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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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세계 축구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 제18편 / 총 22편

요하네스버그

닫을 수 있는 하나의 선, 닫을 수 없는 그 둘레

램퍼드의 인정되지 않은 골은 골라인 판독 기술을 불러와 하나의 물리 문제를 닫았다. 그러나 수아레스의 손, 스페인의 아름다움, 남아공의 유산은 사실을 다 알아도 판단이 끝나지 않는 영역에 남았다.

Han Qin (秦汉)·2026
이 글의 목차

1. 44년 뒤의 그 선

2010년 6월 27일, 블룸폰테인. 독일이 잉글랜드를 4 대 1로 꺾고 다음 라운드로 올라갔다. 아직 잉글랜드가 1 대 2로 뒤지고 있을 때, 램퍼드가 페널티 지역 바깥에서 중거리 슛을 날렸다. 공은 크로스바 아랫부분을 때리고 땅에 튄 뒤 다시 솟았다. 텔레비전 중계의 재생 화면에는 똑똑히 잡혔다. 그 순간 공은 전체가 골라인을 넘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라운드의 몇 쌍의 눈은 보지 못했고, 골은 인정되지 않았다. 인정됐다면 그때 스코어는 2 대 2가 되었을 것이다.

44년 전인 1966년에도 잉글랜드였다. 상대도 서독이었고, 그때는 두 나라가 맞붙은 결승전이었다. 장소는 웸블리, 연장전에서 허스트가 슛을 날렸다. 공은 똑같이 크로스바 아랫부분을 때렸고, 똑같이 골라인 부근으로 튀었다. 다만 그때는 공 전체가 선을 넘었는지 수억 명 가운데 누구도 맨눈으로 확언할 수 없었다. 그 공은 골로 인정되었고, 잉글랜드가 지금까지 유일한 월드컵 우승컵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1966년의 그 골은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지 보여 주는 유명한 장면이다. 진실은 인간의 눈이 닿는 한계 바깥으로 사라졌고, 누구도 거기까지 손을 뻗을 수 없었다.

44년 뒤, 똑같이 크로스바 아랫부분을 맞고 골라인으로 튄 공 하나가 잉글랜드를 같은 물음의 반대편에 세웠다. 이번에는 공이 선을 넘은 것이 명백했다. 수억 명이 보았고, 오직 그라운드의 몇 쌍의 눈만 보지 못했다. 1966년 잉글랜드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 덕에 이익을 보았다. 2010년에는 그 피해자가 되었다. 같은 나라가 같은 상대를 만나 같은 종류의 슛을 놓고, 44년을 사이에 둔 채 그 선의 양쪽에 서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역설이 있다. 1966년의 그 골을 두고는 수십 년을 다투었지만 끝내 기계 하나를 끌어내지 못했다. 너무 흐릿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을 만큼 흐릿했고, 공이 선을 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 언제까지고 남을 수 있었다. 정작 골라인 기술의 도입을 밀어붙인 것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만큼 명백했던 2010년의 오심이었다. 구축이 어떤 물음을 닫으려면, 먼저 그 물음이 굳이 닫을 필요도 없을 만큼 명백해져야 했다. 아무리 둔한 사람도 어디가 틀렸는지 알아볼 만큼 명백해야 했다. 닿을 수 없었던 1966년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했다. 닿을 수 있었던 2010년이 비로소 수정을 이끌어 냈다. 진실이 모호할수록 그것을 대신해 결정할 사람은 없었다. 눈부시게 분명한 진실이라야 기계에 맡겨질 기회가 생겼다.

그 선의 잘못된 쪽에는 현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램퍼드는 자신의 공이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보았고, 주심이 손짓으로 경기를 계속하라고 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었다. 관중석과 텔레비전 앞의 수억 명이 거의 같은 순간에 공 전체가 선을 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그것을 판정할 권한이 있는 유일한 몇 쌍의 눈이 하필 보지 못한 눈들이었다. 이것은 아주 특이한 무력감이었다. 진실을 아무도 보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담당 심판을 뺀 모든 사람이 진실을 보았는데, 유독 판정을 좌우하는 눈만 보지 못해서였다. 그 무력감이 어느 지점까지 쌓이고 나서야 훗날의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1966년에서 2010년 사이에 달라진 것은 볼 수 있는 수단이었다. 물음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 전체가 선을 넘었는가. 1966년에도 여기에는 확정된 답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 밀리미터의 틈에서 답을 읽어 낼 눈도 장비도 없었다. 44년 동안 진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더해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진실에 닿는 수단이 조금씩 자라났을 뿐이다. 하필 이 물음이 결국 기술로 닫힐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한 물리적 답이 기다리고 있었고, 부족한 것은 그것을 읽어 내는 능력뿐이었다. 그러나 축구장의 다른 논쟁들에 부족한 것은 애초에 능력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기다리고 있는 답 자체가 없다.

경기 뒤 그 부심은 슛의 속도에 눈이 속았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며칠 뒤 블라터는 남아공 월드컵의 주요 오심들에 대해 공개 사과하면서, 골라인 기술이라는 서류철을 다시 열지 않는 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1966년 이래 미결로 남아 있던 그 물음을, 44년 만에 마침내 기계가 닫게 된 것이다.

