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읽기
Non Dubito

미학 · 미학의 갈래 · 07 / 13 · 번식의 아름다움

다음 세대는, 작게 줄인 완제품이 아니다

볼복스의 배아가 안팎을 뒤집고 새 공에 서로 다른 부분이 다시 자란다. 이어지는 것은 완제품을 재인쇄하는 일이 아니다.

Han Qin ·

작은 초록 공 안에 더 작은 공들이 몇 개 들어 있다.

사진 한 장만 보면 생명이 단순한 일을 하는 것 같다. 큰 공 안의 작은 공이 자라 그 안의 더 작은 공을 내보낸다. 처음부터 포개 둔 장난감을 한 겹씩 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하지만 발달 과정을 계속 보면 사진이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나타난다. 어느 단계에는 작은 공의 안팎이 뒤집혀 있어 스스로 뒤집어야 한다.

누가 핀셋으로 뒤집어 주는 것이 아니다. 구성 세포가 모양을 바꾸고 함께 움직여 세포층 전체의 위치를 바꾼다. 구멍이 넓어지고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말리며 안쪽을 향하던 면이 점차 바깥을 향한다.

다음 세대가 축소된 완제품으로 줄곧 숨어 있던 것은 아니다. 눈앞의 모습은 다시 자라야 한다.

작은 공 속에 같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연구에 자주 쓰이는 볼복스의 한 종인 Volvox carteri다. 볼복스는 한 종류가 아니며 세포 수와 분화, 뒤집히는 방식도 다르다. 이 한 종의 과정을 모두의 대본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 종의 무성 생활사에서는 성숙한 공 표면에 작은 체세포가 많이 있어 편모를 뻗어 공이 헤엄치는 데 참여한다. 안쪽 한편에는 큰 생식세포가 적게 있고, 일련의 분열을 거쳐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다.

큰 세포는 누워서 시중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작은 세포도 우리가 훈장을 달아 줄 노동자가 아니다. 같은 생물의 다른 세포이며 각자 활동과 발달상의 위치가 있다. 그 위치를 인간 사회의 신분으로 읽으면 이야기는 잘못된 길로 간다.

볼 것은 서로 다른 부분이 우연히 쌓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차이는 공이 어떻게 하나의 생물이 되는지에 참여한다. 많은 세포가 모였다는 말만으로는 아직 이 점을 말하지 못한다.

더 보면 다음 세대도 이 세포 더미를 한 벌 더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생식세포 하나가 나뉘고 세포들이 점차 달라지고 형태도 바뀐 뒤, 다른 부분과 위치를 가진 공이 다시 나타난다.

이어지는 것에는 그 차이들이 어떻게 함께 있는지도 포함된다.

뒤집히는 그 과정

발달의 어느 단계에서 배아는 정상적으로 헤엄칠 공이 되기에 아직 맞지 않는 방향을 하고 있다. 뒤집힘을 거쳐 앞으로 바깥을 향할 면을 외부로 돌린다.

마지막 사진만 보면 이 단계가 없었던 것 같다. 다 자란 볼복스는 원래 이렇게 생겼으니까. 영상이 흘러가야 이 원래 그렇다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보인다.

우리는 성장을 크기 변화로 이해하기 쉽다. 묘목이 큰 나무가 되고 아이에게 작년 옷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발달은 커지는 일만이 아니라 아직 나뉘지 않은 부분이 어떻게 나뉘고 위치가 어떻게 생기며 어디서 어떤 활동이 이어지는지도 포함한다.

볼복스의 뒤집힘은 이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미 맞는 모양을 골고루 부풀리는 것이 아니다. 아직 완제품이라 할 수 없는 단계를 거쳐 세포 활동으로 모양을 바꾼다.

연구자는 어떤 세포가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어떻게 이어지며 어느 고리가 잘못되면 뒤집힘이 막히는지 더 물을 수 있다. 자세히 안다고 이 장면이 볼 가치 없는 조각으로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막연한 생명의 기적이 모든 것을 대신한 게 아님을 더 잘 안다.

그 변화에는 고유한 과정이 있다. 멈춰 다시 볼 수 있고 남도 확인할 수 있다. 살기 위해 마침내 용감하게 뒤집었다는 말을 곁에서 붙일 필요는 없다.

이어졌다고 원래 개체가 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는 발달을 마치고 모체 공을 떠나 자기 삶을 시작한다. 모체 공에 남은 체세포는 그 뒤 노화하고 죽는다.

