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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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세계 축구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 제17편 / 총 22편

베를린

이미 쓰인 결말, 그리고 그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은 한 사람

지단의 은퇴 경기는 영웅의 완벽한 퇴장으로 쓰여 있었지만 한 번의 박치기가 대본을 찢었다. 골든볼과 레드카드, 여름 동화와 시효로 멈춘 의혹은 사실이 서사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Han Qin (秦汉)·2026
이 글의 목차

1. 이미 쓰인 결말

2006년 월드컵은 이미 쓰인 결말대로 끝나야 했다.

그해 지단은 서른네 살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뜻도 일찌감치 밝혀 둔 상태였다. 8년 전인 1998년, 그는 파리에서 두 번의 헤더로 프랑스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8년 뒤에는 은퇴의 문턱에서 대표팀으로 돌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대회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프랑스를 이끌고 한 단계씩 올라갔다. 스페인을 꺾고, 브라질을 꺾고, 포르투갈을 꺾어 마침내 베를린의 결승에 이르렀다. 천재의 마지막 월드컵이 우승으로 끝나고, 그는 다시 전설 속으로 물러난다. 너무나 완벽한 이야기였다. 너무 완벽한 나머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는 벌써 그 결말을 써 놓았다. 이제 그가 경기장에 나가 실현해 주기만 하면 됐다.

이야기는 언제나 사실보다 앞서가려 한다. 큰일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그 일을 다룬 이야기는 먼저 쓰여 있을 때가 많다. 그 대회의 지단은 거의 처음부터 이미 마련된 틀 안에 놓여 있었다. 노장이 돌아와 마지막까지 영웅답게 해내고, 자신의 선수 생활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다는 틀이었다. 모두가 그 마침표가 찍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앞질러 가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변덕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일 자체가 본래 그렇다. 이야기에 시작과 끝이 있고, 그것이 말끔한 모양으로 마무리될 때 사람은 가장 마음이 놓인다. 노영웅이 돌아와 선수 생활의 끝에서 다시 한번 승리하고, 모든 것을 이룬 뒤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물러나는 결말은 그 모든 모양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받는 모양이다. 너무나 매끄럽다 보니 사람들은 아직 경기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결말을 그 기성의 틀 안에 미리 채워 넣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리하여 그 대회 내내 지단에게는 거의 그런 틀이 씌워져 있었다. 관중석에서 보고, 중계석에서 말하고, 신문에 쓰는 것은 그날 그가 실제로 어떤 경기를 했는가라기보다, 그가 미리 준비된 마침표를 제 손으로 한 획씩 그려 넣는 순간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일이었다. 각본은 이미 끝나 있었다. 주인공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사실은 기어이 쓰인 각본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2006년 7월 9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이었다. 7분, 지단이 찬 페널티킥이 크로스바 아래쪽을 맞고 골문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한껏 띄워 올린 파넨카 킥이었다. 가볍고도 오만했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른 선수만이 결승 무대에서 부릴 수 있는 장난이었다. 19분에는 마테라치가 피를로의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 동점을 만들었다. 그 뒤 정규시간 90분이 다할 때까지 두 팀은 승부를 가르지 못했고, 1대1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전에서 지단이 한 차례 헤더를 날렸으나 부폰이 몸을 던져 크로스바 위로 쳐 냈다. 그 한 번이야말로 완벽한 결말을 완성할 마지막 일격이 될 뻔했다.

그리고 110분이 왔다.

공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단이 갑자기 돌아섰다. 그리고 머리로 마테라치의 가슴을 세게 들이받았다. 마테라치가 쓰러졌다. 주심이 다가와 레드카드를 꺼냈다. 지단은 곧바로 퇴장당했다. 고개를 숙인 채 우승 트로피 옆을 지나 선수 통로로 들어갔고, 그렇게 사라졌다. 그것이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이자 마지막 장면이었다. 종료 때까지 스코어는 1대1이었다. 승부차기에서는 이탈리아가 5대3으로 이겼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실축한 선수는 트레제게였고, 그의 킥 역시 크로스바를 맞혔다. 그로소가 마지막 킥을 성공시켰고, 이탈리아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미리 쓰여 있던 그 완벽한 결말은 끝을 불과 몇 걸음 앞둔 곳에서, 그 결말을 써 나가던 사람 자신의 박치기에 산산조각이 났다.

2. 110분

우선 그 레드카드 자체에 관해서는 분명히 해 두자.

경기장에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해야 한다. 명백한 일이다. 지단의 박치기는 실제로 일어난 동작이고, 수억 명이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폭력 행위였으며, 규칙대로라면 레드카드가 나와야 했다. 여기서 구축은 눈에 보이는 그 동작을 깔끔하게 종결했다.

