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20

신생대의 방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공룡 이후의 세계는 옛자리를 채웠을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었을까?

Han Qin · 읽는 데 약 34분 · 공개일

1 경계가 그어진 그날, 그리고 누가 살아남았는가

6,600만 년 전, 지름 10킬로미터 안팎의 소행성 하나가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부딪혔다.

어떻게 아는가. 세계 100곳 넘는 지점의 얇은 점토층에서 이리듐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지각에는 드물고 운석에는 훨씬 많은 원소다. 1980년 연구자들은 이 이상을 근거로 충돌을 제안했다. 유카탄의 특이한 구조는 석유 탐사에서 이미 포착됐고, 1991년 경계 사건과 연결되는 거대한 충돌구로 확인됐다.

그 점토층 아래에는 공룡이 있다. 그 위에는 없다. 새만 빼고.

‘새만 빼고’라는 말에서 잠깐 멈추자. 새는 공룡의 먼 친척이 아니다. 새가 곧 공룡이다. 수각류 공룡 안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이며, 오늘날 하늘을 나는 1만 종 넘는 새는 그 가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후손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공룡이 모두 멸종한 것은 아니다.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이 멸종했다. 이 글에서 ‘공룡이 사라졌다’고 할 때는 늘 이 뜻이다.

그래서 이 선은 지질 연대표에서 가장 유명한 경계가 되었다. 선 앞쪽의 시대를 백악기라고 부른다. 6,600만 년 전까지다.

선 뒤에 처음 오는 시대는 팔레오세다. 6,600만 년 전부터 약 5,600만 년 전까지 이어진다. 이 글에서 앞으로 말할 ‘경계’는 바로 이 선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 봤다. 공룡이 사라지고 포유류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그날 대체 누가 땅 위를 걷고 있었는지부터 보자.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답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습과는 다르다.

공룡 발밑의 포유류는 다들 비슷하게 생긴 자그마한 벌레 먹보 무리가 아니었다. 중생대에 이미 굴을 파는 것, 나무를 타는 것, 활공하는 것, 물과 뭍을 오가는 것, 식물만 먹는 것, 고기를 먹는 것이 있었다. 서로 다른 여러 큰 계통에 속했으며, 그들 사이의 차이는 오늘날 땃쥐와 다람쥐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컸다.

그중 한 갈래가 다구치류다. 어금니에 뾰족한 돌기가 여러 줄로 나란히 박혀 있어 작은 줄칼을 늘어놓은 듯했다. 씨앗과 단단한 식물 조직을 갈아 부수기에 알맞았다. 이 계통은 중생대에 크게 번성했고 경계 이후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가까스로 경계를 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넘은 뒤에도 수천만 년을 더 번성하다가 한참 후에야 퇴장했다.

활공하던 것들도 따로 짚고 가자. 중생대에 이미 네 다리 사이로 피부막을 펼쳐 나무에서 나무로 미끄러져 날아가는 포유류가 있었다.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일이다.

물속에도 있었다. 헤엄치기에 알맞은 다리와 물고기를 붙잡기에 알맞은 이빨을 갖추고 반수생 생활을 한 중생대 포유류가 알려져 있다. 또 어떤 것들은 앞다리를 흙 파기 좋은 삽으로 바꾸고 오랫동안 땅속에서 지냈다. 굴 파기, 나무 타기, 활공, 물에 들어가기, 채식, 육식. 이 목록은 공룡이 아직 있던 시절에 이미 갖춰져 있었다.

백악기 후기 포유류의 아래턱을 하나하나 재어 그림으로 만든 연구가 있다. 가로축과 세로축에 각각 무는 힘과 이빨로 처리할 수 있는 먹이의 종류를 놓고, 종마다 점 하나를 찍었다.

‘공룡 시대의 포유류는 모두 자그마한 벌레 먹보였다’는 말이 맞으려면 점들은 구석의 좁은 공간에 몰려 있어야 한다. 실제 그림에서는 제법 넓게 퍼져 있다.

다시 말해 공룡이 아직 있을 때 포유류 계통은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를 이미 여러 번 시험해 본 상태였다.

그러니 한 가지는 먼저 단단히 세워 두자. 앞으로 나오는 모든 절에 필요하다. 경계가 그어진 그날, 출발선은 백지가 아니었다.

이제 주인공을 소개할 차례다. 이 글은 태반류 포유동물을 주된 줄기로 삼는다. 먼저 이 말부터 구체적으로 알아 두자. 앞으로 나올 논쟁은 전부 이 계통이 언제 펼쳐졌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반류에는 개, 고양이, 소, 말, 코끼리, 고래, 박쥐, 쥐, 사람처럼 익숙한 포유류 대부분이 들어간다. 현생 포유류에는 그 밖에 두 큰 가지가 있다. 하나는 캥거루와 코알라가 속한 유대류다. 새끼는 매우 미성숙하게 태어나 긴 수유 기간 동안 자란다. 많은 종에 육아낭이 있지만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 같은 종류다. 이들은 알을 낳는다.

“태반류”라는 이름은 오해를 부른다. 유대류에도 기능하는 태반이 있다. 핵심 차이는 태반의 유무보다 발달을 임신과 수유에 어떻게 나누느냐에 있다. 태반류는 대체로 자궁 안에서 더 오래 자라지만 태어날 때의 성숙도는 다양하다. 망아지는 몇 시간 만에 서고 갓 태어난 캥거루는 땅콩만 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생쥐 역시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다. 망아지가 모든 태반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세계의 포유류는 대략 6,000여 종이다. 대부분이 태반류이고, 유대류는 약 300여 종, 알을 낳는 계통은 다섯 종만 남아 있다.

이 줄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문제를 따질 때 가장 두터운 자료를 가진 계통이기 때문이다. 분자 쪽에는 유전체로 계산한 시간 계통수가 있고, 화석 쪽에는 방대한 화석 산출 기록 전체를 모형에 넣은 연구가 있다. 형태 쪽에는 골격의 특징을 거대한 표로 만들어 계통수를 계산한 분석이 있다. 이 세 갈래는 같은 시간 지점들을 두고 곧바로 대조할 수 있는 답을 내놓는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무엇을 하려는지 말해 두자.

‘뒤를 잇는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세 가지가 슬쩍 들어가 있다. 일련의 자리가 있었다. 공룡이 사라진 뒤 그 자리가 비었다. 후발 주자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뒤로 갈수록 더 강한 주장이다. 첫째는 세계가 칸칸이 나뉘어 있다는 말이다. 둘째는 어느 순간 그 칸들이 비어 있었다는 말이다. 셋째는 나중에 온 이들이 들어간 칸이 바로 그 칸들이었다는 말이다.

셋 다 자명하지 않다. 여덟째 절에서 결론을 내겠지만, 그 모양은 ‘맞다’나 ‘틀리다’보다 조금 더 흥미로울 것이다. 앞의 둘 중 하나는 성립하고 하나는 성립하지 않는다. 셋째는 질문하는 방식부터 문제가 있다.

