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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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 108 · 타자와 빈자리

릴케: 아름다움은 두려운 것의 시작일 뿐

프라하의 아이, 로댕의 작업실, 두이노의 바람, 뮈조의 몇 주. 10년에 걸친 단속적인 집필 끝에서 시는 어떻게 맞아들이되 소유하지 않고, 자기 경계도 남길 수 있을까?

1. 프라하의 어린아이

1875년 12월, 프라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르네 마리아였다. 라이너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1897년이다.

이름 뒤에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이 있다. 어머니 조피는 그 전해에 딸을 잃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아기였다. 전기에서 거듭 전해지는 것은 그 상실이 아들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다. 여자아이의 옷, 긴 머리, 인형, 여자아이로 부르는 말. 대략 대여섯 살까지, 살아 있는 아이가 자라야 할 자리에 먼저 떠난 아이가 겹쳐 있었다.

부모는 나중에 별거했다. 1886년, 소년은 군사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도 그가 되어야 할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강해져야 했다. 명령에 복종하고 훈련을 견디고 아이들 사이에서 자기 서열을 알아야 했다. 여자아이의 옷을 입었던 아이는 이제 기상 나팔에 맞춰 일어나 군인의 틀에 몸을 맞추었다.

5년을 보냈다. 적응하지 못했고 건강도 나빠졌다. 1891년,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건강상의 이유로 학교를 떠날 수 있었다.

학교 밖으로 나온 것은 야위고 상처 입은 소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결정하는 일. 그는 그 경험에 유난히 예민해졌다.

어머니는 딸을 바랐고 학교는 군인을 원했다. 그는 두 기대를 모두 짊어졌다. 남의 기대가 한 사람 안을 차지해서 정작 자신이 있을 자리가 거의 남지 않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나중에 한 일의 일부는 여기서 읽어 볼 수 있다. 자리를 내는 일.

먼저 자신을 위해. 겹겹이 씌워진 기대를 내려놓고 그 아래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것. 그리고 만나는 존재를 위해. 사람 하나, 나무 한 그루, 조각, 음악을 자기가 보고 싶었던 것으로 먼저 덮어 버리지 않는 것.

두 움직임은 그렇게 연결된다. 그렇다고 상처가 저절로 배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체성을 강요받은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다. 다만 상처에서 질문이 생길 수는 있다. 나는 그렇게 대우받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눈앞의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는 쉰한 해를 살았다. 많은 시간을 남이 내준 집이나 빌린 방에서 보냈다. 후원자의 성, 친구 집의 방, 유럽 여러 도시의 임대 아파트. 시집과 소설 한 권, 번역 작품, 그리고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남겼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르네는 라이너로 바꾸었지만 마리아는 남겼다. 마리아는 가톨릭 남성의 이름에도 쓰인다. 이름 하나만으로 어머니의 의도를 알아낼 수는 없다. 그래도 독자는 남겨진 이름에서 지워지지 않은 과거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이 된다는 것은 지나온 길을 전부 취소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그 일은 일어났다. 그다음은 아직 쓸 수 있다.

2. 로댕

1902년, 파리. 릴케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전해에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900년 독일의 예술가 마을 보르프스베데에서였다. 딸 루트도 있었다.

파리로 온 이유는 독일 출판사의 의뢰였다. 오귀스트 로댕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로댕은 예순한 살, 그해 11월이면 예순둘이 된다. 파리 교외 뫼동의 작업 세계에는 석고와 점토, 청동과 대리석, 완성작과 파편이 가득했다. 모델, 조수, 장인들도 있었다. 그는 관찰하고 형태를 만들고 그렸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는 그의 손 외에도 많은 손이 필요했다.

릴케는 말의 세계에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시를 쓰고 생각하고 문장을 찾는 사람이었다. 여기서는 일에 표면과 각도와 무게가 있었다.

로댕의 비서가 된 것은 1905년부터다. 그러나 더 깊은 배움은 편지 봉투 속에만 있지 않았다. 관찰하는 몸, 고친 각도, 다시 결합한 조각. 매번 거창한 내적 계시를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는 작업의 리듬이 있었다.

