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논지를 한국어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 웹페이지에서는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재판이 열린다. 피고석에는 야코마루가 있다.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마을 주민을 무수히 죽인 자다. 끌려온 그는 죄를 추궁당하고 자기 입장을 진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가 거듭 하는 말은 하나다.
우리는 요괴쥐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법정은 비웃음으로 답한다.
그리고 무간지옥을 선고한다.
그가 저지른 일
먼저 그가 한 일을 빠짐없이 늘어놓자. 그는 여러 해 동안 준비했다. 파리매 콜로니를 장수말벌 콜로니와 어깨를 나란히 할 규모로 키웠다. 기술을 들여오고, 무기를 개량하고, 군대를 훈련했다. 전쟁을 시작해 처음에는 요괴쥐들끼리 싸우면서 다른 콜로니를 집어삼켰다.
그런 다음 인간을 공격했다.
그에게는 무기가 하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악귀’라 부른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가 빚어내는 결과는 악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옛 기록에 나오는, 자연히 발생한 악귀는 아니었다. 요괴쥐가 기른 아이의 인식 속에서 동족은 요괴쥐였다. 인간은 동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격 억제와 괴사 기구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야코마루는 그 아이를 이용해 수많은 인간을 죽였다. 마을은 폐허가 됐고 사망자는 수천에 이르렀다. 끝내 그는 패했다. 붙잡혀 법정으로 끌려왔다.
그의 편에 서서 이유를 말한다면
이제 그의 이유를 가장 강한 형태로 제시해 보자.
그는 요괴쥐가 무엇인지 알았다. 자기 종족이 인간의 범주 밖으로 밀려나도록 개조됐으며, 목적은 인간이 그들을 죽일 수 있게 하는 데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천 년 동안 자기 종족이 부림을 당하고 처분되고 도구로 쓰였고, 인간 사회에서는 그 모든 일이 합법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체제가 저절로 바뀌지 않을 것도 알았다. 바꾸는 길은 인간이 요괴쥐를 동족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 구조 전체가 요괴쥐는 동족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인정하는 순간, 몸 안의 장치가 사회 전체를 꼼짝 못 하게 잠가 버린다.
그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그의 자리에서는 ‘이의를 제기한다’는 행동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의를 접수할 체계가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그에게 이의를 제기할 자격이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논리는 빈틈없이 이어진다. 작품도 누군가를 내세워 반박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 겹 더 나아간다. 그는 요괴쥐의 이익만을 다투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 사실 하나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사실이다.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았다. 그저 그 말이 본래 가리켜야 할 범위를 그대로 가리키게 하라는 요구다.
그가 한 또 하나의 일
이 글의 판단은 이제부터다. 야코마루가 가진 그 악귀는 어디서 왔을까.
사키의 두 친구, 마리아와 마모루는 마을을 탈출했다. 바깥에서 살며 아이를 낳았다. 야코마루는 두 사람을 죽이고 아기를 데려갔다.
그런 다음 요괴쥐들 사이에서 아이를 길렀다. 요괴쥐를 동족으로, 인간을 다른 종류의 존재로 받아들이게 했다. 목적은 무기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십수 년을 들여, 한 사람을 도구 하나로 만들었다.
그 일의 모양은 마을이 요괴쥐에게 했던 일과 같다. 마을은 한 무리의 몸을 바꿔 ‘동족’이라는 말 밖으로 내보냈다. 야코마루는 한 아이의 인식을 바꿔, 또 다른 무리를 그 아이가 생각하는 동족의 밖으로 내보냈다.
양쪽이 손댄 것은 같다. 그 말의 경계다.
한쪽은 인식되는 대상을 바꾸고, 다른 쪽은 인식하는 주체를 바꿨다. 결과는 같다. 원래 장치가 막아 주던 일을 이제는 막아 주지 못한다.
그 자신의 종족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그 전쟁은 요괴쥐의 목숨으로 치른 전쟁이었다. 그는 동족을 무리째 전장으로 밀어 넣었다. 인간의 주력을 소모시키고, 다른 움직임을 엄호하게 하고, 죽게 했다. 그때 투입되는 요괴쥐들은 전체 계획을 알지 못했다.
동족을 더는 도구 취급하지 말라며 일어선 사람이, 그 저항을 조직하는 동안 동족을 재료로 썼다.
그가 나쁜 사람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직이 그런 일을 수행할 때 저절로 띠게 되는 형태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은 여기에 평가를 덧붙이지 않는다. 일이 하나씩 벌어지게 한 뒤 그를 법정으로 데려갈 뿐이다. 이 때문에 출구가 사라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신이 허물려던 체제의 새 판본이 된다.
작품은 세 번째 길을 내놓지 않는다. 그런 길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무간지옥
선고된 형은 무간지옥이다. 사형이 아니다. 주력으로 목숨을 유지하면서 계속 고통을 주는 처분이다. 죽음이라는 출구를 열어 주지 않는다.
이 형벌을 집행할 수 있는 데에는 전제가 있다. 인간에게는 할 수 없다. 괴사 기구가 막는다. 요괴쥐에게는 할 수 있다.
그를 심판하는 논리는 그를 만들어 낸 논리와 같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받아들여지면 판결은 집행할 수 없다. 법정의 사람들은 손을 대는 순간 죽게 된다. 그래서 이 말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토론에 부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옳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형을 집행하지 못하게 되는 전제다.
법정은 그 말을 비웃음으로 처리한다.
그 한마디
마지막으로 그 말에 돌아가 보자.
우리는 요괴쥐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온 순간에도 이미 사실이었다. 마지막 화에 이르면 관객도 안다. 염색체 수가 같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웃기는 소리였다.
형은 집행됐다.
절차를 갖추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며 진지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법정에서도, 진실 한마디가 우스갯소리로 처리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아무도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분류가 천 년 전에 이미 끝나 있었으면 된다.
야코마루의 죄가 ‘우리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 말이 참이라고 해서 그가 초래한 죽음들이 취소되지도 않는다. 작품은 서로 지워 줄 수 없는 두 사실을 법정에 함께 남겨 둔다.
그 재판에 앞서, 사키는 이미 같은 분류의 논리를 빌려 그 아이를 멈춰 세웠다. 그 방법이 성립하려면 ‘인간’의 바깥에 놓인 누군가가 자원해야 했다.
이 연작은 기시 유스케의 2008년 소설을 바탕으로 이시하마 마사시가 감독하고 A-1 Pictures가 제작한 TV 애니메이션 《신세계에서》(2012–2013, 전 25화)를 중심으로 읽는다. 소설은 보충 맥락으로만 참조하며, 만화판은 다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