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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미학 · 미학의 갈래 · 12 / 13 · 의심하지 않음의 아름다움

나라면 그렇게 안 치지만, 나를 따를 필요는 없어

선생님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으면서 학생이 원하는 호흡을 더 분명하게 연주하도록 돕는다. 선택을 남기는 일은 도움을 거두는 일이 아니다.

Han Qin ·

학생이 곡의 중간을 연주한다. 지난 수업에서 선생님은 여기서 조금 늦추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학생은 한 호흡에 밀고 나갔다.

다 듣고 선생님이 말했다. “여기는 나라면 그렇게 안 칠 거야.”

그러고는 이유를 말했다. 앞에 메아리 같은 구절이 있으니 바로 밀어 나가면 되돌아보는 느낌이 안 들린다며, 두 가지를 쳐서 들려주었다.

학생이 잠시 뒤 물었다. “그럼 고칠까요?”

선생님이 말했다. “다시 들어 봐. 그래도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일단 그렇게 쳐 봐.”

다음 시간에도 학생은 바꾸지 않았다. 그 대목에 이르자 선생님의 무릎 위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다시 끊고 싶은 듯했다. 그래도 끝까지 치게 했다.

그다음 둘은 그 부분의 운지를 함께 보았다. 한 호흡으로 지나가려면 가장 잇고 싶은 데서 끊어지지 않게 손가락을 어떻게 바꿀까?

선생님은 그 해석을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학생이 그것을 더 분명히 연주하도록 돕기 시작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남아 있다

이 장면은 선생님이 마침내 다른 의견을 존중하게 된 이야기로 읽기 쉽다. 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더 가까이 볼 수는 있다.

그는 원래 판단을 거두고 ‘사실 네 방식도 좋다’는 말로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안 들리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학생도 다음에 그대로 따라 해서 선생님이 잘 가르쳤음을 증명하지 않았다.

‘나라면 그렇게 안 친다’는 말은 학생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자동으로 무효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질문받지 않을 자격을 얻지도 않았다. 학생은 그 구절이 왜 꼭 되돌아보는 부분인지, 다른 연결은 없는지 더 물을 수 있다. 선생님은 설명하고 다시 쳐 주거나 학생이 들은 것을 자기는 놓쳤음을 알 수도 있다.

네가 끄덕여 주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는 것과 내 판단에는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앞의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말할 수 있고 상대가 어디서 왔는지도 들을 수 있다. 뒤의 사람은 먼저 자기에게 말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할 뿐이다.

선생님에게는 경험이 있고 그 경험도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없는 척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경험이 있다고 학생의 귀가 정답을 담기만 기다리는 빈자리는 아니다.

남긴 것은 ‘마음대로 해’ 한마디가 아니다

선생님이 듣기 귀찮아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네가 좋은 대로 해.”

그래서 간섭했는지만 볼 수는 없다. 간섭하지 않는 것은 때로 관심이 없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선생님은 이미 진지하게 듣고 문제를 짚고 이유를 주었다. 그러고도 자신이 반대하는 연주를 함께 연습했다. 학생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관심을 가지며 자기 능력을 써서, 선택이 어떻게 들리는지 학생 자신이 더 잘 듣도록 했다.

남긴 것은 돌보는 이 없는 빈터가 아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이렇게 듣는다’는 말을 학생 대신 끝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학생은 불편할 수 있다. 선생님 말대로 고치면 얼마나 쉬운가. 대회에서 져도 전부 지도를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선생님은 도움을 거두지도 선택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학생은 계속 들어야 한다.

물론 수업에 기술적 오류가 없다거나 선생님이 연습을 요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음을 잘못 치고 리듬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과 선율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다른 일이다. 선생님에게도 가르치는 범위와 일의 조건이 있다. 이 예시는 두 해석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데만 머물며 모든 교실에 만능 규칙을 세우지 않는다.

그 범위에서 학생은 마침내 선생님의 성공작만은 아니게 된다. 자라날 자기 소리를 선생님이 미리 전부 들어 버릴 수는 없다.

먼저 같은 태도로 갚지 않아도 된다

이 수업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 속에도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선생님은 먼저 충분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이 대목을 맡기겠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옳았다고 알아야 오늘의 자유가 보람 있었다고 하지도 않았다.

학생은 아직 젊거나 자기 버전을 지키느라 선생님 쪽을 못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마음대로 대신 결정해도 되는 사람은 아니다.

