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모든 것이 뚜렷이 보였던 월드컵, 여전히 결론 나지 않은 사건
2002년의 논쟁적 판정은 영상에 남았지만 오심의 동기까지 촬영되지는 않았다. 한국의 실제 경기력과 판정의 의문을 함께 놓고, 문제 판정은 기록으로 확인되지만 조작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경계를 지킨다.
이 글의 목차
1. 이번에는 모든 것이 뚜렷이 보였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에서 열렸다. 월드컵이 아시아를 찾은 것도,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대회가 축구사에 남긴 가장 깊은 상처는 한국이 4강에 오르는 길목에서 치른, 숱한 논란에 휩싸인 토너먼트 경기들이었다.
먼저 이 대회가 유독 특별했던 이유부터 짚자. 24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그날 밤,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 대 0으로 이겼다. 그 경기의 진상을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사정을 아는 양쪽이 모두 진실을 없애는 데 이골이 난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처음부터 은폐되어 있었다. 2002년은 정반대였다. 한국과 이탈리아,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운명을 가른 판정들은 어느 하나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 카메라에 찍혔고, 온전한 영상이 남았다. 전 세계가 그 영상을 한 프레임씩 들여다봤다. 보고 또 보았다.
이렇게 오래된 문제가 전혀 새로운, 한층 더 괴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1966년 웸블리의 그 골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공이 너무 빨랐고, 사람의 눈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2002년에는 모든 것이 보였다.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토록 똑똑히 보고도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여전히 닿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인다는 것과 진상을 꿰뚫어 본다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먼 거리가 있었다.
2. 거듭 들여다본 세 장면
먼저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자.
2002년 6월 18일, 대전에서 열린 16강전. 한국은 연장전 끝에 이탈리아를 2 대 1로 꺾었다. 비에리가 이탈리아의 선제골을 넣었고, 설기현이 동점골을, 안정환이 골든골을 터뜨렸다. 주심은 에콰도르의 모레노였다. 이 경기에는 이후 수없이 재생되고 수없이 검토된 장면이 세 개 있다.
첫 번째는 경기 초반 모레노가 한국에 내준 페널티킥이다. 부폰이 막아냈다. 그 페널티킥 판정이 옳았는지는 영상을 돌려본 뒤에도 줄곧 논란으로 남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페널티킥이 선언되었고, 골키퍼가 막았다는 사실뿐이다.
두 번째는 연장전에 나왔다. 페널티 지역 안에서 토티가 넘어지자 모레노는 시뮬레이션 반칙으로 두 번째 경고를 주고 퇴장시켰다. 그러나 이후 거듭 확인한 영상에는 토티와 송종국 사이에 신체 접촉이 있었다. 송종국도 공을 건드렸다. 국제축구평의회의 규칙상 시뮬레이션 반칙을 선언하려면 선수가 속이려는 의도로 행동했다고 심판이 판단해야 한다. 영상이 뒷받침하는 결론은 이렇다. 그 접촉이 페널티킥을 줄 정도는 아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명백히 속이려고 넘어진 장면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토티에게 준 그 경고는 오심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세 번째는 토티가 퇴장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토마시의 골이다.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어 득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장면 역시 영상을 보면 패스가 발을 떠나는 순간 토마시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잘못된 오프사이드 판정이었다.
이 세 장면의 영상을 검토한 뒤 나온 대체적인 판단은, 적어도 두 개의 판정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똑똑히 보였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 판정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보았다. 그래서, 그다음은 무엇인가.
3. 오심은 보이는데, 왜 그런 오심이 나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명백한 오심도 있고, 여전히 의견이 갈리는 판정도 있다. 그러나 오심임이 분명한 경우에도 왜 그런 판정이 나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의 거리에 이 대회의 가장 깊은 문제가 있다.
판정 하나를 잘못 내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심판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토록 복잡한 상황을 순간적으로 잘못 보았을 수 있다. 경기장을 뒤흔드는 개최국 응원의 압박에 자기도 모르게 한쪽으로 기울었을 수 있다. 혹은 가장 널리 퍼진 주장처럼 누군가 뒤에서 그렇게 판정하라고 지시했을 수도 있다. 이 세 원인은 전혀 다른 세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능력의 문제이고, 하나는 압박의 문제이며, 하나는 조작의 문제다.