2. 닫을 수 있는 것은 이 물음 하나뿐

하지만 그 기계가 닫을 수 있는 것은 이 물음 하나뿐이었다.

골라인 기술을 둘러싼 제도적 전환은 2012년에 이루어졌다. 국제축구평의회는 2012년 7월 5일 골라인 기술을 《축구 경기 규칙》에 넣고 인증 절차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국제축구연맹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심판의 판정을 골라인 기술로 지원하는 첫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스템은 먼저 클럽 월드컵에서 공식 대회에 데뷔했다. 월드컵에서 실제 판정에 처음 쓰인 것은 2014년 프랑스와 온두라스의 경기로, 벤제마가 만들어 낸 골 하나가 시스템의 확인 신호를 불러왔다. 1966년 웸블리에서 손이 닿지 않았던 물음이 손목시계의 신호 하나로 닫히기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그런데 이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좁다. 국제축구연맹이 내린 골라인 기술의 정의는 한 문장이다. 공 전체가 골라인을 완전히 넘었는지만 즉시 판별하고, 그 결과를 1초 안에 주심의 손목시계로 보낸다. 오프사이드는 다루지 않는다. 반칙도, 핸드볼도, 퇴장과 경고도 다루지 않는다. 범위가 더 넓은 영상 재검토는 2014년 이후 국제축구평의회가 비디오 판독, 곧 VAR을 승인하고 나서야 월드컵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2010년 잉글랜드와 독일의 경기가 촉발한 이번 제도 수정이 우선 닫은 것은 공이 선을 넘었는가라는 물음뿐이었다. 모든 판정 논란을 닫은 것이 아니었다.

그 경계를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자. 골라인 기술이 내놓는 답은 축구장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종류다.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예, 또는 아니요. 공은 선을 넘었거나 넘지 않았다. 제3의 가능성도 없고, 입장의 문제도 없으며, 해석이 끼어들 공간도 없다. 1초 안에 신호는 주심의 손목시계에 도착한다. 이것은 구축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완결이다. 빠르고 정확하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토록 깔끔하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물음도 딱 한 종류다. 읽어 주기를 기다리는 물리적 사실이 이미 놓여 있어야 한다. 공과 선의 관계는 그런 물음이다. 정작 축구장에서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것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공정하게 한마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램퍼드의 그 슛 하나가 골라인 기술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를 흔히 접하지만, 그것은 인과의 사슬을 지나치게 곧게 펴 놓은 설명이다. 공식 연혁에 더 가까운 설명은 이렇다. 2010년의 이 오심은 같은 대회의 다른 주요 오심들과 함께, 블라터와 국제축구연맹이 기술 문제를 다시 꺼내게 된 직접적인 배경을 이루었다. 그러나 제도가 실제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험과 인증, 경기 규칙 개정이라는 절차 전체를 거쳐야 했다. 어느 한 경기가 단독으로 밀어붙여 성사시킨 일이 아니었다.

더 긴 시간 속에 이 기계를 놓고 보면, 기계가 잘라 낸 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영원히 잘라 낼 수 없던 뒷말이다. 사람의 눈으로 공이 선을 넘었는지 판단하면,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가장 빠른 그 한순간에는 의문이 남는다.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틈이 남는다. 이 기계는 그 틈을 완전히 용접해 막았다. 공과 선의 관계에서만큼은 의문을 남기지 않고, 논란을 남기지 않으며, 훗날 판정을 뒤집을 꼬투리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은 실제 진보다. 부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렇게 용접해 막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이 틈 하나뿐이다.

어쨌든 이것은 구축이 수십 년 동안 미결로 남아 있던 물음 하나를 처음으로 말끔히 닫은 사건이었다. 공 하나와 선 하나를 주면, 1초 만에 넘었다거나 넘지 않았다고 알려 준다. 다툴 여지도 뒷말도 남기지 않는다. 구축이 꿈꾸어 마지않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즉각적이고 이분법적이며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완결. 다만 그렇게 깔끔하게 닫을 수 있었던 것은 대회 전체에서 가장 좁고, 가장 물리적이며, 가장 철저히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물음이었다. 이토록 환하게 밝혀진 완결은 탐조등과도 같았다. 비추는 곳이 밝아질수록, 그 주위를 에워싼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은 더 짙어졌다.

3. 사실은 모두 드러나 있던 그 순간

같은 월드컵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동작은, 그 탐조등이 비출 수 없는 곳을 모든 사람 앞에 드러냈다.

2010년 7월 2일, 요하네스버그의 사커 시티 경기장. 우루과이와 가나의 8강전이었다. 경기 120분, 연장전이 끝나기 직전 수아레스는 먼저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슛 하나를 막았다. 곧이어 골라인 위에서 아디이아의 헤딩슛을 손으로 쳐 냈다. 수아레스는 곧바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고, 가나에는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키커로 나선 기안의 공은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왔다. 경기는 1 대 1인 채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우루과이가 결국 4 대 2로 이겨 4강에 진출했다.

그가 한 두 동작은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규칙에 맞게 슛을 막았다. 골키퍼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공이 그를 지나 골망으로 들어가려 하자, 손을 뻗어 골라인에서 억지로 붙들어 두었다. 당황해서 본능적으로 손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첫 동작과 다음 동작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몸을 쓴 첫 동작은 규칙에 맞고, 손을 쓴 다음 동작은 반칙이었다. 그는 반드시 받을 레드카드 한 장을 감수하는 대신, 거의 반드시 들어갈 골 하나를 막았다. 그 동작 전체와 그에 따를 대가까지, 그 1~2초 사이에 모두 계산한 것이다.

