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원문 판본 안내: 이 글의 바탕인 중국어 원문은 한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를 전환할 수 있다. 원문의 판본 안내에는 환자의 도착 순서, 511 킨더하임의 폭력적 성격, 쌍둥이의 기억, 루엔하임에서 이루어진 수술의 장소 등에 관한 사실과 표현을 수정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리즈 전체의 내용을 밝힌다.
체코. 세 마리 개구리 간판이 걸린 집.
어머니 앞에 아이 둘이 서 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쌍둥이다. 누군가 그중 하나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하나를 내주었다.
작품은 그 동작을 남긴다. 하지만 왜 그 아이를 골랐는지 어머니 대신 설명해주는 말은 없다. 한 아이를 내주었고, 다른 아이는 그 자리에 남았다.
나중에 작품은 빨간 장미 저택으로 끌려가 참극을 목격한 아이가 니나였음을 밝힌다.
요한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니나에게 들은 뒤, 그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겪은 일로 받아들였다.
누가 끌려갔는지는 끝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밝혀져도 다른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누구를 내주려 했는가. 두 아이는 그 행동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수수께끼는 사실을 되찾으면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실이 돌아온 뒤에도 어머니의 선택, 아이들의 이해, 이후의 책임이 저절로 한 줄에 이어지지 않는다. 직접 겪은 일도 잊을 수 있다. 남에게 들은 일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글은 ‘도대체 누구였나’만 묻지 않는다. 그 사실이 밝혀져도 한 사람을 대신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다룬다.
이 작품의 이름들은 모두 헐겁게 붙어 있다
작품 속 이름들을 늘어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거의 어느 이름도 단단히 붙어 있지 않다.
요한의 이름은 책에서 왔다. 부모가 지어준 것도, 집안에서 물려받은 것도 아니다. 그림책 속 낱말 하나를 골라 아이에게 붙인 것이다.
여동생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었다. 안나. 니나 폴트너. 그 밖에도.
프란츠 보나파르타는 열 개가 넘는 이름을 썼다. 이름이 하도 많아서 그가 누구인지 자체를 조각조각 맞춰야 한다.
511 킨더하임의 아이들에게는 번호가 있다.
글리머 안에서 폭력으로만 나타나는 것에는 이름이 있다. 정작 글리머 자신은 자기 감정을 찾지 못한다.
이 목록에는 없지만 같은 모양을 한 것들도 더 있다.
룽게의 수사 방식은 사람을 추론 가능한 행동 논리로 바꾸는 것이다. 머릿속에 자료를 입력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의실험을 한다. 솜씨가 대단하다. 다른 사람의 이동 경로까지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룽게의 손안에서 그 사람은 한 묶음의 매개변수가 된다.
에바 역시 오랫동안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한다. 사람을 볼 때 그의 지위와 재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본다.
이 작품에서 이름은 사람에게 고정된 속성이 아니다. 빼앗을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새로 달아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모든 것이 움직인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이름이다.
텐마가 하는 일
텐마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작품은 여러 번 보여주지만 한 번 한 번은 대수롭지 않다. 모아놓아야 보인다.
그는 환자의 이름을 기억한다.
진료기록 번호도, 침대 번호도, ‘3번 침대 담낭 환자’도 아니다. 이름을 부를 줄 안다.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은 몇 명인지, 지난번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한다.
병원 운영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일이다. 수술 시간을 줄여주지도, 병상 회전율을 높여주지도 않으며, 어떤 지표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슬러 기념병원의 우선순위 안에서 이런 습관은 순전히 불필요한 동작이다.
이름은 어떤 사실도 바꾸지 않는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느냐는 병세에도, 예후에도, 살려야 할 가치가 있는지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름이 하는 일은 하나뿐이다. 여기에 바꿔 끼울 수 있는 사례 하나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사람이 있음을 표시한다.
기계는 환자의 이름을 몰라도 증례 하나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 관료 체계는 번호만으로 백만 명을 정확히 관리할 수 있다. 효율 면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다. 대개는 오히려 더 낫다. 이름은 편견을 불러오지만 번호는 그렇지 않으니까.
효율로 따지면 텐마가 고집하는 일은 순손실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사람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는 곳은 어디든 가장 먼저 이름을 지운다.
이 행동과 첫 번째 글에서 살펴본 행동은 같은 일의 양면이다. 그날 밤 텐마가 꺼낸 ‘누가 먼저 왔는가’ 역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지 않는 규칙이었다. 신분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게 했다.
요한이 원하는 것
요한의 계획을 그림책의 표현을 빌려 풀면 대략 이렇다. 마지막까지 남는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지우고, 그때의 풍경을 한 번 바라보는 것.
이 말은 한 겹씩 풀어봐야 한다.
복수가 아니다. 복수에는 명단이 필요하다. 죽어야 할 사람과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을 가려야 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전부다.
