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 · 02
법원이 판단했다. 누가 실행하는가
가을까지 선거를 치르라는 판결이 나왔다. 집정원은 법원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선거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마지막 심급은 무엇을 끝내고, 무엇을 남기는가.
판결이 나온 다음 날, 수석집정관은 말했다. “집정원은 최종심법원을 존중한다.” 그 뒤에 한 문장이 더 붙었다. 의회가 전시 상태를 끝내기 전에는 선거명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모호하지 않았다. 휴전이 발효했으므로, 선거를 미루는 조항에서 말하는 전시는 휴전까지로 보아야 하며, 늦어도 그해 가을에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찬성 여섯, 반대 다섯. 다섯 법관의 이유도 기록에 남았다.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문구를 다시 쓰는 일이라는 의견이었다. 집정원은 소수 의견에 동의했고, 다수가 내린 유효한 판결은 실행되지 않았다.
여전히 가상의 목적연합도시국 이야기다. 이곳의 최종심 법관은 열한 명이며 헌장 사건은 전원이 심리한다. 헌장에는 판결이 모든 기관을 구속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기관이 실행을 거부하면 누가 대신할지는 적혀 있지 않다. 지난해 겨울에 임기가 끝났어야 할 의원들과 수석집정관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왕국주와 남완주의 선거위원회는 기존 선거구를 이용해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집정원은 구성 지역에는 국가 차원의 선거를 실시할 권한이 없다고 회신했다. 선거는 열리지 않았다. 이듬해 여름 철군협정이 발효한 뒤 의회가 새 날짜를 정했고, 그해 가을에야 선거를 치렀다. 1년이 늦었다.
종이 위에서만 벌어진 해석 다툼이 아니다. 그 1년 동안, 원래라면 선거를 통해 의원에게 답을 요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질문할 기회 한 번을 잃었다. ‘마지막’ 판단이 패소한 쪽의 동의를 기다려야 효력이 있다면, 마지막 거부표는 법원이 쥔 것이 아니다.
끝나는 것은 한 사건이지, 앞으로의 모든 질문이 아니다
물론 법원을 언제나 옳은 곳으로 만들 수는 없다. 반대한 다섯 법관이 중요한 문제를 짚었을 수도 있고, 판결이 정말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릴 수 있다’와 ‘패소한 기관이 집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어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기관이 자기 해석을 찾아, 판결의 효력을 마지막으로 켜고 끄는 자리에 스스로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효하고 집행해야 할 판결은 집행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공개적으로 이유를 밝히고, 앞으로의 규칙을 바꾸자고 제안할 수 있다. 그대로 실행하면 누군가를 해치고 기본적인 경계를 넘는다고 생각할 때에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자기 뜻대로 결론을 정할 수 없는 재심사로 넘겨야 한다. 말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재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판결은 유효하다. 집행기관이 이의를 구실로 스스로 멈출 수는 없다. 비상사태도 이 거부표 한 장을 추가로 주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기관의 직무이지,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양심을 대신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개인은 거부하거나 사임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처지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직위 전체가 판결을 무효로 만들 권한을 얻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최고 규칙에는 대신 실행할 길이 남아 있어야 한다. 집행을 거부한 쪽의 동의를 기다리지 않고 시작할 수 있으며, 시작한 뒤에도 그쪽이 가로막을 수 없는 길이다.
당장 군대를 하나 더 만들자는 상상을 할 필요는 없다. 이 사건에 부족한 것은 선거명령과 선거 실무이고, 이미 두 지역 선거위원회가 맡을 의사를 밝혔다. 어떻게 권한을 주고 누가 절차를 시작할지는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대체 기능은 그 판결 하나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지, 질문받지 않는 권력 중심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기능 자체도 점검받아야 한다. 만들어 두면 매번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거부한 쪽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을 유일한 조건으로 적어 둘 수는 없다.
거꾸로, 집행할 판결을 마음대로 골라서는 안 된다고 해서 법원이라는 자리까지 앞으로 질문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심리를 마친 사건은 끝낼 수 있다. 새 증거나 새 질문이 있으면 다시 심리할 수 있다. 법관의 수뢰나 월권, 직무상 잘못도 물을 수 있다. 규칙을 적법하게 고쳐 이후 사건에 적용할 수도 있다. 판결을 공개 비판하는 데에는 법원이 먼저 동의할 필요가 더더욱 없다.
