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06

유성생식 우연을 제도로 만들다

염색체는 갈라졌다 다시 만난다. 성은 어떻게 우연을 반복 가능한 절차로 만들었을까?

Han Qin · 읽는 데 약 35분 · 공개일

1 계산해 보면 질 수밖에 없다

1971년, 영국의 생물학자 메이너드 스미스가 아주 간단한 셈을 했다. 젊어서는 비행기를 설계하는 공학자였고 서른이 다 되어서야 생물학으로 방향을 튼 사람이다. 셈의 결론은 이랬다. 유성생식은 져야 한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암수가 따로 있고, 아무 상대와 무작위로 짝짓기를 하며, 암수의 수가 대략 반반인 개체군이 있다. 여기에 돌연변이 암컷 한 마리가 나타났다고 해 보자. 짝짓기 없이 혼자 새끼를 낳을 수 있다. 그 밖에는 다른 암컷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새끼 수도 같고, 생존율도 같고, 먹는 것도 같다.

유성생식을 하는 암컷이 새끼 둘을 낳으면 평균적으로 딸 하나, 아들 하나다. 무성생식을 하는 암컷은 딸 둘을 낳는다. 다음 차례에 직접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은 무성생식 쪽에 둘, 유성생식 쪽에 하나다. 두 배. 게다가 단 한 세대 만에 벌어진 차이다.

이 차이에는 복리까지 붙는다. 3대째에는 4 대 1, 4대째에는 8 대 1이다. 스무 세대가 지나면 대략 백만 대 1이 된다. 이렇게 쌓이면 유성생식은 얼마 안 가 말끔히 밀려나야 한다. 그런데 도태되지 않았다. 이것이 이 글의 물음이다. 훗날 한 연구자는 아예 ‘진화생물학 난제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태되지 않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진핵생물의 압도적 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유성생식을 한다. 동물, 식물, 균류, 원생생물 대부분이 그렇다. 산술대로라면 흔적도 없이 밀려났어야 할 것이 이 넓은 생명의 세계에서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두 배가 어디서 나오는지는 분명히 해 두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새끼를 낳지 않는 수컷을 낳는다’는 데 있다. 유성생식 암컷은 번식에 쓰는 자원의 절반가량을 아들에게 들인다. 아들은 직접 새끼를 낳지 않는다. 무성생식 암컷은 그 자원을 전부 딸에게 쓴다.

그러니 더 정확한 이름은 ‘수컷을 낳는 데 드는 비용’이다. 암수가 나뉘지 않는 생물에게는 ‘자손의 절반이 새끼를 낳지 못한다’는 사정 자체가 없다. 두 배라는 값도 저절로 성립하지 않는다. 법칙도 아니다. 암수 비율을 바꾸거나 수컷이 새끼 기르기를 돕게 하면 수치가 달라진다.

자연에서 이 비용을 직접 재 본 적이 있다. 뉴질랜드의 호수에는 크기가 몇 밀리미터에 불과한 민물고둥이 산다. 한 호수에 짝짓기가 필요한 부류와 필요 없는 부류가 함께 살며, 같은 먹이를 먹고 같은 천적을 피한다.

2017년, 연구자들이 이 고둥들을 커다란 야외 수조에 길렀다. 일 년 뒤 어미 세대와 자손 세대에서 무성생식형의 비율을 비교했다. 무성생식형이 늘어난 정도는 두 배 모형과 맞아떨어졌다. 다른 생물에서는 두 유형이 서로 다른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아, 비교에 생태적 차이가 끼어든다.

이 고둥이 귀한 연구 대상인 까닭은 바로 두 부류가 같은 물속에 바짝 섞여 살기 때문이다. 이후 이 고둥은 배를 타고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진 것은 모두 짝짓기가 필요 없는 부류다.

성에는 두 배 말고도 다른 비용이 든다. 재조합은 이미 잘 맞춰진 조합을 흩뜨린다. 몇몇 유전자가 함께 있을 때 유난히 좋은 효과를 내더라도 재조합은 그들을 떼어 놓는다.

물론 반대도 된다.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가 묶여 있으면 재조합이 둘을 갈라 놓을 수 있다. 짝을 찾는 데에는 시간도 들고 위험도 따른다. 짝짓기는 먹이 찾을 시간을 잡아먹고, 그 와중에 잡아먹힐 위험도 높인다. 짝짓기로만 옮는 병도 있다. 수컷끼리 경쟁도 해야 한다. 공작의 꼬리, 사슴의 뿔, 구애의 노래는 모두 짝짓기에 쏟는 힘이다.

우리 자신의 몸에 적혀 있는 비용도 있다. 정자와 난자를 만들 때 일어나는 특별한 분열, 감수분열은 염색체를 언제나 정확하게 나누지는 못한다.

사람에서 확인된 임신의 약 10~20퍼센트는 유산으로 끝난다. 임신 첫 석 달에 유산된 배아의 절반가량은 염색체 수가 잘못되어 있다. 대부분 난자가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생긴 오류다.

여성이 마흔 살을 넘으면 염색체에 오류가 있는 난자의 비율이 절반 안팎으로 올라간다. 한 가지 이유는 난자가 태아 시절부터 감수분열을 시작해 중간에 멈춘다는 데 있다. 수십 년을 그대로 멈춰 있다가 배란 직전에야 분열을 다시 시작한다.

염색체를 붙들어 매던 단백질 고리들이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느슨해진다.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는 경우인데, 그 대부분도 난자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생긴다. 이 비용들을 모두 더하면 유성생식이 치르는 대가는 두 배에 그치지 않는다.

2 대체 무엇을 성이라 하는가

어떤 것이 왜 도태되지 않았는지 따지려면,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로 구별할 것은 이것이다. 성과 번식은 같은 일이 아니다.

번식은 수의 문제다. 하나가 둘이 된다. 성은 유전의 문제다. 서로 다른 출처의 유전물질이 하나의 생활사 안으로 들어와 뒤섞인다.

이 두 일은 따로 일어날 수도, 묶여서 일어날 수도 있다. 동물의 생활사에서는 둘이 한데 묶여 있다. 그래서 하나의 일처럼 보인다.

가장 선명한 반례는 섬모충의 접합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짚신벌레도 이렇게 한다. 두 세포가 서로 붙어 유전물질 일부를 교환한 다음 떨어진다.

이 한 번의 성적 사건 자체로 세포 둘이 넷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를 늘리는 일은 나중의 보통 세포분열이 맡는다. 반대로 분열생식, 출아, 영양번식은 유전적 교환을 전혀 하지 않고도 개체 수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따라서 ‘성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단계에서 번식이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둘째로 구별할 것은 진핵생물의 성과 세균의 유전자 교환이다. 둘은 같은 과정이 아니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면 감수분열이 대체 무엇을 하는지 먼저 짚어야 한다.

당신의 체세포마다 염색체는 쌍으로 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서,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왔다. 양쪽에는 같은 유전자들이 같은 순서로 놓여 있지만, 그 유전자의 버전은 다를 수 있다. 반면 정자나 난자 같은 배우자는 한 벌만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가 바뀔 때마다 염색체 수가 두 배가 된다.

