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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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미래의 타자

폭약과 사업, 외로움과 네 장의 유언장. 과거를 지우지 않고 아직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일에 무엇을 건넬 수 있을까.

1. 자기 부고를 읽는 사람

1888년 4월, 뤼드비그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생 알프레드는 쉰네 살이었다.

노벨이라는 성은 이미 커다란 산업을 가리켰다. 아버지 이마누엘은 발명가이자 기술자였다. 형 로베르트와 뤼드비그는 바쿠의 석유 사업을 키웠고, 알프레드는 여러 나라에 폭약 사업을 펼쳤다. 이름을 혼동하면, 아직 계속되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이 죽음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프랑스 신문이 형제를 잘못 알아보고 알프레드의 부고를 냈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빨리 죽이는 방법으로 부자가 된 ‘죽음의 상인’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기사를 읽고 후세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 깨달았고, 다른 유산을 남기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각각의 대목이 똑같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사망 오보와 이 완성된 이야기는 구별해야 한다. 널리 알려진 제목과, 그것을 읽은 충격이 곧바로 유언장으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는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후대의 전기가 되풀이한 장면은 그날 아침의 기록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알 것 같다.

살아 있는 사람이 신문을 펼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심장은 뛰고, 손가락은 종이를 잡고, 눈은 자기 이름을 읽는다. 그런데 종이 속에서는 벌써 끝난 사람이다.

일한 날도 있었고 실패한 날도 있었다. 친구가 있었고, 자랑스러운 행동과 잊고 싶은 행동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한 문장이 거둬 간다. 죽음의 상인. 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것으로 남는 걸까.

우리는 대개 그런 글을 미리 읽지 못한다. 무엇을 남길지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다음 사람들이 우리의 의도와 행동과 결과를 어떻게 기억할지 써 줄 수는 없다. 어떤 의도는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결과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노벨의 실제 일에도 이 질문이 있다. 그의 기술은 터널을 뚫고 철도를 놓고 광산과 채석장을 운영하는 데 쓰였다. 동시에 군비와도 이어졌다. 여러 나라의 집과 회사와 공장, 특허, 거대한 재산. 발전을 찬양하는 말만으로도, 하나의 비난만으로도 다 담기지 않는다.

민간의 유익한 쓰임이 군사적 쓰임을 지우지 않는다. 군사적 쓰임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발명가는 자기 발명이 세상에서 일으킬 모든 일의 유일한 작가가 아니다.

상상 속에서 남자는 신문을 내려놓는다. 아직 살아 있다. 시간이 남았다.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은 유언장이다. 1895년 노벨은 재산 대부분을 과학과 문학, 평화를 위한 일을 지원하는 데 쓰도록 정했다. 이듬해 12월 10일,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숨을 거뒀다.

갑작스러운 회심의 비밀을 알아야만 이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자기가 없을 시간을 위해 무언가를 마련했다. 그 시간에 실제로 무엇을 건넸는지 보자.

2. 사용할 수 있는 힘

노벨은 1833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업은 어려웠다. 이마누엘은 1837년 스웨덴을 떠나 핀란드와 러시아에서 새 길을 찾았다. 가족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모인 것은 1842년이었다. 아버지는 기계와 기뢰를 만들었다. 이 집에서 기술과 군사적 필요는 일찍부터 만났다.

알프레드는 언어와 문학, 화학을 배웠다. 젊어서 외국으로 공부하러 갔고, 파리에서는 화학자 테오필 쥘 펠루즈의 연구 환경을 접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물질을 알게 됐다.

니트로글리세린.

이탈리아 화학자 아스카니오 소브레로가 1847년 발표한 물질이다. 흑색화약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러나 충격 같은 자극에 뜻하지 않게 폭발할 수 있었다. 제조도 운반도 취급도 위험했다. 큰 힘이 있다는 것과 그 힘을 쓸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노벨은 그 거리를 건너려 했다. 필요한 순간에는 확실히 폭발하고, 그곳까지 옮기는 동안에는 덜 위험해야 했다. 1860년대 초부터 실험에 집중하며 기폭 장치를 개선했다. 폭발력만큼이나 폭발을 시작시키는 방식이 중요했다.

1864년 9월, 스톡홀름의 헬레네보리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동생 에밀과 다른 네 사람이 사망했다. 에밀은 스무 살이었다.

