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아니라 폐허
상현의 혈귀들도 한때 인간이었다. 비극적인 과거가 피해자를 지우거나 죄를 면제하지는 않는다. 대신 무잔의 제안이 언제 힘을 갖는지 보여 준다. 사람을 인간 세계에 붙들어 두던 관계가 파괴되거나 더는 머물 수 없는 곳이 되었을 때다. 무잔은 정교한 교리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 상실, 수치, 배제, 비교가 돌아갈 곳을 모두 없앨 때까지 기다렸다가 힘이라는 마지막 관계를 내민다. 이해는 무죄 선언이 아니다. 약탈적 체제가 어떤 입구를 통해 사람을 거두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행위의 책임과 추락의 조건을 보는 시선은 동시에 유지되어야 한다.
아카자: 이유를 잃은 힘
하쿠지는 아픈 아버지를 돌보고, 이어 케이조와 코유키를 지키기 위해 강해지고 싶었다. 두 사람이 독살된 뒤 도장을 몰살하고, 무잔의 피를 받아 기억을 잃는다. ‘지키기 위해 강해진다’에서 지킬 대상만 빠지고 강해지는 운동만 남는다. 아카자는 목적을 잃은 명령을 계속 실행하는 기계처럼 강자를 찾아 싸운다. 능력이 목적에서 분리되면 자유가 아니라 강박이 된다. 기억이 돌아왔을 때 그는 재생을 거부하며 프로그램을 멈춘다. 규타로와 다키의 상처는 다르다. 서로만이 전부였던 관계는 버려진 두 아이를 살렸지만 다른 정체성이 자랄 수 없었기에 피난처와 감옥이 동시에 되었다.
코쿠시보: 동생이 척도가 된 형
미치카츠는 쌍둥이 동생 요리이치를 절대 척도로 만든다. 지위, 달의 호흡, 상현 1이라는 성취도 자신이 요리이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가치해진다. 비교는 동생을 사람 대신 측정 도구로 만들고, 자신도 차이의 수치로 만든다. 동생과 같아지려고 혈귀가 된 그는 동생과 가장 다른 존재가 된다. 도우마는 또 다른 공백이다. 소중한 관계를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타인의 감정을 연결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연민을 흉내 내고 종교를 이끌며 구원한다고 말한 사람을 먹는다. 끊어진 관계와 처음부터 생기지 않은 관계는 같은 체제로 향하지만 같은 상처가 아니다.
제안이 도착하는 시간
무잔은 아카자를 상실 뒤에, 남매를 사회적 폐기 뒤에, 코쿠시보를 비교의 집착 속에, 도우마를 공허 속에 만난다. 그의 체제는 좋은 삶을 주지 않지만 남아 있는 운동을 계속할 형식을 준다. 권력은 제안의 내용뿐 아니라 도착하는 시간을 통해 작동한다. 다른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나타난다. 왜 악을 선택했느냐고만 물으면 선택 공간이 오래전부터 파괴되어 왔다는 사실을 놓칠 수 있다. 그렇다고 선택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방의 초점이 추상적 훈계에서 실패 뒤에도 돌아갈 관계, 여러 소속, 한 번의 잘못이 사람 전체를 취소하지 않는 장소로 이동한다.
판단하되 인간을 지우지 않기
탄지로는 필요할 때 혈귀를 베지만 그 과거를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처럼 다시 쓰지 않는다. 사라지는 순간 슬픔을 보는 일은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 하나의 정체성이 모든 고유성을 지워 버리는 무잔의 논리를 판단이 따라 하지 못하게 한다. 현실의 파괴적 조직도 악한 본질보다 고독, 수치, 마지막 소속에 대한 갈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는 막고 처벌해야 한다. 동시에 다음 추락을 줄이려면 사람이 무너진 뒤에도 돌아갈 곳이 여러 개 있어야 한다. 잘못을 운명 전체로 만들지 않는 관계가 남아 있을 때 중심의 힘만이 마지막 선택으로 보이는 순간을 늦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