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21

단순화: 진화의 뺄셈

기관과 유전자, 분업을 잃고도 생명은 어떻게 이어질까?

Han Qin · 읽는 데 약 33분 · 공개일

1 세포가 몇 개뿐인 동물

점액포자충류라는 기생생물이 있다. 기생하는 시기에는 대개 세포가 몇 개뿐이고, 크기는 수십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다. 몸의 축도, 촉수도, 입도 없다. 온전한 소화강도, 신경계도 없다.

쿠도아의 한 종은 핵 유전체가 약 2,250만 염기에 불과하고,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도 약 5,533개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원생생물’로 분류됐다. 동물로 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유는 바로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세포가 너무 적어 동물 특유의 몸 구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994년, 리보솜 유전자 하나를 분석한 연구에서 당시 원생생물로 분류되던 점액포자충류가 실은 후생동물에 속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처음 나왔다. 이후 20년 동안 증거는 한 겹씩 쌓였다.

2015년의 계통유전체 연구는 단백질 표지 200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위치 5만 1,940개를 이용했다. 표본에는 점액포자충류의 여러 주요 계통, 자포동물 22종, 그 밖의 동물 38종, 단세포 후편모생물 9종이 포함됐다. 베이즈 분석과 최대우도 분석은 모두 ‘점액포자충류와 폴리포디움’을 자포동물 안에 놓았다. 핵심 분기점의 사후확률은 1.0, 부트스트랩 지지율은 100퍼센트였다.

그러니까 세포가 몇 개뿐인 이 생물이 해파리와 말미잘의 친척이라는 얘기다. 그 몸에 남아 있던 지문은 극낭이라는 것이었다. 포자 안에 실 모양 구조를 뒤집어 내보낼 수 있는 작은 기관이 있는데, 형태가 닮았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자포동물의 자포낭과 상동일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나중에는 자포낭 특유의 미니콜라겐과 네마토갈렉틴 유전자도 발견됐다. 닮은꼴은 그렇게 강력한 상동성 증거로 격상됐다. 같은 구도가 훨씬 눈에 선하게 드러나는 두 번째 사례가 있다. 근두류다.

기생하는 만각류의 일종이다. 만각류는 따개비 같은 동물이다. 기생하는 암컷이 성숙하면 보통 갑각류에서 볼 수 있는 마디진 몸과 가슴다리, 온전한 소화관이 사라진다. 대신 갑각류 숙주의 몸속으로 뿌리 모양의 영양 흡수 체계가 뻗어 들어가고, 바깥에는 생식용 주머니 하나만 남는다.

성체만 보고 이것이 갑각류라는 걸 알아볼 사람은 없다. 만각류임을 확인하는 데 주된 근거가 된 것도 성체가 아니라 유생이었다. 알아볼 수 있는 노플리우스 유생을 여전히 만들고, 그 뒤에도 만각류의 특징이 뚜렷한 유생 단계를 거친다.

헤엄치는 부속지와 감각 구조, 부착 구조가 이들을 다른 만각류와 분명하게 이어준다. 이 두 사례에 이번 글의 물음이 모두 들어 있다.

이건 학문적인 결벽증이 아니다. 두 해석을 거꾸로 읽으면 동물 계통수 전체의 뿌리를 엉뚱한 곳에 놓게 된다. 신경과 근육, 장이 언제 나타났는지, 그 조상 상태도 줄줄이 틀어진다. 7절에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이 문제의 한 형태를 볼 것이다. 바로 동물 계통수의 뿌리에 걸려 있는 문제다.

단순한 생물을 마주했을 때 가능한 해석은 둘이다. 원래부터 이랬거나, 한때 복잡했는데 나중에 덜어냈거나. 그런데 이 두 해석은 형태만 보면 똑같이 생겼다.

둘을 가르는 것은 ‘기관이 몇 개 남았는가’가 아니다. 계통수에서 차지하는 위치, 발생 단계에 남은 흔적,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극도로 특이적인 분자 성분이다.

먼저 용어 하나도 분명히 해두자. 이 시리즈에서 ‘이차적 단순화’는 계통수나 발생 증거가 조상에게 더 많은 구조가 있었음을 이미 보여주고, 후손이 특정한 척도에서 줄어든 경우만을 가리킨다. ‘단순하므로 원시적이다’라는 뜻은 없으며, 어떤 기제로 일어났다는 주장도 그 말 자체에는 담겨 있지 않다.

이번 글은 뺄셈을 다룬다. 답할 것은 세 가지다. 언제 뺄셈을 입증할 수 있는가. ‘복잡성’이라는 자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리고 이 시리즈의 상전이 판정 기준을 거꾸로 적용해도 여전히 성립하는가. 마지막 물음이 이번 글의 진짜 목적지다. 앞의 일곱 절은 모두 그곳에 가져갈 재료를 마련한다.

2 자가 달라지면 답도 달라진다

먼저 이 글에 왜 기생생물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지부터 밝히자. 기생이라는 삶의 방식은 동물계에서 적어도 223번 독립적으로 생겨났고, 15개 동물문에 걸쳐 있다. 10대 기생 계통에 지금까지 기재된 기생동물 종의 약 90퍼센트가 들어 있다. 아직 기재되지 않은 수많은 종까지 추산에 넣으면 기생자는 전체 동물 종의 약 40퍼센트에 이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기생은 동물 세계의 주변 현상이 아니다. 다만 40퍼센트는 과반수가 아니며, 기생이 곧 모든 면에서의 축소를 뜻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질문은 더 구체적이다. 어떤 계통은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잃고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자유생활이 모든 것을 자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동물은 원래도 먹이에서 필수 영양소를 얻는다. 다만 숙주 안에서는 스스로 만들던 물질 일부를 외부에서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면 그 물질을 합성하는 효소들이 예전만큼 필수적이지 않게 된다. 유전자를 유지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데도 비용은 들지만, 그 손익은 계통과 생활사 단계마다 다르다.

그 기능의 중요성이 낮아지면 해로운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선택이 느슨해질 수 있다. 유전적 부동으로 변이가 남아 결국 경로가 퇴화하기도 하며, 어떤 조건에서는 비용 절감 자체가 선택될 수도 있다. 숙주가 공급하면 직접 만들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기생성 축소의 한 경로이지, 이 글의 모든 상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원리는 아니다.

이제 이 절에서 정말로 세우려던 명제를 세우자. ‘단순화’는 하나의 양이 아니다. 어떤 자를 썼는지에 달린 말이다. 자를 바꾸면 같은 대상에서도 정반대 방향의 답이 나올 수 있다.

다시 점액포자충류다. ‘유전체의 염기 수’라는 자로 재면, 이처럼 고도로 단순화하지 않은 가까운 자포동물보다 훨씬 작다. 이쪽은 약 2,250만 염기인데 자매군인 폴리포디움은 약 5억 6,100만 염기다. 20여 배 차이다.