그런데 곧이어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주심은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박치기는 공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당시 주심 엘리손도가 그 장면을 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계 화면에서는 그 동작이 거듭 재생됐다. 그러자 수많은 시청자와 해설자, 심지어 프랑스 감독 도메네크까지 의문을 품었다. 심판진이 경기장 옆의 텔레비전 리플레이를 먼저 보고 나서 뒤늦게 레드카드를 꺼낸 것은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리피 역시 경기 뒤 프랑스 측이 이 판정에 영상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했다고 언급했다. 중요한 의문이었다. 당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월드컵에서 영상은 경기 후 징계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경기 중 심판의 현장 판정에 개입하는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리플레이를 본 뒤 레드카드를 꺼낸 것이었다면, 그 선을 넘은 셈이었다.

경기 뒤 국제축구연맹, FIFA가 내놓은 공식 설명은 달랐다. FIFA는 7월 13일 징계 절차에 관한 성명에서 지단의 110분 폭력 행위를 대기심이 경기장 옆 자신의 위치에서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 모니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별히 명시했다. 대기심은 그 뒤 통신 장비로 주심에게 이를 알렸다는 것이다. FIFA는 경기 중 영상 리플레이를 판정 보조에 사용했다는 주장도 즉각 부인했다. 경기장 옆에서 텔레비전 모니터를 관리하던 심판요원은 화면을 볼 수는 있어도 판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었고, 대기심에게는 리플레이에 접근할 권한 자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대회 규칙상 대기심의 임무에는 주심과 부심의 시야 밖에서 일어난 폭력 행위를 주심에게 알리는 일이 원래 포함돼 있었다.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주심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정말로 대기심이 폭력을 직접 목격한 뒤 헤드셋으로 주심에게 알린 것이라면, 그 레드카드에는 규칙 안에서의 근거가 있었다.

여기서 다시 익숙한 균열이 생긴다. 레드카드가 옳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단은 실제로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 카드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대기심이 맨눈으로 직접 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리플레이를 본 것인지를 알려면, 외부인은 아무리 해도 들어갈 수 없는 헤드셋 통신 한 겹을 통과해야 한다. FIFA의 사건 기록에는 직접 목격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결승 현장의 그 헤드셋으로 당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다시 재생해 볼 방법은 없다. 공식 규칙 해석에서 FIFA는 영상을 불법으로 사용했다고 인정하지 않았고, 사건은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에 남은 의심은 그렇게 매달린 채 누구도 지우지 못했다. 박치기는 눈으로 보았지만, 레드카드 뒤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닿을 수 없는 층위는 예전과도 조금 다르다. 1966년 웸블리의 그 골은 공이 너무 빨라 사람의 눈이 따라가지 못했기에 분명히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화면이 선명했다. 박치기도 찍혔고, 레드카드도 찍혔으며, 대기심이 경기장 옆 어디에 서 있었는지도 찍혔다. 오직 그 몇 초 동안 헤드셋으로 어떤 말이 전해졌는지만 어느 카메라도 담아낼 수 없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너무 빨라 보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당사자 몇 사람만 들을 수 있고, 나중에 누구도 재생 버튼을 다시 누를 수 없는 통신선 위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화면은 갈수록 빈틈없이 쌓인다. 그런데 그 빽빽한 영상 한가운데에는 아무리 확대하고 아무리 느리게 돌려도 메울 수 없는 작은 빈칸이 남아 있다. 기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점점 더 많이 담아내지만, 헤드셋 안에서 단 한 번 울리고 사라진 말 한마디는 찍어 두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레드카드가 어떤 경위로 나왔든 이미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경기장 밖으로 내보낼 수는 있어도, 박치기로 깨진 결말을 다시 이어 붙일 수는 없다. 구축은 어떤 동작에 판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작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고별 무대는 이미 망가졌고, 레드카드로는 그것을 되찾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잔혹하다고 해야 할지 달리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를 우연도 숨어 있다. 8년 전 파리에서 지단은 바로 그 머리로 두 골을 넣어 프랑스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뤘다. 그날 밤 그 머리는 프랑스 전체의 영웅이었다. 8년 뒤 베를린에서 같은 머리가 상대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자신을 경기장 밖으로 밀어냈고, 완벽해야 했을 결말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균열을 냈다. 같은 머리가 한 번은 그를 성공시켰고, 한 번은 그를 무너뜨렸다. 먼저 가장 찬란한 이야기 속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가, 다른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그 찬란함을 제 손으로 찢었다. 구축은 그 머리가 한 일 하나하나를 기록할 수 있다. 두 번의 헤더도, 한 번의 박치기도 모두 선명한 영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똑같은 머리가 왜 가장 큰 두 무대에서 정반대의 결말로 향했는지는 말해 줄 수 없다.

3. 끝내 또렷이 들리지 않은 말

지단은 왜 상대를 들이받았을까. 이 질문에서 그 대회와 관련해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층위를 나누어 살펴야 할 문제가 뻗어 나온다.

