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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정부론 · 01

마흔 번째 순서

Han Qin ·

강둑거리의 노점

강둑거리는 사과시의 강을 따라 이어진 오래된 거리다. 길가의 한 노점에서 한 여성이 이십 년 동안 장사를 했다. 그해 여성이 세상을 떠났고, 딸은 장사를 이어 가고 싶었다.

허가처는 시의회 조례에 따라 거리 노점에 관한 규칙을 정해 두었다. 내용은 명확했다. 직접 운영하는 신청자에게만 허가를 내준다. 거리 구간마다 노점은 셋을 넘지 않는다. 신규 신청은 접수순으로 대기한다. 규칙에 없는 것은 승계였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에 단서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뒤에서 다룬다. 신규 신청으로 처리하면 딸은 마흔 번째다. 승계로 처리하면 어머니의 자리를 바로 받는다. 앞선 서른아홉 명도 기다리는 중이다. 맞은편 주민들도 드나들 때 이 구간을 지나야 한다.

세 가지를 먼저 적는다. 이 연작의 사례는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에게 미치는가. 딸, 다른 대기 신청자들, 맞은편 주민들이다. 어느 경계에 놓이는가. 허가하든 거절하든 경계를 넘지 않는다. 생계, 순서, 통행은 모두 경계 안의 이해관계다. 기준선은 무엇인가. 규칙이 상정한 보통의 신규 신청이다. 이 자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기본권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이 일이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딸의 생계, 대기자들의 순서, 주민들의 통행이 이 하나의 판단에 걸려 있다. 경계를 넘지 않아도 판단은 해야 한다. 판단을 했다면 누군가는 그에 관해 답해야 한다.

정부론은 바로 이런 판단을 쓴다. 제1편은 네 가지를 묻는다. 정부 안의 판단은 누가 완성하는가. 누구의 이름으로 효력을 갖는가. 누구에게 답하는가. 무엇에 관해 답하는가.

누가 판단했는가

심사 담당자는 신규 신청으로 처리했다. 기록에는 이렇게 썼다. “규칙에 승계 규정이 없으므로 신규 신청으로 접수. 대기 순서 40번.” 사흘 뒤 딸은 서면 결정을 받았다. 머리말에는 ‘사과시 허가처’라 적혀 있었고 허가처 직인이 찍혀 있었다. 누가 이 판단을 했는가. 담당자가 했다. 규칙이 대신하지 않았다. 규칙이 ‘말하지 않았다’를 ‘신규 신청으로 처리한다’로 읽고 ‘승계로 처리한다’로 읽지 않은 것은 그다. 마흔 번째에 놓기로 선택한 것도 그다. 판단한 뒤 그 판단을 떠맡는 것도 그다. 행위론은 말한다. “그것을 대신하려는 어떤 규칙 체계도 결국 눈앞의 상황에 적용되는지 아닌지를 한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행위론의 이 명제를 공적 위치를 맡은 사람에게 확장하는 것은 이 연작 자신의 한 걸음이다. 빌리는 것은 규칙이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이유뿐이다.

하지만 결정은 그의 이름으로 발급되지 않았다. 효력을 갖는 것은 사과시의 결정이며, 담당자는 허가처의 위치를 통해 서명했다. 따라서 하나의 판단에는 두 가지가 걸린다. 위치를 맡은 사람이 완성하므로 그의 수행으로 돌릴 수 있다. 그리고 위치를 통해 구성체의 행위로서 효력을 가지므로 책임 귀속의 주소는 구성체다. 둘 다 있고 어느 쪽도 다른 쪽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서 두 가지를 정확히 말해야 한다. 첫째, 그가 판단했다는 것이 그 자신의 법에서 나왔다는 뜻은 아니다. 속으로는 딸이 그 자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규칙에 따라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규칙은 원래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의 것이며 이 연작은 대신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허가처의 판단은 그의 마음속 기준과 일치하더라도 그 기준에서 효력을 얻지 않으며, 정당성은 더더욱 얻지 않는다. 그의 법과 판단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이 효력을 잃는 것도 아니다. 둘째, 판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다. 딸, 대기자들, 맞은편 주민들이다. 그 뒤에는 허가처와 사과시가 있고, 필요하다면 강제가 있다. 허가 없이 노점을 열면 시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철거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판단이 많은 타인에게 작용하는 것은 그 뒤에 위치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안의 판단을 별도 연작으로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지혜가 행위와 숙고에 관계한다고 말했다. “법령은 개별적인 행위를 통해 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담당자의 판단도 바로 그런 결정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품성이 사람이 폴리스의 일을 잘 숙고하게 하는지 물으며 판단하는 사람에게 답을 둔다. 이 연작은 판단 이후 누구에게 무엇에 관해 답하는지 물으며 위치와 구성체에 답을 둔다. 논문은 가장 강한 반론을 스스로 세운다. 품성이 나쁜 사람에게 답변 구조를 주면 변명만 더 잘하게 되지 않겠는가. 응답은 이렇다. 좋은 판단인지는 분명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 연작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쓰지 않을 뿐이다. 쓰면 사람에게 당위를 쓰게 된다. 변명은 질문받은 바로 그 일에 답하지 않는 것이며, 설명의 책임은 바로 그 점을 기준으로 확인한다. 답변 구조는 변명에 보상하지 않는다. 변명이 드러나게 한다.