이제 일곱 절에 걸쳐 시간을 따라 앞으로 가 보자.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는 성립하지만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는 얼마쯤 깎아 들어야 한다.

2 처음 100만 년

경계 이후 처음 100만 년은 이 글에서 가장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록이 놀라울 만큼 촘촘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촘촘한지부터 보자. 북아메리카의 몇몇 장소에서는 식별 가능한 팔레오세 포유류 동물군의 시기를 경계 직후 약 8만 년 안으로 좁힐 수 있다.

지질학에서 8만 년은 짧은 시간이다. 신생대 전체는 6,600만 년이니, 그중 8만 년이 차지하는 몫은 두 시간짜리 영화의 약 8초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8초 동안 등장인물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같은 지역을 더 일찍 조사한 고해상도 연구에서도 팔레오세 맨 처음부터 군집이 빠르게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계 이후 한동안 고요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움직임이 생긴 것이 아니다. 출연진은 곧바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정도 해상도를 얻으려면 몇 가지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그 시기에 그곳에서 퇴적이 꾸준히 이어졌고, 중간에 퇴적물이 씻겨 나가지 않았어야 한다. 암석층 사이에는 연대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화산재나 다른 연대 지표가 끼어 있어야 한다.

게다가 화석이 충분히 많아야 한다. 층마다 한 무더기씩 건져 올려 셀 수 있을 정도로. 셋 중 하나만 빠져도 해상도는 떨어진다. 모두 갖춘 곳은 드물다. 그래서 한 곳 한 곳이 귀하다.

콜로라도에는 특히 좋은 장소가 한 군데 있다. 암석층이 끊긴 자리 없이 겹겹이 이어져 있어 아래부터 위까지 한 층씩 세어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연속해서 읽을 수 있는 암벽을 지층 단면이라 한다. 그 벽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읽을 수 있다.

경계 이후 약 10만 년, 포유류의 종수가 이미 뚜렷하게 다시 늘어난다. 약 30만 년, 몸무게 25킬로그램 안팎의 개체가 나타난다. 중형견 한 마리쯤 된다.

약 70만 년, 가장 큰 것은 50킬로그램 안팎까지 자란다. 세 숫자를 이으면 위로 올라가는 곡선이 되고, 그 상승세도 꽤 가파르다. 그렇다면 그때 땅을 걷던 것은 어떤 동물이었을까. 팔레오세의 포유류는 오늘날 어느 동물과도 닮지 않았다.

이들의 발목뼈와 팔다리뼈를 하나하나 잰 연구가 있다. 발목뼈는 유용하다. 동물이 빠르게 달렸는지, 나무를 탔는지, 땅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팔다리뼈의 굵기는 얼마만큼의 무게를 받치고 얼마나 격하게 움직였는지 보여 준다.

결과는 이랬다. 골격의 튼튼한 정도와 발목 구조를 보면 이 팔레오세 동물들은 백악기 후기의 조상과도, 오늘날의 어떤 부류와도 달랐다. 이들만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신생대 초기 북아메리카 포유류의 기능적 조합을 비교한 다른 연구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팔레오세에는 독특한 조합들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드물어지다가 끝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곳은 ‘현대 동물의 축소판’이 사는 세계가 아니었다.

경계 이후 50만 년이 지난 북아메리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작은 사슴, 작은 늑대, 작은 다람쥐 무리를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몸이 다부지고 아마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을 동물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짝을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걸었을 테고, 그중 많은 가지는 뒤이은 수천만 년 동안 사라져 현생 후손을 남기지 않았지만, 이어진 계통도 있었다.

흔히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이 동물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오직 ‘마지막에 누가 이겼는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패자도 승자도 아니었다. 그 시기를 실제로 살아간 주민이었다.

이참에 한 가지 기억해 두자. 팔레오세는 약 1,000만 년간 이어졌다. 1,000만 년은 긴 시간이다. 호모속의 첫 구성원이 등장한 때부터 지금까지보다도 서너 배 길다.

두 시대 사이의 짧은 과도기가 아니었다. 자체의 식생과 먹이그물과 동물을 가진, 그 자체로 온전한 세계였다. 그런데 그 세계 전체가 ‘공룡 멸종 뒤 포유류가 부상했다’라는 한 문장에 눌려 들어가 있다. 이참에 앞의 상승 곡선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짚어 보자. 몸집이라는 숫자 뒤에는 체계 하나가 통째로 있기 때문이다.

50킬로그램짜리 동물이 살려면 충분한 먹이를 오랫동안 꾸준히 공급받아야 한다. 그 먹이에도 안정적인 공급원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경계 이후 70만 년이면, 그 땅에는 50킬로그램을 떠받칠 수 있는 먹이사슬이 다시 세워져 있었다.

거꾸로 짚어 보자. 10만 년 무렵 종수가 다시 늘었다는 것은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종류가 늘었다는 뜻이다. 30만 년 무렵 25킬로그램짜리가 나타났다는 것은 먹이 공급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는 뜻이다. 곡선이 재는 것은 가장 큰 동물 한 마리지만, 실제로는 그 동물이 체계 전체를 대신해 숫자를 알려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절의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익숙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문장이 나온다. 경계 이전은 백지가 아니었고, 경계 이후도 오늘날 동물들을 한 치수씩 줄여 놓은 세계가 아니었다. 그 사이의 시기에는 그 시기만의 주민이 있었다. 그 많은 가지에는 현생 후손이 없지만, 모든 계통이 끊긴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계 하나만 덧붙이자. 딱 하나다. 8만 년, 10만 년 단위의 해상도는 특별히 좋은 몇몇 장소가 주는 것이지, 육상 기록 전반의 보편적인 수준이 아니다. 다른 대륙으로 가면 같은 시기가 흐릿한 덩어리로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앞의 곡선은 암벽 한 면에서 읽은 곡선이다.

3 부채는 언제 펼쳐졌는가

팔레오세의 첫 100만 년을 보고 나면 저절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훗날 현대 포유류의 각 부류로 이어지는 계통들은 대체 언제 갈라졌을까. 경계 이후에야 시작된 것일까, 공룡이 아직 있을 때 이미 갈라져 있었을까. 이것이 논쟁 전체의 핵심이다. 답하기 전에 두 가지부터 손에 쥐자.

첫째는 ‘목’이다. 생물 분류의 한 단계로, 강보다는 작고 과보다는 크다. 예를 셋만 들면 분명해진다. 식육목에는 고양이, 개, 곰, 물범이 있다. 익수목은 박쥐 전체다. 장비목은 코끼리다. 같은 목에 속하는 동물의 공통 조상은 대개 수천만 년 전에 살았다.

둘째는 그림 하나다. 부채를 천천히 펼친다고 상상해 보자. 부채의 손잡이는 현대 태반류 전체의 마지막 공통 조상이다. 손잡이에서 십여 개의 부챗살이 갈라져 나와 저마다 오늘날의 목 하나로 이어진다. 각각의 부챗살도 나중에는 계속 가지를 친다.