우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단 자신의 설명이다. 경기 뒤 프랑스 텔레비전과 처음으로 자세한 인터뷰를 했을 때 그는 상대가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를 거듭 모욕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몇 달 뒤인 2006년 9월, 마테라치는 인터뷰에서 경위를 인정했다. 먼저 지단의 유니폼을 잡아당긴 것은 자신이었다. 지단이 유니폼을 갖고 싶다면 경기 뒤에 주겠다고 하자, 자신은 그보다 지단의 누나를 더 원한다는 말로 받아쳤다는 것이다. 당시 마테라치는 남의 누나를 끌어들인 것이 잘한 일은 아니었다고도 인정했다. 2007년 8월에는 이탈리아의 한 텔레비전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시 했다고 주장하는 정확한 말을 처음 공개했다. 그 내용은 지단의 누나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몇 년이 흐른 2016년, 그는 당시 상대의 누나는 언급했지만 어머니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재차 정리했다.

이 자료들을 포개 놓고 보면 가장 신중하게 쓸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다. 마테라치 본인은 결국 자신의 말이 지단의 누나와 관련됐음을 인정했다. 한편 지단 본인은 상대가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를 거듭 모욕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까지 거론했는지를 두고 두 사람의 설명은 일치하지 않는다. 공개된 자료 가운데에는 모든 이견을 잠재울 만한 현장 동시 녹음이 없다.

더 세밀하게 따져 그 자리에서 실제로 나온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묻기 시작하면, 그 말 자체가 논쟁이 된다. 2006년 7월 여러 신문은 독순술 경쟁을 벌였다. 사람을 불러 화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마테라치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복원된 내용은 서로 충돌했다. 게다가 대부분은 대중이 다시 검증할 수 있는 완전한 영상과 음성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한참 뒤 당사자들이 한 설명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누나를 거론한 모욕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논란의 여지 없는 역사적 사실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매듭이 있다. 그 말을 복원하는 길은 모두 두 갈래다. 당사자의 설명을 듣거나, 입 모양을 맞춰 보고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완전한 기록을 찾아내거나. 그런데 당사자는 그 사건의 한쪽 편이다. 그가 들려주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판본이므로, 남들은 그것을 결정적 증거로 삼을 수 없다. 다른 한편 그 완전한 영상과 음성 기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된 적이 없다. 어느 길도 끝까지 닿지 못한다. 그 말은 그래서 영원히 난처한 자리에 끼어 있다. 분명히 입 밖으로 나온 말이다. 수억 명이 그 두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단어들이었는지는 누구도 한 문장의 역사적 사실로 못 박을 수 없다. 입술 두 쪽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일과, 그 입술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똑똑히 듣는 일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고개가 있었다.

이 문제의 가장 바깥층에는 가장 널리 퍼진 전설 하나가 떠다닌다. 마테라치가 그 자리에서 인종차별적이거나 테러리즘과 관련된 모욕을 했다는 이야기다. 2006년 이후 일부 영국 타블로이드는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식의 말을 독순술로 얻은 결론인 양 퍼뜨렸다. 마테라치는 이를 부인했다. 2008년 로이터는 《더 선》이 이른바 인종차별적 욕설 주장에 대해 마테라치에게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면, 테러리스트 운운하거나 인종차별적이었다고 단정하는 이런 문장들을 이미 입증된 일처럼 써서는 안 된다.

이것도 서사를 만드는 기계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한 사례다. 한 천재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에서 온 세상을 놀라게 한 이상 행동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대체 어떤 말이 그런 사람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는지 하루빨리 알고 싶어 했다. 그 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차마 귀에 담지 못할 모욕이었다면 지단의 격노에도 어느 정도 이해할 구석이 생긴다. 그다지 심한 말이 아니었다면 박치기는 변명의 여지 없는 충동에 더 가까워진다. 사람들은 그 이상 행동에 충분히 무게 있는 이유를 붙여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화면이 답을 주지 못하자 독순술 경쟁이 시작됐고, 퍼질수록 점점 구체적인 판본들이 만들어졌다. 끝내 누군가 사과해야 할 때까지 그랬다. 박치기 한 번은 수억 명이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그 박치기를 불러온 말 한마디는 마지막까지 누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보인다는 것이 여전히 똑똑히 들린다는 뜻은 아니다.

4. 그는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완벽한 결말을 들이받아 깨뜨린 사람이 경기 뒤에 한 말은, 그 박치기보다도 어떤 틀에 끼워 넣기 어려웠다.

