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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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17장 · 총 81장

네 등급의 지도자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太上,下知有之;其次,亲誉之;其次,畏之;其下,侮之。信不足,案有不信。猷呵,其贵言也。成功遂事,而百姓谓我自然。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등급표 한 장

17장에서 노자는 다스리는 사람의 등급표를 한 장 내놓는다. 가장 높은 데서 가장 낮은 데까지 네 등급이다.

가장 높은 등급은 백성이 그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다스림을 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둘째 등급은 백성이 그를 따르고 기린다.
셋째 등급은 백성이 그를 두려워한다.
가장 낮은 등급은 백성이 그에게 맞서고, 그를 비웃고, 더는 따르지 않는다.

이천사백 년 전에 쓰인 표지만 오늘 읽어도 바로 쓸 수 있는 진단 도구다.

당신의 상사는 어느 등급인가?
당신이 쓰는 그 플랫폼은 어느 등급인가?
당신 나라의 정부는 어느 등급인가?

그리고 당신 자신은?

팀장으로서, 창업자로서, 부모로서, 크리에이터로서, 어떤 식으로든 남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이 장은 남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거울이다. 순간순간 한 번씩 비춰 보면 된다.

2. 가장 높은 등급: 자리에 있되 식민화하지 않는다

첫째 등급이다. 노자는 이렇게 쓴다.

가장 높은 이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을 안다. (太上,下知有之)

가장 높은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은 아래의 백성이 그가 있다는 것을 안다.

먼저 글자를 바로 짚자. 이 글의 정리본은 ‘하 지유지(下知有之)’로 읽으며, 왕필본과 그 주석도 이 읽기를 전한다. 따라서 下와 不의 차이로 두 판본의 통치관이 정반대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중요한 차이는 뜻에 있다.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과 그 사람에게 늘 생활을 지시받는 것은 다르다. 가장 높은 등급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도, 다스리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리에 남아 생활의 바탕을 지탱하는 일을 한다. 다만 자기 모습과 판단으로 사람들의 하루를 가득 채우지 않는다.

함육은 모습을 감추는 일과 다르다. 전자는 책임을 맡는 일이고, 후자는 그저 떠나는 일일 수도 있다. 여기서 읽는 것은 전자다. 누군가는 거기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제 삶을 살 자리가 있다.

함육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다. 밑을 받치는 일을 하고 있다. 백성에게 먹을 것이 있고, 삶이 안정되고, 주변 환경이 잘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눈에 띄는 구를 세워 백성의 주의를 붙잡지는 않는다. 매주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동기부여 연설을 하지 않고, 유튜브와 팟캐스트에 나가 인사이트를 설파하지 않고, 일마다 한마디씩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백성은 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배경처럼 안다. 집에 물과 전기와 난방이 들어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듯이.

하지만 백성의 주의는 그를 중심으로 짜이지 않는다. 백성은 제 하루를 살고, 제 일을 하고, 제 삶을 산다.


요즘에는 아주 보기 드문 리더십이다.

흔히 그리는 ‘최고의 CEO’는 그 반대다. 카리스마가 넘치고, 비전을 제시하고, 경제지 표지를 장식하고, 모든 직원이 날마다 그를 떠올린다. 노자는 그것이 사실 둘째 등급이라고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가장 높은 등급은 이런 모습이다. 누군가 거기서 기반을 깔고, 시스템을 손보고, 환경을 떠받치고 있다. 직원들은 날마다 제 일에 몰두하고,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를 떠올리는 일은 드물다.

어떤 리더가 이 등급에 드는가?

팀을 다 꾸려 놓은 뒤 모두가 스스로 일하게 두고, 자기는 배경으로 물러나는 창업자.
부모가 뒤에서 받쳐 주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이의 관심은 제 삶에 가 있는, 그런 부모.
서비스가 매끄럽게 돌아가서 사용자는 날마다 자연스럽게 쓰지만 그 뒤의 회사를 떠올리는 일은 드문, 그런 제품 책임자.

