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Qin · 홍루몽: 새로 쓴 서른 회
제83회사 태군은 웃음 머금고 살붙이에게 당부하고고요한 호박은 한마디로 유언을 전하다
이야기를 이어 가자면, 영국부에서는 가을에 접어든 뒤로 가모의 몸이 갈수록 나빠졌다. 처음에는 원앙의 부축을 받아 회랑 아래를 몇 걸음씩 거닐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온돌침상 위에 잠깐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그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온종일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채 커다란 등받이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어 눈을 감고 정신을 쉬었다. 얼굴은 때때로 열이 올랐으나 손바닥은 차가웠고, 차와 밥도 한층 덜 들었다. 원앙이 물었다. “노마님, 무엇을 좀 잡수시겠습니까?” 가모가 한숨을 쉬었다. “내 몸이 이제 이러니 본디 무엇을 먹을 수도 없구나. 부엌에다 아무거나 조금 만들어 오라고 이르거라. 나 한 사람 때문에 그 사람들까지 애먹일 것은 없다.” 원앙은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이 붉어져 얼른 고개를 돌렸다.
희봉도 요즈음 몸이 아파 날마다 평아의 부축을 받아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다녀갔다. 이날 부엌에서 푸른 멥쌀죽 한 그릇을 보내 오자 손수 받아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한 술을 떠서 입김으로 알맞게 식힌 다음 가모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가모는 그 손을 빌려 두 입을 먹고는 손을 내저으며 물리려 했다. 희봉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님, 한 입만 더 드셔야 약도 드시지요.” 가모가 말했다. “네 얼굴에도 아직 핏기가 없는데 도리어 와서 나를 달래 먹이려 하는구나. 그나마 남은 기운이나 아껴서 정작 할 일을 하려무나.” 희봉는 숟가락도 내려놓지 않은 채 말했다. “제게 정작 할 일이란 할머님을 모시는 일이지요.” 가모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끝내 반 술을 더 먹었다. 그러고는 그릇을 밀어 놓고 더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희봉를 한번 바라본 뒤 한참 만에야 말했다. “이 잔나비야, 네 몸도 소중하다. 내게야 어쨌든 원앙이며 아이들이 있으니 너는 돌아가 쉬거라.”
조금 뒤 왕 태의가 와서 왼손의 맥을 짚고 다시 오른손의 맥을 짚었다. 침상 앞에 한참 앉아 있다가 비로소 일어나 나갔다. 가정과 가련이 곧바로 바깥방까지 따라 나가 물었다. 왕 태의가 나직이 말했다. “외감은 이미 물러갔으니 이제는 약으로 다스릴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심기가 쇠하고 위기도 약해졌으니 그저 조용히 쉬시도록 하고 어르신 뜻에 맞추어 드릴 수밖에요. 정해진 명수에 달렸습니다.” 가정이 한숨을 쉬었다.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다할 수밖에 없겠군요.” 가련은 돌아와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노마님, 마음 놓으십시오. 태의 말이 그저 가을의 마른 기운에 조금 상하셨을 뿐이니, 날이 서늘해지면 저절로 나으신답니다.” 가모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연히 내 마음을 달래려 할 것 없다. 내가 이 나이까지 살고도 내 몸을 모르겠느냐. 아무래도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구나.” 가련은 감히 그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방 안에는 잠시 약탕로에서 물 끓는 소리만 들렸다. 원앙은 부집게로 숯을 헤쳤고, 앵무는 타구를 들고 나가 비웠으며, 호박은 휘장 귀를 여며 놓았다. 아무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중양절이 된 이날은 마침 하늘이 맑았다. 가모는 아침에 일어나 문득 기운이 조금 나아진 듯하여 원앙에게 머리를 빗기게 하고, 늘 입던 푸른 주름비단의 ‘일두주’ 양가죽 겉옷을 가져다 갈아입었다. 왕부인이 말렸다. “노마님, 그냥 방 안에 앉아 계시지요. 밖에는 바람이 셉니다.” 가모가 웃으며 말했다. “중양은 늙은이들의 날이 아니냐. 내가 이렇게 여러 날 앓는 동안 온 집안이 나 때문에 함께 얼굴을 찌푸리고 지냈구나. 오늘은 우선 하루 모여 보자. 내일 일은 내일 가서 말하자꾸나. 