물은 바로 그 일에 답하기

딸은 시의원 사무실에 민원을 냈다. “어머니가 여기서 이십 년을 장사했는데, 왜 제가 처음부터 줄을 서야 하나요?” 의원실은 민원을 허가처로 넘겼다. 이제 누군가는 답해야 한다. 누구에게 답하는가. 판단의 작용을 받고 찾아와 묻는 사람, 여기서는 딸이다. 누가 무엇에 답하는지는 세 층으로 말한다. 제도론의 세 층 그대로다. 구성체에는 당위, 위치에는 직무상 책임,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법이다.

구성체에 대해서는 판단할 자리를 마련하고 그 판단을 추궁할 수 있게 한다. 모든 곳을 빈틈없이 규정해 담당자가 조항대로 도장만 찍게 한다고 판단이 없어지지 않는다. 규칙을 쓰는 위치로 옮겨 갈 뿐이며, 책임도 함께 옮겨 간다. 반대로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각 담당자가 제 생각대로 하게 하면 판단할 자리는 생기지만 묻는 사람에게는 대조할 근거가 없다. 판단할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판단도 할 수 있고 답도 할 수 있는 곳에 그것을 두는 일이다. 무엇은 규칙으로 정하고 무엇은 위치를 맡은 사람에게 남기는가. 판단의 근거와 권한은 무엇인가. 판단이 내려지면 그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곳이 있고 받을 사람이 있으며 받은 뒤에는 답해야 한다. 제도론은 집행자의 길을 완전히 막아서는 안 된다는 최저선만 그었다. 판단할 자리를 마련하라는 적극적 요구로 나아가는 것은 이 연작 자신의 한 걸음이다.

위치에 대해서는 설명할 책임과 감당할 책임이다. 제도론은 제도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을 설명할 책임을 지며, 질문받은 바로 그 일에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딸이 묻는 것은 왜 처음부터 줄을 서야 하는가다. ‘규칙이 그렇다’는 답은 물음에 닿지 않는다. 규칙은 바로 승계를 정하지 않았고, 딸은 정하지 않은 그 부분을 어떻게 읽는지 묻고 있다. 감당하는 쪽에서 제도론은 말한다. “구성체의 이름은 독립적 근거가 있는 개인의 책임을 가리지 않으며, 구성체의 책임 불이행도 어떤 개인에게 자동으로 옮겨 적히지 않는다.” 규칙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심사 담당자 위치의 몫이다. 과장이 어떻게 결재했는지는 과장의 몫이다. 승계 부분을 비워 둔 것은 규칙 제정 위치의 몫이다. 이 위치들을 어떻게 배치했는지는 허가처의 몫이다. 각 책임은 출처, 권한, 등록, 행위 사실에 따라 확인하며, 어느 책임도 다른 책임을 대신 청산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당위를 쓰지 않는다. 담당자가 딸을 동정해야 하는지, 딸의 사정을 함께 걱정해야 하는지는 그 자신의 법이다. 구성체는 그의 위치에 설명하고 감당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점검표에 없는 것

같은 해 보건국 점검 담당자가 강둑거리의 한 식당을 정기 점검하러 갔다. 식당은 신형 숯불 보온함으로 바꿨는데 점검표에는 해당 항목이 없었다. 다른 항목은 모두 통과했다. 주방은 작고 환기구도 작은 것 하나뿐이었다. 점검 담당자는 밀폐된 주방에서 이 보온함을 쓰면 일산화탄소가 쌓일 수 있다고 판단해 현장에서 영업 정지를 명령하고 주의 검사를 기다리게 했다. 누구에게 미치는가. 업주와 직원, 손님들이다. 어느 경계에 놓이는가. 위험이 성립한다면 직원과 손님의 생명 기반이 걸린다. 영업 정지 명령은 업주의 영업에 작용하며 영업은 제한할 수 있는 행위다. 기준선은 점검표에 있는 보통의 주방 설비다.

