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평한 선 하나
먼저 이 시간을 독자에게 익숙한 연대표 위에 놓아 보자.
약 24억 년 전, 4편에서 이야기한 대산소화 사건으로 대기에는 처음으로 상당한 양의 산소가 생겼다. 약 7억 년 전에는 지구가 잇따라 몇 차례 눈덩이처럼 얼어붙었다. 얼음은 적도까지 밀려왔다.
‘눈덩이 지구’라는 말은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커시빙크가 1992년에 내놓았다. 설명해야 할 이상한 현상이 있었다. 빙하가 남긴 돌무더기 지층 가운데 일부가 놀랍게도 당시 적도 부근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나중에는 빙하 퇴적층 바로 위에 따뜻한 바다에서나 생기는 탄산염암이 덮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왔다. 빙하기가 끝날 때 기후가 단숨에 뒤집힌 듯했다. 약 5억 4,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가 시작되자 동물에게는 갑자기 껍데기와 눈과 다리가 생겼다.
대산소화와 눈덩이 지구 사이, 약 18억 년 전부터 8억 년 전까지는 무려 10억 년이라는 시간이 끼어 있다. 공룡이 처음 나타난 때부터 오늘날까지의 시간보다 네 배 이상 길다. 지질학자들은 여기에 별명을 붙였다. 지루한 10억 년.
지질학에서는 캄브리아기 이전의 기나긴 시간을 통틀어 선캄브리아 시대라고 부른다. 지구 역사의 거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커다란 물음 하나가 걸려 있다.
산소는 20억여 년 전에 대기로 들어왔고, 진핵세포도 일찌감치 나타났다. 그런데 동물은 왜 6억 년 전 무렵까지 기다려야 했을까. 그 사이의 10억 년 동안 생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구는 왜 생명을 앞으로 밀어 주지 않았을까. 동물이 이토록 늦게 등장한 까닭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할 시간이다.
이 별명은 석회암에서 나왔다. 1995년, 미국의 뷰익과 데마레, 놀은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뱅거몰 분지에 있는 십수억 년 전의 석회암 지층을 연구하고 있었다. 암석에 든 가벼운 탄소와 무거운 탄소의 비율을 재는 일이었다. 셋 가운데 놀은 선캄브리아 시대 생명 연구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학자 중 한 사람이다. 14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1편과 4편에서 이미 써 본 자다. 생물은 탄소를 흡수할 때 가벼운 쪽을 더 좋아한다. 땅속에 묻히는 유기물에는 가벼운 탄소가 많아지고, 바닷물에 남은 탄소는 상대적으로 무거워진다. 바다에 가라앉아 만들어지는 석회암은 당시 바닷물의 그 비율을 기록한다. 오래된 석회암 속 탄소의 무겁고 가벼운 정도를 재면, 그때 유기탄소가 얼마나 묻혔는지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생물권이 어느 규모로 탄소를 고정하고 매장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결과는 너무나 평평했다. 값은 아주 좁은 범위 안에서 오르내렸고, 대부분의 시료는 중심에서 벗어난 정도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았다. 표본 몇 개만 보고 내린 결론도 아니었다. 가장 긴 지층 단면은 2,500미터에 달했고, 가장 멀리 떨어진 두 단면 사이는 약 250킬로미터였다. 해안에서 외대륙붕까지 두루 시료를 채취했다. 논문에는 이렇게 적혔다. 약 16억 년 전부터 10억 년 전까지는 지구 역사에서 가장 따분한 시기였다고.
평평한 선은 그 자체로 설명을 요구한다. 다른 시대의 탄소동위원소 곡선은 심전도처럼 위아래로 요동친다. 대멸종과 빙하기, 화산 분화는 모두 뾰족한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이 10억 년 동안의 곡선은 거의 직선이다.
그 뒤로는 다른 기록에서도 평평한 모습이 하나둘 드러났다. 대규모 빙하 퇴적물은 거의 없었다. 4편에서 본, 붉은 층과 검은 층이 번갈아 쌓인 줄무늬 철광층도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깊은 바다에는 오랫동안 산소가 부족했다. 알아볼 수 있는 진핵생물 화석은 종류가 적었고, 변화도 느렸다. 별명 하나가 그렇게 차츰 한 시대의 이름이 되었다.
‘지루한 10억 년’이라는 표현은 대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고생물학자 브레이저에게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의심하기를 좋아하는 학자였다. 2002년에는 당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미화석으로 인정받던 것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서오스트레일리아의 약 35억 년 전 처트 속에 남은 가느다란 실 모양 구조였다. 브레이저는 그 ‘세균’이 사실은 광물이 만들어 낸 가짜 모습이라고 주장했고, 논쟁은 여러 해 동안 이어졌다.
그는 2014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에 출간한 책에서 이 표현을 썼기 때문에 그가 처음 만들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검색할 수 있는 초기 논문에서는 이 말이 처음 인쇄된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 학회와 토론 자리에서 먼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2006년에는 여든을 바라보던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지구화학자 홀랜드가 영향력 있는 종설에서 약 18억 5,000만 년 전부터 8억 5,000만 년 전까지를 두고 ‘겉보기에는 꽤 지루한’ 시기라고 했다. 그 뒤로 이 틀은 널리 인용되었다.
종설에 실리고 나자 질문이 바뀌었다. ‘이 시기는 지루했을까’ 대신 곧바로 ‘왜 지루했을까’를 묻게 되었다. 검증해야 할 관찰이 설명해야 할 전제가 된 것이다. 이제 이 별명은 교과서와 교양 과학책, 다큐멘터리에도 들어가 있다. 십수억 년 전의 지구를 처음 접하는 많은 사람이 듣는 이야기는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이다.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이름은 더 있다. 이름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다. 2013년에는 ‘메마른 10억 년’이라고 부른 이도 있었다. 큰 빙하가 없었다는 데 초점을 맞춘 이름이다.
구조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중년’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이들의 관심은 대륙이 어떻게 자랐는가에 있다. 시작과 끝을 잡는 연대도 제각각이다. 처음 연구한 석회암은 16억 년 전부터 10억 년 전까지였고, 홀랜드의 종설은 18억 5,000만 년 전부터 8억 5,000만 년 전까지였다. 빙하와 탄소동위원소 이상이 모두 드물었다는 기준으로 나누면 대략 18억 년 전부터 8억 년 전까지가 된다.
이 글에서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다. 이렇게 많은 기록이 평평하다면, 대체 무엇이 평평한 것일까. 그 10억 년의 세계에 정말 변화가 별로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들이댄 자가 그 변화를 잴 수 없는 것일까.
16억 년 전으로 돌아가 바닷물을 직접 잴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시 남겨진 물건을 찾는 것이다. 그 물건의 어떤 성질이 우리가 알고 싶은 값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대리지표라고 부른다. 일상에도 대리지표가 있다. 엔진 속이 보이지 않으니 냉각수 온도계를 본다.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 대리지표의 장점이지만, 한계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이 재는 것은 언제나 알고 싶은 일 자체와는 다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10억 년이 몇 겹의 굴절을 거쳐 남긴 그림자다.