그런데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 수’로 재면 약 3분의 1이 남아 있다. 약 5,533개 대 1만 7,440개다. 자가 둘인데, 하나는 20여 배라 하고 다른 하나는 세 배라 한다.

차이는 유전자 안의 비암호화 여백에 있다. 점액포자충류의 평균 인트론 길이는 폴리포디움의 1,163염기에서 약 82염기로 눌려 줄어들었다. 유전자는 남아 있고, 유전자 안의 비암호화 여백은 바싹 짜였다. 기생식물 쪽에는 더 매서운 사례가 있다.

발라노포라 히말라야나(Balanophora himalayana)는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일생의 대부분을 숙주의 뿌리 속에 묻혀 지내다가, 꽃이 필 때만 땅 위로 작은 한 토막을 내민다. 생김새는 버섯 한 송이 같다. 핵 유전체는 약 19억 2,000만 염기로, 조금도 작지 않다.

하지만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를 세면 약 1만 3,670개뿐이다. 추론해보면 기생하지 않던 속씨식물 조상에 비해 조상 유전자의 약 54퍼센트를 잃었다. 사라진 것은 광합성, 엽록체 기능, 전형적인 식물 몸의 형성, 그리고 몇몇 방어 과정에 몰려 있다.

DNA 총량이라는 자를 쓰면 거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조상 유전자의 보유율이라는 자를 쓰면 심하게 축소돼 있다. 두 문장은 같은 식물, 같은 염기서열 분석, 같은 논문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일반 원칙 하나를 세워두자. 뒤에서도 같은 종류의 곤란을 거듭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숫자로 추세를 뒷받침할 때는 먼저 무엇을 기준으로 센 숫자인지 물어야 한다. 이 시리즈에서 몇 차례 나온 원칙이다. 4편에서는 광물을 세는 기준을, 5편에서는 세포소기관의 유전자 수를, 10편에서는 ‘폭발’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폈다. 이번 글에서는 뒤에 나올 때마다 되풀이하지 않고, 집계 기준이 결론을 통째로 뒤집는 지점에서만 한마디 짚겠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기생하면 반드시 줄어드는가. 아니다. 반례도 적지 않다.

분선충류는 좀처럼 얻기 힘든 대조를 제공한다. 기생하는 몇 종과 자유생활을 하는 가까운 종들의 유전체 크기와 유전자 수는 모두 같은 자릿수 범위에 있다. 차이는 점액포자충류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작다. 더 중요한 것은 반대 방향이다. 기생하는 다섯 종으로 이어지는 가지에서 새로운 유전자군 약 1,075개가 생겨난 것으로 추론됐고, 금속단백질분해효소와 분비 단백질, 아세틸콜린에스테라아제 유전자군은 모두 뚜렷이 확장됐다.

기생으로 향하는 계통은 한쪽에서 잃으며 다른 쪽에서 자랄 수 있다. 보석벌이라는 기생벌은 유전체가 약 2억 6,700만 염기,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가 1만 4,221개다. 아주 얌전히 보통 곤충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실제로 줄어든 생물들은 무엇이 줄어들었을까.

정단복합체충문은 가장 좋은 사례다. 지금도 자유생활을 하며 광합성을 하는 가까운 친척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말라리아원충은 핵 유전체가 약 2,300만 염기이고 유전자는 약 5,300개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두 친척 계통은 여전히 자유생활을 하고 광합성을 하며, 유전자 수도 약 2만에서 수만 개에 이른다.

기생생물마다 잃는 경로는 다르다. 일부 아미노산·지질·스테롤 합성 경로가 줄어들 수 있지만, 그 목록 전체를 말라리아 원충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원충은 특정 생활사 단계에 필요한 아피코플라스트의 지방산 합성을 유지한다. DNA 복구의 변화도 숙주가 대신해 준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한편 숙주 침입, 면역 회피, 생활사 전환에 관여하는 유전자군은 확장될 수 있다.

미포자충류는 그 극단에 있다. 엔세팔리토존 쿠니쿨리의 유전체는 약 290만 염기,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는 약 2,000개다.

유전자 2,000개란 어느 정도일까. 대장균은 약 4,000개, 효모는 약 6,000개, 사람은 약 2만 개다. 세균 한 마리보다도 적은 살림살이로 살아가는 진핵생물인 셈이다.

그런데 대사와 유전체를 이 지경으로 눌러 줄이면서도 고도로 특화된 숙주 침입 구조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생활사를 간직하고 있다. 축소는 선택적으로 일어난다. 전체가 일괄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한선은 있을까.

없다. 모든 기생생물에 두루 통하는 ‘최소 유전자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남겨야 할 것은 숙주가 무엇을 제공하는지, 기생자가 숙주의 어느 부위에 사는지, 대사산물을 숙주에게서 직접 들여올 수 있는지, 자유생활 단계가 아직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른바 하한선도 생태적 연결망을 따라 움직인다.

세균 쪽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반대 방향의 주의사항 하나가 더 붙는다. 영양분이 부족한 먼바다에서는 자유생활을 하는 세균도 아주 작은 유전체를 진화시킬 수 있다. 아무것에도 기생하지 않으며, 그저 제 몸을 군더더기 없이 다듬었을 뿐이다. 작다는 이유만으로 기생에 따른 축소라고 판정할 수는 없다.

3 같은 형질을 거듭 잃다

동굴 생물은 자연계 최고의 반복 실험을 제공한다. 서로 관계없는 곳에서 같은 일이 수없이 일어났고, 매번 그 출발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된 동굴어는 200종이 넘는다. 하나의 공통 ‘맹어 조상’에서 방산한 것이 아니라, 여러 물고기 계통에서 눈이 있는 지표 조상이 각각 지하 환경으로 들어간 것이다. 눈과 색소의 감소가 가장 눈에 띄는 수렴이다. 그 밖에도 일주기 리듬과 일부 행동이 바뀌고, 미각과 후각, 측선, 섭식계가 강화된다. 그렇다고 모든 동굴 종이 이 형질들을 모조리 잃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테트라 한 종만 해도 동굴 개체군이 30개가 넘고, 최근 조사에서는 약 34개에 이른다. 지리적으로나 유전적으로나 단순히 한곳에서 비롯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아주 단단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다. 같은 표현형은 같은 돌연변이 묶음으로 만들어졌는가.

먼저 오해하기 쉬운 사실 하나부터 짚자. 동굴어에게 눈이 없다고 해서 ‘배아가 아예 눈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발생 초기에는 눈 원기와 수정체, 망막이 만들어진다. 그 뒤 수정체에서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이 일어나고, 망막과 안구가 이차적으로 작아진다.

먼저 생긴 뒤 퇴축한다. 조상에게 한 번도 눈이 없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눈은 왜 사라질까. 세 가지 기제가 있고, 저마다 근거 자료가 있다.