그가 배운 것은 짧게 말할 수 있다. 사물을 보는 것.

창작이 언제나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눈앞의 몸과 재료가 내 계획을 멈춰 세우게 할 수도 있다. 이 자세가 정말 이런가. 이 손에서 아직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관찰과 조형이 서로를 고친다. 이미 완성된 생각을 재료에 붙이는 것과는 다르다.

가령 손 하나. 상상 속의 손이 아니다. 이 마디, 이 주름, 이 굽음, 이 피로. 손은 저마다 다르다. 머릿속의 ‘손’만 보면 실제 손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

작업실의 손과 머리, 몸통과 여러 파편은 그 차이를 눈에 보이게 했다. 온전한 몸에서 떨어진 손에도 몸짓이 있고 무게가 있다. 오래 바라볼 만한 무엇이 남아 있다.

파리에서 릴케도 그 일을 해 보기 시작했다. 사람만이 아니라 표범, 나무, 가을의 분수, 성당의 장미창. 구체적인 사물에 자리를 내주는 시. 나중에 사물시라고 불리게 되는 작업이었다.

잘 알려진 「표범」의 처음 두 연을 독일어에서 새로 옮기면 이렇다.

지나가는 쇠창살에 시선이 지쳐
이제 아무것도 붙들지 못한다.
천 개의 쇠창살이 있는 것만 같고
그 천 개 너머에는 세계가 없다.

부드럽고 힘센 발걸음이 조용히 움직여
가장 작은 원 안을 돈다.
한 중심을 둘러싼 힘의 춤처럼,
그 안에 큰 의지가 마비된 채 서 있다.

제목 아래에는 파리 식물원이라는 장소가 붙어 있다. 바꾸어 끼울 수 있는 ‘표범’ 개념의 사례가 아니다. 눈길 하나, 걸음 하나, 우리에 갇혀 눌린 삶이다.

시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동공의 막이 가끔 열리고 하나의 상이 들어온다. 팽팽한 사지의 고요를 통과한 뒤, 그 상은 심장 안에서 존재하기를 멈춘다.

물론 이것은 시인의 상상이기도 하다. 동물의 내면을 투명하게 들여다본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준비된 교훈 하나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간을 대신하지 않게 하려 한다. 이 표범에게 우리를 위한 뜻을 말하게 하기 전에, 먼저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사물에게 자리를 남긴다.

사물도 내가 결정한 것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보고 난 뒤 자기 도구로 다른 사람에게 조금 보여 줄 수 있다. 로댕에게는 형태를 만드는 일, 릴케에게는 말이다. 창작을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창작이 완전한 독점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틈도 생겼다. 1906년 5월, 사적인 편지를 처리한 방식을 둘러싸고 로댕은 릴케를 해고했다. 1907년에 편지가 다시 오갔고, 1908년에 화해했다. 그 틈이 배움을 지우지는 못했다. 훗날 두이노에서 릴케는 다른 듣기를 배운다. 작업실의 소리가 아니라 아직 형태를 얻지 못한 시가 오는 것을 듣는 일이었다.

3. 사물

사물시의 중심에는 이런 자세가 있다. 세계는 구체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하나는 바로 그것 자신이다.

우리는 대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저것은 나무, 이것은 잔, 저기 있는 것은 고양이. 종류를 알아보고 분류한다. 분류는 유용하다. 예측하고 계획하고 말하려면 필요하다.

그러나 분류가 시선 전체를 차지할 때는 대가가 있다.

저 나무의 굽음, 상처, 어느 아침 특정한 빛을 받은 잎 하나. 그것들은 ‘나무’ 뒤로 사라질 수 있다. 종류를 알아보았으니 다 보았다고 생각하고 지나간다.

시는 두고 온 구체성을 다시 불러온다.

종류를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종류가 눈앞의 것을 전부 대신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분류가 제 몫을 다한 다음에도, 아직 보지 않은 것이 남아 있다.