먼 나라의 사망자 숫자가 아니었다. 동생이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죽은 사람들에게도 작업장 바깥의 삶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알프레드는 살아남았다. 일을 계속했다.

용기라는 말만으로는 그 결정을 설명할 수 없다.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사업도 이어 가려 했다. 계속하면 새로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만둔다고 물질과 수요, 다른 사람의 실험이 세상에서 없어지지는 않는다. 과학의 가능성과 사업의 압력, 타인이 지는 위험이 얽혀 있었다.

1867년, 다공성 규조토에 니트로글리세린을 흡수시킨 제품으로 특허를 받았다. 액체 자체보다 다루기 쉬웠다. 적절한 기폭 장치와 함께 공업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 위험이 줄어든 것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힘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다이너마이트.

산을 통과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광산과 채석장, 철도와 운하에 새로운 도구가 생겼다. 고트하르트 철도 터널은 큰 적용 사례였다. 나중에는 파나마 운하 공사에도 다이너마이트가 쓰였다. 철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고, 어떤 대형 공사도 발명 하나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많은 작업의 비용과 속도, 규모가 바뀌었다.

바위를 걷어 낸다. 두 장소를 잇는다. 먼 우회를 줄인다. 실제로 삶의 가능성을 여는 폭발도 있다.

같은 산업이 전쟁 준비로 들어갈 수도 있다.

포와 성곽의 역사는 노벨보다 오래되고 복잡하다. 성벽이 다이너마이트 때문에 처음 무력해진 것은 아니다. TNT도 다이너마이트에서 곧장 갈라져 나온 후손이 아니다. 그의 군사적 연결에는 무연화약 발리스타이트와 군수 기업도 있었다. 현대의 모든 무기를 그에게 돌리지 않아도, 그가 참여한 부분은 보인다.

그는 제품 하나하나의 모든 사용처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만들고 팔고 이익을 얻는 일이 제품이 쓰이는 세계 밖의 행동은 아니다. 광산 회사가 산다. 철도 회사가 산다. 군사적 수요도 그의 사업으로 들어온다.

베르타 폰 주트너와 나눈 이야기에는 역설적인 희망이 남아 있다. 무기가 충분히 무서워지면 나라들이 싸우기를 단념할지도 모른다. 양쪽 군대가 순식간에 서로를 파괴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전쟁 앞에서 물러설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화를 바라는 마음과 무기 생산을 한 논리 안에 놓을 수 있다. 그러나 두 행동을 말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뒤이은 두 차례 세계대전은 파괴력의 증대가 자동으로 전쟁을 끝내지 않았음을 보여 줬다. 핵 억지의 효과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다. 공포만으로 평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언젠가 이 무기가 전쟁을 막을 것이다. 그 언젠가까지 위험을 견뎌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발명가의 좋은 의도는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대답할 수 없다.

3. 사업과 집과 외로움

노벨은 실험실 안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는 사업을 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특허를 내고 협상하고 투자자를 찾고 회사를 세웠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공장과 지분과 실시권이 연결됐다. 나라마다 법과 협력자가 달랐다. 발명 하나를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계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석유도 있었다. 형 로베르트와 뤼드비그가 바쿠에서 키운 사업, 뒤에 브라노벨로 조직되는 기업에 알프레드도 투자했다. 석유는 뽑아 올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제하고 저장하고 운반해야 한다. 유조선과 송유관, 생산 조직이 가족 사업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투자 역시 알프레드의 재산에 보탬이 됐다.

1894년에는 스웨덴의 보포스를 인수했다. 이미 철강과 무기를 만들고 있던 기업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실험과 산업 활동을 이어 갔다. 과학자의 돈, 사업가의 돈, 군수와 연결된 돈을 그의 삶에서 깔끔하게 나눌 수는 없다.

훗날 상의 기금에 들어간 유산은 약 3,100만 스웨덴 크로나였다. 오늘날 달러로 얼마인지 불안정한 환산값을 붙이기보다, 그것이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지 생각해 보자. 백 년을 넘겨 이어진 제도를 시작할 수 있는 재산이었다.