여기에는 전혀 다른 세 시점이 있는데, 일상적인 말은 그것들을 한 단어 아래 덮어 놓는다. 손잡이가 언제 나타났는가는 한 가지 문제다. 십여 개의 부챗살이 서로 언제 갈라졌는가는 두 번째 문제다.

각 부챗살 안에서 언제 가지가 갈라졌는가는 세 번째 질문이다. 세 시점은 수천만 년씩 떨어질 수 있다. “현대 태반류의 큰 가지는 공룡 시대에 형성됐다”는 말은 이를 한데 섞는다. 공통 조상인가, 목 사이의 분기인가, 목 내부의 다양화인가. 답은 같지 않을 수 있다. 포유류 자체의 기원은 백악기 말보다 훨씬 오래됐다. 공룡이 멸종한 뒤 포유류가 처음 생겼느냐는 논쟁이 아니다.

2023년의 두 큰 연구는 각각 질문의 일부에 답했다. 먼저 유전체 연구를 보자. 2023년 연구는 태반류 241종을 다뤘다. 65분류군의 유전자좌 계통수 연대 추정에는 연성 경계 화석 보정 37개를 썼고, 241종의 연결 분석에는 23개를 더했다. 아래의 37개 기준점은 원리를 설명하는 수이지 전체 분석의 보정 총수가 아니다.

여기서 ‘고정점’이 무엇인지 한마디 설명하자. 유전자 서열 자체로 알 수 있는 것은 두 종 사이에 차이가 얼마나 쌓였느냐뿐이다. 몇 년에 걸쳐 쌓였는지는 알 수 없다.

차이를 연도로 바꾸려면 계통수의 몇 군데에 화석을 가져다 놓고 ‘이 계통은 적어도 어느 해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해야 한다. 37개 고정점은 그렇게 박아 놓은 37개의 말뚝이다. 그 연구가 내놓은 숫자는 이렇다. 손잡이가 등장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때는 약 1억 200만 년 전, 공룡이 살던 백악기 한가운데다.

가장 깊은 가지 가운데 몇몇은 9,400만~9,600만 년 전에 갈라졌다. 반면 부챗살 대부분에서 그 안쪽의 초기 가지가 갈라진 시점은 6,530만~5,360만 년 전, 즉 경계 이후에 놓였다.

한 연구가 ‘백악기의 기원’과 ‘팔레오세의 전개’를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자기모순이 아니다. 세 시점이 저마다의 연대를 가진다는 뜻이다.

둘째 연구는 분자를 전혀 쓰지 않고 화석만 썼다. 포유류 539개 과의 화석 산출 기록 22,381건을 통째로 모형에 넣어, 각 과가 기원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시기를 거꾸로 추정했다.

결과는 이랬다. 태반류는 백악기 후기에 이미 존재했다. 적어도 일곱 과는 설정을 바꿔 다시 계산해도 기원 시기의 전체 구간이 여전히 백악기 안에 놓였다. 반면 현대의 목 대부분은 기원 시기의 구간이 경계에 걸치거나 경계 이후에 놓였다.

하나는 유전자에서, 하나는 돌에서 출발한 두 연구가 같은 모양을 가리킨다. 손잡이는 아주 오래되었고, 부챗살이 펼쳐진 것은 훨씬 나중이다. 그러면 무엇을 두고 아직 다투는가. 가운데 부분이다. 부챗살이 서로 갈라진 때가 경계의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문헌에서는 여기에 몇 가지 이름을 붙였다. 누가 지지하는지보다 ‘어느 시점이 경계를 넘느냐’로 기억하는 편이 낫다. 폭발 모형은 세 시점 모두가 경계 무렵이나 그 이후에 있다고 본다.

긴 도화선 모형은 손잡이의 등장과 상당수 부챗살의 분리가 모두 백악기에 있었고, 부챗살 안쪽의 전개는 경계 이후라고 본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짧은 도화선 모형이다. 부챗살 내부의 분기도 상당수를 백악기에 놓는다. 중간적인 연성 폭발 모형도 있다. 소수 부챗살은 경계 이전까지 뻗도록 허용하되, 압도적 다수는 경계 무렵에 모아 놓는다.

현재 가장 힘이 약한 것은 짧은 도화선 모형이다. 현대의 목에 속하는 백악기 화석 가운데 널리 인정받는 것이 여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쟁점은 주로 긴 도화선과 연성 폭발 사이에 있다. 화석만 쓴 그 연구도 직접 밝혀 두었다. 추정 구간의 오래된 쪽 끝은 긴 도화선을, 최근 쪽 끝은 연성 폭발을 지지하며, 같은 화석 자료로는 둘을 가를 수 없다고. 이 논쟁 전체의 모양을 유난히 잘 보여 주는 구체적인 다툼이 하나 있다.

2011년, 몬태나에서 경계보다 30만 년 오래된 지층의 포유류 이빨이 보고되었다. 그 이빨이 백악기의 것이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투는 지점은 거기가 아니었다.

그 동물군이 부채 손잡이의 안쪽에 있느냐, 바깥쪽에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같은 이빨을 안쪽에 놓으면 손잡이가 백악기에 이미 나타났다는 증거가 된다. 바깥쪽에 놓으면 손잡이 아래에서 오래전에 끊어진 곁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암석의 연대는 글자 하나 바뀌지 않았는데, 결론은 차원이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거듭 필요할 원칙 하나를 기억하자. 남아메리카의 티우팜파는 오랫동안 가장 이른 팔레오세 포유류 동물군으로 꼽혔다. 그러나 암석에 기록된 지자기 방향과 퇴적층의 앞뒤 순서를 이용한 다른 연대 보정은 그 시기를 약 5,900만 년 전으로 잡았다. 팔레오세 중에서도 훨씬 뒤다.

이 두 숫자를 평균 내서 6,200만 년으로 만들면 안 된다. 하나의 양을 두 번 측정한 것이 아니라, 연대를 해석하는 방식이 두 가지인 것이다. 방법에서 생긴 차이에 중간값을 취하는 것은 절충이 아니다. 아무도 주장한 적 없는 세 번째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4 커진다, 얼마나 커질까

계속 나아가기 전에 새 세계의 명단을 한번 훑자. 공룡이 비워 놓은 몇 종류의 역할을 나중에는 누가 맡았을까.

대형 육상 초식동물. 백악기에 사라진 것은 주로 수 톤에서 수십 톤에 이르는 무리였다. 팔레오세에는 몸집을 키워 가는 포유류가 여러 부류 등장했다. 바로 다음 시대인 에오세, 약 5,600만~3,400만 년 전에는 더 큰 초식동물이 나타났다. 이후에는 대륙마다 서로 다른 계통이 그 역할을 맡았다.

대형 육상 포식자. 포유류의 육식 계통, 남아메리카의 날지 못하는 대형 포식성 조류, 악어형류, 거대한 뱀. 대륙에 따라 조합이 완전히 달랐다. 다음 절에서 따로 살펴보자.

