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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편 · 총 26편

제14편: 매킨리와 미국·스페인 전쟁 — 제국은 어떻게 헌법의 문제가 되었나

제국은 어떻게 헌법의 문제가 되었나

Han Qin (秦汉) · 2026
이 글의 목차

1. 하나의 잔여항, 두 개의 전선

지난 편의 끝에서, 이제 이 구축체가 애초 설계에 없었던 경제 권력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매킨리 시대 몇 년의 진짜 구조는 그 대응이 두 전선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두 전선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의 잔여항이 서로 다른 두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국내 전선이다. 산업화와 긴축 통화 정책 속에서 농민, 은광 지역, 채무자와 일부 노동자는 자신들을 체제 밖으로 밀려난 이해관계의 잔여항으로서 이 구축체의 제도 안에 들여놓으려 했다. 인민당과 1896년 대선은 바로 이 전선의 절정이었다. 두 번째는 대외 전선이다. 1898년의 전쟁과 뒤이은 처리 과정은 미국을 대륙의 공화국에서 해외 제국으로 밀어갔다. 여기서 새롭게 생긴 난제는 미국이 팽창했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평등과 피치자의 동의를 토대로 스스로를 세운 정치체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편입에 동의한 적도 없는 속령을 지배하는 일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글이 구조적으로 어디에 도달하려는지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이렇다. 1896년은 이 구축체가 내부의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흡수하거나 억눌렀는지를 보여주고, 1898년에서 1901년까지는 본래 대외적인 제국의 문제를 어떻게 자신의 헌법 문제로 끌어들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후대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추상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도 이미 뚜렷이 느끼고 있던 모순이었다. 반제국주의자들은 독립선언문의 보편주의적 언어를 직접 인용하며, 미국이 해외에 피치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지배를 세우는 데 반대했다.

이 두 전선을 시리즈 전체의 맥락에 놓으면 공통된 뿌리가 선명해진다. 이 시리즈가 줄곧 추적해온 가장 깊은 잔여항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서 나온다는 약속과 현실의 온갖 배제와 지배 사이의 간극이다. 국내에서는 경제 권력에 짓눌린 사람들이 자신들도 안에 들여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으로, 해외에서는 미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평등하게 편입되지 못한 속령 주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앞선 글들에서 노예제부터 중국인 배척까지 이어졌던 오래된 경계의 잔여항이 여기서 또 다른 얼굴을 얻는다. 해외 식민지라는 얼굴이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좇아온 잔여항은 대체로 인종, 계급이라는 축을 따라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매킨리 시대 몇 년이 특별한 까닭은 같은 잔여항이 거의 같은 순간, 안과 밖에서 전혀 다른 두 형태로 동시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경제 권력에 짓눌린 사람들이 이 구축체에 자신들을 더 충실히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해외에서는 이 구축체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포함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한쪽은 더 많은 편입을 요구하고 다른 쪽은 그런 편입을 거부한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둘이 겨누는 질문은 같다. 이 구축체는 자신이 내세우는 보편주의를 실제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실현할 것인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2. 인민주의와 1896년 대선

19세기 말의 인민주의는 우선 인민당과 농민동맹이 내놓은 구체적인 강령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무엇이든 반기득권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화법을 여기에 덧씌워서는 안 된다. 1892년 인민당의 오마하 강령은 동부 엘리트에 막연히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련의 명확한 제도적 요구를 내놓았다. 연방정부가 안전하고 건전하며 탄력적인 국가 통화를 발행할 것, 은 16 대 금 1의 비율로 금화와 은화를 자유롭게 무제한 주조할 것, 누진소득세를 도입할 것, 정부가 철도를 소유하고 운영할 것을 요구했다. 부속 결의에서는 연방 상원의원의 직접선거도 명시적으로 지지했다.

1896년 대선에서 이런 요구는 전국 정치의 정점에 올랐다.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은화 자유주조 노선으로 돌아섰고,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황금 십자가’ 연설로 대회장을 뒤흔들었다. 가장 유명한 대목은 이것이다. “인류를 황금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이 중요한 것은 수사가 강렬해서만이 아니다. 통화 문제를 도덕과 사회의 문제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는 이제 단순히 기술적인 금융 장치가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의 이마에 가시관을 눌러씌우는 질서로 묘사되었다.