그러니 배우자를 만들 때에는 쌍을 이루는 염색체를 나눠 배우자 하나에 한 가닥씩만 주어야 한다. 이것이 감수분열이다. 하지만 단순히 ‘나눈다’는 말보다 훨씬 복잡하다. 핵심은 그 중간 단계에 있다.

나누기 전에 세포는 먼저 스스로 염색체에 끊어진 자리를 만든다. 부모에게서 하나씩 온 두 상동염색체는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찾아 쌍을 이루고 나란히 달라붙는다. 그런 다음 상대를 본보기 삼아 끊어진 부분을 메운다. 그러면서 두 염색체가 그 자리에서 한 구간을 맞바꾼다. 이 단계를 교차라고 한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잘랐다가 이어 붙이는 일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짝지은 염색체 사이에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보인다. 1909년, 벨기에의 한 세포학자가 이 교차점이 두 염색체가 조각을 맞바꾸는 자리라는 생각을 처음 내놓았다.

다시 말해 당신이 아이에게 전하는 염색체는 아버지에게 받은 그대로도, 어머니에게 받은 그대로도 아니다. 둘을 자르고 다시 이은 새 판본이다.

사람에게는 염색체가 23쌍 있다. 각 쌍에서 무작위로 하나씩 골라 배우자에 넣기만 해도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조합이 800만 가지를 넘는다. 여기에 교환까지 더해지니 같은 배우자 둘이 나올 일은 거의 없다. 당신과 형제자매의 생김새가 다른 이유의 절반 이상은 이 단계에 있다. 그리고 이 단계는 사고가 아니라 세포가 일부러 하는 일이다.

세포는 효소들을 따로 만들어 자기 염색체에 끊어진 자리를 낸다. 그런 다음 짝인 상동염색체를 본보기 삼아 수선한다. 그 수선 과정에서 맞교환이 일어난다. 섞기 위해 세포가 스스로 자기 DNA를 끊는 것이다.

그 뒤 세포는 연이어 두 번 분열한다. 그 사이에 DNA를 다시 복제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에는 짝지은 상동염색체가 갈라지고, 두 번째에야 자매 염색분체가 갈라진다.

그리하여 모세포 하나에서 배우자 넷이 생긴다. 각각 염색체를 한 벌만 가진다. 남성에게서는 넷 모두 정자가 된다. 정원세포가 분열을 시작한 뒤 정자가 만들어지기까지 두 달 넘게 걸리며, 날마다 생산되는 정자는 억 단위다.

여성에게서는 네 몫 가운데 하나만 난자가 된다. 나머지는 ‘극체’라는 작은 덩이로 버려진다. 평생 배란하는 난자는 400개 안팎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두 배우자가 융합하면 염색체는 다시 쌍을 이룬다.

짝 맞추기 단계에서 짝을 맞추지 못하면 전체 절차가 막힌다. 말에게는 염색체가 32쌍, 당나귀에게는 31쌍 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는 몸이 튼튼하지만 거의 번식하지 못한다. 감수분열에 들어가면 염색체가 맞는 짝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씨 없는 수박도 같은 이치다. 염색체가 세 벌이라 감수분열 때 둘씩 짝지을 수 없다. 그래서 정상적인 씨가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정리한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감수분열 방식의 성 주기다. 짝 맞추기, 자르고 맞바꾸기, 절반으로 줄이기, 융합하기. 단계마다 오류가 날 수 있고 전용 기계도 필요하다. 다만 모든 계통이 이 목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가령 노랑초파리 수컷의 감수분열에서는 보통 교차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균은 이 절차를 아예 따르지 않는다. 물속에서 DNA 조각을 바로 주워 올 수도, 관을 통해 건네받을 수도, 바이러스에 실려 옮겨 받을 수도 있다. 2편에서 이야기한 세 갈래 길이다.

하지만 어느 길도 ‘짝 맞추기, 절반으로 줄이기, 융합하기’라는 순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활사의 정해진 대목에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게다가 비대칭이다. 한쪽은 주고 한쪽은 받는다. 세균의 교환이 ‘쓸모 있는 조각을 주워 달기’에 가깝다면, 진핵생물의 성은 ‘세대마다 자기 카드와 짝의 카드를 함께 다시 섞기’에 가깝다.

성을 유전적 교환이라고 가장 넓게 정의한다면 세균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따질 기제의 문제는 감수분열 방식의 성으로 한정해야 한다.

셋째, 감수분열은 보통의 세포분열을 대대적으로 개조한 것이다.

핵심 개조는 적어도 세 묶음이다. 첫 번째 분열에서 자매 염색분체 대신 짝지은 상동염색체를 갈라 놓는다. 한 번 복제하고 두 번 나눈다. 자매 염색분체를 묶는 결합도 한꺼번에 전부 풀지 않는다. 팔 부분이 먼저 풀리고 동원체 근처는 나중에 풀린다. 덕분에 첫 번째 분열에서 상동염색체를 떼어 놓으면서도 자매 염색분체는 잠시 더 붙들어 둘 수 있다.

이 세 묶음의 개조는 서로 맞물려 있다. 한 군데라도 빼면 나머지도 성립하지 않는다. ‘감수분열은 보통의 분열을 개조해 생겼다’는 말은 오늘날의 작동 방식에서 거슬러 추론한 것이다. 그 역사를 직접 본 사람은 없다.

3 부품은 더 오래된 곳에서 왔다

어떤 생물에게 감수분열이 있는지 판단하는 데에는 이제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전용 부품 묶음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흔히 조사하는 부품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짝을 맞추기 전에 일부러 끊어진 자리를 만드는 효소. 주로 감수분열에서 일하는 가닥 교환 단백질. 염색체 축에 놓인 점검 단백질.

상동염색체 사이의 교환을 촉진하는 짝 맞추기 단백질도 있다. 또 두 상동염색체를 지퍼처럼 나란히 맞물려 붙잡는 구조 단백질들이 있다.

이 부품들을 두루 조사하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성에 대한 이해가 아니었다. ‘정말 무성인 분류군은 어느 쪽인가’라는 판단이었다. 그전에는 미생물에게 성이 있는지 알려면 현미경으로 짝짓기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많은 미생물은 성적 단계가 극히 짧거나, 필요한 조건이 까다롭거나, 실험실에서 아직 아무도 그 조건을 맞춰 주지 못했다.

2005년, 연구자들이 당시 확보되어 있던 유전체를 두루 조사했다. 오랫동안 ‘원시적으로 무성인 생물’이라 불린 지아르디아를 특히 살폈다. 더러운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났을 때 흔히 범인으로 꼽히는 미생물이다. 그 안에서 여러 핵심 감수분열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2008년에는 조사할 도구 목록을 늘려, 당시 공인된 성적 주기가 없던 몇몇 다른 분류군도 살폈다. 여기서도 상당히 온전한 조합이 나왔다.

가장 친숙한 예는 효모다. 살기 좋을 때에는 둘로 갈라지며 늘어나다가, 굶주려야 감수분열을 한다. 그러면 작은 주머니 하나에 포자 넷이 생긴다.