2 그때의 지구
먼저 당시 지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자.
하루는 지금보다 짧았다. 허베이성 샤마링에는 약 14억 년 전의 검은 셰일 지층이 있다. 그 안에는 층층이 대단히 규칙적인 리듬이 새겨져 있다. 지구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퇴적물에 남긴 박자다.
2018년 미국 연구진은 이 박자로부터 당시 하루가 겨우 약 18.7시간이었다고 계산했다. 달은 지금보다 지구 가까이에 있었다. 2023년에는 약 20억 년 전부터 10억 년 전까지 지구 자전이 느려지는 현상이 거의 멎어 있었으며, 하루 길이가 오랫동안 19시간 안팎에 머물렀다는 연구도 나왔다. 그 10억 년 동안은 하루의 길이마저 평평했다.
달이 가까우면 조수도 크다. 당시 밀물과 썰물은 지금보다 거셌다. 바닷가의 조간대는 넓고 평평했고, 물이 들고 날 때마다 진흙과 모래 속에 두꺼운 층과 얇은 층이 번갈아 남았다. 지질학자들은 이 얇은 층을 세어서 당시 한 달이 며칠이었는지도 거꾸로 계산할 수 있다.
육지는 벌거숭이였다. 식물도 동물도 없었고, 흙 속의 벌레도 없었다. 바위가 그대로 비바람을 맞았다. 물가나 축축한 곳에만 얇은 미생물 매트가 깔려 있었을지 모른다. 햇볕에 마르면 갈라지고, 비가 오면 다시 물을 먹어 물렁해졌다.
식물 뿌리가 강둑의 흙을 붙잡아 주지 않았으므로 강은 대체로 넓고 얕았다. 여러 갈래로 나뉜 물길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비가 한 번 내리면 모래와 자갈이 넓은 구역에서 쓸려 갔다. 맨땅 위로 바람이 불면 날아오르는 먼지와 모래를 막아 줄 것이 없었다. 12편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식물이 육지에 올라온 뒤에야 강과 흙의 모습도 서서히 달라졌다.
이 시기 대륙은 먼저 누나라는 초대륙으로 한데 모였다. 이누이트 언어로 ‘북쪽 바다를 에워싼 땅’이라는 뜻에서 온 이름이며, 컬럼비아라고도 부른다. 그 뒤 갈라졌다가 약 11억 년 전부터 9억 년 전 사이에 다시 모여 로디니아라는 또 다른 초대륙을 이루었다.
태양은 지금보다 약 10퍼센트 어두웠고, 대기의 산소량은 지금에 한참 못 미쳤다. 방법에 따라 추정치가 크게 다르지만, 종합하면 대기 산소는 오늘날 수준의 약 1퍼센트에서 몇 퍼센트 정도였다.
비교해 보자. 에베레스트 정상의 희박한 공기에도 산소는 해수면의 3분의 1가량 있다. 태양이 어두운데도 지구가 얼어붙지 않은 것은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메탄도 더 많았을지 모른다. 지구에 두꺼운 이불을 덮어 준 셈이다.
바다는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표면에는 산소가 조금 있었지만, 아래로 내려가면 금세 사라졌다. 깊은 바다 대부분은 무산소 상태였고, 물속에 철이 다량 녹아 있었다. 생산성이 높은 일부 대륙붕 가장자리에는 황화수소를 품은 유독한 물띠도 이어져 있었다.
얕은 바다 밑은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세상이었다. 미생물이 퇴적물을 한 층씩 달라붙게 해서 키운 돌덩어리다. 1편에서 만나 보았다. 곧추선 기둥처럼 생긴 것도, 엎어 놓은 그릇 같은 것도, 원뿔이 무더기로 모인 듯한 것도 있었다.
중국 북부에는 이 시기 지층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것들이 남아 있다. 베이징과 톈진에서 허베이성 옌산에 이르는 지역은 당시 길게 뻗은 만이었다. 십수억 년에 걸쳐 석회암과 돌로마이트암, 셰일이 수천 미터 두께로 쌓였다.
중국 지질학자들은 이 시기의 지층을 창청계, 지셴계, 칭바이커우계로 나눈다. 이름은 모두 화베이의 대표적인 지층 단면에서 따왔다. 톈진 지셴에는 두께가 거의 1만 미터에 이르는 중원생대 지층이 있다. 절벽 곳곳에서 기둥 모양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이미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어 중원생대 연구의 표준 단면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모양이 유난히 다양했다.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다. 서오스트레일리아 샤크만의 하멜린풀은 바닷물이 진한 소금물처럼 짜다. 미생물을 먹는 고둥이나 작은 벌레들이 살지 못해서, 얕은 물에 회흑색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덩이덩이 가득 자란다. 돌로 된 버섯들이 물에 납작 엎드려 있는 듯하다. 십수억 년 전 얕은 바다도 곳곳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이들을 갉아 먹을 동물이 없었으므로 굳이 짠물 속으로 숨어들 필요가 없었다.
얼음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뒤에 찾아온 눈덩이 지구와 견주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후베이성 창장 싼샤 일대에는 6억여 년 전 난퉈층의 빙력암이 있다. 수십 미터에서 100여 미터 두께로 쌓인 돌무더기 층이다. 크고 작은 돌들이 진흙에 어지럽게 박혀 있다. 당시 중위도에 있던 대륙을 빙하가 긁어 내며 가져온 것들이다.
18억 년 전부터 8억 년 전 사이에는 이만한 규모의 빙력암층을 찾을 수 없다. 2020년 영국 애버딘대학교 연구진은 스코틀랜드 북서부의 약 10억 년 전 호수 퇴적층에서 이상한 돌이 놓인 층 하나를 발견했다.
그 지역에서 온 자갈 다섯 개였다. 길이는 3.5~9센티미터. 약 250미터에 걸쳐 같은 층에 흩어져 있었다. 자갈 아래의 진흙층은 휘고 뚫려 있었고, 그 위의 진흙층은 자갈을 감싸며 쌓였다.
이런 식으로 돌을 호수 바닥의 무른 진흙에 박아 넣는 것은 대체로 하나뿐이다. 떠다니는 얼음이다. 물가의 돌을 품은 얼음이 호수 한가운데로 떠간다. 얼음이 녹으면 돌이 떨어져 진흙에 박힌다.
그 호수는 당시 남위 35도쯤에 있었다. 지금의 시드니와 비슷한 위도다. 오늘날 같은 위도보다 훨씬 추웠거나, 고도가 아주 높았을 것이다. 호수 하나의 수면에 얼음이 얼었다는 것과 대규모 빙하기가 있었다는 것은 아직 멀리 떨어진 이야기다.