첫째는 중립성과 선택의 완화다. 어둠 속에서는 시력이 예전만큼 적합도에 기여하지 않는다. 시각 관련 유전자에 작용하던 정화 선택이 약해지고, 해로운 돌연변이가 더 쉽게 고정된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서로 독립적인 동굴 계통은 서로 다른 유전자와 돌연변이 경로를 거쳐 시력을 잃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유전체 연구에서는 동굴에만 사는 계통의 더 많은 위치에서 선택 완화의 신호가 검출됐다.

둘째는 직접 선택, 곧 에너지 절약이다. 멕시코테트라를 측정한 연구가 있다. 무게 약 1그램인 지표형 물고기에서는 눈과 시각 처리를 맡는 중뇌의 시개가 합쳐서 안정 시 대사의 약 15퍼센트를 차지했다.

몸집이 커지면 이 비율은 약 5퍼센트로 내려간다. 작은 물고기에서는 눈 조직만으로도 약 8퍼센트다. 뇌 전체까지 넣으면, 약 1그램인 지표형의 눈과 뇌는 약 23퍼센트에 이르는 반면 동굴형은 약 10퍼센트다.

시력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증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눈이 작아진 원동력이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선택이 이용할 만큼 충분한 비용이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한다.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선택계수는 눈의 비용에서 나왔는가, 다른 형질의 이익에서 나왔는가’에는 답하지 않는다.

셋째는 다면발현, 곧 간접 선택이다. 발생 실험에서 얻은 증거는 이것이 가장 직접적이다. 배아의 머리에서 작용하는 신호 경로 하나가 동굴형에서는 작용 범위를 넓힌다. 눈 영역과 관련된 핵심 조절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고, 수정체의 세포 사멸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경로가 턱과 미뢰 같은 섭식 구조의 확대도 촉진한다.

교배 실험에서는 눈 크기와 턱·미뢰의 표현형 사이에 반대 방향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실험으로 이 경로를 강화하거나 억제하면 두 형질 묶음이 함께 바뀐다. 따라서 ‘섭식 능력 향상에 대한 양의 선택이 다면발현을 통해 부수적으로 눈을 줄였다’는 설명에는 분명한 분자적·발생학적 증거가 있다.

양적유전학은 다른 단서도 주었다. 2세대 교잡 개체 539마리를 분석한 연구는 약 2,200센티모건의 유전 지도를 만들고, 눈과 수정체 크기에 관련된 양적형질 유전자좌를 다수 검출했다. 종합하면 적어도 십수 개의 유전자좌가 관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 ‘맹안 유전자’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연구는 순수한 유전적 부동이라는 설명도 곤란하게 만들었다. 검출된 눈 관련 유전자좌에서 동굴형 부모에게서 온 대립유전자는 거의 한결같이 눈을 ‘작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중립적 돌연변이가 무작위로 쌓이기만 했다면 눈을 키우는 돌연변이와 줄이는 돌연변이가 섞여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롭게도 같은 연구에서 색소 관련 유전자좌는 작용 방향이 훨씬 뒤섞여 있었다. 따라서 색소 소실은 눈 소실보다 부동이나 선택 완화로 설명하기가 쉽다. ‘동굴 형질’을 하나의 기제로 묶어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동굴 개체군들이 늘 같은 유전자를 쓰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맹어 동굴 개체군을 교배하면 1세대 자손에게 부모 양쪽보다 큰 눈이 생기기도 하고, 시력이 일부 회복되기도 한다. 양쪽 부모의 결함이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유전자좌에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여러 번 되풀이해 이용된 유전자와 유전자좌도 분명 존재한다. 진화 경로에는 평행적인 요소와 비평행적인 요소가 함께 있다.

세 기제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가능한 모형 하나은 이들이 시간 순서대로 포개진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직접 또는 간접 선택이 표현형의 축소를 이끌고, 이후 기능을 잃은 시각 유전자에 대한 선택이 완화된다. 동굴 개체군마다 각 기제의 비중이 다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역성을 보자. 7절과 직접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회복’ 증거는 어떤 동굴 개체군이 자연의 지표 환경에서 조상의 눈을 완전히 다시 진화시켰다는 사례가 아니다. 유전적 상보다. 서로 다른 동굴 집단의 맹어를 교배하면 자손에게 일정한 눈 구조와 시력이 돌아올 수 있다. 상보에 의한 재구성이다.

발생 수준의 증거는 더 강하다. 지표형의 수정체를 동굴형 배아의 안배에 이식하면, 동굴형의 눈 조직이 계속 자라 상당한 수준의 정상적인 눈 형태를 회복할 수 있다. 반대 방향으로 이식하면 정상적인 지표형 눈을 유지하지 못한다.

‘표현형에서 이미 눈이 사라졌다’는 것과 ‘눈을 만드는 유전 모듈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덜어낸 것은 표현형이고, 그 아래 단계의 부품 일부는 아직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4 기생도 동굴도 아닌 곳에서

뺄셈에는 기생도 동굴도 필요하지 않다. 이 절에서는 범위를 넓힌다. 충분히 다양한 경로의 뺄셈을 보아야만 8절의 판정에도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첫째 경로는 고착 생활이다. 둘째는 소형화, 셋째는 극한 환경, 넷째는 포식 압력의 감소, 다섯째는 물속으로의 복귀다. 서로 무관한 다섯 경로가 모두 순손실을 낳을 수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뺄셈이 특정한 생활 방식 하나의 부산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사례들에는 공통된 구도가 하나 있다. 여기서 한 번 말하고 뒤에서는 일일이 되풀이하지 않겠다. 한 측면의 상실은 다른 측면의 증가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측정한 것은 사라진 것들의 집합이다. 사라지지 않은 것과 새로 생긴 것은 대개 같은 제목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첫째 경로는 고착이다. 멍게의 유생은 작은 올챙이 같다. 꼬리와 척삭, 등 쪽의 신경관이 있고, 앞뒤 축이 뚜렷하며 헤엄을 칠 수 있다.

한동안 헤엄치다가 돌 하나를 찾아 머리부터 들이박듯 달라붙으면 변태가 시작된다. 꼬리는 흡수되고 척삭과 유생 신경 구조 대부분이 사라진다. 남은 부분은 돌에 붙어 사는 여과섭식 주머니로 자란다.

이것은 ‘원시적인 무척삭동물’이 아니다. 바로 그 유생의 척삭과 등 쪽 신경삭, 꼬리 근육이 분자 계통수와 함께 멍게를 척삭동물문에 단단히 묶어둔다. 성체에게 척삭이 없다는 것과 한 번도 척삭이 없었다는 것은 다르다. 동시에 성체에게는 커다란 아가미 바구니와 여과섭식 체계 한 벌이 새로 생긴다.

둘째 경로는 몸집이 작아지는 것이다. 극소형화는 골격 구성 요소의 수를 반복해서 줄인다. 개구리 비교 연구에서는 몸집이 극히 작은 계통일수록 일부 머리뼈 조각과 발가락뼈, 손가락뼈를 잃거나 융합할 가능성이 높았다.