점검표는 규칙이다. 이 항목이 없으므로 담당자는 판단해야 한다. 위험하지 않아서 빠졌는가, 표를 만든 사람이 생각하지 못해서 빠졌는가. 표 자체는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다. ‘유해 가스를 발생시킬 수 있는 기타 장비’라는 항목을 더할 수는 있다. 그래도 눈앞의 보온함이 해당하는지는 주방에 선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칸트는 말했다. “의사, 판사, 정치가가 머릿속에 뛰어난 병리학적, 법률적, 정치적 규칙을 많이 갖고 있어도 … 그 규칙을 적용할 때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논의가 같은 방향을 본다. 이어서 칸트는 사례와 연습을 통해 판단력을 어떻게 기르는지 말한다. 이 연작은 그것을 쓰지 않는다. 규칙이 판단을 대신할 수 없으니 판단 이후 답할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쓴다.

규칙이 미처 쓰지 못한 곳을 어떻게 할지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다른 말을 했다. 형평은 “법이 보편적이어서 생긴 결함을 바로잡는 것”이며, 그 기준은 “입법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말했을지, 알았다면 자기 법에 어떻게 썼을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자로 재면 점검 담당자는 점검표 작성자가 이 주방에 서 있었다면 어떻게 판단했을지 물어야 한다. 이 연작은 그 자를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고 다른 자를 세우지도 않는다. 판단을 가르치지 않는다. 묻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 자로 판단하든 다른 방식으로 판단하든, 판단한 뒤에는 업주와 손님들에게 답하고 그들이 물은 바로 그 일에 답해야 한다. 입법자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말했을지는 설명의 이유 하나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이 판단을 대신해 답하지는 않는다.

스콧은 국가가 잘 보고 관리하기 위해 복잡한 지역 생활을 표와 도식으로 단순화하며, 이때 실천하는 사람들과 통치받는 사람들이 가진 실천적 지식이 자주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점검표도 그런 단순화다. 그러나 다른 절반은 방향을 뒤집어 써야 한다. 몰래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 사례에서 실천적 지식은 먼저 요리사 쪽에 있다. 이 주방에서 보온함을 어떻게 쓰는지, 언제 켜서 얼마나 켜 두는지는 요리사가 안다. 주방에 선 점검 담당자의 판단이 곧 실천적 지식은 아니다. 또 다른 단순화로서 국가를 대신해 요리사의 지식을 누르는 것일 수 있다. 공무원의 판단은 현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실천적 지식이 되지 않으며, 추궁을 면하지도 않는다.

“규정대로 했을 뿐입니다”

강둑거리의 노점으로 돌아가자. 민원이 허가처로 넘어오자 심사 담당자는 말했다. “규정대로 했을 뿐입니다. 상부에도 물어봤습니다.” 실제로 물어봤다. 처리 당시 내부 시스템에 의견을 적었다. “규칙에 승계 조항이 없으므로 상부 지침을 구할 것을 제안함.” 과장은 짧게 결재했다. “규칙대로 처리.” 질의는 과장에서 끝났다. 과장은 질문을 받자 말했다. “규칙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허가처의 답변은 이랬다. “담당자는 절차에 따라 처리했습니다.” 세 문장은 같은 말이다.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제도론은 이 말이 양쪽 모두에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은 양쪽 모두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집행자를 구성체 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도 없고, 구성체를 집행자 뒤로 사라지게 할 수도 없다.” 정부로 옮겨도 모양은 같고 무게는 더 크다. 정부 규정 뒤에는 흔히 강제가 있으며, 집행하는 사람도 많고 집행을 받는 사람은 더 많다.

한쪽으로, 담당자는 구성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상부에 물었다는 사실은 그의 이름 아래 기록할 한 항목이다. 그러나 상부에 묻는 것이 규칙 읽기를 대신하지 않는다. 규칙 마지막 페이지에는 단서가 있었다. “가족 경영은 사정을 고려하여 인정할 수 있다.” 그는 보지 못했다. 단서를 놓친 것은 그 위치의 책임이며 과장이 ‘규칙대로 처리’라고 했다고 청산되지 않는다. 제도론은 말한다. “절차라는 이름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경계 안에 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 사안에서는 신청자 쪽의 경계가 걸려 있지 않다. 논문은 같은 이유를 빌리면서 자신의 한 걸음임을 밝힌다. 절차를 따랐다고 올바르게 판단했다는 증명은 아니다. 다른 쪽으로, 허가처도 담당자 뒤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절차는 허가처가 배치했다. 규칙에 승계를 비워 두었고, 단서는 마지막 페이지에 인쇄했지만 담당자들에게 준 업무 지침에는 넣지 않았다. 질의는 과장에서 끝났으며 과장은 단서를 읽지 않고 ‘규칙대로 처리’라고 결재했다. 읽지 않고 결재한 것은 과장의 몫이며, 이렇게 배치한 것은 허가처의 몫이다.