이 미생물들이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다윈을 괴롭힌 것도 바로 캄브리아기 이전이 텅 비어 있다는 문제였다. 1899년 무렵, 미국의 월컷은 그랜드캐니언의 오래된 암석에서 밀리미터 크기의 검은 원반들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기재된 선캄브리아 시대 화석 가운데 하나였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전환점은 1954년에 왔다. 미국의 타일러와 바그혼이 캐나다 온타리오주 슈피리어호 기슭의 처트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다가 약 19억 년 전의 실 모양 미생물과 구형 미생물을 발견했다. 형태가 또렷했다. 선캄브리아 고생물학은 그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바다의 주인공은 세균, 그중에서도 남세균이었다. 햇빛이 닿는 표층에서 광합성을 하며 그 얼마 안 되는 산소를 내보냈다. 얕은 바다 밑에서는 층층이 매트를 엮었고, 이것이 차츰 쌓여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되었다.
다른 생명은 어땠을까. 이 시기의 바다에는 이미 진핵세포가 있었다. 세포 안에 핵이 있는 무리다. 오늘날의 동물과 식물, 균류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5편에서 이야기했다. 대부분은 단세포였다. 현미경으로 보면 무늬나 돌기, 가시가 난 작은 공들이다. 고생물학에서는 이들을 아크리타르크, 곧 ‘기원이 불분명한 무리’라고 부른다. 지금도 어떤 생물이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이 많다.
허난성 루양 일대의 십수억 년 전 셰일에서도 표면에 그물무늬와 돌기가 가득한 대형 아크리타르크가 발견되었다. 지름이 수백 마이크로미터에 이르러 돋보기로도 볼 수 있다. 소수는 다세포로 자랐다. 6편과 8편에서 각각 다루는 방기오모르파와 화베이의 16억 년 전 화석도 이 시기에 살았다. 방기오모르파는 캐나다 북극권 서머싯섬에서 나왔다. 약 10억 년 전의 것으로, 세포들이 가느다란 실처럼 줄지어 있고 일부 세포는 번식만 맡았다. 6편에서 말했듯이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유성생식을 한 생물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10억 년 동안 진핵생물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랫동안 답은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였다. 화석 종류는 적었고 변화는 느렸으며, 분자화석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4절에서 보겠지만, 이 답은 2023년에 다시 쓰인다.
3 어느 기둥들이 평평한가
‘지루하다’는 판단은 여러 기둥이 떠받치는 탁자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는 탄소동위원소다. 가장 단단한 기둥이기도 하다. 값이 0에 가깝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대강 계산해 볼 수 있다. 가장 단순하게 셈하면 바다로 들어간 탄소 다섯 몫 중 한 몫이 유기탄소로 바뀌어 해저에 묻히고, 나머지는 석회암으로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비율이다. 1995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의 다른 두 분지에서 더 연속적인 지층을 조사했을 때도 진폭이 작은 기록이 반복해서 나왔다.
세계의 기록을 모아 보아도 이 시기 해양 탄산염의 탄소동위원소 값은 대체로 0 가까이의 좁은 띠 안에 놓인다. 다른 시대에는 거대한 봉우리를 여러 분지에 걸쳐 추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만한 규모의 큰 진동이 없다.
둘째는 산소다. ‘낮았다’는 데에는 확신이 있지만, 얼마나 낮았는지를 놓고는 논쟁이 거세다. 크로뮴은 산소에 민감한 원소다. 공기 중에 산소가 충분해야만 육지의 크로뮴이 풍화 과정에서 물에 녹을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비율도 변한다. 2014년 크로뮴동위원소를 이용한 한 연구는 대기 산소가 오늘날의 1,000분의 1에도 못 미쳤을 수 있다고 보았다.
샤마링 셰일은 유기물이 풍부해 석유와 가스가 생길 수 있는 근원암이다. 석유지질학자들이 이 암석을 연구한 원래 목적도 석유를 찾는 것이었다. 2016년 중국 석유탐사개발연구원의 장수이창 등은 샤마링 셰일을 분석하고, 약 14억 년 전 일부 바닷물의 산소량이 적어도 오늘날의 몇몇 해면이 숨 쉬기에는 충분했다고 보았다. 이에 대응하는 대기 산소량은 오늘날의 약 4퍼센트 이상이었다.
이 비교 기준은 한 실험에서 나왔다. 2014년 덴마크 연구진은 흔한 해면 한 종을 물에서 산소를 조금씩 빼 가며 길렀다. 산소량이 오늘날의 0.5~4퍼센트밖에 안 되는 물에서도 살아남았다. 같은 시대를 두고 대리지표에 따라 값이 열 배 이상 벌어졌다.
대리지표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정이 다르다. 각 지표의 측정값을 같은 ‘대기 산소 비율’로 환산하려면 매 단계마다 모형을 거쳐야 한다. 2021년의 한 추정은 오랜 기간 대체로 오늘날의 1퍼센트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2025년에는 약 14억 년 전 암염 속에 갇혀 있던 옛 공기의 작은 기포를 직접 찾아낸 연구도 나왔다. 기포에서 읽은 값은 산소가 오랫동안 극도로 부족했다는 가정보다 더 산화적인 상태를 가리켰다. 작은 기포 하나가 또렷한 사진 한 장을 보여 준다. 하지만 한 장뿐이다. 그 앞뒤로 오르내림이 있었는지는 말해 주지 못한다.
셋째는 바다의 구조다. 오늘날의 흑해를 참고할 수 있다. 표면에는 산소가 있지만 수심 100~20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사라지고, 깊은 물에는 황화수소가 가득하다. 초기에는 중원생대 바다 전체가 황화수소로 가득한 유독한 ‘황의 바다’였으리라고 그렸다. 나중에 나온 자료가 그 그림을 바꾸었다.
2015년 미국의 스펄링 등은 거의 20억 년에 걸친 셰일 시료 약 4,700개를 모아, 이 시기의 깊은 바다 대부분이 무산소 상태이되 철이 풍부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른 연구에서는 황화수소를 품은 물이 대륙붕을 따라 좁은 테두리처럼 놓여 있을 뿐, 해저 면적의 몇 퍼센트 또는 그보다 적은 부분만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넷째는 철광석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캐는 철광석의 상당 부분은 20억여 년 전에 형성된 줄무늬 철광층에서 나온다. 중국 랴오닝성 안산과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해머즐리산맥의 광석도 그렇다.
이 시기에 대규모 줄무늬 철광층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철광층이 적다고 해서 바닷물에 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철이 산화될 수 있고, 가라앉은 뒤에도 보존될 수 있는 곳까지 운반되어야 비로소 광상이 된다.
약 14억 년 전 지층에도 상당한 규모의 철질 퇴적물이 있다. 이 시기에 부족했던 것은 큰 광상을 만들 조건들이 한꺼번에 모일 기회였다.
다섯째는 얼음이다. 앞 절에서 보았듯 대규모 빙하 기록은 유난히 드물다. 스코틀랜드 호수에 떨어진 돌은 그곳에 얼음이 있었다는 것만 보여 준다.
여섯째는 진핵생물 화석의 다양성이다. 2015년 미국의 코언과 맥도널드는 선캄브리아 시대 진핵생물 화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계산해 보니 중원생대부터 약 10억 년 전까지는 화석군마다 종수가 많지 않았다.