다음번에는 이 명절을 쇨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흥을 맞추어 웃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대나무 의자 모양으로 사방이 트인 작은 가마를 메어 와 흰 족제비 모피 요를 깔자, 원앙과 호박이 양쪽에서 한 사람씩 부축하여 가모를 앉혔다. 이환은 가란을 데리고, 보옥과 대옥, 보차와 탐춘, 상운 등도 모두 뒤를 따랐다. 보옥이 가마 옆에서 붙들고 걸으려 하자 가모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붙들지 말거라. 그러다 네 발이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도리어 내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일행은 심방정을 지났다. 예년 이맘때면 계수나무 꽃향기가 겹겹의 뜰 안으로 스며들고 회랑 아래에는 국화가 가득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원의 꽃과 나무를 손질하는 이가 드물어 도랑가에 마른 잎이 무더기로 쌓였고, 쓸어도 끝이 없었다. 몇 군데 장미 시렁에는 빈 덩굴만 남아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도향촌 밖에서는 벼 이삭이 쓰러져 있었고, 우향사 아래에는 시든 연이 비스듬히 기울었으며, 물 위에는 흩어진 개구리밥 몇 조각이 떠 있었다. 가모는 줄곧 바라보다 우향사에 이르러서야 멈추라고 했다. 사람들은 진작 담박한 술과 과일로 두 상을 마련해 두었는데, 국화주며 떡과 과자, 과일 접시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가모가 상을 한번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예년 이맘때라면 여기 벌써 게를 올려놓았겠지?” 원앙이 얼른 웃으며 아뢰었다. “노마님께서 직접 그러셨지요. 그게 맛은 있어도 몸에 좋은 것은 아니라고요.” 가모도 웃었다. “내 말을 가져다가 내 입을 막는구나.” 가모는 처녀들더러 가까이 앉으라고만 하고, 다시 웃으며 말했다. “물가에 물고기도 몇 마리 있구나. 너희가 낚아 올려 재미를 보지 그러느냐.” 나이 든 하녀들이 짧은 낚싯대 몇 개를 가져왔다. 보옥이 앞다투어 하나를 집었다. 찌가 움직이자마자 얼른 위로 잡아채었는데, 바늘은 돌 틈에 걸려 있었다. 낚싯대가 푸른 돌에 부딪혀 ‘딱’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났고, 낚싯바늘마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상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 물고기는 참 복도 많네요. 보옥 도련님 낚싯바늘에 걸리지도 않고 먼저 도련님 낚싯대를 부러뜨렸으니.” 가모도 몇 번 소리 내어 웃었다. “저 아이는 어려서부터 손에 드는 것마다 망가뜨리더니, 오늘은 물고기까지 저를 피할 줄 아는구나.” 말하면서도 웃다가 웃음소리가 차츰 낮아졌다. 물 위를 한동안 바라보고, 손으로 귀밑머리를 한번 어루만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정원 안의 누각 몇 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말했다. “내가 이 집 문 안으로 들어온 지도 앞뒤를 다 헤아리면 오십 년이 넘었구나.”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가모가 말했다. “내가 처음 왔을 때는 노국공 어른께서 아직 살아 계셨지. 그 세대 사람들에게도 어리석은 일이야 있었지만 옷 한 벌을 몇 해씩 입고 설이나 명절이 되어야 새것을 장만했으니, 그래도 아낄 줄은 알았단다. 그렇게 멀쩡하던 집안이 내 손에 와서는 끝내 날이 갈수록 못해지는구나.”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추더니 목소리가 낮아졌다. “요즈음에는 그분들 꿈을 자주 꾼다. 그저 거기 서서 나를 보실 뿐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는구나. 나는 그분들을 뵐 낯도 없는데.” 그러고는 스스로 먼저 한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해서 무엇 하겠느냐. 조상님과 보살님께서 다 알아서 마련하실 게다. 자, 원앙아, 내 술을 따라 다오.”
사람들은 모두 따라 웃었다. 몇몇은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몰래 눈물을 훔쳤다. 보옥은 반 토막 난 낚싯대를 들고 부러진 곳만 자꾸 만졌다. 대옥은 흘러내린 요 귀를 가모에게 잘 여며 드릴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리가 파하자 사람들이 가모를 부축하여 가마에 태웠다. 가모는 고개를 돌려 우향사를 다시 한번 보고는 그저 말했다. “다들 돌아가자꾸나. 바람이 차다.”
