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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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이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

청중의 언어로 하는 설교, 소유할 수 없는 영혼의 불꽃, 단죄 이후에도 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목소리.

1. 설교

1320년대, 라인란트의 작은 예배당. 설교 한 편을 상상해 보자. 여기 앉은 사람들과 그들의 몸짓은 현장 기록이 아니다. 설교의 말도 녹취가 아니라 그 생각에 다가가기 위한 재서술이다.

강단에 예순쯤 된 도미니코회 수사가 서 있다. 검은 망토와 흰 수도복. 희끗해진 머리. 오랫동안 생각해 온 사람의 여윈 얼굴. 그는 독일어로 말한다.

대학 신학과 교회의 공식 문서에서는 라틴어가 중요한 언어였다. 그렇다고 민중의 말로 하는 설교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수녀들, 평신도들, 도시의 신앙 공동체도 이미 영혼과 신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간단한 훈계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수사는 학자에게도 만만하지 않을 물음을 그들이 쓰는 언어로 가져온다.

신에 관해 말한다. 자비로운 분, 정의로운 분, 전능한 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익숙한 이름에서 시작한다. 그 이름이 모두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 말하고 나서 이제 신에 관해 할 말을 끝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묻는다.

듣는 이들을 익숙한 말의 가장자리로 데려간다.

신은 무라고 말한다.

우리가 상상한 예배당에는 나이 든 여성 몇 명, 방앗간 주인, 수녀 둘, 글은 읽지만 라틴어는 모르는 시민이 있다. 모든 논리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붙잡아 물건처럼 앞에 놓을 수 있는 것에는 신 전체가 담기지 않는다. 그의 말은 대략 그쪽을 향한다. 생각할 수 없다는 말조차 완성된 답이 아니다. 움켜쥔 손을 풀게 하는 말이지, 더 귀한 소유물을 손에 쥐여 주는 말이 아니다.

신을 선하다고 부르는 것이 문제라면, 선이 나빠서가 아니다. 우리가 늘 쓰는 자로 그 선함을 다 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위험이 있다. 신은 세상의 물건 목록에 보태지는 또 하나의 물건이 아니다. 이름 없다는 것은 어느 이름도 그를 다 담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 여성이 듣고 있다. 베를 짜는 사람일 수도, 옷을 꿰매는 사람일 수도 있다. 신학을 배운 적은 없다. 수사가 말하는 깊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눈에 물기가 맺힌다.

왜인지 자신도 모른다. 다만 오래 기다리던 말을 들은 것 같다.

설교라면 많이 들었다. 회개하라, 베풀어라, 따르라, 믿어라.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는 익숙한 문장이 닿지 않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강단의 사람이 지금 그곳을 건드린다.

그에게 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교리를 없애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도착한 것은 명령 하나가 더해지는 일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가리키는 손짓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천과 빵 반죽, 늘 하던 일로 돌아간다. 수도원은 멀다. 자주 다시 오기는 어렵다. 오늘 들은 것을 남에게 잘 설명할 수도 없다. 말이 없다.

그런데도 그 깊은 곳에 이름이 생겼다. 이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이름이.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사의 이름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다. 마이스터는 우선 대학의 학위에서 온 호칭이다. 라틴어로 마기스테르. 그는 파리에서 두 차례 신학 교수직을 맡았고 도미니코회 작센 관구장으로 여러 수도원을 관리했다. 강단의 사람은 엄격하게 훈련받은 학자이자 경험 많은 책임자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에게 돌아오는 까닭이 그런 직함뿐인 것은 아니다. 이런 설교 때문이다. 라틴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가장 어려운 물음에서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이단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절차가 끝나기 전에 죽는다. 1329년 교황 칙서는 스물여덟 명제를 다룬다. 열일곱은 이단으로, 열하나는 표현이 부적절하고 경솔하며 이단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단죄한다. 에크하르트 개인을 이단자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그 판단은 저술의 전승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래도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연작에서 덕이라고 불러 온 것, 한 사람의 말과 행위가 다른 사람의 삶에서 계속하는 일은 그의 몸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2. 신성

그가 쓰는 중요한 구분 하나가 있다. 고트와 고트하이트. 신과 신성이다.