최종심이 끝내는 것은 이 한 분쟁이다. 그 길들까지 함께 닫는 것은 아니다. 법에는 지금 따를 수 있는 결정이 필요하고, 사람에게는 나중에도 잘못을 고칠 기회가 필요하다. 둘을 모두 남겨야 한다.
일곱 법관이 반대해도 구금은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해 법원은 비상구금명령도 심사했다. 적을 도운 혐의가 있으면 기소 없이 30일씩 구금하고 계속 연장할 수 있다는 명령이었다. 일곱 법관은 헌장에 어긋난다고 보았고, 네 법관은 문제없다고 보았다. 평소 ‘다수’라는 말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보면 답이 나온 듯하다.
하지만 제14차 수정안은 비상명령이 헌장에 어긋난다고 선언하려면 여덟 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곱 표로는 부족했다. 조항은 유효한 채 남았다. 그때까지 이미 640명이 이 조항에 따라 구금되었고, 가장 오래 갇힌 사람은 150일에 이르렀다.
여기서 ‘법원이 이미 구금명령을 무효로 판단했는데 정부가 따르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두 일을 섞게 된다. 유효한 절차가 낸 결과는 무효를 선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곱 법관의 말은 이유로 남았지만 조항의 적용을 멈출 결정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절차가 그러니 이것으로 끝’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턱을 높인 일이 무엇을 바꾸었는지 여기서 드러난다. 통상의 다수에서 여덟 표 사이에 놓인 의견은, 원래라면 행위를 바꿀 심사였을 텐데 이유를 설명하는 데 그치게 되었다. 심사는 남아 있으니 없어졌다고 한꺼번에 말할 수 없다. 다만 문턱이 너무 높아 실제로는 한 번도 행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이름만 남을 수도 있다. 이 사건 하나로 그 결론까지 내릴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이번에는 일곱 법관의 말이 사람들을 풀어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새 구금은 새 결정이다. 새 자료와 새 질문도 다시 가져올 수 있다. 전시의 특별한 표결 기준이 끝나는 것도 새로운 조건이다. 법원은 어떤 청구가 새로운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영원히 받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규칙의 개정을 요구하는 것도, 이미 끝난 그 한 판결을 뒤집는 일과 같지 않다.
법관에게 묻는 길이 사람을 갈아치우는 길이 되지 않으려면
법원도 질문받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쉽다. 그런데 그 질문이 법원을 압박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선거 판결 뒤 의회는 판결문을 쓴 수석법관을 탄핵했다. 오판이 아니라, 평의 기간에 청구한 쪽의 주지사와 사적으로 대화했다는 이유였다. 법학부 졸업식 대기실에서 약 20분 동안이었다. 함께 있던 교수 두 명은 사건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법관과 주지사도 졸업식과 은퇴한 법관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 20분이 직무상 잘못이었는지 기록만으로 대신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먼저 나눌 수 있는 것은 있다. 법관의 행위를 물을 수 있는가. 그렇다. 단지 판결이 다수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탄핵으로 사람을 바꿔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을 허용하면 법관 점검이라는 말은, 새 증거도 없이 미래의 규칙도 바꾸지 않고 다른 판결을 할 사람으로 바꾼다는 뜻이 된다. 판결 내용이 수뢰나 권력 남용의 증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직무상 잘못으로 만들 수는 없다.
탄핵을 앞장서 발의한 네 명 중 세 명은 바로 앞선 사건에서 의회 다수파를 대표해 출석했던 사람들이다. 이 세 사람은 보복하려는 속마음이 증명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 탄핵의 제기와 심리에서 빠져야 한다. 빠지는 것은 구체적으로 얽힌 사람들이지 의회 전체가 아니다. 의회 쪽이 한 번 심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아무 추궁도 못 한다면, 그 사건에서 법관이 뇌물을 받았더라도 물을 곳이 없어진다. 탄핵 사유를 판결 자체와 구별할 수 있는지도 탄핵을 시작한 쪽만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자동 직무정지도 있었다. 탄핵이 제기되자 수석법관은 심리 중인 사건들에서 3개월간 빠졌고, 법원에는 한 자리가 비었다. 나중에 유죄표가 문턱에 못 미쳐 복직했지만, 그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투표했을지는 알 수 없으며 짐작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발의한 쪽이 자기 다수만으로, 자신을 심사하는 법원의 구성을 바꿀 수 있느냐다.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직무를 멈출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판단도 발의한 쪽 혼자 해서는 안 된다.
