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목적에 들어 있다
511은 이름을 번호로 바꾸고 약물, 고립, 불신, 감정 훈련으로 국가에 유용한 인간을 만들려 한다. 폭력은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방법이다. 어른이 모든 타격을 직접 가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서로 의심하고 공격할 환경을 만든 사람은 결과에서 멀어질 수 없다.
사랑도 투입값이 될 수 있다
집단 살해 뒤 페트로프는 다음 실험에 사랑을 넣는다. 따뜻함과 칭찬이 진심이어도 아이는 미리 정한 산출물을 증명할 재료로 남는다. 돌봄이 누군가의 이론을 위해 배치되면 선한 감정만으로 도구화가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정할 자리는 여전히 설계자에게 있다.
아이에게 사용된 책
붉은 장미 저택의 그림책은 자유로운 독서가 아니라 정치적 개입의 도구로 주어진다. 『이름 없는 괴물』 한 권이 살인자를 만든 것은 아니다. 책만 탓하면 누가 그것을 쓰고 고르고 비밀 수업에 배치했는지 지워진다. 이야기는 조건의 일부이고 조건을 조립한 어른에게도 행위가 있다.
사람은 사양서가 아니다
로베르토, 그리머, 요한은 비슷한 기계에서 나왔지만 같은 결과가 되지 않는다. 환경은 상처와 성향을 남겨도 정확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한다. 서류가 불탄 뒤 실험의 기록은 몸, 습관, 사라진 기억과 관계 속에 흩어진다. 기관은 문을 닫아도 사람의 생에서 계속된다.
대상 작품: Naoki Urasawa, Monster. 원작 만화를 주 텍스트로 삼고 Madhouse TV 애니메이션을 함께 참고한 독립 비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