이어진 사실들에는 조금의 모호함도 없다. 핸드볼, 레드카드, 페널티킥, 실축, 진출. 순서는 명백하며 장면은 한 프레임씩 모두 남아 있다. 퇴장당한 수아레스는 그라운드에 있지 않았다. 경기장 옆 통로 입구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여러 언론사의 사진과 보도가 그 순간을 기록했다. 기안이 페널티킥을 놓치자 그는 통로 입구에서 격렬하게 환호했다. 사건의 모든 고리는 환히 드러나 있었고,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실패한 그 페널티킥이 맞힌 것은 크로스바였다. 이번 대회에서 크로스바는 몇 번이고 두드려 울리는 물건 같았다. 램퍼드의 공은 그 아랫부분을 맞고 안으로 튀어 들어갔지만 골이 아니었다. 44년 전 허스트의 공은 그 아랫부분을 맞고 떨어졌는데 골이었다. 이번에는 기안의 페널티킥이 다시 크로스바를 맞고 밖으로 튀었다. 똑같이 차가운 가로대 하나가 한 번은 뜻을 이루게 하고, 한 번은 억울하게 만들고, 한 번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세 세대의 운명이 갈리는 길목을 가로질렀다. 크로스바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누구의 노력도 인정하지 않고 누구의 역사도 헤아리지 않는다. 부딪친 공이 안으로 튈지 밖으로 튈지는 밀리미터 차이로 갈린다. 그러나 그 몇 밀리미터의 이쪽과 저쪽 사이는 하늘과 땅만큼 멀다.

바로 그래서 이 동작과 골라인의 물음은 양극에 놓인다. 골라인의 물음에는 밝혀내기를 기다리는 물리적 답이 있다. 공은 넘었거나 넘지 않았다. 수아레스의 동작은 이미 모든 사실이 밝혀져 있었다. 해명을 기다리는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 고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사실이 명백한 사건이, 오늘까지도 끝나지 않은 논쟁을 불러냈다.

4.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다투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이름이다. 그 동작을 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먼저 그 순간의 무게를 분명히 해야 한다. 당시 가나는 아프리카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국제축구연맹이 훗날 돌아보며 직접 밝혔듯, 그 가나 대표팀의 목표는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최초의 아프리카 팀이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경기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 무대에서 치러졌다. 아프리카 팀이 아프리카 땅에서 준결승까지 페널티킥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수아레스의 손이 막은 것은 공 하나가 아니었다. 이제 막 쓰이려던 역사 전체였다.

그래서 두 개의 이름이 즉시 맞섰다. 가나 감독은 일주일 뒤 수아레스를 수준 낮은 사기꾼이라고 공개적으로 불렀다. 그것은 신의 손이 아니라 악마의 손이라고 했다. 반면 우루과이 감독은 경기 직후 되물었다. 이미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으며 앞으로 출전 정지까지 받을 사람에게도 부정행위라는 말을 쓸 수 있느냐고. 수아레스 자신은 경기 직후 직접 진행된 첫 인터뷰들에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며, 퇴장당할 가치가 있었다고도 했다. 이후에는 신의 손이 이제 자기 것이라거나, 자신의 손이 진짜 신의 손이며 이번 대회 최고의 선방을 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퍼졌다. 이런 말들이 후대의 순전한 창작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일부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일부는 다음 날 언론의 추가 취재에서 나온 말이다. 여러 판본을 한 문장으로 섞어서는 안 된다. 양쪽의 서사, 곧 우루과이의 온 나라를 뒤덮은 축하와 가나 및 아프리카의 많은 여론이 보인 분노는 사건 당일부터 나란히 서 있었다. 누군가 나중에 새로 포장해 내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 소란 한가운데에는 구체적인 사람들이 서 있다. 페널티 지점으로 걸어 나간 가나의 공격수 기안이 마주한 것은 골키퍼 한 명만이 아니었다. 숨을 멈춘 대륙 전체였다. 공이 크로스바를 때리고 다시 튀어나온 순간, 그들이 잃은 것은 페널티킥 하나가 아니었다. 한 세대가 이미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그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서사 속 기호가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희망’이라는 말에 달린 각주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 잔디 위에 서서 역사를 다시 쓰기 직전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1초 만에 빠져나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들이었다. 수아레스가 악당인지 도박사인지를 다툴 때 논쟁의 대상은 그다. 그러나 그날 밤 정말 무언가를 빼앗긴 사람들은 골문 반대편에 서 있던 이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쉽지 않은 균형을 지켜야 한다. 두 문장을 동시에 분명하게 말하되, 서로 다른 둘을 하나로 뭉개지 않아야 한다. 첫 문장은 이렇다. 규칙은 그 동작에 대해 이미 처분을 내렸다. 핸드볼은 반칙이며, 페널티킥과 레드카드, 출전 정지가 따른다. 규칙에 적힌 대가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서 전액 치러졌다. 이 층위에서 장부는 깨끗하다. 구축은 자신의 틀 안에서 그 동작을 닫았다. 그러나 바로 대가를 그 자리에서 치렀다는 점 때문에, 이것은 은밀히 저지르는 부정행위와 다르다. 은밀한 부정행위의 핵심은 바로 그 대가를 피하려는 데 있다. 수아레스는 피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레드카드 한 장을 내주고 거의 확실한 골을 막는 거래가 우루과이에 이익이라고 계산했을 뿐이다. 이처럼 규칙 안에서 대가를 모두 치른 반칙을 곧장 부정행위라고 부르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일을 하나로 뭉개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완결이 숨어 있다. 하나는 장부상의 완결이다. 규칙이 그 동작의 가격을 정했고, 수아레스는 그 자리에서 전액 지불했다. 조문에 따르면 셈은 맞았고 계산은 끝났다. 다른 하나는 의미의 완결이다. 이 사람이 한 일은 대체 무엇이며, 어떤 평가를 받아 마땅한가. 구축의 손에 있는 능력은 앞의 완결뿐이다. 구축은 동작에 가격을 매기고, 그 값을 받아 내고, 자기 장부에서 해당 줄을 지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 사람을 역사의 어느 칸에 써넣어야 하는지는 알려 줄 수 없다. 대가를 다 치르는 것과 오명을 씻는 것은 언제나 별개다. 구축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앞의 일뿐이다.

