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열한 뒤에도 헤어지지 않았다
당신도 세포 하나에서 시작했다. 수정란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나뉘었다. 이렇게 두 배가 되는 일을 마흔 번 남짓 반복하면 사람 하나를 만들 만큼의 세포가 생긴다.
다만 당신 몸의 세포들은 나뉜 뒤에도 떠나지 않았다. 세포 하나가 둘로 나뉘면 대개는 각자의 길을 간다. 세균도 분열하면 떨어져 나가고, 짚신벌레도 분열하면 헤어진다. 당신의 피부 세포는 나뉜 뒤 세포막은 갈라졌지만, 당사자는 떠나지 않았다. 특수한 단백질이 이웃 세포에 단단히 못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로는 나뉘고도 헤어지지 않는다. 실험실에서는 수십 일 만에도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다. 뒤의 6절에서 살펴볼 것이다.
작아 보이는 사건이지만 결과는 크다. 세포들이 더는 저마다 따로 번식하지 않게 되면 선택이 작용하는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에는 세포 하나와 다른 세포 하나가 누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지 겨뤘다. 이제는 세포 무리 하나와 다른 무리가 겨룬다. 그렇다고 이 전환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세포가 달라붙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의 번식 단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번식해야 한다. 다음 세대의 몸은 이 몸에서 생겨나야지, 그 안의 세포 몇 개가 제각기 달아나 새로 세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세포 무리 안에서는 여전히 세포 하나하나가 자기 복제를 한다.
다세포성이 사소한 일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본래 내부 경쟁이 없던 단위를 내부 경쟁이 있는 단위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애초의 문제는 “세포는 어떻게 달라붙는가”가 아니었다. 달라붙은 뒤 그 안의 경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전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세포 천 개가 몸 하나를 이루고 있다고 해 보자. 그중 한 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겼다. 이 변이는 그 세포의 복제 속도를 높이지만 몸 전체에는 이롭지 않고,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몸 안에서 그 세포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반면 몸 전체의 번식은 그 때문에 더 나빠질 수 있다. 두 층위에서 선택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난점에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 있다. 암이다.
암은 그 문제가 오늘날 드러나는 모습이다. 암세포가 단세포 조상의 삶으로 되돌아간 것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분열만 챙기는 삶 말이다. 아직 논쟁 중인 주장이지만, 암과 다세포성의 기원을 하나의 문제 안에 놓아 준다.
암세포가 바로 그런 세포 무리다. 몸 안에서 더 빨리 복제되고, 그 때문에 자신이 속한 몸은 죽는다. 암세포를 두고 배신했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웃보다 빨리 복제될 뿐이다.
각자 복제할 수 있는 부품들이 모여 이루어진 몸에서는 “이웃보다 빨리 복제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다세포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 가지를 말해 준다. 이 모순을 어느 수준 아래로 눌러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몸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이 모순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세포 몸 안의 이 모순은 해결되어 과거가 된 문제가 아니다. 날마다 벌어지되, 충분히 낮은 수준으로 억눌려 있을 뿐인 지속적인 과정이다.
성인의 몸에는 약 30여 조 개의 세포가 있다. 날마다 수천억 개의 낡은 세포가 죽고 새 세포가 그 자리를 채운다. 분열할 때마다 DNA를 베끼다 글자 몇 개씩 틀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몸에서는 아마 세포 몇몇이 규칙을 어기며 복제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제거되고 있다.
대부분이라는 말에 주목하자. 대부분과 전부 사이의 작은 차이가 바로 이 체제가 아직 완결되지 못한 자리다. 세포 하나가 암이 되려면 대개 몇몇 핵심 유전자에서 잇따라 오류가 나야 한다. 쌓이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암은 주로 중년 이후에 나타난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동안 몸속 세포는 1경 번이 넘게 분열한다. 한 번 한 번이 모두 기회다.
원래 몸을 떠난 암세포도 있다. 개에게는 짝짓기를 통해 개에서 개로 전파되는 전염성 종양이 있다. 그 모든 종양의 세포는 수천 년 전 살았던 단 한 마리의 개에서 왔다.
그 개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 개의 세포 무리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개들에게서 살아간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51년 미국의 헨리에타 랙스라는 환자에게서 떼어 낸 암세포가 배양병에서 길러졌고, 지금도 전 세계 실험실에서 분열하고 있다.
그 세포를 가져갈 때 그녀의 동의는 받지 않았다. 태즈메이니아데빌의 얼굴에도 전염되는 암이 생긴다. 이 암 때문에 20여 년 사이 데빌의 수가 절반 넘게 줄었다.
아주 오래된 문제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7천만여 년 전 살았던 각룡 한 마리의 다리뼈에서 골암이 확인되었다. 식물에도 종양이 생기지만 그 때문에 죽는 일은 극히 드물다. 식물 세포는 세포벽에 묶여 제자리에 갇혀 있다. 빠져나가지 못하니 전이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은 여러 장치를 동원해 이런 규칙 위반을 억누른다. 5절에서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우선 다른 사실부터 보자. 세포들이 모여 몸을 이루는 일은 진화의 역사에서 여러 번 일어났다. 정확히 몇 번인지를 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2 스물다섯, 스물둘, 열여섯, 마흔다섯
“다세포성은 스무 번 넘게 독립적으로 기원했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가장 자주 거슬러 올라가는 출처는 두 편의 종설이다. 2007년 논문은 “적어도 스물다섯 번”, 2011년 논문은 진핵생물에서 “적어도 스물두 번”이라고 했다. 2017년의 또 다른 종설은 “적어도 열여섯 진핵생물 계통”이라는 수를 제시했다.
2023년 폴란드 학자 람자는 이 인용의 사슬을 따로 추적했다. “적어도 스물다섯 번”이라는 추산에는 무엇을 포함할지 정한 명확한 기준도, 항목별 목록도 없었다. 같은 논문의 그림에 분명하게 그려진 진핵 다세포 계통은 약 열여섯뿐이었다.
“적어도 스물두 번”에도 완전한 목록은 붙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라는 단서가 달린 추산이 논문에서 논문으로 옮겨 가더니, 2차 문헌에서는 “과학자들이 집계해 놓은 수”가 되었다. “적어도”는 “그보다 적지는 않다”는 뜻이지, “대략 그만큼이다”라는 뜻이 아니다.
숫자가 얼마나 큰지는 중요하다. 더 큰 문제, 지구 밖의 생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른 행성에서도 세포가 생겼다면, 거기서 몸으로 자라나는 일은 어려울까.
여기서 다세포성이 수십 번 나타났다면 그 첫걸음은 아마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것은 그다음 몇 걸음이다. 한두 번만 나타났다면 드문 행운에 가깝다. 수십 번 나타났다면 언제나 열려 있는 문에 더 가깝다.