이 절에서는 구성체 쪽에 놓이는 일 하나를 더 말해야 한다. 제도론은 말한다. “구성체의 배치는 집행자가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고 심사 가능한 절차로 넘길 길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길을 완전히 막는 문턱을 기준으로 확인하며, 거절에는 여전히 결과가 따를 수 있다. 담당자가 따르지 않았을 때 불이익 하나가 기록될 뿐이라면 결과이지 완전한 봉쇄는 아니다. 따르지 않으면 그 자리를 잃고 ‘규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보낼 곳도 없다면 배치는 그 단계에 이른다. 이 사건이 어느 쪽인지는 논문이 대신 판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확인하는지 밝힌다. ‘왜 거절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거절할 수 있었는가, 거절할 수 없다면 이 물음을 심사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낼 길이 있었는가’다. 이것이 없으면 이미 경계를 넘었다. 침범당한 사람은 담당자이며 책임은 사과시에 있다. 이 경계는 신청자가 아니라 담당자에게 놓인다. 처음에 허가하든 거절하든 경계를 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신청자 쪽이었다.

일선

같은 주 사과시에서는 또 두 사람이 각각 판단했다. 한 사람은 순경이다. 밤에 강둑거리의 술집 밖에서 두 사람이 말다툼하다 밀치기 시작했다. 지금 개입할지 조금 더 지켜볼지 판단해야 했다. 너무 빠르면 말싸움을 싸움박질로 취급하는 것이고, 너무 늦으면 이미 한 사람이 맞은 뒤일 수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사회복지사다. 아홉 살 아이가 집에서 피해를 입는다는 이웃의 신고가 들어왔다. 오늘 밤 데리고 나올지 내일 다시 올지 판단해야 했다. 아동가족국 규정상 신고를 받은 뒤 스물네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맡는 가정은 예순 곳이다.

강둑거리의 심사 담당자까지 세 사람 모두 가장 바깥의 일선에 있다. 법령에 서명하지도 규칙을 쓰지도 않지만 매일 내리는 판단은 사과시 사람들에게 미치며, 시장이 서명한 문서보다 더 직접적일 때가 많다. 이 연작은 이들을 통치 담당자에 포함한다.

일선의 판단에는 책임을 따지는 두 가지 오류가 특히 생기기 쉽다. 하나는 모든 책임을 일선에 지우는 것이다. 가령 그날 밤 다른 세 가정의 신고가 동시에 들어와 한 곳을 먼저 골라야 했기에 아이의 집에는 가지 못했다고 하자. 그날 밤 아이가 다시 다치자 국은 ‘담당자의 판단 착오’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날 밤 갔다. 스물네 시간과 예순 가정은 그가 정하지 않았다. 구성체의 책임 불이행은 어느 개인에게 자동으로 옮겨 적히지 않는다. 다른 오류는 모든 책임을 배치로 돌리는 것이다. 이 가상의 상황에서 그가 ‘규정도 인력도 이런데 어쩌란 말인가’라고 한다고 하자. 그래도 어느 집에 먼저 갈지, 무엇을 보면 아이를 데려올지 판단한 것은 그다. 배치의 잘못이 그 판단의 책임을 청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성체의 배치는 두 책임을 구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는 일선 위치에, 다른 하나는 일선의 규칙과 자원을 정하는 위치에 놓인다. ‘예순’이라는 수를 정한 위치는 설명해야 한다. 무엇을 근거로 그 수를 정했는지, 해낼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일이 생기면 이 책임은 어디에 놓이는지.

립스키는 교사, 경찰, 사회복지사 같은 이들을 일선 관료라 불렀다. 상당한 재량을 갖고 사실상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며, 무거운 업무량과 모호한 목표와 부족한 자원 때문에 자원을 배급하고 신청자를 걸러 내고 사람을 대하는 일을 정형화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에 동의하고 전제로 삼는다. 나뉘는 것은 범위다. 립스키는 일선이 어떻게,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쓴다. 이 연작은 판단 뒤 책임이 어떻게 놓이는지 쓴다. 그가 묘사한 정형화는 왜 배치를 맡는 자리도 답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대부분 일선의 취향이 아니라 업무량과 자원에 눌려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두 책임이 얽혀 실제로 나눌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응답은 이렇다. 언제나 둘을 깔끔하게 잘라 내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삼키지 말라는 것이다. 구분하기 어려운 곳도 어디가 어려운지 밝히고 각자 설명해야 한다. ‘나눌 수 없다’는 이유로 어느 쪽의 책임도 청산해서는 안 된다.