같은 생활사에서 두 일이 일어나지만 사실은 죽지 않았다는 말로 합칠 수 없다. 원래 개체의 생명은 끝나고 새 개체가 이어진다.

다음 세대가 이어졌다고 죽음이 바람직했다거나 남은 세포가 후손을 위해 자신을 다 써야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목적과 의무를 관찰에 집어넣고 자연이 직접 말했다고 가장하는 것이다.

이 갈래가 보려는 것은 죽음을 찬양하는 일이 아니다. 원래 개체는 유한해도 그 생명의 조직이 다시 만들어지는 일이다. 옛 몸에서 한 조각씩 떼어 옮겨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 하나의 발달에서 시작해, 다른 부분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도 다시 세워진다.

세포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이 예시의 핵심이지 모든 번식을 정의하는 말은 아니다. 생명에는 꺾꽂이와 출아 같은 다른 방법도 있다. 다음 세대가 늘 유성생식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볼복스의 이어짐도 두 부모의 결합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범위를 밝힌다고 아름다움이 줄지는 않는다. 생명 세계 전체를 한 번에 말해야만 이 한 주기를 진지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똑같지 않다고, 서둘러 설명하지 말자

같은 종이라도 자란 개체의 세포 수와 크기, 발달 시간표가 모두 같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복사본이라는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모든 차이의 궁극적 원인을 아는 것도 아니다.

영양과 빛, 유전과 발달 과정이 차이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아직 충분히 측정하지 못한 원인이 있다고 영원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원논문은 더 나아간 독법을 제시한다. 생명이 이어질 때의 차이에 외부 조건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몫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옛 모양의 재인쇄만은 아닌 생성을 본다. 하지만 경계도 분명히 둔다. 차이를 관찰했다고 그 차이가 바로 그 몫이라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이 주장도 경험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에세이는 이 경계를 빼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발달 영상에서 모든 작은 공에 인간의 자아가 있다는 결론으로 뛰게 된다. 영상은 우리 대신 그 길을 건너지 않았다.

거꾸로 연구하고 설명할 수 있는 과정이면 차갑게 반복될 뿐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무언가 어떻게 자라는지와 그 설명을 우리가 좋아하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먼저 여기에 시선을 남길 수 있다. 같은 종류의 생명 조직이 다시 나타난다고, 과정을 건너뛴 채 완성된 결과만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새로 생긴 작은 공들은 헤엄쳐 갔다

이런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뒤집힐 때의 분주함이다. 하지만 다 뒤집힌 뒤 새 공의 부분들이 각자 제자리에 놓여 조용히 헤엄치는 것도 볼 만하다.

생겨나는 것에는 그 긴장이 있고, 모양을 갖춘 것에는 그 완결성이 있다. 다음의 미완성만 영원히 뒤쫓을 필요는 없다. 다 자라면 생명이 더는 보여 줄 게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효율적인지 어떤 분업이 성공적인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누가 무엇을 맡아야 하는지는 더욱 초록 공 몇 개가 정할 수 없다. 세포가 발달하며 차지한 자리를 사람이 벗어나서는 안 될 역할로 바꿀 수는 없다. 번식의 아름다움이 누구에게 출산을 요구할 근거가 되지도 않는다.

영상은 여기서 끝내도 된다. 부모가 되는 법이나 사회를 운영하는 법을 서둘러 가르칠 필요는 없다.

끝에 작은 공 몇 개가 원래 자리에서 떠났다.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있지만 원래 개체가 위치만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어짐은 진짜다. 이번에 새로 시작된 것도 진짜다.

원논문과 참고 자료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기존 영어판도 독립 집필되었으며 중국어 간체·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기술적인 원논문 전체의 번역은 아닙니다. 각 글의 집필 설명에는 논의를 위해 만든 장면과 실제 연구·사료로 확인한 내용의 구분을 남겼습니다. 이론 논문은 영어·중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술 작품 소개는 한국어판이 있지만, ‘일상의 발견’과 예전 장문 ‘예술가는 죽었다’는 기존 영어·간체 중국어판으로 이어집니다. 그 본문까지 이번에 한국어로 다시 쓴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쓴 바탕과 범위

『번식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썼다. 구체적인 예시는 Volvox carteri의 무성 생활사로 한정하고 발달과 뒤집힘은 제시한 연구를 참고했다. 영상 장면은 특정 녹화물의 보고가 아니다. 개체 차이를 관찰했다고 철학적인 의미에서 외부 조건으로 끝까지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세포의 분업을 인간의 가족과 성별, 출산 의무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