중양절 뒤로 며칠이 더 지나자 가모의 기력은 한층 더 줄었다. 이날 저녁에는 원앙과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가 쉬게 하고, 호박 하나만 곁에 남겨 두었다. 호박은 발받침 곁에 앉아 가모의 다리를 살살 두드려 드렸다. 가모가 문득 물었다. “네가 나를 모신 지 몇 해나 되었느냐?” 호박이 대답했다. “노마님, 칠 년 되었습니다.” 가모가 말했다. “칠 년이면 짧지 않구나. 너는 조용한 아이다. 내가 한마디 할 말이 있는데, 너에게만 전해 달라고 맡기마.” 호박이 얼른 무릎을 꿇었다. “노마님, 말씀하십시오.” 가모는 침상 휘장 꼭대기를 바라보다 한참 만에 말했다. “민이가 어릴 때는 임씨 아이보다도 더 잘 울었단다. 시집가던 날에는 가마에 오르기 전에 도로 와서 나를 한번 껴안았지. 나중에 병으로 죽었을 때는 내가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했구나.” 여기서 말을 멈추었다가 비로소 나직이 말했다. “내 딸은 세상을 떠났다. 그 애의 딸이 바로 내 심장 같은 살붙이다. 목숨 같은 아이는 언제나 심장 같은 살붙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 호박은 땅에 엎드려 듣고 있었다. 가모가 다시 말했다. “내가 눈을 감거든 이 말을 나리께 전하거라. 이 한마디뿐이다. 보태지도 말고 덜지도 말거라.” 호박이 대답했다. “예.” 가모는 눈을 감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호박은 다시 발받침으로 돌아가 앉았다. 가모의 손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살며시 이불 속에 넣어 드렸다.
다음 날 가모는 또 사람을 시켜 문관을 불러오게 했다. 문관은 이미 평소 입는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서 먼저 침상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가모는 가까이 오라고 하여 손을 잡고 한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네 생김새가……” 하고 반마디만 내뱉고는 말을 그쳤다. 그러고는 원앙에게 장 위에 있는 작은 상자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다. 상자는 묵은 자단목으로 만든 것으로 아무 무늬도 없었고, 자물쇠 걸이도 닳아 희끗해져 있었다. 가모가 상자를 문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받아서 네가 잘 간수하거라. 내가 가고 난 뒤에는 네 힘으로 밖에 나가 무슨 생업이라도 해 보려무나.” 다시 그 손등을 두 번 토닥이며 말했다. “너는 영리한 아이다. 네 이 모습이 내 민이를 닮았구나.” 또 말했다. “앞으로 몸을 잘 보살펴라. 그 애처럼 그토록 젊어서 죽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말하고 다시 목이 메었다. 문관은 상자를 받쳐 든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저 머리만 조아렸다. 가모의 숨이 고르게 돌아오기를 기다린 뒤에야 상자를 안고 물러나갔다. 원앙은 그저 장문을 잠그고 열쇠를 몸에 지녔다.
또 하루가 지나 가모는 스스로 기운이 달리는 것을 느끼고 가정과 왕부인, 형부인, 이환과 희봉 등을 모두 앞으로 불렀다. 보옥과 자매들도 발 밖에서 기다렸다. 먼저 비취를 상운 앞으로 불러 말했다. “너는 운이와 함께 가서 취루의 짝이 되어라. 저 애는 성품이 시원스러워 세세한 데까지는 미처 살피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나 대신 좀 보살펴 주려무나.” 상운이 얼른 무릎을 꿇고 말했다. “할머님 곁에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지요.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가모가 웃었다. “내 곁에 사람이 모자라기라도 하느냐. 너는 그저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 또 진주와 파리를 보금 앞으로 불러 말했다. “금이가 앞으로 다시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가게 되거든 너희 둘이 따라가거라. 배 위의 생활은 집과 같지 않으니 무슨 일이든 조심하도록 해라.” 보금이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제야 가모는 가정과 왕부인을 바라보며 분명히 일렀다. “보옥의 혼사는 서둘러 치르도록 해라. 나를 기다릴 것은 없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너희가 상제에 얽매여 저 아이의 중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모두 두 손을 내리고 듣고 있었다. 가정은 몸을 굽혀 알겠다고 대답했다.
가모는 눈을 감고 잠시 정신을 쉬고 나서야 가정에게 말했다. “삼 년을 기다릴 것 없다. 백 일 안에 치르거라.”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도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왕부인은 가정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탐춘은 침상 발치에 서 있었다. 가모가 문득 손을 내밀었다. “셋째야, 이리 오너라.” 탐춘은 얼른 앞으로 나아가 침상 곁에 무릎을 꿇었다. 가모가 그 손을 잡았으나 이미 힘이 별로 없어 나직이 말할 뿐이었다. “너는 버텨 낼 수 있는 아이다.” 탐춘은 눈을 내리깔고 “예.” 하고 대답했다. 가모의 손을 쥔 손이 가늘게 한번 떨렸다. 가모는 잠시 더 잡고 있다가 비로소 놓았다. 이환이 가란을 앞으로 밀어 보냈다. 가란은 법도에 맞게 머리를 조아렸다. 가모는 그를 끌어 발받침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어미를 잘 봉양하여라. 네 어미가 이 여러 해를 너 하나 지키며 살아왔단다.” 가란은 옷섶에 눈물을 떨구며 그저 한마디 대답만 했다.