권력도 아니다. 권력에는 지배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싹 비워버리는 일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을 원한다. 자기 자신마저 없는 곳을.
그에게 이런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작품이 내놓는 답은 구체적이다. 그림책에서 읽은 구조를 끝까지 밀고 간 것이다.
『이름 없는 괴물』에는 이름 없는 괴물이 등장한다. 둘로 나뉘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간다. 각각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안에서부터 그 사람을 먹어치운다. 줄거리를 다시 들려주려는 것은 아니다. 모양만 말하겠다. 이름 없는 존재가 다른 사람을 차지해서 이름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을 차지할 때마다 그 사람은 사라진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이다. 아이들이 서점에서 고른 책이 아니다. 누군가 한 방에서 되풀이해서 읽어준 책이다.
요한의 이름도 이 책에서 왔다. 그의 행동 방식도 이 책에서 왔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책 한 권이 아이를 나쁘게 만들었다’고 읽어서는 안 된다. 작품이 내놓는 재료는 그보다 복잡하다.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한 아이들에게 거듭 읽어준 책이다. 책은 그 안의 부품 하나이지 전체가 아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다. 요한이 원하는 것의 모양과 책 속에 있는 것의 모양이 같다는 점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코코아 한 잔
마지막 권에서 작품은 몇 가지를 나란히 놓는다. 이번 글이 도착할 곳은 거기다.
작은 마을 루엔하임.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글리머는 어느 여관에 있다. 안에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도 없이 밖으로 나간다.
밖에 있던 여자가 그를 보고 소리쳐 부른다. 사방에 총구가 있어서 글리머는 여자에게 ‘도망쳐요!’라고 외칠 수 없다. 그는 손으로 방향을 가리킬 뿐이다.
여자는 그의 눈앞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다.
그러자 초인 슈타이너가 나온다. 그의 고함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 직전 행동의 모양을 보자. 그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든 정보를 전하려 했다. 실패했다.
그 직후 튀어나온 것은, 그의 안에서 한 번도 망설일 필요가 없고 한 번도 말을 찾을 필요가 없는 유일한 부분이다.
학살의 다른 한쪽 끝에서 사람들을 지휘하는 것은 로베르트다. 그 역시 511 출신이다.
로베르트는 요한이 되찾아준, 자신에 관한 유일한 기억을 말한 적이 있다. 시설에서 일주일에 한 번 누리던 즐거움. 자신은 따뜻한 코코아를 가장 좋아했다고.
글리머가 죽어갈 때 곁에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가 그의 말을 전한다.
자신의 이름은 잊었지만 친구의 이름은 떠올랐다고 했단다. 아돌프 라인하르트라는 아이였다.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코코아를 가장 좋아하던 아이.
두 사람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코코아 한 잔을 말한다. 상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은 서로 모른다.
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잊었고 친구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 친구는 지금 이 마을에서 살인을 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한 기억은 코코아 한 잔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이야기는 작품에서 여러 장면을 사이에 두고 따로 나온다. 그것을 한자리에 놓는 사람은 독자다.
작품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는다. 재회 장면을 마련하지 않는다. 글리머가 죽기 전에 자기 친구가 불과 몇백 미터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지도, 로베르트가 죽기 전에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지도 않는다.
아돌프 라인하르트라는 이름은 제삼자의 입을 통해 울고 있는 노인에게 전해진다. 그 노인이야말로 오래전 이 모든 것을 조립한 사람이다.
이름의 두 얼굴
이제 이번 글을 마무리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이름은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이름을 빼앗는 것이 그 절차들이 맨 먼저 하는 일이다. 번호가 이름을 대신하고, 그림책이 새 이름을 붙이며, 신분은 열 번 넘게 바뀐다.
동시에 이름은 마지막에 남는 것이기도 하다.
글리머는 자기 이름을 잊고 친구의 이름을 기억했다. 로베르트는 자기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잊고 코코아 한 잔의 온기만 남겼다. 텐마는 그럴 필요가 없는 병원에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
작품에서 이 둘은 같은 일의 양 끝이다. 작품은 양쪽 끝을 보여준다. 그 사이의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는 그리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가장 쉽게 빼앗을 수 있는 것과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같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이 말은 그럴듯한 문구가 아니다. 구체적인 사실들이 잇달아 놓인 모습이다. 고아원에 들어간 첫날 이름 대신 번호가 붙는다. 루엔하임의 거리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름과 그가 즐겨 마시던 것이다.
그 어머니는 아이 하나를 내주었다.
나중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자란 그 여자아이는 스무 번째 생일에 부모가 만든 케이크를 받았다.
다음 글에서 계속한다.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1994~2001년 쇼가쿠칸의 『빅 코믹 오리지널』에 연재되었으며, 단행본은 전 18권이다. 그림책 『이름 없는 괴물』은 내용을 개괄했을 뿐 원문을 재현하지 않았다. 이 연작은 원작 만화를 기준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