신에게는 말을 걸 수 있다. 창조주, 심판자, 구원자. 속성과 행위를 말하고 관계를 생각한다. 기도하고 삼위일체를 논한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전부는 아니다.

신성이라는 말은 그런 이름으로 붙들 수 있는 범위 너머로 생각을 밀어 보낸다.

신 뒤에 또 다른 신을 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삼위일체 위에 더 높은 지배자를 올리는 이야기도 아니다. 몇몇 설교에서 이 말은 어떤 구별로도 다 설명되지 않는 신의 하나 됨을 가리킨다. 두 존재가 서로 다른 층에 산다고 그리면 오히려 멀어진다.

그는 그룬트라는 말도 쓴다. 바탕, 근거, 뿌리.

생각을 깊은 곳으로 이끄는 단어다. 바닥 없는 심연을 떠올려도 좋다. 계속 파지만 집에 가져가서 이제 바탕을 소유했다고 말할 수 있는 돌은 나오지 않는다. 다가가는 것이 물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우주가 생기기 전의 원초적 물질을 부르는 말도 아니다. 신을 존재하는 것들의 목록에 넣기를 거부하는 말이다. 어느 하나의 존재도 존재의 근원 전체를 담지 못한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신의 모습보다 깊다고 말해 볼 수 있다.

곧 어려워진다. 신이 가장 높다면 신보다 깊은 것이 어떻게 있는가. 바로 여기서 높낮이의 지도가 우리를 속인다. 여전히 무언가를, 다만 다른 것보다 큰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라는 비유를 써 보면 어떨까. 이름들은 신을 향할 때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완성해 서류함에 넣을 수 있는 초상은 아니다. 삼위일체가 가면이라는 뜻도 아니다. 비유는 붙드는 힘을 느슨하게 하려는 것이지 새로운 완전한 설명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는 삼위일체나 신의 말씀을 버리지 않았다. 영혼 안에서 말씀이 태어난다는 것은 그의 설교에서 거듭 중심으로 돌아온다. 불편한 요구는 여기 있다. 교리를 내 삶 바깥의 정보로만 저장해 둘 수는 없다. 삶 자체의 변화가 걸려 있다.

심사하는 쪽에서는 불안해질 수 있다. 듣는 사람이 신과 인간 사이에는 아무 구별도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규칙 같은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설교는 말한 사람이 원하지 않은 곳으로도 간다.

누가 해석하는가.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떤 청중에게 말하는가. 이것도 실제 쟁점이었다. 권위와 권력은 구체적인 명제, 신학적 차이, 수도회 내부 갈등, 조사 절차와 얽혔다.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를 인용한다고 모든 반론이 자동으로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에크하르트는 신앙과 이성 바깥에서 말하지 않는다. 신학자이자 철학자다. 하지만 개념 논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그의 일은 아니다.

그는 가리킨다.

말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헛된 환상으로 버리지 않은 채, 듣는 사람을 그쪽으로 향하게 한다.

바탕, 사막, 고요, 무, 신성. 그룬트, 뷔스테, 슈틸레, 니히츠, 고트하이트. 각각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며 어느 말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거듭 짚는 사이, 한 단어로 닫을 수 없는 윤곽이 느껴진다.

신비주의의 언어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모호하게 도망치는 언어는 아니다.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바로 그 한계에서 계속 일하는 언어다.

3. 영혼의 불꽃

그는 신성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말한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작은 불꽃이 있다고 한다. 작은 불꽃, Seelenfünklein. 단순히 양심이나 도덕 감각, 종교적인 기분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는 영혼이 신에게 열리는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킨다. 사람에게서 잘라 낼 수 있는 신성의 재료 조각이 아니다.

1329년 칙서에 실린 한 명제는 영혼 안에 창조되지 않았고 창조될 수도 없는 것이 있으며, 영혼 전체가 그런 것이라면 영혼도 창조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은 지성이라고 말한다.

제27항이다. 논쟁이 가장 날카로워진 대목 가운데 하나다. 고발된 한 문장에는 그가 설명하던 맥락을 다시 돌려줄 필요가 있다.