이 등급의 표지는 이것이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남이 짜 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을 산다고 느낀다.

3. 따르고 기리는 등급: 사랑받는 대가

둘째 등급이다.

그다음은 가까이 따르고 기린다. (其次,親譽之)

백성이 그를 가까이 따르고 기린다.

여기까지 읽으면 많은 독자가 먼저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바로 최고의 리더 아닌가? 직원에게 사랑받고 백성에게 칭송받는다면 좋은 리더 아닌가?

노자는 이미 한 등급 내려왔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백성이 따르고 기리게 하려면 다스리는 사람은 사랑받을 만하고 칭송받을 만한 구를 세워야 한다. 칭송받을 만한 일을 해내고, 따를 만한 모습을 세우고,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백성이 따르고 기리는 것은 다스리는 사람이 세운 구에 대한 반응이다. 다스리는 사람에게 눈에 보이는 구가 있어야 백성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가장 높은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구가 없다. 그는 바탕층에서 함육할 뿐, 자기를 사랑과 칭송의 대상으로 만들 만한 눈에 띄는 구를 세우지 않는다.

둘째 등급을 가르는 핵심은 이것이다. 백성의 주의가 다스리는 사람에게 가 있다. 주의가 다스리는 사람에게 가는 순간, 함육은 구를 세우는 다스림의 관계로 미끄러진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두려움을 사는 등급보다, 업신여김을 받는 등급보다 훨씬 낫다.

예나 지금이나 따르고 기림을 받는 훌륭한 지도자는 많다. 그들은 좋은 구, 곧 좋은 제품과 좋은 정책과 좋은 모습을 세웠고, 백성은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그래도 이것은 이미 가장 높은 등급이 아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따르고 기림을 받는 리더는 백성의 주의를 가져간다.
가장 높은 리더는 백성의 주의를 백성 자신에게 머물게 한다.

어떤 직원이 날마다 눈을 뜨며 ‘우리 대표님은 정말 대단해’ 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둘째 등급의 자리에 있다.
어떤 직원이 날마다 눈을 뜨며 ‘오늘은 이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그는 가장 높은 등급의 자리에 있다. 그 대표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이다.


이 등급으로 내려가고 싶은 유혹은 크다. 둘째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은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칭송받고, 말이 인용되고, 존경받는다. 구를 세운 사람은 이런 반응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

가장 높은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은 오히려 이런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백성의 주의가 그에게 가 있지 않으니까. 그는 배경에서 일하고, 그에게 고마워하거나 그를 사랑하거나 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가장 높은 등급을 걷는 사람은 사랑받고 칭송받는 일에 조금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신분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가장 높은 등급이 예로부터 드문 까닭이 여기 있다. 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구조적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4. 두려워하는 등급과 업신여기는 등급

셋째 등급이다.

그다음은 두려워한다. (其次,畏之)

백성이 그를 두려워한다.

이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은 위세로 다스린다. 형벌을 세우고, 규칙을 세우고, 권위를 세운다. 백성은 그가 무서워서 규칙을 지킨다. 구를 세워 백성이 억지로 따르게 하는 방식이다.

두려움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이미 백성의 행동을 식민화하고 있다. 백성의 행동은 자기 안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떠밀린 것이다.


넷째 등급이다.

그 아래는 업신여긴다. (其下,侮之)

백성이 그를 업신여긴다.

다스리는 사람이 세운 구를 백성이 꿰뚫어 보고, 맞서고, 비웃고, 따르지 않는다. 다스림이 무너진 상태다.

다스리는 사람은 여전히 구를 세우고 여전히 식민화하려 들지만, 백성은 더는 넘어가지 않는다.