지단은 결승 사흘 뒤 공개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정확히 되짚을 수 있는 두 가지 말을 했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하는 사과였다. 그는 이 경기를 본 모든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후회라는 말을 거부한 것이었다. 자신이 후회한다면 상대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했다. 동시에 자신에게 아무런 변명거리도 없다고 말했지만, 상대가 어머니와 누나에 관한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고도 했다. 인터뷰에서 그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으며, 마테라치 본인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 두 가지 말은 자신을 위해 쓰인 각본에 한 살아 있는 사람이 내놓은 답이었다. 각본이 원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영웅다웠던 사람,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트로피, 모두가 흡족하게 책을 덮을 수 있게 해 줄 완벽한 마침표였다. 그런데 그는 끝내 그것을 내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사과한 것은 경기장에서 나쁜 본보기를 보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치기 자체를 후회하기는 거부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후회란 어머니와 누나를 모욕한 말들이 옳았음을 뜻했고, 그것만은 어떤 경우에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완벽한 마침표를 망가뜨리는 한이 있어도 이것을 지키려 했다. 각본은 그를 이야기를 원만한 결말로 데려다줄 도구로 쓰려 했다. 그는 굳이 사람으로 남으려 했다. 어머니와 누나가 있는 사람, 그 순간에 이르면 차라리 판 자체를 뒤엎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로 이것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려는 그 기계가 가장 어쩌지 못하는 지점이다. 기계는 결말을 미리 쓸 수 있다. 표를 미리 모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을 영웅이든 무모한 사내든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를 계산에서 빠뜨렸다. 이야기 속에 들어간 이는 마음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기호가 아니다. 피와 살이 있고, 저마다 아픈 곳이 있으며,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울분이 있는 사람이다. 각본이 미소 지으며 퇴장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그는 하필 어머니와 누나를 떠올렸다. 모두가 완벽한 마침표가 찍히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가 손만 뻗으면 머리 위로 올릴 수 있던 트로피를 압도했다. 이야기는 미리 쓸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늘 같은 것을 빠뜨린다. 이야기 속 그 사람은 살아 있다. 스스로 움직인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누구도 대신 써 주지 않은 일을 언제든 할 수 있다.

경기장 밖에서는 또 하나의 일이, 미리 쓰인 그 결말의 부조리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 월드컵의 골든볼은 대회 최우수선수를 뽑는 상으로, 대회를 취재한 기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정했다. 결과는 지단 2,012점, 칸나바로 1,977점, 피를로 715점이었다. 지단, 바로 직전 결승에서 폭력 행위로 레드카드를 받고 쫓겨난 그 사람이 35점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우승팀 이탈리아의 주장을 제치고 대회 최우수선수가 됐다.

여기서는 증거의 한 층위를 정직하게 밝혀 두어야 한다. 이 상의 투표 시점에 관한 자료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로이터가 배포한 경기 후 보도 한 갈래에는 이 상이 언론 투표로 결정되며, 표는 지단에게 레드카드가 나오기 전에 이미 행사됐다고 명시돼 있다. 같은 시기의 다른 보도는 공식 마감이 결승 뒤였지만, 많은 기자가 경기 관전과 경기 후 기사 작성에 집중하려고 미리 투표했다고 전한다. 두 설명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둘을 함께 놓았을 때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상당수의 표가 결승이 끝나기 전에, 적어도 사람들이 그 레드카드의 의미를 충분히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제출됐다는 점이다. 과반의 표가 종료 휘슬 전에 행사됐는지에 대해서는 공개 자료에 표마다 시각이 찍혀 있지 않다. 그보다 강한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대다수가 이미 투표했다는 말은 당시 언론이 널리 전한 설명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표 하나하나를 감사해 확인할 수 있는 절차상의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정도만 확인해도 그 광경은 이미 충분히 눈에 거슬린다. 투표가 지단을 최고로 뽑은 근거는 대회 전체에서 그가 보여 준 경기력이었고, 기자들이 마지막 경기가 끝나기 전에 이미 적어 제출한 판단이었다. 110분의 박치기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그 표들은 벌써 넘어간 뒤였고, 거둬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골든볼은 미리 쓰인 결론의 화석이 됐다. 사실이 자신을 추월하기 전에 이미 굳어 버린 판결이었다. 이야기는 사실보다 먼저 달려가 최우수선수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그 뒤 사실이 머리로 들이받았지만, 그 마침표는 이미 지울 수 없었다.

그 표를 던진 이들이 바로 이야기를 쓰던 사람들이었다. 이 골든볼은 선수들이 뽑은 것도, 감독들이 뽑은 것도 아니었다. 그 월드컵을 취재한 기자들이 뽑았다. 대회 내내 노영웅의 완벽한 고별 무대를 위해 문장을 쌓아 올렸던 이들이다. 그들이 쥔 펜은 한쪽에서 귀환과 유종의 미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투표용지의 최우수선수 이름 칸을 미리 지단으로 채웠다. 110분이 되자 그 펜 끝에서 나온 주인공은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자기 원고를 찢어 버렸다. 그러나 표는 이미 제출됐고, 잉크는 진작 말라 있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정식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써 놓은 결말에 공식 도장을 찍었다. 주인공이 전 세계 앞에서 원고를 찢었을 때에도 그 도장은 이미 단단히 찍힌 뒤라 다시 떼어낼 수 없었다.