20세기 초, 이 자세는 근대 생활의 한 압력과 뚜렷이 대비되었다. 과학은 일반 법칙을 찾고 철학은 체계를 세우며 산업은 노동자와 생산품을 규격에 따라 조직한다. 각자의 이유가 있는 일이다. 다만 분류와 효율이 유일한 눈이 되면 구체적인 사람과 사물은 바꾸어 끼울 수 있는 자리로 줄어들기 쉽다.

릴케의 시는 반대 방향으로 힘을 썼다. 비슷한 시기 후설의 현상학도 경험 속 사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다. 같은 학설은 아니다. 나란히 놓고 읽으면 이런 질문이 들린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이 지금 나타나는 것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추상 아래에서도 구체적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종류의 이름이 그것을 끝까지 대표할 수는 없다.

표범, 로댕 작업실의 손, 가을 분수, 장미창, 엎어진 물병, 스페인 풍경의 올리브나무. 이런 모습은 큰 관념의 사례로 쓸모가 있어야만 시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다.

분류가 끝난 듯한 세계에 하나씩 자리를 만든다. 사물에까지 닿는 환대의 연습이다.

사람도 그 시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늙은 사람,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 다만 주의가 인간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나무와 표범과 물병은 이름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다 본 것이 되지 않는다.

이 악장에서 릴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깥으로도 시선을 데려간다. 이 고양이는 내 삶에서 ‘고양이’에게 맡긴 역할과 같지 않다. 이 나무는 ‘나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병과 동물과 인간에게 똑같은 주체성이나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주의를 넓히는 것과 윤리적 차이를 지우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시는 우선 더 작은 것을 인정한다. 눈앞의 존재는 내 개념으로 다 써 버릴 수 없다. 모든 사물이 사람처럼 대답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부 규정하지 않은 자리를 그 앞에 남겼는가, 묻는 것이다.

4. 두이노

1911년, 아드리아해 연안의 트리에스테 근처.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영토였고, 지금은 이탈리아다.

바다 위 절벽에 두이노 성이 있다. 문학에 조예가 있던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공비는 릴케의 후원자였다. 자신이 머무는 성들에 그가 조용히 글을 쓸 방을 마련해 두었다.

릴케는 1911년에서 191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을 여기서 보냈다. 그 겨울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1907년과 1908년에 나온 『신시집』 두 권은 사물시를 한 고비의 정상으로 이끌었다. 1910년에는 유일한 소설 『말테의 수기』도 나왔다. 파리의 젊은 덴마크인이 도시와 기억, 질병과 죽음 사이에서 자기 삶을 감당하려는 소설이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그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쓰기 방식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공비가 나중에 전한 회상에 따르면, 1912년 1월 어느 날 릴케는 절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겨울, 아드리아해의 거센 바람, 아래쪽의 바다.

그때 목소리가 온다. 이후 수없이 되풀이된 이 시작의 이야기에서는 한 문장이 바람 속에서 도착한 것처럼 나타난다.

“내가 외친다면, 천사들의 서열 가운데 누가 내 말을 들어 줄까?”

Wer, wenn ich schriee, hörte mich denn aus der Engel Ordnungen?

그는 성으로 돌아가 적었다. 첫 번째 비가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12년 두이노에서 처음 두 편이 쓰였고, 이후 부분들의 씨앗도 남았다.

이 이야기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도착하는 감각이다. 할 말을 미리 정한 다음 알맞은 문장을 찾은 것이 아니다. 한 문장이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을 데리고 온다. 받아들였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 여러 해의 일이 시작된다.

중요한 시가 되리라는 예감은 있었다. 계속 써야 했다. 하지만 한 번에 이어지지 않았다.

스페인, 파리, 뮌헨을 옮겨 다니며 썼다. 세 번째 비가는 1913년에, 네 번째는 1915년에 완성되었다. 다른 부분은 조각으로 남았다. 몇 편을 다 썼다는 것과 전체를 어떻게 끝낼지 안다는 것은 다르다.

기다린다.