우루과이와 가나가 그 오랜 세월 다투면서도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느 한쪽이 비이성적이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서로 다른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는 그가 대가를 치렀느냐고 묻는다. 답은 그렇다. 레드카드도 출전 정지도 빠지지 않았다. 가나는 그가 우리의 역사를 빼앗았느냐고 묻는다. 답은 그렇다. 그 최초의 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두 질문과 두 답은 각각 옳으면서도 영원히 맞물리지 않는다. 재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의미라는 것의 성질이다. 의미에는 객관적으로 내려앉을 지점이 없다.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그쪽으로 기울어지며, 모든 사람을 같은 자리에 세워 줄 기계는 없다.

많은 사람이 정말 삼키기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그 손보다 뒤이은 환호였을 것이다. 핸드볼은 규칙이 다룰 수 있는 일이다. 퇴장시키고 페널티킥을 주면 된다. 규칙은 그것을 계산에 넣는다. 그러나 기안이 페널티킥을 놓치자 수아레스가 통로 입구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기뻐한 그 순간은 어떤 규칙의 관할에도 속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역사적 꿈이 무너지는 것을 숨김없이 기뻐한 순간이다. 규칙은 핸드볼에 값을 매길 수 있지만, 그 광희에는 값을 매기지 못한다. 애초에 규칙이 처리하려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를 악당이라고 부를 때, 겨누는 것은 그 손이라기보다 환호 속에서 비쳐 나온 무언가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구축의 손이 닿지 않는다. 반칙 하나는 처벌할 수 있어도, 이긴 뒤 한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처벌할 수 없다.

둘째 문장은 이렇다. 규칙이 닫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을 처벌해야 하는가뿐이다. 이 사람을 끝내 어떤 존재로 기억해야 하는가는 닫을 수 없다. 조문은 페널티킥에 레드카드와 출전 정지를 더하는 계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 사람이 대륙 하나의 역사적 기회를 빼앗은 악당인지, 기꺼이 대가를 치른 합리적인 도박사인지는 계산할 수 없다. 두 이름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사실을 밝혀서 정할 수 없다. 사실은 이미 모두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해야 할 것은 의미이며, 의미에 대해서는 손목시계 하나가 1초 만에 답을 보내 주지 않는다. 사실은 전부 똑똑히 보인다. 그래도 그 동작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는 정해지지 않는다.

5. 가장 추한 결승전, 가장 아름다운 축구

그 대회에서 끝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팀은 스페인이었다. 그런데 훗날 아름다운 축구의 화신으로 거듭 불리게 될 이 챔피언이 정작 남긴 기록에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배어 있다.

스페인이 2010년에 넣은 골은 모두 여덟 개뿐이었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적은 골을 넣은 우승 팀이다. 로이터는 결승전 직후 그들이 일곱 경기에서 여덟 골만을 넣어, 1938년 이탈리아와 1966년 잉글랜드, 1994년 브라질이 공동으로 보유하던 종전의 최저 기록인 열한 골을 깼다고 명시했다. 토너먼트에서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1 대 0, 파라과이를 1 대 0, 독일을 1 대 0, 네덜란드를 1 대 0으로 차례로 꺾었다. 결승전의 결승골은 116분에 이니에스타가 넣었다. 가장 보기 좋은 축구를 하던 팀은 네 차례의 1 대 0과 연장전 막판의 골 하나로 힘겹게 우승을 손에 넣었다.

그들에게 왕관을 씌운 결승전 자체는 반칙과 카드가 쏟아진 추한 경기였다. 전반전에 네덜란드 미드필더 더용은 발을 높이 들어 알론소의 가슴을 걷어찼다. 당시 주심 웹은 옐로카드만 꺼냈다. 웹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장면을 다시 보니 퇴장을 줬어야 할 반칙이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당시에는 시야가 가려 접촉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결승전에는 옐로카드 열네 장과 경고 누적에 따른 퇴장 한 차례가 나왔다. 월드컵 결승전 최다 경고 기록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축구는 가장 아름답지 않은 결승전에서 왕관을 썼다.

