 산맥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었다.

나마 군집군은 약 5억 5,000만 년 전에서 5억 3,900만 년 전이며, 중심지는 나미비아다. 이곳에서는 주역이 바뀐다. 주머니 모양의 에르니에타, 갖가지 연한 관, 그리고 단단한 껍데기를 두른 클라우디나가 등장한다.

클라우디나의 껍데기에는 반듯한 작은 원형 구멍이 자주 보인다. 포식자가 뚫은 구멍이라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지며, 알려진 가장 이른 포식 증거 가운데 하나다. 중국 산시(陝西)성 남부의 같은 시기 지층에도 클라우디나가 많다.

전형적인 디킨소니아형류는 이 무렵 눈에 띄게 줄어든다. 앞서 이링기아가 나온 스반탄도 이 시기에 속한다. 그곳의 화석은 석회암에 보존되어 있다. 사암이 주를 이루는 에디아카라 화석에서는 드문 경우다.

에르니에타는 흔히 모래 속에 몸을 반쯤 꽂은 채 무리 지어 빽빽하게 모여 있다. 2019년 연구자들이 그 모양을 컴퓨터에 넣고 물의 흐름을 모의실험했다. 무리 지어 있을 때 뒤쪽 개체는 앞쪽 개체가 휘저어 만든 되돌이 흐름을 받을 수 있었고, 물속 먹이 입자가 컵의 입구로 더 쉽게 내려앉았다. 물을 걸러 먹고살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세 군집군의 차이는 세 가지에서 비롯될 수 있다.

첫째는 시간이다. 그 통계 분석에서 세 집합은 전체적으로 앞뒤 순서를 보였다. 이후의 고정밀 화산재 연대 측정도 전형적인 아발론 군집이 뚜렷하게 더 오래되었음을 확인했다. 화산재는 천연 시계다. 재 속에는 저어콘이라는 작은 결정이 있다. 결정이 만들어질 때 소량의 우라늄이 들어가고, 우라늄은 일정한 속도로 납으로 붕괴한다. 우라늄과 납의 비율을 재면 그 재가 내려앉은 연도를 계산할 수 있다. 오차는 수십만 년에 불과하다. 미스테이큰 포인트에서는 화석층 하나하나가 화산재 층 사이에 끼어 있어, 층마다 따로 연대를 잴 수 있다.

둘째는 생태다. 2004년부터 아발론형 군집은 깊고 물의 움직임이 약한 환경에 치우치고, 백해형은 주로 얕은 바다에, 나마형은 또 다른 얕은 바다 환경에 연결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로 다른 환경의 군집이 같은 때 존재하되, 저마다 다른 깊이에 살았을 수 있다.

셋째는 보존이다. 깊은 바다의 화산재, 얕은 바다의 사암 본뜨기, 나마의 입체적인 모래 주형은 몸의 형태에 따라 보존할 확률이 다르다.

2016년의 통계 분석은 답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세계 데이터베이스를 군집 분석하고 환경을 분석해도 여전히 뚜렷한 세 집합이 나왔다. 암석 종류와 매몰 과정의 편향만으로는 모든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한편 군집군 사이에는 시간적 겹침도 있었다. 시간, 생태, 보존이라는 세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다.

세 가지는 각각 검증할 수 있다. 시간은 화산재 연대로, 생태는 퇴적상으로, 보존은 매몰학으로 본다. 어려운 것은 서로 떼어놓는 일이다. 어떤 속이 한 군집군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때 아직 등장하지 않아서일 수도, 그런 환경에 살지 않아서일 수도, 그런 조건에서는 남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분포표에서는 이 세 경우가 모두 똑같은 빈칸이다. 빈칸은 자신이 왜 비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름이 인상을 엉뚱한 쪽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2026년 발표된 한 연구는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매켄지산맥에서 분명하게 백해 군집군에 속하는 군집을 발견했다.

당시 그곳은 옛 북아메리카 대륙의 일부였다. 지질학자들은 로렌시아라고 부른다. 백해 군집군은 통계적 묶음으로서 유용하다. 그 이름은 처음 발견된 장소에서 왔을 뿐, 당시에도 그곳에만 분포했다는 뜻은 아니다.

초기의 형태 다양성 곡선에도 같은 문제가 있다. 연구자들은 우선 알아볼 수 있는 속들을 외형에 따라 코드화한다. 몸의 앞뒤, 대칭 방식, 가지가 갈라지는 단계 수, 부착 방식 같은 것이다. 그런 다음 다변량 기법으로 ‘형태 공간’에 투영해 시간이 흐르며 얼마나 넓어지고 좁아지는지 살핀다. 이런 곡선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입력이다. 어떤 속을 유효하다고 볼지, 같은 몸의 서로 다른 매몰 상태를 여러 속으로 쪼갰는지, 어느 산지에서 암석층의 아랫면에서만 표본을 모았는지 윗면에서도 모았는지에 따라 곡선이 달라진다.