이어서 원앙에게 묵은 열쇠 꾸러미 하나를 꺼내 안쪽 방의 장뇌나무 궤짝을 열게 했다. 궤짝 안에는 가모가 새며느리였을 때부터 모아 둔 사재가 들어 있었다. 은괴도 있고 낡은 패물도 있었으며, 땅문서도 몇 장 있었다. 사람을 시켜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한 뒤 집안 식구들에게 방마다 한 몫씩 나누어 주었다. 가정에게는 은 몇 봉을 주어 일상 경비로 남겨 두게 했고, 형부인과 왕부인에게도 각각 한 몫씩 주었으며, 이환과 가란에게는 따로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다. 희봉의 차례가 되자 가모가 말했다. “이 몫은 네가 잘 간수하거라. 연이가 돈 한 푼도 건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 희봉는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머금은 채 웃으며 말했다. “할머님께서 두셨다 쓰셔요. 제게는 아직 이만한 돈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가모가 말했다. “받으라면 받거라. 네가 이 몇 해 동안 집안일로 애를 썼으니, 정작 네 손에는 남은 것이 없을 수도 있지.” 희봉는 눈시울이 붉어져 두 손으로 받았다. 가정은 궤짝 속 물건이 이미 절반 넘게 없어진 것을 보고 얼른 말했다. “어머님, 우선 얼마간 남겨 두십시오. 앞으로도 돈 쓰실 날이 많습니다.” 가모가 그를 한번 바라보았다. “바깥일에 체면만 따져서는 안 된다.” 가정은 더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가모가 또 말했다. “내가 무슨 돈을 더 쓰겠느냐. 이것은 모두 너희 쓰라고 모아 놓은 것이니 본디 나누어 주어야 할 것들이다. 쌓아 놓고 마음 쓰는 일도 덜고.” 그러고는 궤짝을 닫으라고 하고 더 말하지 않았다. 원앙이 열쇠를 거두다가 베개 밑에 작은 주머니 하나가 아직 눌려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것은 누구에게 남겨 주시렵니까?” 가모가 말했다. “네가 갖고 있거라.” 원앙은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다시 베개 밑에 도로 넣어 두었다.
그날 밤 이경이 지나자 가모의 숨이 차츰 짧아졌다. 사람들은 모두 방 안에 둘러서 있었고, 희봉는 평아의 부축을 받으며 침상 발치에 서 있었다. 보옥과 대옥은 양쪽에 따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모는 눈을 떠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창 쪽을 바라보았다. 원앙이 얼른 발을 조금 걷어 올리자, 밖의 맑고 흰 달빛이 회랑 아래 다 시들어 가는 국화 한 분을 비추었다. 가모가 말했다. “모두 에워싸고 있지 말거라. 숨이 막히는구나.” 사람들이 얼른 조금씩 물러났다. 보옥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가모의 손을 쥐고 “할머님.” 하고 불렀다. 가모는 보옥을 보다가 눈길을 옮겨 건너편에 꿇어앉은 대옥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가만히 움직여 무슨 말을 하려는 듯했다. 한참 만에야 보옥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너희 둘은 어려서부터 한데서 자랐지.” 잠시 쉬었다가 또 말했다.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거라.” 더 말을 하려 했으나 이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숨을 몰아쉬는 사이 문득 얼굴에 붉은 기가 한 겹 올라 도리어 혈색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 가정이 바깥방에서 기척을 듣고 들어와 한번 살펴보더니, 임종 직전에 잠시 기운이 돌아온 것임을 알고 얼른 인삼탕을 올리라고 했다. 인삼탕을 입술에 가져다 댔지만 가모는 이미 이를 굳게 다물어 넘겨 드릴 수가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서 온 방 안을 천천히 한번 둘러보았는데, 그 눈빛은 여전히 맑았다. 그렇게 바라보다 입가에 차츰 작은 미소가 피어났지만, 가슴은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만 웃음을 머금은 채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원앙은 침상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침상 가장자리에 엎드렸다. 왕부인이 울부짖었다. “노마님, 어찌 저희를 버리고 이렇게 가십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희봉의 몸이 한번 휘청하자 평아가 얼른 끌어안았다. 대옥은 그저 이마를 침상 가장자리에 댄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 밖에서 기다리던 나이 든 하녀들은 안의 기척을 듣고서야 제각기 나뉘어 곳곳으로 부고를 알리러 갔다.