1914년 8월, 전쟁이 시작되었다. 릴케 자신도 처음에는 『다섯 개의 노래』에서 전쟁을 향한 열기를 드러냈다. 나중의 공포와 실망이 처음부터 시대 바깥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소집은 1916년 1월이었다. 짧은 군사훈련 뒤 빈의 전쟁기록보관소에서 일했고, 그해 7월 군복무에서 풀려났다. 군대는 옛 상처를 다시 열었다. 주변에서는 유럽의 문화 생활이 찢겨 나갔다.

글을 쓰기 어려웠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네 번째 비가는 1915년의 작품이다. 오지 않는 것은 여전히 전체였다. 열 편이 서로 이어져 하나가 되는 일이었다.

전쟁 뒤에는 이전 삶의 질서가 흩어졌다. 전쟁 때문에 파리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곳의 집과 물건도 잃었다. 클라라와는 오래전부터 따로 살았으며 경제적으로는 지원에 기대었다. 1919년 스위스로 왔다. 제국의 해체는 시대의 배경이지, 그가 정착하지 못한 사정의 전부는 아니었다.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다시 들으려 해 볼 수 있는 곳이.

5. 10년의 기다림

전후의 릴케는 친구와 후원자의 도움으로 스위스의 여러 거처를 옮겨 다녔다. 건강도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목숨을 앗아 갈 백혈병이 진단된 것은 1926년에 이르러서였다.

시의 작업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비가는 그에게 엄청나게 무거운 일이었다. 두이노의 시작은 자신이 천천히 짊어져야 할 일을 주었다. 하지만 의지로 결말을 주문할 수는 없었다. 이미 완성된 시도 진짜였고, 이어지지 않는 빈 곳도 진짜였다.

추상적으로 ‘영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서른몇 살에서 마흔몇 살이 되어 가는 한 사람이 있다. 구체적인 아침, 구체적인 책상. 시작했다는 것은 안다.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완전히 놓을 수도 없고 억지로 밀 수도 없다.

반복되는 동작은 이렇다. 준비한다. 다시 시도한다. 많은 날에는 오지 않는다.

다른 일도 한다. 서로 다른 시기에 미켈란젤로의 소네트와 루이즈 라베의 시를 번역했다. 1920년대에는 폴 발레리가 중요한 대화 상대가 된다. 모두 한 공백기에 몰려 있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심 작품이 막혀 있다고 언어의 일까지 멈출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남의 문장으로 손을 계속 움직일 수도 있다.

편지도 쓴다. 평생 1만 통 이상. 지금도 독일어의 빼어난 산문으로 읽히는 편지가 많다. 실제 상대와 관계를 이어 가는 일인 동시에 자기 상태와 대화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는 열 통은 1903년부터 1908년 사이에 쓰였다. 더 긴 막힘을 겪기 전부터, 그는 인내와 고독, 해결되지 않은 질문과 함께 사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보려 했다.

읽기도 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시, 기독교를 넘어선 신앙의 세계, 『코란』. 비가를 위한 모범답안을 쌓는 것이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곳을 늘려 가는 일이었다.

번역하고 편지를 쓰고 읽고 기다린다. 큰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사람까지 완전히 일을 멈춘 것은 아니다.

1921년 여름, 그는 마흔다섯 살이었다. 스위스 발레주 베이라스 근처에서 뮈조라는 작은 돌탑 거처를 찾았다. 발라딘 클로소프스카가 집을 찾고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후원자 베르너 라인하르트가 1921년에 빌리고 1922년에 사들여 릴케가 지낼 수 있게 했다.

그곳에서 혼자 있을 공간을 얻었다. 클라라와 루트는 함께 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삶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돈, 방, 생활의 돌봄, 편지. 그의 고요 뒤에는 누군가 내어 준 자리가 있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는 여전히 기다렸다.

1922년 2월. 목소리가 돌아왔다.

6. 뮈조

1922년 2월 2일, 목요일. 뮈조의 작은 서재에서 릴케가 쓰기 시작했다.