7 데스마스크 그리고 규소

그렇다면 이 부드러운 몸들은 어떻게 사암 속에 남았을까. 그렇게 굵은 모래알이 어떻게 부드러운 몸 표면의 밀리미터 단위 세부까지 복제할 수 있었을까. 모래사장에 손바닥 자국을 찍으면 세부는 금세 무너져버린다.

가장 고전적인 답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겔링이 1999년 체계적으로 제시한 ‘데스마스크’ 모형이다. 이름은 옛 풍습에서 빌려왔다. 사람이 죽으면 석고나 밀랍으로 얼굴의 본을 떠 죽은 이의 생김새를 남겼다. 나폴레옹도 베토벤도 그런 마스크를 남겼다.

살아 있을 때 해저에는 미생물 매트가 끊김 없이 깔려 있었다. 1편에서 이야기한 그 깔개다. 생물이 죽고 곧 모래에 덮이면 매트의 세균이 유기물을 분해하며 황화물을 내놓는다. 황화물은 물속 철과 반응해 사체 표면에 얇은 광물 막을 만든다.

이 막이 연한 조직이 썩기 전에 밀리미터 단위의 굴곡을 붙잡았다. 나중에 위의 모래가 교결되면서 원래 모습을 충실히 복제한 주형이 되었다. 틀을 만든 것은 사체 표면에서 빠르게 자라난 광물 막이다. 모래는 그 틀의 모양을 고정했을 뿐이다.

2012년 누군가 실험실 수조에서 이를 시험했다. 죽은 꿀벌부채명나방 유충을 미생물 매트로 덮인 모래에 묻었다. 몇 주 뒤 실제로 사체 둘레에 철과 황을 포함한 광물 침전물이 띠를 이루었다. 미생물 매트가 없는 대조군에서는 세부가 훨씬 덜 보존되었다.

광물화의 속도와 부패의 속도가 벌이는 경주다. 허용되는 조건은 좁다. 철과 황이 충분해야 하고, 빨리 묻혀야 하며, 그 미생물 매트가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빠지면 창은 닫힌다. 그래서 흔히 남는 것은 몸의 바깥 표면이고, 연한 조직 자체는 남지 못한다.

2016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자료를 조사한 연구자들은 많은 화석 주변에 이 모형이 예측한 황철석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대신 아주 일찍 생긴 이산화규소 교결물이 있었다. 이들은 다른 기작을 제안했다. 선캄브리아 시대 바닷물에는 규소가 많았고, 유기물 표면에 얇은 규질 막이 빠르게 석출되었으며, 초기의 규질 교결이 모래알을 제자리에 잠가두었다는 것이다.

화석에 바로 붙어 있는 교결물은 쇄설성 석영과 원소 비율이 다르다. 공극은 압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채워져 있었다. 당시에는 규조류나 방산충처럼 바닷물에서 규소를 대량으로 가져가는 생물이 아직 없었다. 바닷물의 규소는 오늘날보다 훨씬 많았다.

미스테이큰 포인트는 또 다른 방법이다. 거기에는 모래 주형이 없다. 화산재가 살아 있는 군집 위로 직접 내려앉아 잎 모양 몸들을 쓰러뜨리고, 그 자리에서 눌러 자국을 남겼다. 많은 암반에서 수백, 수천 개의 잎 모양 몸이 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다. 묻히던 순간 해저의 물이 흐른 방향이다. 서 있던 숲 하나가 하룻밤 사이 같은 물살에 쓰러졌고, 그대로 5억 년 넘게 남았다.

에디아카라식 보존은 여러 기작의 묶음이며, 그 배합은 장소마다 다르다.

미생물 매트는 그 안에서 적어도 세 가지 일을 했다. 해저를 달라붙게 하고 안정시켜, 막 찍힌 얕은 자국을 물살이 바로 지워버리지 못하게 했다. 화학적 구배가 가파른 미세환경을 만들어 광물화를 촉진했다.

질긴 유기물 경계면 한 겹을 제공해 위의 모래와 아래의 진흙이 곧바로 섞이지 못하게도 했다.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바탕인 동시에 보존 장치의 일부였다.