그러나 온전히 남아 있는 그 영상의 어느 프레임도 이 세 원인을 구별해 주지 못한다. 영상은 판정이 틀렸다고 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틀린 판정을 내린 사람이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말해 주지 못한다. 제대로 못 본 것인지,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지시를 품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카메라는 사람의 행동을 찍을 수 있지만 동기는 찍을 수 없다. 판정은 보인다. 그 판정 뒤에 있는 ‘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2002년과 1966년은 가장 깊은 곳에서 맞닿는다. 다만 방향은 정반대다. 1966년의 진실은 인간 시력의 한계 너머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공이 골라인을 넘었는지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2002년에는 진실이 수억 명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는 잘못됐다는 것이 더없이 선명한 판정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그 ‘왜’는 모든 영상이 끝내 닿지 못하는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쪽은 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다른 한쪽은 보이는데도 알 수 없었다. 보인다고 해서 진상을 꿰뚫어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4. 끝내 닿을 수 없는 그 ‘왜’
끝내 닿을 수 없는 그 ‘왜’는 이후 이 대회의 가장 무거운 논쟁을 낳았다.
한쪽에서는 이것이 조작이었다고 단정한다.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거나, 국제축구연맹이 개최국을 더 높은 곳까지 올려 보내려고 뒤에서 손을 썼다는 것이다. 축구 팬들의 기억 속에서 이 주장은 거의 확정된 사실처럼 자리 잡았다. 국제축구연맹이 부패 스캔들에 휩싸여 있던 2015년에는 이탈리아의 한 신문이 옛 사건을 다시 꺼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이 개최국의 다음 라운드 진출을 원했고, 그 때문에 심판 배정에 영향이 미쳤다고 주장했다. 당시 부패 사건에 연루된 그 임원과도 이 일을 연결했다. 이런 보도들은 어렴풋하던 의심을 날 선 고발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키기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선을 지켜야 한다. 겹쳐 있는 층위를 하나씩 분리해야 한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두 경기에서 이어진 판정들이 영상을 돌려보면 하나같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주심 모레노 자신도 나중에 황선홍이 잠브로타를 다치게 한 플레이에는 더 무거운 제재를 가했어야 했다고 인정했다. 자기 입으로 시인한 판정 실수다. 비정상적인 판정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료를 놓고도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는 대목은, 일련의 판정 가운데 명백한 오심이 몇 개이며 애매한 경계선상의 판정이 몇 개냐는 문제다. 또 원래부터 기복이 있던 심판이 개최국 경기장의 극심한 압박에 짓눌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설명만으로 그런 판정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 모든 것이 아직 논쟁 중이다.
끝내 입증되지 않은 것은 조작이다. 의심이 아무리 강하고 직관에 아무리 잘 들어맞더라도, 확인 가능한 자료에서는 정작 필요한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심판에게 돈을 보낸 기록, 심판 배정을 맡은 임원의 자백, 그렇게 판정하라고 명령한 진본으로 확인된 지시 문서, 두 경기가 조작되었다고 판단한 공식 결정. 그런 것은 없었다. 국제축구연맹 회장 블라터는 한국을 대회에 남겨 두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다만 그 역시 나중에는 그 대회의 심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반복해서 거론되는 그 한국 축구계 고위 인사도 국제축구연맹의 높은 자리에 오래 있었고, 훗날 별개의 유치 관련 사안으로 윤리 징계를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확인 가능한 자료 가운데 그가 2002년에 어느 경기의 판정이든 지시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1차 문서는 하나도 없다.
판정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증거는 있다. 조작을 입증할 자료는 없다. 이 두 문장은 반드시 함께 말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사실을 왜곡한다. 비정상적인 판정만 이야기하며 형편없는 판정들을 곧장 하나의 입증된 음모로 엮어 버리면, 논쟁 중인 것을 확정된 사실로 바꾸는 셈이다. 반대로 조작의 증거가 없다는 말만 하면서 그 판정들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척한다면, 분명히 확인되는 비정상성을 외면하는 셈이다. 진실은 이 두 문장 사이의 불편한 자리에 걸려 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 속 시원한 답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이 대회가 남긴 가장 깊은 난제다. 구축의 체계 안에서 증거를 가장 중시하고 사안을 완결하려는 장치들, 정식 조사와 공식 입장 발표조차 그 ‘왜’ 앞에서는 결국 심판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깊은 곳의 동기, 지시가 전달된 경로에는 그 장치들도 닿지 못했다. 잘못된 판정은 확인할 수 있어도, 그 잘못을 저지른 마음속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끝을 맺고 싶어 하는 기계가 그 ‘왜’ 앞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 끝을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5. 너무나 쓸모 있는 악인
닿을 수 없는 그 ‘왜’ 앞에서 사람들은 답을 간절히 원했다. 마침 모레노가 답 하나를 내밀었다.
월드컵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2년 9월, 모레노는 자국 에콰도르의 리그 경기에서 일어난 논란으로 2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국제축구연맹도 여러 곳에서 그가 일으킨 논란을 조사하겠다고 같은 시기에 발표했다. 더 충격적인 일은 8년 뒤에 벌어졌다. 2010년 9월, 모레노는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입국하다가 체포되었다. 몸에 헤로인을 묶어 숨기고 있었다. 이듬해 그는 유죄를 인정했고, 징역 30개월을 선고받았다.