날이 밝아 올 무렵 가정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바깥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손에는 책 한 권을 쥐고 있었으나 한참 동안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호박이 들어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마님께서 은밀히 남기신 말씀이 하나 더 있어 나리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가정이 고개를 들어 호박을 보았다. 호박이 말했다. “내 딸은 세상을 떠났다. 그 애의 딸이 바로 내 심장 같은 살붙이다. 목숨 같은 아이는 언제나 심장 같은 살붙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 말을 마친 뒤 곧 고개를 숙였다. 가정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이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가정은 줍지도 않고 그저 앉아 있다가 한참 뒤에야 말했다. “알았다.” 호박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일어나 나갔다. 가모의 방으로 돌아와 평소 쓰던 안경과 염주, 열쇠와 빗, 참빗을 하나하나 깨끗이 닦아 놓았다. 이어 자기 옷 두 벌을 작은 보따리 하나로 싸서 안고 혼자 떠났다. 원앙은 빈소를 지키다 돌아와 작은 침상이 말끔히 정돈되고 요도 한쪽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영전으로 돌아갔다.
가모가 떠나자 그 몇 칸 방도 텅 비었다. 방 안의 집기와 장식은 한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았고, 오직 앵무만 날마다 들어가 먼지를 털고 살폈다. 찻그릇이며 놓인 물건들은 모두 옛 모습 그대로였다.
한편 가모의 장례는 예전의 규례대로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희당 앞에는 흰 장막을 세우고 안팎으로 흰 휘장을 가득 걸었으며, 문 위의 등도 상등으로 바꾸었다. 영전의 장명등에는 하루 두 번씩 기름을 더 넣었다. 그러나 각 방에서는 저녁에 등불을 켤 때 심지 풀을 한 줄기씩 덜 넣었다. 종이 부장품이며 독경하는 장막, 북 치는 사람들과 음식상에는 각각 예전부터의 규례가 있어 하나만 빠져도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든 손을 벌리면 장부를 맡은 쪽에서는 은이 없다고 했다. 대문 안 회랑 아래의 낡은 상등 몇 개에는 흰 종이를 새로 발랐으나 등살 두 개가 벌써 헐거워져 있었다. 흰 휘장이 모자라자 창고의 해묵은 흰 천들을 이어 붙였는데 바늘땀의 길이도 고르지 않았다. 종이 부장품 목록에는 가마와 말, 누각과 창고가 하나도 빠짐없이 올라 있었다. 관리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며 줄일 수 있는 것은 지워 버렸지만, 남은 액수도 장부에 적힌 수중의 은보다 한참 많았다. 장막 틀 값은 뒤에 치르기로 했고, 상여를 대는 집에서는 먼저 계약금을 달라고 했다.
희봉는 이틀 동안 몸조리를 하다가 사흘째에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평아가 말렸다. “마님, 이틀만 더 몸을 추스르시지요. 바깥에는 둘째 나리와 임씨 아주머니가 있지 않습니까.” 희봉가 말했다. “지난번 동부의 일을 치를 때는 내가 날마다 묘정 이각이면 그리로 가서 점호를 했는데, 이제는 우리 할머님 일인데도 누워 있을 수야 있겠느냐?” 그러고는 사람의 부축을 받아 바깥방으로 나가 일을 보았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으므로 온돌침상에 요를 깔고 장부를 한 무더기씩 앞으로 옮겨 오게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셈을 따졌다. 맨 먼저 평아에게 물었다. “유 노파 댁에는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렸느냐?” 평아가 대답했다. “아직 못 알렸습니다.” 희봉가 말했다. “사람 하나 보내거라. 노마님께서는 살아 계실 때 그분 이야기 듣기를 가장 좋아하셨지.” 부엌일을 하는 아낙이 두 손을 옷섶에 쓱쓱 닦고 아뢰었다. “올해는 메뚜기 떼가 덮쳐 좋은 쌀은 값만 있고 물건이 없습니다. 고운 쌀은 고사하고, 어제는 고기 두 근을 구하려다가 고깃전 사람한테 한바탕 핀잔까지 들었지 뭡니까. 조문객이 많아지면 채소며 닭과 오리를 어디서 다 대겠습니까.” 