물을 수 있지만 바꿀 수 없다

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허가처에는 이의 절차가 있었다. 심사 결정에 불복하면 삼십 일 안에 서면으로 제기할 수 있었다. 이의는 심사 담당자나 과장을 거치지 않고 허가처 법규팀의 재검토 담당자가 접수했다. 그는 심사과 소속이 아니었다. 조사할지, 답변이 끝났는지는 허가처가 정할 수 없었다. 답변은 재검토 담당자의 이름으로 신청자에게 직접 발송되며 허가처가 고칠 수 없었다. 딸은 이의를 제기했다. 담당자는 기한 안에 서면으로 답했고, 왜 승계로 처리하지 않았는지라는 바로 그 물음에 답했다. 심사 당시 담당자가 단서를 보지 못했음도 인정하며 허가처에 재심사를 권고했다. 허가처는 재심사하지 않았다. 이의 절차가 재검토 담당자에게 준 권력은 ‘권고’뿐이었다. 허가처는 이유를 서면으로 밝혔다. “단서는 사정을 고려해 인정할 수 있다고 했을 뿐,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원결정을 유지한다.”

이 모습은 잠시 멈춰 살펴볼 만하다. 경계를 넘지 않았다. 통로도 있다. 딸은 이의를 낼 수 있고 누군가 접수하며 제때 핵심에 답했다. 이의를 냈다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물을 수 있어도 바꿀 수는 없었다. 판단은 그대로였다. 지난 오 년 동안 이 절차로 접수된 이의에는 모두 제때 답했지만 결정을 바꾼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제도론은 다른 이론과의 접점을 다룬 글에서 이 지점을 살피며 페팃을 대신해 반론도 세웠다. “공장이 민원 통로를 열었어도 통로에 이빨이 없다면 여전히 사람을 지배한다.” 제도론은 이 항목에 답을 마쳤다고 하지 않고 연구 후보로만 등록했다. “경계를 넘지 않고 통로도 있을 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관련 권력에 실질적인 통제력을 갖는가. 권한 안의 큰 재량이 그 한 예다.” 정부론은 이 항목을 맡는다. 이유는 바로 강둑거리에 있다. 정부 판단 중에는 이런 판단이 많다. 경계 침범과 통로만 확인하는 연작은 그 판단들에 더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작용을 받는 이들은 그 안에서 매일을 산다.

이 항목은 두 전제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문제로 미끄러진다. 경계를 넘지 않았다는 것. 숨어 있는 침범은 첫째 당위의 몫이다. 통로가 있다는 것. 독립성, 접근 가능성, 보복 없음이 모두 성립하고 설명할 책임도 비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재검토 담당자가 딸의 물음에 닿지 않는 상투적인 말만 했다면 설명 책임의 부재이며 다섯째 당위에 속한다. 이의를 접수할지 심사과가 쥐고 있다면 독립성의 부재이며 역시 다섯째 당위다. 여기서는 다른 일을 말한다. 물을 수 있고 답도 들었지만 여전히 바꿀 수 없다. 없는 것은 심사가 아니라 심사 이후 결정에 미치는 효력이다.

두 가지 해석도 막아야 한다. 결정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통제의 실패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절차에 재심사 효력이 있는데 우연히 지난 오 년 동안 결정을 바꿀 만한 새 자료가 없었다면, 결정이 안 바뀌었다는 사실은 별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사할 신호이지 그 자체로 진단은 아니다. 조사할 것은 구조다. 통제가 곧 거부권도 아니다. 맞은편 주민이 이의를 내며 이 구간의 모든 노점을 없애 달라고 했는데 허가처가 거부했다고 주민에게 통제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논문은 세 가지를 묻는다. 누가 어떤 사안에 관해 어떤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가. 그 절차는 이유, 행위, 규칙, 재직 위치에 어떤 실질적 효력을 갖는가. 추궁받는 쪽이 혼자 그 효력을 없앨 수 있는가. 강둑거리에서는 딸이 허가처의 동의 없이 시작할 수 있다. 이유에는 효력이 있다. 누군가 핵심에 답해야 한다. 행위에는 없다. 재심사할지는 허가처 혼자 정한다. ‘승계를 어떻게 읽는가’를 규칙 개정으로 보내는 길도 없다. 재직 위치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이유 층위에서는 허가처가 취소할 수 없다. 답변이 서명되어 직접 발송되므로 고칠 수 없다. 행위 층위에서는 취소할 수 있다. 통제의 기능은 제6편에서 답한다.

페팃은 자유를 비지배로 이해하며, 그 자신도 통제가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국민이 국가를 통제하려면 개인에게 귀속되고 조건이 붙지 않으며 실효적인 영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의 제기 가능성에서 실질적 효력으로 가는 것은 페팃을 넘어서는 한 걸음이 아니다. 이 연작 자신의 한 걸음은 통제를 통로의 세 조건에 연결하는 데 있다. 또 페팃처럼 통제로 정당성을 정의하지도 않는다. 정부의 정당성에는 자체의 필요조건이 있으며, 통제는 그 뒤에 오는 경계 안의 물음이다.