두 사람도 주의를 당부했다. 시료 대부분이 같은 옛 대륙에서 왔으며, 특히 16억 년 전부터 12억 5,000만 년 전까지는 연구가 부족했다. 2024년 다른 연구는 자료를 지층 단면 263개로 늘렸다. 여러 방법으로 연대 오차와 채집량의 차이를 보정한 뒤 ‘희박화’도 했다. 있는 시료 중 일부를 무작위로 버리고도 같은 양상이 남는지 살핀 것이다.
시료가 많을 때만 나타나는 양상이라면 희박화 뒤에는 사라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양상이라면 남는다. 표본을 200개 정도로 줄여도, 18억 년 전부터 8억 년 전까지 종풍부도가 오랫동안 낮았다는 큰 모습은 그대로였다.
마지막 기둥은 공교롭게도 평평하지 않다. 이 시기에도 대륙은 갈라지고 있었다. 약 12억 7,000만 년 전 캐나다 북부에서는 거대한 마그마 활동이 일어나 지하에 수백, 수천 개의 나란한 암맥을 남겼다. 부채꼴로 3,000킬로미터 넘게 펼쳐진 매켄지 암맥군이다. 지구에서 알려진 가장 큰 암맥군이다. 대륙은 충돌하고 합쳐졌다. 초대륙 로디니아가 모인 것도 약 11억 년 전부터 9억 년 전 사이였다. 이름은 러시아어로 ‘탄생’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 그 뒤의 대륙들이 모두 여기서 갈라져 나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동부의 오래된 그렌빌 조산대는 이때 대륙이 합쳐지며 밀어 올린 산맥의 뿌리다. 2021년 한 연구는 지르콘 속 특정 원소의 이상을 바탕으로 지구의 중년기에 대륙지각이 얇아지고 산도 대체로 낮아졌다고 추산했다. ‘조산 활동의 정체’로 풍화와 영양분 공급이 부족해졌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같은 해 다른 연구진은 변성과 마그마 활동 기록을 모아 반박했다. 이 시기의 조산 활동은 세계 곳곳에서 거의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특이했던 것은 산의 모양이었다. 당시 지각은 매우 뜨거웠다. 뜨거운 지각은 무르고 옆으로 잘 흐르기 때문에 오늘날 히말라야처럼 두껍고 높은 산으로 쌓이기 어려웠다. 판은 계속 움직였다. 다만 산이 높이 자라지 못했다.
4 보이지 않던 진핵생물의 세계
2023년, 한 연구가 이 10억 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상상을 바꾸어 놓았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의 브록스가 동료들과 함께 십수억 년 전 암석 속 분자화석을 다시 조사했다. 5편에서 만난, 자신이 전에 내놓았던 연구 결과를 스스로 뒤집은 바로 그 지구화학자다. 5편에서 이야기했듯 진핵세포의 막에는 특징적인 분자 무리가 있다. 콜레스테롤도 그중 하나다. 이 분자들은 암석 속에서 오래 보존될 수 있어 진핵생물의 ‘지문’ 구실을 한다. 예전에는 약 8억 년보다 오래된 암석에서 이런 지문을 거의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진핵생물은 존재하더라도 수가 적었고, 바다는 기본적으로 세균의 세상이었으리라고 추론했다.
브록스 연구진은 찾는 방법을 바꾸었다. 오늘날 세포가 콜레스테롤을 합성하려면 긴 생산라인을 거쳐야 한다. 먼저 스쿠알렌이라는 기다란 사슬 분자를 만든다. 처음 상어 간유에서 발견된 분자다. 그다음 사슬을 접어 서로 이어진 고리 네 개를 만들고, 하나씩 손질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무 단계 남짓이 필요하다. 생산라인 앞부분에서는 먼저 구조가 단순한 반제품들이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생각했다. 옛 진핵생물에게 아직 그렇게 긴 생산라인이 없었다면, 세포막에도 이런 반제품을 썼을 수 있지 않을까. 암석에서 반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약 16억 4,000만 년 전부터 8억 년 전까지의 암석에서 이런 분자들이 대량으로 나왔다. 널리 퍼져 있었고, 농도도 높았다.
보이지 않던 진핵생물의 세계가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10억 년의 바다에는 수많은 진핵생물이 줄곧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초기 버전의 콜레스테롤을 썼기 때문에 예전의 체로는 걸러 내지 못했던 것이다.
연구진은 이들을 ‘프로토스테롤 생물군’이라고 불렀다. 오늘날과 같은 콜레스테롤 지문이 대량으로 나타난 것은 약 8억 년 전이 되어서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보다 앞선 생물들 대부분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찾지 못했던 것은 엉뚱한 것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선 2017년에도 브록스 연구진은 오스트레일리아 암석에서 한 가지를 발견했다. 첫 번째 눈덩이 빙하기가 끝난 뒤인 약 6억 5,000만 년 전, 조류의 분자 지문이 갑자기 폭증했다. 세균이 지배하던 바다가 조류가 지배하는 바다로 바뀌며, 훗날 동물에게 필요한 먹이가 마련된 것이다. 한편 이 반제품 분자들은 일부 세균처럼 다른 곳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점은 아직 검증 중이다.
화석 쪽에서도 새로운 발견이 잇따른다. 인도 중부의 약 16억 년 전 돌로마이트암에는 세포의 입체 구조가 보존된 실 모양, 잎 모양 화석이 있다. 2017년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의 벵트손 등은 방사광 스캔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된 세포들을 선명하게 보았다. 일부 세포 안에는 홍조류 엽록체에서 녹말 생성을 돕는 피레노이드와 닮은 구조도 있었다. 이들은 화석이 홍조류일 수 있다고 보았다. 맞다면 방기오모르파보다 5억 년 이상 앞선다.
약 15억 6,000만 년 전의 허베이성 옌산 일대 가오위좡층에서는 2016년 톈진 지질조사센터의 주스싱 등이 탄소질의 납작한 막으로 눌려 보존된 화석들을 발견했다. 길쭉한 것도, 잎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길이는 몇 센티미터에서 수십 센티미터에 이르렀다. 당시 이미 큰 다세포생물이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다만 어느 무리에 속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균류도 있었을 수 있다. 2019년 연구진은 캐나다 북극권의 약 10억 년 전 셰일에서 가지를 친 가느다란 실과 작은 구형 구조들을 발견했다. 세포벽에는 키틴 성분이 들어 있었다. 알려진 가장 오래된 균류 중 하나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랴오닝성 다롄 부근의 약 10억 년 전 암석에서는 2020년 가지를 친 다세포 녹조류 한 종이 발견되었다. 길이는 겨우 2밀리미터였다. 가느다란 실 한 가닥에서 곁가지가 나와, 오늘날 바닷가 바위에서 흔히 보는 녹조류 무리와 매우 비슷했다. 알려진 가장 오래된 녹조류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육상식물의 먼 조상도 녹조류 안에 있다.