희봉가 말했다. “우선 사람 수부터 정확히 어림잡아라. 손님 한 상, 따라온 사람들 한 상으로 하되, 세 사람만 앉혀 놓고도 한 상을 가득 채운 것으로 셈해서는 안 된다. 채소 반찬을 두 가지 늘리고 고기 반찬을 두 가지 줄여라. 노마님께서 살아 계실 때 가장 싫어하신 것이 낭비였다.” 그 아낙은 대답하고 나갔다. 다시 바깥 회계방 사람이 서찰 한 뭉치를 안고 들어와 아뢰었다. “장원에서 들어올 소작료를 아무리 독촉해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소인이 집집이 찾아갔지만 모두 농사가 잘 안되었다고만 합니다. 나이 든 사람 하나는 그저 ‘안 갚겠다는 것이 아니라 땅에 난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만 하더군요. 실제 은은 보지도 못하고 기한을 늦추어 달라는 서찰만 소매 가득 받아 왔습니다.” 그러고는 서찰을 받쳐 올렸는데 거친 종이에 쓴 것이 많고 붉은 편지지에 쓴 것은 적었다. 희봉는 다 듣고 서찰을 장원 관리인별로 나누라고 하면서 붉은 붓을 들어 하나하나 표시했다. 온돌침상 곁에는 작은 화로 하나만 피워 놓았다. 희봉는 왼손으로 제사 음식상 장부를 누르고 있었다. 서찰은 어떤 것은 봉한 데가 닳아 희어졌고, 어떤 것은 귀퉁이에 진흙이 묻어 있었다. 하나하나 펼쳐 놓으니 온돌침상의 반을 거의 덮을 지경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희봉는 다시 평아의 부축을 받아 은을 마련하러 형부인의 방에 갔다. 형부인은 온돌침상에 앉아 손난로 하나를 받쳐 들고 웃으며 말했다. “노마님 일이니 당연히 모두 정성을 다해야지. 다만 큰나리 쪽에서도 제물을 갖추어야 하고, 우리 방에서는 실로 그 많은 돈을 돌려 낼 수가 없구나. 네가 이 여러 해 살림을 맡아 왔는데 설마 장례 한번 치를 돈도 마련하지 않았단 말이냐?” 희봉가 말했다. “마련해 두었던 돈은 벌써 이곳저곳에 다 대어 넣었습니다. 지금은 저 한 사람의 체면이 아니라 온 집안의 체면이 걸린 일입니다.” 형부인이 말했다. “온 집안 일이라면 나리와 마님께서 결정하시도록 하려무나. 나 같은 아녀자가 얼마나 가지고 있겠느냐.” 희봉는 잠시 앉아 있다가 하는 수 없이 평아에게 부축해 돌아가자고 했다. 문 앞에 이르러 몸을 돌리고 말했다. “마님께 오백 냥이 있으시면 우선 삼백 냥만 빌려주십시오. 첫 칠일제가 지나면 다시 셈을 맞추겠습니다.” 형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시켜 찾아보마.” 다음 날 보내온 것은 고작 오십 냥이었는데, 봉투에는 도리어 ‘부의’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희봉는 그것을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평아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지난해 형 마님께서 이백 냥을 달라고 하셨을 때는 마님께서 고리 모양 금목걸이까지 저당 잡혀 마련해 드렸는데요.” 희봉는 그저 채명에게 장부에 올리라고만 했다.
마침내 가정이 나서서 가련에게 집 안의 값나가는 물건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저당 잡힐 것은 저당 잡히고 팔 것은 팔라고 했다. 가련과 임지효가 이틀 동안 살핀 뒤 목록에 올린 것은 모두 벽새와 묘안석, 여요의 옥호춘병 같은, 여러 해 집안의 체면을 세워 주던 물건들이었다. 막상 창고를 열어 보니 골동품 몇 점은 빈 상자만 남아 있었다. 아랫사람들을 캐물었으나 누구나 모른다고만 했다. 항서전에서 온 사람이 두 손을 내리고 아뢰었다. “감정인 말씀으로는 요즈음 이 댁 하인들이 비녀며 장신구와 그릇을 가져다 맡기는 일이 끊이지 않아, 가게에 처분 못 하는 물건이 잔뜩 쌓였답니다. 실로 큰돈을 내어 물건을 받을 형편이 아니랍니다.” 가정은 도리가 없어 집안에 간직하던 당인과 동기창의 서화 몇 축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성 안의 부잣집에 팔았다. 수레와 말, 탁자와 작은 상 가운데 값나가는 것들도 임지효에게 채시구로 끌어내다 벌여 놓고 팔게 했다. 아침에는 한 값을 붙였다가 한낮이 되자 십분의 일을 깎았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는 끝내 절반 값에 사람들에게 넘겼다. 구경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사는 사람은 적었다. 임지효가 돌아와 아뢰었다. “사는 사람들이 값을 아주 짓눌러 놓고 조금도 더 얹으려 하지 않습니다.” 가정이 얼마나 팔았느냐고 묻자 그가 액수를 아뢰었고, 가정은 붓을 들어 목록에 적었다.