여덟 골로 우승했다는 기록은 가만히 생각할수록 천천히 음미해야 할 문장이 된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스페인은 상대가 따라오지 못하게 공을 돌리고,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패스를 이어 가던 팀이다. 보는 즐거움 그 자체인 팀이다. 그런데 기록을 펴 보면 역대 어느 우승 팀보다 적은 골을 넣었고, 토너먼트 네 경기 모두 한 골 차로 이겼으며, 결승전은 연장전까지 가야 했다. 눈이 즐거운 것과 골이 쏟아지는 것은 다른 일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은 계량되지 않으며, 반드시 더 많은 골로 바뀌지도 않는다. 그것이 가져온 것은 통제였다. 상대가 경기 내내 공에 발도 대지 못하게 하는 질식감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이 팀은 정작 가장 짜릿하지 않은 방식으로, 한 골씩 한 골씩 따내며 꾸역꾸역 우승을 손에 넣었다.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가장 추한 결승전에서 왕관을 쓴다는 대조 역시 이 순환에서 낯익은 형태다. 어떤 경기 방식이 도전자일 때는 아름다움만 이야기해도 된다. 그러나 지켜야 할 정통이 되고 나면 경기까지 계속 아름다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2010년의 그 밤, 한쪽에는 아름다운 축구를 물려받아 왕관을 씌우려는 스페인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아름다운 축구를 만들어 놓고도 반칙으로 그 대관식을 막으려는 네덜란드가 있었다. 아름다운 축구가 왕좌에 오른 바로 그 경기는, 양쪽이 함께 그 이상을 가장 아름답지 않게 만든 경기였다. 이상이 왕좌에 오르는 방식은 그 이상 자체에 못 미칠 때가 많다.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하나 더 있다. 거친 발길질과 반칙으로 스페인의 패스와 점유 체계를 허물려고 나선 팀이 하필 네덜란드였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바로 40년 전 아름다운 축구를 처음으로 펼쳐 보인 팀이었다. 아름다운 축구의 고향이 이 한 경기를 이기려고 스스로 그 축구의 새 세대를 걷어찼다. 그러고도 끝내 이기지 못했다.

레드카드가 나오지 않은 더용의 발길질은, 손이 닿지 않는다는 익숙한 사태를 다시 보여 주었다. 누구나 그 발길질이 얼마나 사나웠는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야가 가려졌던 눈이 그것을 퇴장으로 판정할 수 있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한 번 휘슬이 울리고 나면, 당시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내린 결정을 다시 내릴 기회는 없었다. 난폭한 접촉을 보는 일과 현장에서 마땅한 판정을 내리는 일 사이에는, 또 누구도 메울 수 없는 틈이 벌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축구에 왕관을 씌운 그 결승전은 판정에서도 바로 그런 틈을 남겼다.

그날 밤 네덜란드의 선택은 이 순환의 또 다른 잔혹한 모습을 끌어낸다. 네덜란드를 네덜란드답게 만든 것은 본래 유동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더 잘 계승한 상대를 막으려고, 네덜란드는 기꺼이 그것을 눌러 두었다. 과거의 자신이 가장 경멸하던 경기를 하기로 했다. 구축 하나가 이기기 위해, 애초에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 준 근본을 제 손으로 배신한 셈이다. 판돈으로 건 것은 자신의 내력이었다. 그런데 그 내기로 승리조차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 내력이었다.

6. 1974년의 손주들

스페인의 이 축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면, 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계보가 있다.

첫째, 크루이프는 당시 감독으로서 과르디올라를 직접 바르셀로나의 드림팀으로 발탁해 중원의 중심축을 맡겼다. 둘째, 2010년 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의 선발 열한 명 가운데 일곱 명은 바르셀로나 선수였다. 푸욜, 피케, 부스케츠, 사비, 이니에스타, 페드로, 비야였다. 파브레가스도 교체로 나왔다. 셋째, 스페인의 기술이사는 나중에 이 세계 챔피언의 스타일이 유소년 육성에서 나온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를 연결하면 확실하게 쓸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크루이프가 빚어 낸 바르셀로나의 축구 교육과 과르디올라의 체계가 2010년 스페인에 핵심 선수군과 경기 언어 전체를 제공했다.