법원에 질문할 길과 법원이 보복 없이 다른 쪽을 심사할 여지를 모두 지켜야 한다. ‘사법 독립’이라는 말 하나로 저절로 조화되지는 않는다. 누가 시작하고, 누가 판단하고, 누가 길을 닫을 수 있는지 한 곳씩 살펴야 한다.
농가 43가구의 별도 사건도 있다. 토지가 수용되었지만 보상은 시가의 3분의 1뿐이었고, 나머지는 전후에 다시 논의한다고 했다. 보상표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법관 한 명이 과거 바로 그 표에 대해 합헌 의견을 쓴 사람이었다. 그 법관을 심리에서 제외해 달라고 신청했으나 마지막 판단은 그 법관 자신이 했다. 이전 의견은 일반적인 법률 의견이지 구체적 당사자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다섯 명이 심리해 3 대 2로 청구를 기각했고, 그 법관은 다수 쪽이었다.
이것만으로 편파적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이유에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당신이 이 사건을 심리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본인 혼자 결정했다는 데 있다. 마지막에 소수 쪽이었더라도 같은 빈틈은 남는다. 법원이 같은 나라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적이지 않다고 할 수 없고, 법원이라는 이름만으로 독립성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이 표와 이 기관, 이 사람을 두고 실제 관계를 조사해야 한다.
판결 뒤 농가들은 감찰청에 보상 규칙과 법관을 심리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최종심이 끝난 사건이므로 더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찰청이 판결을 바꿀 수 없다고 해서, 규칙을 바꿔야 하는지 묻거나 ‘전후에 다시 논의’한다던 일을 언제까지 미룰지 따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기록상 제12년에도 땅은 여전히 쓰이고 있었고, 재논의는 없었다.
법원이 규칙을 해석하면서 최고 규칙을 고칠 권한까지 모두 넘겨받아서도 안 된다. 해석이 문구의 개작으로 넘어갔는지는 계속 토론하고, 새 사건을 제기하고, 절차에 따라 미래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 법원이 영원히 독점해서 정해도 안 되고, 불복한 기관이 스스로 판결을 무효라고 선언해도 안 된다. ‘아직 해석하지 않겠다,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태도조차 그동안 한쪽의 해석을 사람들에게 먼저 작용하게 한다. 그것을 무한히 답을 미루는 말로 쓸 수는 없다.
이런 장치들이 모든 교착을 당장 풀어 준다는 보장은 없다. 연합도시국의 선거는 결국 1년 늦었다. 나중에 치렀다는 사실이 그 1년의 미집행을 집행한 것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대신 실행할 기능이 없었던 것은 제도의 몫이고, 명령을 거부한 것은 해당 직위의 몫으로 따로 조사해야 한다. 판결은 끝나도 사람이 그 결과 밖으로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건이 끝난 뒤에야 시작되는 질문도 있다.
원논문과 읽기 안내
기존 중국어 교양 산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문장과 호흡에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바탕이 된 연구는 SAE 국가론의 여덟 논문이며, 각 글에서 해당 논문으로 이어진다. 사례 속 국가·지명·사건은 원논문이 설정한 허구다. 이 글은 철학적 요구와 제안하는 제도, 개별 상황에서의 판단을 구별하며 현행법을 설명하거나 현실의 특정 국가를 판정하지 않는다. 기술적 논증을 모두 옮긴 것도, 모든 사례의 결론을 내렸다는 뜻도 아니다. 개념의 엄밀한 정의와 상세한 한정, 정치철학과의 대화는 논문에 남겨 두고, 여기서는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따라 질문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