단세포 아크리타르크에서도 진핵생물의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약 15억 년 전 셰일에는 타파니아라는 미화석이 있다. 세포 표면에서 돌기가 뻗어 나오고, 돌기에서 다시 가지가 갈라진다. 기존 세포벽에서도 새로운 돌기가 자랄 수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자기 세포벽을 허물고 다시 세우려면 세포골격과 막 수송을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은 진핵세포에만 있다.
유전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6년에는 오늘날 주요 진핵생물 계통의 유전자에서 출발해 이들이 언제 갈라졌는지를 계산한 연구가 또 나왔다. 화석의 종풍부도 곡선은 오랫동안 낮고 평평해 보이지만, 진핵생물의 계통은 중원생대부터 계속 가지를 쳐 왔다는 결과였다.
한 집안에서 끊임없이 분가를 해도, 각 집의 문패 모양은 수백 년 동안 그대로일 수 있다. 문패를 세는 사람은 여기가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족보를 살피는 사람은 줄곧 갈라져 왔다고 할 것이다. 둘 다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10억 년은 텅 빈 시간이 아니다. 16억 년 전 무렵에 이미 다세포 진핵생물로 볼 만한 후보가 여러 종류 있었다. 맨눈에 보일 만큼 커진 것도 있었다.
약 10억 년 전이 되면 계통상의 자리가 분명한 다세포 홍조류와 녹조류가 등장한다. 그 사이 6억 년에도 자료는 적지 않다. 다만 하나하나의 소속을 두고 아직 논쟁이 이어질 뿐이다.
바다의 영양분도 수평선이 아니었다. 2017년 한 연구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약 14억 년 전 지층을 따라 연안에서 먼바다까지 질소동위원소를 측정했다. 해안 가까운 물에는 질소가 비교적 넉넉했지만, 먼바다로 갈수록 쓸 수 있는 질소가 적었다. 같은 해분 안에서도 연안과 먼바다의 생물이 마주한 세계는 달랐다. 전 지구 평균 곡선 하나를 그리면 이 차이는 납작하게 눌린다.
짧은 산화 사건들도 하나씩 식별되었다. 약 15억 7,000만 년 전과 약 14억 년 전, 약 11억 년 전에는 산화나 풍화가 강해졌다는 신호가 각각 보고되어 있다.
샤마링 셰일 속 두 화산재층은 2015년에 이미 연대가 측정되었다. 약 13억 9,200만 년 전과 약 13억 8,400만 년 전이며, 오차는 둘 다 100만 년 안팎이다. 2024년 연구진은 이 무렵 한 차례 일어난 산화의 교란을 대규모 화산 활동으로 생긴 신선한 암석의 풍화와 연결했다. 이런 사건이 얼마나 컸고 얼마나 오래갔는지, 전 지구에서 동시에 일어났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5 평평한 곡선은 무엇을 말하는가
1절의 추론 사슬로 돌아가 보자. 탄소동위원소가 평평하다. 따라서 유기탄소가 매장되는 비율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생산성도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생물권에는 변화가 별로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이 사슬의 다른 고리들도 바뀔 수 있다는 데 있다.
2021년 연구진은 더 완전한 탄소 순환 모형으로 다시 계산했다. 탄소동위원소 곡선이 오랫동안 거의 평평하더라도, 유기탄소의 매장 비율은 단순한 추론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변할 수 있었다. 바다로 들어오는 탄소 자체의 무겁고 가벼운 정도, 탄산염과 유기탄소 각각의 풍화, 탄산염의 매장, 탄소 저장고의 크기. 여러 값이 함께 바뀌면 마지막 고리에서 서로를 상쇄할 수 있다.
체중계를 보는 것과 같다. 한 달 동안 몸무게가 그대로였다고 해서 한 달 내내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이 먹고 많이 움직여서 두 가지가 딱 맞게 상쇄되었을 수 있다.
2026년의 한 연구는 이를 아주 멋지게 보여 주었다. 약 15억 7,000만 년 전, 스트론튬과 리튬의 동위원소 기록에는 육지 풍화의 뚜렷한 이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탄소동위원소의 반응은 꽤 약했다.
스트론튬동위원소는 바닷물의 스트론튬이 어디서 왔는지를 기록한다. 오래된 대륙 암석이 풍화되어 나온 스트론튬은 무거운 쪽으로, 해저 화산에서 온 스트론튬은 가벼운 쪽으로 치우친다. 바닷물 속의 비율은 두 공급원의 양을 달아 보는 저울 같다. 반면 리튬동위원소는 풍화가 얼마나 철저하게 진행되었는지에 민감하다.
두 바늘이 함께 움직였다면 육지의 풍화에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다. 원소마다 순환 과정과 저장고의 크기, 반응 속도가 다르다. 탄소는 저장고가 크고 반응은 느리다. 수백만 년에 걸친 풍화 사건도 탄소 곡선에는 작은 혹 하나로만 남을 수 있다. 탄소 곡선 하나만 그리면 같은 역사도 더 평평하게 그려진다.
그 뒤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맞은 운명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1971년 미국의 아우라믹은 선캄브리아 시대 말기인 약 7억~6억 년 전 무렵,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다양성이 뚜렷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미생물 매트를 갉아 먹는 생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돌을 짓던 생물들을 한입씩 먹어 치웠다는 것이다. 오늘날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대부분 샤크만처럼 고둥조차 살기 힘든 구석에만 남아 있다.
방향이 정반대인 곡선도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의 형태는 약 12억 년 전부터 9억 년 전 사이에 원생누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다채로웠다. 같은 시기 진핵생물 화석의 다양성보다 훨씬 높았다.
한 곡선은 골짜기에 있고 다른 곡선은 꼭대기에 있다. 두 곡선이 재는 것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식별할 수 있는 진핵생물이 몇 종류인가를 세고, 다른 하나는 미생물 매트가 몇 가지 모양으로 자랐는가를 센다. 둘 다 참일 수 있다.
원핵생물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에게 곡선이 없다. 세균과 고세균에는 단단한 조직이 없고 형태도 단순하다. 십수억 년 전의 작은 공과 가느다란 실을 보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미생물’ 또는 ‘남세균 비슷한 것’ 정도다. 오늘날의 종과 짝지을 수는 없다.
이 시기의 질소 고정과 황산염 환원, 메탄 생성, 철의 순환은 모두 암석에 흔적을 남겼다. 이런 대사가 어디서 어느 규모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던 생물이 몇 종류였는지는 셀 수 없다. 원핵생물도 10억 년 동안 정체했다는 주장은 현재 자료로 뒷받침할 수 없다.
보정을 거치고도 남는 평평함은 있다. 여러 분지에 걸친 대규모 탄소동위원소 이상은 실제로 없고, 큰 빙하의 기록도 실제로 드물다. 거대한 철광상도 드물며, 깊은 바다는 오랫동안 산소가 없고 철이 풍부했다. 진핵생물 화석은 희박화를 거친 뒤에도 오랜 기간 종풍부도가 낮다.
주가지수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10년 동안 지수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안의 모든 종목이 그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몇 배로 오른 것도 있고 바닥까지 떨어진 것도 있어서, 오르내림을 더하니 정확히 상쇄되었을 수 있다. 전 지구 평균 곡선 역시 방향이 반대인 수많은 지역적 변화를 평균 내어 직선 하나로 만들 수 있다.