업신여김은 백성의 잘못이 아니다. 다스리는 사람이 세운 구가 백성의 삶과 너무 멀어진 탓이다. 백성은 이제 속지도, 눌리지도, 부름에 응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택한 글은 마지막을 ‘그 아래(其下)’라고 하여 내려가는 흐름을 또렷하게 끝맺는다. 통행본의 ‘그다음(其次)’을 거듭 읽어도 순위는 드러난다.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이 한 글자 때문에 높낮이가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5. 강요할수록 관계는 나빠진다

네 등급을 한데 놓고 보자.

가장 높은 등급: 바탕층에서 밑을 받치고, 창발층에는 구를 세우지 않는다. 백성의 주의는 백성 자신에게 있다.
따르고 기리는 등급: 사랑받을 만한 구를 세운다. 백성의 주의가 다스리는 사람에게 간다.
두려워하는 등급: 위세의 구를 세운다. 백성의 행동이 두려움에 떠밀린다.
업신여기는 등급: 세운 구가 현실에서 떨어져 나간다. 다스림이 무너진다.

네 등급 사이의 차이는 아주 구체적이다. 구를 얼마나, 어느 방향으로 세우느냐다.

가장 높은 등급은 구를 거의 세우지 않는다. 바탕층에서 밑을 받칠 뿐이다.
따르고 기리는 등급은 사랑받을 만한 구를 세웠다.
두려워하는 등급은 위세의 구를 세웠다.
업신여기는 등급은 세운 구가 이미 현실에서 떨어져 나갔다.

자기 기준을 강요할수록 관계는 아래로 내려간다.

이것이 이 장의 등뼈다.


여기까지 읽으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올지 모른다. 이 구조 원칙은 앞의 여러 장에서 거듭 나왔다.

2장은 ‘아름다움’의 구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아름다움을 세우면 추함을 내쳐야 한다.
3장은 현명한 이를 떠받들지 말라고 했다. 현명함의 구를 세우지 말라는 말이다.
5장은 하늘과 땅이 어질지 않다고 했다. 어짊의 잣대를 켜지 않는다는 말이다.
12장은 창발층에 구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도덕경』 전체가 같은 이야기를 거듭하고 있다.

구를 세우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많다’는 규칙의 개수를 세는 말이 아니다. 안전 기준, 분명한 책임, 지켜지는 약속은 사람을 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리더가 자기 이미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돌게 하고 자기 판단으로 남의 삶을 대신할수록 관계는 아래로 간다. 그 장치 안에서 누구에게 스스로 움직일 자리가 남는지를 물어야 한다.

6. 말을 귀히 여기고, 백성은 ‘내가 스스로 그러했다’고 말한다

가장 높은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가? 노자는 이어지는 두 구절에서 답한다.

깊이 헤아리는구나, 말을 귀히 여긴다. (猷呵,其貴言也)

‘유아(猷呵)’는 깊이 헤아리는구나 하는 감탄이다. ‘귀언(貴言)’은 말을 귀하게 아껴 쓴다, 곧 말수가 적다는 뜻이다.

‘말을 귀히 여긴다’고 해서 적게 말할수록 현명한 것은 아니다. 책임이나 필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아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아껴야 할 것은 남의 판단 자리를 차지하는 말이다. 끝까지 듣기도 전에 단정하고, 해 보기도 전에 대신 결정하는 말이다.

한마디 조언이 시야를 열고 설명이 선택지를 넓힐 수도 있다. 말한 뒤 상대가 더 잘 스스로 판단하게 되는가,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가? 가장 높은 등급은 목소리로 남을 누르지 않으며 침묵으로 책임을 피하지도 않는다.


다음 구절은 가장 높은 등급의 다스리는 사람이 이르는 가장 높은 모습이다.

공을 이루고 일을 마치면, 백성은 모두 ‘내가 스스로 그러했다’고 말한다. (成功遂事,而百姓謂我自然)

일이 이루어졌다. 백성은 말한다. 내가 스스로 이렇게 된 것이다.

여기를 눈여겨보자. ‘내가 스스로 그러했다(我自然)’의 ‘나’는 백성의 나다.