문자 그대로 들으면 영혼 안에 창조되지 않은 부품이 들어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이 몸과 영혼 모두 피조물이라고 가르친다. 독립된 신의 조각을 인간에게 넣으면 그 구별을 허물게 된다.

그의 변론은 피조물인 영혼과, 인식 활동에서의 지성을 구분한다. 눈이 색을 받아들인다고 눈 자체가 색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몸 안에 신의 파편이 들어 있다고 손쉽게 증명할 수는 없다.

어려움은 남는다. 불꽃은 바로 그 어려운 자리에서 빛나는 비유다.

새로운 재산이 아니다. 남에게는 돈이 있고 내게는 신성이 있다고 자랑하는 물건이 아니다. 몸, 욕망, 개념, 사회적 역할은 내면의 깊이를 가릴 수 있다. 그렇지만 안으로 간다는 것은 자신을 높일 귀한 부품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다. 가지려는 손을 푸는 일이다.

중세의 청중에게는 강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시 기독교가 오직 인간을 낮추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 은총, 내적 삶, 신의 생명에 참여한다는 가르침도 있었다. 먼 하늘 아래에서 인간에게 수치심만 가르친 전통은 아니었다.

에크하르트는 그 전통 안에서 말한다. 신이 가깝다는 생각을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는 데까지 밀어 간다.

먼 곳만 올려다보지 말라. 신이 앞에 놓인 물건처럼 나타나지 않는 그 깊이로 들어가라.

평범한 청중에게는 이것이 커다란 풀림일 수 있다. 학위나 지위, 누군가의 승인이 있어야만 내적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방에서, 일하면서, 침묵 속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은총, 성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직함도 그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기존의 위계에는 압력이 생긴다. 방에서 조용히 마음을 모으는 사람이 성직이 없다고 신에게서 배제되지는 않는다. 교회는 가르치고 공동체를 지탱하며 성사를 거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내적 변화를 직위가 보증하는 증명서로 바꿀 수는 없다.

불꽃은 논쟁을 위한 단어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과, 권위가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바꾸기도 한다.

에크하르트는 교회 생활, 성체를 모시는 일, 고해도 권했다. 형식에는 의미가 있다. 무언가가 일어날 곳까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다만 그 일이 일어나도록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문턱까지 누군가 동행할 수는 있다. 넘어가는 걸음을 온전히 맡길 수는 없다.

길 끝에는 여전히 불꽃의 이미지가 있다.

4. 놓아 버린다는 것

그 길을 어떻게 걷는가. 에크하르트는 압게시덴하이트라는 말을 쓴다.

초탈, 집착에서 벗어남, 놓아 버림이라고 옮길 수 있다. 독일어에는 떨어져 나옴, 붙들리지 않는 상태라는 울림이 있다. 무엇에서 떨어져 나와야 할까.

바깥 물건을 움켜쥔 손에서. 역할을 움켜쥔 손에서. 자신에 대해 준비해 둔 모습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미래와, 끝없이 다시 쓰는 과거에서. 원한다와 두렵다에서. 나는 얼마나 신앙이 깊은 사람인가 하는 흐뭇한 모습에서도.

신이라는 개념조차 신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 전체를 내 것으로 움켜쥐려는 요구를 놓는 것이다.

빈 사람이 되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모든 비어 있음이 같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울이나 무감각, 상처를 진단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은 자신의 공허함을 영적인 성과로 바꿀 의무가 없다. 여기서의 비움은 자리를 내어 준다는 뜻이다.

이것도 비유다. 신은 욕망이 이사 나가기를 기다리는 세입자가 아니다. 모든 행동을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나에 맞추어 배열하지 않을 때, 일상의 행위가 다른 방향으로 열릴 수 있다.

요구는 외부 소유물을 내려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 관한 개념도 느슨하게 한다.

돈, 지위, 명성도 놓기 어렵다. 더 어려운 것은 공들여 관리해 온 인물상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것이 내 사명이다.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보아야 한다. 심지어 나는 남보다 잘 놓아 버린다는 생각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것이 되기도 한다.

초탈은 자아의 가슴에 훈장 하나를 더 달아 주는 일이 아니다.