가장 큰 틀의 장기 평균 상태는 실제로 다른 여러 시대보다 안정적이었다. 그 아래 층위, 곧 100만 년에서 1,000만 년 단위의 사건과 같은 바다 안의 지역 차이는 과거에 뚜렷이 과소평가되었다.
6 해상도
이제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 시기에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진 큰 사건이 있었다면, 우리 눈에 보일까.
문제는 방사성 연대 측정 자체가 아니다. 화산재가 들어 있는 좋은 지층 단면이라면 고정밀 연대 측정으로 이미 오차를 ±50만~100만 년까지 줄일 수 있다. 샤마링의 두 화산재층도 이 정도다.
9편에서 이야기할 화산재 속 지르콘은 천연 시계다. 하지만 대부분의 퇴적층에는 화산재가 없다. 화산재가 뚜렷한 한 층으로 보존되려면 잔잔한 물에 내려앉고 금세 덮여야 한다. 얕은 물에 떨어지면 대개 파도에 흐트러지고, 땅에 떨어지면 대개 비바람에 쓸려 간다. 보통의 진흙과 모래에 든 광물은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들이다. 연대를 재면 광물 본래의 나이가 나올 뿐, 이 층이 쌓인 때가 나오지는 않는다.
화산재가 없는 곳에서는 위아래에서 가장 가까운 두 화산재층으로 범위를 묶을 수밖에 없다. 두 못이 100미터 간격으로 박혀 있다면, 그 사이의 모든 층은 똑같이 넓은 오차를 나누어 가진다.
지층에는 빠진 페이지도 있다. 연속적으로 보이는 암석에서도 어느 층의 경계에서는 퇴적이 멈췄거나 물살이 일부를 쓸어 갔을 수 있다. 그러면 맞닿은 위아래 두 층 사이에 수십만 년, 심하면 수백만 년이 비어 있다. 맨눈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질학에서는 이를 퇴적 공백이라고 부른다. 한 단면에 이런 공백이 많을수록, 안정적으로 보이는 곡선이 사실은 몇 개의 조각을 이어 붙인 것일 가능성도 커진다.
시료를 뜨는 간격도 사람을 속인다. 1995년에 연구한 석회암은 대개 10~20미터 간격으로 시료를 채취했다. 10미터는 공간 거리다. 퇴적 속도는 바뀐다. 깊은 물과 얕은 물이 다르고, 잔잔한 때와 폭풍이 치는 때가 다르다. 같은 10미터가 1만 년일 수도, 100만 년일 수도 있다. 연대와 깊이를 믿을 만하게 연결하지 못한다면 몇 미터라는 숫자만으로 몇 년이 흘렀는지 계산할 수 없다.
뒤의 시대들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장비보다 화석에 있는 경우가 많다. 현생누대에는 겨우 수십만 년 동안만 존재했던 생물의 화석이 많다. 진흙층 안에 그런 화석이 있으면 그 층의 연대 범위가 좁혀진다.
11편에서 다루는 암모나이트가 바로 그런 시계다. 빠르게 변했고 널리 퍼졌다. 쥐라기 지층은 암모나이트를 이용해 수십만 년 단위로 나눌 수 있다. 중원생대에는 이렇게 촘촘한 시간 표지가 없다. 어떤 지층 지점을 전 지구적으로 대비할 때의 시간 창은 실험실에서 얻은 연대 측정 오차보다 훨씬 넓을 수 있다.
연대를 고정해 주는 기준점의 차이는 더 크다. 가장 잘 연구된 현생누대 지층에서는 100만 년 안에도 화산재 연대나 화석대가 여러 개 있어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중원생대의 많은 분지에는 수천만 년에 믿을 만한 연대가 한두 개뿐이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다. 셰일 시료 4,700개, 탄소동위원소 기록 1만여 건, 지층 단면 263개. 하지만 이 숫자를 고르게 늘어선 1만여 개의 시간 격자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수백 개 시료가 보존이 좋고 교통이 편하며 이미 시추공도 있는 몇몇 분지에 몰려 있을 수 있다. 반면 각각 100만 년 길이인 시간 구간 수십 개는 단면 한두 개만으로 덮여 있을 수 있다. 시료의 밀도를 말하려면 적어도 네 가지를 나누어 세어야 한다. 시료 수, 서로 독립적인 단면 수, 서로 독립적인 옛 대륙 수, 그리고 100만 년마다 있는 독립적인 연대 기준점 수다.
중원생대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뒤의 두 가지이고, 해상도를 결정하는 것도 이 둘이다. 시료를 몇 개 더 뜨는 데는 며칠을 더 쓰면 된다. 연대를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새 단면 하나를 찾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지구 역사의 어느 부분을 세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지는 그 기록이 어느 나라 어느 땅 위에 남았느냐에도 달려 있다.
지층에 새겨진 이런 박자는 지구 궤도의 주기적 변화에서 온다. 20세기 초 세르비아의 공학자 밀란코비치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억류되어 있는 동안 종이와 펜으로 계산했다. 지구 궤도의 이심률과 지축의 기울기, 흔들림이 위도별 일사량을 어떻게 주기적으로 바꾸는지를 따져 낸 것이다. 이 주기들은 기후에도, 층층이 쌓인 퇴적물에도 리듬을 남긴다. 지질학자는 이를 또 하나의 시계로 쓴다.
좋은 단면에서는 실제로 아주 작은 변화도 볼 수 있다. 샤마링 셰일의 센티미터에서 미터 규모에 이르는 리듬은 궤도 주기가 남긴 것이다. 2절에서 본 하루 18.7시간이라는 값도 바로 그 리듬에서 읽어 냈다. 정보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연속적이면서 독립적인 연대 보정도 가능한 단면이 너무 적다.
탄산염암 자체도 덧쓰일 수 있다. 석회암이 지하에 묻히면 흐르는 지하수에 거듭 젖으며 재결정된다. 처음 기록한 탄소동위원소 값의 일부가 나중에 지나간 유체에 의해 슬그머니 바뀔 수 있다. 지질학자는 시료를 하나씩 점검하고, 별로 변질되지 않은 것을 골라내야 비로소 안심하고 곡선을 그릴 수 있다.
따라서 답도 층위를 나누어 해야 한다. 한 지역의 단면에서 퇴적이 빠르고, 화산재가 있으며, 시료를 촘촘히 채취했다면 100만 년 규모의 사건은 대체로 포착할 기회가 있다.
한 분지에 위아래 경계 연대만 있다면 수백만 년짜리 사건이 수천만 년의 오차 창 안으로 눌려 들어갈 수 있다. 여러 분지에 이상이 기록되어 있어도, 시간을 맞추는 오차 때문에 같은 사건이었다고 증명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14억 년 전에 200만 년 동안 작은 빙하기가 있었다고 하자. 빙하 퇴적물이 아주 얇은 한 층만 남았고, 하필 수천만 년짜리 연대 오차 창 안에 놓였다면 어떻게 될까. 같은 시간 창 안에 들어가는 다른 지역의 온난화와 전 지구적으로 대비할 때, 둘이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간주되어 서로 상쇄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지역적 현상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반응이 둔한 대리지표 하나만 본다면,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전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7 해 볼 만한 비교 실험
이를 아주 명쾌하게 시험할 방법이 있다.