그 돈의 주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파리, 산레모, 스웨덴의 비외르크보른. 집과 책과 실험 공간, 답장을 기다리는 편지가 있었다. 과학만 읽은 게 아니다. 셸리와 바이런을 좋아했고 시와 희곡도 썼다. 문학상은 문학을 거의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끼워 넣은 항목이 아니었다.

생활이 바쁜 것과 외로운 것은 함께 일어날 수 있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76년 베르타 킨스키가 잠시 비서와 가정부로 일했다. 베르타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결혼했고 베르타 폰 주트너가 됐다. 고용은 끝났지만 편지는 계속 오갔다.

베르타는 평화운동의 중요한 목소리가 된다. 평화상 구상에도 베르타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노벨을 위로하려고 이 이야기에 배치된 여자는 아니었다. 자기 결혼과 일, 때로는 노벨과 다른 생각이 있었다. 바로 그런 독립적인 상대와 대화가 이어졌다.

조피 헤스와의 오랜 관계는 다른 모습이었다. 애정과 돈, 기대와 실망이 섞였다. 노벨은 헤스를 지원했고, 교육과 생활을 자기 뜻에 가깝게 바꾸려 하기도 했다. 외로운 천재에게 돈만 요구하는 여자로 줄이면, 그 관계의 권력 차이와 의존은 보이지 않는다.

사후에는 사적인 편지와 돈을 둘러싼 협상도 있었다. 유언장에 서명했다고 한 생애의 모든 관계가 끝나지는 않는다.

집은 있었다. 그것만으로 마음 놓고 돌아갈 곳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자라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몇 가지 언어로 읽고 일했다.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세상을 열어 주지만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지까지 알려 주지는 않는다. 편지와 시에는 우울한 마음과 애정에 대한 갈망,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농담이 남아 있다.

말년에는 『네메시스』를 썼다. 베아트리체 첸치와 폭력적인 아버지, 학대와 부친 살해, 권력과 종교를 다룬 희곡이다. 노벨이 죽은 뒤 초판 대부분은 폐기됐고 소수만 남았다. 글도 작가의 의지만으로 독자에게 도착하지 않는다.

발명가. 부유한 사업가. 외로운 편지의 발신자. 시를 읽는 사람. 한 얼굴을 고른다고 나머지 얼굴이 없어지지 않는다.

4. 미래로 자원을 보내는 일

유언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한 번의 극적인 회심으로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먼저 재산을 어떻게 남길지 정하는 실제 작업이 있었다. 1893년 유언장에도 의학과 평화를 지원하려는 구상이 들어 있다. 1895년에는 다섯 영역이 분명해진다. 과학에 대한 관심, 문학, 가까운 사람들, 기부에 대한 생각이 한 문서로 모였다.

쓰고 다시 생각한다. 자신은 실행하지 못할 행동을 준비한다.

다음에는 베르타가 있다. 1889년 『무기를 내려놓으라!』를 출간했다. 전쟁을 승리의 지도보다 한 삶에 거듭 찾아오는 상실로 보여 주는 소설이다. 활동은 평화회의와 중재, 전쟁에 반대하는 조직으로 이어졌다.

노벨은 읽고 답하고 논쟁했다. 그는 억지력에 희망을 남겨 두었고, 베르타는 평화에 필요한 제도와 행동을 강조했다. 전부 동의해야만 계속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893년 편지에서 노벨은 평화를 위한 활동에 상을 주는 구상을 전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의 양심 속 비밀에 판결을 내릴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도 남는 질문이 있다. 내 일이 해를 보탤 수 있다면, 그 해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자원을 줄 수도 있을까.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팔린 제품을 전부 회수할 수도 없다. 미래의 상이 피해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른 일을 지원할 수는 있다. 지울 수 없다는 것이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면 세 번째 문제가 생긴다. 지원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한 번의 기부도 가치가 있다. 가족에게 남기는 유산도 다른 삶을 지탱할 수 있다. 노벨은 재산 대부분에 다른 길을 택했다. 기금을 만들고 자원을 운용해 그 수익으로 되풀이해서 상을 주는 방식이었다.

원금이 영원히 손상되지 않은 채 아무 위험 없이 필요한 돈을 내놓는 마법이 아니다. 관리하고 투자하고 지출하고, 다음번에도 할 수 있도록 남겨야 한다. 사람과 제도 없이 돈 혼자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을 하는 시간과 기부자의 수명이 갈라진다.