상대에게 자기 귀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보답을 기다리는 거래가 아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모든 모욕을 삼키거나 무한히 시간을 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학생이 욕하거나 물건을 부수면 멈추고 수업을 끝낼 수 있다. 행동을 거절할 때 그 사람에게 자기 판단이 있을 자격까지 함께 취소할 필요는 없다.

경계가 아주 평범한 말에 있을 때도 있다. “이건 받아들이지 않겠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좀 더 너그러워야 한다는 말로 남 대신 종료일 없는 계약서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의 판단과 시간도 그 자신의 것이다. 자신을 계속 내주어야만 학생을 인정할 자격이 생기지는 않는다.

손가락은 왜 다시 내려갔을까

들어 올릴 뻔했던 그 손으로 돌아가자.

지난번에도 같은 말을 했다. 또 말하려는 것은 새 문제를 보아서일까, 아니면 학생이 따르지 않아서 다시 한 번 승낙을 듣고 싶어서일까. 선생님도 바로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에 실제 어려움이 있다. 판단도 없고 불쾌함도 없는 것이 아니다. 자기 판단을 자기 쪽에 두고 더 뻗어 가서 학생의 다음 걸음까지 채워 넣지 않으려 하고 있다.

곁에서 본 사람은 끊지 않는 선생님을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오늘은 기운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 손을 내린 것만 보고 속을 알 수는 없다. 다음을 보아야 한다. 해야 할 말을 분명히 했는가. 학생이 반박할 수 있는가. 반대하고 나니 도움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는가.

운지를 함께 정리한 일 때문에 볼 것이 조금 더 생겼다. 학생이 자신에게 복종하는지 확인하느라 바쁘지 않게 되자, 학생이 내고 싶은 한 호흡으로 주의가 갈 수 있었다.

여러 해 이렇게 가르친 선생님도 있다. 다른 해석을 듣고 의견을 말한 다음 계속 들을 수 있다. 매번 충동을 눌러야 하지는 않는다. 힘들이지 않는 그 고요함도 처음 참았을 때보다 얕지 않다.

아름다움에 극적인 자기 극복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곡이 둘을 화해시켜 주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나중에는 말을 바꿀 수 있다. 어느 날 학생의 연주가 다른 선을 살렸음을 실제로 듣고, 이번에는 왜 그렇게 가는지 알겠다고 말할 수 있다.

끝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 들은 것이 있어 몇 년 뒤 다시 쳐도 다를 수 있다.

교육의 실패로 쓸 필요는 없다. 반대로 이런 선생님이 반드시 더 뛰어난 연주자를 만든다고 보증할 수도 없다. 결과는 여러 조건이 함께 만든다. 존중은 몰래 승률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다.

이번에 볼 것은 동의하지 않은 뒤에도 둘 다 이 연습실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선생님의 판단이 명령이 되지 않았고 학생의 판단도 아직 미숙하다고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선생님 쪽만 분명히 썼다. 학생도 선생님의 몫을 선생님에게 남길 수 있는지는 또 보아야 하며 선생님의 행동만으로 대신 입증할 수는 없다.

연주는 계속된다. 선생님에게는 여전히 너무 빠른 곳을 학생이 다시 친다. 선생님은 다 듣고 손가락을 바꿀 때 불필요한 악센트가 생겼다고 짚었다.

그는 자신에게 들리는 것을 버리지 않았다. 학생의 귀가 앞으로 오직 자신을 위해 들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원논문과 참고 자료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기존 영어판도 독립 집필되었으며 중국어 간체·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기술적인 원논문 전체의 번역은 아닙니다. 각 글의 집필 설명에는 논의를 위해 만든 장면과 실제 연구·사료로 확인한 내용의 구분을 남겼습니다. 이론 논문은 영어·중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술 작품 소개는 한국어판이 있지만, ‘일상의 발견’과 예전 장문 ‘예술가는 죽었다’는 기존 영어·간체 중국어판으로 이어집니다. 그 본문까지 이번에 한국어로 다시 쓴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쓴 바탕과 범위

『의심하지 않음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썼다. 연습실과 인물, 대화는 설명용이며 실제 작품이나 선생님, 학생을 지정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연주 해석에 한정한 예시로, 기술적 실수를 다른 의견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 글이 분명히 한 것은 선생님 쪽뿐이며 그의 행동으로 학생도 같은 데 이르렀음을 입증하지 않는다. 상대를 인정해도 노동을 무한히 제공하거나 가해를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거절과 떠남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