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위험을 제로로 줄인 축구와 스스로 숨통을 조인 월드컵
모두가 합리적으로 패배 위험을 줄이자 월드컵은 사상 가장 메마른 대회가 되었다. 1990년은 구가 여항을 제거하다 자신의 심장까지 억누른 역설을 보여 준다.
이 글의 목차
1 가장 낮았던 그 숫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52경기 동안 모두 115골이 나왔다. 경기당 평균 2.21골. 이 숫자는 이후 오랫동안 남자 월드컵 본선 역사상 가장 낮은 경기당 득점으로 기록되었다.
얼마나 낮은 수치인지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보자. 52경기를 치르는 동안 경기당 득점이 평균 두 골 반에도 못 미쳤다. 수많은 경기가 0 대 0이나 1 대 0으로 끝났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새로 단장한 경기장은 관중으로 가득 찼지만, 그들이 본 것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대치의 연속이었다. 양쪽 모두 상대 골망을 흔드는 일보다 자기 골문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그 답답함은 어느 한 경기에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대회 전체에 퍼져 있었다.
숫자 하나에 한 대회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겼다. 스타도 있었고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그런데 이 대회가 축구사에 가장 확실하게 남긴 것은 지루함이었다. 네 경기가 승부차기까지 갔고, 두 차례 준결승도 모두 승부차기로 승자를 가렸다. 아르헨티나는 대회 내내 다섯 골만 넣고도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서독이 1 대 0으로 이겼다. 유일한 골은 논란이 된 페널티킥에서 나왔고, 아르헨티나 선수 두 명은 퇴장당했다. 월드컵 결승에서 레드카드가 나온 것은 사상 처음인데, 한 경기에 두 장이나 나왔다.
문제는 어느 한 팀이나 한 사람에게 있지 않았다. 더 깊은 데 있었다. 모든 팀이 실점하지 않는 데 온 힘을 쏟자, 그 결과로 아무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월드컵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따져 볼 것은 그 지루함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구축이 스스로를 질식시킨 뒤 무엇을 했는지다.
앞선 글들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동안 축구의 골칫거리는 늘 가두어 둘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아무리 빈틈없이 계산해도 공 하나, 사람 하나, 우연한 사건 하나가 그 계산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1990년에는 정반대의 문제가 생겼다. 너무 빈틈없이 가둔 나머지 축구 자체의 숨까지 막아 버린 것이다. 같은 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을 이번에는 그 이면에서 읽어야 한다.
오히려 뒤집어 읽어야 이 법칙의 뼈대가 더 잘 보인다. 가둘 수 없다는 말은 잔여항이 구축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반면 1990년처럼 지나치게 틀어막았다는 말은 구축이 잔여항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자신마저 없애 버렸다는 뜻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잔여항은 가두어 둘 수 없다. 그런데도 어떤 팀이나 어떤 스포츠가 이 법칙에 끝까지 맞서 잔여항을 남김없이 걷어 내겠다고 고집한다면, 사라지는 것은 위험과 우연만이 아니다. 그 위험과 우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축구의 생명력 전부가 함께 사라진다. 잔여항을 완전히 가두려는 시도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자기 질식이다.
2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는 편이 이득일 때
먼저 이 지루함이 생겨난 이치부터 짚어 보자. 선수들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모든 팀이 지나치게 영리했던 것이다.
축구에서 이기는 길은 두 가지다. 상대보다 더 많이 넣거나, 상대가 넣지 못하게 하거나. 1990년에 이르자 점점 더 많은 팀이 계산을 마쳤다. 두 번째 길이 첫 번째 길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계산이었다.
계산이 그렇게 바뀐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80년대 들어 전술의 추는 전반적으로 수비 쪽으로 기울었다. 대인 마크, 오프사이드 트랩, 중원에 밀집해 상대의 움직임을 질식시키는 압박 등 공격을 억누르는 수단들이 하나씩 정교해졌다. 수비 기술이 발전할수록 공격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적어졌다. 팀들은 점점 깨달았다. 상대 수비를 뚫겠다고 죽을힘을 다하느니 자기 진영을 단단히 지키다가 역습 한 번을 노리는 편이 낫고, 아예 승부차기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본래 축구를 더 볼 만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비부터 무장시킨 탓에 오히려 축구를 먼저 재미없게 만들었다. 공격에는 위험이 따른다. 앞으로 밀고 올라가면 뒤가 비고, 역습 한 번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반면 뒤로 움츠러들어 자기 진영에 사람을 쌓아 놓으면 이겨도 볼품없기는 하지만 잘 지지도 않는다. 여차하면 승부차기까지 버틴 뒤 운에 한 번 더 맡기면 된다.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면, 합리적인 팀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실점을 피하는 쪽을 택한다.