여기까지는 하나씩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10년의 스페인이 1974년 네덜란드의 혈맥을 이어 마침내 역사적 계승을 완성했다고 말하면, 그것은 이미 사료상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독법이 된다. 그 한 걸음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사이에 경계선이 있다.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와 어떤 축구 언어를 쓰는지다. 그것을 어느 혈맥이 40년을 건너 대관식을 마쳤다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그 위에 해석 한 겹을 덧붙이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의 층위는 스타일이 유소년 육성에서 나왔다는 이에로의 말에서 끝난다. 그 위의 층위는 구축이 스스로 걸어 들어간 곳이다. 독법임을 인정해야지, 기록물인 척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해석의 영역에 들어선다. 그리고 바로 그 한 걸음에서 구축의 힘이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40년 전인 1974년,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는 토털 풋볼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그라운드의 고정된 포지션을 모두 없애고, 누구나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게 하려 했다. 경직된 대형에 대한 아름다운 부정이었다. 그러나 그 네덜란드는 결승전에서 패했고, 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자가 되었다. 40년이 지나 그 부정은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를 거쳐 과르디올라의 손으로 전해졌고, 다시 스페인의 이 선수들을 통해 처음으로 실제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때의 아름다운 패자, 그 손주들이 승자가 되었고 새로운 정통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부정이 정통이 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다음번에 부정될 대상이 된다. 1974년의 유동적이고 경직에 저항하던 기세는, 2010년에 왕좌에 오를 무렵 이름과 교본을 갖추고 세대를 거듭해 복제할 수 있는 정형으로 굳어 있었다. 완벽하게 이길수록 그것은 깎아내기의 끌에서 구축의 덩어리로 바뀌었다. 후대가 들추어 움직여야 할 새로운 단단함이 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왕좌에 앉은 순간은, 그것이 낡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더 미세한 역설도 있다. 1974년의 그 축구가 애초에 부정하려던 것은 바로 그라운드의 변하지 않는 고정 포지션이었다. 원한 것은 유동성이었고, 누구나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2010년에 이르러 그 유동성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패스와 점유의 축구로 다듬어지자, 그것 또한 새로운 규칙 일체를 만들어 냈다. 누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공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몇 번의 터치 안에 내보내야 하는지에 모두 법도가 생겼다. 한때 고정을 깨뜨리려던 것이 오랜 시간 끝에 스스로 고정되었다. 변질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유동성이 신성한 것으로 떠받들어지고, 세대를 거쳐 정답으로 가르쳐지자, 애초에 어디든 가고 싶다던 기세도 조용히 법도에 편입되었다.

또 하나는 발명자 자신이 끝내 그 왕관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1974년 아름다운 축구를 처음 펼쳐 보인 네덜란드는 오늘까지도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그것을 실제로 왕좌에 올린 팀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한 세대를 건너 다른 나라에 뿌리내리고 자라난 팀이었다. 발명자는 아름다운 패자에 머물렀고, 열매를 거둔 것은 계승자였다. 이 역시 이 순환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깎아 내어 만드는 사람과 끝내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다른 경우가 많다. 하나의 부정이 착상되는 순간과 그것이 정통으로 굳어지는 순간 사이에는, 흔히 한 세대 전체와 왕조 교체에 버금가는 주인 바뀜이 놓여 있다.

7. 하나의 결론으로 셈할 수 없는 장부

시야를 넓혀 남아공 전체를 보자. 이 월드컵이 남긴 가장 큰 장부는, 아무리 셈해도 하나의 결론이 나오지 않는 장부다.

남아공은 2004년 개최권을 따내 남자 월드컵을 여는 첫 아프리카 국가가 되었다. 당시 유치전의 배경에는 국제축구연맹이 잠시 시행한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이 있었다. 그 대회의 유치 신청 자격을 아프리카에만 주었던 것이다. 대회는 2010년 6월 11일부터 7월 11일까지 열렸다. 서른두 팀이 아홉 개최 도시의 열 개 경기장에서 예순네 경기를 치렀다. 공식 평가에 따르면 총관중은 약 310만 명으로, 당시 역대 세 번째로 많았다. 그런데 개최국 남아공은 조별리그에서 멕시코와 1 대 1로 비기고, 우루과이에 0 대 3으로 진 뒤, 프랑스에 2 대 1로 이겼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탈락했다. 월드컵 역사상 조별리그에서 멈춘 첫 개최국이었다.

개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었다. 대회 전체를 어깨에 짊어진 나라의 정작 자국 팀은 조별리그를 넘지 못했다. 이것은 개최국이 제 안방에서조차 축구를 제대로 못 한다는, 눈에 따가운 비유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도 쓸 수 있다. 월드컵을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아프리카 국가가 서른두 팀, 예순네 경기의 대회를 안정적으로 치러 냈고, 대표팀의 성적은 오히려 이 더 큰 성취 옆의 부차적인 각주가 되었다고. 같은 일을 어느 방향에서 쓰든 이야기는 성립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대회가 거듭 내놓는 오래된 문제다. 전체를 한마디로 평가하려 들 때마다, 그 평가는 언제나 먼저 어느 쪽에 섰는지에 달려 있다.

정말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경기장과 대회 유산의 장부다. 가장 믿을 만한 결론은 모든 경기장이 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것도, 모두 성공했다는 것도 아니다. 학술 연구와 정부의 사후 평가는 그 중간, 서로 갈라진 상태에 더 가깝다. 한편으로 후속 경제학 연구들은 대체로 대회 뒤 경기장 이용률이 크게 떨어지고 일부 시설이 재정 부담이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다른 한편으로 부담이 되었다고 해서 버려진 것은 아니다. 케이프타운의 그 경기장은 2024~2025년 기록에서 한 해 동안 각종 대형 행사 마흔다섯 건을 열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음봄벨라 경기장은 지금도 축구와 럭비 경기를 치르며 오랫동안 한 팀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더반의 그 경기장에서는 2024년에도 체계적인 유지 보수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회 뒤의 이용 양상이 크게 갈렸다는 것뿐이다. 주요 도시에서 안정적인 임차인을 확보한 경기장은 살아남기가 더 쉬웠다. 꾸준히 많은 관중을 불러올 상설 경기가 없는 곳은 재정 압박에 빠지기 더 쉬웠다.