짧은 사건이 가득했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현생누대의 한 구간을 고른다. 이를테면 공룡 멸종 전후의 2,000만 년이다. 여기에는 적어도 한 차례의 대멸종, 약 5,600만 년 전 지구 기온이 갑자기 섭씨 5~8도 오른 극열 사건, 그리고 몇 차례의 더 작은 기후 변동이 들어 있다. 하나하나가 탄소동위원소에 뚜렷한 봉우리를 남겼다.
단면 수를 인위적으로 중원생대 수준까지 줄인다. 연대 오차를 수백만 년으로 늘리고, 100만 년당 채집률과 지리적 범위도 낮춘다. 그런 다음 같은 방법으로 곡선을 다시 그린다. 이것도 평평하고 몹시 ‘지루한’ 선이 되는지 보는 것이다.
방법은 이미 있다. 희박화, 표준화, 오차 확대는 모두 문헌에 나온다. 자료에도 기반이 있다. 현생누대에는 연대가 정밀하게 잡힌 단면이 많다.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둘을 구체적인 비교로 연결하는 일이다. 정확히 대응하는 연구가 이미 있는지는 별도의 문헌 조사가 필요하다. 이 글만으로 아무도 해 본 적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장 가까운 연구는 세 갈래지만, 모두 다른 질문에 답한다. 2015년의 연구는 무작위화 방법으로 선캄브리아 시대의 다양성 곡선을 검증했다. 작은 규모의 오르내림은 아주 불안정하다는 결과를 얻었지만, 현생누대를 대조군으로 삼지는 않았다.
2024년 연구는 선캄브리아 시대 자료 안에서 희박화를 했다. 물음은 ‘이미 적은 자료를 더 줄이면 양상이 무너질까’였고, 답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묻는 방향은 반대다.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기록의 품질을 낮추면 평평해질까’를 묻는다. 세 번째 갈래는 탄소동위원소 기록을 통계적으로 처리한 연구들이다. 시간축의 불확실성을 고려했지만, 역시 품질을 낮춰 완전히 대조한 실험은 아니다.
이 실험에는 두 가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무게가 있다. 품질을 낮춘 현생누대도 온통 평평해진다면, ‘지루한 10억 년’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쓰는 자가 만들어 낸 것일 수 있다.
반대로 품질을 낮추고도 큰 사건들이 곡선 위에 여전히 또렷이 서 있다면, 중원생대의 평평함이 실제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어느 결과든 이 논쟁을 크게 한 걸음 앞으로 옮길 것이다.
이 일을 하려면 층서학자와 지구화학자, 통계학자가 한자리에 앉아야 한다. 다른 분야에는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 수십만 년의 기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해상도가 높은 빙하 코어 기록을 해저 퇴적물이 기록되는 방식에 맞춰 일부러 ‘흐릿하게’ 만든다. 수백 년 동안 벌어진 급격한 기후 변화가 해저 진흙에 담기면 얼마나 남는지를 본다. 여기서 묻는 선캄브리아 시대의 문제를 위해, 좋은 기록을 일부러 나쁘게 만드는 방법을 절차가 명확하고 재현 가능한 비교로 구체화할 가치가 있다.
‘해상도를 낮추면 사건이 지워진다’는 것은 층서 통계학에서 분명히 성립한다. 하지만 ‘중원생대 수준까지 낮추는 것만으로 지루한 10억 년 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명제는 이런 비교로 구체적으로 검증해야 하며, 앞의 명제에서 곧바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2024년의 희박화 검증은 진핵생물 화석의 종풍부도가 오랫동안 낮았다는 큰 양상이 표본을 더 줄여도 상당히 견고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음 단계는 그 비교를 실제로 해 보는 것이다. 방법과 자료에는 기반이 있지만, 표본을 모으고 연대를 맞추며 보존 조건을 비교 가능하게 만드는 데는 여전히 상당한 작업이 필요하다. 검증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해서 검증에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가 실제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란히 놓인 설명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영양분의 제약이다. 풍화가 약하면 강이 바다에 가져오는 인이 적다. 산소가 없고 철이 풍부한 바닷물에서는 그 인마저 철 광물에 흡착되어 빠져나간다. 인이 적으니 바다의 생산성도 낮고, 순생산되는 산소도 적다. 오늘날 호수의 녹조는 이 과정의 정반대다. 생활하수와 농경지에서 인이 대량으로 씻겨 들어오면 조류가 걷잡을 수 없이 자란다.
질소 공급도 막혔을 수 있다. 2002년 미국의 안바와 놀은 절묘하게 이어지는 고리를 제안했다. 세균이 대기 중 질소를 고정하려면 몰리브데넘을 품은 효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산소가 없고 황화수소가 든 바닷물은 물속의 몰리브데넘을 대량으로 붙잡아 해저에 묻어 버린다.
몰리브데넘이 줄면 질소 고정이 어려워진다. 쓸 수 있는 질소가 적어지고, 진핵 조류는 자라지 못한다. 미량의 금속 하나가 생물권 전체의 박자를 붙잡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른 설명은 지각 구조와 풍화에 있다. 산이 낮으니 신선한 암석이 드러나는 양이 적고, 풍화도 느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은 하루의 길이로 눈을 돌린다. 2021년 독일과 미국 연구진은 미국 휴런호 바닥의 싱크홀에서 보라색 미생물 매트를 연구했다. 그곳의 물은 산소가 부족하고 황이 풍부해 옛날 얕은 바다와 매우 닮았다.
연구진은 낮이 길수록 미생물 매트가 물로 내보내는 산소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소를 만드는 세균은 날마다 자기 위를 덮고 있는 황세균이 비켜나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산소가 매트 밖으로 스며 나오는 데도 시간이 든다. 햇빛을 받는 시간이 짧으면 산소를 한껏 내보내기도 전에 해가 진다. 십수억 년 전 하루가 오랫동안 19시간 안팎에 머물렀다면, 이것도 산소가 좀처럼 늘지 못한 까닭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마지막 설명은 음의 되먹임을 강조한다. 산소가 조금 늘어나기만 해도 더 많은 철과 황, 화산 가스가 그것을 소모해서, 산소를 낮은 수준에 묶어 둔다는 것이다.
‘지루함’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실마리다. 약 8억 년 전 무렵 로디니아 초대륙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해안선과 얕은 바다가 한꺼번에 늘어났고, 넓은 면적의 현무암이 지표로 올라와 풍화되었다.
약 8억 1,000만 년 전, 탄소동위원소 곡선이 수억 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내려앉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의 비터스프링스층에서 처음 확인되어 비터스프링스 이상이라고 부른다. 그 뒤로 곡선은 다시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눈덩이 지구가 찾아왔다. 평평한 선이 어디서 끊겼는지를 보면 왜 그토록 오래 평평했는지 이해할 비교점을 얻을 수 있다.