기제가 ‘쓰지 않는 기관을 선택이 지운다’는 것 하나뿐인 것도 아니다. 발생 공간의 부족, 발생 시점의 변화, 유생 형질의 지속, 기능의 재통합, 역학적 제약 모두 뼈 조각이 생기지 않게 하거나 아예 붙어 자라게 할 수 있다. 동물의 몸집이 작아질 때는 부품을 하나씩 꺼내는 것이 아니다. 전체 조립 과정을 더 작은 공간 안에서 다시 돌리는 것이다.

셋째 경로는 극한 환경이다. 심해 열수구의 관벌레는 성체에게 기능하는 입도 장도 없다. 몸속 공생 세균이 먹여 살린다. 세균은 황화물의 화학에너지로 유기물을 합성하고, 벌레는 세균에게 거처와 원료를 제공한다.

하지만 유생 단계에서는 잠시 소화관 구조가 생길 수 있고, 나중에 성체에서 사라지거나 재편된다. 또 같은 구도다. 성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유생이 말해준다.

심해어에서 드러나는 것도 특정한 축소이지 전반적인 하락이 아니다. 해구에 사는 꼼치류의 유전체에서는 시각 관련 유전자의 소실이나 퇴화가 보인다. 일부 초심해 종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군도 얕은 바다의 가까운 종보다 작다. 반면 압력 적응, 세포막 항상성, 화학감각의 다른 부분은 확장될 수 있다.

넷째 경로는 천적의 부재다. 섬에서 나는 능력을 잃는 일은 동물 대진화에서 가장 빈번한 구조적 소실 중 하나다. 조류의 절반이 넘는 목에 걸쳐 있으며 여러 번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세는 방식에 달려 있다. 독립 기원이 백여 차례라는 계산도 있고, 비행 능력을 잃는 방향으로 진화한 섬 계통이 1,000개가 넘는다는 계산도 있다.

그런데 2020년의 전 지구적 분석에서는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미 멸종한 섬새까지 넣으면, 역사 속의 비행 불능 상태는 오늘날 남은 수십 종의 날지 못하는 새만 보고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흔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날지 못하는 새가 이렇게 적은 주된 이유는, 대부분을 인간이 이미 멸종시켰기 때문이다.

기제의 측면에서 낮은 포식 압력은 가장 일관되게 나타나는 변수 중 하나다. 아직 날 수 있는 섬새들을 계통학적으로 비교하면, 섬의 포식자 종류가 적을수록 가슴근육이 줄고 뒷다리가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등 ‘비행 상실 방향’의 형태 변화가 뚜렷하다.

갑옷 쪽의 증거는 한층 더 단단하다. 큰가시고기의 담수 개체군에서는 골판과 가시가 반복해서 줄어든다. 실험에 따르면 특정 수서곤충이 포식자인 환경에서는 가시가 짧고 장갑이 빈약한 유전자형이 직접 유리해질 수 있다. 방어 구조의 순손실은 그저 방치돼 일어나기도 하지만,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다.

다섯째 경로는 물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개구리밥류의 여러 속을 늘어놓으면 하나의 순서가 나온다. 피층의 층수가 점차 줄고, 뿌리 조직이 크게 단순해지다가, 마지막에는 뿌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 동시에 복잡한 수면 생활과 빠른 클론 번식이 필요하다.

해초는 바다로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육상 환경과 관련된 유전자들을 반복해서 잃었다. 기공, 휘발성 신호, 에틸렌과 테르펜 대사 기능의 일부가 그런 예다. 동시에 바닷물 속에서 이온 항상성을 유지하고 해저에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새로운 능력 한 벌을 얻었다. 다섯 경로, 전혀 다른 다섯 원인인데 결과는 모두 순손실이다.

5 ‘복잡성’이라는 자

벌레 한 마리를 보자. 원래 몸마디가 100개였는데 나중에 20개로 줄었다고 하자. 부품 수는 감소했다. 그런데 그 20마디가 저마다 완전히 다른 기능 단위로 분화했다면 어떨까. 어느 것은 먹는 일을, 어느 것은 움직이는 일을, 어느 것은 번식을 맡는다면 부품의 분화도는 높아진 것이다.

같은 동물에게 일어난 같은 변화다. 한 자는 단순해졌다고 하고 다른 자는 복잡해졌다고 한다. 둘 다 잘못 잰 것이 아니다.

이 절에서 다룰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복잡성’은 측정할 양 하나가 아니라, 그중에서 골라야 할 여러 양의 묶음이다. 실제 측정에 쓸 수 있는 지표는 적어도 아홉 가지다.

가장 직관적인 것은 세포 유형 수다. 형태나 조직학적 특성, 유전자 발현 상태에 따라 반복해서 식별할 수 있는 세포 종류를 얼마나 구별해낼 수 있는지 센다. 사람은 대략 200여 종이고, 해면은 십여 종뿐이다. 이 자가 답하는 것은 ‘분화한 종류가 늘었는가 줄었는가’다. 유전자 수나 행동 복잡도, 생태적 연결망의 복잡도와는 모두 다른 문제다.

덧붙이자면 이 자가 정말 쓸 만해진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다. 세포 하나하나의 유전자 발현을 측정하는 기술이 성숙하면서 ‘세포가 몇 종류인가’는 눈으로 구별하던 문제에서 통계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됐다.

그다음은 가장 쉽게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형태적 부품 수로, 뼈 조각, 다리의 마디, 부속지 유형, 이빨, 몸마디처럼 하나씩 셀 수 있는 단위다. 다른 하나는 부품의 분화도로, 같은 수의 부품이 더 전문화됐는지를 묻는다. 앞의 벌레가 보여주듯 둘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나머지 자들은 각각 다른 층위를 잰다. 유전자 수와 유전자군 수가 재는 것은 유전자 목록의 규모다. 형태 복잡도와의 관계는 약하며, 유전자 중복과 선택적 스플라이싱, 조절에 따라 그 대응 관계가 달라진다. 조절망의 규모는 조절 층위에서 조직된 체계의 크기를 잰다.

발생 상태 수는 발생 경로가 얼마나 길고 얼마나 갈라지는지를 잰다. 계층 수는 부분과 전체가 몇 겹으로 포개져 있는지를 잰다. 정보이론적 측정은 서열에 환경에 관한 정보가 얼마나 담겼는지 계산한다. 이 아홉 자는 모두 실제로 쓸 수 있지만, 합쳐서 총점을 낼 수는 없다.

이 목록은 되는대로 적은 것이 아니다. ‘복잡도’를 서로 동등하지 않은 여러 유형으로 나누는 일 자체가 하나의 방법론적 주장이다. 서로 다른 구조와 과정은 따로 수량화해야 한다. 먼저 총점으로 합쳐놓고 추세를 찾아서는 안 된다.