골든볼 하나와 레드카드 한 장. 같은 경기, 같은 사람이다. 구축이 가장 원하는 것은 한 사람을 말끔하게 규정하는 일이다. 영웅인가, 무모한 사내인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지단은 기어이 둘 다였다. 그는 그 대회에서 널리 인정받은 최우수선수이면서, 결승에서 폭력을 행사해 퇴장당한 사람이었다. 어느 한쪽도 다른 쪽을 덮거나 녹여 없애지 못한다. 그를 단 하나의 얼굴로 고정하려 해도 고정되지 않는다. 당시 프랑스 국내와 국제 여론조차 하나의 설명에 합의하지 못했다. 국제적으로는 박치기라는 폭력 행위에 대한 비판이 대체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안의 감정은 꼭 그 뒤를 따르지 않았다. 시라크 대통령은 파리에서 지단을 만나 지지를 표했고, 《레키프》 독자 투표에서는 61퍼센트가 이 사건이 지단의 명성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같은 동작이 국경 안팎에서 전혀 다른 두 판단을 받았다. 한 사람을 과연 무엇으로 기억해야 하는가. 그 문제조차 종결할 수 없었다.

5. 진흙 속에서 피어난 우승

프랑스가 제 손으로 놓아 버린 트로피는 이탈리아의 품에 안겼다. 이탈리아가 그것을 들어 올릴 당시, 자국 축구는 ‘칼초폴리’, 이른바 전화 스캔들이라는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2006년 5월, 월드컵 개막을 얼마 앞두고 이탈리아 축구계의 도청 내용이 잇달아 공개됐다. 의혹은 구단 수뇌부와 리그 심판 배정 체계 사이의 관계를 정면으로 겨눴다. 폭풍이 불자 대표팀 감독 리피까지 휘말렸다. 《가디언》은 이미 5월 하순에 이 스캔들 때문에 리피의 감독직까지 의문시되고 있다고 썼다. 이탈리아는 그런 먹구름을 머리에 이고 월드컵에 나섰다.

우승한 뒤에도 먹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결승에서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7월 14일, 이탈리아 스포츠 법정의 1심 결정이 나왔다. 유벤투스는 세리에 B로 강등됐고, 최근 두 차례 리그 우승 타이틀도 박탈당했다. 피오렌티나와 라치오 역시 1심에서 함께 강등 처분을 받았다. 밀란은 강등을 면했지만 승점이 삭감됐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제재를 받았다. 며칠 뒤 이탈리아 축구협회를 이끌던 귀도 로시는 월드컵에서 우승했기에 오히려 국내 축구계가 청산해야 할 것을 더 철저하게 청산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우승했다고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너무나 매혹적인 이야기가 다시 찾아왔다.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운 우승팀. 조국의 축구가 가장 더러웠던 순간, 월드컵의 영광으로 구원을 이뤄 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실이 허용하는 경계 안으로 다시 줄여 놓아야 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문장은 두 가지다. 칼초폴리는 사실이고, 우승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하나로 뭉쳐서는 안 된다. 그 재판의 대상은 구단과 구단 관계자, 리그 심판 배정의 내막이었지, 이탈리아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치른 어느 경기가 아니었다. 대표팀의 우승과 칼초폴리 판결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고, 대표팀에 사건에 연루된 구단 소속 선수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이 월드컵 우승 자체에 사법적 흠결이 있다는 결론을 써서는 안 된다. 스캔들에 근거가 있다는 것과 그 사건이 우승을 더럽혔다는 것은 별개의 주장이다. 후자를 입증한 판결은 단 한 건도 없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따로 놓아두기는 불편하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둘을 하나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좋은 쪽으로 합치면, 억울한 오명과 수모를 당한 팀이 조국 축구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우승으로 결백을 증명하고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운 이야기가 된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판본이다. 나쁜 쪽으로 합치면, 위에서 아래까지 썩어 빠진 축구가 월드컵조차 깨끗하지 못하게 따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의분을 자아내는 판본이다. 두 이야기 모두 시원하고, 단숨에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 다만 둘 다 정직하지 않다. 정직한 설명은 오히려 가장 속 시원하지 않은 쪽이다. 도청도 사실이고, 강등도 사실이며, 그 트로피도 사실이다. 하지만 구단의 책임을 곧바로 베를린에서 그 경기를 뛴 대표팀 열한 명에게 돌리려면, 그 사이에 누구도 채우지 못한 증거의 고리 하나가 빠져 있다. 스캔들에는 근거가 있다는 말과 우승이 오염됐다는 말은 서로 다른 문장이다. 앞 문장을 그대로 뒤 문장의 증거로 쓰는 것은 편의를 위해 둘을 다시 합쳐 버리는 일이다.