2일부터 23일까지, 약 3주. 『두이노의 비가』가 마침내 하나의 전체로 완성되었다. 처음 두 편은 10년 전의 것이고, 세 번째와 네 번째와 다른 조각들은 그사이의 세월에서 왔다. 2월의 폭발이 그 세월을 지운 것이 아니다. 이어지지 않던 곳이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연작이 도착했다. 비가와 같은 방식으로 오래 준비하고 기다려 온 것은 아니었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였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동물과 나무와 돌까지 귀 기울이게 한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찾으려고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노래로 죽은 자의 왕을 움직여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는다. 조건은 길에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 출구 가까이에서 그는 돌아보고, 그녀는 사라진다.

얻음과 잃음. 봄과 보아서는 안 됨. 신화에는 그 고통이 있다. 하지만 소네트는 줄거리를 다시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찍 세상을 떠난 젊은 무용수 베라 오우카마 크노프를 기리며, 상실과 음악과 사물, 삶과 죽음을 노래 속에서 가까워지게 한다.

먼저 소네트 스물여섯 편. 비가를 집중적으로 완성하는 날들이 지나고, 다시 스물아홉 편. 모두 쉰다섯 편이다.

소네트 55편과 마침내 완성된 비가 10편. 예순다섯 편을 모두 같은 2월에 맨땅에서 새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오래된 작업이 짧은 시간 안에 결정처럼 맺혔다.

릴케는 편지에서 이때의 쓰기를 폭풍이라고 불렀다. 문장을 지휘하기보다 문장이 자신을 통해 세계로 나오는 감각. 그러나 그 폭풍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훈련한 언어였고, 기다리고 고치고 돌아온 손이었다.

2월 11일, 그는 이미 공비에게 비가 열 편을 다 썼다고 알렸다. 14일에는 이전의 다섯 번째를 대신할 새로운 다섯 번째 비가를 쓴다. 11일의 편지에는 바로 그때의 흥분이 남아 있다.

“마침내, 공비님, 마침내, 이 축복받은, 얼마나 축복받은 날인지요. 제가 보는 한에서는 비가의 완성을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열 편입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폭풍, 정신 속의 회오리. 몸 안의 섬유와 조직이 모두 소리를 낸 듯했고, 먹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지만 이제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아멘.”

Aber nun ists. Ist. Ist. 가장 짧은 말들이 이어진다. 일어난 일을 말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처럼. 아직 설명하지 않는다. 거기 있다.

고치고 정리하고 출판했다. 두 시집은 1923년에 나왔다. 그는 마흔일곱 살이었다.

두이노에서 시작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전체가 되었다. 기다림은 비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걸작이 완성된 뒤에야 한 사람의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 사람이 긴 미완성에 전부 삼켜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뮈조에서 몇 년 더 살았다. 건강 문제가 심해지고 1926년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2월 29일, 스위스의 요양소에서 죽었다. 쉰한 살.

1925년, 자신의 묘비에 들어갈 구절을 골라 두었다.

“장미여, 순전한 모순, 기쁨이여.
이토록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다는 것.”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 Lidern.

꽃잎은 겹겹의 눈꺼풀 같다. 그 아래에는 누구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잠이 없다. 장미, 잠,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음. 이미지들은 가까워지면서도 하나의 설명으로 굳지 않는다. 여기서 소유하지 않음을 읽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세 줄의 모호함을 다 빼앗을 필요는 없다.

죽음 직전에 쓴 마지막 시는 아니다. 그래도 묘비 위에서 평생의 일을 열린 채로 유지한다. 구체적인 하나가 한 가지 해석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일.

사람은 떠났다. 질문은 남았다.

7. 아름다움, 두려운 것의 시작

두이노의 문장으로 돌아가자. “내가 외친다면, 천사들의 서열 가운데 누가 내 말을 들어 줄까?” 첫 번째 비가는 이렇게 이어진다.

“설령 하나가 갑자기
나를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해도 나는 그의
더 강한 존재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움은
두려운 것의 시작일 뿐, 우리는 겨우 그것을 견딘다.
우리가 그토록 감탄하는 것은 그것이 태연히
우리를 파괴하기를 마다하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두렵다.”