“저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서편의 주차 규정으로 돌아가자. 딱지를 받은 주민이 묻는다. “저는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 규정이 무슨 근거로 저를 구속하나요?” 누구에게 미치는가. 구시가지 주민, 상인, 방문객이다. 어느 경계에 놓이는가. 경계 안이다. 주차는 제한할 수 있는 행위이며 새 규정은 누구의 덮어쓸 수 없는 위치에도 손대지 않는다. 기준선은 옛 규정이다. 갈등론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이 물음에 답했다. 다툰 뒤 세운 규칙의 구속력은 “각자의 법을 각각 거치거나, 양측이 이미 인정한 절차에서 나와야 한다.” 그것은 “두 법 위에 군림하는 제삼의 법이 아니다.” 깔끔한 답이지만 사과시에는 부족하다. 주차 규정은 이 주민의 법을 거치지 않았다.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이미 인정한 절차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시의회에 ‘여러분이 정하면 무엇이든 따르겠다’고 한 적이 없다. 정부 결정은 흔히 둘 다 아니지만 여전히 그에게 작용한다. 딱지는 발부되었고, 내지 않으면 차가 견인될 수 있다.

이 작용에는 세 층으로 답해야 한다. 첫째는 사실상의 작용이다. 딱지와 견인이다. 이 층은 작용했다는 사실만 말할 뿐,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둘째는 어떤 권한과 절차 아래에서 유효한가다. 시의회에 구시가지 노상 주차를 관리할 권한이 있는가. 규정이 필요한 절차를 거쳤는가. 과태료가 규정에 따라 부과되었는가. 이 층은 유효성을 말할 뿐 정당성을 말하지 않는다. 유효한 결정도 부당할 수 있다. 셋째는 규범적으로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해도 되는가다. 이 층에는 세 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당위에서 이 셋으로 가는 것은 이 연작 자신의 한 걸음이다. 경계를 넘지 않을 것. 침해하는 부분에는 ‘무슨 근거로’라는 물음에 내놓을 근거가 없다. 도입한 인정적 권리를 보장할 것. 권리를 도입하고 정부가 권력 쪽을 쥐면서 권리 쪽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면 그 지점의 권력은 정당하지 않다. 이 부담은 제3편에서 세운다. 추궁할 수 있을 것. 정부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으므로 어딘가에서 미달이 생긴다. 결정에 관해 추궁할 통로가 없다면 내용이 타당하더라도 그 작용을 받는 사람은 제도적으로 답변과 시정을 작동시킬 위치가 없다. 셋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세 층을 나누면 한 문장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개인의 동의 부재만으로는 유효한 권한과 절차를 거친 결정이 둘째 층에서 갖는 효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민이 동의하지 않아도 규정은 여전히 그에게 효력을 갖는다. 이 문장의 범위는 곧바로 밝혀야 한다. 제한할 수 있는 행위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규정에 새 조항이 있어 공개적으로 반대하면 과태료를 두 배로 매긴다고 하자. 그 조항은 주차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벌한다. 덮어쓸 수 없는 위치에 손대어 경계를 넘으므로 첫째 당위에 따라 판정한다. 제한할 수 있는 행위에서도 주민의 부동의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법을 보유한다.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추궁할 수 있다. 그는 추궁했고 시의회는 유료화 이유를 서면으로 답했다. 그래도 규정이 그 대신 법을 세울 수는 없다. 밤에 주차하지 말라고 할 수는 있어도 주차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동의하라 할 수는 없다. 누가 그에게 어떤 판단에 동의하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는 판단 비판의 몫이다. 주차 규정의 효력은 그런 요구에 기대지 않는다.

잘못된 판단

식당이 문을 닫은 지 이 주 뒤 주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 주방의 환기 조건에서 숯불 보온함의 일산화탄소는 기준을 넘지 않았다. 당시 점검 담당자가 잘못 판단했는지는 여전히 확인해야 한다. 정확히 무엇을 판단했는지, 당시 근거가 버틸 만했는지, 영업 정지의 범위와 이 주라는 기간에 근거가 있었는지다. 행위론은 먼저 말한다.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이 연작은 판단의 옳음을 보증하지 않는다.” 정부의 판단도 같다. 규칙이 판단을 대신할 수 없으므로 판단은 틀릴 수 있다. 어느 점검 담당자의 부주의가 아니라 판단 자체의 모습이다.

틀릴 수 있다고 면책되지 않는다. 면책되지 않는다는 것이 담당자를 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본 것은 작은 환기구 하나뿐인 주방과 점검표에 없는 보온함이었다. 우선 멈추고 검사를 기다리는 편을 택한 데는 당시 이유가 있었을 수 있다. 그의 책임은 권한과 당시 본 사실에 따라 확인한다. 면책되지 않는다는 말은, 판단이 틀릴 수 있고 타인에게 미치므로 누군가 설명하고 손실을 어디에 귀속할지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건국은 설명해야 한다. 당시 무엇을 근거로 위험을 판단했는가. 다른 방법 대신 영업 정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검사 결과가 뒷받침하지 않는데 원판단은 여전히 서 있는가. 업주가 이 주 동안 입은 손실을 따질 곳도 있어야 한다. 보상할지, 누가 얼마나 보상할지, 근거는 무엇인지. ‘당시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답변을 면하지 않으며, 오판이 확정된 뒤에야 답하는 것도 아니다. 오판 여부야말로 답하는 과정에서 확인해야 한다.