이탈리아가 올라가는 길에도 눈에 거슬리는 판정이 없지는 않았다. 호주와의 16강전에서는 50분에 마테라치가 먼저 퇴장당했다. 그리고 추가 시간의 마지막 순간, 그로소가 페널티 지역 안에서 상대 루카스 닐과 접촉한 뒤 넘어졌다. 주심을 맡은 스페인 심판은 이탈리아에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토티가 성공시켰다. 이탈리아는 1대0으로 힘겹게 다음 라운드에 올랐다. 영국 언론은 당시부터 이 페널티킥을 논란이 있는 판정으로 다뤘고, 2006년 10월에는 블라터까지 이 페널티킥이 일으킨 논란에 사과의 뜻을 표한 적이 있다. 이 역시 판정은 보이지만 그 뒤에 오심이 얼마큼이고 다른 무언가가 얼마큼인지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경우다. 어떤 확정적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연말에는 이탈리아 주장 칸나바로가 그해 발롱도르까지 받았다. 그것은 한 해 전체를 평가하는 유럽 올해의 선수상으로, 월드컵에서 지단이 받은 골든볼과는 별개의 상이었다. 부폰은 그 월드컵의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됐다. 영예가 하나씩 이 우승팀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끝내 다 걷히지 않은 먹구름도 그 영예들 위에 걸려 있었다. 누구도 그 의혹을 말끔히 씻어 주지 못했다.

6. 어느 여름의 동화

카메라를 경기장 밖으로 돌리면, 그해 독일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개최국 자신의 이야기다.

우선 그 여름 자체를 보자. 클린스만이 이끈 독일 대표팀은 3위를 차지했다. 개최국은 모두 14골을 넣어 그 대회 최다 득점팀이 됐다. 그러나 성적보다 더 오래 기억된 것은 그 여름 독일 사회 전체의 분위기였다. FIFA도 훗날 이 월드컵을 돌아보며 독일 대표팀과 개최국 사회의 분위기를 함께 놓아야 독일 2006이 그토록 오래 기억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독일 대표팀은 원래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이 아니었다. 클린스만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 독일 축구는 대체로 앞날을 비관하던 침체기에 있었다. 그는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고, 사람들의 기억 속 경직된 독일 대표팀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축구를 펼쳤다. 대회 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던 개최국이 가장 많은 골을 넣고 4강까지 진출했다. 그것만으로도 홈 관중이 들끓기에는 충분했다. 팀이 안겨 준 뜻밖의 기쁨과 관중석의 거리낌 없는 열광은 서로 불을 붙였다. 갈수록 좋은 경기를 보여 주는 팀이 거리의 인파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고, 온 세상을 뒤덮은 붉은 깃발은 거꾸로 경기장의 함성을 더 높이 끌어올렸다. 그 여름이 동화로 기억되는 까닭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일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 수백만 명이 정말로 온몸과 마음을 그 안에 쏟아 넣었기 때문이다.

‘여름 동화’라는 이름은 동명의 다큐멘터리와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독일축구협회가 나중에 낸 공식 글은 2006년 월드컵을 직접 ‘그 여름의 동화’라고 불렀으며, 죙케 보르트만이 만든 동명의 영화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다시 말해 여름 동화는 오랜 세월 뒤에 역사가들이 갖다 붙인 꼬리표가 아니었다. 2006년 이후 머지않아 영화와 공식 서술이 함께 굳혀 놓은 공공의 명칭이었다. 그 여름은 막 지나간 직후부터 이미 동화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 여름 가장 눈에 띈 사회적 풍경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국기 게양과 거리 응원이었다. 《가디언》은 이미 2006년 6월 하순, 독일 전역에서 검정·빨강·금색의 세 빛깔이 폭발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썼다. 자동차에도, 발코니에도, 정원에도 국기가 가득했다. 독일의 역사 문헌 플랫폼에 수록된 당시 신문 기사는 이 현상을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국심에 관한 논의로 다뤘다. 어떤 이들은 전후 독일이 국기와 민족적 상징을 대할 때 오랫동안 품어 온 조심스러움이 마침내 풀렸다고 받아들였다. 로이터 연구소가 영국 언론의 독일 2006 보도를 살핀 연구에서도 이 월드컵이 영국 언론 속 독일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인들이 더 편안하고 더 자연스러운 애국심을 보여 준 것이 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했고, 당시 기록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수백만 명이 정말 거리로 나왔고, 정말 발코니마다 국기를 걸었다. 긴장이 풀린 채 마음에서 우러나던 기쁨도, 자기 나라 땅에서 대회를 여는 자부심도 진짜였다. 역사 때문에 민족적 상징을 유난히 조심스러워했던 나라가 그 여름에는 모처럼 어깨의 힘을 뺐다. 그 편안함과 기쁨을 나중에 일어난 어떤 일로도 한꺼번에 지워서는 안 된다. 동화의 이 면은 사실이다.

7. 시효에 가로막힌 결산

하지만 동화 밑에는 끝내 셈을 마치지 못한 장부가 눌려 있었다.