나에 관한 개념도 개념이다. 맞는 면이 있어도 나의 전부는 아니다. 성격과 기억과 관계를 파괴하지 않아도, 그 자화상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게 할 수 있다.

불꽃은 그 자리를 가리킨다. 소유하려는 내가 더는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아를 내세워 타인의 인격을 지워도 된다는 말도 아니다. 신과의 합일을 말하는 언어는 신을 외부 대상처럼 대하는 관계를 넘어서려 한다. 실제 행위의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영적 가난을 다룬 설교 52에서는 내가 없다면 신도 없다는 역설까지 나온다.

이 개별적인 사람이 죽으면 신도 파괴된다는 뜻이 아니다. 피조물과 관계하는 신이라는 측면과 신 자신의 존재를 구분한다. 피조물이 없다면 그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을 흔드는 문장이지만, 내 욕망이 곧 신의 뜻이라는 허가증은 아니다.

대담한 걸음이다. 의심도 부른다.

그래도 신과 피조물의 구별을 단순한 권력의 속임수로 치워 버릴 수는 없다. 에크하르트는 기독교 안에서 말하며 행동과 사랑도 가르친다.

예배당의 여성은 내일 다시 일하고,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도 남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놓아 버렸으니 그런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설교가 요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편리한 결말을 보탠 셈이다.

5. 쾰른의 심리

1326년, 쾰른. 에크하르트는 예순여섯쯤 되었다.

많은 설교를 했고, 라틴어 주석을 썼고, 관구의 수도원들을 관리했고, 파리에서 두 번 가르쳤다. 그가 속한 영성의 전통은 수소와 타울러 같은 이들에 의해 더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산다. 대주교 하인리히 2세 폰 비르네부르크가 문제로 지목된 명제를 조사하게 한다. 수도회 내부의 고발, 사목상의 우려, 권위를 둘러싼 충돌이 겹쳐 있었다.

1326년 9월 26일, 에크하르트는 교구 심리위원회에 나와 자신의 글을 변론한다.

그는 답한다. 동시에 지역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며, 나중에는 교황에게 상소한다.

잘려 나온 문장에 맥락을 돌려준다. 구별을 설명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온 길을 다시 밟는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포함한 교회의 지적 전통은 그가 배우고 그 안에서 논쟁해 온 유산이었다.

변론서는 남아 있다. 혐의 목록은 문장을 잘라 낸다. 답변은 문장을 원래 말하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끈질기게 변론하는 것과 자신은 틀릴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다르다.

1327년 2월 13일, 그는 자기 가르침에 오류가 있다면 철회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조건부 철회다. 고발하는 쪽이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지적인 오류와 이단을 고집하는 의지를 구별했다. 잘못 이해하는 것이 곧 신앙을 버리려는 의도를 뜻하지는 않는다.

여러 혐의가 자신을 오독했다고 그는 계속 주장한다. 참뜻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한다.

명예와 평생의 작업을 위협하는 절차 안에서 늙은 수사가 계속 설명한다. 그 끈기에는 무게가 있다. 용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데만 있지 않다.

진리에 자리를 내어 준다는 것은 자신이 충분히 잘 말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인정하는 일이다. 가리키는 것에 충실함과, 한 번 말한 모든 단어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일은 다르다.

물러날 길이 없어야 그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치거나 고치거나 침묵했어도 그 삶이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 뜻을 내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진리 위에 놓지도 않으려는 사람이 여기 있다.

지역의 절차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상소를 통해 사건은 다른 단계로 옮겨 간다.

교황은 당시 아비뇽에 있었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청의 주된 거처였다. 그곳으로 사건이 가고, 에크하르트도 직접 답하려 한다.

1327년 봄, 그는 길을 떠난다.

6. 아비뇽, 그리고 그 뒤

1327년에서 1328년. 교황 측 위원회가 심리를 이어 간다. 그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가. 문장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교리의 경계를 넘는가.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생은 최종 판단에 닿지 못했다. 1328년 무렵 세상을 떠난다. 정확한 날짜와 장소에는 논의가 남아 있다. 마지막 방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1329년 3월 27일, 요한 22세가 칙서 In agro dominico, 주님의 밭에서를 발표한다. 스물여덟 명제 중 열일곱은 이단으로, 열하나는 표현이 부적절하고 경솔하며 이단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단죄된다. 후자의 경우 설명을 통해 가톨릭 신앙에 맞는 뜻을 가질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말을 심사받는 당사자는 더는 대답할 수 없다.