그는 직접 다시 세었다. 가장 넓은 정의를 썼다. 일생의 대부분을 “막 하나 안에 세포핵 하나”가 들어 있는 전형적인 단세포 상태로 지내지 않는다면 모두 넣었다. 91개 분류군을 검토한 결과, 구별할 수 있는 독립 사례 45개를 얻었다.
이 45개 사례를 서로 다른 여섯 종류의 “다세포성”으로 나누기도 했다. 격막을 갖춘 다핵 균사도 있고, 분열하고도 떨어지지 않은 클론 덩어리도 있고, 잠시 모인 군체도 있고, 수많은 세포가 부분적으로 융합해 만든 그물도 있다. 그는 실제 횟수는 훨씬 많아서 거의 백 번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작은 원생생물 가운데는 기록이 너무 빈약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숫자가 이렇게 다른 까닭은 “무엇을 한 번으로 셀 것인가”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강이 몇 개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얼마나 길어야 강인가. 지류도 셀 것인가.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곳도 넣을 것인가. 이런 것을 정해야 숫자에 의미가 생긴다. 버섯이 좋은 예다. 우리가 먹는 버섯은 땅속에 넓게 퍼진 균사에서 올라온 “열매”다.
균사는 가느다란 관들이다. 서로 이어진 한 구간의 원형질 안에 여러 세포핵이 잠겨 있고, 중간의 격막은 불완전한 경우가 많으며 아예 없기도 하다. 이것을 다세포로 칠지는 “세포핵이 여럿”이면 되는지, “완전한 막으로 분리된 세포가 여럿”이어야 하는지에 달렸다.
앞의 기준이라면 들어가고, 뒤의 기준이라면 빠진다. 지중해의 해조류 카울레르파 탁시폴리아는 뿌리, 줄기, 잎처럼 생긴 부분을 만들고 한 개체가 1미터 안팎까지 자란다. 하지만 속은 칸막이 없는 하나의 긴 관이다. 수많은 세포핵이 같은 원형질 안에 잠겨 있다. 이것은 세포 하나인가, 다세포 식물 한 포기인가. 게다가 버섯에서 곰팡이까지 균계 전체의 주된 몸 형태는 균사다. 이 판단 하나로 수많은 균류가 집계에 나타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요구 조건을 더하면 숫자는 줄어든다. 둘 이상의 세포가 오랫동안 이어져 있기만 하면 된다고 할 때는 사상성 세균, 효모 덩어리, 조류 군체가 여럿 포함된다. 여기에 세포들이 안정적으로 서로 의존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으면 범위가 좁아진다.
되돌릴 수 없는 분화, 생식세포와 체세포의 분업, 입체적인 몸과 발생 프로그램까지 요구하면 극소수 계통만 남는다. 계통수가 바뀌어도 횟수는 달라진다. 일부 단세포 생물은 사실 다세포 조상에서 되돌아온 것이다. 이들이 늘 단세포였다고 생각하면 기원 횟수를 몇 번 더 세게 된다.
교과서에서는 흔히 “복잡한 다세포성은 약 여섯 번만 기원했다”고 한다. 동물, 균류, 홍조류, 갈조류, 녹조류, 육상식물이다. 이 구분 뒤에는 실제로 넘어야 할 문턱이 있다.
1차원의 실과 2차원의 얇은 판에서는 세포 하나하나가 여전히 물에 닿아 있다. 3차원의 덩어리는 다르다. 지름 1밀리미터인 꽉 찬 세포 덩어리를 생각해 보자. 중심은 표면에서 0.5밀리미터 떨어져 있다. 산소가 확산만으로 그 거리를 가는 속도는 너무 느려 세포가 산소를 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입체적인 몸이 어느 두께를 넘어서면 스스로 수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속이 죽는다.
다만 이 여섯 항목은 같은 층위에 놓여 있지 않다. 육상식물은 본래 녹색식물 안에 들어가며, 균류의 복잡한 자실체는 여덟에서 열한 갈래 계통에서 각각 출현했을 수도 있다. 스물다섯, 스물둘, 열여섯, 마흔다섯은 같은 양을 네 번 측정한 값이 아니다.
3 저마다 따로 생겨난 몸
따로 생겨난 몸들은 모습부터 크게 다를 수 있다. 가장 익숙한 갈래인 동물부터 보자. 해면, 해파리, 벌레, 물고기, 사람은 모두 같은 다세포 조상에서 나왔다. 동물의 몸은 단 한 번 기원했다. 육상식물도 한 번이다. 물속 녹조류의 한 갈래에서 나왔다. 나머지는 저마다의 내력이 있다.
다시마가 그 하나다. 다시마는 갈조류로, 육상식물과 가까운 친척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다세포 몸을 만들어 냈다. 친연관계로 따지면 다시마와 배추 사이는 사람과 버섯 사이보다 더 멀다.
캘리포니아 연안의 거대켈프는 하루에 0.5미터씩 자랄 수 있고, 전체 길이가 40~50미터에 이르러 바닷속에 “해저 숲”을 펼친다. 그 숲에는 켈프를 먹는 성게도 살고, 성게를 먹는 해달도 산다.
해달이 줄면 성게가 켈프를 모조리 갉아 먹어 숲 전체가 민둥 해저가 된다. 거대켈프 몸속에는 광합성으로 만든 당을 깊은 곳으로 보내는 특수한 세포들이 있다. 식물의 수송 조직과 아주 비슷하다. 양쪽에서 따로 생각해 낸 해법이다.
김과 우뭇가사리는 홍조류다. 또 한 번의 별도 기원이다. 밥상 위의 다시마, 미역, 김, 그리고 우뭇가사리를 끓여 차게 굳힌 묵은 서로 독립적인 두 번의 다세포 기원에 속한다. 홍조류 가운데는 몸에 단단한 탄산칼슘 껍질을 만드는 부류도 있다. 분홍빛 석회 한 겹처럼 자라 산호초의 파편들을 서로 붙들어 맨다.
버섯을 만들어 내는 균류는 또 다른 기원이다. 숲에서 균사는 나무뿌리를 감싸며 나무와 나무를 잇는다. 당과 영양분은 균사를 따라 나무 사이를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다.
이 지하 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쟁 중이다. 커다란 말불버섯 하나가 익으면 속에 수조 개의 포자가 들어갈 수 있다. 살짝 밟기만 해도 연기 같은 포자 구름이 피어오른다.
풀밭에 버섯이 동그란 고리를 이루며 돋을 때가 있다. 영어로는 요정의 고리, 중국어로는 흔히 버섯 고리라고 부른다. 땅속 균사가 한 점에서 출발해 해마다 바깥으로 퍼져 나간 흔적이다. 가장자리의 양분이 가장 넉넉하므로 버섯이 테두리를 따라 올라온다. 미국 오리건주의 산림에는 땅속에서 하나로 이어진 뽕나무버섯 균사체가 있다. 면적이 거의 10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나이는 수천 년으로 추정된다. 지구에서 가장 큰 생물 가운데 하나로 자주 꼽힌다.