그렇다고 1896년을 금본위제가 은화 자유주조를 이겼다는 말 한마디로 얄팍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 두 가지를 나란히 놓아야 더 정확하다. 하나는 브라이언이 농민, 채무자, 은광 지역의 요구를 전국 정치의 한가운데로 밀어 올렸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매킨리가 마크 해나의 지휘 아래 보호관세, 금본위제가 가져다줄 안정에 대한 기대, 질서와 일자리의 약속을 묶어, 북부 도시와 산업 노동자, 상업계와 금융계까지 더 폭넓게 아우르는 연합을 구축했다는 사실이다. 공화당은 약 400만 달러를 모아 막대한 양의 홍보물과 전국적인 조직망에 쏟아부었다. 매킨리는 선거인단 투표 271표와 일반 유권자 투표의 51.1퍼센트를 얻어 승리했다.

1896년 이후 인민당은 급격히 쇠퇴했다. 하지만 그 의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핵심 요구 하나는 나중에 분명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오마하 강령에 명시된 요구 가운데 하나였던 상원의원 직접선거가 1913년 수정헌법 제17조로 실현된 것이다. 더 넓게 보면 민주적 참여의 확대, 철도와 금융 권력에 대한 공적 통제의 강화처럼 인민당이 제기한 의제들은 이후 서로 다른 형태로 진보주의 시대에 들어갔다. 1896년을 오로지 돈으로 사들인 선거로 설명하는 것은 오래 유행했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오해다. 밀려난 잔여항은 1896년에 승리하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 요구는 아직 끝내지 못한 과제 목록이 되어 뒤이은 진보주의 시대에 남겨졌다.

3. 쿠바 위기에서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이어진 직접적인 위기는 쿠바에서 시작되었다. 1895년 쿠바에서 스페인에 맞선 봉기가 다시 일어나자, 스페인은 진압을 위해 베일레르를 파견했다. 그가 주민들을 대규모로 강제 집결시키는 정책을 펴면서 심각한 인도적 참사가 벌어졌다. 미국 언론, 특히 퓰리처와 허스트의 신문들은 스페인 통치의 잔혹함을 거듭 부각했다. 사실인 보도도 있었고 과장된 보도도 있었다. 선정적인 황색언론이 여론의 분위기를 빚어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현대 연구는 대체로 이를 전쟁의 단일 원인으로 서술하는 데 반대한다. 황색언론은 전쟁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이미 존재하던 미국과 스페인의 정책적 충돌을 무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매킨리가 처음부터 전쟁을 서둘렀던 것은 아니다. 1898년 1월 아바나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그는 메인호를 아바나항으로 보냈다. 미국 시민과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전쟁을 부추기는 소리를 가라앉히려는 의도였다. 1898년 2월 15일 메인호가 아바나항에서 폭발해 침몰했고, 장병 266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언론과 강경파 정치인들은 이 사건을 즉각 “메인호를 잊지 말라”는 동원 구호로 바꾸었다. 현대의 조사 결과를 보자면, 1976년 리코버가 이끈 기술 분석은 외부 폭발을 입증할 기술적 증거가 없으며 남아 있는 증거가 내부 폭발에 더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1998년의 새로운 모형은 외부 폭발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주장을 다시 내놓았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현대 연구는 전반적으로 당시의 ‘스페인에 의한 공격’이라는 서사를 지지하지 않는 쪽에 더 가깝지만, 절대적인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매킨리는 4월 11일 의회에 보낸 전쟁 교서에서 미국의 개입을 인도적 명분으로 정당화하며, 중대한 인도적 요구에 따른 무력 개입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1898년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수사 가운데 하나였다. 공개적인 담론 속에서 전쟁은 인도적 개입과 질서의 회복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결과는 영토 획득, 해외 주둔군, 식민 통치로 뻗어나갔다. 이 간극이 전쟁을 이해하는 열쇠다. 내세운 명분은 인도주의였고, 실제 결과는 제국이었다.