이렇게 적어도 일부 ‘무성 진핵생물’은 ‘성적 단계가 아직 관찰되지 않았지만 유전체에 감수분열 기계를 간직한 진핵생물’이 되었다. 여기서 추론의 방향을 뒤집으면 안 된다. 전용 유전자가 여러 개 발견되면 과거나 현재의 감수분열을 가리키는 강력한 단서다. 반면 어떤 유전자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무성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11편에서 다룰 원칙도 이것과 같다. 부재를 근거로 한 증거가 얼마나 강한지는 ‘그것이 있다면 원래 우리가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에 달렸다. 이미 몰라보게 변했을지도 모르는 유전자라면 그 확률은 매우 낮다.

유전자는 사라질 수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뀔 수도 있다. 계통에 따라 서로 상동이 아닌 단백질로 비슷한 구조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한 조상의 모습은 이렇다. 마지막 진핵생물 공통 조상에게는 감수분열 기계 한 벌이 있었다.

근거는 ‘어느 한 유전자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기능상 서로 맞물리는 여러 부품이 아주 멀리 떨어진 계통들에 분포한다. 그 부품들이 끊어진 자리 만들기, 재조합, 짝 맞추기, 교환, 결합 유지 등 여러 단계를 두루 담당한다.

각각의 큰 계통이 따로 똑같은 부품 조합을 조립했다고 보려면, ‘공통 조상에게 이미 있었고 이후 각 계통에서 일부를 잃었다’고 볼 때보다 독립적인 기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한 층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부품 자체는 감수분열보다도 오래되었다.

가장 뚜렷한 예가 가닥 교환 효소다. 세균에게 이미 있고, 고세균에게도 상동인 버전이 있다. 진핵생물이 일반적인 수선에 쓰는 효소도, 주로 감수분열에 쓰는 효소도 이 더 오래된 집안에 속한다.

두 번째 예는 더 흥미롭다. 1997년의 실험은 감수분열 때 끊어진 자리를 만드는 효소가 공유결합을 통해 절단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구조를 비교하자 이 효소는 고세균의 한 종류 위상이성질화효소와 연결되었다. DNA를 잘랐다 다시 이어 얽힌 것을 풀어 주는 효소다.

본래 ‘잘랐다가 다시 잇기’라는 유지·보수 체계에 속하던 단백질 계열이 감수분열에서는 일부러 끊어진 자리를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감수분열 재조합은 오래된 DNA 유지·보수 체계를 재편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에는 상당히 강한 상동성 증거가 있다.

그러나 ‘DNA 수선이 감수분열이 처음 나타난 유일한 이유, 또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는 말은 다른 층위의 주장이다. 상동성만으로 입증할 수 없다. 현대의 감수분열은 오히려 일부러 엄청나게 많은 절단을 일으킨 다음 수선 기계를 동원해 처리한다. 더 깊은 뿌리가 재조합 효소보다 훨씬 흐릿한 부분도 있다.

두 상동염색체를 나란히 붙들어 매는 구조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전체 형태, 양옆의 축과 가운데 구역,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실은 서로 아주 먼 진핵생물 사이에서도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하지만 그 구조를 이루는 단백질은 서열에서 상동성의 흔적이 아주 약하게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서열 비교로는 관계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2021년 선충 연구는 이 단백질들이 너무 빨리 진화한 나머지, 서열보다 구조와 기능이 훨씬 더 잘 보존된다고 지적했다. 2025년 초파리 비교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구조의 원리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그 구조를 이루는 여러 개별 단백질의 깊은 기원은 여전히 흐릿하다.

여기서는 또 다른 비대칭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도구 상자에 든 부품마다 진단에 쓸 수 있는 가치는 다르다. 끊어진 자리를 만드는 효소와 전용 가닥 교환 효소가 가장 유용하다. 거의 감수분열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란히 붙들어 매는 구조는 정반대다. 형태는 극도로 잘 보존되지만 서열은 극도로 빠르게 변한다.

한 기계 안에서도 어떤 부품은 아주 먼 시간을 추적하는 표지로 알맞고, 어떤 부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같은 기계를 이루는 부품들이 시간 속에 남긴 흔적은 읽어 낼 수 있는 정도가 몇 자릿수나 차이 난다.

따라서 이것으로 여러 분류군을 조사할 때에는 지금 어떤 종류의 부품을 쓰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잘못 고르면 얻는 것은 ‘없다’가 아니라 ‘찾지 못했다’일 뿐이다.

4 여러 설명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도태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나온 설명은 대여섯 가지다. 진짜 이견은 설명마다 붙어 있는 매개변수의 조건에 있다.

첫째는 래칫이다. 한 방향으로만 도는 기계장치에서 따온 이름이다. 1964년 멀러가 제안했고, 1978년 헤이그가 정량화했다. 핵심은 ‘세대마다 반드시 더 나빠진다’가 아니다.

상상해 보자. 어느 개체군의 개체마다 해로운 돌연변이를 얼마씩 지니고 있다. 적게 가진 개체도, 많이 가진 개체도 있다. 그런데 가장 적게 가진 부류의 개체 수는 대개 많지 않다. 어느 세대에 우연히 ‘가장 깨끗한’ 개체가 하나도 자손을 남기지 못하면, 그 부류는 사라진다.

재조합이 없으면 그 부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더 깨끗한 개체를 새로 만들려면 이미 있는 돌연변이를 없애야 하는데, 그럴 확률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돌연변이 부담의 최솟값이 한 계단씩 올라간다. 한쪽으로만 도는 래칫처럼.

비유하자면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베껴 쓰면서도 남의 사본과 대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가장 깨끗한 사본을 잃으면 영영 되찾을 수 없다. 재조합은 이 톱니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돌연변이를 세 개씩 가진 두 개체가 재조합을 거쳐 돌연변이 하나만 지닌 자손을 낳을 수도 있다.

여기에 필요한 매개변수 조건은 아주 구체적이다. 래칫의 회전 속도는 유효개체군 크기, 해로운 돌연변이가 생기는 비율, 각 돌연변이의 효과 크기에 크게 좌우된다. 개체군이 아주 크거나, 돌연변이율이 아주 낮거나, 도태가 아주 강하면 래칫은 극도로 느리게 돌 수 있다.

이 설명만으로는 많은 큰 개체군에서 왜 여전히 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왜 가끔 한 번이 아니라 세대마다 일어나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드문 재조합만으로도 부담이 적은 개체를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잦은 성에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실측 자료의 뒷받침은 아직 절반쯤에 머문다. 해로운 돌연변이는 실제로 계속 생긴다. 정말 어려운 것은 어느 자연 계통의 유효개체군 크기, 해로운 돌연변이가 생기는 전체 비율, 효과의 분포를 모두 독립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실제 래칫 속도를 예측하는 일이다.

둘째는 돌연변이 효과의 중첩이다.