모르는 누군가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일을 할 것이다. 남겨 둔 자원이 그에게 닿을 수 있다. 모든 수혜자를 미리 골라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선택할 자리를 만든다.

자기 동상을 세우는 일과는 다르다.

이름은 남는다. 그러나 그 이름 아래 어떤 일을 기릴지는 더 이상 전부 자기 손안에 있지 않다. 건네주는 부분에 미래의 자리가 생긴다.

5. 네 장의 종이

1895년 11월 27일, 파리. 예순두 살의 노벨은 스웨덴·노르웨이 클럽에서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한다.

건강은 좋지 않았다. 말년에는 협심증 때문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받았다. 그 아이러니를 편지에 적었다. 연구하던 위험한 물질이 이번에는 약으로 자기 몸에 돌아온다.

스웨덴어로 손수 쓴 네 장. 네 사람이 증인으로 서명했다. 짧은 문서 안에는 자신보다 오래 살 여러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담겼다.

개별 유증을 제외한 나머지 환금 가능한 재산으로 기금을 만들고 안전한 증권에 투자한다. 수익은 인류에게 큰 이익을 가져온 일을 한 사람들에게 줄 상금으로 다섯 몫을 나눈다.

물리학의 발견이나 발명. 화학의 발견이나 개선. 생리학 또는 의학. 이상적인 방향의 뛰어난 문학적 작업. 그리고 민족 사이의 우애, 상비군의 폐지나 축소, 평화회의의 개최와 진흥을 위한 활동.

물리학과 화학은 스웨덴 과학아카데미가, 의학은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문학은 스웨덴 한림원이 맡는다. 평화는 노르웨이 의회가 선출한 다섯 명의 위원회에 맡긴다.

후보자의 국적은 선정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칸디나비아 사람이든 아니든 가장 합당한 사람이 받아야 한다.

이 문장들이 저절로 시상식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친족 일부는 반대했고 다른 이들은 지지했다. 조카 에마누엘의 지지도 중요했다. 유산을 어느 나라 법 아래서 다룰지 정해야 했다. 재단은 아직 없었다. 지명된 기관들이 모두 미리 충분한 의논을 거친 것도 아니었다. 책임을 받아들일 것인가. 어떤 규칙과 재원으로 실행할 것인가.

국가를 앞세운 반대도 있었다. 왜 스웨덴의 돈이 외국인에게 가야 하는가. 왜 평화는 노르웨이에 맡기는가. 당시 두 나라는 연합왕국을 이루었지만 관계에 긴장이 있었다. 공적을 자국민에게만 돌리지 않겠다는 문장은 누구에게나 당연하지 않았다.

사적인 문제도 남았다. 조피 헤스, 편지, 금전 협상. 마지막 뜻을 썼다고 이전의 관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유언 집행자는 라그나르 솔만과 루돌프 릴리에크비스트였다. 젊은 솔만은 자산을 보전하고 모아야 했다. 파리의 유가증권 등을 마차에 실어 스웨덴 영사관으로 옮긴 일도 전해진다. 글로 쓴 뜻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실제로 종이를 들고 도시를 건너야 했다.

교섭에는 여러 해가 걸렸다. 1900년 6월 29일, 스웨덴 국왕과 정부가 노벨재단 정관을 승인했다.

1901년 12월 10일, 첫 상이 주어졌다. 죽은 지 다섯 해가 지났다.

엑스선을 발견한 뢴트겐. 화학의 판트호프. 혈청요법에 공헌한 베링. 문학에서는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 평화상은 적십자의 설립과 연결된 앙리 뒤낭과 평화운동가 프레데리크 파시가 나눠 받았다.

스톡홀름에서 상을 건넨 사람은 국왕 오스카르 2세를 대신한 구스타프 왕세자였다. 평화상은 오늘날 오슬로인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수여됐다. 네 장의 종이가 두 도시에서 내미는 손으로 이어졌다.

그 뒤 연례 선정이 제도의 리듬이 됐다. 중단도 있었고 상을 주지 않은 해도 있었다. 모든 분야가 매년 빠짐없이 수상자를 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음 선정에서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조직은 남았다.

기준의 해석도 변한다. 발견 뒤 오랜 시간이 지나 상을 받기도 한다. 유언장의 ‘전년도’라는 말이 기계적인 마감일처럼 적용된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계속되는 일 옆에 놓인다.

