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보다 먼저 생긴 인식의 붕괴
슈나이젤은 흑의 기사단에게 제로가 절대 복종의 힘을 지녔고 유페미아 학살에도 관련됐다는 증거를 내민다. 그 순간 질문은 를르슈가 선한 지도자인가가 아니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모든 동의가 정말 자기 것이었는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다. 기아스를 당한 사람은 명령의 흔적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발적이었다는 강한 확신마저 명령의 일부일 수 있다. 동료의 증언도 같은 불확실성 안에 있으므로 외부 검증 장치가 없다.
빼앗긴 과거의 소유권
한 번의 명령은 당사자에게서 그 순간의 거부를 가져가지만, 힘의 존재를 안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회고의 확실성을 가져간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 충성, 판단과 그 대가를 이어 ‘나’를 만든다. 그 선택들의 저자가 자신인지 확인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많은 행동을 수행한 몸뿐이다. 흑의 기사단이 잃은 것은 지도자에 대한 믿음보다 자기 삶을 자기 것이라 말할 근거였고, 그래서 복종을 끊는 일이 급한 자기 확인이 된다.
이해 가능한 결정, 부족한 절차
를르슈를 슈나이젤에게 넘기려 한 결정은 심리적으로 이해되지만 절차적으로 성급하다. 지휘권 박탈, 구금과 조사, 설명 요구, 기아스 해제 수단 탐색 같은 중간 선택지가 있었지만 슈나이젤은 그것이 생기기 전에 시간을 닫는다. 카렌은 무조건 믿겠다고 하지 않고, 총구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적어도 대답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한다. 불확실성을 즉시 유죄로 바꾸지 않으려는 이 태도가 그 방에 빠진 최소한의 절차다.
두 시즌 늦게 도착한 청구서
관객은 유페미아 명령이 계획이 아니라 사고였음을 알기에 기사단보다 높은 자리에서 그들을 비난하기 쉽다. 그러나 의도가 선명해져도 조직의 토대는 회복되지 않는다. 타인의 거부를 취소할 수 있는 힘을 지도자가 독점하는 한, 자발적 참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를르슈는 언제 누구에게 기아스를 쓸지만 계산했지, 자신이 그 힘을 가진 채 곁에 있다는 사실이 동료에게 어떤 환경이 되는지는 묻지 않았다. 기사단의 배신은 갑작스러운 반전이 아니라 오래 미뤄진 비용의 청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