온 세상의 지탄을 받은 그 경기를 맡았던 심판이 8년 뒤 진짜 마약 밀매범이 되었다. 이보다 완벽한 이야기가 있을까. 마치 하늘이 증인 하나를 보내 2002년을 의심하던 모든 사람을 위해 단번에 결론을 내려 준 듯했다. 거 봐, 원래 그런 인간이었잖아. 그 경기는 더 말해 봐야 무엇 하겠어.
하지만 여기서 다시 멈춰야 한다. 모레노의 마약 사건은 사실이다. 재판을 거쳤고, 증거도 확실하다. 그러나 그 사건 자체가 8년 전의 경기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2010년에 마약을 운반했다는 사실과 그가 2002년에 돈을 받고 부정한 판정을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람이 나중에 나빠졌다고, 심지어 원래부터 흠이 있었다고 해서 그가 한 일 가운데 논란이 된 모든 일이 부정행위였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두 사안을 하나로 뭉개는 것은 기억이 또다시 편한 길을 택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닿을 수 없는 그 ‘왜’에 확실한 답을 붙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레노 스스로 마약 밀매범이라는 신분을 가져다주자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2002년 미해결 사건의 판결문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계가 가장 즐겨 쓰는 수법이다. 그 기계는 풀리지 않은 물음표를 견디지 못한다. 그 물음표를 지우려면 확실하게 단죄할 수 있는 악인 하나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나중에 타락한 모레노가 때마침 바로 그런 악인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저지른 죄로 그 사람의 과거 사건까지 소급해 판결할 수는 없다. 2010년의 헤로인은 2002년의 그 ‘왜’에 여전히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답이 나온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답하지 못했다.
6. 준비도 진짜였고, 의혹도 실제로 남았다
이 대회를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마찬가지로 확실한 또 하나의 사실을 말해야 한다. 한국은 정말로 강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본선이 열리기 훨씬 전인 2001년 1월에 팀을 맡았다. 그는 선수를 차출하고 관리하는 데 이례적으로 큰 권한을 얻어 냈다. 리그 일정을 재조정한 덕분에 월드컵 전 4개월 동안 날마다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전담 체력 코치를 데려와 강도 높은 근력 훈련을 실시했다. 줄어든 리그 경기 부담은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이 다칠 위험도 낮췄다. 모두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며, 한국이 정당한 준비를 통해 이겼다고 보는 쪽에서 제시하는 가장 단단한 근거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한국이 아마 그 대회에서 체력이 가장 좋은 팀들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가 널리 받아들여졌다. 바로 그 넘치는 체력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끝내 지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 대목은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 좋은 감독을 데려오고, 뼈를 깎는 훈련으로 대회 최고의 체력을 길러, 그 체력으로 마지막에 웃는 것. 그것은 실재하는 능력이며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 대회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을 모조리 부정한 판정 덕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선수들이 실제로 흘린 땀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치열한 경합도 진짜였고, 투지도 진짜였으며, 경기장을 뒤흔든 홈 팬들의 뜨거운 열기도 진짜였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이 사건의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 준비는 진짜였고, 의혹 역시 실제로 남아 있다. 둘 다 현실이다. 한국이 강했다고 인정한들 그 오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판정을 지적한들 한국의 노력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두 사실은 함께 놓여야 한다. 전부 부정한 판정 덕이었는지, 아니면 오로지 실력이었는지 반드시 양자택일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말 강한 팀이 형편없는 판정으로 심하게 얼룩진 몇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두 사실을 포개 놓아도 모순은 없다. 다만 흑백으로 갈라놓을 때의 속 시원함을 얻을 수 없을 뿐이다.
이 의혹의 불똥을 맞은 한 선수의 사연도 있다. 골든골을 넣은 안정환은 당시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임대 선수로 뛰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탈락하자 구단주 가우치는 그를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이탈리아 축구를 망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안정환의 페루자 생활은 끝났다. 선수는 경기장에서 해야 할 일을 했고,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골을 넣었다. 그런데 그 골 뒤에 드리운,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혹 때문에 일자리를 대가로 치렀다. 닿을 수 없던 그 ‘왜’가 그에게 닥쳤을 때는, 실직이라는 분명한 현실이 되었다.
7. 결론 나지 않은 것은 그 경기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 대회에서 결론을 낼 수 없었던 사건은 한국의 두 경기만이 아니었다.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대회에 도착할 때만 해도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개막전에서 세네갈에 0 대 1로 졌고, 이어 우루과이와 0 대 0으로 비긴 뒤 덴마크에 0 대 2로 패했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짐을 쌌다. 전 대회 우승팀이자 대회 전 유력한 우승 후보가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탈락했다. 예측은 또 한 번 빗나갔다. 널리 믿었던 타이틀 방어 전망은 공이 구르기 시작하자 산산이 깨졌다. 지난 대회의 영광도, 개막 전의 기대도 이번 대회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었다. 마지막 말을 하는 것은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 우연이었다.