옳게 판단했어도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이유를 하나 더한다. 판단은 틀릴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이 타인에게 미치기에, 영향을 받은 이가 묻고 잘못을 찾아 고칠 길이 있어야 한다. 업주는 물을 수 있어야 하고 보건국은 답해야 하며 검사 결과가 나오면 영업 정지 명령을 거둬야 한다. 판단의 오류 가능성에서 공적 판단의 추궁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것은 이 연작 자신의 한 걸음이다. 결국 사과시 어느 부서도 영원히 옳게 판단하지는 못하며 시 정부도 그렇다. 이 연작은 한 문장을 떠맡는다. 정부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낙담하자는 말이 아니다. 추궁받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말이다. 완벽하다고 선언하면 그 선언 자체가 추궁할 지점이다. 제도론은 제도가 “함양한다고 자처하거나 이미 개혁했다거나 목적이 옳다는 이유로 추궁과 수정의 조건을 닫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건국이 ‘우리 점검은 결코 틀리지 않으니 재검토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 말부터 물어야 한다.

“시스템이 매긴 점수입니다”

사과시 조례에는 저소득 가구의 겨울 난방비 지원이 들어 있다. 주택국에 신청하면 삼십 일 안에 결정한다. 시행 둘째 해, 주택국은 점수 산정 회사에 알고리즘을 이용한 예비 심사를 맡겼다. 신청마다 점수를 매겨 낮은 점수는 자동으로 ‘서류 보완’ 대기열에 보내고 심사자는 높은 점수만 본다. 셋째 해 겨울 한 신청자는 오십 일을 기다린 뒤 자기 신청이 보완 대기열에 있음을 알았지만 무엇을 보완할지는 알 수 없었다. 창구에 물으니 직원은 말했다. “시스템이 매긴 점수입니다.” 누구에게 미치는가. 낮은 점수를 받은 신청자다. 어느 경계에 놓이는가. 경계 침범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도입한 인정적 위치가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걸려 있다. 기준선은 심사자가 신청을 한 건씩 검토하는 방식이다.

‘시스템이 매긴 점수’는 ‘규정대로 했을 뿐’의 새 모습이다. 기계에 판단을 떠넘겨 기계가 판단하고 사람은 전달만 한 것처럼 만든다. 권력론은 말한다. “알고리즘은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설계자, 배치자, 호출자, 유지관리자가 알고리즘 장치를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이 판단에서 사람이 정한 것은 여럿이다. 주택국은 예비 심사를 외부에 맡기기로 했다. 회사와 무엇을 어떻게 점수화할지 정했다. 점수가 낮으면 보완으로 넘기고 심사자는 높은 점수만 보도록 정했다. 그 점수에 따라 한 가구를 오십 일 기다리게 했다. 매 단계가 어떤 위치의 판단이다. 감당할 몫은 이 위치들에 놓이지 알고리즘에 놓이지 않는다.

점수 산정 회사는 어떤가. 계약에 따라 주택국에 대해 자체의 직무상 책임을 지닌다. 구성체가 구성체에 지는 책임이다. 주택국을 대신해 신청자에게 답하지는 않는다. 신청자가 ‘왜 이 점수인가’를 물으면 답해야 하는 곳은 주택국이다. 알고리즘이 왜 그 점수를 줬는지 주택국도 몰라 답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답할 수 없는 구성체가 되도록 배치한 것이다. 구성체가 판단을 외부의, 자기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곳에 넘겨도 설명 책임이 함께 넘어가지는 않는다. 비어 버릴 뿐이며 그 빈곳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기계가 운영하는 제도가 온전한 의미의 제도인지에는 이 연작이 답하지 않는다. 그 물음에 답하기 전까지 기계는 감당할 책임을 지니지 않는다.

베버와 함께

논문은 베버로 마무리한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 질서 안의 책임을 두 부류의 사람에게 나누었다. “관리의 명예는 이런 능력에 있다. 상급기관이 그의 이의를 무릅쓰고 그가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명령을 고집할 때, 명령자의 책임 아래 마치 자기 신념에 맞는 것처럼 성실히 집행하는 능력이다.” 정치 지도자의 명예는 정반대로 자신이 한 일의 책임을 혼자 지는 데 있으며, 그 책임을 “거절해서도 회피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두 논의는 세 곳에서 동의한다. 상부가 집행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못하게 한다. 집행자에게 말할 자리를 남긴다. 집행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안다.