여러 설명이 모두 그럴듯하다. 어려운 점은 무엇이든 설명하기 쉽다는 데 있다. 거의 어떤 관찰이든 어느 되먹임이나 어느 교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검증 가능한 설명이 되려면 어떤 되먹임이 어느 시간 규모에서 작용하는지, 그것이 없다면 무엇이 나타나지 않을지를 미리 밝혀야 한다. 15억 7,000만 년 전과 14억 년 전의 몇 차례 산화 펄스는 강한 되먹임을 시험하는 사례다. 되먹임이 정말 그렇게 강했다면, 계는 어떻게 평형 밖으로 밀려날 수 있었을까.
8 평평한 것은 곡선이다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결국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의 것은 셈에 넣고, 선 밖의 것은 넣지 않는다. 일련의 판정 기준처럼 사람이 그은 선일 수도 있고, 막 하나처럼 자연이 그은 선일 수도 있다.
이번 글에서 구축된 틀은 여러 곡선이다. 탄소동위원소, 산소량의 추정치, 철의 존재 형태, 화석의 종풍부도, 빙력암의 분포, 철광상의 빈도. 잴 수 있는 것은 선 안에 있다. 잴 수 없는 것은 선 밖에 있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된 틀은 대체로 서술되는 대상 쪽에 있었다. 생명의 정의, 생명나무의 뿌리, 막, 행성 하나의 화학, 더 높은 층위의 단위가 그랬다. 이번에는 서술하는 사람 쪽에 있다. ‘지루한 10억 년’은 곡선과 표본 채집, 연대 모형, 대리지표의 민감도가 함께 만들어 낸 판단이다. 이 네 가지 가운데 그 시기에서 직접 온 것은 첫 번째뿐이다. 나머지 셋은 우리 자신의 장치다.
뜯어 보면 답은 세 층으로 나뉜다. 어떤 평평함은 실제이고, 보정을 견뎌 냈다. 대규모 탄소동위원소 이상이 없다는 것, 큰 빙하와 큰 철광상이 드물다는 것, 깊은 바다가 오랫동안 산소 없이 철을 풍부하게 품었다는 것, 진핵생물 화석의 종풍부도가 오랫동안 낮았다는 것이다.
어떤 평평함은 가까이 가면 흩어진다. 산화환원 상태에는 낮은 바탕 위로 공간적 차이와 펄스가 있었고, 판은 계속 움직였지만 산이 높지 않았다. 같은 해분 안에서도 질소의 농도 구배는 가팔랐다. 진핵생물은 많았지만 오늘날과 다른 분자를 썼다. 또 어떤 평평함은 한 가지 뜻으로 읽을 수 없다. 평평한 탄소 곡선을 곧바로 생물권에 변화가 없었다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된다. 평평하다는 것은 그 대리지표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구축된 틀에 담을 수 없으면서 없애 버릴 수도 없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이번 글의 잔여항은 두 종류다. 먼저 곁에서 받쳐 주는 사례 하나를 보자. 브록스가 찾아낸, 초기 콜레스테롤을 쓰던 진핵생물들은 8억 년 전 무렵 대부분 사라져 오늘날의 후손을 남기지 않았다. 암석에는 분자를 남겼지만 살아 있는 생명에는 계통을 남기지 못했다. 2편에서 말한 부재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다만 이번에는 우연히 암석 속에 명함 한 장을 남겨 두었다.
첫 번째는 바로 그 평평한 탄소 곡선 자체다. 실제 기록이고, 보존도 좋다. 1만 번 넘게 측정해도 저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가 달라고 요구하는 정보, 곧 생물권이 실제로 변했는지는 담고 있지 않다. 11편에서 더 세밀히 나누어 볼 부재가 이런 종류다. 흔적은 남았으나, 그 흔적에는 우리가 묻는 속성이 없다.
두 번째는 제안된 그 비교다. 현생누대의 표본을 중원생대 수준으로 줄인 뒤 결과를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일이다. 확립된 방법과 기존 자료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만 두 기록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는지는 항목마다 확인해야 한다.
아직 검증하지 않았다는 말을 곧바로 알 수 없다는 말로 바꿀 수는 없다. 이런 비교가 단 하나의 답을 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떤 공백이 역사 자체에서 왔고 어떤 공백이 기록의 해상도에서 왔는지 가리는 데 도움이 된다. 답은 실제 결과에서 얻어야지, 결과에 대한 약속에서 얻을 수는 없다.
브레이저는 생전에 다윈이 그토록 고민했던 ‘캄브리아기 이전의 공백’을 다룬 책을 썼다. 제목은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다. 빈 것처럼 보이는 그 역사 속에 숨어 있던 단서와,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법을 어떻게 조금씩 익혔는지를 이야기한 책이다.
동물이 왜 이토록 늦게 왔는지를 두고는 두 견해가 팽팽하게 맞선다. 한쪽은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크고 움직이는 동물은 산소를 많이 쓴다. 산소가 충분한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눈덩이 지구 전후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다른 쪽은 해면 실험을 가리킨다. 단순한 동물에게 필요한 산소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십수억 년 전의 일부 바닷물에는 이미 충분했을 수도 있다. 동물을 가로막은 것은 다른 것, 곧 영양분이나 생태 조건, 또는 아직 다 갖추어지지 않은 발생의 유전적 도구였다는 것이다. 이 10억 년의 기록은 양쪽이 모두 차지하려 드는 증거다.
이 10억 년은 뒤의 시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기도 했다. 6편의 유성생식, 8편의 다세포성, 홍조류와 녹조류, 진핵세포 안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생산라인은 모두 이 ‘지루한’ 시간에 시작되었거나 제 모습을 갖추었다. 뒤에 온 동물은 이 10억 년의 어깨를 딛고 등장했다.
이 시기를 ‘지구의 중년’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하는 이도 있다. 중년에 들어서면 겉보기에는 하루하루가 비슷하다. 같은 출퇴근, 같은 일, 해마다 엇비슷한 건강검진 수치.
그러나 몸속의 변화는 계속된다. 느릴 뿐이고, 그 몇 가지 지표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십수억 년 전의 지구도 어쩌면 그런 중년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 이름은 처음에 세 사람이 석회암을 보고 받은 인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시대의 꼬리표로 커졌고, 그다음에는 설명해야 할 이례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지금은 다시 하나씩 검증할 수 있는 여러 명제로 해체되고 있다. 약 14억 년 전, 하루는 열여덟 시간 남짓이었다. 바다는 초기 콜레스테롤을 쓰는 진핵세포로 북적였고, 얕은 바다 밑에는 기둥 같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무리 지어 서 있었다. 그 세계는 별명보다 훨씬 부산했을지도 모른다.
판정 기준은 여전히 거른다. 단면에서는 시료를 다시 채취하고 있다. 그 평평한 선 위에서 이미 몇 개의 점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