새 부고가 오래된 책임을 덮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남아 있다. 그 곁에서 다른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6. 아직 여기에 없는 사람

이 악장에서 앞서 만난 사람들은 책과 시와 가르침을 남겼다. 히파티아, 토마스 아퀴나스, 조식, 릴케. 뒤의 사람들은 읽고 사용하고 반박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이후의 일을 전부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들도 나중의 제자와 독자를 생각했을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노벨이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특별한 것은 자본과 법, 되풀이되는 선택의 절차로 그 마음에 형태를 준 일이다.

죽은 뒤에도 직접 수상자를 고르는 게 아니다. 고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판단할 자리를 넘긴다.

누구를 향한 행동인가. 미래의 타자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지금 살아 있지만 내가 떠난 뒤 중요한 일을 시작할 사람도 있다. 끝내 나를 만나지 못할 사람도 있다. 기금은 아직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그들은 내가 그린 미래의 장식물이 아니다. 먹고 자고 일할 것이다. 슬퍼하고 기뻐할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에 관심을 두고, 내 취향을 거부하고, 나를 엄하게 판단할 수도 있다.

오늘 말을 나눌 수 없다고 해서 없는 사람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그때 사람들 일이지. 내가 어떻게 하겠어. 나는 없을 텐데. 이런 말은 실제 능력의 한계를 인정할 때도 있다. 아직 항의할 수 없는 사람을 슬쩍 계산에서 빼 버릴 때도 있다.

유언장은 다른 행동을 생각하게 한다. 모르는 삶을 위해 얼마간의 자원을 남겨 두는 것.

그 삶을 끝없이 지배하자는 뜻이 아니다. 뒤의 사람에게 내 취향만 지키라고 요구한다면 선물은 명령이 된다. 방향을 정하면서도 상대가 판단하고 고칠 여지는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결정은 미래에 닿는다. 온실가스, 오래 관리해야 하는 폐기물, 공공부채와 투자, 헌법. 서로 다른 문제지만 오늘의 결정 자리에 없는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는 어려움은 함께 있다.

그들을 책임 있게 고려한다는 것은 그들의 세계를 미리 안다는 뜻이 아니다. 불확실하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전달하는 것 안에 수정할 가능성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다.

노벨은 올해 수상자를 고르지 못하고 위원회의 판단을 승인하거나 취소하지도 못한다. 다섯 분야와 국적을 넘어선다는 원칙은 남지만, 실천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경제학상은 후대에 별도로 만들어진 기념상으로, 그의 유언장에 들어 있지 않았다.

받는 사람도 기부자의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한다.

앞의 인물들을 이 글의 언어로 나란히 읽어 보자. 칸트는 사람을 단순한 수단으로 줄이지 못하게 한다. 레비나스는 타자 앞의 책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부버는 나와 너의 만남을 연다. 조식은 갈망한다고 소유할 수 없는 거리를 남긴다.

지라르는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셸링은 자신이 투명하다고 믿는 자아를 흔든다. 에크하르트는 신을 이름 안에 가두는 손을 느슨하게 한다. 릴케는 자신을 넘어오는 것을 곧바로 장악 가능한 물건으로 바꾸지 않는다.

노벨의 유언장은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자리를 남긴다.

같은 학설의 아홉 가지 표현은 아니다. 그래도 내 편의를 위해 상대를 끝내 버리지 않는 방향으로 함께 읽을 수는 있다.

그 방향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온다.

7. 닫히지 않을 자리를 남기다

1896년 12월 10일, 노벨은 산레모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예순세 살이었다. 형들은 먼저 죽었고 아내와 자녀는 없었다. 마지막 시간을 전하는 이야기에는 외로움이 있다. 그렇다고 누군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마지막 말을 우리가 대신 완성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삶은 거기서 끝났다.

서류와 편지가 남았다. 재산과 지시,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약속이 남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가 더는 실행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협상이었다. 가족, 왕실, 행정기관, 선정할 조직들. 자산을 지키고 정관을 쓰고 함께 움직일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 유산은 물이 비탈을 내려가듯 저절로 미래에 닿지 않는다. 누군가 일을 해야 한다.

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해가 더해진다. 중단과 재개도 있다.