나뉘는 곳도 세 군데다. 첫째는 책임 배분이다. 베버는 사람의 종류에 따라 나눈다. 관리가 이의를 밝힌 뒤 그대로 집행하면 명령 내용의 책임은 명령자에게 있다. 이 연작은 위치와 출처에 따라 나눈다. 과장이 ‘규칙대로 처리’가 아니라 ‘승계는 모두 기각하며 단서는 적용하지 말 것’이라고 결재했다고 하자. 담당자는 단서를 읽고 이의를 밝혔지만 과장이 고집하자 따랐다. 베버에게는 이 기각의 책임이 과장에게 있다. 이 연작에서는 과장의 몫이 조금도 줄지 않고, 담당자의 몫도 따랐다는 이유로 옮겨 가지 않는다. 그는 단서를 읽어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음을 알았으며, 명령을 따랐다고 옳게 판단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명령자는 자기 몫을, 따른 사람은 자기 몫을 감당한다.

둘째는 이의를 어디로 보내는가다. 베버의 이의는 위로 향한다. 바로 명령을 고집하는 상급자에게 도착하며, 그 상급자가 질문받아야 할 당사자다. 제도론에 따르면 독립성이 막아야 하는 것은 “심사받는 쪽이 자기 자신에 대한 심사를 혼자 막아 버리는 것”이다. 담당자의 질의가 꼭 그렇다. 종착점은 과장이고, 과장은 질문받는 당사자이면서 일이 끝났는지도 혼자 정한다. 쓸모가 있을 수는 있어도 독립적이지는 않다. 독립성으로 이 길을 확인하는 것은 이 연작 자신의 한 걸음이다. 재검토 담당자는 다르다. 셋째는 ‘마치 자기 신념에 맞는 것처럼’이다. 베버의 말은 ‘마치’다. 실행에서는 자기 신념에서 나온 것처럼 조금도 줄이지 말라는 것이지 신념 자체를 바꾸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이 규율을 관리 개인의 명예, 하나의 윤리로 세운다. 이 연작은 사람에게 명예를 세우지 않는다. 사과시는 담당자의 위치에 규칙을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규칙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으라고 요구할 수 없다. “구성체는 위치에 무엇을 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사람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따르는 것은 그저 따르는 것일 수 있다. 마음속 기준은 그의 것이다.

논문은 베버를 대신해 가장 강한 반론을 세운다. 관리의 규율이 없으면 기관 전체가 무너진다. 모든 위치가 각각 답하도록 하고 집행자에게 심사로 넘길 길까지 주면 행정은 뒤엉켜 지연된다. 누구나 ‘심사에 넘기겠다’며 명령을 지연하고 ‘이 책임이 전부 내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책임을 나누면 아무도 실제로 책임지지 않는다. 베버가 지도자에게 책임을 집중한 것은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응답은 이렇다. 그 길은 집행자가 거절할 수 없는 곳에서만 요구되며 거절에는 여전히 결과가 따를 수 있다. 그런 길이 없는 기관이 반드시 더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잘못된 명령을 끝까지 그대로 집행하다 일이 터지면 오히려 책임을 밝히기 어렵다. 책임을 나누어 귀속하는 것은 책임을 흩뜨리는 일이 아니다. 지도자의 몫은 조금도 줄지 않는다. 막는 것은 반대 방향으로 책임을 옮기는 일이다.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아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이 연작에서는 권한 부여를 철회하는 문제이며 제6편에서 쓴다. 규율과 답변도 충돌하지 않는다. 담당자는 규율을 지키고 규칙을 따를 수 있다. 그렇게 따른 판단도 여전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강둑거리의 노점, 그 식당, 주택국 지원금은 뒤의 글들에서도 등장한다. 이 글이 말한 것은 한정되어 있다. 정부 안의 판단은 위치를 맡은 사람이 완성하며 정부의 이름으로 효력을 갖는다. 답변은 세 층으로 나뉜다. 규칙이 판단을 대신할 수 없고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로 막을 수도 없다. 일선도 포함된다. 경계를 넘지 않고 통로도 있을 때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 실질적 통제가 있는지는 여전히 물음으로 남는다. 동의 없이도 작용하는 결정에는 세 층으로 답해야 한다. 판단은 틀릴 수 있다. 기계에 맡겨도 감당할 책임까지 넘겨지지는 않는다. 좋은 판단의 모습은 이 연작이 쓰지 않는다.

원 논문과 이 글의 범위

학술 원문: Qin, Han (2026). 판단 (SAE 정부론 제1편). self-as-an-end.net ↗ · DOI: 10.5281/zenodo.23412130

중국어 본문을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이번 공개를 위해 내용과 표현을 교정했습니다. 인간 원어민의 감수를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원문

원 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