백성은 말한다. “나는 원래 저절로 이렇지.” ‘아, 이건 대표님이 짜 준 거야’, ‘아, 이건 정부가 도와준 거야’, ‘아, 이건 우리 상사가 해 준 거야’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내 힘으로 이렇게 살고 있고, 원래 이런 거야.’

다스리는 사람은 자리를 내어 주고 공을 내어 주는 일을 끝까지 해낸다. 공이 자기에게 돌아오게 하지 않고 백성에게 돌아가게 한다.

백성이 느끼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자기가 일하고, 자기가 자라고, 이 모든 공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스리는 사람은 배경에서 일하면서 이 모든 것이 백성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게 한다.


함육이 이르는 가장 높은 모습이 이것이다.

참된 함육하는 사람은 끝내 함육받는 사람이 자기의 존재를 잊게 만든다. 몸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뜻이 아니라, 구조상 더는 그에게 매여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함육받는 사람은 말할 것이다. “나는 내 힘으로 이렇게 자랐어.”

함육하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일을 다 마쳤다는 표시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인용되는 것도 아니다.

함육받는 사람이 스스로 자라났다고 여기는 것이다.

7.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처음의 등급표로 돌아가 보자.

네 등급은 도덕 평가가 아니다. ‘가장 높은 등급은 좋은 사람, 업신여김을 받는 등급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다.

네 등급은 구조 속의 자리다. 다스리는 사람이 순간순간 구를 세우는 동작이 지금 그가 어느 등급에 있는지를 정한다.

한 사람이 상황에 따라 다른 등급에 있을 수 있다. 어떤 일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가, 다른 일에서는 따르고 기림을 받는 자리로 미끄러지고, 또 다른 일에서는 두려움을 사는 자리까지 미끄러질 수도 있다.

순간순간의 동작이 자리를 다시 정한다.


그러니 이 장을 다 읽었으면 한 번 되돌아보자.

다스림을 받는 쪽에서.

당신의 상사는 당신의 일에 대해 어느 등급인가?
당신 회사의 문화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어느 등급인가?
당신이 쓰는 그 플랫폼은 사용자에 대해 어느 등급인가?
당신이 구독하는 그 뉴스레터는 독자에 대해 어느 등급인가?
당신이 자라는 동안 부모는 당신에 대해 어느 등급이었는가?

다스리는 쪽에서.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크리에이터로서 독자와 구독자에게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제품 책임자로서 사용자에게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친구로서도 마찬가지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느 등급인가?


모든 자리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이르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따르고 기림을 받는 자리나 두려움을 사는 자리에 있다. 그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는 자기에게 딱지를 붙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조율하라고 있는 것이다.

다음 동작에서 당신은 어느 등급 쪽으로 한 칸 옮겨 갈 수 있는가?

한마디 덜 하기. 가장 높은 등급 쪽으로 한 칸.
인정받는 순간 하나를 다투지 않기. 가장 높은 등급 쪽으로 한 칸.
답을 바로 알려 주는 대신 상대가 스스로 결론에 이르게 하기. 가장 높은 등급 쪽으로 한 칸.
사랑받을 구를 세우려는 자기를 알아차리고 잠깐 멈추기. 가장 높은 등급 쪽으로 한 칸.

한 칸씩 옮길 때마다 함육의 동작 하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평생에 걸쳐 가장 높은 등급에 이르러야만 셈에 드는 것이 아니다. 동작 하나하나가 그 방향으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노자를 읽고 얻는 가장 큰 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금 이 손에 방향을 조율할 표가 한 장 더 생긴다는 것이다.

네 등급이 한 장의 표다.
두 갈래 길이 한 장의 표다.
일곱 장의 사진도 한 장의 표다.

한 장을 읽을 때마다 삶에서 쓸 수 있는 표 한 장을 챙겨 간다.

이 책이 오늘도 살아 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