아홉 항목 가운데 대진화 규모에서 체계적으로 통계가 잡힌 것은 몇 안 된다. 발생 상태 수는 특히 어렵다. 상태를 어떻게 나누는지가 관찰의 해상도에 크게 좌우되므로, 현미경이 한 세대 바뀌면 상태 수도 달라질 수 있다. 정보이론 항목은 사정이 반대다. 디지털 생명에서는 바로 계산할 수 있고 정의도 엄밀하다. 하지만 애초에 형태를 재는 지표가 아니다.

이 여러 자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유난히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갑각류 66개 분류군에서 연속으로 배열된 부속지가 얼마나 분화했는지 측정한 연구다. 원래 엇비슷하게 생긴 다리가 한 줄로 달려 있다가, 얼마나 여러 종류의 다리로 나뉘었는지를 잰 것이다. 여러 계통에서 복잡도의 광범위한 증가가 검출됐고, 연구자는 이를 ‘구동 추세’와 양립할 수 있는 드문 대규모 사례로 보았다.

갑각류의 다리에서는 복잡도가 실제로 올라가고 있다. 이번 글에서 몇 안 되는 긍정적인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적용되는 범위는 정확히 측정한 범위만큼이다. 특정한 분류군, 특정한 자다.

그러므로 2절의 일반 원칙은 여기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무엇이 더 복잡해졌다’는 문장을 읽으면 가장 먼저 물을 것은 ‘정말인가’가 아니라 ‘어떤 자로 쟀는가’다.

6 수동적 추세, 그리고 귀무가설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제 이번 글에서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쓸모 있는 절로 들어간다. 1994년, ‘평균 복잡도가 시간이 흐르며 올라간다’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다른 두 과정으로 나눈 연구가 나왔다.

구동 추세란 상태 공간의 대부분 영역에서 계통 내부에 복잡도가 늘어나는 쪽으로 지속해서 작용하는 힘이나 전환의 편향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하한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증가가 감소보다 체계적으로 더 많이 일어난다.

수동적 추세란 계통 자체의 변화에는 방향성이 거의 없고, 일부 구간에서는 감소 쪽으로 기울 수도 있는 경우다. 다만 출발점이 넘을 수 없는 하한선 가까이에 있다.

아래쪽 공간은 잘려 있지만 위쪽에는 같은 제약이 없다. 그러니 확산은 위쪽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할 수밖에 없고, 집단의 평균과 최댓값은 시간이 흐르면서 올라간다. 두 과정은 겉보기에 완전히 같은 곡선을 만들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수동적 추세의 기제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여러 계통이 허용되는 최소 복잡도 가까이에서 출발한다고 하자. 개개의 변화에는 방향이 없다. 올라갈 확률과 내려갈 확률이 같다. 하지만 아래쪽에는 벽이 있다. 어느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생물은 더 이상 생물일 수 없다.

따라서 아래로 향하는 돌연변이는 가로막혀 되돌아오지만 위로 향하는 쪽에는 같은 제약이 없다. 매번의 변화에 방향성이 없어도 분산이 퍼지면서 오른쪽 꼬리와 최댓값, 나아가 평균까지 시간이 흐르며 올라간다.

벽 하나와 무작위 보행만으로도 곡선은 방향을 가진 듯 보일 수 있다. 비유가 아니다. 수식으로 적을 수 있고 몬테카를로 모의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모형이다. 두 과정을 가르는 명확한 통계 방법도 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평균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하한선도 움직였는가’다. 구동 추세는 시간이 흐르며 최솟값도 올라갈 것으로 예측한다. 수동적 확산 모형에서는 최솟값이 고정된 하한선에 오래 붙어 있는 채로 평균과 최댓값만 올라갈 수 있다.

둘째는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조상과 후손의 짝을 비교하는 방법이다. 하한선 가까이에 있어 기하학적 제약 때문에 더 내려갈 수 없는 계통은 제외한다. 그래도 후손의 복잡도 증가가 감소보다 유의하게 많아야 구동 추세를 지지한다. 증가와 감소가 거의 균형을 이루거나 감소가 오히려 더 많은데 전체 분포는 높은 값 쪽으로 넓어진다면, 수동적 모형에 더 잘 들어맞는다.

셋째는 계통 내 분포의 왜도다. 하한선 근처의 조상에서 출발한 편향 없는 확산은 높은 값 쪽으로 길게 늘어진 우편향 분포를 만든다. 하한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소적인 부분 계통수에서는 왜도의 방향으로 보편적인 구동력과 경계 효과를 구별할 수 있다. 실제 결과는 어떨까.

1996년의 후생동물 종설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후생동물 전체에 대해 장기적인 상승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비교적 뚜렷한 신호는 주로 현생누대 초기와 복잡도의 특정 차원에 집중돼 있다.

현재까지 ‘모든 생물 분류군과 모든 복잡도 지표에 걸쳐, 시간이 흐르면 복잡도가 보편적으로 증가한다’는 널리 받아들여진 정량적 결론은 없다. 성립하는 것은 더 좁은 명제다. 어떤 분류군의 어떤 시간 구간에서는 특정한 자로 쟀을 때 분명 구동적 증가가 있다. 다른 자료에서는 수동적 확장만 보인다. 일관된 추세가 없는 지표도 많다. 이제 이 절에서 정말 얻어야 할 것에 도달했다.

귀무가설은 ‘복잡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여서는 안 된다. 더 엄격한 귀무가설은 방향 없는 무작위 변화에 알려진 경계를 더하고, 분기와 멸종 과정까지 더한 것이다. 반박하기가 더 어렵다. 바로 그래서 쓸모가 있다. ‘벽이 만들어낸 모양’을 먼저 빼주기 때문이다.

경계에서 멀어져도 증가 편향이 남거나 최솟값이 계속 올라가는 등 관측이 모형에서 지속적으로 벗어나면 계통을 가로지르는 동인을 검토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표본 편향과 모형이 빠뜨린 조건도 살펴야 한다. 귀무모형 하나를 기각했다고 생명에 상승 동력이 내장되어 있음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왕이면 ‘최솟값은 그대로인데 최댓값은 올라간다’는 관찰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적어두자. 곧잘 다른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뜻은 실현 가능한 복잡도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진화가 이전에는 없었던 높은 복잡도의 영역을 차지했으면서도 가장 낮은 쪽은 여전히 오래 존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한 생명체가 복잡한 생명체에 밀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생물은 여전히 널리 존재하며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다만 탄소량으로 추정한 지구 생물량은 식물이 가장 크므로, 생물량을 가장 단순한 형태가 대다수라는 증거로 쓸 수는 없다.

이 차이는 기술적인 세부사항이 아니다. 같은 상승 곡선을 ‘진화는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읽어야 하는지, ‘진화는 벽 옆에서 무작위 보행을 한다’고 읽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7 잃은 것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먼저 거의 일어나서는 안 될 법한 일 하나를 보자. 대벌레는 제 몸을 나뭇가지처럼 위장하는 곤충이다. 2003년에 그 계통수를 재구성한 연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대벌레의 조상은 먼저 날개를 잃었고, 나중에 적어도 몇몇 계통에서 날 수 있는 날개가 다시 생겼다.