점균은 다른 길을 택했다. 피사룸 폴리케팔룸이라는 노란 점균은 하나의 거대한 세포다. 그 안에 수천, 수만 개의 세포핵을 품은 채 썩은 나무 위를 기어 다니며 그물을 이룬다.
일본 연구자들이 미로에 이 점균을 놓고 양 끝에 귀리 조각을 두었더니, 몸을 오므려 두 끝을 잇는 가장 짧은 선으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도쿄 주변 도시들의 위치에 맞추어 귀리 조각을 놓았다. 점균이 만든 망은 도쿄 일대 철도망과 꽤 비슷했다.
“길을 기억”하기도 한다. 지나간 자리에 점액층을 남기고, 그것을 다시 만나면 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짚지 않는다. 이것을 세포 하나로 볼 것인가, 몸 하나로 볼 것인가. 바로 앞 절에서 만난 문제다.
세포성 점균은 또 다르게 모인다.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이라는 종은 평소에는 아메바들이 하나씩 따로 지내며 흙 속의 세균을 먹는다. 굶주리면 수천, 수만 개가 한곳으로 기어와 길이 몇 밀리미터의 움직이는 “작은 민달팽이”를 이룬다. 밝은 곳으로, 따뜻한 곳으로 기어가다가 알맞은 자리를 만나면 가느다란 자루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포자 덩어리를 받친다. 이 자루는 4절에서 자세히 볼 것이다.
세균도 있다. 점액세균의 한 부류는 굶주리면 역시 모여들어 맨눈으로 겨우 보이는 작은 “열매”를 만든다. 작은 나무를 닮은 것도 있으며, 속에는 포자가 들어 있다.
남세균은 줄줄이 이어진 실로 자란다. 그 실 속에서 일부 세포는 질소 고정만 맡는다. 4편에서 다룬 이야기다. 흙에서 흔한 방선균인 스트렙토미세스는 가지 치는 균사로 자란다. 비가 온 뒤 나는 흙냄새의 상당 부분이 이들이 내놓는 한 분자에서 비롯된다. 또 포자가 줄줄이 달린 구조를 위로 세운다. 우리가 쓰는 천연 항생제의 절반 이상은 처음에 이 세균 무리에서 발견되었다.
동물과 가장 가까운 단세포 친척인 깃편모충도 있다. 세포마다 꼭대기에 편모 하나가 있고, 그 둘레를 “깃”이 감싼다. 해면에서 물을 거르는 세포와 아주 닮았다. 어떤 깃편모충은 작은 장미꽃 같은 세포 군체를 이룬다. 7절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몸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앞의 45개 사례 가운데 약 33개는 세포 하나가 분열한 뒤 떨어지지 않은 경우이고, 약 12개는 따로 떠돌던 여러 세포가 다시 모인 경우다. 이 두 방식의 차이는 겉보기보다 훨씬 크다.
4 모여드는 것과 헤어지지 않는 것
형성 경로는 둘이며, 그 차이는 생김새에 있지 않다. 클론 방식에서는 세포가 분열한 뒤 딸세포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세포가 하나의 출발점에서 나온다. 사람도 그렇다. 온몸의 세포가 똑같은 수정란 하나에서 비롯된다.
집합 방식에서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세포들이 먼저 존재한다. 환경 신호가 이들을 움직여 한데 모이게 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왔으므로 유전적으로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2013년 한 연구는 둘을 “함께 남기”와 “함께 모이기”로 요약했다. 근본적인 차이는 무리 안의 친연관계가 얼마나 가까운가에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집단 내 유전적 관련도라고 부른다.
이것이 결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세포가 자신에게는 이롭고 전체에는 해로운 쪽으로 바뀌었을 때, 그 결과를 감당하는 세포들이 자신과 같은 조상에서 나온 자손인가 아닌가.
비유해 보자. 세포 하나에서 자란 몸의 세포는 모두 같은 세포의 자손이다. 친형제자매로 이루어진 대가족 같다. 반면 모여서 만들어진 무리에는 출신이 완전히 다른 세포가 섞일 수 있다. 낯선 사람들이 잠깐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똑같이 “누군가 일을 빼먹는” 상황이어도 결과는 전혀 다르다. 친형제자매 사이에서는 농땡이로 얻은 이득도 결국 자신과 거의 같은 세포들에게 돌아간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이득이 고스란히 남는 장사다.
집합 방식의 몸도 재주가 만만치 않다. 1907년 미국의 윌슨은 해면 조각을 고운 천 사이로 눌러 통과시켰다. 해면은 낱낱의 세포로 흩어졌다. 며칠 뒤 세포들은 스스로 기어와 다시 모였고, 작은 해면으로 자라났다. 다만 다시 모인 세포가 모두 원래의 식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사람 몸에도 외부인이 산다. 임신 중 태아의 일부 세포는 태반을 넘어 어머니 몸으로 들어가 수십 년을 머문다. 연구자들은 어머니의 혈액과 피부, 심지어 뇌에서도 아이의 세포를 찾아냈다.
따라서 집합 방식의 체계에서는 “일을 빼먹는” 이득이 훨씬 크다. 그리고 이 차이가 고도로 분업화된 체계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결정한다.
2013년 168종을 계통학적으로 비교한 연구에서는 클론 방식으로 군체를 이루는 열두 계통 가운데 아홉이 다세포 단계가 필수인 생활사로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연구에 포함된, 집합 방식이 가능한 다섯 계통은 모두 여전히 다세포 단계가 필수는 아닌 생활사를 유지했다. 클론 방식의 형성은 더 많은 세포 유형, 번식하지 않는 세포의 출현과도 관련이 있었다.
클론 안에서도 갈등은 생긴다. 돌연변이와 키메라 형성, 체세포 선택이 다시 차이를 만들어 낸다. 클론 방식이 낮추는 것은 갈등이 출발할 때의 조건이다.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오늘날 가장 크고 구조가 가장 복잡한 다세포 생물, 거대 세쿼이아와 대왕고래와 사람은 모두 분열 뒤에도 계통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생활사를 쓴다. 집합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집단 내 선택은 직접 관찰되었다.
딕티오스텔리움은 “농사”도 짓는다. 2011년 연구자들은 일부 딕티오스텔리움이 모여 이동할 때 세균을 조금씩 챙겨 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 장소에 도착하면 우선 세균을 뿌려 놓고, 수가 불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먹는다.
세포성 점균에서는 굶주린 뒤 수많은 세포가 모인다. 약 5분의 1은 결국 더는 번식하지 않는 자루가 되고 나머지는 포자로 들어간다. 자루를 이루는 세포들은 자손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스스로를 포자를 높이 들어 올리는 막대로 바꾼 것이다. 조금만 높아져도 포자가 바람이나 지나가는 동물에 실려 갈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니 낭비는 아니다. 하지만 그 5분의 1 자신에게는 종착점이다. 서로 다른 클론을 섞으면 어떤 유전자형은 처음 섞였을 때보다 최종 포자에서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누가 자루가 되고 누가 포자가 될 것인가”에서 이득을 본 것이다.