콘드라쇼프가 1982년과 1988년에 발전시킨 모형은 래칫과 다르다. 여기에는 특별한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해로운 돌연변이가 여러 개 겹치면 전체 손상이 단순히 더한 값보다 커져야 한다. 하나를 지니면 조금 손해를 보고, 둘을 지니면 그 두 배보다 더 손해를 보며, 다섯이면 아예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조합은 ‘부담이 유난히 큰’ 자손을 일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자손들을 한꺼번에 도태시키는 동시에 부담이 유난히 작은 자손들은 남긴다. 흩어진 짐을 한곳에 모아 단번에 치우는 셈이다. 하지만 필요한 조건은 까다롭다. 손상이 선형적인 합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겹쳐야 한다.

돌연변이 다섯 개의 손실이 한 개의 손실의 정확히 다섯 배라면 이 기제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재조합으로 같은 부담을 나눠 담는 방식만 바뀔 뿐, 총량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1988년 논문은 유전체 하나에 세대마다 생기는 해로운 돌연변이 수가 대략 하나 이상이면, 이 기제가 충분히 큰 선택상의 차이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매개변수 조건이 모형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다.

1997년 선충의 돌연변이 축적 실험에서 얻은 반수체 유전체당 해로운 돌연변이율은 약 0.0026이었다. ‘하나 이상’보다 훨씬 낮다. 이후 서로 다른 종과 방법으로 얻은 값에는 1보다 훨씬 낮은 경우부터 1에 가깝거나 그보다 높은 경우까지 모두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겹치면 합보다 커진다’는 관계가 보편적이라고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험에 따라 합보다 큰 결과도, 작은 결과도, 정확히 같은 결과도 나온다.

셋째는 연관 간섭이다. 이 설명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가 가장 쉽다. 어떤 개체군에 이로운 돌연변이가 둘 생겼다고 하자. 갑은 개체 갑에게, 을은 개체 을에게 생겼다.

재조합이 없으면 갑과 을은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는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의 이로운 돌연변이는 사라진다. 을이 나빠서 생긴 손실이 아니다. 하필 엉뚱한 개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재조합이 있으면 갑과 을이 짝짓기하여 두 돌연변이를 함께 가진 자손을 낳을 수 있다.

피셔가 1930년에, 멀러가 1932년에 각각 이 생각을 내놓았다. 1966년 힐과 로버트슨은 이를 연관된 유전자 자리 사이의 상호 간섭으로 일반화했다. 여러 이로운 돌연변이가 동시에 존재할 만큼 개체군이 클 때 이 기제의 힘이 가장 커진다.

실측 근거는 실험진화에서 나왔다. 2002년 녹조류 실험에서는 큰 실험 개체군이 선택에 반응하는 데 재조합의 효과가 더 뚜렷했고, 작은 개체군에서는 효과가 매우 약했다. 효모 실험에서는 재조합의 중요한 역할이 좋은 돌연변이 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무임승차하듯 딸려 온 나쁜 돌연변이들 사이에서 좋은 돌연변이를 떼어 내는 것이라는 관찰이 나왔다.

넷째는 붉은 여왕이다.

이름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말에서 따왔다. “제자리에 있으려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해.” 핵심 기제는 막연히 ‘환경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생생물이 숙주를 감염시키려면 대개 먼저 숙주를 ‘알아보아야’ 한다. 숙주의 유전자형에 따라 그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다르다.

어떤 숙주 유전자형이 흔해지면, 기생생물 집단에서도 그 유형을 잘 감염시키는 부류가 늘어난다. 그 결과 흔한 유전자형이 도리어 가장 불리해지고, 드문 유전자형이 잠시 앞선다. 드물던 것이 흔해지면 기생생물이 또 따라붙는다.

그래서 하나의 ‘최적 유전자형’이 영원히 자리를 굳힐 수 없다. 사람에게서 변이가 가장 많은 유전자들이 마침 면역계가 병원체를 알아보도록 돕는 유전자라는 사실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유성생식은 세대마다 조합을 흩뜨리니 마침 새로운 희귀형을 만들어 낸다. 붉은 여왕이 요구하는 것은 ‘더 좋아지기’가 아니라 ‘앞 세대와 달라지기’다.

앞선 세 설명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도 여기에 있다. 앞의 셋이 돌연변이의 좋고 나쁨에 관심을 둔다면, 이것은 조합이 새것인지 낡은 것인지만 따진다. 모형이 성립하려면 숙주와 기생생물 사이에 유전자형 수준의 대응 관계가 있어야 하고, 기생생물의 피해가 충분히 커야 하며, 서로 맞물려 변하는 속도도 충분히 빨라야 한다.

그저 ‘기생생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붉은 여왕의 조건을 채운 것은 아니다. 이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 연구계 역시 뉴질랜드의 그 민물고둥이다.

원산지 개체군에서는 유성 개체와 무성 개체가 같은 호수, 심지어 같은 구간의 물가에 함께 산다. 그런데 유성 개체의 비율은 거의 0인 곳부터 거의 전부인 곳까지 있다. 중요한 기생생물 가운데 하나가 흡충이다.

이 폭 자체가 실험 조건이다. 같은 종, 같은 수역인데 유성생식의 비율은 이렇게까지 벌어질 수 있다.

1998년, 5년에 걸쳐 추적한 연구는 기생생물이 흔한 숙주 클론에 반응하기까지 시간차가 있음을 발견했다. 실험 감염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드물었던 숙주 클론이 한때 흔했던 클론보다 그 지역 기생생물에 덜 감염되었다. 이것은 희귀형의 이점에 대한 증거다. 단순히 ‘유성생식이 많은 곳에 기생생물도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009년의 후속 연구는 두 서식지에서 처음에 가장 흔하던 무성 클론이 대략 7~10년에 걸쳐 원래 드물던 클론으로 교체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동안 유성생식형은 계속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과거에 흔하던 클론은 그 지역 기생생물에 더 쉽게 감염되었지만, 다른 지역의 기생생물에 대해서는 같은 변화가 없었다.

유보할 점도 구체적이다. 야외에서 나타난 상관관계에서 수심, 숙주 밀도, 과거의 유래, 그 밖의 생태적 차이를 완전히 걷어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실험실로 옮겼다.

2011년의 한 실험은 선충을 숙주로, 독성이 강한 세균을 병원체로 삼았다. 이 연구계에서는 자가수정만 가능하게 한 집단, 야생형의 혼합 집단, 타가수정을 강제한 집단이라는 세 가지 짝짓기 체계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관건은 병원체를 달리한 세 처치였다.

첫째는 병원체 없는 대조군. 둘째는 세대마다 똑같이 고정된 병원체 균주를 만나는 집단. 셋째는 공진화 처치였다. 감염되어 죽은 선충의 몸에서 세균을 회수해 다음 세대를 감염시키는 데 써서, 병원체도 숙주와 함께 변하게 했다. 실험은 숙주 세대로 약 서른 세대 동안 이어졌다. 결과는 차이를 아주 선명하게 드러냈다.