기관 한 벌을 통째로 잃었다가 한참 뒤에 다시 만들어낸다. 널리 통용되는 설명대로라면 애초에 가능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설명을 돌로의 법칙이라 한다. 흔히 ‘복잡한 구조는 한번 잃으면 절대로 다시 얻을 수 없다’고 인용한다. 그러나 19세기 말 처음 제시됐을 때의 표현은 훨씬 온건했다. 생물은 이전의 조상 상태로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같은 길을 되짚어 돌아가지는 않는다’와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강도가 다른 주장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례는 개구리다. 현생 개구리 상당수는 위턱에 이가 있으며, 거의 모든 개구리는 아래턱 이가 없다. 그런데 어떤 분석은 이렇게 주장했다. 개구리의 공통 조상에서 아래턱 이빨이 사라졌고, 약 2억 년 뒤 어떤 계통에서 다시 생겨났다는 것이다. 2억 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공룡이 등장해서 퇴장하기까지 걸린 전체 시간보다 길다.

두 사례 모두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틀렸을 수 있는 방식도 같다. 조상 상태를 재구성하는 일 자체가 가짜 ‘재획득’을 만들 수 있다. 잘못 설정한 뿌리 상태, 비대칭적인 다양화율, 부적절한 전환 모형은 모두 독립적인 획득 한 번을 ‘먼저 잃고 나중에 회복한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돌로의 법칙에 대한 예외를 주장하려면 재획득을 허용하는 모형과 허용하지 않는 모형을 모두 계산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척도를 줄여 유전자 수준으로 내려가면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있다. 이번 글에서 가장 실용적인 숫자 중 하나다.

1994년의 한 추정에 따르면, 기능을 잃은 유전자나 꺼진 발생 프로그램은 약 50만~600만 년 동안 복귀 돌연변이 한 번으로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상당히 남아 있다. 하지만 중립적 돌연변이가 계속 쌓일수록 필수적인 모든 위치가 온전하게 남아 있을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이는 돌연변이율과 기능적 제약에 관한 가정에 따른 추정이지, 모든 발생 프로그램에 공통된 유효기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가역적’이라는 것은 확률적인 말이지 절대적인 말이 아니다. 대략의 유통기한이 있는 셈이다.

표현형이 막 사라졌을 때는 그것을 만드는 많은 유전자가 다면발현 때문에 여전히 선택을 받고 있을 수 있다. 조절 스위치 하나만 꺼진 것일 수도 있다. 이때 다시 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3절의 이식 실험이 바로 그런 상태다. 동굴어에게는 이미 눈이 없지만, 지표형의 수정체를 안배에 넣어주면 눈이 여전히 자랄 수 있다.

반면 수백만에서 수천만 년이 흐른 뒤, 그 구조에만 쓰이던 유전자 다수가 이미 위유전자가 되거나 삭제되고 발생 과정의 상호작용까지 무너졌다면, 완전히 같은 경로를 따라 회복하기는 급격히 어려워진다.

‘생명 계통수 전체에서 소실과 획득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라는 물음에는 아직 믿을 만한 단일 비율이 없다. 여기에는 2절의 일반 원칙을 멋지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유전자군은 각각 한 번만 획득할 수 있고, 그 뒤에는 잃을 수만 있다’고 강제한다고 하자. 돌로 절약법이라는 방법이다. 그러면 조상의 유전자 목록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재구성되고, ‘소실 수만 번 대 획득 천 번 미만’ 같은 극단적인 모양이 나타난다.

이 비율은 무엇보다 그 규정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결론이 아니다. 재획득을 허용하는 모형으로 바꾸면 같은 자료에서 완전히 다른 비율이 나올 수 있다.

이제 1절에서 답을 끝내지 못한 물음으로 돌아가자. 형태가 단순한 계통은 왜 자꾸 계통수 밑동에 놓이는가.

점액포자충류는 가장 온전한 역사적 사례다. 그 정정은 약 한 세기에 걸친 분류의 전통을 넘어섰다. ‘중생동물’이라는 이름도 그 자체로 화석이다. 직유동물과 이배충의 단순한 구조는 한때 원생생물과 동물 사이의 원시적인 상태로 해석됐다. 이름에도 그 생각이 쓰여 있다. ‘중간의 동물’이다.

2018년 긴 가지 끌림을 통제한 분석에서는 직유동물을 환형동물 안에 넣었다. 지렁이와 갯지렁이가 속한 바로 그 문이다. 미세융모가 있는 큐티클층과 반복 배열된 환상근, 등 쪽 신경절이 아직 남아 있는데, 단순화한 계통에서 위치를 짚는 데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형태적 단서다. 이배충은 세포가 수십 개에 불과하다. 분자 자료는 이들을 나선동물 안에 놓으며, 유전체에서는 호메오박스 전사인자, 한 종류의 막관통 신호 수용체, 신경·근육 관련 유전자군이 모두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올바른 표현은 ‘좌우대칭동물의 한 계통에서 몸 설계의 대대적인 단순화가 일어났다’다. ‘좌우대칭동물이 나타나기 전의 살아 있는 화석’이 아니다.

이 논쟁은 오늘도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동물 계통수의 맨 아래 분기점에 걸려 있다.

해면과 빗해파리 논쟁이 묻는 것은 이것이다. 나머지 동물에서 가장 먼저 갈라져 나온 쪽은 해면인가, 빗해파리인가. 이름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다. 신경과 근육, 소화 기능, 세포 유형의 조상 상태 재구성이 직접 달라진다.

2023년에는 형식부터 특별한 증거가 나왔다. 동물들과 그에 가까운 단세포 생물들에 걸쳐 오래된 유전자 연관 관계를 비교한 결과, 해면·자포동물·좌우대칭동물이 공유하는 일련의 염색체 융합과 혼합 패턴이 확인됐다. 빗해파리는 그 자리에서 조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를 근거로 빗해파리가 나머지 동물의 자매군이라는 해석을 지지했다. 이처럼 드문 유전체 구조 사건은 이론적으로 빠르게 치환되는 서열 위치보다 우연히 같은 모습이 될 가능성이 작다.

그렇다고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뿌리의 위치는 모형, 긴 가지, 표본과 유전자 선택에 영향을 받는다. 해면을 지지한 2025년 논문은 분석 오류가 확인되어 2026년 철회되었다. 이는 특정 분석을 바로잡는 일이지, 철회 하나로 논쟁 전체의 승패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2026년에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미결 문제가 무엇을 바꿀까. 빗해파리가 먼저 갈라졌다면 신경계에는 적어도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공통 조상에게 이미 신경계가 있었고, 해면과 어쩌면 판형동물에서도 나중에 대규모 이차적 소실이 일어났을 수 있다. 또는 빗해파리의 신경계와 나머지 동물의 신경계가 각각 독립적으로 생겼을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잃었는가’라는 결론보다 계통수의 위치가 먼저다.