바다의 대형 포식자. 상어는 경계 앞뒤로 줄곧 있었다. 떠난 적이 없다. 팔레오기에는 대형 경골어류가 다시 다양해졌다. 고래류가 기록에 들어오는 것은 약 5,350만 년 전이 되어서다.

가장 큰 비행동물. 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다. 팔레오기 이후에는 대형 바닷새도 나타났다.

명단에서 가장 쉽게 건너뛰는 한 줄이 더 있다. 사실은 이 줄이 가장 중요하다. 중소형의 나무 위 생활, 땅 위 생활, 굴 파기, 잡식 역할이다. 경계 이전부터 포유류가 맡던 자리들이며, 경계 이후에도 살아남은 포유류와 조류와 파충류가 계속 맡았다. 이 줄에는 ‘얼마나 오래 비어 있었는가’를 아예 적을 수 없다. 빈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명단을 다 보았으니 몸집으로 돌아가자. 경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몸집이고, 이쪽에는 직접 잴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각 대륙의 신생대 전체 육상 포유류 최대 몸집을 한데 모은 연구가 있다. 추적하는 것은 매 시기 가장 컸던 한 마리다. 평균이 아니다.

여기서 쓰는 2010년 집계와 당시의 체중 추정에 따르면, 경계 무렵 가장 큰 육상 포유류는 약 10킬로그램이었고 뒤에는 약 17톤에 이르렀다. 약 3.2자릿수의 증가다. 17톤은 이 자료의 추정치이지 변하지 않는 상한이 아니다. 멸종한 거수들의 체중은 이후에도 수정되고 논쟁되어 왔다.

대륙마다 세부적인 시기는 달랐지만, 초기에 빠르게 상승하다가 대형에 도달한 뒤에는 평탄해지는 경향이 같았다. 17톤이 어느 정도인가. 오늘날 가장 큰 아프리카코끼리보다도 두 배 넘게 무겁다.

그런데 ‘10의 거듭제곱으로 세 단계 남짓’이라는 말을 풀어 보자. 10킬로그램에서 17톤이면 1,700배다. 몸무게가 두 배로 불어날 때마다 그것을 받치는 뼈, 움직이는 근육, 피를 보내는 심장, 먹이를 처리하는 장도 함께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들은 같은 비율로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리뼈의 단면적은 몸무게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코끼리 다리와 쥐 다리는 애초에 모양부터 다르다.

10킬로그램에서 17톤으로 자라는 것은 하나를 크게 늘리는 일이 아니다. 몸의 설계 전체를 여러 번 다시 쓰는 일이다. 이 일이 6,600만 년 동안 서로 다른 대륙에서 따로따로 일어났다.

대륙마다 세부적인 시기는 달라도 모양은 같다. 초반에는 매우 빠르게 올라가고, 큰 몸집에 도달하면 평탄해져 더 올라가지 않는다.

그 사이 수천만 년 동안 오늘날에는 대응하는 동물이 없는 거수들이 나타났다. 에오세와 올리고세의 유라시아에는 어깨높이가 몇 미터나 되는 초식 포유류가 있었다. 남아메리카도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는 동안 자체의 대형 초식동물군을 독자적으로 길러 냈다. 서로 먼 친척인 이들이 각자 작은 몸에서 큰 몸으로 나아갔고, 마지막에는 모두 비슷한 규모 부근에서 멈췄다.

그러니 ‘포유류는 나중에 아주 커졌다’는 말은 온전히 성립한다. 그런데 곧이어 나오는 비교 하나가 이 글 후반부의 방향을 결정한다.

가장 큰 용각류 공룡, 그러니까 목도 꼬리도 길었던 그 거수들의 몸무게는 신뢰할 만한 추정치로 수십 톤에 이른다. 최대치를 논할 때 흔히 나오는 숫자는 60~80톤, 혹은 그 이상이다.

육상 포유류의 신뢰할 만한 체중 추정은 가장 큰 용각류의 약 60~80톤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17톤과 70톤을 쓰면 네 배 이상 차이 나지만, 비율은 추정치에 따라 달라진다. 확실한 요점은 알려진 최대치 사이의 간격이지, 포유류를 영원히 17톤 아래에 묶는 법칙이 아니다.

이제 곡선 자체로 돌아가자. 얼마나 빨리 올라갔을까. 자연스러운 질문 같지만, 기준선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크다’의 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나오는 시간이 완전히 달라진다. ‘중생대 포유류의 전형적인 상한을 넘는다’에 그으면 경계 이후 수십만 년 만에 이미 나타났다.

50킬로그램에 그으면 일부 지역에서 약 70만 년이다. 톤 단위에 그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용각류의 수십 톤에 그으면 신생대 전체를 통틀어 육상 포유류는 넘지 못했다. 바다에서는 같은 문제가 더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문턱은 최대급 용각류의 약 60~80톤이다. 육상 포유류에 수십 톤대 추정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바다에 대형 최상위 포식자가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한 번도 자리가 빈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상어가 경계 양쪽에 줄곧 있었다. 다음 절에서 따로 살펴볼 것이다. ‘완전히 수생이며, 폐로 숨 쉬고, 길이가 십여 미터인 네발동물 포식자가 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고래가 완전한 수생 단계로 진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000만 년이 넘게 지난 뒤다.

같은 바다를 두고 두 방식으로 물었더니, 한 답은 거의 0이고 다른 답은 2,000만 년 이상이다. 그러니 ‘회복에 얼마나 걸렸는가’를 물으려면 무엇까지 회복한다는 것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50킬로그램, 500킬로그램, 1톤, 10톤, 70톤은 서로 다른 다섯 질문이다.

다섯 질문의 답은 각각 수십만 년, 수백만 년,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수천만 년, 그리고 ‘한 번도 없었다’다. 이것을 ‘신생대는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가’라는 한 문장에 넣으면 다섯 답을 뒤섞어 존재하지 않는 평균을 만드는 셈이다.

5 포유류만이 아니다

이 절은 이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는 등식 하나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공룡이 비운 자리와 훗날 포유류가 차지한 자리는 같다. 남아메리카에서 대형 육상 포식자라는 칸을 채운 것은 새였다.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다. 일어서면 사람보다 크고, 다리는 기둥처럼 굵으며, 머리는 비율이 맞지 않을 만큼 크고, 부리 끝은 갈고리처럼 휘어진 새다. 빨리 달렸고, 날지 못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수천만 년 동안 대형 포식자로 살았다.

날지 못하는 거대 포식성 조류의 기록은 주로 남아메리카에 있다. 믿을 만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아르헨티나에서 나왔으며, 에오세 중반인 4,000여만 년 전의 것이다. 나중에 한 계통은 두 대륙이 이어진 틈을 타 북아메리카에 들어갔다. 남쪽 계통이 북상해 자리를 잡은 드문 사례다. 뒤의 일곱째 절에서 이 일이 통계적으로 어떤 뜻인지 다시 언급할 것이다.

몸집의 폭은 매우 컸다. 수십 킬로그램에서 수백 킬로그램까지였다.