다시 말해, 섞여 들어온 어떤 세포들은 자루가 덜 되고 포자가 더 된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도 필요 없다. 분류되는 과정에서 일부 세포가 포자 쪽으로 더 쉽게 밀려가기만 하면 된다. 세포 표면의 작은 성질 차이로도 충분하다.
한편 야생의 자실체는 대개 친연도가 매우 높다. 이는 이런 경쟁을 제한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해석된다. 자연에서 모이는 세포들은 대부분 원래부터 친척이라는 말이다.
3절에서 본 작은 “열매”를 만드는 점액세균은 평소에도 무리 지어 움직인다. 늑대 떼처럼 다른 세균을 에워싸고 소화 효소를 내보내 함께 먹는다. 이 세균은 한층 명료한 실험을 제공했다.
2000년 연구자들은 영양이 풍부한 환경에서 한 개체군을 약 천 세대 동안 진화시켜 자실체 형성 능력이 떨어진 여러 계통을 얻었다. 그중 일부를 조상 계통과 섞고 발생을 유도하자, 접종했을 때보다 만들어진 포자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여기서 직접 보이는 것은 이것이다. 섞인 자실체 안에서 세포나 계통이 거두는 상대적 번식 성공은 발생 구조 전체의 기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 실험의 선택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그 천 세대는 영양이 풍부한 환경에서 지냈다. 그 조건에서는 자실체를 만드는 능력에 보상이 없었다.
따라서 이 실험이 보여 주는 것은 “집합 방식은 반드시 무너진다”가 아니다. 집단 내 선택의 통로가 열려 있으면 보상받지 못하는 집단 기능은 퇴화하고, 퇴화한 계통이 섞였을 때는 오히려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5 갈등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억눌린 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쓰면, 선택은 두 층위에서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세포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전체 변화는 두 항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세포 집단, 곧 몸들 사이의 차이다. 어떤 몸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겼는가.
다른 하나는 같은 몸 안의 세포들 사이의 차이다. 어떤 세포가 이 몸 안에서 더 많이 복제되었는가. 한 세포의 형질이 몸 안에서 그 세포의 몫을 늘리면서 몸 전체의 번식량은 줄인다면, 두 항은 반대 방향을 향한다.
더 빨리 복제되고 조직의 기능에는 덜 투자하는 세포 계통에 의도는 필요 없다. 세포 수준에서 상대적 우위가 높기만 하면 몸 안에서 늘어난다. 이렇게 나누어 보면 또 하나가 드러난다. 내부 갈등은 다세포 체제의 구조적 성질이다. 각자 복제할 수 있는 부품들로 몸을 이루는 한, 갈등은 존재한다.
번식 단위 하나가 저마다 복제 가능한 여러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두 항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어느 한 항을 낮추는 것은 발생 체계가 추가로 해야 하는 일이다. 억제 장치는 여러 벌이고, 어느 것이든 자기만의 빈틈이 있다.
첫째는 단세포 병목이다. 동물과 많은 조류, 식물은 세대마다 세포 하나에서 몸을 시작한다. 왜 중요한가. 새 세대가 커다란 세포 덩어리에서 출발한다면, 앞선 세대의 몸에 쌓인 세포 차이가 모두 그대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반면 세포 하나에서 출발하면 그 차이가 초기화된다.
이 장치가 낮추는 것은 새 몸 하나가 시작할 때의 내부 차이다. 종 전체의 장기적인 변이까지 반드시 줄이는 것은 아니다. 매 세대의 돌연변이는 여전히 새로운 차이를 만든다. 또 병목을 거친다는 것은 극소수 세포에서 거대한 몸 전체를 거듭 다시 지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우연성이 더 중요해진다.
세포 하나에서 시작하는 몸은 앞선 세대가 쌓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초기화인 동시에 모든 위험을 다시 한번 겪는 일이다.
둘째는 생식세포와 체세포의 이른 분리다. 동물은 발생의 아주 이른 시기에 작은 세포 무리를 따로 떼어 다음 세대를 만드는 일만 맡긴다. 피부, 근육, 신경, 혈액을 비롯한 나머지 모든 세포는 유전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체세포 변이 대부분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통로가 끊긴다. 뒤늦게 생긴 어떤 체세포 변이가 몸 안에서 퍼지더라도 대개 다음 세대의 조상이 되지는 못한다. 그 결과 절대다수의 세포는 유전적으로 막다른 곳이 된다. 체세포에서 생긴 유리한 변이도 대개 유전되지 못한다.
식물에는 이렇게 엄격한 경계가 없다. 나무의 어느 분열 조직에서든 꽃이 자랄 수 있고, 꽃은 배우자를 만든다. 그런데도 식물은 복잡한 몸을 유지한다.
2022년에는 바로 이런 예외를 근거로 단세포 병목과 이른 생식계열 분리가 복잡한 다세포성의 논리적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반례가 중요한 까닭은 다섯 가지 장치가 필수 이수 목록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방법들의 묶음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계통마다 다른 조합을 썼지만, 모두 갈등을 유지 가능한 수준까지 낮추었다.
셋째는 세포의 인식과 배제다. 세포성 점균에는 다형성이 매우 높은 인식 체계가 있다. 발생 과정에서 서로 맞는 표지를 가진 세포끼리 알아보고, 맞지 않으면 갈라져 분류될 수 있게 한다.
빈틈도 분명하다. 인식 체계는 자신이 알아볼 수 있는 차이만 막을 수 있다. 같은 클론 안에서 나중에 생긴 새 돌연변이까지 막지는 못한다. 지나치게 강한 배제는 함께 더 큰 구조를 만들 수도 있었을 세포의 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인식이 바꾸는 것은 외부인이 섞여 들어올 확률이다.
넷째는 프로그램된 세포 죽음이다. 세포 안에는 자폭 프로그램이 있다. 자기 DNA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음을 감지하거나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놓였을 때, 세포는 이 프로그램을 스스로 켤 수 있다.
하지만 세포가 죽는 데도 비용이 든다. 조직은 세포를 잃고, 재생과 자원 보충이 필요해진다. 문턱이 너무 낮으면 손상되었어도 고칠 수 있는 세포까지 퇴장한다. 너무 높으면 비정상적인 계통이 남는다.
그러므로 선택은 수선과 정지, 제거 사이의 절충에 작용한다. 200년 넘게 살 수 있는 북극고래가 이 점을 특히 잘 보여 준다. 2025년 연구에서는 북극고래가 DNA 절단을 유난히 잘 복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수의 한 이유일 수 있다.