공진화 처치에서는 자가수정을 강제한 모든 개체군이 스무 세대 안에 멸종했다. 병원체가 없거나 고정된 병원체를 만난 처치에서는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타가수정을 강제한 개체군은 계속 존속했다. 야생형 개체군의 원래 타가수정률은 약 20~30퍼센트였다. 병원체를 만나자 첫 여덟 세대 만에 그 비율이 70퍼센트 이상으로 빠르게 뛰었다.

그다음의 비교가 가장 중요하다. 고정된 병원체를 만난 집단에서는 이후 타가수정률이 다시 내려갔다. 병원체가 함께 진화하는 처치에서만 높은 타가수정률이 실험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다. 이는 ‘병원체가 스트레스를 주어서 짝짓기가 늘었을 뿐’이라는 중요한 대안 설명을 배제했다.

고정된 병원체도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장기간 높은 타가수정률을 유지시키지는 못했다. 계속 변하는 병원체 집단만이 모형이 예측한 결과를 낳았다. 이 글에서 직접적인 인과 검증에 가장 가까운 자료다.

상관관계를 지켜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변수 하나만 다른 대조 조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같은데 한쪽은 변하고 다른 쪽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적용 범위도 분명히 적어야 한다. 수십 세대에 불과한 실험이다. 숙주와 병원체의 조합도 인위적으로 정했다.

모아 보면, 오늘날의 종설에서 흔히 취하는 입장은 모든 생물에 두루 통하는 하나의 답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작은 개체군에는 래칫의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크고 빠르게 적응하는 개체군에는 연관 간섭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기생 압력이 강한 연구계에서는 붉은 여왕의 동역학이 나타날 수 있다.

기존 이론은 서로 다른 매개변수 구간에서 무성생식의 이점을 상쇄할 수 있는 여러 기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모든 진핵 계통에서 감수분열 방식의 성이 유지되는 공통의 원인으로 입증되지는 않았다. 이 설명들을 둘러싼 논쟁의 실체는 기제 자체가 아니라 매개변수에 있다.

래칫이 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재조합이 연관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다투는 것은 실제 개체군에서 그 효과의 크기가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답하려면 유효개체군 크기, 전체 돌연변이율, 효과의 분포, 기생 압력을 독립적으로 재야 한다. 오늘날에도 이 값들을 하나의 자연 연구계에서 모두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5 무성생식은 사라진 적이 없다

무성생식은 줄곧 있었고, 바로 곁에도 있다. 길가의 민들레 가운데 상당수는 수정 없이 씨를 맺는다. 씨는 어미 식물의 클론이어서 개체들이 거의 똑같다. 여름이면 진딧물 암컷은 짝짓기하지 않고 암컷을 연이어 낳는다. 갓 태어난 딸의 배 속에 이미 외손녀가 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 가을이 되어야 수컷이 태어난다. 암컷은 짝짓기한 뒤 알을 낳고, 그 알로 겨울을 난다. 한 해 안에서 무성과 유성이 번갈아 온다.

동물원에서도 관찰되었다. 2006년, 영국의 두 동물원에서 수컷과 분리되어 지내던 코모도왕도마뱀이 부화할 수 있는 알을 낳았다.

부화한 새끼는 전부 수컷이었다. 이 도마뱀의 성은 성염색체로 결정되며, 암컷이 짝짓기 없이 낳는 자손은 수컷일 수밖에 없다. 2001년에는 미국의 한 동물원 수족관에서 수컷 상어를 접한 적 없는 암컷 귀상어가 새끼 상어 한 마리를 낳았다.

2021년에는 인공 번식 중이던 캘리포니아콘도르 가운데 새끼 두 마리가 어미의 짝짓기 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미 곁에 수컷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남아메리카에서 버섯을 기르는 한 개미 종은 대부분의 개체군에서 수개미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는다. 여왕은 전적으로 복제로 대를 잇는다. 브라질 아마존의 몇몇 개체군에만 아직 수개미가 있다.

사람이 거의 눈앞에서 탄생을 지켜본 무성생식 종도 있다. 가재다. 1990년대 독일의 관상용 수족관 상점에 대리석 무늬 가재가 나타났다. 암컷밖에 없었고, 모든 개체가 같은 클론이었다.

이 가재는 애완동물 거래를 따라 여러 곳으로 퍼져, 이제 마다가스카르 등의 야생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꿀벌은 또 다른 방법을 쓴다. 수벌은 수정되지 않은 알에서 자란다.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다.

미국 남서부에는 종 전체가 암컷뿐인 채찍꼬리도마뱀이 몇 종 있다. 두 유성생식 도마뱀 종이 교잡해 생긴 후손들이다. 암컷끼리도 짝짓기 동작을 하는데, 이것이 배란을 자극한다. 수컷은 없어도 의식은 남아 있다.

‘무성’이라는 말 안에는 사실 여러 가지가 들어 있다. 거의 복제인 경우도 있고, 먼저 감수분열을 한 다음 어떻게든 다시 쌍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갈라져야 할 두 세포핵이 도로 합쳐지는 식이다. 이때는 유전자도 다시 섞인다.

식물이 수정 없이 클론 씨앗을 만드는 것은 무수정생식이라고 한다. 민들레가 그렇다. 자가수분은 무성생식에 들지 않는다. 여전히 감수분열을 하고 두 배우자가 융합한다. 다른 개체와 섞이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무성 계통은 대개 유성 조상에게서 거듭 갈라져 나왔고, 대부분 아주 젊다. 2009년, 많은 동식물 무성 계통의 나이를 모아 보았더니 정말 오래된 것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이 분포도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유성에서 무성으로 바뀌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둘의 멸종 속도가 같더라도 계통수 가지 끝에는 젊은 무성 계통이 잔뜩 달릴 것이다. 그러니 ‘무성 계통은 대부분 젊다’는 말은 성립한다. 그러나 ‘무성 계통은 반드시 빨리 멸종한다’는 말은 이 그림만으로 입증할 수 없다.

반대 방향의 사례도 있다.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함께 사는 생물이다. 지의류에서는 유성에서 무성으로의 전환이 26~44차례, 반대 전환도 약 14~25차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의 한 대벌레 무리에서는 무성생식이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생겼다.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일부 계통은 백만 세대 넘게 무성생식을 이어 왔다.

무성생식이 유난히 잘 자리 잡는 곳도 있다. 가까운 친척인 유성생식형에 비하면 무성생식형은 흔히 더 북쪽, 더 높은 산에 산다. 빙기에 얼음으로 덮였던 곳에서도 더 자주 나타나고, 분포 범위도 더 넓다.

한 가지 설명은 이렇다. 얼음이 물러난 뒤 단위생식을 하는 암컷 한 마리만 있어도 새 개체군을 세울 수 있다. 짝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많은 무성생식형은 동시에 다배체이거나 교잡의 후손이기도 하다.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무성이 아니라 다배성에서 왔을 수도 있다. 여러 설명에 각각 맞는 사례가 있지만, 어느 하나도 전부를 아우르지는 못한다.

무성생식의 약점에도 누구나 본 적 있는 예가 있다. 바나나다. 슈퍼마켓의 바나나는 거의 모두 같은 품종이다. 씨가 없고, 포기를 나누어 대대로 심는다. 모든 포기가 같은 클론이다.