조문하러 오는 벼슬아치 집안은 예전보다 훨씬 적었다. 영국부 문 앞에도 노제상은 차려져 있었지만 길 어귀에는 넓은 땅이 텅 비어 있었고, 전에 다른 집들이 제전 장막을 세우느라 삼나무 장대를 박았던 구멍만 남아 있었다. 문간에서는 어린 하인 둘이 명함을 받고 있었다. 하나가 말했다. “겨우 이 몇 집뿐이야? 동부 용 큰마님 출상 때는 왕부에서 세운 제전 장막만도 네 동이었는데.” 다른 하나가 말했다. “네가 뭘 알아. 요즘 조정에 죄에 걸린 집이 많아, 붙들려 죄를 추궁받는 집만 해도 여럿이야. 죄를 짓지 않은 집들도 문을 걸어 잠그고 바람이 어디로 부나 살피고 있지. 견씨 집안은 벌써 가산을 몰수당하지 않았느냐?” 상운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관 앞에 몸을 던져 울다가 숨이 넘어가 정신을 잃었다. 취루와 비취가 얼른 한쪽으로 부축해 갔지만 깨어나서는 다시 몸을 일으켜 그리로 가려 했다. 대옥은 온몸에 흰옷을 입고 날마다 영전을 지켰다. 지치면 기둥에 기대어 잠시 앉았다. 자견이 권했다. “아가씨, 돌아가 좀 쉬시지요. 여기에는 지킬 사람이 있습니다.” 대옥은 고개만 저었다. 대옥은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영전의 장명등을 바라보며 그저 “외할머님.” 하고 한 번 불렀다.
한창 상을 치르는 중에 문간의 어린 하인이 급히 들어와 아뢰었다. “궁중의 하 나리께서 내관 한 분을 보내셨는데, 마마께서 편찮으시답니다.” 왕부인은 얼른 가정과 함께 앞채 대청에서 맞아들여 물었다. “궁에 들어가 마마께 문안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 내관이 말했다. “안 됩니다.” 다시 병세를 물었으나 내관은 그저 말했다. “안의 일은 저희가 감히 말을 보탤 수 없습니다.” 그러고도 곧 떠나지는 않고 차를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궁중에서는 곳곳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 위아래로 일을 맡은 사람들이 다 어렵습니다.” 집안에 당장 쓸 은이 넉넉하지 않아 사람을 시켜 은 한 봉을 모으고 작은 금괴 두 개를 더해 찻쟁반 아래에 놓아 건넸다. 내관은 소매 안에 거두어 넣고 무게를 한번 가늠해 보고서야 나직이 말했다. “마마께서 따로 댁에 전하라 하신 말씀이 한마디 있습니다.” 가정이 얼른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다. 내관이 말했다. “말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라.” 그러고는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가정이 섬돌 아래까지 배웅하고 몸을 돌리니 뜰 가득 흰 휘장만 바람을 따라 올랐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왕부인은 상중의 발 아래에 서서 아직도 조금 전 은을 모은 내역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희봉는 병중에도 장례의 장부를 여전히 날마다 손수 살폈다. 하루는 가련이 밖에서 돌아와 희봉가 온돌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제사 음식상의 수를 맞추는 것을 보고 앉으며 말했다. “이런 일은 평아와 채명이 있는데 당신이 무엇 하러 또 마음을 쓰오?” 희봉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지켜보지 않으면 내일은 백 상을 백오십 상으로 적어 올릴걸요.” 가련이 차갑게 웃었다. “당신은 언제나 누구보다 밝지.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영문을 모르겠는 일이 있소. 그해 이저가 호 태의의 약을 먹고 아이를 유산한 뒤에, 그 방에서 대체 또 무슨 일들이 있었소?” 장부를 넘기던 희봉의 손이 멎었다. “의원이 지은 약을 저한테 물어 무엇 하세요?” 가련이 다시 말했다. “그해 이저의 방에 있던 선저는 요 이 년 동안 나만 보면 피하더군. 전에는 내 앞에 얼씬거리기를 누구보다 좋아하지 않았소?” 희봉는 장부 한 장을 넘겼다. “제가 어찌 알겠어요. 다 아랫것들이 멋대로 퍼뜨리는 말이지요.”