4. 짧은 전쟁과 해외 제국의 탄생

미국·스페인 전쟁 자체는 아주 짧았다. 존 헤이는 이를 “멋진 작은 전쟁”이라고 불렀다. 첫 번째 대규모 전투는 1898년 5월 1일 마닐라만에서 벌어졌다. 듀이의 아시아 함대가 스페인 해군을 격파했고, 이어 미군은 쿠바에 상륙해 스페인 주둔군을 고립시키고 무찔렀다.

미국의 제도적 위치를 정말로 바꾼 것은 전장의 영웅담이 아니라 전후 결산이었다. 1898년 파리조약에 따라 스페인은 쿠바에 대한 주권을 포기했다. 푸에르토리코와 서인도제도의 다른 스페인령 섬들, 괌은 미국에 할양되었고, 필리핀 제도 역시 미국에 넘어갔다. 미국은 스페인에 2,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같은 해 미국은 양원 공동결의로 하와이도 병합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하와이를 한 해의 지도 위에 함께 놓으면, 1898년이 고립된 전쟁 한 건에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태평양과 카리브해 양쪽으로 팽창한 제도적 전환점이었다.

해외로의 팽창은 이 구축체 내부의 권력 구도도 조용히 바꾸고 있었다. 도금시대의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약했고, 의회와 정당 조직이 우위를 점했다. 그런데 대외전쟁과 해외 제국이야말로 대통령 권력이 다시 자라나기에 더없이 좋은 토양이었다. 전쟁은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이 지휘해야 하고, 해외 영토는 행정부가 다스려야 한다. 열강과의 힘겨루기와 조약 협상도 자연스럽게 권력을 백악관 쪽으로 끌어모은다. 매킨리는 하와이 병합을 위한 양원 공동결의를 추진하고, 전쟁 교서로 의회에 개전을 요청했으며, 파리조약 협상으로 주요 속령의 처리 방향을 잡았다. 모두 행정부가 주도권을 잡기 쉬운 일이었지만, 병합과 개전에는 의회의 입법과 권한 부여가, 조약에는 상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제국의 탄생과 대통령 권력의 부활은 같은 과정의 양면이었다.

쿠바의 지위는 명목상의 독립과 실질적인 통제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기에 특히 적절하다. 1898년 텔러 수정조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 관한 결의에서, 쿠바를 안정시키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이 쿠바에 주권이나 관할권, 통제권을 행사할 의도가 없다고 명시했다. 안정이 이루어진 뒤에는 쿠바의 정부와 통제권을 쿠바인들에게 맡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러나 1901년 플랫 수정조항은 쿠바의 독립을 유지하고 생명, 재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쿠바의 내정에 간섭할 권리를 쿠바가 인정하도록 요구했다. 미국이 해군기지와 석탄 보급기지를 확보하는 것도 허용하게 했다. 이 일련의 문서가 중요한 까닭은 미국이 대외적으로 내세운 보편주의와 실제 통제 사이의 거리를, 이어지는 입법과 조약의 형태로 또렷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텔러 수정조항은 그 보편주의의 약속이고, 플랫 수정조항은 현실의 통제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바로 잔여항이 해외에서 취한 모습이다.

5. 필리핀 전쟁

필리핀은 이 글에서 가장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될 대목이다. 1898년 필리핀 혁명가들은 미국을 새로운 종주국으로 보지 않았다. 스페인의 지배를 끝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력으로 보았다. 1899년 2월 4일 미국과 필리핀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때, 아기날도가 이끄는 민족주의자들이 원한 것은 독립이었다. 식민 지배자를 다른 나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은 대체로 두 단계로 나뉜다. 1899년 2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첫 단계에서 필리핀군은 정규전을 시도했지만, 장비와 보급, 제해권 모두 열세였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게릴라전으로 전환해 1901년 아기날도가 포로로 잡힐 때까지 싸웠고, 그 뒤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1902년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당시 미국의 공식 서술은 이를 흔히 ‘반란’이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명칭 자체에 이미 결론을 품고 있었다. 필리핀은 대등한 교전 상대가 아니라 미국의 관할 아래에서 들고일어난 반란자라는 전제였다.