이전에 주류였던 품종은 1950년대 전후 토양의 한 균류에 무너졌다. 지금의 품종은 같은 균류의 새로운 유형에 다시 쫓기고 있다. 밭 전체의 바나나가 똑같이 생겼으니 병이 오면 함께 쓰러진다. 농업과 원예에는 원래 클론이 널려 있다. 접붙인 사과나무도, 꺾꽂이한 포도나무도 그렇다.

사람도 무성생식을 빌려 쓰고 싶어 한다. 교잡 벼는 수확량이 많지만 잡종의 이점은 한 세대뿐이다. 그 씨를 다시 심으면 형질이 갈라지므로 농민은 해마다 새 종자를 사야 한다. 중국에서 수십 년 동안 재배한 교잡 벼도 줄곧 이 문턱에 걸려 있다. 교잡 벼가 씨앗으로 자신을 복제하게 할 수 있다면 잡종강세를 대대로 붙들어 둘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두 연구팀이 각각 벼의 감수분열을 보통 분열로 바꾸고, 난세포가 수정 없이 발달을 시작하게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벼에서 클론 씨앗을 얻었다. 당시에는 클론 씨앗의 비율이 많아야 10~30퍼센트였다. 이후 개선한 방법을 교잡 벼에 적용하면서 9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 제도를 꺼 버리려면 여러 유전자를 동시에 손봐야 한다. 지금도 조정 중이다.

6 그 스캔들

질형윤충은 길이가 1밀리미터도 안 되어 확대경으로 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작은 동물이다. 몸 앞쪽에는 섬모가 한 바퀴 둘러나 있는데, 움직이면 바퀴 둘이 도는 듯하다. 이끼 속, 처마의 물받이, 잠깐 생긴 웅덩이에서 산다.

물이 마르면 몸의 물기를 빼 작은 알갱이처럼 웅크린다. 바람을 타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물을 만나면 살아난다. 마른 윤충은 그 상태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다. 2021년에는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에서 약 2만 4천 년 동안 얼어 있던 윤충 한 마리를 꺼냈다. 녹이자 살아났고 번식까지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암컷이다. 알려진 종이 수백인데 수컷을 본 사람은 없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수천만 년 동안 유성생식을 하지 않았다. 1986년 메이너드 스미스, 1절에서 셈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 이처럼 크고 오래되었으면서도 성이 보이지 않는 분류군을 진화생물학의 스캔들이라 불렀다. 4절의 이론들대로라면 진작 무너졌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이한 점도 있다. 유전체에 세균, 균류, 심지어 식물에게서 ‘주워 온’ 유전자가 대량으로 들어 있다. 동물로서는 놀라울 만큼 높은 비율이다. 탈수할 때 DNA는 조각조각 끊어지고, 다시 물을 머금으면 세포가 그것을 이어 붙여야 한다. 외부 DNA가 바로 이 틈에 섞여 들어온다는 추측이 나왔다.

기생생물은 어떻게 피할까. 2010년, 연구자들은 치명적인 균류에 붙잡힌 윤충이 말라서 날아가는 방식으로 도망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균류는 따라오지 못했다. 이들은 성이 아니라 날아가기 덕분에 기생생물을 떨쳐 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2000년, 미국의 유전학자 메셀슨 등이 몇몇 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메셀슨은 1958년 스탈과 함께 DNA가 어떻게 복제되는지 입증한 유명한 실험을 한 사람이다. 분석에서는 한 유전자의 두 사본이 유난히 멀리 갈라져 있었다. 유성생물처럼 서로 가까운 쌍을 이루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이들에게 오랫동안 성이 없었다고 제안했다.

한동안 이것은 오래된 무성생식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분자 증거였다. 2013년 공개된 한 유전체는 이 견해에 힘을 더했다. 다만 논문의 저자들도 극히 드물고 특이한 유전적 교환까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뒤에는 이 단서가 중요해졌다. 2015년 이후 다른 속의 윤충 유전자에서 개체들이 서열 덩어리를 공유한다는 발견이 나왔다. 연구자들은 이를 어떤 성적 과정의 흔적으로 보았다. 어쩌면 염색체의 짝을 맞추는 방식이 보통과 다른 감수분열일 수도 있다고 했다. 2016년 다른 연구팀은 윤충 576마리를 분석해 마찬가지로 개체 사이의 공유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이 수평이동, 곧 ‘주워 온 유전자’ 방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판단했다.

양쪽 모두 교환이 있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다투는 것은 교환의 방식이었다. 다만 2018년에는 그 신호 가운데 일부가 표본 사이의 오염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스캔들의 내용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원래 물음은 ‘어떻게 이렇게 큰 분류군이 수천만 년 동안 전혀 교환하지 않을 수 있는가’였다. 이제는 ‘얼마나 낮은 빈도로, 어떤 방법을 통해 교환하는가’가 되었다. 앞의 물음이 사실이라면 이론 전체에 대한 도전이다. 뒤의 물음은 그렇지 않다.

2020년, 야생 윤충 열한 마리의 전장 유전체를 분석한 연구에서 유전자형 비율이 무작위 짝짓기의 예측치에 가깝게 나왔다. 연구자들은 엄격한 복제가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설명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2022년에는 또 다른 속에서 성적 재조합의 특징이 보고되었다.

오늘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 수천만 년 동안 교환이 전혀 없었다는 주장은 이제 버티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이 보통 동물처럼 수컷을 만들고 정상적인 수정을 하는 모습을 누가 본 것도 아니다. 논쟁은 교환이 얼마나 있는지, 모든 계통에 있는지, 어떤 방법을 쓰는지로 좁혀졌다.

스캔들 후보는 하나만이 아니다. 다윈의 이름을 기려 이름 붙인 다르위눌라과라는 작은 갑각류 무리가 있다. 두 장의 껍데기를 지닌 패충류로, 기어 다니는 작은 콩알처럼 생겼다. 줄곧 암컷만 관찰되어 1억 년, 어쩌면 2억 년 동안 무성생식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2006년, 살아 있는 수컷이 발견되었다. 한 세기 만에 나온 신뢰할 만한 첫 기록이었다. 그래도 이 과에는 아직 수컷이 알려지지 않은 종들이 남아 있다.

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개응애는 종의 약 10퍼센트가 암컷뿐이다. 일부는 수백만 년 이상 그렇게 살았을 수 있다. 2007년 분석에서는 무성 조상들 사이에 유성 계통이 끼어 있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무성이 도로 유성이 되었다는 뜻이다. 2017년 연구는 이 오래된 무성 날개응애에서도 해로운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기제가 여전히 작동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육상식물 뿌리 속에서 살며 인 흡수를 돕는 균류도 있다. 수지상균근균이다. 성적 구조가 줄곧 관찰되지 않아 오래된 무성생물이라 불렸다. 2009년에는 밭의 한 개체군에서 재조합이 측정되었고, 이후 유전체에서는 감수분열 유전자도 대거 발견되었다.