판형동물 자체도 경고다. 몸이 납작하고, 전통적인 의미의 뉴런과 근육, 장, 뚜렷한 기관이 없다. 초기에는 바로 그 단순한 형태 때문에 흔히 계통수의 뿌리 가까이에 그려졌다. 그러나 분자 분석과 계통유전체 분석에서는 해면과 빗해파리 뒤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동물의 몸축 형성에 관련된 일부 보존된 유전자가 그 단순한 몸 안에서 여전히 조직적으로 발현된다는 점이다. 뚜렷한 기관이 없다고 복잡한 발생 조절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두 원칙을 함께 적어야 한다. 첫째, 형태가 단순하다는 것을 계통학적으로 조상에 가깝다는 뜻으로 바로 읽어서는 안 된다. 둘째는 반대 방향이다. 단순한 모든 것을 소실로 설명해서도 안 된다.

이 절에서 실제로 얻어갈 것은 곧바로 쓸 수 있는 점검 목록이다. 어떤 계통에 이차적 단순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하려면 다음 네 가지 적극적 증거 중 적어도 하나는 내놓아야 한다. 계통수가 그 계통을 해당 형질을 가진 조상 집단 안에 위치시킨다.

발생 단계에 상동 구조가 아직 남아 있다. 몸에 그 구조 특유의 유전자나 위유전자가 남아 있다. 또는 조상 상태 재구성이 조상에게 그 구조가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지지한다.

이 네 가지가 바로 1절의 두 사례에서 쓴 증거다. 점액포자충류는 첫째와 셋째에 기대었다. 계통수의 위치, 그리고 자포낭 특유의 두 종류 유전자다. 근두류는 둘째에 기대었다. 성체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지만 유생이 분명하게 말해준다. 네 가지를 하나도 내놓지 못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생 형태가 단순하다’뿐이다.

8 기준을 거꾸로 적용하기, 그리고 귀무가설 속의 잔여항

이제 이번 글이 닿으려던 곳에 왔다. 10편에서는 계층 전환이 일어났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 세 질문으로 이뤄진 기준이다. 원래 독립적으로 복제할 수 있던 단위가 독립 번식 능력을 잃었는가.

적합도를 하나로 묶어 짊어지는 새로운 번식 실체가 생겼는가. 하위 단위 사이의 충돌이 체계적으로 억제됐는가. 세 가지가 모두 성립해야 계층 전환이라 부른다.

이번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뺄셈을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생긴다. 그 뺄셈 중 어느 하나라도 이 기준의 역방향에 해당하는가.

세 질문을 뒤집어보자. 하위 단위가 독립 번식 능력을 되찾았는가. 하위 실체가 다시 적합도를 하나로 묶어 짊어지게 됐는가. 상위 단계가 세운 충돌 억제가 체계적으로 풀렸는가.

읽는 동안 조바심 내지 않도록 결과부터 말하겠다. 후보 다섯 중 점수를 얻은 것은 둘뿐이고, 둘 다 만점은 아니다. 이제 각각 어디에서 걸리는지 하나씩 보자.

첫째와 둘째는 함께 판정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를 완전히 잃은 진핵생물, 그리고 이미 통합된 세포내공생체를 통째로 잃어버린 경우다.

미토콘드리아를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교과서의 ‘진핵세포에는 모두 미토콘드리아가 있다’는 문장에 예외가 있다는 얘기다. 한 설치류의 장에서 발견된 단세포 생물은 유전체에서 미토콘드리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역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유도 같다. 미토콘드리아든 통합을 마친 공생체든, 그 전환이 완료된 뒤에는 이미 숙주 세포를 떠나 자유롭게 번식할 수 있는 다윈적 개체가 아니었다.

그것을 통째로 지운다고 조상이 다시 자유생활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번식과 적합도를 짊어지는 것은 여전히 숙주 세포다. 충돌 억제가 풀린 것도 아니다. 관련된 하위 단위가 아예 없어진 것이다.

판정은 둘 다 3개 중 0개다. 정확한 표현은 ‘고도로 통합된 부품 하나에서 이차적 소실이 일어났다’다. 통합을 마친 동반자 하나를 지우는 것과, 이미 합쳐진 두 다윈적 개체를 각각 독립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두 실체로 다시 나누는 것은 다르다.

셋째는 유성생식의 소실로, 자연에서 드물지 않다. 민들레에는 수정 없이 씨앗을 만드는 무수정생식 계통이 많다. 하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민들레도 있으므로, 길가에서 날아가는 모든 씨앗을 같은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양성의 결합을 포기했다고 계층이 역전되지는 않는다. 원래 하위 부품으로 억눌렸던 어떤 번식 단위가 그로 인해 독립 번식을 되찾은 것이 아니다. 생물 개체는 여전히 적합도의 담지자다.

판정은 3개 중 0개다. 유성생식의 소실은 중요한 진화적 전환에서 형질이 반대 방향으로 변한 것이지, 개체성의 계층적 상전이가 뒤집힌 것은 아니다.

넷째는 진사회성 계통이 단독 생활로 돌아가는 경우다. 여기서부터 점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꼬마꽃벌류에 바로 그런 자료가 있다. 같은 분류군 안에 진사회성 종도 있고 혼자 사는 종도 있다. 계통수는 후자가 전자에서 되돌아간 것임을 보여준다.

많은 진사회성 곤충의 일개체는 원래 생식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번식이 억제돼 있을 뿐이다. 어떤 계통에서 일개체 계급이 사라지고 단독 생활이 돌아왔다고 해도, 그저 ‘일개체 계급이 없어졌다’는 뜻일 수 있다. 번식 능력을 잃었던 바로 그 하위 단위가 능력을 되찾았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단독 생활 계통에서는 둘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진사회성 조상에서도 곤충 한 마리는 줄곧 생리적 개체였다. 선택 단위의 역전임을 입증하려면, 조상 군체 자체가 먼저 초개체라는 의미의 상위 다윈적 개체에 도달했음을 보여야 한다. 셋째 질문은 이론상 성립해야 하지만 실증이 필요하다.

판정은 대략 3개 중 1~2개다. 조상 단계의 체제에서 의무적으로 불임인 일개체과 명확한 군체 번식 단위를 갖춘 초개체에서 단독 생활로 돌아온 경우여야 세 가지 모두를 충족할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는 이차적 단세포화다. 가장 가까이 다가간 유형이며, 실험실에서도 해볼 수 있다. 효모를 선발·육종해 덩어리로 자라는 다세포 형태로 만든 다음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지 보는 것이다.