몸 안에는 순찰대도 있다. 면역계에는 표면이 이상한 세포를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부류의 세포가 있고, 찾아내면 죽인다.
다섯째는 증식의 중앙 통제다. “언제 분열할 것인가”를 개별 세포가 처한 영양 상태에 맡기지 않고, 몸 전체의 발생 프로그램 안으로 옮겨 놓는다.
볼복스류가 한 예를 제공한다. 단세포인 클라미도모나스에서 다세포인 고니움으로 이어지는 변화에서, 세포주기 조절 경로 하나가 군체를 이루는 분열에 새로 쓰였다. 고니움의 관련 조절 인자를 클라미도모나스에 넣으면 군체 표현형을 유도할 수 있다.
이제 암으로 돌아가자. 암은 이 문제가 지금도 구조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중요한 것은 이 점이다. 단세포 병목, 이른 생식계열 분리, 인식 체계, 프로그램된 죽음, 중앙집중적 증식 통제를 갖춘 몸도 그 제약을 어기는 세포 계통을 내부에서 거듭 만들어 낸다.
다섯 장치가 동시에 돌아가는데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장치들 자체도 공짜가 아니다. 병목은 변이를 버리고, 생식계열 분리는 대다수 세포의 유전적 길을 막는다. 인식은 협력할 수 있었던 상대까지 거부할 수 있고, 죽음은 조직을 소모한다. 중앙 통제에는 신호 체계 한 벌이 통째로 필요하다.
1970년대 영국 역학자 피토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훗날 피토의 역설이라 불리게 된 질문이다. 사람은 생쥐보다 세포가 수천 배 많고 수명도 수십 배 긴데, 왜 암에 걸릴 위험은 더 높지 않을까. 직관대로라면 세포가 많을수록, 오래 살수록 오류가 날 기회도 많아야 한다. 대왕고래 한 마리의 세포 수는 사람의 수천 배다. 이치대로라면 일찌감치 암에 걸려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적어도 세포 수에 비례해서 걸리지는 않는다. 현대의 데이터는 이 문제를 일화에서 종간 통계로 옮겨 놓았다. 사람은 평생 암으로 죽을 비율이 약 10~25%인 반면, 동물원의 코끼리는 5% 미만이다. 2022년 동물원 기록에 담긴 포유류 191종, 110,148개체를 정리한 연구에서는 성체 체중과 성체 수명이 커진다고 암 사망 위험이 단순하게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해 다른 연구는 포유류 열여섯 종의 체세포 돌연변이를 비교했다. 연간 돌연변이율은 수명과 강한 역상관을 보였지만, 몸집만으로 암 위험을 단순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세포 수와 수명만으로, 각 위험이 독립적이라는 소박한 모형을 써서 종간 암 부담을 선형적으로 예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몸집이 크고 오래 사는 계통에는 추가적인 억제 장치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치들은 같은 한 벌이 아니다.
코끼리에는 “DNA가 망가졌음을 발견하면 세포를 멈추게 하거나 자살시키는” 일을 맡는 종양 억제 유전자가 있다. 사람에게는 한 사본뿐인데 코끼리에게는 스무 사본쯤 있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생쥐만 한 몸으로 개미처럼 큰 무리를 이루어 땅속에 살고, 무리마다 “여왕” 한 마리만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30년 넘게 살며 암에도 극히 드물게 걸린다. 이 동물의 연구에서는 다른 장치가 제시되었다. 유난히 긴 히알루론산, 화장품에서 흔히 보는 바로 그 분자가 강력한 접촉 억제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북극고래는 또 다르다. 복구 효율이다. 서로 다른 큰 몸들은 서로 다른 층위의 제약을 진화시켰다.
발생과 생활사는 암의 발생률과 퍼지는 범위, 다음 세대로 유전될 기회를 다세포 번식 단위가 유지될 수 있을 만큼 낮추어 놓았다.
문제를 완전히 닫을 수 없을 때 흔히 나오는 길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다.
6 실험실에서 보낸 60일
2012년 미국의 랫클리프와 동료들은 여기에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직접 재는 실험을 했다. 대상은 빵을 만들고 맥주를 빚을 때 쓰는 효모였다. 평소에는 하나씩 따로 자란다.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날마다 배양한 뒤 시험관을 잠깐 세워 두고, 바닥에 가라앉은 부분만 새 시험관으로 옮겼다. 빨리 가라앉는 것은 더 큰 것들이었다.
장치라야 시험관 하나와 조금의 인내심이 전부였다. 효모에는 또 편리한 점이 있다. 빨리 자라 하루에도 여러 세대를 넘길 수 있고, 얼렸다가 되살릴 수도 있다.
실험을 얼마간 진행할 때마다 시료를 하나씩 얼려 두었다. 나중에 “조상”을 꺼내 그 자손과 나란히 비교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도, 특별한 환경도, 밖에서 더해 준 신호 분자도 없었다. 그저 날마다 빨리 가라앉은 부분을 골랐다.
그러자 “커지는 것”만이 보상받는 일이 되었다. 자란 효모 덩어리는 한 가지에서 여러 가지가 갈라져 현미경 아래에서 눈송이처럼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를 눈송이 효모라고 불렀다. 두 독립 실험의 반복 개체군은 모두 열다섯이었고, 60일 안에 전부 덩어리 표현형을 보였다.
따로 살던 세포들이 다시 모인 것은 아니었다. 출아한 뒤 어미세포와 딸세포가 정상적으로 분리되지 않아 가지 치는 클론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덩어리마다 처음부터 유전적 관련도가 매우 높았다. 후속 연구는 이 표현형을 딸세포 분리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유전자 하나의 기능 손상과 연결했다.
즉, 세포들을 군체로 잇는 첫걸음은 새 접착 체계를 짓지 않고도 분리 프로그램 하나를 꺼 버리는 것으로 가능하다. 이는 “다세포성은 진화하기 어렵다”는 직관의 힘을 곧바로 약하게 만든다. 적어도 첫걸음은 아주 쉬울 수 있다. 장기 실험은 훨씬 더 멀리 갔다.
후속 실험은 선택을 600차례, 약 3천 세대에 걸쳐 이어 갔고 2023년에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은 다세포 장기 진화 실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계속할 계획을 세웠다. 본보기는 미국에서 198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대장균 장기 진화 실험이다. 그곳의 대장균은 벌써 7만 세대를 넘겼다. 그중 한 갈래는 3만여 세대 무렵에 갑자기 배양액 속 구연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조상은 먹지 못하던 것이었다.
산소를 이용해 호흡할 수 없도록 하여 내부의 산소 확산 제약에 따른 불이익을 피한 처리에서는, 반복 개체군 다섯이 모두 맨눈으로 보이는 크기에 이르렀다. 덩어리의 평균 반지름은 약 16마이크로미터에서 약 434마이크로미터로 늘었고, 전체 규모는 약 2만 배, 물리적 인성은 약 1만 배 커졌다.