이들은 ‘축소판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었다. 약 40킬로그램짜리 개체의 두개골에 작용하는 힘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그 두개골은 위아래 방향의 힘은 견뎠지만, 강하게 좌우로 비트는 힘에는 알맞지 않았다.

여기서 추론한 사냥법은 먹이를 물고 오래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빠르고 거듭 내리치는 것이었다. 같은 생태적 역할도 몸이 바뀌자 동작까지 바뀌었다.

여기서 몸집도 잠깐 짚자. 같은 과 안에서 가장 작은 것은 수십 킬로그램, 가장 큰 것은 수백 킬로그램으로 거의 열 배 차이가 났다. 정강이뼈의 역학으로 달리기 능력을 추정한 한 연구가 다룬 몸무게 범위는 40~350킬로그램이었다. 몸무게가 열 배 다른 두 종류의 새가 먹이그물에서 똑같은 일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시기 남아메리카에는 육식성 유대류 근연종과 대형 악어형류도 있었다. 대형 포식성 조류의 유해에서는 악어형류의 이빨 자국까지 발견되었다. 적어도 물가에서 그 새들도 남의 먹이였다는 얘기다. 그러니 ‘남아메리카의 최상위 포식자는 공포새가 독점했다’는 문장은 가설로 내려놓아야 한다. 열대 쪽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콜롬비아의 약 5,800만~6,000만 년 전 화석 산지에서는 몸길이 약 13미터, 몸무게 약 1.1톤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보아류가 나왔다. 13미터가 어느 정도인가. 버스 한 대를 가로로 놓아 보면 대략 그 길이다. 그러니까 경계 이후 고작 600만~800만 년이 지난 열대 습지에 이미 톤급 대형 파충류 포식자가 있었다.

사는 방식은 아마 오늘날의 큰 아나콘다와 비슷했을 것이다. 물과 뭍을 오가며 매복했을 것이다. 다만 크기는 전혀 딴판이다. 오늘날 가장 큰 아나콘다도 5~6미터 정도다.

악어형류의 이야기는 더 길다. 팔레오기와 네오기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악어형류는 오랫동안 물과 뭍의 경계에서 대형 포식자 역할을 맡았다. 육지에서 달리기에 적응한 유형도 거듭 진화했다. ‘비조류 공룡이 사라진 뒤 대형 육상 포식자 역할을 포유류가 단독으로 넘겨받았다’는 말은 지역 규모에서 한 번도 성립한 적이 없다.

바다에서 ‘빈자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잘못 서술하기 쉬운 부분은 오히려 살아남은 것들이다. 상어는 경계에서 대형 포식자 역할을 내려놓지 않았다. 표본 추출을 표준화한 분석에 따르면 신상어류가 받은 타격은 통상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가벼웠을 수 있다. 이후 팔레오기에도 방산을 이어 가 에오세에는 높은 다양도에 이르렀다. 대형 해양 파충류는 사라졌지만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층은 한 번도 비지 않았다.

이 대목은 이야기에서 유난히 빠지기 쉽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으레 ‘누가 사라졌는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상어 계통은 사건 내내 그곳에 있었다. 뒤를 이어 줄 누군가도 필요 없었고, 그 뒤를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도 없었다.

경골어류의 변화는 더 뚜렷하다. 해양 퇴적물 속 상어의 피부치와 경골어류 이빨의 상대적 풍부도를 보면, 경계 이후 외해에서 경골어류의 상대적 중요성이 빠르게 높아졌다.

현대형 참치, 새치, 꼬치고기처럼 빠르게 헤엄치는 대형 포식성 어류의 근연형이 팔레오기 초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전환을 새로운 물고기 시대라고 부른 이도 있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백악기의 드넓은 외해에는 대형 원양 포식성 경골어류가 여러 계통 있었고, 이들은 경계에서 사라졌다. 그 뒤를 채운 것은 같은 무리가 아니라, 훗날 오늘날의 대양 어류로 이어질 새로운 생태적 유형들이었다. 바다에서 벌어진 일은 빈자리 메우기가 아니라 출연진 교체였다.

고래는 훨씬 늦게 왔다. 가장 이른 확실한 기록은 약 5,350만 년 전, 경계보다 1,250만 년 뒤다. 진정으로 완전한 수생 동물은 그보다 더 늦다. 1,250만 년이 어느 정도인가. 호모속 전체의 역사보다도 네다섯 배 길다.

그러니 고래는 상어를 몰아낸 뒤 등장한 것이 아니다. 대형 어류 포식자가 이미 살고 있던 바다에 들어와 새로운 능력 묶음을 더했다. 폐로 숨 쉬기, 엄청나게 커지기, 깊이 잠수하기, 소리로 먹이 찾기.

두드러진 변화 하나는 수염판을 이용한 여과 섭식이다. 수염고래도 먹잇감이 모인 곳을 찾고 따라가지만, 수염판으로 작은 먹이를 대량으로 물에서 걸러 낸다. 그렇다고 거대한 여과 섭식자를 고래가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다. 중생대 바다에는 이미 거대한 여과 섭식 경골어류가 있었고, 일부 파키코르무스류는 백악기까지 이어졌다. 해양 파충류만 바다의 주민으로 보면 이 선행자들을 놓친다.

따라서 고래는 “대형 해양동물” 칸을 다시 채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수유, 호흡, 이동, 여과를 결합해 새로운 생활 방식을 만들었다. 새로운 조합이 나타났다는 말은 바다에 비슷한 기능이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6 돌아오지 않은 것들

거꾸로 물어보자.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종류의 것은 없을까. 꽤 유력한 후보가 셋 있다. 첫째가 가장 분명하다.

가장 큰 익룡은 신뢰할 만한 추정치로 날개폭 약 10~11미터, 몸무게는 흔히 200킬로그램급으로 잡는다. 10~11미터가 어느 정도인가. 양 날개를 펼치면 소형 비행기의 날개폭쯤 되고, 땅에 서 있을 때의 어깨높이는 기린과 비슷하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날아오르느냐다. 익룡은 네 다리를 한꺼번에 써서 땅에서 몸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막으로 된 날개와 앞다리가 힘을 받는 방식부터 새와 완전히 달랐다.

반면 알려진 가장 큰 비행 조류는 확실히 한 급 작다. 거대 가짜이빨새의 날개폭은 보수적으로 약 6.4미터로 추정한다. 남아메리카의 그 거대 비행 조류는 약 70킬로그램에 날개폭 약 6~7미터였다. 날개폭 10미터, 몸무게 200킬로그램이면서 스스로 땅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비행동물은 신생대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학을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다. 새는 뒷다리로 땅을 차고 난 뒤 날개에 의지한다. 익룡의 앞다리는 날개이자 앞발이어서, 네 다리가 함께 힘을 내 몸을 튕겨 올릴 수 있다.

하나는 두 다리로 뛰어오르고 하나는 네 다리로 뛴다. 최대 몸집 구간에 이르면 이 차이가 뜰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른다. 그래서 둘 다 활공한다고 해도 가능한 성능의 범위는 서로 다르다.

