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E 제2비판 · 11 · 서 있음과 구속
근거는, 그 자리에 선다는 것
스스로 세운 법은 무엇으로 자신을 구속할까요. 사실도, 바깥의 힘도, 이성의 사실도 아닙니다. 근거는 그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자기 전제로 받아들였다면 어떤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취소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도 여전히 같은 입장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구속은 그가 서 있는 곳까지, 예외 없이 미칩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로 내리는 판단
칸트는 여기서 연역을 구하지 않는 이성의 사실을 세웠습니다. 제2비판은 여기에 사실을 세우지 않습니다. 서로 종류가 다른 세 가지를 놓습니다. 공개적으로 받아 맡은 공준 하나, 사람은 목적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지위에 관한 것입니다. 영역 안 영점 하나, 타인의 의지를 겨냥하는 행동은 상대의 거절 능력을 이미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정을 다룹니다. 선택 한 번, 목적임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를 자기 법의 전제로 삼는 일입니다. 이것이 받아들임을 다룹니다.
『제1비판』이 넘긴 과제가 있었습니다. ‘구조적 판단이 성립해도, 담을 수 없음에서 인정해야 한다로 나아가는 효력은 실천의 비판이 별도로 얻어야 한다.’ 제2비판은 이를 셋째 글에서 말한 두 물음으로 바꿉니다. 판단은 네 박자로 나뉩니다. 지위는 공준이며, 어떤 능력에서 도출되지도 않습니다. 인정은 영역 안 영점이며, 인정하는 것은 능력이지 지위가 아닙니다. 진단에서는 남의 거절 능력을 부정하면서 남의 의지를 겨냥하는 사람에게 기록이 둘 있음을 봅니다. 갖추지 못한 자격을 내세운 것이며, 증언하는 것은 자신의 방비입니다. 받아들임과 법은 거절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받아들인 뒤에야 자기 법에 내면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하지 않을 수 없음’ 하나가 생깁니다.
한 문장으로 하면 인정은 피할 수 없고, 받아들임은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인정은 해당 영역에서 실행 자체에 들어 있는 필연이고, 받아들임은 선택입니다. 이 판단 어디에도 ‘타인은 목적이다’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를 도출하는 곳은 없습니다.
다시 나눈 두 물음
타인이 목적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한 사람이 15DD로 작동하기 시작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판단에서 한 가지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대신 받아들여 줄 수는 없습니다. 사실에서 직접 ‘받아들여야 한다’를 도출하면, 한 영역의 판결을 다른 영역에 가져가 그대로 판정한 것입니다. 『제1비판』 환상론이 말한, 영역을 넘는 효력을 갖춘 것처럼 내세우는 일입니다. 일인칭은 대신 쓸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참인 사실도 그의 법을 써 주지는 못합니다. 한순간의 15DD 작동은 받아들이는 선택 없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관 연작은 그 방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자기 법의 한 조항으로 만드는 것은 받아들임입니다.
공준이라면 누가 받아 맡을까요. 지위의 줄은 논문4가 자기 대상 영역에서 공개적으로 받아 맡습니다. 태도의 줄은 논문6이 받아 맡습니다. 한 사람에게 이르면, 받아들인 사람이 ‘우리’의 이름으로 감당합니다. 『제1비판』은 ‘이미 있는 철학을 받아 맡으면, 그 받아 맡음으로 자기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비판 자신은 그것을 받아 맡지 않습니다. 심사하고 기록할 뿐입니다.
처음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방법론00은 B가 A를 담을 수 없으므로 A를 목적 그 자체로 삼아야 한다고 논했습니다. 구조적 의미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이 책은 앞 절반을 구조적 판단으로 받아 그대로 기록합니다. 두 자리는 서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뒤 절반은 받아들임으로 읽습니다. 어느 쪽에도 담을 수 없음에서 인정해야 한다로 효력을 옮기는 추론은 없습니다. 『제1비판』이 말한 ‘별도로 얻음’은 여기서 답을 얻습니다. 받아들인 사람이 자기 법 안에서 얻습니다. 비판은 누구를 대신해서도 얻지 못합니다. 방법론00의 길이 끊기는 곳은 출발점이 아니라, 삼킬 수 없음에서 목적 그 자체로 가는 한 걸음입니다.
근거는, 그 자리에 선다는 것
이제 처음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세운 법은 무엇으로 자신을 구속할까요. 먼저 무엇에 기대지 않는지 말하겠습니다. 사실에 기대지 않습니다. 타인이 목적이라는 사실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더하는 힘도 아닙니다. 그의 법 바깥에 서서 집행을 대신하는 사람은 없으며,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이성의 사실도 아닙니다. 칸트는 여기에 스스로 확립하는 출발점을 세웠지만, 이 책은 세우지 않습니다.
근거는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였다면 남이 목적임을 의심하지 않는 입장에 선 것입니다. 거기 서 있는 동안에는 취소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행동 자체를 못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면, 여기 서 있다는 말과 그것을 취소한다는 말을 한 사람에게 함께 놓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 진술이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이지, 심리적으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의 구속은 바깥에서 그를 미는 힘이 아니라, 그 자신의 두 문장 사이에 있습니다.