이 여름의 이야기는 훗날 2015년 이후 이어진 조사로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 장부를 따라가려면 먼저 이 월드컵의 출발점, 개최지를 결정한 유치 투표로 돌아가야 한다. 2000년 7월, 독일은 최종 12대11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누르고 2006년 월드컵 개최권을 얻었다. 그런데 승부를 가른 한 표는 오세아니아 대표 찰스 뎀프시의 기권이었다. 당시 여러 언론의 기록에 따르면, 뎀프시가 오세아니아축구연맹이 정해 둔 방향대로 남아공에 표를 던졌다면 결과는 12대12가 됐을 것이다. 외부에서는 당시 FIFA 회장 블라터가 자신에게 있는 결정표로 남아공을 지지하리라고 대체로 생각했다. 뎀프시는 훗날 당시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고, 자신에게 뇌물을 주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월드컵 전체가 어디에 돌아가느냐가 애초에 그런 기권 한 표에 걸려 있었다. 그 표가 오세아니아의 원래 뜻대로 남아공에 갔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동화로 불린 이 월드컵의 출발점은 처음부터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의문 위에 놓여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받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 손을 거둔 것이다. 이 출발점의 의문과 여러 해 뒤 670만 유로를 둘러싼 의문은 같은 선 위에 앞뒤로 떨어져 있는 두 매듭이다. 하나는 왜 그 한 표가 그렇게 행사됐는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왜 그 돈이 그렇게 흘렀는가의 문제다. 두 매듭 모두 오늘날까지 누구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2015년 《슈피겔》이 핵심 의혹을 제기했다. 독일 2006 유치위원회에 약 670만 유로의 자금이 마련된 적이 있었고, 그 출처는 아디다스 전직 임원에게서 빌린 돈으로 지목됐다. 2000년 집행위원회 투표에서 표를 확보하는 일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로이터는 동시에 존재하는 두 사실을 기록했다. 독일축구협회는 비자금의 존재와 표 매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이후 협회장은 그 670만 유로가 왜 2005년에 FIFA로 송금됐는지 자신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한쪽에는 없었다는 말이, 다른 쪽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 나란히 서 있었다.

2016년 독일축구협회가 의뢰한 조사에서 중요하지만 의문을 닫아 버리지는 못하는 설명이 나왔다. 그 돈은 FIFA를 거쳐 전직 임원에게 예전의 차입금을 갚은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가디언》은 그 조사의 공개 결론을 토대로 독일이 표를 사서 유치에 성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썼다. 그러므로 가장 신중하게 쓸 수 있는 말은 이렇다. 돈이 그 전직 임원에게 돌아갔다는 경로는 조사에서 지목됐다. 하지만 그 돈이 애초에 왜 생겼는지, 정말로 유치 투표를 둘러싼 거래와 관련이 있었는지는 그 조사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2020년이 되자 이 장부는 마지막이자 가장 기이한 결말을 맞았다. 스위스의 형사 절차는 사건의 실체에 관한 판결을 전혀 내놓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돼 종결됐다. 당시 FIFA는 공개적으로 실망을 표하며 이 사건이 아무런 결과 없이 그렇게 끝나 버린 것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 말은 오늘날 이 사건을 규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경계를 정확히 짚는다. 사건은 진상이 밝혀져 끝난 것이 아니라 시효가 만료돼 끝났다. 그 뒤 독일에서 계속된 절차는 주로 그 670만 유로의 세무·회계상 처리와 기재에 초점을 맞췄다. 한참 뒤까지도 독일 법원이 다룬 핵심은 세무 신고와 거래의 기재 문제였다. 2000년 유치전에서 실제로 표를 매수했는지에 대해 확정적인 형사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구축이 스스로를 닫지 못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며, 새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1966년 웸블리의 골을 분명히 말할 수 없었던 까닭은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사람의 눈이 닿는 한계 너머로 사라졌다. 2006년 유치 자금의 장부는 다르다.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슈피겔》이 조사했고, 축구협회가 의뢰한 조사도 있었으며, 스위스 검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끝까지 조사하고 나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 그 돈이 정말 표를 사는 돈이었는가는 여전히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 그것을 매달아 놓은 것은 어둠도, 닿을 수 없는 동기도 아닌 더 차가운 것이었다. 시간이었다. 구축 안에서 증거를 가장 중시하는 그 기계에는 자체 시계가 있다. 시계가 끝까지 가서 시효가 다하면 절차는 저절로 멈춘다. 사건은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은 채 시간에 넘겨져 영원히 거기 매달린다. 무엇보다 종결을 원하는 그 기계가 이번에는 답을 내놓지 못한 데서 그친 것이 아니다. 답을 내놓을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기계의 시계가 먼저 울렸다.

이런 멈춤은 진상을 밝혀내거나 결백을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불안하다. 사실로 드러나면 잔여항은 자리를 잡고, 잘못이 있었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명해진다. 결백이 밝혀지면 의혹도 걷힌다. 하지만 시효 만료라는 멈춤은 어느 쪽도 주지 않는다. 당신이 유죄라고 선언하지도, 무고하다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이 다 됐으니 이제 묻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그 돈이 정말 표를 사는 돈이었는가라는 질문은 답을 기다리는 질문에서 영원히 다시는 답을 얻지 못할 질문으로 바뀐다.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은 채 거기 매달린다. 해결된 것이 아니라 보류된 것이다. 구축 안에서 진실에 다가가야 했던 절차가 끝내 다가간 곳은 진실이 아닌 자신의 마감일이었다. 시간이 되자 저절로 일을 접고, 아직 닿지 못한 답을 모든 의문과 함께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겨 놓았다. 누구도 돌아가 다시 손대지 않았다.

