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읽기
Non Dubito

SAE 제2비판 · 09 · 계속한다는 것을 읽기

자율과 고집, 그리고 변덕

조건은 문장에서 빠지고, 깊이 밴 법은 당연하게 보이며, 자신에게 통했던 법을 모두에게 넓히고 싶어집니다. 대가는 뒤늦게 옵니다. 두 이율배반을 따라가며 자율과 고집, 변덕을 나눕니다. 멈출 수 있어도 계속하고, 질문받을 통로를 열어 두며, 법을 고쳤다면 그 변경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Han Qin ·

환상은 왜 자연스럽게 생기는가

『제1비판』은 환상이 ‘인식에서 우연히 생긴 사고가 아니다. 구가 있는 곳에는 그 조건도 있다’고 했습니다. 실천의 측면에서 이 책은 네 조건을 찾습니다. 첫째, 전제가 문장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은 언제나 어떤 입장에 걸립니다. 그런데 ‘취소할 수 없다’는 문장 자체에는 ‘여기에 서 있다면’이 붙지 않습니다. 이것은 입장에 조건부로 걸린 구속에서 직접 나옵니다. 한편 누군가는 강렬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그 입장 조건을 동시에 의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쪽은 가설로만 적습니다. 앞은 문장에 대한 말이고, 뒤는 감각에 대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가설입니다. ‘깊이 가라앉아 밴 구일수록 원래 그렇다는 어조로 나타나기 쉽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률이 네 조항을 ‘Self가 15DD로 작동할 때 자연히 그러한 구조’라고 한 것도 이런 어조입니다. 셋째, 자신에게 잘 작동하는 법을 누구에게나 작동하는 법처럼 말하기 쉽습니다. 『제1비판』이 ‘포부가 병이 아니라, 심사를 면하는 포부가 병이다’라고 했듯, 여기서도 보편화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심사를 면제받는 보편화가 문제입니다. 넷째는 대가의 지연입니다. 행동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는 듯이 나타납니다.

네 조건의 지위는 달라도 방향은 같습니다. 『제1비판』의 위험 법칙을 전제와 한정까지 그대로 둡니다. 입장 조건이 ‘하지 않을 수 없음’과 함께 자동으로 보존되지 않고, 새로 원용할 때 동시에 재검토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서, 하나의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넓게 원용할수록 입장 조건 바깥으로 나가는 지점이 늘고, 환상의 위험도 높아집니다. 이것은 ‘실제 환상이 반드시 늘어난다고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취소할 수 없음과 떠날 수 있음

첫째 이율배반입니다. 정명제. 어떤 입장에 서 있다면 취소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반명제. 그 입장은 떠날 수 있습니다. 둘 다 행동론의 정식 주장이고, 해소하는 답도 그곳에 있습니다. ‘두 진술이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이지, 심리적으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제2비판은 환상론의 독해만 더합니다. 입장을 가리키는 표시가 빠지면서 이율배반이 생깁니다.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입장 안에서 두 문장이 함께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입장에서 사안마다 떠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각각 무엇에 관한 말인지 지키면 둘 다 참입니다. 『제1비판』의 ‘멈출 수 있는데도 그치지 않아야 자율이다’라는 말이 이미 둘을 잇고 있습니다.

더 세밀히 따질 것도 있습니다. 떠남의 대가를 두고 이 틀에는 네 설명이 있습니다. 『이성의 하지 않을 수 없음』은 격하라고 했습니다. 『제1비판』과 행동론은 각각 ‘그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도덕률은 15DD 작동을 떠난 Self에게도 ‘여전히 입법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넷이 모두 옳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뒤의 셋을 따라 대가를 말하며, 그 설명이 논문4의 공준에 서 있음을 밝힙니다.

계속하면 자율일까

둘째 이율배반입니다. 정명제. 그치지 않음은 자율의 표시입니다. 허수아비 반론이 아닙니다. 『이성의 하지 않을 수 없음』은 실제로 이렇게 썼습니다. ‘참된 자율은 지속되는 입법 운동이다. 주체는 매 순간 자신에게 법을 세우며, 입법이 멈추면 자율도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반명제. 『제1비판』에는 ‘멈출 수 있는데도 그치지 않는 것이 고집일 수도 있다. 자율과 고집을 나누는 것은 실천 비판의 일이다’라고 나옵니다.