둘째 후보는 대형 해양 파충류다. 고래가 나중에 ‘크고, 바다에 살고, 폐로 숨 쉰다’는 공간에 다시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한 헤엄 방식, 치열, 번식 방식, 몸의 형태까지 더하면 고래와 백악기 해양 파충류는 일부가 겹칠 뿐 일치하지 않는다. 수염고래는 더욱이 전혀 다른 자리로 갔다. 작은 플랑크톤을 대량으로 걸러 먹고 산다.

반대 방향의 사실도 여기 함께 놓아야 한다.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는 빈 적이 없지만, 백악기의 십여 미터짜리 해양 파충류가 갖췄던 조합과 같은 조합은 정말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상어처럼 평생 물에서 사는 물고기도 아니고, 고래처럼 육지에서 바다로 들어간 포유류도 아니었다. 다른 길 위의 존재들이었고, 그 길이 끊겼다.

셋째는 극단적으로 거대한 육상 초식동물이다. 신생대에도 17톤짜리 거수가 있었지만, 60~80톤 구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70톤을 받치려면 단순히 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용각류에게는 매우 특별한 구성 하나가 있었다. 몹시 긴 목 덕분에 제자리에 서서도 넓은 수관을 훑을 수 있었고, 속이 비고 기낭을 갖춘 뼈는 몸 자체의 무게를 줄여 주었다. 게다가 씹지 않았다. 먹이를 통째로 삼켜 거대한 소화관에서 천천히 발효시켰다.

이것들이 한데 모여야 그 몸집 구간이 가능해진다. 신생대에는 다시 한데 모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 날카로운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무슨 근거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가.

익룡은 없어도 대형 바닷새는 있지 않은가. 용각류는 없어도 거수는 있다. 어떤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답은 있다. 조건이 셋이고, 뒤로 갈수록 충족하기 어렵다.

첫째, 동물군의 이름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차원들을 먼저 나열해야 한다. 몸무게, 먹이, 이빨이나 부리의 역학, 이동 방식, 활동하는 바탕의 종류, 먹이를 얻는 높이, 헤엄이나 비행 성능, 열생리. 두 시대의 동물이 이런 좌표에서 실제로 겹쳐야 비로소 ‘같은 자리’라고 말할 자격이 생긴다.

둘째는 더 어렵고, 자주 건너뛴다. 환경 좌표 자체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수천만 년 떨어진 두 생태계는 온도, 식생 구조, 먹잇감의 몸집 분포, 대륙 배치가 모두 다를 수 있다. 백악기의 자원 조합 자체가 이미 사라졌다면 ‘그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자리를 정의하던 영역부터 더는 같지 않을 수 있다.

셋째는 ‘가장 가까운 것’과 ‘정말로 일치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형태 공간에서 나중에 나타난 동물군이 백악기 동물군의 최근접 이웃이라 해도, 여전히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세 조건은 엄격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문장 하나가 빈말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조건이다. ‘어떤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어떤 차원에서 ‘같은 자리’를 따지는지 먼저 밝히지 않으면, 그 말은 서로 다른 아무 동물 두 마리에나 붙일 수 있다. 그러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셈이다.

이 세 조건으로 앞의 세 후보를 다시 보면 표현도 바꿔야 한다. 정말 돌아오지 않은 것은 ‘익룡식 생태적 지위 전체’가 아니라 ‘최대 몸집, 특정한 이륙 방식, 특정한 육상 섭식 방식’의 조합이다. ‘거대 초식동물의 모든 작용’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사라진 것은 ‘한 개체가 수십 톤인 몸집 구간’이다. 5~15톤의 초식동물 여러 마리가 합쳐지면 그만큼 강한 초식 압력과 씨앗 퍼뜨리기, 짓밟기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있다.

오늘날의 코끼리는 같은 일을 한 치수 작게 하고 있다. 나무를 쓰러뜨리고, 껍질을 벗기고, 발로 밟아 길을 내며, 그냥 두면 숲이 될 곳을 탁 트인 풀밭으로 유지한다. 코끼리 한 마리가 숲에 미치는 영향에서 핵심은 얼마나 많이 먹어 치우느냐가 아니다. 다른 것들이 자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바꾼다는 데 있다. 생태학에서는 이런 동물을 생태계 공학자라고 부른다.

70톤짜리 용각류가 숲을 한번 지나가며 한 일도 아마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규모가 훨씬 컸을 뿐이다. 그런데 7톤짜리 열 마리가 함께 한다고 해서 그 일을 꼭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

70톤짜리 한 동물이 하는 일이 반드시 쪼갤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인 것은 아니다.

7 다시 틀어 본다면

여기까지 오면 큰 질문 하나를 피할 수 없다. 테이프를 6,600만 년 전으로 감아 다시 틀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될까.

이 질문에는 출처가 있다. 1989년 굴드는 한 책에서 이 사고실험을 제안하고 ‘생명의 테이프를 다시 틀기’라고 불렀다. 그가 물은 것은 ‘진화는 무작위인가’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자. 역사의 결과가 앞서 밟아 온 경로에 얼마나 민감한가를 물은 것이다.

가장 유명한 반대편 인물은 콘웨이 모리스다. 그렇다고 그의 대답이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물리적·기능적·발생적 제약 때문에 실행 가능한 해법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해법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역사가 달라도 비슷한 기능 영역에 거듭 들어서게 된다. 눈, 유선형 몸, 비행 구조, 땅을 파는 앞다리가 서로 상관없는 계통에서 되풀이해 나타난다.

상을 맺을 수 있는 눈은 가장 자주 드는 예다. 동물계에서 독립적으로 여러 번 등장했다. 척추동물과 문어는 망막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고도 구조가 상당히 비슷한 카메라형 눈을 각자 만들어 냈다. 비행 역시 적어도 네 번 독립적으로 등장했다. 곤충, 익룡, 새, 박쥐다. 실제로 거듭 찾아내게 되는 해법도 있다.

이 사고실험은 나중에 진짜 실험이 되었다. 한 장기 진화 실험에서는 처음에 완전히 같았던 세균 집단 열둘을 같은 조건에서 대를 이어 키웠다. 그중 단 하나만 산소가 있는 조건에서 시트르산을 대량으로 이용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것도 3만 세대가 넘게 지난 뒤였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다. 연구진은 얼려 보관해 둔 조상과 중간 세대들을 꺼내 실제로 다시 틀어 보았다. 필요한 유전적 배경 일부가 이미 쌓인 나중 시기의 클론에서 다시 시작하면 이 혁신이 더 쉽게 재등장했다. 더 이른 조상부터 다시 틀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결과는 두 층위를 동시에 지지했다. 전반적인 성능은 되풀이될 수 있어도, 구체적인 핵심 혁신과 유전적 경로는 역사에 크게 의존할 수 있다. 굴드와 그의 반대자들은 저마다 한 층위에서 맞았다. 같은 층위를 말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에도 다시 틀기에 가까운 사례가 있다. 가장 고전적인 한 쌍은 태즈메이니아늑대와 늑대다.