말한 사람이 죽은 뒤, 잘려 나온 문장에 누가 맥락을 돌려줄 것인가. 무거운 질문이다. 칙서는 명제와 그것을 담은 저술을 단죄하면서, 오류를 철회하고 교황청 판단에 따르겠다는 그의 선언도 기록한다. 개인을 이단자로 선언하지는 않았다.

글이 전해지는 길은 복잡해진다. 필사본에 남고, 익명으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저자의 글과 섞여 유통된다. 누군가 읽고 다시 베낀다. 말은 이런 굽은 길을 지난다.

판결은 유통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뒤에 올 모든 독자가 무엇을 발견할지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수소, 타울러 등은 라인란트 영성을 더 발전시킨다. 같은 문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새로 말해야 한다.

루터는 훗날 타울러를 읽고 높게 평가한다. 수용의 실마리다. 불꽃이 곧바로 종교개혁이 되었다는 직선은 아니다. 루터의 믿음과 은총, 말씀도 공동체가 전혀 필요 없는 사적인 내면 체험으로 줄일 수 없다.

19세기에는 독일어 저술의 편집과 라틴어 저술의 재발견이 새 독자들을 불러온다. 헤겔을 비롯한 사상가들이 관심을 갖는다. 셸링의 근거와 어둠을 통해 두 사람을 함께 읽는 길도 열린다. 함께 읽으면 물음이 열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의 체계라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20세기, 하이데거는 게라센하이트를 자기 철학에서 새로 해석한다. 놓아 줌, 있는 대로 있게 함. 에크하르트와 연결되는 말은 다른 방향을 얻는다. 단어는 변하면서 살아간다. 단어를 받아들였다고 이전 사용자의 모든 의도까지 그대로 이어받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쓰는 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에서 에크하르트와 선불교를 나란히 읽는다. 불꽃, 불성, 내려놓음, 무아가 새로운 읽기 안에서 만난다. 비교에는 경계도 있다. 기독교의 신성과 선의 언어는 구별 없이 같은 것이 아니다. 차이를 먼저 지우지 않아도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시대마다 이 말들을 위한 다른 방이 열린다.

가톨릭과 도미니코회 연구자들도 에크하르트를 다시 읽는다. 역사적 고발, 개별 명제, 사상 전체를 구분한다. 옛 단죄와 오늘의 재독은 마지막 쪽이 아직 쓰이지 않은 역사 안에 놓인다.

육백 년, 칠백 년 뒤의 일이다. 그는 그런 독자들을 보지 못한다. 세상을 떠날 때 사건은 열려 있었고, 말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손으로 넘어간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글이 새로운 형편에 말을 걸고, 그 만남에서 전에는 없던 모습을 얻는다.

여기서 이 연작의 물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은 완전히 닫힐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 그는 행동으로 무언가를 더한다. 죽은 뒤 그 몸의 행동은 멈춘다. 하지만 말과 관계, 남겨진 영향은 다른 이에게 닿고, 오독되고, 다시 받아들여지고, 바뀔 수 있다.

판결은 공개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내용과 한 이름의 운명을 바꾼다. 미래의 뜻을 모두 소유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억압은 반드시 실패한다거나 모든 사람이 결국 인정받는다는 위안의 법칙은 아니다.

여기서 계속된다는 것은 누군가 한 일이 다른 삶에서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다. 후세에 남는 것은 한 생의 가치 여부를 가르는 시험이 아니다.

지금 에크하르트를 읽는 사람은 자기 형편을 가져온다. 그 안에서 말이 새 윤곽을 얻는다. 적어도 이 순간 작업은 열려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진짜 자리를 내어 줄 때 히파티아를 떠올린다. 학자가 언어의 한계를 인정할 때 토마스를, 살아 낸 시간이 시계 눈금으로 납작해지지 않을 때 베르그송을 떠올린다.