Denn das Schöne ist nichts / als des Schrecklichen Anfang, den wir noch grade ertragen.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자리를 내는 일’에서 하나의 입구를 찾아보자. 유일한 정답을 선언하려는 것이 아니다. 먼저 끊어지는 것은 이런 습관이다. 아름다움은 나를 즐겁고 편안하게 하려고 존재한다는 생각.

봄의 나무가 꽃을 피운다. 모르는 사람이 햇빛 아래로 지나간다. 음악이 펼쳐진다. 마음이 움직인다. 잠깐이나마 우리는 세계를 이용만 하고 있지는 않다.

내 것이 아닌 무언가가 나타난다. 거기 있으며 그 자신이다. 소유하지 못해도 나는 그로 인해 움직일 수 있다.

시는 경험을 더 밀어 본다. 꽃 핀 나무가 단지 ‘예쁘다’는 감상에 들어가지 않고, 내가 마음대로 배치할 수 없는 존재로 가까이 온다면. 익숙한 척도가 갑자기 맞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왜 불안할까. 나 아닌 존재의 확실함이 내 한계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나는 여기, 세계는 바깥’이면 충분하다. 나만큼 실제이되 나를 기준으로 잴 수 없는 것이 다가오면, 그 배치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는 이름을 붙여 다루기 쉽게 만든다. 벚꽃, 모차르트, 아름다운 사람. 이름은 필요하다. 그러나 만남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전에 분류를 끝내 버릴 수도 있다. 알았다는 생각은 거의 가졌다는 느낌이 된다.

그 포장이 풀리는 곳에 어떤 두려움이 시작된다.

릴케의 천사는 안심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종교 전통 속 천사도 모두 다정하고 무해하지는 않았다. 비가 속 천사는 인간의 척도를 훨씬 넘어선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의 읽기로는 ‘내 것이 아님’이 맞아들일 수 있는 한계 가까이까지 밀려간다.

그래서 상상 속 포옹도 두렵다. 악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 강한 존재는 나를 적으로 삼지 않고도 내가 세계를 붙들던 방식을 무너뜨릴 수 있다.

시의 공포는 위험이 다가오는 일만이 아니다. 내 척도로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천사는 두렵다”는 그런 길을 열어 준다. 시를 하나의 뜻으로 닫아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상대가 비현실적인 것이 되지도 않는다.

비가와 소네트는 여러 길을 시도한다. 작은 데서 시작할 수도 있다. 낯선 사람과 말하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와 같아지라고 요구하지 않기. 내 경험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대신하지 않기. 그런 힘은 자랄 수 있다.

하지만 겁먹은 아이나 트라우마를 지닌 어른의 가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 성숙한 인간이라는 자격을 얻기 위해 공포를 견뎌야 하는 사람은 없다.

경계도 남아야 한다. 자리를 내주는 것은 자신을 넘겨주는 일도, 해를 참는 일도 아니다. 다가가도 되고, 물러서고 쉬고 도움을 구해도 된다.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의 일이지, 마지막에 통과하는 성숙도 시험이 아니다.

열 편의 비가는 장면을 바꾼다. 사랑과 어린 시절, 죽음과 영웅, 곡예사, 동물에게 열린 세계, 잠깐인 인간의 삶, 탄식 곁의 찬양. ‘훌륭한 어른’의 조건표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을 거듭 언어 안으로 받아들인다.

열 번째 비가는 이렇게 끝난다.

“행복을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리라.
거의 놀라 어쩔 줄 모를 만큼,
행복한 것이 떨어질 때.”

행복은 상승만이 아니다. 내려감, 상실, 소유할 수 없음, 삶의 일부인 죽음과도 만날 수 있다. 모든 고통을 환영하라는 명령은 아니다. 행복의 모습이 덜 좁아지는 것이다.

레비나스와 나란히 읽으면 울림이 생긴다. 다만 미적 동요와 윤리적 책임은 같지 않다. 한쪽에서는 얼굴이 나의 평온을 묻고, 다른 쪽에서는 어떤 존재 앞에서 내 척도가 흔들린다.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만이 유일한 질문이 아니게 된다. 그래도 한 사람이 내게 건네는 요구와 한 편의 시가 일으키는 흔들림에는 서로 다른 무게가 있다.