현미경이 있어야 보이던 것이 맨눈으로 보이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외부 유전자 하나 없이 3천 세대 안에 일어났다. 핵심 변화는 세포 모양에 있었다.
세포가 더 가늘고 길어지면서 가지끼리 더 쉽게 얽혔다. 끊어지려면 더 많은 세포 연결이 동시에 파괴되어야 했으므로, 큰 덩어리는 더 큰 기계적 응력을 견딜 수 있었다.
세포 수준의 형태 변화가 집단 수준의 새로운 성질을 낳은 것이다. 산소 조건 자체는 왜 실험 결과를 그대로 외삽할 수 없는지도 보여 주었다.
2021년 실험에서는 중간 정도의 산소 농도가 오히려 큰 덩어리를 제한했다. 내부 세포가 얻을 수 있는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약 800세대가 되었을 때는 산소 처리에 따라 뚜렷이 다른 크기 상한이 생겨 있었다.
녹조류에 포식자를 더하는 실험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
2019년 연구자들은 교배를 거친 클라미도모나스 개체군을 섬모충이 잡아먹게 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포식자의 입 크기는 정해져 있다. 세포 몇 개가 뭉치면 너무 커서 삼킬 수 없어진다. 포식 처리 개체군 다섯 가운데 둘은 약 750번의 무성 세대 안에 대조군에는 없는 유전 가능한 다세포 생활사를 형성했다.
2021년 다른 연구진은 유전자형이 같은 녹조류 열 계통에 윤충을 포식자로 넣었다. 6편에서 보았던, 몸을 말려 바람에 실려 가는 작은 동물의 친척이다. 약 500세대 뒤에는 안정적이고 유전 가능한 군체 생장 표현형이 나왔고, 군체를 이루는 모든 분리주에 공통된 병행적 유전 변화도 검출되었다.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은 두 층위로 나누어야 한다. 일부 진화 계통은 생활사 중에 더 작거나 아예 단세포인 번식 단계를 만든다. 따라서 하나의 유전되는 생활사 안에서 다세포 단계와 단세포 단계가 번갈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포식자를 없애자마자 유전자형이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이 실험들은 한 가지를 강하게 입증한다. 단순한 군체가 만들어지는 데는 긴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다.
동시에 생겨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여러 세포 유형으로 이루어진 안정적인 계통, 복잡한 공간 배치, 장거리 수송 체계, 정교한 위치 의존적 신호, 완전한 생식세포·체세포 발생 프로그램이다.
약 3천 세대와 2만 배의 규모 변화를 거친 뒤에도 연구자들은 눈송이 효모를 명시적으로 “미분화 다세포” 체계로 사용한다. 이 사실 자체가 “밀리미터 규모”와 “복잡한 다세포”가 같은 말이 아님을 보여 주는 실험적 사례다. 선택 자체에서 오는 한계도 있다.
이런 실험에서는 연구자가 기준을 정한다. 대개 차원도 하나뿐이다. 빨리 가라앉거나, 잡아먹히지 않거나. 3편 첫머리에서 복제 속도만 재던 시험관과 같은 모양이다. 선별 기준이 보상하는 것을 남긴다.
자연에서 선택은 자원, 확산, 포식, 질병, 공간, 번식, 계절 등 여러 차원을 동시에 포함한다. 따라서 “수십에서 수백 세대 만에 세포 덩어리를 얻었다”는 결과가 뒷받침하는 것은 “군체 형성의 문턱은 아주 낮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거기서 복잡한 발생 체계에 필요한 시간까지 외삽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에서 다룬 실험들은 단세포 조상으로부터 안정적이고 유전 가능한 세포 유형 분화가 새로 진화했음을 입증했는가. 여기서 살펴본 결과만으로는 아직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눈송이 효모에서는 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덩어리가 커지면 안쪽의 일부 세포가 먼저 죽었다. 죽은 세포가 끊어질 자리가 되었고, 덩어리는 거기서 갈라져 더 작은 새 덩어리를 내보냈다. 죽음이 번식에 쓰인 것이다.
눈송이 효모에는 이미 위치 의존적 죽음과 뚜렷한 기능 차이가 진화했다. 이를 초기적인 분업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볼복스처럼 안정적인 발생 프로그램이 거듭 만들어 내는, 유전적으로는 같으면서 운명이 고정된 두 세포 유형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7 계단은 교구이지 계보가 아니다
볼복스는 연못에 사는 초록색 작은 공이다. 맨눈으로는 겨우 보인다. 1700년 네덜란드의 레이우엔훅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이것이 물속에서 천천히 굴러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공 안에는 다음 세대의 작은 공들이 몇 개 더 들어 있었다. 볼복스와 그 친척들은 실제로 아주 눈에 띄는 형태의 연속을 보여 준다.
단세포인 클라미도모나스. 보통 여덟 개나 열여섯 개의 세포가 작은 평판으로 배열되고 안정적인 분화는 없는 고니움. 열여섯 세포가 작은 공 모양으로 빽빽하게 모인 판도리나. 서른두 세포가 속이 빈 공을 이루는 에우도리나.
또 다른 속의 군체는 보통 수십 개에서 백 개가 넘는 세포로 이루어지며, 일부 종에서는 이미 앞뒤의 분업이 나타난다. 볼복스 자체에는 최종 분화를 마친 작은 체세포가 약 2천 개, 큰 생식세포가 약 열여섯 개 있다.
작은 세포 2천 개에는 편모가 달려 있다. 평생 물을 젓는 일을 하다가 죽는다.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십여 개의 큰 세포뿐이다. 생식세포를 따로 떼어 놓은 가장 단순한 모습이다. 볼복스 공 하나 안에는 흔히 십여 개의 딸 공이 들어 있다. 마지막에 어미 공이 터지면 딸 공들이 헤엄쳐 나와 저마다 자란다. 볼복스의 배아는 발생 도중 몸 전체를 뒤집기도 한다. 양말을 안팎으로 뒤집듯 뒤집어 편모가 바깥을 향하게 한다.
이 형태들을 한 줄로 놓으면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오르는 계단처럼 보인다. 실제로 교과서에도 흔히 그렇게 그려 놓는다. 하지만 조상과 자손의 계단으로 배열할 수는 없다.
이들은 모두 지금 살아 있는 가지 끝이다.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뒤 각자 계속 진화했다. 2009년 분자시계 분석은 다세포 볼복스류의 초기 분기를 적어도 약 2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려놓았다. 오늘 보는 단순한 군체는 시간이 멈춘 옛 조상이 아니다.
이들로 계단을 만드는 것은 오늘날의 생쥐, 개, 사람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이것이 포유류의 진화 과정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기원 횟수 자체도 계통수가 바뀌면서 수정되었다.