이 사례들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모양이 거듭 나타난다. 수컷이 안 보이거나 알아볼 만한 성적 구조가 없다는 이유로 한 분류군을 무성으로 분류했다가, 뒤따르는 증거에 판단이 흔들린다. 윤충과 균근균의 유전체에는 교환의 흔적이나 감수분열 기계가 남아 있고, 패충류에서는 아예 살아 있는 수컷을 찾았다. 날개응애는 예외다. 지금도 정말로 오래된 무성생물처럼 보인다.

그 판단 기준은 줄곧 부재에 기대어 있었다. ‘보지 못했다’로 ‘일어나지 않았다’를 판정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번 판정을 뒤집은 증거는 대부분 현미경이 아니라 유전체에서 나왔다. 성적 사건 한 번을 보려면 마침 그것이 일어날 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남긴 흔적을 보려면 서열만 읽으면 된다.

7 암수 두 종류는 필연이 아니다

접합형은 수컷·암컷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많은 생물에서는 두 배우자의 크기가 완전히 같고 겉모습도 같다. 그렇다고 아무 조합으로나 융합할 수는 없다. 서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범주가 있고, 그 범주가 서로 달라야만 융합할 수 있다. 이 범주를 접합형이라고 부른다.

이것으로 이미 성적 과정이 성립한다. 감수분열도, 배우자의 융합도, 재조합도 있다. 다만 배우자 크기로 정의되는 암수는 없다. 그러니 ‘두 접합형’을 ‘두 성별’로 옮겨서는 안 된다. 연못물에 사는 단세포 섬모충 테트라히메나에는 접합형이 일곱 가지다. 서로 다른 두 유형이 만나면 어느 조합이든 접합할 수 있다.

치마버섯은 이 점을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죽은 나무에서 부채 모양으로 자라고, 주름은 가운데가 갈라진 듯하다. 중국 윈난에서는 흔히 볶아 먹는다.

이 버섯의 양립 가능성은 두 영역이 함께 결정하며, 각 영역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 고전적인 추정치는 각각 약 288종과 81종의 특이성을 제시했다. 둘을 조합하면 가능한 접합형이 2만 3,328가지가 된다.

터무니없이 큰 숫자처럼 들리지만 논리는 소박하다. 두 영역마다 버전이 많고, 양립하려면 ‘양쪽이 모두 다르기’만 하면 된다. 두 개체는 대체로 두 영역 모두에서 달라야 성적 발달을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다.

따라서 이 수는 ‘고전적으로 추정된 잠재적 접합형 수’라고 불러야 한다. ‘성별 2만 3,328개’가 아니다. 이런 설계의 이점은 곧바로 드러난다. 다른 개체를 무작위로 만났을 때, 서로 배타적인 접합형 두 가지뿐인 체계보다 양립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렇다면 암수는 어디서 왔을까.

1972년 영국의 파커 등이 세운 고전 모형은 크기가 비슷한 배우자에서 출발했다. 한 개체가 번식에 쓸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적은 수의 큰 배우자’와 ‘많은 수의 작은 배우자’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한다. 큰 접합자는 더 잘 살아남을 수 있고, 작은 배우자는 수가 많아 서로 만날 기회를 늘릴 수 있다.

특정 조건에서는 중간 크기를 택하는 전략이 불안정해지고 양극단이 공존한다. 얼마나 멀리 갈라질 수 있는지는 사람만 보아도 안다. 사람의 난자는 지름이 약 0.1밀리미터로 맨눈에 겨우 보인다. 정자의 머리는 몇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다. 부피 차이는 만 배가 넘는다.

생물학에서는 큰 배우자를 만드는 유형을 암컷, 작은 배우자를 만드는 유형을 수컷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암수라는 두 갈래 분류는 배우자 크기가 갈라진 뒤에 생긴 분류의 결과다.

암수 비율이 대략 반반인 이유에도 깔끔한 설명이 있다. 1930년, 영국의 통계학자 피셔는 이렇게 지적했다. 어느 세대에 수컷이 적으면 수컷 한 마리가 평균적으로 남길 수 있는 자손이 많아진다. 아들을 더 낳는 부모가 이익을 보므로 아들이 늘어난다. 암컷이 적을 때는 반대 방향으로 같은 일이 일어난다. 비율은 이렇게 거듭 1 대 1 근처로 끌려온다.

감수분열, 재조합, 배우자 융합은 암수 구분이 전혀 없는 체계에도 존재할 수 있다. 암수가 있더라도 두 역할이 꼭 서로 다른 개체에 나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꽃식물은 한 꽃 안에 수술과 암술이 함께 있어 한 그루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된다. 흰동가리 무리에서는 가장 큰 물고기가 암컷이다. 그 암컷이 죽으면 가장 큰 수컷이 암컷으로 바뀐다.

볼복스는 연못에서 사는 작은 초록 공이다. 수천 개 세포가 속 빈 공을 이루어 물속에서 천천히 굴러다닌다. 볼복스를 비롯한 이 녹조류 무리는 이를 실증적으로 살필 수 있는 연구계다. 동형배우자 생식, 이형배우자 생식, 난자와 정자가 뚜렷이 나뉘는 난형생식을 하는 가까운 종들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2018년의 비교 연구는 이형배우자의 출현에 거대하고 완전히 새로운 성 결정 영역이 꼭 필요하지 않으며, 관련 영역은 오히려 작을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동형배우자를 가진 종에서 접합형을 결정하는 조절 인자가, 이형배우자를 가진 가까운 종에서는 수컷 결정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접합형 체계와 나중의 암수 체계 사이에 유전적 연속성이 있다는 직접적인 비교 증거다. 더 근본적인 사실도 하나 있다. 유성과 무성은 켜고 끄는 스위치가 아니다.

선택적으로 유성생식을 하는 방식은 널리 퍼져 있다. 흔한 양상은 자원이 넉넉할 때 빠르게 무성 증식하고, 영양이 제한되거나 밀도가 바뀌거나 계절 신호가 오면 유성 주기에 들어갈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방아쇠가 되는지는 분류군마다 매우 다르다. ‘환경이 나빠지면 성이 시작된다’를 보편적인 규칙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야생 효모의 유전자 분석은 한 가지를 일깨운다. 야외의 효모는 대략 천 세대에 한 번 감수분열을 한다. 유성 주기는 극히 드물게 일어날 수 있고, 그래도 장기적인 유전 구조를 크게 바꾸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자연에서 무성분열만 계속 보았다’는 말로 ‘이 계통에서는 성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를 이끌어 낼 수 없다.

8 화석에서는 감수분열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언제 세워졌을까. 먼저 유전자를 보자. 전용 부품들이 진핵생물의 서로 아주 먼 계통들에 흩어져 있다. 동물, 식물, 균류부터 각종 단세포 원생생물까지 두루 있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그들의 공통 조상에게 이미 상당히 온전한 감수분열 기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이 기계가 늦어도 그 공통 조상 때에는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화석이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종류의 ‘늦어도’다. 어떤 시기 이전에 성이 어느 구체적인 생물에게서 이미 일어났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말해 주는 것은 ‘적어도 이만큼 오래되었다’이다. 가장 이른 경계는 진핵생물 계통이 갈라져 나온 뒤라는 정도로만 어림잡을 수 있다. 누구도 ‘맨 처음이 언제였는지’는 말해 줄 수 없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화석은 5편에서 만난 방기오모르파다. 캐나다 북극의 한 섬에서 나왔으며 약 10억 4,700만 년 전의 것이다. 바위에 붙어 세포의 실들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으로, 오늘날 김을 만드는 종류의 홍조류와 아주 닮았다.