이 연작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돌아보자. 칸트는 인간이 단순한 수단에 그치지 않도록. 레비나스는 얼굴의 요구를 듣도록. 부버는 다시 나–너의 관계로 들어가도록. 조식은 갈망을 소유로 바꾸지 않도록. 지라르는 공동의 박해를 알아보고 자신이 가담하는지 묻도록. 셸링은 자기 안에도 쉽게 지배할 수 없는 깊이가 있음을 인정하도록. 에크하르트는 이름을 붙였다고 이름 없는 것을 가졌다고 여기지 않도록. 릴케는 맞아들이려 하면서 자기 한계도 알도록.

여덟 언어. 하나의 학설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방향을 향한다.

그 방향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온다.

8. 다리 위에서

릴케가 어두운 정장을 입고 걸어온다. 키가 크지 않다. 몹시 야위었다. 마지막 몇 해, 쉰 살쯤의 모습이다. 숱이 적어진 머리, 짧고 가는 콧수염, 크고 깊은 눈.

천천히 걷는다. 그의 몸은 오래 좋지 않았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다리에서는 책을 들어 올릴 필요가 없다. 시는 이미 세계에 나가 있다. 출판되고 읽히고 다른 언어로 옮겨졌다.

그런데도 그는 듣고 있다.

고개가 조금 기울어 있다. 주변의 대화를 듣는다기보다 아직 문장이 되지 않은 목소리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 두이노의 아침에 시작한 듣기가 여기에서도 이어진다.

다리 중간에 도착한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히파티아는 아스트롤라베를 들고 있다. 건너편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빈손이다. 베르그송은 지팡이를 짚었다. 레비나스, 부버. 조식에게는 두루마리, 지라르에게는 책. 셸링은 인간 자유에 관한 논고를 들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두 손은 비어 있다.

이름을 아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여러 세대가 모여 있다. 방정식을 적는 사람, 옥수수를 보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별자리를 읽는 사람, 소설을 쓰고 도면을 그리는 사람. 쪼그리고 앉아 메모하는 이, 그냥 앉아서 먼 곳을 보는 이, 옆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릴케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알던 시대와 가까워 보이는 얼굴도 있다. 하지만 서둘러 무리 속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혼자 일하던 방에 익숙하다. 그 방 밖에는 편지를 쓰고 도와주고 그의 답장을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다.

다리 중간에 설 자리를 찾는다. 곧바로 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듣고 있다.

레비나스가 다가온다. 여기에서도 ‘두려운 것의 시작’과 ‘무한한 책임’이 같은 문장이 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비슷한 멈춤에서 무언가를 알아본다. 눈앞의 존재 앞에서, 내 익숙한 척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멈춤.

레비나스가 가볍게 인사한다. 릴케가 돌려준다. 이 만남에서 그것은 잘 치러야 하는 의식이 아니다. 인정하는 마음이 몸짓을 찾은 것이다.

부버도 온다. 그의 ‘너’는 나무일 수도 있었다. 자연으로 가는 길을 릴케만 가진 것은 아니다. 완성된 개념이 만남을 대신하지 않게 하려는 데서 두 사람은 만난다. 부버가 조금 웃고, 릴케도 웃는다.

에크하르트가 온다. 600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신학과 시 사이의 거리도 남는다. 그래도 둘 다 이름 붙이는 일이 더 이상 쉽지 않은 곳까지 언어를 데려갔다. 에크하르트가 두 손을 모아 인사한다. 릴케도 같은 몸짓으로 답한다. 신앙이 같아야만 인정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먼 다리 끝에는 칸트가 서 있다. 오늘은 얼굴이 조금 더 뚜렷해 눈썹 부근까지 보인다.

다리 밖 다른 길에는 어두운 하늘과 번개가 있다. 아직 걷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멀리 간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서는 교수의 예복을 입은 하이데거가 걷는다. 1946년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에서 그는 릴케를 길게 논했다. 시가 사유를 기를 수는 있어도 읽는 사람의 행동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지적 예리함이 정치적 선택의 책임을 없애 주지도 않는다.