이전의 틀에서는 미분화 다세포성에 하나의 주된 기원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21년 계통전사체 분석으로 얻은 나무는 다른 결과를 냈다. 다세포성이 적어도 두 번 독립적으로 출현했고, 전통적으로 구분하던 어떤 과는 단일계통이 아니었다. “볼복스류의 다세포성은 한 번만 기원했다”조차 안정된 사실이 아니다. 유전체 결과는 직관을 더 거스른다.
2010년 볼복스와 클라미도모나스의 유전체를 비교했을 때 이미 드러난 사실이 있다. 형태 차이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두 유전체는 전체적으로 훨씬 더 비슷했다.
2016년 미분화 상태인 고니움의 유전체를 더하자, 다세포성이 나타난 분기점에서 순증한 유전자군은 약 110개, 새 단백질 도메인은 아홉 개만 검출되었다. 더 이른 분기점의 변화보다 훨씬 적었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바뀌는 전환에 유전자군 110개라니, 뜻밖에 적은 수다.
가장 명료한 예는 앞서 본 세포주기 조절 경로다. 이 경로는 단세포 클라미도모나스에 이미 있었다. 고니움에서 달라진 것은 그 조절 방식이었다. 부품이 먼저 있었다. 쓰임이 바뀌었다.
이 결과들을 함께 놓으면 이렇다. 새로운 조직화 층위가 나타날 때 추가되는 유전자군은 얼마 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기존 유전자군의 조절 관계와 사본 수, 쓰이는 상황이 달라진다. 따라서 “다세포성이 되려면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 묶음이 필요하다”는 직관은 이 분류군에서 지지받지 못했다.
동물 쪽도 비슷하며,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2008년 유전체를 해독한 깃편모충 한 종은 알려진 동물의 단세포 친척 가운데 가장 가까운 부류에 속한다. 이 종의 약 9,200개 유전자에는, 전에는 주로 동물을 통해 알려졌던 여러 세포 접착 단백질과 신호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들이 이미 들어 있었다. 조금 더 넓은 범위의 동물 단세포 친척 하나에서는 또 다른 도구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도구 상자가 모두 미리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일련의 연구들도 동물의 여러 세포 간 신호 경로와 수많은 발생 조절 네트워크는 동물 계통에서 확장되었다고 강조한다.
해면은 가장 단순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신경도 근육도 진정한 기관도 없고, 몸에는 작은 구멍이 가득하다. 물이 구멍으로 들어오면 안쪽의 깃세포 층이 편모를 흔들어 물속 세균을 걸러 먹는다. 깃편모충은 이 세포와 매우 닮았다. 처음에 동물의 가까운 친척으로 여겨진 이유다.
미국 버클리의 킹 연구실에서 나온, 특히 깔끔한 사례가 하나 있다.
어떤 깃편모충은 특정 세균 신호가 없으면 단세포나 일렬로 이어진 사슬로 살 수 있다. 그러다가 먹이로 삼는 세균 한 종이 만든 분자에 자극을 받으면, 잇따른 세포분열을 통해 안정적인 구형 군체를 만든다.
우연한 발견이었다. 연구자들은 처음에 아무리 해도 이 작은 장미꽃을 길러 내지 못했다. 나중에야 배양액에 섞여 들어간 세균 한 종류가 열쇠라는 것을 알았다. 세균은 신호만 제공했다. 세포 접착, 극성, 연속 분열, 형태 형성의 능력은 깃편모충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다세포성에 필요한 분자 도구 상자의 대부분은 다세포성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말은 성립할 수 있다. 다만 두 층위로 나누어야 한다.
첫째는 단백질 부품이 생긴 시기다. 접착 단백질, 신호 단백질, 여러 종류의 전사인자는 모두 동물의 단세포 친척에게 상동체가 있다.
둘째는 조절 조합이 생긴 시기다. 이런 오래된 단백질은 이미 단세포 생물의 서로 다른 생활 단계에서 조합되어 쓰이고 있었다. 동물의 다세포성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 하나는 기존 모듈을 공간과 시간, 세포 유형에 특이적인 조절 네트워크로 새롭게 연결한 것이다. 도구 상자가 있다는 것과 체제가 있다는 것은 다르다.
단세포 생물도 바닥에 달라붙고, 먹이를 알아보고, 이웃을 감지하고, 생활 상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중에 세포와 세포를 붙이는 데 쓰인 단백질의 조상이, 먼저 세포와 바닥을 붙이는 데 쓰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앞의 단세포 친척이 가진 접착 체계는 단세포 상태에서도 바닥에 달라붙는 데 관여한다. 기능을 직접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예다.
그러니 “동물의 접착 단백질은 단세포 생물에게도 이미 있었다”는 말은 다세포성을 위한 준비가 끝나 있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말하는 바는 이렇다. 그 단백질은 당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체제 수준에서 새로 생겨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로 통합된 생활사가 이 부품들을 지속적으로 불러 써야 한다. 그래야 한 세포의 상태가 다른 세포에 안정적으로 영향을 주고,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운명이 되풀이해서 만들어진다.
8 멀리 가지 않은 것들
먼저 화석으로 얼마나 볼 수 있는지 살펴보자. 화석 하나가 다세포 개체인지를 판단할 때 가장 강력한 근거는 실제 세포 경계가 보이고, 이웃한 세포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위치에 따라 재현되는 세포 유형의 차이가 있고, 생장 방향이 일관되며, 전용 부착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는 부분적으로 흉내 낼 수 있다. 큰 원핵생물의 실에도 가로 격막이 생길 수 있고, 다핵 세포 하나에서도 가지가 자랄 수 있으며, 몸집이 큰 것은 거대 단세포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5편에 나온 거의 2센티미터짜리 황세균이 그 예다. 그러므로 여러 조건이 동시에 성립하고 서로 맞아야 판단이 버틴다.
6편에서 언급한 중국 화북의 화석은 여기서 또 다른 무게를 지닌다. 2024년 보고된 약 16억 3,500만 년 전의 사상성 화석들에는 개별 세포가 직접 보존되어 있다. 세포 하나의 지름은 최대 약 190마이크로미터다. 초기 다세포성의 증거가 “이것은 크고 규칙적이다”에서 “이것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보인다”로 바뀐 것이다.
세포가 보이려면 보존 방식이 받쳐 주어야 한다. 탄소질 압축막은 생물이 눌려 납작해진 뒤 남는 탄소 막 한 겹이다. 세포의 입체 구조는 눌릴 때 사라진다.
인산염화와 규화는 썩기 전에 구조를 “주조해 굳혀 놓는” 방식이다. 따라서 초기 다세포 생물의 기록은 한편으로 당시 어떤 생물이 있었는지에, 다른 한편으로 어떤 보존의 창이 마침 열려 있었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 오늘날을 보자. 제목은 대부분 멀리 가지 않았다고 했다. “멀리 간다”가 세포 유형이 더 많아지고 몸이 더 두꺼워지며 발생의 층위가 더 깊어진다는 뜻이라면, 실제로 그렇다. 독립 사례 45개 가운데 입체적이고 조직을 갖추며 세포 유형이 많은 몸으로 자란 것은 소수다. 대부분은 줄곧 실, 균사, 얇은 판, 클론 무리, 혹은 일시적인 집합체로 남았다.