원문의 뒤 절반은 필요조건입니다. ‘입법이 멈추면 자율도 작동하지 않는다.’ 앞 절반은 ‘이다’로 연결되어, 계속하기만 하면 자율이라는 충분조건으로도 읽힙니다. 계속함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판단 기준의 후보는 질문받을 때 수정과 재검토의 통로가 열리는가입니다. 고집은 계속하면서 그 통로를 스스로 닫는 것입니다. 반대쪽에는 변덕이 있습니다. 편하면 멈추고, 법을 바꿨어도 변경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율에 세 가지를 적습니다. 멈출 수 있는데도 계속한다. 질문받을 통로가 열려 있다. 법을 고쳤다면 변경을 감당한다. 첫 편에서 분명히 하겠다고 약속한 자율과 고집, 변덕이 여기서 갈립니다. 먼저 나눴던 점, 수정은 내팽개침이 아니라는 말과도 연결됩니다.

죽을 때까지 안 바꾼다고 고집은 아니다

이 기준을 틀에 이미 있던 문장과 맞춰 봐야 합니다. 학습 연작은 ‘하지 않을 수 없음’의 시금석을 ‘외부의 부정으로 꺼지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밖에서 보면 고집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외부 부정은 ‘사회적 차단이지……사실적 반증이 아니다’라고 한정했습니다. ‘사실적 반증이 나왔는데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14DD가 있는 것이 아니라 13DD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가 가로막아도 꺼지지 않지만, 사실의 반증은 받아들입니다. 통로가 열려 있습니다.

가치론에는 더 중요한 문장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평생 지킬 것으로 정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아도, 수정할 수 있다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리가 열려 있다는 뜻이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안 바꾸는 것이 고집은 아닙니다. 그 자리를 닫는 것이 고집입니다.

이 셋은 이 책이 서 있는 갈래에서 채택한 자율의 정의입니다. 반대자도 있습니다. 법을 고칠 수 없어야 충실하다는 갈래입니다. 『자신의 법』에도 가까운 문장이 있습니다. ‘이 방향이 아직 맞는지 멈춰 물을 필요는 없다. 방향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기 정의를 자율 일반의 정의라고 내세우지 않습니다. 칸트의 덕과 행복의 이율배반도 여기서는 세우지 않습니다. 이 틀의 자료에서는 거기까지 끌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단하는 쪽의 규율

남을 진단하는 것도 주장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의 진단에 다섯 규율을 세웁니다. 사람이 아니라 항목을 지목합니다. 제대로 된 진단은 어떤 자격을 내보였는지, 기록의 어느 칸에 그 항목이 없는지, 출처는 어디인지를 적습니다. ‘내보인 사람이 무슨 속셈이었고 어떤 죄를 물어야 하는지는 적지 않는다.’ 구조를 읽고, 속마음은 읽지 않습니다. 행동과 기록, 통로와 방비의 형태만 읽지 동기를 읽지 않습니다. 일인칭의 받아 맡음은 본인에게 속합니다. ‘일인칭의 긍정을 남이 주거나 거둘 수는 없다.’

단계는 시점과 영역에 따라 작동에만 적습니다. 도덕률 자신도 연구 단위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며, 15DD는 행동의 단계이지 신분 표지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15DD인 사람은 없다’라는 실질적 주장을 세우지 않고, 이 규율만 세웁니다.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과 방향 보고를 따로 적고, 둘 다 철회할 수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최종 상태로 만들지 않습니다. 충돌론은 ‘단서는 판단 기준이 아니고, 흔적도 판결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진단도 주장입니다. 오진의 유형은 갖추지 못한 자격을 내세우는 일의 거울상입니다. 검토하지 않은 혐의를 확정 판결처럼 내세우거나, 한 사례의 진단을 틀 전체의 판결로 넓히거나, 옛 판본의 진단을 새로 심사하지 않고 새 판본에 적용합니다. 가치론은 가장 선명한 형태를 보여 줬습니다. 당신이 정말 무엇을 긍정하는지 볼 수 있다고 하는 감사입니다. ‘받아들이면 결론이 성립하고, 부정하면 그 부정을 결론의 또 다른 증거로 읽는다.’ 이런 진단 자체가 갖추지 못한 자격을 내세우는 일입니다. 이 장은 자신에게 돌아와 끝납니다. 여기서 세운 진단 하나하나도 ‘질문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이 연작은 중국어 원저 『SAE 제2비판』을 바탕으로 쓴 독자용 산문입니다. 논증 전체를 확인할 권위 있는 기준은 원저입니다. 한국어판은 이미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며, 원저 전체를 옮긴 번역은 아닙니다. 기존 영어판도 영어권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썼고, 중국어 간체판과 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열두 편이 함께 읽는 원저는 한 권입니다. 중국어 원저 읽기 ↗ · DOI ↗

중국어 원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