잔학행위와 진압 방식에 관해서는 이제 과거처럼 불편한 사실을 씻어낸 서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공식 설명도 미군이 때로 마을을 불태우고 민간인 강제 집결 정책을 시행했으며, 게릴라로 의심되는 이들에게 고문을 가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한다. 그 가운데 물을 억지로 먹이는 이른바 ‘물고문’은 당시에도 전쟁법 위반이라는 데 거의 이견이 없었던 고문으로 규정된다. 마을과 도시의 방화, 강제 집결 수용소, 무고한 인질을 향한 보복 역시 이 전쟁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 나란히 놓여 있다.

희생자 수는 추정치라는 점을 밝혀야 하며, 추정마다 편차도 크다. 흔히 제시되는 수치로는 미군 사망자가 4,200명을 넘고, 필리핀 전투원 사망자는 2만 명을 넘는다. 필리핀 민간인은 폭력과 기근, 질병으로 최대 2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존 M. 게이츠는 1981년, 1902년 콜레라 유행에 따른 사망자까지 포함하여 1898년부터 1903년까지 전쟁과 관련된 전체 사망자가 최대 약 32만 1,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필리핀 전쟁을 이 글의 틀에 다시 놓으면 의미는 분명해진다. 해외의 경계 잔여항, 곧 미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식민 지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저항에 나섰을 때, 이 구축체의 대응은 과거 남부 흑인들의 저항에 대한 대응과 구조적으로 통했다.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이다. 피치자의 동의를 토대로 세워진 정치체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 사람들을 무력으로 지배한다. 그 모순은 적나라하고 날카롭다.

6. 반제국주의의 반격

그러나 필리핀 문제를 두고 미국 내부의 의견이 한 덩어리였던 것은 아니다. 곧 반제국주의 연맹이 결성되었고, 앤드루 카네기, 마크 트웨인, 윌리엄 제임스, 새뮤얼 곰퍼스 등이 참여했다. 연맹은 1899년 강령에서 쟁점을 아주 분명하게 밝혔다. 제국주의는 자유를 적대하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원칙이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를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가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이 독립선언문과 워싱턴의 고별사를 “토해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중요한 것은 반제국주의자들이 외래 이데올로기에 호소한 것이 아니라, 미국 자신의 건국 보편주의를 가져와 거꾸로 미국의 제국적 행위를 심판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서 이 시리즈 깊숙이 흐르던 한 가닥과 연결된다. 앞선 글들에서 말했듯이, 독립선언문에 적힌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서 나온다는 약속은 쓰인 그날부터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일단 글로 적히고 나자 영구적인 기준이 되었다. 누구든 집어 들어 이 구축체의 행동을 재볼 수 있는 자가 된 것이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그 자로 노예제를 재보았고, 할런 대법관은 인종분리를 재보았다. 이제는 반제국주의자들이 그 자를 해외 제국에 대고 있었다.

여기에는 이 시리즈의 숨은 핵심이 있다고 해도 좋다. 잔여항은 왜 끝내 닫힌 체계 안에 가두어질 수 없는가. 이 구축체는 스스로를 세운 문헌에 자신이 한 번도 완전히 지키지 못했고, 완전히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적어놓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중국인을 배척하며 속령을 지배했다. 정부의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말하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 사람들을 무력으로 다스렸다. 약속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없애는 방법은 원래 두 가지일 수 있다. 약속을 정말로 지키거나, 아예 약속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축체는 어느 쪽도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을 실제로 온전히 실현할 능력이 없으면서, 건국 문헌에서 그 말을 공공연히 지워버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은 줄곧 거기에 걸려 있고, 결코 녹슬지 않는 자가 되었다. 이것이 잔여항을 끝내 닫아버릴 수 없는 가장 깊은 이유다. 그 이유가 이 구축체의 출생증명서에 적혀 있다.

7. 헌법은 국기를 따라가는가: 도서 판례

1898년 이후 새로운 질문이 빠르게 떠올랐다. 헌법은 국기를 따라가는가. 새로 얻은 속령, 특히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의 주민들도 자동으로 온전한 헌법적 보호와 동등한 정치적 자격을 누리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는 추상적인 법리 놀음이 아니었다. 제국이 미국의 헌정 질서 안에 수용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핵심 문제였다.