나중에 이런 매트가 줄어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갈수록 많은 동물이 표층 퇴적물을 긁어 먹고, 굴을 파고, 뒤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속적이고 평평한 매트가 끊임없이 뚫리면 넓은 면적을 밀폐하는 그런 경계면을 더는 유지할 수 없다. 이 화석들을 만들어낸 조건은 뒤에 나타난 생물들이 스스로 허물었다.

창이 열리고 닫히는 일도 한 번에 딱 잘라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런 사암 본뜨기 화석은 약 5억 7,500만 년 전 이후에 특히 풍부하지만, 더 오래된 지층과 더 젊은 지층에서도 비슷한 예가 소수 발견된다.

창이 닫힌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설명이 나란히 가능하다. 지속적인 생물교란이 미생물 매트를 약화시켰다. 바다의 규소 순환이 달라져 초기 규질 교결이 예전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생물들 자체가 실제로 멸종해서 보존할 대상이 없어졌다. 세 설명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지만, 각자가 내놓는 예측은 다르다. 마지막 설명이 맞으려면 그 생물들이 실제로 멸종했어야 한다. 앞의 두 설명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 보존 방식은 몸도 강하게 가려낸다. 원래 모양을 충실하게 남긴 모래 주형이 되기 가장 쉬운 것은 센티미터 이상의 크기로 해저에 붙어 살며, 어느 정도의 면적과 질김을 가진 저서 생물이다. 넓고 납작한 몸, 질긴 표피, 도드라진 무늬가 유리하다. 극히 작거나 얇은 것, 건드리면 풀어지는 것, 바닥에 닿지 않고 물속에 떠 있는 것, 그리고 몸속 기관은 남을 가능성이 훨씬 작다.

입체적인 생물 하나를 이차원의 겉모습으로 ‘편집’하기도 한다. 바깥의 반복 무늬는 극도로 정밀하게 보존하면서 안쪽 조직은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다. 단단함이 다른 부위들은 또 저마다 납작해지고 늘어나고 주름진다.

그러니 표면의 ‘마디 경계선’ 하나는 생물의 구조일 수도 있지만, 접힘이나 부패 때문일 수도 있고 모래알이 본을 뜨면서 더 도드라진 것일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 ‘가로줄은 곧 환형동물의 체절’이라는 식의 추론이 탈을 낸 곳이 바로 여기다.

우리가 보는 에디아카라 군집은 선별을 거친 명단이다. 다만 2016년의 그 통계 분석은 명단 뒤에 실제 생물학적 차이도 남아 있다고 일러준다. 세 주요 군집군의 차이는 알려진 암석 종류와 보존 요인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8 그 하나의 큰 칸

캄브리아기가 시작될 무렵, 에디아카라식 연한 몸의 화석은 기록에서 거의 사라졌다. 캄브리아기의 하한도 뉴펀들랜드에 정해져 있다. 미스테이큰 포인트에서 서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이다. 기준은 어떤 굴 화석이 처음 나타나는 지점이다. 벌레가 진흙을 파고 들어가며 방향을 바꾸어, 가지가 갈라진 굴의 행렬을 남겼다. 에디아카라기는 동판 표지 하나로 시작해 벌레 구멍의 행렬로 끝난다. 그 생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적어도 세 가지다.

첫 번째 답은 실제로 멸종했으며, 환경이 이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2022년 세계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추정에 따르면 백해 군집군에서 나마 군집군으로 넘어갈 때 통계에 잡힌 분류 단위의 약 80퍼센트가 이어지지 않았다.

손실은 선택적으로 일어났다. 남은 것은 주로 상대적인 표면적이 더 큰 형태였다. 얇고 납작할수록 잘 살아남았고, 두툼한 것은 사라졌다. 연구자들은 이를 산소 부족 사건으로 해석했다. 표면적이 크면 기체 교환이 쉬워진다.

이 80퍼센트는 모을 수 있었던 대형 생물 화석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값이다. 어려운 점은 ‘산소 부족이 있었다’와 ‘그 산소 부족이 바로 이 분류군들을 죽였다’가 두 단계의 추론이라는 것이다. 후기 에디아카라기의 기록은 분지마다 시간적으로 들어맞지 않는다.

두 번째 답은 새로 온 동물들이 이들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굴을 파는 동물 한 마리는 퇴적물 속 산소, 공극수의 화학, 미생물 매트의 연속성을 바꿀 수 있다. 안정된 매트 표면에 기대 사는 생물은 보금자리를 잃는다. 잡아먹을 필요도 없다.