그 이름은 ‘방기아를 닮았다’는 뜻이다. 방기아는 중국 푸젠 연안에서 지금도 먹는 해조류다. 2000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버터필드가 이 화석을 기술하면서 같은 화석 무리 안에 두 가지 다른 포자 형성 방식과 두 형태의 생식 단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전체 배열이 현대 홍조류의 유성 생활사와 맞아떨어졌다.

홍조류의 생활사는 오늘날에도 알아보기 어렵다. 김에는 조개껍데기 속으로 파고들어 자라는 실 모양 단계가 있는데, 오랫동안 다른 조류로 여겨졌다. 1949년 영국의 조류학자 드루베이커가 이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인공 종묘 생산법을 익혔고, 김 양식은 그때부터 새 길을 열었다. 지금도 해마다 그녀를 기리는 일본 어촌이 있다.

이것은 ‘둥근 것 하나를 보고 알이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증거다. 생활사 전체의 대응에 기대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석에서는 염색체가 짝을 맞추는 모습도, 교환도, 두 배우자가 융합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유성생식 증거 가운데 하나이되, 감수분열 자체를 찍은 사진은 아니다.

중국의 한 화석은 반대 방향에서 이 문제를 잘 보여 준다. 2024년, 중국 연구자들이 화북 옌산 일대에서 나온 약 16억 년 전의 실 모양 다세포생물을 다시 기술했다.

일부 세포 안에는 지름이 십몇 마이크로미터에서 20마이크로미터에 이르는 둥근 소체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오늘날 조류의 무성포자에 견주며, 이 생물이 포자로 번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생식 구조라고 저절로 성적 구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포 안에 번식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16억 년 전의 성으로 셈하는 것은 원 논문이 뒷받침하지 않는다.

더 뒤로 오면 네 개씩 모인 포자가 나온다. 약 4억 7천만 년 전부터 초기 육상식물의 포자 화석에는 크기가 비슷한 넷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감수분열은 마침 하나를 넷으로 나눈다. 기제의 예측이 넷이고 화석에서 보이는 것도 넷이다. 아름다운 대응이다.

다만 ‘네 개 한 묶음’이 감수분열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른 분열 방식도 사련체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벽의 구조, 배열의 기하학, 포자낭과의 관계, 가까운 현생 식물의 발생 방식까지 모두 맞아야 감수분열이라는 해석이 단단히 선다.

약 4억 년 전으로 오면 스코틀랜드 라이니의 처트층이 있다. 1912년 그곳의 한 의사가 발견했다. 온천 옆 습지 한 조각을 그대로 돌 속에 봉해 둔 지층이다. 식물의 줄기와 포자낭뿐 아니라 생활사의 다른 세대까지 보존되었다. 그 세대는 아주 작고,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일을 맡는다. 이쯤 와서야 식물의 유성 생활사 한 벌을 화석만으로 온전히 맞춰 낼 수 있다.

오늘날의 양치식물에도 두 세대가 번갈아 오는 이 생활사가 남아 있다. 고사리 잎 뒷면에 줄지은 작은 갈색 점들은 포자를 담은 주머니다. 포자가 땅에 떨어지면 새 고사리가 곧바로 자라는 게 아니다. 손톱만 한 초록색 하트 모양의 얇은 조각이 나온다. 정자는 그 위의 얇은 물층을 헤엄쳐 건너야 난자를 찾는다. 수정한 뒤에야 우리가 아는 그 고사리가 자란다.

이제 이 글의 구축으로 돌아가자. 이 시리즈에서 구축이란 선 하나를 긋는 일이다. 선 안은 셈에 넣고, 선 밖은 넣지 않는다. 이 글에서 그어진 선은 절차다. 여기서 말하는 전형적인 성 주기에 들어설 때는 짝 맞추기, 자르기, 교환, 절반으로 줄이기, 융합이 조절된 순서에 따라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층위가 바뀐 것은 아니다. 선택의 단위는 변하지 않았고, 개체는 여전히 그 개체다.

이것이 한 일은 따로 있다. 본래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던 유전적 교환을 반드시 거치는 고정 절차로 바꾸었다. 전용 기계가 있고, 점검 지점이 있고, 단계별로 풀리는 결합이 있는 절차다. 우연을 제도로 만들었다.

이 전형적인 절차에는 충족해야 할 조건도, 오류가 날 가능성도 있다. 상동염색체의 짝 맞추기, 절단, 교차의 형성, 두 단계에 걸친 결합 해제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중요한 단계의 오류는 불임으로 이어지거나 염색체 수가 잘못된 배우자를 만들 수 있다.

1절에서 다룬 유산 가운데 일부는 감수분열 오류에 따른 염색체 이상과 관련이 있다. 모든 유산을 이 절차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제도화가 얻어 낸 것은 유연함이 아니라 반복 가능성이다. 이런 주기에 들어갈 때마다 같은 규격으로 카드를 섞지만, 나오는 패는 다르다. 그리고 반복 가능성 자체가 새로운 고장의 자리를 만든다. 이 염색체 짝 맞추기 단계를 건너뛰는 무성 개체는 그 짝 맞추기의 실패 때문에 불임이 되지 않지만, 유성 개체는 그럴 수 있다.

구축된 틀에 담기지 않으면서 없애 버릴 수도 없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 부른다. 이 글의 잔여항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두 배라는 격차 자체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메웠을 뿐이다. 무엇이 메우는지는 지금도 어느 분류군인지, 개체군이 얼마나 큰지, 기생 압력이 얼마나 센지에 따라 달라진다. 각 설명은 자기 매개변수 구간에서는 장부를 맞출 수 있다. 모든 구간에서 맞출 수 있는 설명은 없다.

다른 하나는 무성 계통이다. 사라진 적이 없다. 자주 나타나고, 대부분 젊으며, 소수는 백만 세대 넘게 이어졌다. 아주 드문 몇몇 후보는 지금도 설명이 분명하지 않다.

가장 유명했던 그 스캔들에서는 이제 양쪽이 가운데로 좁혀 들어온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윤충에게 교환이 있다고 본다. 그 방식이 성인지를 다투며, 일부 신호는 표본 오염에서 왔을 수 있다고 짚는 사람도 있다. 이견이 어떻게 교환하는지로 좁혀졌다는 것은, 이론의 위기가 이미 기술적인 문제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 제도가 언제 세워졌는가 하는 물음에는, 화석에서 감수분열이 보이지 않고 생식 구조만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이 분기점은 오늘 살아 있는 생물들이 공유하는 부품에서 거슬러 추론할 수밖에 없다. 2편의 그 공통 조상처럼, 위치는 분명하고 내용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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