1901년의 도서 판례는 여러 사건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그중 다운스 대 비드웰 사건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판결은 하나의 단순한 대원칙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재판관들의 견해가 심하게 갈린 판결이었다. 브라운 대법관의 의견은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부속되고 미국에 속하지만 조세 조항의 의미에서는 미국의 일부가 아닌 영토라고 적었다. 같은 의견은 ‘이질적인 인종’을 거론하며 앵글로색슨의 원칙에 따라 이들을 통치하는 것이 한동안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시대의 인종관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언어였다. 한편 화이트 대법관이 제시한 영토 편입 이론은 영토를 편입 영토와 미편입 영토로 나누었고, 후자에는 헌법의 모든 조항이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구축체가 마주한 것은 진정으로 흡수할 수 없는 잔여항, 해외 속령의 주민들이었다. 그들을 완전히 안에 들여 동등한 시민의 자격을 주면 제국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그들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 영토들에서 물러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구축체는 모순을 해소하는 대신, 그 모순을 미결 상태로 붙들어놓을 법적 장치를 발명했다. 영토 편입 이론 덕분에 미국은 이 영토들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시장과 군항을 통제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평등한 편입을 미루거나 아예 거부할 수 있었다. 잔여항은 ‘미국에 속하지만 미국의 일부는 아닌’ 중간 상태에 놓였다. 받아들여지지도, 놓아주어지지도 않았다.

이 세 번째 대응 방식, 곧 유보는 사실 이 구축체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잔여항을 핵심부로 밀어 넣거나 주변부로 되밀어내는 것에 더해, 이제는 장치를 발명해 잔여항을 무기한 미결 상태에 두는 법까지 익힌 것이다. 그러나 유보 역시 닫힘은 아니다. 모순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잠시 법률의 언어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미국에 속하지만 미국의 일부는 아니다’라는 자기모순적인 표현은 이 회피의 완벽한 표본이다. 문법은 매끄럽지만 논리는 뒤틀린 한 문장으로, 근본적으로 답이 없는 문제를 이미 답을 얻은 문제처럼 위장한다.

8. 맺음말

매킨리 시대 몇 년을 이 시리즈의 맥락에 되돌려놓을 때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은 글 전체를 꿰뚫는 판단이다. 그 몇 년 동안 하나의 잔여항이 두 개의 전선에 동시에 나타났다.

국내 전선에서는 산업자본주의와 긴축 통화 정책에 밀려난 잔여항이 인민당과 1896년 대선을 통해 정치적 표현의 정점에 이르렀다. 이 구축체의 대응은 이중적이었다. 선거에서는 은화 자유주조를 꺾었지만, 이후 진보주의 시대에는 그 요구의 상당 부분을 차츰 흡수했다. 밀려난 잔여항은 승리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아직 끝내지 못한 과제 목록으로 미래에 남겨졌다. 대외 전선에서는 1898년의 전쟁이 본래 대외적인 제국의 문제를 이 구축체 자신의 헌법 문제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답으로 내놓은 도서 판례는 모순을 해소하는 대신, 그것을 유보할 장치를 발명했다.

필리핀 전쟁은 해외의 잔여항이 저항에 나설 때 이 구축체가 국내의 잔여항을 대하듯 무력으로 진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반제국주의 연맹은 건국의 보편주의가 영구적인 자로 남아, 사람들이 거듭 그것을 집어 들고 이 구축체 자신의 이탈을 재고 심판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다시 숙명론에 대한 거부로 돌아온다. 1898년에서 1901년은 미국이 갑자기 자기 자신을 배신한 한순간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보편주의와 배타성이 줄곧 어떻게 동시에 작동해왔는지가 한꺼번에 선명히 드러난 시기였다. 이 구축체는 세워지던 순간부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보편주의를 써넣는 한편, 현실에서는 흑인과 원주민, 중국인, 그리고 이제 해외 속령의 주민들까지 끊임없이 배제했다. 1898년의 제국은 전혀 새로운 배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늘 존재하던 이상과 실천 사이의 긴장을 해외 식민 지배라는 형태로, 유난히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그리고 건국의 약속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세대마다 사람들이 그것을 집어 들어, 이 구축체가 자신의 이상에서 아직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재보기를 기다리면서.

중국어 원고의 논증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독립 재구성한 글입니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