타인의 요구에 응답해 해치는 손을 멈출 때 레비나스를, 만남이 쓸모로 환원되지 않을 때 부버를, 그리움과 소유할 수 없음이 함께 인정될 때 조식을 떠올린다.

누군가 희생양 찾기를 알아보고 참여하지 않을 때 지라르를, 자신이 자신에게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고 인정할 때 셸링을, 이름을 전부로 여기지 않는 독자가 있을 때 에크하르트를 떠올린다.

다리는 과거형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삶이 함께 서서 서로에게 묻는다. 역사적 영향 관계의 족보가 아니다. 히파티아, 에크하르트, 셸링, 레비나스는 서로의 제자가 되거나 같은 학설의 대표가 되지 않고도 한 장면에서 만날 수 있다.

다리는 그렇게 계속되는 일을 보여 준다. 다시 열리는 현재다.

7. 이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

에크하르트는 평생 신성을 하나의 이름에 가둘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름을 계속 쓴다. 바탕, 사막, 고요, 무, 신성. 한 말이 가리킨 뒤 다음 말에 자리를 내준다.

말을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말도 마지막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름은 찾는 일을 돕는다. 동시에 더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하기도 한다. 신비, 공허, 말할 수 없음도 생각이 잠드는 표찰이 될 수 있다.

거듭 가리키는 것은 모든 포획을 막는 마법이 아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한 손을 다시 펴는 일이다.

이것이 그가 남긴 가장 깊은 것일지 모른다. 구체적 교리를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방식. 개념이 담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며 삶 안에 자리를 만드는 방식.

칸트는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한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로, 부버는 나와 너로 우리를 돌려세운다. 조식은 그리움과 비소유를 함께 놓는다. 지라르는 타인을 없애는 장치를 드러낸다. 셸링은 우리 안의 불투명함을 잊지 못하게 한다. 에크하르트는 어떤 이름으로도 닫히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일곱 언어가 이 읽기 안에서 한 방향으로 모인다. 일곱 학설이 하나가 된 것은 아니다.

그쪽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온다.

8. 다리 위에서

에크하르트가 걸어올 때는 밤이다.

검고 흰 수도복은 낡았고 소맷부리가 해졌다. 천으로 만든 신을 신었다. 이 상상의 다리에서 그는 예순 무렵, 방금 강단에서 내려온 사람 같다. 여위었고 서두르지 않는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라르에게는 책이 있다. 셸링에게도 있다. 조식에게는 두루마리, 히파티아에게는 아스트롤라베가 있다. 에크하르트도 라틴어 저술을 썼다. 독일어 설교는 듣고 정리하고 베끼는 일을 거쳐 전해졌다. 지금은 우선 그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자기 삶으로 가져갔다.

다리 가운데에 이른다.

지난번보다 사람이 많다. 히파티아가 천문 관측기를 든다. 건너편에는 토마스가 빈손으로 서 있다. 베르그송은 지팡이에 기댄다. 레비나스. 부버. 두루마리를 든 조식, 책을 든 지라르, 자유에 관한 논문을 든 셸링.

이름을 부른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세대가 쌓였다. 방정식을 적는 사람, 옥수수를 살피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별 지도를 읽는 사람. 소설을 쓰고 도면을 그리고 쪼그려 앉아 메모하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옆 사람과 낮게 이야기한다.

에크하르트는 토마스를 본다.

둘 다 도미니코회 수사다. 토마스는 1274년에 죽었다. 1260년 무렵 태어난 에크하르트는 아직 어렸다. 실제 만남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생각은 세대를 건넌다. 알베르투스, 토마스, 에크하르트가 배우고 토론한 전통.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토마스도 끄덕인다.

둘 다 라틴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쓰다가 경계에 이르러 멈추는 일. 그 경계에서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 일. 두 움직임이 잠시 서로를 비춘다.

토마스가 조금 웃는다. 자신의 미완의 작업 일부를 상대에게서 알아본 듯하다.