1903년 마리와 피에르 퀴리는 베크렐과 물리학상을 나눠 받았다. 마리는 1911년 화학상도 받아 첫 두 차례 수상자가 됐다. 아인슈타인의 1921년도 물리학상은 이듬해 결정됐고, 특히 광전효과 법칙을 평가했다.

라이너스 폴링은 1954년 화학상과 1962년도 평화상을 받았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두 번 모두 단독 수상한 경우다. 토니 모리슨은 1993년 문학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열일곱 살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와 평화상을 나눠 받았다.

노벨이 직접 고른 이름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일이 유언장에서 시작된 제도와 만났다. 그의 유산에 관계가 하나 더해지지만, 그들의 일이 그래서 그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문학상의 유럽 중심 시각, 중요한 누락, 정치적 선택에 비판이 있다. 1935년 문학상은 수상자를 내지 않았다. 1973년 키신저와 레득토에게 준 평화상은 큰 논란을 낳았고, 레득토는 수상을 거부했다. 협상을 기린다고 전쟁의 고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위원회가 판단했다는 사실은 잘 판단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누가 보이는가. 누가 빠졌는가. 공동 작업이 몇 사람의 이름 뒤로 얼마나 사라졌는가. 누구의 기준이 보편적인 것처럼 쓰였는가. 계속 물어야 한다.

이어진다는 것과 완성됐다는 것은 다르다.

정관과 돈, 비판과 다음 선정이 있다. 오래갈 가능성은 있지만 보장은 없다. 돌보고 책임지는 사람이 사라지면 제도도 작동하지 않는다.

히파티아의 일은 잃어버린 부분까지 포함해 뒤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남겼다. 아퀴나스는 칠백 년 넘게 읽힌다. 셸링은 동시대와 뒤의 세대가 여러 방식으로 다시 읽었다. 에크하르트는 타울러와 후대의 종교·철학 독자들에게 서로 다른 길로 닿았다. 하나의 곧은 계보가 아니다. 릴케의 시는 다른 봄에 다시 펼쳐질 것이다.

노벨의 경우, 전달의 일부가 자금과 선정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무언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형태를 준 것이다.

과거를 씻는 방법은 아니다. 나중의 좋은 행동을 이전의 피해에서 장부처럼 뺄 수는 없다. 그래도 다른 삶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지금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는 물을 수 있다.

그만한 재산이 없어도 된다. 책을 한 권 준다. 편지를 쓴다. 제자가 다른 길로 갈 수 있게 가르친다. 나무를 심는다. 쓸모 있는 기록을 보존한다.

나중에 쓰는 사람은 내 이름을 모를 수도 있다. 그래도 사용할 무언가와, 내가 예상한 방식과 다르게 받을 약간의 자유가 있을 것이다.

큰 상의 이름이 붙지 않았다고 작은 행동이 덜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8. 다리 위의 문서

노벨이 걸어온다. 짙은색 스리피스 정장은 수수하지만 잘 지었다. 수염은 짧고, 깊은 눈에는 피로가 있다. 다리 위에서는 예순 살쯤, 말년의 모습이다.

조심스럽게 걷는다.

접은 종이를 들고 있다.

책도 시도 아니다. 1895년 11월 27일 서명한 네 장의 사본이다. 이 상상의 장면에서 그는 그것을 가져오기로 했다. 발명과 사업과 문학은 모두 그의 삶이다. 오늘은 이 문서를 내민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위해 남긴 구체적인 것.

다리 가운데에 닿는다.

히파티아가 아스트롤라베를 들었다. 반대편의 아퀴나스는 빈손이다. 베르그송은 지팡이를 짚었다. 레비나스. 부버. 조식은 두루마리를 들었다. 지라르는 책을, 셸링은 자유 논문을 들었다. 에크하르트의 손은 비어 있다. 릴케는 고개를 조금 기울여 듣는다.

그들뿐이 아니다. 여러 세대가 모였다. 방정식을 쓰고 옥수수를 보고 별 지도를 읽는 사람들. 시와 소설을 쓰고 도면을 그리는 사람들. 쪼그려 앉아 메모하는 사람,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두 사람.

노벨이 인사한다.

많이 읽었다고 이곳 사람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과학자의 얼굴도 있다. 대부분은 지금 처음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 앞에 서 있다.