릴케가 잠시 그쪽을 본다. 쓰인 시를 누가 읽고 무엇에 쓸지는 작가 혼자 정할 수 없게 된다. 다리 위의 릴케는 바라볼 뿐, 뒤따라가지 않는다.

몸을 돌린다. 히파티아의 아스트롤라베에 달빛이 비친다. 부드러운 빛이다.

그가 웃자 그녀도 웃는다. 그의 독일어와 그녀의 그리스어. 여기서는 공통의 말보다 먼저 몸짓이 닿는다. 아스트롤라베와 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도구는 아직 이해를 끝내지 못한 것에 주의를 연다.

토마스가 반대편에서 다가온다. 600여 년을 건너서. 한 사람은 언어의 경계까지 쓰고 멈추었다. 다른 사람은 말이 어디까지 닿는지 시로 거듭 시험했다. 경계 너머를 똑같이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말한 것을 전부로 삼지는 않았다.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릴케도 답한다.

다리 중간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달빛은 여전히 부드럽다.

늘 먼 곳을 보던 사람은 히파티아, 토마스, 베르그송, 레비나스, 부버, 조식, 지라르, 셸링, 에크하르트를 보아 왔다. 이번에는 릴케를 본다.

시선이 잠깐 만난다. 릴케는 눈을 내리지 않는다. 무엇을 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손이 비어 있다. 그저 고개를 조금 기울인다. 상대가 할지도 모르는 말을 듣는 것처럼.

상대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무엇인가가 온다. 소리 없는 인정, 서로의 존재. 나는 여기 있다. 당신도 거기 있다.

작은 끄덕임. 작은 답례.

릴케는 다리 중간에 서 있다. 적을 수 있었던 것은 들은 것의 일부였다. 아직 다른 것이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 일부를 건네면 다른 누군가도 조금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일은 끝이 없었다. 자신이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시작했다.

그가 지은 것은 닫히지 않는다. 누군가 시를 읽을 때마다, 어느 봄날 아침 꽃 핀 나무 앞에 멈추어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다 말하지 못할 때마다, 자리를 내는 그 몸짓이 세상에서 다시 일어난다.

읽기 안내와 출처

생애와 집필 연대는 릴케 재단, 비서 재직과 서신 재개 및 화해는 로댕 미술관 자료를 참조했다. 비가는 1912년부터 1922년 사이에 단속적으로 쓰였다. 뮈조의 독거도 타인의 실제 도움에 기대었다.

시와 편지는 이 글을 위해 독일어 원문에서 새로 옮겼으며 현대 번역을 전재하지 않았다. 1922년 2월 11일 편지에서 열 편의 완성을 알린 뒤 14일 새로운 다섯 번째를 썼다. 1925년 묘비명은 임종 때 쓴 마지막 시가 아니다. 비소유는 한 가지 독해이며 모호함을 없애는 정답은 아니다.

다리, 길, 날씨, 시대를 넘는 만남은 문학적 상상이다. 비교가 같은 학설을 뜻하거나 사물과 사람에게 동일한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성숙을 증명하려고 해를 견디라는 뜻도 아니다. 1914년 전쟁시는 모나첸지아 문학 기록관의 해설을 참조했다.

Fondation Rilke — life and work chronology · Musée Rodin — Rainer Maria Rilke · Rilke — letter to Marie von Thurn und Taxis, 11 February 1922 · Kulturstiftung der Länder — 11 February 1922 letter to Lou Andreas-Salomé · Rilke — Der Panther, original German · Rilke — Die erste Elegie, original German · Rilke — Die zehnte Elegie, original German · Rilke — Die Sonette an Orpheus, 1923 edition and dedication · Monacensia Literaturarchiv — Kriegsgesänge · Wolfgang Leppmann — reading of the 1925 epitaph · Rilke biography — February 1922 composition sequence · Lorna Martens — The Promise of Memory, childhood discussion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