그렇게 독일 2006은 나란히 놓을 수는 있어도 하나로 뭉쳐 쓸 수는 없는 것이 됐다. 개최국의 그 여름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개선된 국가 이미지는 사실이며, 당시 기록도 풍부하다. 2015년 이후 유치 자금을 둘러싼 의혹이 실제로 존재했고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의혹은 2020년 시효 만료 때문에 영원히 미결 상태에 놓였다. 둘 다 실제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뒤의 것은 오늘날까지 사법기관이 내린 실체에 관한 판결 한 장으로 완전히 규명된 적이 없다. 동화는 사실이다. 동화 밑에서 끝내 결산하지 못한 그 장부도 사실이다.

8. 맺으며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자.

2006년 월드컵은 이야기가 어떻게 사실보다 앞서가고, 사실은 또 어떻게 번번이 이야기대로 흘러가기를 거부하는지에 관한 월드컵이었다.

지단의 선수 생활에는 완벽한 결말이 미리 쓰여 있었다. 노영웅이 마지막까지 영웅답게 해내는 마침표였다. 그러나 110분에 이르자 그 마침표는 그것을 써 나가던 살아 있는 사람 자신의 박치기에 부서졌다. 그는 이야기를 원만한 결말로 실어 나르는 도구가 되기를 거부했다. 결말을 망가뜨리는 한이 있어도 한 사람으로서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한편 그가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이미 투표로 정해져 있던 골든볼은 굳어 버린 증거가 됐다. 이야기가 실제로 사실보다 앞서가 최우수선수라는 결론을 미리 적어 두었다는 증거였다. 그 뒤 사실과 정면으로 부딪혔지만 다시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골든볼 하나와 레드카드 한 장이 같은 사람에게 내려졌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녹여 없애지 못했다. 구축은 그를 말끔하게 규정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조국의 축구가 가장 더러웠던 순간에 우승컵을 들었다. 진흙 속에서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는 벌써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스캔들도 사실이고 우승도 사실이다. 칼초폴리가 다룬 것은 구단과 리그이지 월드컵 경기장이 아니었다. 두 사실은 나란히 놓일 수 있을 뿐,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대신해 속 시원한 결론을 써서는 안 된다. 독일의 그 여름 동화는 여름이 막 지나갔을 때부터 영화와 공식 서술에 의해 동화로 이야기됐다. 그러나 동화 밑의 유치 자금 장부는 여러 해를 조사해도 밝혀지지 않았다. 끝내 입증된 것도 반증된 것도 아니었다. 시효라는 이름의 시계가 그것을 넘겨받았고, 그렇게 영원히 거기에 멈췄다.

이 세 가지는 구축이 스스로를 닫지 못하는 세 얼굴이다.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제 손으로 이미 쓰인 결말을 뒤엎는 얼굴이다. 하나는 둘 다 참인 사실들이 기어코 속 시원한 하나의 결론으로 합쳐지지 않는 얼굴이다. 또 하나는 시효의 시계가 진실보다 먼저 울려 질문을 영원히 매달아 놓는 얼굴이다. 이야기가 언제나 원하는 것은 닫을 수 있는 원, 시작과 끝이 있고 빈틈없이 맞물리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세 얼굴을 합치면 같은 말을 한다. 그 원이 끝내 감싸 닫을 수 없는 것이 늘 있다는 말이다. 어떤 것은 애초에 원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어떤 것은 기어이 혼자서 두 몫을 한다. 영웅으로 보면 영웅이고, 무모한 사내로 보면 또 무모한 사내다. 어떤 것은 원이 다 그려지기도 전에 원을 그리던 손부터 멈춰 버린다.

눈에 보이는 것은 갈수록 많아진다. 지단의 박치기는 수억 명이 한 프레임씩 원 없이 보았다. 무효를 알렸다가 다시 유효를 알렸던 그 두 차례의 판정, 발코니마다 가득 걸린 국기, FIFA로 송금된 670만 유로 모두 기록으로 남아 환한 곳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보인다고 해서 분명히 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화면이 빽빽하게 쌓일수록 정말로 닿을 수 없는 몇 군데가 더 눈에 띈다. 박치기를 불러온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제대로 들을 수 없다. 레드카드 뒤의 헤드셋으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다시 틀어 볼 수 없다. 그 돈이 정말 표를 사는 돈이었는지는 밝혀낼 수 없다. 이야기는 언제나 한 사건을 미리 원만하게 닫히는 이야기로 써 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 하나, 풀리지 않은 사건 하나, 결산할 수 없는 장부 하나가 늘 그런 마무리를 거부한다. 이야기의 가장자리에 고집스럽게 남아 그 완벽함에 구멍을 낸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