표본 101개, 3차원 기준점 128개를 이용해 둘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태즈메이니아늑대와 회색늑대의 성체 두개골은 매우 비슷했고, 개체가 자라는 과정의 궤적조차 강하게 나란히 갔다. 상관계수가 약 0.91에 이르렀다.

그런데 닮지 않은 곳도 똑같이 체계적이었다. 두개저 부위, 고실포, 치열의 세부는 복제되지 않았다. 배아에서 유래하는 곳이 다른 골격 모듈들은 같은 정도로 수렴하지 않았다.

더 나아간 기능 측정에 따르면 태즈메이니아늑대의 포식 방식은 대형 먹잇감을 주로 노리는 늑대와 가장 가까웠던 것이 아닐 수 있다. 몇몇 지표에서는 오히려 작은 먹잇감을 사냥하는 개과 동물에 더 가까웠다. 사진으로 보면 늑대 같은데, 재어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닮지는 않았다.

그러니 수렴이란 ‘동물 전체가 다른 대륙의 대응물로 바뀌는 일’이 아니다. 비슷한 기능을 맡은 몇몇 구조가 서로 다른 정도로 가까워지는 일이다. 어떤 부분은 거의 복제되다시피 하고, 어떤 부분은 각자의 밑천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다른 곳에서도 모양은 같다. 육식 포유류의 두개골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비슷한 먹이와 사냥 방식은 실제로 서로 다른 계통을 한데로 밀어 모은다. 하지만 두개골의 부위마다 발생과 역학의 제약이 달라 수렴 정도는 고르지 않다. 어떤 영역은 강하게 수렴하고, 다른 영역은 계통 간 차이를 여전히 뚜렷하게 남긴다.

활공하는 포유류는 같은 모양의 또 다른 판본을 보여 준다. 서로 다른 계통이 몸 옆면의 비행막을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시켰고, 겉모습의 수렴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정량화한 골격 형태 공간에서는 하나의 무리로 뭉치지 않는다. 골반, 손목과 발목, 긴뼈의 비율에 각 조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내부 구조보다 기능적 결과가 수렴하기 쉽다.

섬의 도마뱀은 테이프를 다시 틀어 본 듯한 사례를 더 큰 규모로 보여 준다. 같은 부류의 도마뱀이 서로 다른 섬에서 제각기 방산한 끝에 비슷한 유형들을 거듭 만들어 냈다. 어떤 것은 높은 수관에서, 어떤 것은 나무줄기에서, 어떤 것은 땅 위에서 주로 활동한다. 그에 맞는 다리 길이, 몸집, 이동 방식도 거듭 나타난다. 자연의 수렴을 정량적으로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사례 중 하나다.

그런데 같은 동물들에게서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수준의 수렴은 겉모습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똑같이 생겼다고 속까지 같으라는 법은 없다. 마지막으로 ‘누가 이겼는가’를 고쳐 보자. 이 글에서 가장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남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오랫동안 고립되어 다른 곳에는 없는 동물들을 한 벌 갖췄다. 자체의 유제류, 거대 나무늘보와 아르마딜로의 근연종, 육식성 유대류, 앞서 말한 큰 새들이다. 그러다 약 300만 년 전 파나마지협이 남북아메리카를 이었고, 양쪽 동물들의 왕래가 크게 늘었다. 이는 교류가 크게 확대된 시점이다. 일부 동물은 더 일찍 건넜으며, 300만 년 전에 첫 이동이 시작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의 결과만 보면 분명해 보인다. 남아메리카의 현생 동물군에는 북쪽 출신의 비율이 높다. 반면 북아메리카에 성공적으로 들어가 높은 다양도를 남긴 남쪽 계통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예전에는 이를 북쪽 동물의 경쟁력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2020년, 약 2만 건의 화석 산출 기록을 모형화해 확산률, 기원율, 멸종률을 따로 추정한 연구가 나왔다. 결과는 이랬다. 남쪽과 북쪽 이주자들 사이에서 확산률이나 이주 후 기원율에 그런 비대칭을 설명할 만한 체계적인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남아메리카 토착 포유류가 플라이오세에 더 높은 멸종률을 보였고, 그 때문에 북상할 수 있는 남쪽의 공급 집단 자체가 작아졌던 것이다.

같은 해의 다른 분석은 화석 400점 이상에서 안정 동위원소를 조사했다. 이빨에 남은 동위원소는 그 이빨이 형성되던 시기의 먹이를 반영한다. 평생의 식단 전체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식물을 먹으면 이빨에 남는 탄소 동위원소 비율도 달라진다.

결과를 보면 들어온 계통들은 흔히 먹이의 폭이 넓었고, 토착종과 외래종 사이에는 뚜렷한 자원 분할도 나타났다. 가지런한 일대일 교체가 아니었다. 서로를 밀어냈다기보다 저마다 파고들 틈을 찾은 모습에 가깝다. 마지막의 승패로 처음의 우열을 거꾸로 추론해서는 안 된다.

8 움직이는 좌표계 안의 잔여항

이제 첫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라는 앞 절반은 성립한다. 아주 단단히 성립한다. 어떤 후발 주자도 전임자의 조합을 복제하지 못했다. 최대 몸집 구간은 재현되지 않았고, 비행동물의 극단적인 몸집 구간도 재현되지 않았다. 포식 기능은 포유류, 조류, 악어형류, 뱀에게 나뉘어 갔다. 바다의 생존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라는 뒤 절반은 깎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야말로 이 글이 실제로 얻어 내는 것이다. ‘자리’라는 말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차지할 자가 오기 전부터 존재하고, 차지하는 동안에도 움직이지 않는 칸이 있다는 전제다. 그러나 세 가지 증거가 모두 이 전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첫 증거는 둘째 절에서 이미 보았다. 팔레오세에는 나중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독특한 몸의 설계들이 있었다. ‘옛 칸들을 하나씩 채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모양들이 생겨났다가 나중에 다시 사라진 것이다.

둘째 증거는 여섯째 절에 있다. 환경 좌표 자체가 변한다. 백악기의 자원 조합이 이미 없어졌다면 그 자리를 정의하는 영역도 더는 같지 않다. ‘아직 비어 있다’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좌표계로 현재를 묘사하는 셈이다. 셋째 증거가 가장 중요하다. 이름도 있다. 생태적 지위 구축이다.

생물은 식생 구조, 토양, 영양분 순환, 화재 환경, 수문 환경, 은신처, 서로의 관계를 바꾼다. 따라서 그 후손들이 물려받는 외부 환경은 손대지 않은 그대로의 환경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예를 하나 들자. 비버가 댐 하나를 쌓으면 개울 하나가 습지로 바뀐다. 이후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이 마주하는 것은 그 습지다. 원래의 개울이 아니다. 비버는 마련된 자리에 입주한 것이 아니라 자리 자체를 만들어 냈다. 자신만의 자리도 아니다. 남들의 자리까지 만들었다.