가련은 잠시 희봉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비로소 일어서며 말했다. “당신은 모른다면서, 아랫것들이 멋대로 퍼뜨리는 말인 줄은 어떻게 아시오?” 그러고는 발을 들추고 나갔다.
방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졌다. 희봉는 그저 앉아 있었다. 붉은 붓을 내려놓고도 다시 들지 않았다. 한 손으로 장부를 누르고 있었는데, 종이 귀퉁이를 움켜쥔 자리에 접힌 자국이 하나 생겼다.
한참 앉아 있다가 비로소 장부를 덮었다. 막 덮고는 다시 펼쳐 조금 전의 그 장으로 넘겼다. 종이 귀퉁이를 눌러 편 뒤 다시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평아는 바깥방에 있다가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들어와 보았다. 희봉는 두 손을 장부 위에 얹고 눈으로 등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아가 말을 하려는데 희봉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 제사 음식상 목록을 채명에게 다시 한번 맞춰 보라고 해라.” 평아가 대답했다. 희봉는 곧 혼자 일어나 온돌침상 가장자리를 짚으며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두 걸음을 걷다가 멈추고 또 말했다. “저 등불은 불어 끄지 말고 켜 두어라.”
보옥 쪽에서는 바깥 서재와 정원에서 부리는 사람들이 모두 줄어든 것을 보고, 곁에서 시중들던 몇 사람을 불러들였다. 이귀와 서약, 소홍 등이 한 줄로 서 있었으나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보옥은 은 몇 봉을 탁자 위에 놓고, 또 자기가 쓰던 낡은 벼루 하나와 부채 두 자루, 부채 장식 몇 개를 꺼내 한데 놓았다. “이제 집안이 예전 같지 않으니 내 곁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집으로 돌아갈 데가 있는 사람은 돌아가고, 갈 데가 없는 사람은 이 은과 물건들을 받아 천천히 일자리를 구하도록 해라.” 이귀가 얼른 말했다. “둘째 도련님 곁에 어찌 사람이 없어도 되겠습니까?” 보옥이 말했다. “명연은 남아 있지 않으냐. 게다가 나는 이제 서재에 앉아 있는 것뿐인데 많은 사람이 무엇에 필요하겠느냐.” 서약을 비롯해 돌아갈 집이 있는 몇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받았다. 소홍은 코를 훌쩍이고 나서 물었다. “앞으로도 들어와 도련님을 뵐 수는 있겠습니까?” 보옥이 말했다. “형편이 닿으면 와서 보면 된다.” 이귀는 맨 마지막으로 은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둘째 도련님께서 어릴 때부터 제가 따라 모셨습니다. 이제 이렇게 말씀하시니 물러가는 수밖에 없군요. 도련님, 부디 모든 일에 몸조심하십시오.” 보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거든 네 어머니께 내 안부를 전해 다오.”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제각기 물러나갔다. 명연은 문간에 서 있다가 사람들이 다 나간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저도 한 몫 받겠습니다.” 보옥이 웃으며 꾸짖었다. “남는 녀석이 어째서 또 받으려 하느냐? 앞으로도 네가 뛰어다녀야 할 데가 몇 군데 있다.” 명연은 대답하면서 탁자 위에 남은 은 봉투들을 거두었다.
한편 가사는 가모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두세 번씩 형부인을 재촉하며, 오직 원앙의 일에 확답이 있느냐고만 물었다. 어느 날 형부인을 불러 말했다. “원앙 그 계집애 말이오. 노마님도 안 계신 틈에 일찍 처리합시다.” 형부인이 비위를 맞추어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한창 상을 치르는 중이지 않습니까.” 가사가 차갑게 웃었다. “장례는 또 언제까지 치른다는 거요?” 형부인은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그저 물러나왔다. 문 밖에는 어린 하인 둘이 아직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가 얼른 다가와 물었다. “마님, 나리께 뭐라고 아뢰면 되겠습니까?” 형부인은 눈살을 한번 찌푸리고 그저 말했다. “나리께 그 아이가 아직도 고집을 세운다고 아뢰어라.” 그날 저녁 가사는 다시 사람을 보내 재촉하면서 사흘 안에는 반드시 확답을 내놓으라고 했다.
빈소의 문으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장명등의 등갓이 잠깐 기울었다. 원앙은 손을 뻗어 바로잡고 다시 무릎을 꿇어 지전을 태웠다. 가사가 원앙을 핍박한 이 일이 그 뒤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바로 이러하니라.
자애로운 구름 떠나가니 뭇 꽃이 싸늘하고,
장수의 촛불 막 스러지니 온 뜰이 어둡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