이 장부에서 하나의 결론을 낼 수 없는 것은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료는 많다. 다만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그것들을 같은 단위로 환산할 공통의 자가 없다. 기반 시설을 자로 삼으면 이 대회는 훌륭하게 치러졌다. 경기장 장부를 자로 삼으면 일부는 여러 해에 걸친 적자의 구멍이 되었다. 국가 이미지를 자로 삼으면 남아공은 그 여름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 앞에 섰다. 같은 대회라도 자를 바꾸면 결론이 달라진다. 어느 자도 다른 자보다 전체를 대표할 자격이 더 크지 않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총점을 매기려면, 먼저 그 여러 자를 하나로 합칠 수 있는 척해야 한다. 그러나 합쳐지지 않는다.

약속한 유산을 얼마나 실현했는지에 대해서도 공식 평가와 독립적 평가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공식적으로 강조하는 유산은 도로와 공항, 치안, 공중보건, 그리고 국가적 결속의 서사다. 세계보건기구의 공중보건 유산 연구 역시 남아공이 대형 대회의 비상 대응과 보건 협력에서 제도적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이 이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반면 후속 독립 연구는 대회 전 관광객 수와 경제적 수익의 전망치가 뚜렷하게 과도했음을 밝혔다. 실제 외국인 방문객은 약 30만 9천 명으로, 앞서 한 컨설팅 기관이 제시한 48만 3천 명과 나중에 수정한 37만 3천 명보다 크게 적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역사적 사실의 층위에서 가장 확실하게 쓸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다. 기반 시설과 국가 이미지에는 눈에 보이는 유산이 있다. 그러나 경기장 재정과 직접적인 경제 수익에는 오래도록 뚜렷한 의문이 남아 있다. 남아공 정부의 후속 문서에는 공공 투자 총액이 약 330억 랜드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투자로 무엇을 얻었는지, 오늘까지도 모든 쪽이 고개를 끄덕일 단 하나의 답은 없다.

더구나 이 장부는 아직 덮을 때가 한참 남았다. 2010년 이후 애물단지로 불렸던 경기장이 몇 년 뒤에는 행사로 가득 찰 수 있다. 당시 거창하게 선전했던 경제 전망이 몇 년 뒤 실제 수치에 의해 하나하나 반박되기도 한다. 장부의 숫자는 세월과 함께 계속 바뀐다. 오늘 적어 놓은 손익을 몇 년 뒤 다시 펼쳐 보면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니 자를 하나만 골라 재더라도 확정된 수치는 얻을 수 없다. 애초에 이 장부에는 결산하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늘 열려 있고, 뒤이어 오는 세월에 의해 계속 고쳐 쓰인다. 영원히 고쳐 쓰는 장부는 영원히 덮을 수 없다.

그 대회에는 또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시끄러웠고, 하나는 기이했다. 시끄러운 것은 부부젤라였다. 모든 경기 내내 벌 떼처럼 웅웅거리던 소리였다. 블라터는 그것이 남아공 축구 문화의 일부라며 금지를 명확히 거부했다. 그러나 중계상의 불만과 듣기 불편하다는 논쟁, 이후 유럽 대회에서의 금지도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열정의 소리인가, 성가신 소음인가. 이 역시 하나의 결론은 없다. 기이한 것은 파울이라는 문어였다. 독일의 한 수족관에서 두 나라 국기가 붙은 상자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승부를 예측했는데, 독일의 일곱 경기와 스페인 대 네덜란드 결승전까지 여덟 경기를 모두 맞혔다. 수백만 명이 정말로 문어 한 마리를 지켜보며, 그 입에서 미래에 관한 확정된 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여름 단 한 번의 깔끔한 완벽 적중이 하필 문어 한 마리의 순전한 운에서 나왔다. 문어는 아무것도 예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백만 명은 바로 그것을 필요로 했다. 닫을 수 없는 물음으로 가득한 월드컵에서, 확실한 답을 줄 존재를 향한 갈증은 문어 한 마리에 기대를 걸 만큼 컸다. 그 문어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정말 무엇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장 원하면서도 가장 해내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낸 척했기 때문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결과를 미리 닫는 일 말이다. 여덟 경기를 모두 맞힌 것은 완결의 패러디 같았다. 오직 운으로 생긴 우연이 신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이 그것을 진지하게 믿을수록 오히려 더 뚜렷해지는 사실이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 닫고 싶어 하는 물음은 문어가 단 하나도 닫아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8. 맺음말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구축은 처음으로 물음 하나를 정말 말끔하게 닫았다. 그리고 바로 그 깔끔한 완결이, 닫을 수 없는 주위의 둘레 전체를 환히 비추었다. 전에는 얼버무리고 지나갈 수 있었던 닫히지 않음마저 이제는 얼버무릴 수 없었다. 모두 눈에 보이는 닫히지 않음이 되었다.

골라인 기술이 닫은 것은 공이 선을 넘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가장 좁고, 가장 물리적이며,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물음이다.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물리적 답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계가 그어지자, 경계 바깥의 모든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아레스의 동작은 사실이 전부 밝혀졌지만, 부정행위라고 불러야 할지 대가를 전액 치른 합리적인 반칙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결정할 수 없다. 결정해야 할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의미이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유산 장부에서는 도로와 공항도 실재하고 재정 부담도 실재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모두가 인정하는 하나의 답으로 계산할 수 없다. 본래부터 갈래가 나뉘고 여러 방향을 향하기 때문이다. 공이 선을 넘었는지를 1초 만에 알려 주는 기계도 이런 것들은 하나도 닫지 못한다.

