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E 제2비판 · 06 · 대가를 어떻게 말할까
대가를 말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다
권력을 받아들일 때도 행사할 때도, 가치를 추구할 때도 포기할 때도, 멈출 때도 계속할 때도 대가가 있습니다. 각각 놓치기 쉬운 이유도 있습니다. 남의 대가를 읽고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하며 추가 결과를 주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구성을 읽거나 단계를 판정할 수는 없고, 내 해석을 그의 대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권력을 받아들일 때, 권력을 행사할 때
권력을 받아들일 때. 권력론은 거절하는 쪽의 대가를 썼습니다. ‘거절을 선택한 대가는 그 서사가 약속한 존엄의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 몫은 서사가 거둬들인 것이므로 결과입니다. 받아들이는 쪽의 대가는 이 책이 이미 있는 문장에서 찾지 못해, 직접 적습니다. 어떤 권력이 자기 행동 순서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면, 그 자리의 일부 일은 이제 그 권력이 배열합니다. 자기 법에 ‘이 일들은 내가 정한다’가 있다면, 이번에는 그 조항을 담지 못했습니다. 이 대가를 놓치기 쉬운 것은 흔히 이익과 함께 와서 거래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무를 논한 글은 이런 독해를 거부했습니다. ‘인정에 따른 권리는 권력을 인정하는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다.’ 두 장부를 서로 상계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행사할 때. 권력론은 상대를 가두려는 권력을 착삭(鑿削)이라 부릅니다. 착삭을 하는 사람은 끝까지 누를 수 없어 ‘이 잔열을 억누르려고 영구적으로 힘을 공급해야 한다. 이것은 착삭 구조의 역학적 대가지, A의 계산이 아니다.’ 대가는 두 층입니다. 하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자신의 여항이 유지하는 행동에 묶인 채 영으로 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정할 수 있던 자유도가 조금씩 점유되어 소진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느리게 오고 꼭 꼭대기에 떨어지지도 않아 놓치기 쉽습니다. ‘착삭 구조의 꼭대기는 편히 생을 마쳐도, 구조 전체의 장부는 한 번도 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권력을 행사한다고 모두 이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론은 상대를 가두지 않는 권력 행사는 역구속, 곧 힘을 쓰는 쪽도 거꾸로 묶이는 비용을 낳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또 함육에도 비용이 들며 ‘저비용이 영비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한 점을 더 못 박습니다. 대가가 크고 작다는 것은, 갖추지 못한 자격을 내세웠는지와 무관합니다. 권력론 자신도 역구속의 발생 기준은 무엇을 유지하느냐이지, 유지 비용이 얼마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값싼 억압도 억압입니다.
추구와 포기, 멈춤과 계속함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경계를 한 번 긋는 일입니다. 이 시간과 힘을 한쪽에 쓰고 다른 쪽에는 쓰지 않습니다. 가치론은 이어 가는 일이 의무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눈앞에 정당한 다리가 있어도, 감당하는 사람은 잇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다고 가치 지위에 아무런 손실도 없다’. 그러므로 추구의 대가는 지위에 남지 않고, 지금 걷지 않은 다른 길에 남습니다. 추구는 얻는 것만 있는 듯 보여 이 대가를 놓치기 쉽습니다.
가치를 포기할 때. 높은 곳의 원천에서 되돌아와도 ‘가치상의 손실은 없다’. 하나를 양보해도 양보한 항목의 가치 지위는 바뀌지 않습니다. 적용 조건이 이미 생겼는데도 어떤 원천을 스스로 무효화할 때만 ‘중립적인 되돌아옴에 속하지 않는다’. 그때도 달라지는 것은 ‘그 항목에 도달할 수 있느냐이지, 그 항목이 있느냐가 아니다’. 포기의 대가는 도달 가능성과 기회의 창, 행동에 남지, 지위에 남지 않습니다. 양끝에서 잘못 말하기 쉽습니다. 포기에는 대가가 전혀 없다고 하거나, 포기하면 자신을 잃는다고 합니다.
멈추는 것과 계속하는 것. 『제1비판』은 여기서 두 항목을 넘겼습니다. 멈춘 사람의 대가는 ‘자신이 목적임을 이 작동을 통해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그뿐이다.’ 또 ‘더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지 의무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제2비판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아감과 나아가지 않음 양쪽에 대가가 있으니 둘 다 말합니다. 해야 할지는 각자 자기 법 안에 있습니다. 나아가지 않은 사람이 가지 않은 구간이 자신에게 남는 것처럼, 나아간 사람에게도 가지 않은 길들이 남습니다. 멈추는 대가는 흔히 과장하고, 계속하는 대가는 흔히 없애 버립니다.