클라우디나 껍데기의 구멍은 포식자도 이미 나타났음을 알려준다. 이 방안의 어려움은 규모에 있다. 말기의 굴은 전체적으로 여전히 얕았다. 많은 곳에서 온전한 미생물 매트와 연한 몸의 대형 생물이 오랫동안 함께 존재했다.

세 번째 답은 이들이 아직 있었지만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체셔 고양이’ 모형이다. 체셔 고양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서서히 사라지다가 마지막에는 허공에 웃음만 남기는 그 고양이다.

작가 캐럴은 옥스퍼드의 수학 강사였다. 6편의 붉은 여왕은 그가 쓴 후속작에 나온다. 사암 본뜨기 화석은 안정된 미생물 매트, 특별한 초기 광물, 드문 뒤섞임에 의존한다. 이 조건들이 사라지면 여전히 살아 있는 같은 종류의 연한 몸을 가진 생물도 기록 속에서는 보이지 않게 된다.

이 모형에는 검증 가능한 예측이 하나 따른다. 더 젊은 지층 가운데 우연히 특별한 보존 조건을 다시 갖춘 곳에서는 에디아카라형 모습이 가끔 보여야 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1998년에는 연대가 명백히 캄브리아기인 퇴적층에서 전형적인 잎 모양 화석이 보고되었다. 2000년에는 캘리포니아 전기 캄브리아기에서도 비슷한 화석이 보고되었다. 캐나다의 5억 800만 년 전 버지스 셰일에도 잎 모양 화석 한 종류가 있다. 아발론의 잎 모양 생물과 같은 계통이라고 보는 연구자들이 있다.

세 가지 답은 서로 다른 분류군에서 제 몫을 차지하며 동시에 부분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 곧이어 오는 캄브리아기에는 동물에게 껍데기와 눈과 다리가 한꺼번에 생겨난다. 그것은 다음 편의 이야기다. 에디아카라의 이 몸들은 그 떠들썩한 잔치의 문턱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칸을 보자. ‘에디아카라 생물군’이라는 이름은 수십 년 동안 쓰였다. 2014년 한 학자는 논문 한 편을 썼다. 제목부터 「‘에디아카라 생물군’ 같은 것은 없다」였다.

그는 이 말이 때로는 한 시대를, 때로는 육안으로 보이는 큰 화석들을, 또 때로는 사암에 본떠진, 몸이 연하고 모습이 기묘한 생물들만을 가리킨다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의 조류, 미생물, 골격을 갖춘 동물은 흔히 제외된다. 빼는 이유는 친연 관계도 형태도 아니다. 그저 사암 주형 속의 그 모습으로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름이 둘러싼 것은 그 시대에, 그런 방식으로 보존된 것들이다. 조건 하나는 시간에 속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속한다. 그러니 ‘에디아카라 생물군은 어느 계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하나의 집합을 두고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보존 조건으로 묶은 집합이 곧 하나의 단일계통군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이번 편의 구축된 틀, 린네에게서 물려받은 그 칸들로 돌아가자. 칸마다 진단표 하나가 필요하고, 표는 오늘날 살아 있는 구성원들을 보고 작성되었다. 구축된 틀이 담지 못하면서도 없앨 수 없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 부른다. 이번 편의 잔여항은 이 생물들 전체다. 기재된 대형 생물종은 약 200종인데, 소속이 확정된 것은 아주 작은 일부이고, 그마저도 대개 ‘동물’, ‘좌우대칭동물’이라는 층위에 머문다.

지난 편의 잔여항은 좌표축 안에 있었다. 수십 차례의 다세포성 기원은 모두 훤히 보였다. 다만 자연적인 단위가 없는 자 하나 때문에 뒤쪽으로 밀려났을 뿐이다. 이번 편의 잔여항은 칸의 모양 안에 있다.

이 생물들은 훤히 보인다. 박물관 서랍에 들어 있고, 표본은 수천, 수만 점이다. 형태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고, 성장을 복원할 수 있다. 일부는 행동의 흔적까지 남겼다.

이들에게 없는 것은 그 칸들이 하나같이 요구하는 한 벌의 형질이다. ‘아직 다 모으지 못했다’고 하면, 원래는 그 형질이 있었는데 보존되지 않았을 뿐인 것처럼 들린다. 실제는 더 단순할 수 있다. 이 생물들은 애초에 그 형질 한 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한 벌은 나중에야 다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칸은 다 갖춘 뒤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 저 생물들은 다 갖추기 전에 살았다.

판별 기준은 아직도 걸러낸다. 속명은 여전히 합쳐지고 쪼개진다. 그 하나의 큰 칸 자체를 이제 그만 쓰자는 제안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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