서둘러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다. 가운데 자리를 찾아 종이를 든 채 선다.

먼 끝에 칸트가 있다. 오늘 밤에는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다.

다리 바깥 길은 어두운 하늘 아래 이어진다. 번개. 아직 걷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멀리 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서 교수복을 입은 하이데거가 계속 앞으로 간다.

노벨이 그 길을 본다.

세계대전과 핵무기는 생전에 직접 본 미래가 아니다. 이 길은 후대에서 역사를 돌아보는 이야기의 일부다. 그의 발명이 모든 폭력의 출발점은 아니다. 그러나 유언장을 쥐었다고 무기와 이익에 연결된 삶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는 종이를 들어 길을 가리지 않는다.

잠시 본 뒤 돌아선다.

히파티아의 아스트롤라베가 달빛을 받는다. 빛은 부드럽다.

그녀의 시대에는 다이너마이트도 노벨상도 없었다. 그래도 그가 든 것을 본다. 죽은 뒤에도 누군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 두는 준비. 가르치는 사람도 그 행동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인다. 노벨도 답한다.

아퀴나스가 다가온다. 두 시대 사이에는 약 육백 년이 있다. 중세에도 유언장은 있었다. 다만 이 탁발수도사가 남긴 것은 기업가의 재산이 아니라 책과 가르침이었다. 독자가 바뀌어도 『신학대전』은 읽힌다.

종이가 쓰이는 방식은 다르고 남긴 것도 같지 않다. 그래도 둘은 아직 여기 없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무언가를 보냈다. 아퀴나스가 인사한다. 노벨은 상대의 모든 사상을 이해한 척하지 않고 답한다.

릴케도 온다. 노벨보다 마흔두 살 어리다. 노벨이 죽었을 때 막 스물한 살이었다. 로댕을 만나러 파리에 가는 것은 그로부터 몇 해 뒤다. 같은 도시와 맺은 관계도 서로 다른 시간에 놓여 있다.

이 다리에서는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종이를 본다. 시는 시로 남는다. 유언장에는 집행자와 제도가 필요하다. 같지는 않다. 그래도 만든 이가 떠난 뒤 다른 사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나란히 놓인다.

작게 웃는다. 노벨도 웃는다.

다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있다. 달빛은 부드럽다.

멀리 보던 사람이 히파티아와 아퀴나스를 보았다. 베르그송, 레비나스, 부버, 조식, 지라르, 셸링, 에크하르트, 릴케를 보았다.

이번에는 노벨을 본다.

잠깐 눈이 마주친다.

노벨은 종이를 천천히 펼친다. 상대가 글을 볼 수 있도록.

뽐내지 않는다. 서류를 건네는 손이다.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 그 한계까지 포함해 이후에 맡긴 것.

먼 쪽에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노벨은 종이를 다시 접어 넣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선다.

남긴 것은 금액만이 아니라 그 돈이 다른 손에 도착할 길이다. 받을 사람은 노벨을 완성하려고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일이 있다.

그는 자기 수명 너머로 손을 뻗었다.

거기서 시작되는 일을 혼자 끝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남겼다.

다음 해가 올지도 모른다. 선택과 비판, 받는 사람과 이어 가는 사람이 함께 올 것이다. 오래된 책임을 덮는 새로운 부고가 아니라, 끝난 한 생애와 아직 끝나지 않은 일 사이에 생기는 또 하나의 관계로.

읽기 안내와 출처

죽음의 상인이라는 제목과 그것을 읽고 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확정된 동기 사슬이 아니다. 첫 독서 장면은 상상이며 유언장과 편지는 별도의 문헌 근거를 따른다.

1864년 사고, 폭약과 기폭 기술, 문학과 유산은 스웨덴 국립문서보관소 전기와 노벨 공식 자료를 참조했다. 1901년 스톡홀름에서는 왕세자가 상을 주었고 평화상은 따로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수여했다.

1935년 문학상은 수상자를 내지 않았다. 폴링은 다른 분야의 두 상을 모두 단독 수상했으며, 퀴리는 앞서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연례 시상에는 중단도 있었고 해당 연도 작업만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다리와 시대를 넘는 만남은 문학적 상상이다. 상을 만든다고 기술과 군수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으며, 미래의 수혜자는 기부자의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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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