여기 계속 서 있는 한 그렇습니다.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전제를 여전히 지니는 동안, 몇 가지를 취소할 수 없습니다. 한 번 가로막히거나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전제를 이미 철회했다고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구속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도 분명해집니다. 그가 서 있는 곳까지입니다. 어떤 한 일에서 떠났다면, 그 일에서는 이 조항이 그에게 더는 없습니다. 여전히 서 있는 곳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너무 가벼운 것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가볍지 않을까요. 서기 싫으면 서지 않아도 된다면, 법도 자기 마음대로 아닌가요. 받아들임은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깎지 않습니다. 다만 받아들임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전에 인정이 이미 있습니다. 남의 의지를 겨냥해 행동할 때마다, 그 행동은 상대를 이미 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상대합니다. 인정이 받아들임에 주는 것은 출발점이지 이유가 아닙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사람이 실제로 서 있는 갈래입니다. 상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목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기록은 하나입니다. 어디에 서고 무엇을 치르는지 자신에게 남습니다.
따라서 가벼운지는 나누어 답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선 사람에게 구속은 조금도 가볍지 않습니다. 서 있는 곳까지 예외가 없습니다. 한 사안에서 떠날 수 있지만, 떠난 일도 기록해야 하며 처음부터 서지 않았던 것처럼 여길 수 없습니다. 서 있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애초에 당위를 말하지 않습니다. ‘법은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받아들임과 받아들이지 않음이 각각 자신의 기록에 무엇을 남기는지 보게 한다.’
시간도 같습니다. 법은 오늘 여기 서 있는 사람을 구속하며, 내일의 사람을 대신해 서명하지 않습니다. 내일의 자신은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침과 내팽개침은 다릅니다. 이 책의 갈래에서는 법을 세운 사람에 대한 구속이, 그가 변경을 감당하며 고칠 때까지 이어집니다. 감당한다는 것은 자신이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지, 누구에게 신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사안에서 떠난 것, 법 전체를 고친 것, 법은 여전히 지니지만 이번에 해내지 못한 것을 나누어 적습니다. 남에게 이미 한 약속을 한 번 떠났다는 이유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미치는 범위와 논증하지 못하는 절반
첫 사례의 범위는 세 줄이며, 셋은 같은 집합이 아닙니다. 지위의 줄은 이미 받아 맡은 대상 영역을 따릅니다. 온전한 주체, 준주체로서 가장 흔한 예인 아기, 능력의 행사가 줄어든 사람입니다. ‘생리적 또는 인지적 손상은 행사할 수 있는 폭을 줄일 수 있지만, 지위의 두께를 줄이지 않는다.’ 받아들임의 줄은 그에 해당하는 감당의 작동이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진단의 줄은 행동을 따릅니다. 아직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기라면, 능력을 부정하는 사람의 방비는 제3자에게 향합니다. 누구에게 숨기고, 누구로부터 아기를 떼어 놓는지입니다. 아기의 지위를 지키려고 능력의 증거를 찾아 줄 필요는 없습니다. 공준이 보전합니다. 논문4가 고전적 하드웨어의 AI를 주체가 아니라고 판정한 것은 그대로 적습니다. 동물은 두 곳의 해석이 다릅니다. 그대로 적되 재단하지 않습니다.
퇴장의 경계는 이 책이 판정하지 않습니다. 금지선 셋만 세웁니다. 능력이 사라졌다고 퇴장으로 정하지 않는다. 남이 더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퇴장으로 정하지 않는다. 선언했다고 퇴장으로 정하지 않는다. 선언한 사람이 타인이든 본인이든 같습니다. 셋은 이것들을 근거로 지위를 거두거나 퇴장을 판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미 떠났는지를 대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제1비판』이 보낸 문장에는 여기서 논증할 수 있는 만큼만 답합니다. 그 작동을 멈춘 주체는 ‘자신을 목적으로 삼는 일이 더는 이 작동을 통해 실현되지 않는다. 그뿐이다. 규범상의 목적 지위를 취소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그를 단순한 수단으로 대할 권한을 주지도 않는다.’ 앞 절반은 공준에서 나옵니다. ‘누구에게도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자기 법 안의 ‘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 사람의 거절 능력도 부정한다면, 갖추지 못한 효력을 내세운 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능력은 부정하지 않고 목적으로 여기지 않을 뿐이라면, 어디에 서 있는지는 말할 수 있어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엄밀할 수 있는 곳은 공준과 영점이 근거를 주는 곳까지다. 더는 아니다.’ 함육의 적극적인 절반, 제3자가 당신을 식민화할 때 내가 침묵하지 않는 일조차 이 책은 아직 정당화해야 할 것으로 적습니다. 그처럼 제한된 전제에서 공짜로 가져오지 않습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이 연작은 중국어 원저 『SAE 제2비판』을 바탕으로 쓴 독자용 산문입니다. 논증 전체를 확인할 권위 있는 기준은 원저입니다. 한국어판은 이미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며, 원저 전체를 옮긴 번역은 아닙니다. 기존 영어판도 영어권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썼고, 중국어 간체판과 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열두 편이 함께 읽는 원저는 한 권입니다. 중국어 원저 읽기 ↗ · 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