이렇듯 알 수 없고 결론 낼 수 없는 일들 사이에서, 4년 전 자신에게 남겨진 미해결 사건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답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호나우두였다. 1998년 결승전 당일 오후, 그의 몸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브라질 의회까지 나서고도 밝히지 못했다. 끝내 닿을 수 없는 미해결 사건이었다. 그 뒤 그는 1999년과 2000년에 두 차례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고, 브라질의 월드컵 예선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예전의 호나우두는 돌아올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2년, 그는 돌아왔다. 여덟 골을 넣어 골든부트를 받았다. 독일과의 결승전에서는 두 골을 넣었다. 첫 골은 독일 골키퍼 칸이 히바우두의 슈팅을 잡지 못하고 놓친 공을 다시 차 넣은 것이었다. 칸은 나중에 이것이 자신이 결승전에서 저지른 유일한 실수였다고 말했다. 브라질은 2 대 0으로 이겨 우승했다. 4년 전 결승전에서 넋이 나간 듯 뛰어다니던 9번,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 선수가 4년 뒤 똑같은 결승 무대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두 골로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8년 그날 오후의 ‘왜’는 어쩌면 영원히 결론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2002년의 두 골은 분명하게 골망을 갈랐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서류로는 풀 수 없는 미해결 사건도 있다. 그래도 또 다른 확실한 사실로 그 위를 덮을 수는 있다. 호나우두는 그날 오후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우승 하나로, 그날 오후가 더는 자기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게 만들었다.
8. 맺으며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모아 보자.
2002년 월드컵은 오래된 문제를 전혀 새로운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었다. 24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그날 밤에는 정권이 진실을 가려 사람들이 볼 수 없었다. 2002년에는 진실이 수억 명의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의 그 두 경기에서 나온 논란의 판정은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한 영상으로 남았고, 전 세계가 프레임마다 지겹도록 들여다봤다. 분명히 보이는 오심도 있었고, 여전히 의견이 갈리는 판정도 있었다. 그러나 오심을 똑똑히 보고도 사람들은 왜 그런 오심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능력 때문인지, 압박 때문인지, 조작 때문인지, 모든 영상을 한데 모아도 구별할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판정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판정 뒤에 있는 그 ‘왜’였다.
그 ‘왜’는 이 대회의 가장 깊은 잔여항이 되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닿지 못했고, 구축의 체계 안에서 증거를 가장 중시하는 장치들도 닿지 못했다. 조사와 입장 발표가 끝내 확인한 것은 심판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사실까지였다. 비정상적인 판정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기록은 남았지만, 조작을 입증하는 문서는 끝내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이 두 문장은 반드시 함께 말해야 하며 어느 하나로 다른 하나를 덮어서는 안 된다. 비정상적인 판정을 곧장 입증된 음모로 엮으면, 논쟁 중인 것을 확정된 사실로 바꾸는 셈이다. 반대로 판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척하면, 명백한 비정상성을 외면하는 셈이다. 진실은 그 두 문장 사이에 매달려 어느 쪽에도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결론 없이 남아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8년 뒤 모레노가 마약 밀매범이 되자, 더없이 쓸모 있는 그 악인을 덥석 붙잡았다. 2010년의 헤로인을 2002년 미해결 사건의 판결문으로 삼았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판결해 주지 못했는데도 그랬다.
그 닿을 수 없는 ‘왜’의 그늘 아래 놓인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현실이다. 안정환은 규칙에 맞는 골든골을 넣고도, 그 골 뒤에 드리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의혹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 대표팀 전체가 실제로 대회 최고의 체력을 길러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그 노력까지 의혹에 휘말려 어디까지가 실력이고 어디부터가 석연치 않은 일이었는지 영원히 가를 수 없게 되었다. 훗날의 타락으로 모레노는 사람들이 그토록 필요로 하던 악인이 되었다. 정작 그가 맡았던 예전 경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때문에 오히려 진지하게 따져 보려는 사람이 더 줄었다. 구축의 체계는 판정 하나하나를 촬영하고, 모든 조사를 시작하고, 손쉽게 내세울 악인 하나를 사람들에게 건네줄 수 있다. 그러나 판정 뒤의 동기는 찍지 못하고, 진짜 ‘왜’는 밝혀내지 못하며, 그 일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온전한 결백을 되돌려 주지도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늘어나는데, 진상까지 더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왜’는 그렇게 모두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천만 번을 들여다보았지만, 끝내 누구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했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