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 페이지에서는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거대한 수조 하나.
옅은 색의 액체 속에 몸들이 줄지어 잠겨 있다. 전부 같은 소녀의 모습이다. 전부 알몸이고, 전부 입을 벌리고 있다. 얼굴에는 뭐라고 말하기 힘든 표정이 떠 있다.
아카기 리츠코가 신지와 미사토를 아래로 데려가 보여 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소녀는 지금 위층에서 멀쩡히 살아 있다. 두 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료다.
신지는 수조를 바라본다. 그는 이미 그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밥을 먹었으며, 불 속에서 업고 나온 적도 있다.
그가 지금까지 알던 한 사람이, 여기서는 한 번에 생산된 한 묶음이다.
작동 방식
먼저 작품이 보여 주는 것과 그것을 설명하려고 우리가 구성하는 절차를 구분해 두자. 지하에는 여분의 몸이 있다. 두 번째 레이는 제16사도와 싸우다 죽고, 그 뒤 신지 앞에 나타난 레이는 자신이 세 번째라고 말한다. 유이와 릴리스와의 관계도 이 수수께끼의 일부다. 그렇다고 제조 과정 전체를 설명하는 기술 문서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시설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읽을 수 있다. 몸을 준비해 둔다. 빈자리를 채운다. 파일럿을 다시 쓸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영혼을 회수한다’, ‘기억을 설치한다’까지 덧붙이면 이미 하나의 설명 모형이 된다. 작품은 그 모든 공정을 보여 주지도, 기억이 저장된 정확한 시점을 정해 주지도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배치만으로도 동사에 주목할 수 있다. 만든다, 보관한다, 교체한다. 모두 실행하는 사람이 있다. 몸과 레이가 쓰일 자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 설명서가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을 쓴 사람은 레이가 아니라 레이를 관리하는 쪽일 것이다.
레이가 부활한 것이 아니다. 세 번째 아야나미 레이가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작품의 설정이다. 두 번째 아야나미 레이는 제16사도와 싸우다가 자폭한다. 그 뒤에 나타나는 레이는 세 번째다.
기억과 함께 보낸 시간은 같지 않다
신지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관계가 끊겼다는 사실이다. 신지는 레이가 자신을 구해 준 일을 기억한다. 그러나 눈앞의 레이는 그 일을 자기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래된 저장 상태로 돌아간 것 같다고 비유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작품이 정확한 백업 시점을 알려 준 것은 아니다. 무엇이 전해지고 무엇이 전해지지 않았는지를 그렇게 간단히 목록으로 만들 수는 없다.
같은 얼굴을 같은 자리에 돌려놓는다고, 두 사람 사이에서 자란 것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 대목은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신지는 두 번째 레이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웃는 모습을 보았고, 레이를 위해 달렸고, 레이 때문에 다치기도 했다. 그 만남들은 레이에게 무언가를 남겼다. 표정과 감정이 생겼고, 자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저 설치된 것이 아니었다. 자라난 것이었다.
그리고 레이는 죽었다. 세 번째가 나타났을 때 신지는 그 시간의 다음 장을 당연하다는 듯 이어 갈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세 번째 레이가 흘리는 눈물 역시 완전히 빈 저장 장치라는 비유에 들어맞지 않는다. 작품은 관계의 단절과, 어디서 왔는지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움직임을 함께 남겨 둔다.
신지에게 그 일들은 분명 일어났다. 같은 얼굴, 같은 이름, 같은 말투를 가진 사람이 앞에 있다. 하지만 닮았다는 사실이 전과 똑같이 자신을 알아봐 줄 권리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과거에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기서 보려는 상실은 저장 날짜의 문제가 아니다.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과 두 사람의 관계가 돌아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레이는 원래 어떤 존재였나
레이가 처한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보자.
과거의 기록은 전부 지워져 있다. 과거 이력이 모두 말소되었다고 작품은 분명히 말한다.
처음 등장할 때 레이는 붕대를 감고 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이 적고, 늘 표정이 없다.
처음에는 이카리 겐도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연다. 그러다 신지와 만나 관계가 생기고, 조금씩 여러 감정을 드러내면서 그 자아가 싹트기 시작한다.
아스카는 레이를 인형이라고 부른다.
아스카가 그 말을 쓰는 데는 악의가 있다. 하지만 사실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레이는 실제로 만들어졌고, 실제로 여분이 있고, 실제로 교체할 수 있으며, 삶의 내력과 쓰일 자리까지 다른 사람이 관리한다.
작품은 그 호칭을 반박하는 사람도 내세우지 않는다. 누군가 나서서 “인형이 아니야. 레이에게도 감정이 있어”라고 말하게 하지 않는다. 그저 아스카는 그렇게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한마디
그런데 구극장판에서 레이는 한마디를 한다.
상황은 이렇다. 레이는 겐도 곁에 있고, 겐도는 자기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려 한다. 그때 레이가 신지의 격한 감정에 반응한다.
말의 뜻을 옮기면 이렇다. 나는 당신의 인형이 아니에요.
그러고는 겐도를 저버리고 떠난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이 작품에서 정말로 여분의 몸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여기에 평을 붙이기 전에, 무엇을 말하는지부터 정확히 보자.
“나는 당신의 인형이 아니에요”라는 말은 다른 누구의 입에서 나오든 존엄을 주장하는 말이 된다. 하지만 레이의 입에서 나오면, 사실에 비추어 성립시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몸은 양산되었고, 삶의 내력은 남이 관리하고, 영혼은 누군가가 봉입했다.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층위에서 레이는 ‘인형’이라는 말의 정의에 들어맞는다.
몸은 양산품이고, 기억은 남이 관리하고, 영혼마저 누군가 집어넣은 것이라면, “나는 당신의 인형이 아니에요”라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성립하는가?
작품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일을 한다. 레이가 그 말을 하게 하고, 그대로 행동하게 한다. 레이는 자신을 만들어 낸 사람을 떠난다.
작품은 레이가 무엇을 근거로 그러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서서 “봐, 그래도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잖아”라고 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레이는 말하고, 떠난다.
나중에 알게 된 것
한 가지를 더 짚어 두어야겠다.
세 번째 아야나미 레이는 나기사 카오루와 접촉하면서 자신이 인간보다는 사도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야기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인형이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은 그 뒤다.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이미 확인한 사람이 “나도 인간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두 말은 같지 않다. 앞의 말은 소속을 얻으려는 말이다. 뒤의 말은 어떤 소속을 거절할 뿐이다.
작품이 선택한 것은 뒤의 말이다.
이 팀에는 세 번째 파일럿도 있다.
그 아이의 자리를 떠받치는 것은 여분의 몸이 아니다. 숫자 하나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