그런데 자를 바꾸면 순위가 달라진다. 덴마크 오르후스의 연구자들은 2010년 먼저 이상한 현상을 알아차렸다. 해저 진흙의 표면에서는 산소가 쓰이고 1~2센티미터 깊이에서는 황화수소가 소모되는데, 두 일이 놀랄 만큼 맞물려 일어났다. 사이에 전선이라도 이어진 듯했다. 2012년 그 “전선”을 찾았다. 수많은 세포가 머리와 꼬리를 맞대어 가느다란 실을 이룬, 일종의 케이블 세균이었다.
한쪽 끝은 산소가 없는 깊은 진흙 속에 묻혀 있고, 다른 끝은 산소가 있는 표면까지 뻗는다. 전자는 이 실을 따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한곳에서 전자를 받고 다른 곳에서 내어주는, 살아 있는 전선 같다. 도선은 세포 외벽 아래 숨어 있다. 나란히 놓인 전도성 섬유 다발들이다.
세포 하나로는 그 거리를 건널 수 없으므로 실이어야 한다. 실 하나가 수 센티미터까지 자랄 수 있고, 1만 개가 넘는 세포로 이어져 있다. 해저 1제곱센티미터 아래의 케이블 길이를 모두 더하면 최대 2킬로미터에 이른다.
이들은 바다의 염습지와 맹그로브, 호수와 개울, 지하수에서도 발견되었다. 퇴적물 깊은 곳과 표면의 화학을 이어 준다. 세포 유형의 분화도, 조직도, 기관도 없다. 세포 유형 수로 줄을 세우면 맨 아래다. 해저의 화학을 얼마나 넓게 바꾸었는지로 세우면 아래가 아니다.
짚신벌레는 세포 하나뿐이다. 하지만 구강구와 먹이 액포, 수축포, 두 종류의 핵,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섬모 한 벌을 갖추었다. 세포 유형 수로는 하나지만, 내부 구조로 보면 조금도 단순하지 않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석회암에는 화폐석이라 불리는 유공충 화석이 가득하다. 하나하나가 단세포 생물이 만든 껍데기이며, 큰 것은 수 센티미터에 이른다. 지중해에는 아세타불라리아라는 우산 모양 조류도 있다. 수 센티미터 높이까지 자라 펼친 작은 우산처럼 보이지만, 한 개체 전체가 세포 하나다. 1930년대 독일의 해머링은 한 종의 우산 부분을 잘라 내고 다른 종의 세포핵으로 바꾸어 넣었다. 새로 자란 우산은 세포핵을 따라갔다. 형태를 지휘하는 것이 세포핵임을 입증한 것이다.
복잡도를 재는 양만 해도 세포 유형 수, 몸의 크기, 조직화의 층위,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의 규모, 생태적 연결 관계 등이 있다. 이 양들은 함께 올라가지 않는다. 사람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는 약 2만 개로, 길이 1밀리미터인 어떤 선충과 비슷하다.
양파의 유전체는 사람보다 약 다섯 배 크다. 1991년 미국 고생물학자 맥셰이는 “진화하면 복잡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진다”는 누구나 품는 직관이 당시까지 거의 정량적 검증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멀리 가는 길도 일방통행은 아니다. 균류에서는 효모처럼 단세포로 사는 방식이 여러 갈래에서 독립적으로 다시 나타났다. 2014년 연구는 그 배후에서 오래된 조절 네트워크가 병행적으로 바뀌었음을 발견했다. 단세포용 유전자 한 벌을 새로 발명할 필요는 없었다.
실험에서도 보인다. 2019년 연구자들은 덩어리진 효모에서 계속 떠 있는 부분만 골라, 다시 단세포 방식으로 번식하는 자손을 얻었다. 2025년 후속 연구에서는 여기에 침강 선택을 다시 가하자 전부 다세포 덩어리로 되돌아왔다. 다만 속도 차이는 아주 컸다.
복잡한 다세포성은 물론 특별하다. 입체 조직, 장거리 수송, 위치에 따라 발신되는 신호, 안정적인 세포 유형은 정말로 소수 계통에서만 나타난다. 다만 “소수”라는 사실 자체가 나머지 계통에 대한 평가가 되지는 않는다. 드물다는 것과 우월하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제 이번 편의 구축으로 돌아가자.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은 셈에 넣고, 밖은 넣지 않는다. 이번 편에서 선은 몸의 가장자리에 그어진다. 안의 세포들은 함께 번식하고 함께 선택받는다. 밖의 세포들은 각자 갈 길을 간다.
여기서 선택의 단위는 다시 한 층 바뀐다. 세포 하나에서 세포 무리의 집합으로. 5편의 “한 번”은 현생 진핵생물들이 공유하는 기본 조직을 가리킨다. 모든 종류의 세포 편입이 단 한 번만 일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반면 다세포성은 서로 다른 계통에서 수십 차례 생겨났다.
눈송이 효모는 60일 만에 해냈다. 녹조류는 500~750세대 만에 해냈다. 자연에서는 가장 넓게 세면 적어도 45번, 어쩌면 백 번 가까이 이루어졌다. 선택의 단위를 세포에서 세포 무리로 올리는 일 자체의 문턱은 아주 낮다. 드문 것은 층위를 바꾼 다음에도 조직화를 이어 가는 일이다. 세포 유형을 고정하고 발생 프로그램을 세우며 내부 갈등을 오래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억누르는 일이다.
그 갈등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1절에서 말했듯 지금 당신 몸에서도 세포들이 규칙을 어기며 복제되고 있고, 대부분은 제거된다. 대부분과 전부 사이의 작은 차이가 이 체제의 첫 번째 잔여항이다. 구축된 틀이 담아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없애지도 못하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잔여항은 훤히 보인다. 더 조직화되지 않은 수십 번의 기원이 모두 그곳에 있다. 이름도, 분포도, 생물량도 있고, 생태적 쓸모와 계통수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있다.
이들을 “멀리 가지 못했다”고 부르는 것은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들을 줄 세우는 자, 곧 복잡도에는 자연적으로 정해진 단위가 없기 때문이다. “멀리 가지 못했다”고 불리는 것들은 우리가 고른 한 축에서만 멀리 가지 않았을 뿐이다. “얼마나 다양한 퇴적 환경에 존재하는가”, “생태계에서 얼마나 큰 물질 흐름을 감당하는가” 같은 다른 축을 택하면 순위는 완전히 달라진다.
횟수는 지금도 다시 세고 있다. 다시 셀 때마다 무엇을 한 번으로 칠지 먼저 새로 정해야 한다. 그 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