정말로 개체성 전환을 마친 클론성 다세포체의 구성 세포가 이미 혼자서는 생활사를 완수할 수 없었는데, 후손 계통에서 단세포 번식이 회복됐다면 첫째 질문이 성립한다. 번식 병목이 다세포 번식체에서 단일 세포로 돌아가고 선택 단위가 실제로 세포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면 둘째도 성립한다. 셋째가 가장 어렵다. 상위 단계 특유의 생식 분업, 병목, 세포 접착 의존성, 세포자멸사처럼 다세포성을 안정시키는 ‘래칫’이 해체됐음을 보여야 한다. 생활사에 단세포 단계 하나가 추가됐다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판정은 엄격한 기준에서 보통 3개 중 1~2개다. 일부 실험계에서는 원칙적으로 세 가지 모두를 충족할 수 있지만, 선택 단위와 충돌 억제를 직접 측정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 후보 다섯 중 셋은 문밖에서 막혔고, 둘은 부분적으로 통과했다.

이 결과는 이 시리즈가 제 입맛대로 고른 것이 아니다. 2026년에는 이미 ‘개체성의 진화적 전환과 역전’이라는 틀로 같은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는 문헌이 있다. 내부 충돌이 다시 강해지면 집단을 상위 개체성에서 뒤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제공하는 것은 이론과 모형의 틀이지, 이미 완성된 자연사 사례 목록은 아니다. 진짜 역전 사례는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이번 글에 나온 순손실의 절대다수는 눈, 날개, 소화관, 색소체 유전자, 신경 구조, 기생자의 몸 설계 전체까지, 형질이나 기능을 바꾸지 주된 선택 단위를 바꾸지는 않는다. 조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화 폭이 커도 같은 계층 안의 변화다. 진짜 역전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중대한 전환 자체가 래칫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쉬운 예가 단세포 병목이다. 많은 다세포 생물은 세대마다 세포 하나에서 시작하므로 이후의 세포들이 매우 가까운 유전적 기원을 공유한다. 이는 내부 차이와 갈등을 줄이지만 완전히 없앤다는 보장은 아니다. 발생 중에도 돌연변이가 생기고, 세포가 전체의 이익에 어긋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이 한번 자리 잡으면 구성 세포는 몸을 떠나 혼자 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생식 분업, 상호 의존, 되돌릴 수 없는 유전자 소실, 발생 조절이 모두 같은 종류의 래칫이다.

처음에는 되돌릴 수 있었던 집단 협력을 해체하기 어려운 상위 개체로 바꿔놓는다.

그러므로 진짜 역전에는 적어도 서로 반대인 두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하위 단위는 자율적으로 복제하고 생태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충분히 되찾아야 한다. 상위 단계의 유전·번식·충돌 억제 구조는 작동하지 않게 돼, 하위 적합도가 상위 적합도에서 다시 분리돼야 한다. 상위 단계의 부품 하나를 지우기만 해서는 이 두 가지를 이룰 수 없다.

여기서 기준의 쓸모가 드러난다. 모든 사례를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변화를 구별해야 한다. 셋을 배제하고 둘만 부분 통과시킴으로써 ‘상전이’는 단순히 ‘무언가 변했다’와 다른 뜻을 유지한다. 그러나 많이 배제했다고 옳은 기준은 아니다. 기준 자체도 반례와 측정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이제 목적론을 걷어내자. 이번 글은 자칫 또 다른 목적론으로 읽히기 가장 쉽다.

2절에서 말했듯 기생자는 전체 동물 종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화라는 길은 결코 드물게 나타나는 실패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고 반대편의 더 강한 주장, ‘기생은 다양화율을 보편적으로 높인다’도 성립하지 않는다. 기생 계통을 자유생활하는 자매군과 짝지어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기생 집단의 종분화 잠재력이 자유생활하는 가까운 집단보다 높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 기생동물의 엄청난 종수는 특별히 성공한 소수의 방산이 주로 만들어낸 것이다. 기생이 생겨날 때마다 폭발이 촉발된 것은 아니다.

점액포자충류의 비교는 여전히 유용하다. 기재된 종만 이미 2,180종이 넘는다. 반면 계통유전체상 자매군인 폴리포디움은 단일 종 수준의 아주 작은 계통이다. 이것으로 ‘단순화가 높은 다양화를 낳는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두 계통은 나이도, 숙주를 만날 기회도, 지리적 확산도, 연구된 정도도 다르다. 다만 더 강한 주장 하나는 반박할 수 있다. 거대한 순손실을 겪은 계통은 반드시 진화의 막다른 길이라는 주장이다.

단순화는 실패와 같지도 않고 방산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결과는 계통에 따라 매우 다르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에서 잔여항 목록에 보탤 것을 보자.

같은 구도가 이번 글에서 세 번 나타났다. 첫째는 6절의 ‘복잡도가 시간이 흐르며 증가한다’였다. 귀무가설을 ‘복잡도는 일정하다’로 잡으면, 넘을 수 없는 하한선만으로 생겨난 방향 없는 확산을 어떤 구동력으로 읽게 된다.

둘째는 7절의 ‘소실이 획득보다 수십 배 많다’였다. 귀무가설을 돌로 절약법으로 잡으면, 그 비율은 무엇보다 모형의 산물이다. 셋째도 7절이다. ‘이것은 돌로의 법칙에 대한 예외다.’ 귀무가설에 ‘독립적인 획득 한 번을 소실 뒤 회복으로 잘못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들어 있지 않으면 가짜 재획득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 번 모두 똑같다. 관찰된 그 ‘방향’은 자료 속이 아니라 명시하지 않은 대조 모형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열네 번째 유형이다. 잔여항은 귀무가설 속에 있다.

이것은 13편의 ‘잔여항은 설명 자체에 있다’와 구분해 기록해야 한다. 그 유형의 잔여항은 설명의 틀에 딸려온다. 틀을 바꾸면 다른 잔여항 묶음이 따라온다.

이번 유형의 잔여항은 설명 안에 있지 않다. 설명을 비교하는 기준선에 있다. 그리고 그 기준선은 대개 아예 쓰여 있지도 않다. 하나는 드러난 곳에, 다른 하나는 어두운 곳에 있다.

여기서 이번 글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오래 쓸 수 있는 원칙 하나를 세울 수 있다. 추세든 비율이든 예외든 보고를 받으면, 먼저 무엇과 비교한 것인지 물어라. 답할 수 없다면 그 결론이 말하는 것은 세계가 아니다. 써놓지 않은 그 모형이다.

이번 글에서는 상전이를 역방향으로 판정했고, 결과는 절대다수가 부적격이었다. 그 판정 기준을 거꾸로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뺄셈은 계속 일어나며 때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거의 언제나 바뀌는 것은 형질이지 계층이 아니다. 세포가 몇 개밖에 남지 않은 동물도 여전히 자포동물이다.

몸이 줄었다고 물어볼 역사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구세계에 널리 퍼졌다가 지역마다 다르게 물러난 유인원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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