더 큰 규모에서는 육상 식생 구조가 이용할 수 있는 먹이 높이의 종류를 결정하고, 토양의 깊이가 굴을 팔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둘 다 생물 자신이 오랫동안 빚어 낸 것이다. 한 차례 방산에서 자리를 차지한 생물 자체가 자원의 풍부도와 다른 종이 받는 선택압까지 바꾼다면, 기회 공간도 자리를 차지해 가는 과정과 함께 움직인다.

기회 공간에 들어가는 일과 활동을 통해 그 기회 공간을 바꾸는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골칫거리의 일부는 ‘생태적 지위’라는 말 자체에서 온다. 처음부터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세 전통이 하나의 말을 함께 써 왔기 때문이다. 1917년, 어떤 이는 한 종이 어떤 물리적 환경에서 존재할 수 있느냐로 이 말을 이해했다.

1927년, 다른 이는 군집 안에서 종이 맡는 기능적 역할, 특히 먹이와 천적의 관계를 강조했다. 1957년에는 또 다른 이가 한 종이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 다차원 공간으로 이를 형식화했다. 이 판본은 철저히 종을 중심에 둔다.

그렇게 ‘빈자리’에는 전혀 다른 두 질문이 생겼다. ‘환경 안에 아직 아무도 수행하지 않는 역할이 있다.’ 이는 차지할 생물이 나타나기 전에도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종이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들의 집합.’ 그 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 종을 위한 자리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빈 생태적 지위’는 해결을 끝낸 기술 용어가 아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개념 논쟁이다. 비교적 실용적인 절충안은 ‘미리 그려 놓은 빈칸’ 대신 생태적 기회를 쓰는 것이다. 환경에는 이용 가능한 자원이 있고, 현존 생물의 능력과 그 기회 사이에는 어긋남이 있다. 이렇게 하면 환경이 새로운 점유자보다 앞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미래 동물의 온전한 자리가 미리 존재한다고 가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 글이 잔여항 목록에 더하는 것은 열세 번째 종류다. 잔여항은 자리가 채워짐에 따라 움직이는 좌표계 안에 있다.

여덟째 글의 ‘잔여항이 좌표축 안에 있다’와는 따로 기록해야 한다. 그때의 잔여항은 선택에서 왔다. 연구자가 어떤 축을 골랐느냐에 따라, 축을 바꾸면 남는 잔여항도 바뀌었다. 이번에는 과정에서 온다. 측정 대상이 축 자체를 다시 썼다. 누가 측정하든 그것은 남는다.

여기서 원칙 하나를 세울 수 있다. ‘어떤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하려면 먼저 세 가지를 내놓아라. 기능 축의 목록. 환경 좌표를 비교할 수 있다는 논증. ‘최근접 이웃’과 ‘일치’의 구분.

셋 중 하나라도 없으면 그 문장은 사후에 붙인 범주일 뿐, 발견이 아니다. 나란히 세울 원칙이 하나 더 있다. ‘신생대 방산’은 복수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부챗살 내부의 분기는 약 6,500만~5,400만 년 전에 집중되었다. 육상 포유류의 최대 몸집은 처음 100만 년 안에 이미 뚜렷하게 늘었지만, 전 지구적인 최대 규모에 도달하는 데에는 수천만 년이 걸렸다. 고래가 기록에 들어오는 것은 5,350만 년 전이다.

풀은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 준다. 벼과라는 계통은 백악기에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진정한 탁 트인 초원은 훨씬 늦게 나타났고, 대륙마다 시기도 달랐다. 북아메리카의 개방된 초본 서식지는 3,400만 년 전 이후에야 서서히 펼쳐졌다. 저위도의 더위와 가뭄에 강한 풀들이 대규모로 퍼진 시기는 주로 800만~500만 년 전이다.

동아프리카에서 여러 지표를 함께 살핀 연구는 이곳에 그런 풀이 풍부했던 시기를 한층 더 이르게 잡았다. 어떤 계통이 아주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 계통이 지배하는 환경까지 이미 존재했다는 뜻은 아니다.

새 쪽의 시간도 가지런하지 않다. 팔레오세 초기에 이미 형태와 계통이 빠르게 분화했다고 강조하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백악기 후기부터 경계를 끊김 없이 가로질러 이어진 더 긴 방산을 지지하는 연구도 있다.

곤충은 더 조심해야 한다. 주요 초식 곤충과 꽃가루받이 곤충 계통 가운데 상당수는 백악기에 이미 존재했다. 경계 이후 비교적 분명한 것은 식물과 곤충의 관계가 지역적으로 사라졌다가 회복되고 재편되었다는 점이다. 식물의 종 풍부도 회복과 곤충의 섭식 유형 회복은 시기가 다를 수 있다. 두 곡선은 하나의 곡선이 아니다.

남북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동물 교류는 더 늦게, 플라이오세와 플라이스토세에 이르러서야 정점을 맞는다. 이 시간들에는 공통의 출발점이 없다. 전 세계가 한꺼번에 한 번으로 끝낸 ‘승계의 순간’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다.

열여덟 번째 글로 돌아가자. 지층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를 남길 뿐, 직접 비교할 두 번째 지구를 내놓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반사실 추론을 진전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균 실험에는 다른 수단이 있다. 보존한 조상 표본에서 다시 시작해 새로운 진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반복 실험이지 이미 일어난 한 번의 과거를 그대로 되감는 일이 아니다.

그 대가는 규모다. 열두 집단, 3만여 세대, 하나의 형질. 통제된 실험은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지구사의 한 장 전체를 그렇게 시작할 수는 없다. 큰 질문도 모형과 증거로 좁힐 수 있지만, 실험실의 반복 가능성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일은 바로 직접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규모에서 일어났다.

이 글에는 층위를 바꿨다고 판정할 만한 일이 없다. 경계 앞뒤로 선택의 단위는 바뀌지 않았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어떤 구축된 틀이 ‘빈자리가 하나 있다’고 주장할 때, 그 틀은 동시에 하나의 좌표계를 주장한다. 그런데 그 좌표계는 틀이 묘사하는 과정에 의해 계속 다시 쓰이고 있다.

살아남은 것들은 후계자가 아니었다. 그때 아직 거기 있었을 뿐이다. 세계는 그들의 발밑에서 계속 모양을 바꾸었다.

넘지 못했다고 본래 열등했던 것은 아니다. 그날 무엇이 쓸모 있는 능력인지가 바뀌었다. 옛 강점이 짐이 되고 눈에 띄지 않던 형질이 생명줄이 될 수도 있었다. 생존이 형질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쓰임이 환경에 달려 있었다. 경계를 넘었다고 영원한 우월성을 증명받은 것도 아니다.

누구도 자리를 기다리지 않았고, 어떤 자리도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자리라는 말은 결과 쪽에 선 우리가 뒤돌아보며 과정에 붙인 것이다.

오늘의 주민을 알기에 그 빈자리가 그들을 기다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막 가라앉던 먼지 속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그때 그곳에는 나중에 우리가 나타날 줄 아는 존재가 없었다.

관련 연구와 사실 확인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