방비의 계단에서 치르는 대가
남을 물건처럼 관리하려는 사람은 계속 유지할 장치를 두어야 합니다. 울타리를 수리하고 통행증을 검사하며, 도망노예법을 집행하고, 주변 사람들도 받아 주지 않아야 합니다. 통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이 유지 장치가 그의 몫을 나눠 가져갈까요. 권력론은 ‘역구속은 옮기거나 분담하지 않는다’, ‘장치화된 분업은 T6를 희석하지 못하고 복제할 뿐이다’라고 썼습니다. T6는 권력론의 역구속 정리입니다. 이 두 문장대로 읽으면, 직접 통행증을 검사하거나 직접 받아 주기를 거절한 사람은 각자 자신의 가두는 행동을 한 것이며, 각자의 기록에 남습니다. 노예주의 몫도 조금도 줄지 않습니다. 요구를 받기만 한 주변 사람에게 완전한 역구속 한 몫을 대신 등록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지점이 감당하는지는 하나씩 구별해야 합니다.
유지에 쓰는 힘이 소진될 수 있다는 것은 권력론의 구조 측면에서 다룰 일입니다. 이 장에서 따지는 것은 영으로 누를 수 없는 그의 여항입니다. 여기서는 대가만 읽고, 증언은 다음 장에서 읽습니다. 일곱째와 여덟째 글입니다.
남의 대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 책은 수평적 당위를 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대가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것은 셋입니다. 첫째, 읽을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보이는 것은 행동과 통로입니다. 자기 주장을 재검토할 길을 닫았는지, 남이 고치거나 떠날 길이 열려 있는지를 봅니다. 이런 흔적이 변하는 방향을 읽는 것이지, 판결을 내리거나 그의 단계를 읽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할 수 있습니다. 협력하지 않거나, 떠나거나, 반대하는 것입니다. 행동론은 ‘떠남은 더는 연락하지 않는 것이지, 그럴 자격이 없다고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법』은 ‘반대는 네 자신의 여항이 펼쳐지는 것이며 너의 하지 않을 수 없음이지, 그에게 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셋째, 그가 내게 아니라고 했다고 해서 추가 결과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동론에는 평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신입이 아니라고 하면 정말 받아들이고, 나중에 그것 때문에 무언가를 덜 주지 않는다.’ 거절을 별도로 보복의 이유로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떠나거나 추가 협력을 그만두는 것까지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할 수 없는 것도 셋입니다. 구성을 읽을 수 없습니다. 밖에서는 그의 법이 그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지 못합니다. 단계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시점과 영역에 따라 작동만 기록하며, 15DD로 사람을 분류하지 않습니다. 나의 해석을 그의 대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가치론은 공동체가 ‘인정을 주거나 거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거두는 것은 ‘사회적 자리와 지원이지, 그가 감당하는 자기 가치의 내용이 아니다’. 거두는 것은 결과 칸에 속합니다. 그의 대가는 여전히 자기에게 남고, 자신이 말합니다.
네 칸의 주소와 다섯 가지 제약
이렇게 행동을 특정할 네 칸이 생깁니다. 누구의 법인가. 어떤 입장인가. 어느 일이며 언제인가. 어떤 갈래인가. 이것이 분명하면 실천에서의 월권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제1비판』은 경계를 넘는 일을 ‘판정 기준을 그 영역 밖으로 가져가 여전히 판정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실천에서도 같습니다. 법을 적용할 곳 밖으로 가져가 여전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섯 제약을 책 전체가 지킵니다. 대가는 처벌이 아닙니다. 역구속은 ‘역학적 비용이지 응보가 아니다’. 도덕률은 ‘나쁜 사람이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행동’을 15DD 밖에 둡니다. 대가는 자격을 만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치러도 그 때문에 어떤 내용이 자신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대가는 결과가 아닙니다. 대가를 훈장이나 격하로 쓰지 않습니다. 대가는 사람 사이에서 비교하지 않습니다. 두 법의 바깥에서 둘을 함께 잴 공통의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제약에도 범위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판단 안에서 위험과 때, 실행 가능성을 비교하는 것은 금하지 않습니다. 행동론은 경계 긋기가 ‘사람과 출처를 가로지르는 공동의 총체적 척도를 전제하지 않는다. 다만 한 일 안에서 위험과 때, 실행 가능성을 비교하는 것까지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금하는 것은 두 사람의 대가를 같은 저울에 올리는 일이지, 한 사람이 자신의 대가를 충분히 생각하는 일이 아닙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이 연작은 중국어 원저 『SAE 제2비판』을 바탕으로 쓴 독자용 산문입니다. 논증 전체를 확인할 권위 있는 기준은 원저입니다. 한국어판은 이미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며, 원저 전체를 옮긴 번역은 아닙니다. 기존 영어판도 영어권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썼고, 중국어 간체판과 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열두 편이 함께 읽는 원저는 한 권입니다. 중국어 원저 읽기 ↗ · 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