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 페이지에서는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조종석에는 싱크로율이라는 수치가 뜬다.
파일럿과 기체가 얼마나 잘 맞는지를 재는 값이다. 높으면 기계가 잘 움직이고, 낮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 선 아래로 내려가면 아예 기동하지 않는다.
이 숫자는 매번 측정되고, 기록되고, 비교된다.
하지만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에게 이 숫자는 단순한 지표가 아니다.
아스카의 자리
먼저 아스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이야기하자.
아주 어릴 때 파일럿이 되었고, 대학도 유난히 일찍 졸업했다. ‘신동’이라는 말로도 모자랄 이력이다.
자부심이 강하고, 목소리가 크고, 승부욕이 세다. 누구를 만나든 위에 서려고 한다. 이 팀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선언하고, 곧 멋진 전투로 그 말을 증명한다.
말하는 방식부터 그렇다. 무슨 일이든 먼저 우열을 가려야 한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까지도.
그 자부심은 허세가 아니다. 실제로 강하다. 전투 기술도, 반응도, 판단도 뛰어나다. 오랫동안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쓸 만한 파일럿은 아스카다.
문제는 그것이 아스카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아스카에게 ‘EVA를 조종하고 뛰어난 성과를 내는 일’은 자신의 존재 이유 전부다.
과장이 아니다. 작품에서 아스카가 자신을 확인하는 방식은 언제나 이 길을 따른다. 나는 강하니까 여기에 있다. 나는 이겼으니까 나다.
아스카의 자리는 숫자 하나가 떠받치고 있다.
어머니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작품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보기 괴로울 만큼.
어머니 소류 쿄코 체펠린은 2호기 접촉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 이후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인형 하나를 자기 딸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스카는 바로 옆에 있다. 살아 있고, 말을 하고, 엄마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머니는 인형을 안고 그 인형에게 말을 건넨다.
나중에 어머니는 자살한다.
발견한 사람은 아스카다.
이 장면이 이 글의 토대다.
아이를 누구보다 먼저 보아 주어야 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인형을 보고 있다. 아이는 그곳에 서 있고, 말을 하고, 울고, 소리친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의 눈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무시당한 것과는 다르다. 무시당했다면 적어도 상대가 다른 곳을 본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보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른 것이다.
아이는 이렇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내가 최고가 되겠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잘하겠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은, 자신을 보아 주지 않은 한 사람에게서 출발했다.
숫자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후 제15사도가 나타난다.
그 싸움의 공격은 정신을 향한다. 아스카의 마음이 속부터 뒤집힌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이 하나씩 들춰진다.
그 뒤로 싱크로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 그다음에는 좀 더 많이. 그러다 2호기가 기동하지 않을 만큼 떨어진다.
아스카는 조종석에 앉아 있다. 기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치고, 욕하고, 울고, 사과하고, 애원한다. 기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 전부를 떠받치던 것은, 내려갈 수도 있는 숫자였다.
가장 괴로운 점은 조급해질수록 숫자가 더 빨리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 숫자가 측정하는 것은 정신 상태이고, ‘내 수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 상태는 더 나빠질 수 있다.
스스로를 물어뜯는 악순환이다. 아스카는 여러 에피소드 동안 그 안에 갇혀 있다.
여기에 더 괴로운 층위가 있다. 이 숫자는 공개되어 있다. 측정되고, 기록되고, 화면에 표시되어 모든 동료의 눈에 들어간다.
아스카가 추락하는 과정 전체가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진다.
도우려는 손길이 사태를 악화시킨다
작품은 이 대목을 차갑게 다룬다.
아야나미 레이가 조언한다. 하지만 불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된다. 하필 그 ‘인형’의 입에서 나온 말이고, 상대의 수치는 자기보다 높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이 추락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신지는 아스카를 구해 준 적이 있다. 이쪽은 더 나쁘다. 구조받았다는 것은 혼자 임무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확인받는 일이다.
미사토는 아스카를 걱정한다. 하지만 아스카가 원하는 것은 걱정이 아니다.
아스카의 계산법으로는 누가 잘해 주든 같은 뜻이 된다. 이제 너는 남이 잘해 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
자기 가치를 전부 성과에 건 사람에게 도움과 판결은 같은 것이다.
작품은 누구에게도 올바른 말을 찾아내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한 명씩 시도하고, 한 명씩 상황을 더 망쳐 놓은 뒤, 각자 자기 일을 하러 가게 할 뿐이다.
욕조에 누워 있다
이후 아스카의 모습은 이렇다. 밖에 나가지 않고, 말을 하지 않고,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물이 식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선언하던 사람이 여기까지 온다. 그 사이가 대략 열 편이다.
그동안 아스카가 잘못한 일은 없다. 누구를 배신하지도, 해치지도 않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숫자가 내려갔을 뿐이다.
되찾은 것
구극장판에서 아스카는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시 일어선다.
어떤 싸움에서 이겨서도, 누군가의 설득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어서도 아니다.
어머니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줄곧 2호기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접촉 실험 뒤 어머니의 일부가 기계 안에 남았고, 바로 그 기계를 자신이 오랫동안 조종해 왔다.
인형을 끌어안고 자신을 보지 않던 그 사람이 사실은 계속 곁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던 자리에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 순간 아스카는 회복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멋진 전투를 치른다.
싸움이 끝나자 양산형 기체들이 둘러싼다.
그것을 막 되찾았는데, 곧바로 잡아먹힌다.
작품은 이 장면에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패전이 아니라 처형이다. 2호기는 찢기고, 관통당하고, 먹힌다.
그 숫자 바깥
이 글의 마지막에서는 작품이 말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아스카에게 조종 밖의 삶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히카리의 집에서 게임을 하고, 히카리에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들은 자기 가치를 받쳐 줄 다른 자리가 되지 못했다.
작품은 그런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아스카가 싱크로율에 기대지 않고도 설 수 있는 자리를 찾게 하지는 않는다. 보살핌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마음을 “조종을 잘하지 못해도 여기에 있어도 돼”라는 말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절망적인 순간, 아스카 자신이 외친 말도 “그 숫자 따위 필요 없어”가 아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런데 이 모든 체계를 설계한 사람이 원한 것은 아주 구체적인 무언가였다.
권력도, 질서도, 인류의 미래도 아니다.
한 사람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