그리고 이 둘레의 가장 바깥에는, 사실에조차 손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서 있다. 북한 대표팀은 그 대회에서 세 경기를 모두 졌다. 먼저 브라질에 1 대 2로 패했고, 지윤남이 그들의 대회 유일한 골을 넣었다. 이어 포르투갈에 0 대 7로 졌다. 귀국 뒤 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에 관해서는 2010년 7월 일부 경로를 통해 보도가 나왔다. 선수단이 평양에서 공개 비판을 받았고 감독이 노동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들로 인해 국제축구연맹은 8월 북한 축구협회에 정식 서한을 보내 확인을 요청했다. 이후 국제축구연맹은 자신들이 확보한 정보에 근거해 사건을 종결했다고 밝혔으며 더 조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심각한 소문들은 오늘까지도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선수단 전체가 노동에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확정된 사실로 쓰는 사람은 누구든 입증 가능한 경계를 넘어선다. 가장 조사할 의지가 있는 기계인 국제축구연맹조차 편지 한 통을 보내 묻고 답을 받은 뒤 서류철을 덮었다. 그 너머에는 닿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 선수들은 무엇보다 실제 사람들이다. 세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겪었는지는 이 대회에서 남이 그들을 대신해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될 대목이다.

이것이 이 대회의 가장 바깥 칸이다. 바깥으로 너무 멀리 나가 있어, 확인할 수 있는 사실 한 겹에도 닿지 못한다. 골라인의 물음에서 어려운 것은 물리적 답을 읽어 내는 일이었다. 수아레스의 동작에서는 사실이 명백한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어려웠다. 남아공의 장부에서는 여러 자를 같은 단위로 환산할 수 없다는 점이 어려웠다. 그러나 북한 선수들에게 이르면, 무엇이 일어났는가라는 가장 기초적인 층위조차 국경 하나와 빛이 통하지 않는 체제 한 겹이 빈틈없이 가로막는다. 구축 안에서 가장 조사할 의지가 있는 기계는 벽 아래까지 편지를 보냈다. 벽 너머에서 답 한마디를 건네받자 서류철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조사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닿을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그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실제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이 둘레를 펼쳐 놓으면 닫을 수 있음에서 닫을 수 없음으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이 된다. 가장 안쪽에는 공이 선을 넘었는가가 있다. 물리적 답이 있는 물음이며, 기계는 1초 만에 닫는다. 한 겹 밖에는 수아레스의 동작이 있다. 사실은 전부 밝혀졌지만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에 관한 물리적 답은 없다. 닫히지 않는다. 더 바깥에는 남아공의 장부가 있다. 자료는 충분하지만 자가 하나가 아니다. 닫히지 않는다. 가장 바깥에는 북한 선수들이 있다. 사실 자체부터 벽 너머에 가려져 있으니 더더욱 닫히지 않는다. 바깥으로 갈수록 부족한 것은 더 좋은 기계가 아니다. 그곳에는 애초에 읽어 내기만 하면 되는 답이 없다. 골라인 기술이 밝힌 것은 이 스펙트럼의 가장 안쪽 칸뿐이다.

구축은 생각할 것이다. 한 칸씩 바깥으로 밀고 나가 스펙트럼의 더 많은 칸을 밝히면 언젠가는 원 전체를 비출 수 있으리라고. 골라인 기술 뒤에는 실제로 비디오 판독이 등장해 빛기둥을 한 걸음 더 바깥으로 옮겼다. 오프사이드와 반칙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칸을 더 비출 때마다 새로 생긴 가장자리에 또 새로운 논쟁의 고리가 생긴다. 보았으면 인정되는가.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 닿을 수 없는 다음 물음이 언제나 기다린다. 빛기둥은 움직일 수 있고 굵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제나 하나의 빛기둥이다. 그것이 밝히는 모든 칸은 주위의 더 커다란 어둠을 자신의 경계로 삼는다.

보이는 것은 점점 많아지고, 닫을 수 있는 것은 점점 더 정확하게 닫힌다. 공 하나가 선을 넘었는지, 44년 뒤 기계는 1초 만에 우리 대신 그 물음을 닫았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점점 더 정확하게 닫히는 선이, 그 주위에서 닫히지 않는 모든 것을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비추었다. 동작 하나의 이름, 사업 하나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몇 사람의 행방. 탐조등의 빛이 밝을수록 그 둘레의 어둠은 더 짙어진다. 그런데 사람의 눈은 늘 가장 밝은 빛줄기에 먼저 끌려가, 밝혀진 이곳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빛이 주위의 비추지 못하는 어둠 전체에 제 손으로 경계를 그어 주었다는 사실은 잊는다. 구축은 물음 하나를 더 닫으면 빈틈없는 완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를 닫을 때마다 그 완결의 경계는, 구축이 평생 닫을 수 없을 것들의 둘레 전체를 다시 표시한다. 어떤 물음 하나가 닫혔다고 잔여항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적은 없다. 잔여항은 새로 그은 경계 바깥으로 물러나, 그곳을 계속 지키고 있을 뿐이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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