셸링도 다가온다. 몇 세기가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다. 신성, 근거, 어둠. 생각이 쉽게 붙잡지 못하는 깊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크하르트의 신성이 셸링의 어두운 의지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물음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

셸링은 먼저 길을 찾아간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한다.

스콜라 신학은 에크하르트에게 도구를 주었고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한계도 주었다. 셸링은 다른 조건에서 일했다. 잠시 서로의 어려운 일을 알아본다.

에크하르트가 인사를 돌려준다. 작은 움직임이다. 승리 뒤의 의식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두 작업의 만남이다.

먼 다리 끝에는 칸트가 있다. 오늘 밤은 윤곽이 조금 더 또렷하다.

다리 밖, 다른 길은 어두운 하늘로 이어진다. 번개. 사람들이 그 길을 걷는다.

가장 멀리 간 이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서는 교수의 옷을 입은 하이데거가 아직 걷는다. 게라센하이트를 새로 해석한 사람. 하지만 한 단어를 이해하는 것이 정치에서 타인을 존중할 보증은 아니다. 철학적 계승이 1933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없애 주지도 않는다.

에크하르트는 그쪽을 본다.

한 번.

설교는 말한 사람을 떠난다. 해석되고 오해받고 받아들여지고 반발을 만난다. 말한 이는 그 모든 반응을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이 가리킨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쓰이는 일도 있을 것이다.

지라르 편도 이 질문을 남겼다. 설명을 건넨 사람은 그 쓰임을 완전히 정하지 못한다. 에크하르트의 역사가 거기에 다른 무게를 더한다.

그는 길 위의 사람에게 말을 걸러 가지 않는다. 돌아선다.

히파티아의 아스트롤라베가 달빛을 받는다. 그녀는 빈손을 보고 미소 짓는다. 두 교사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열어 줄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본다. 히파티아는 관측기를 조금 기울여 빛이 눈금에 더 정확히 닿게 한다.

부버가 가까이 온다. 그는 하시디즘 이야기를 고르고 다시 들려주며 일상을 만남 쪽으로 열려 했다. 유대 전통과 기독교 신비주의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신과의 합일이 그대로 나와 너는 아니다.

미소는 거리를 지우지 않고도 건널 수 있다. 부버가 웃는다. 에크하르트가 답한다.

다리 가운데 많은 사람. 달빛은 부드럽다.

멀리 바라보던 끝의 사람은 히파티아, 토마스, 베르그송, 레비나스, 부버, 조식, 지라르, 셸링을 보았다.

이번에는 에크하르트를 본다.

눈길이 잠깐 만난다.

에크하르트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들어 보일 물건도 없다. 두 손을 모았다가 내려놓는다.

인정의 몸짓.

끝의 사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에크하르트는 손을 내린다.

죽은 지 약 칠백 년, 그는 다리 가운데 서 있다. 생전의 조사, 사후 명제에 대한 단죄, 여러 손을 거쳐 온 문장들. 모든 읽기가 옳지는 않고 단순한 반복도 아니다. 그 속에서 끝난 한 삶이 새로운 상황에 계속 묻는다.

작업은 무한을 향해 열려 있었다. 자신이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했다.

마지막 숨과 함께 닫히지는 않았다. 영원한 전승을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또 한 사람이 그 목소리를 듣고 자기 삶으로 가져간다.

읽기 안내와 출처

1327년 2월 13일 선언은 조건부 철회다. 1329년 칙서는 열일곱 명제를 이단, 열하나를 의심스러운 명제로 단죄했지만 개인을 이단자로 선언하지 않았다. 제27항은 그가 그런 설교를 한 적 없다고 부인한 마지막 두 명제 중 하나다. 고발문을 입장 전체로 삼지 않는다.

신성, 불꽃, 설교 52는 삼위일체 및 창조와 지성의 구별을 함께 읽어야 한다. 루터에서 선불교까지의 후대 독해에는 매개와 차이가 있다.

예배당의 청중과 다리 위 만남은 문학적 상상이다. 비교가 학설의 동일성을 증명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행위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Meister Eckhart: life, thought, and primary bibliography · In agro dominico — Latin text and German translation · Documents of the proceedings · Sermon 52: Beati pauperes spiritu · A vernacular sermon: The Coming of the Lord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