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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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스스로 나선 이의 희생을 받아들였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논지를 한국어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 웹페이지에서는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악귀’라 부르는 그 아이는 거의 죽일 수 없는 존재다. 주력으로 아이를 공격할 수가 없다. 공격 억제가 가로막아 인간 쪽에서는 손조차 들지 못한다. 반대로 아이는 아무 제약 없이 사람을 죽인다. 마을은 아이 앞에서 구역마다 무너져 간다.

사키가 방법을 하나 생각해 낸다.

그 방법

출발점은 한 가지 관찰이다. 괴사 기구의 발동 조건은 혈연도 유전자도 아니다. 어떤 객관적 지표도 아니다. 당사자의 인식, 그가 상대를 무엇으로 보느냐가 조건이다.

그 아이는 요괴쥐 손에서 자랐다. 아이에게 동족은 요괴쥐이고,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을 죽여도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가 요괴쥐를 잘못 알고 죽인 뒤, 자기가 죽인 상대가 동족임을 알아보면 몸속 장치가 발동한다.

그래서 방법은 이것이다. 요괴쥐 하나를 인간으로 위장시켜 아이가 그를 잘못 알고 죽이게 한 뒤, 정체를 알아보게 한다.

기로마루가 나선다

요괴쥐가 한 명 필요하다. 기로마루가 자원한다. 그가 내건 조건은 자기 종족, 장수말벌 콜로니를 지켜 달라는 것이다.

작품에서 이 과정은 짧다. 기로마루가 이유를 말하고 사키와 사토루가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 함께 간다.

기로마루는 인간으로 위장했다. 사키는 그 뒤에서 공격을 연출해, 아이가 기로마루가 주력을 쓴다고 믿게 했다. 아이는 그를 공격했다.

기로마루가 요괴쥐라는 정체를 드러낸다. 아이는 자기가 죽인 이가 동족임을 깨닫는다. 몸속 장치가 발동한다. 아이는 죽는다.

마을은 살아남는다.

그 방법은 무엇을 이용했나

이 글이 내리려는 판단은 정확히 짚어야 한다. 사키가 전투를 이기는 데 쓴 것은 용기도 지혜도,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논리였다. 누가 동족인지는 정할 수 있다. 그것을 정하고 나면 누구를 죽여도 되는지도 함께 정해진다.

구조만 놓고 보면 천 년 전 사람들이 했던 일, 야코마루가 아이에게 했던 일과 원리가 같다. 천 년 전 사람들은 몸을 바꿨다. 야코마루는 인식을 바꿨다. 사키는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이미 바뀌어 있는 악귀의 인식에서 한 군데를 눌렀을 뿐이다.

정확한 곳을 눌렀다.

사키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았을까

여기서는 조심해야 한다. 자칫 한마디 비난으로 끝내기 가장 쉬운 대목이다. 당시 사키는 요괴쥐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마을 전체가 몰랐다. 그녀가 알고 있던 범위에서 이 선택은, 마을을 통째로 학살하는 존재를 막기 위해 스스로 나선 동료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이었다.

기로마루는 분명 자원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이유도 있었다. 자기 종족을 지키고 야코마루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 자신의 목표였다. 이 틀 안에서는 사키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다.

다만 나중의 지식이 없어도 볼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키와 사토루는 마을에서 요괴쥐를 가장 잘 이해하는 두 사람이다. 그들과 교류했고, 그들에게 구조됐으며, 그들의 사회를 보았고, 그들을 관리하는 일도 맡았다.

그런 두 사람이 목숨 하나가 필요해졌을 때 세운 계획은 기로마루를 희생시키는 것이었다. 작품은 여기에 평을 붙이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과 실행, 그리고 결과를 끝까지 보여줄 뿐이다.

거꾸로 놓고 볼 수도 있다. 그 악귀가 요괴쥐 대신 인간을 동족으로 인식했다면, 이 방법은 아이가 인간 하나를 잘못 알고 죽인 뒤 그가 동족임을 알아보게 해야 성립한다.

그때도 이 계획이 나왔을까. 그 한 사람은 누가 되었을까.

작품 속 누구도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답이 없어도 질문은 제 역할을 한다. 그 자리에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 독자가 그 계획이 어떤 조건 아래서 가능해졌는지 직접 보도록.

뒤늦게 알게 된 것

재판이 끝났다. 야코마루는 무간지옥에 있고 마을은 재건을 시작한다. 사키는 이류관리과로 돌아가 요괴쥐 조사를 계속한다. 사토루가 그 유전자 분석 결과를 가져온다.

염색체 수가 같다. 요괴쥐는 개조된 인간이다.

사키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인간이다’라고 말했던 자는 이미 무간지옥에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나선 그의 희생을 받아들였고, 그는 이제 돌아올 수 없었다.

작품은 순서를 분명히 놓는다. 그 말을 우스갯소리로 취급한 일도, 형을 집행한 일도, 그 희생도 먼저 있었다. 보고서는 그 뒤에 왔다.

순서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마지막의 결정

사키와 사토루는 결국 이것을 바꾸기로 한다. 오래 의논한다. 체제가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지, 그것을 건드리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작품은 상상력에 관한 말을 남긴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라는 뜻의 말이다. 따뜻한 마무리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앞선 스물다섯 화 속에 다시 놓아보면 아주 구체적인 일을 가리키고 있다.

이 체제 전체는 ‘누가 동족인가’를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데 기대어 돌아간다.

부정고양이도, 괴사 기구도 그렇다. 요괴쥐가 겪은 천 년도, 그 법정도 거기에 기대고 있다. 사키 자신이 전투에서 이긴 방법마저 그랬다. 바꾸려면 누군가 생각하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그 시작부터 처리 대상이 된다. 아이가 물으면 어른은 얼버무린다. 기억을 바꾼다. 질문에 답하는 단말을 금기로 지정한다. 너무 많이 묻는 아이는 사라진다.

그러니 상상력을 말하는 마지막 문장은 어떤 미덕을 기리는 문장이 아니다. 이 체제가 맨 먼저 틀어막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문장이다.

작품은 두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실패할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 결정을 내리게 한 다음 끝을 맺는다.

세 가지 일

이 연작은 여기서 끝난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 일을 나란히 놓아두자. 그 사이에는 말을 보태지 않겠다.

첫째. 천 년 전, 사람들은 동족 일부를 죽일 수 있도록 그들을 동족이 아닌 존재로 개조했다. 이 일은 성공했다. 천 년 뒤에는 그 일을 한 쪽의 후손들마저 그것을 진심으로 믿을 만큼 성공했다.

둘째. 그 종족의 일원 하나가 오랜 세월 끝에 이 사실을 알아내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저항을 조직하면서 갓난아기 때부터 십수 년을 들여 한 사람을 무기로 만들었다. 법정에서 그는 ‘나는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법정은 웃었고, 그에게 죽을 수 없다는 형을 내렸다.

셋째. 스물여섯 살 여자가 그 무기를 멈추기 위해 스스로 나선 요괴쥐 하나의 희생을 받아들였다. 나중에 보고서를 받아 들고서 요괴쥐가 인간임을 알았다.

보고서를 받은 뒤 그녀가 한 일은 그 토대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작품은 답하지 않는다.

이 연작은 기시 유스케의 2008년 소설을 바탕으로 이시하마 마사시가 감독하고 A-1 Pictures가 제작한 TV 애니메이션 《신세계에서》(2012–2013, 전 25화)를 중심으로 읽는다. 소설은 보충 맥락으로만 참조하며, 만화판은 다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