팀별로 따로 계산하면 어느 팀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팀이 똑같이 계산하자 합쳐진 결과는 참담했다. 네가 먼저 올라서지 않으니 나도 먼저 올라서지 않는다. 두 팀이 나란히 자기 진영에 웅크린 채 상대가 먼저 실수하기만 기다린다.
여기에는 악당이 없다. 뒤로 물러선 팀들은 겁쟁이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충실히 실행했을 뿐이다. 수비를 택했다고 어느 팀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 판에서는 수비가 정답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정답을 골랐더니, 모두에게 나쁜 결과가 나왔다. 각자의 영리함이 모여 집단의 어리석음이 되는 전형적인 딜레마다. 축구는 어느 못된 팀 하나에게 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팀이 함께 발휘한, 탓할 구석조차 없는 영리함에 졌다. 그렇게 경기는 기나긴 대치가 되었다. 신나는 공방전은 줄고 0 대 0과 1 대 0은 늘었다. 승부차기로 갈 수만 있다면 정규시간 안에 위험을 무릅쓰고 승부를 낼 이유가 없었다.
이 경쟁에는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었다. 한 팀이 웅크려 버리면 상대도 대개 선뜻 올라서지 못한다. 올라서는 순간 뒤쪽의 빈 공간을 내주어 상대에게 일격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조심성은 그렇게 옮아간다. 한쪽의 후퇴가 다른 쪽의 후퇴를 부른다. 두 팀은 서로 먼저 패를 내지 않으려는 도박꾼처럼, 공을 주고받으며 겨뤄야 할 경기를 인내심을 깎아 먹는 싸움으로 끌고 간다. 먼저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먼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누구도 먼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은 결과를 만든다.
이 이치는 8년 전 히혼에서 드러난 허점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히혼에서는 두 팀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함께 제대로 뛰지 않았다. 1990년에는 모든 팀의 계산이 같은 방향을 가리켜 모두가 과감하게 뛰기를 두려워했다. 규칙은 반칙도 막고 부정행위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스무 개가 넘는 팀이 저마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한 끝에 축구를 함께 지루함으로 몰아가는 일까지 막지는 못한다. 구축은 이기려는 의지를 전제로 조문을 썼다. 언젠가 승리하는 것보다 패하지 않는 것이 더 이득이 될 줄은 내다보지 못했다. 그날이 오자 이 스포츠 전체가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쪽으로 함께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것이 구축의 사각지대다. 규칙을 만들 때 구축이 경계한 상대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지나친 승부욕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언젠가 지나친 보수성을 막아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영리하게 계산한 끝에 공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을 내놓을 줄은 몰랐다. 규칙 어디에도 이기려는 마음이 너무 적을 때를 대비한 조항은 없었다. 경기장의 지배적인 마음가짐이 ‘내가 너를 이기겠다’에서 ‘우선 지지는 말자’로 슬그머니 바뀌자, 전자의 마음가짐에 맞춰 만들어 놓은 구축의 조문들은 한꺼번에 힘을 잃었다.
3 제 계산에 갇혀 막다른 길에 들어선 구축
이제 가장 중요한 대목에 닿았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은 번번이 잔여항을 가두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1990년에 벌어진 일은 달랐다. 구축은 바깥의 무언가에 뚫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이 막혔다. 계산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계산했다. 위험도, 실점도, 우연도 철통 수비의 계산 속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끝까지 계산하고 나니 막다른 길이었다. 물샐틈없이 막아 놓았지만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고인 물뿐인 막다른 길이었다.
완벽함의 또 다른 얼굴이다. 36년 전 베른에서 헝가리는 공격의 완벽함을 끝까지 밀어붙였다가 결승 한 경기를 붙들어 두지 못해 졌다. 1990년의 축구는 수비의 완벽함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막아 내기는 했다. 볼 만한 경기마저 함께 틀어막아 버렸을 뿐이다. 앞의 완벽함은 가두지 못했고, 뒤의 완벽함은 지나치게 가뒀다.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하나의 체계가 무엇이든 극한까지 추구하면 반드시 다른 곳에서 대가를 치른다. 빈틈없는 수비의 값은 축구 자체의 활기가 치렀다.
축구장에서는 이 계산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열 명을 모두 자기 진영으로 불러들인 팀은 정말 뚫기 어렵다. 위험할 만한 공간을 한 치도 남기지 않고 채우며, 일어날 법한 우연도 미리 싹을 잘라 놓는다. 그런데 그렇게 빈틈을 채우고 나면 경기장에 공간이 사라진다. 공간이 없으면 창의성도 없고, 창의성이 없으면 관중을 자리에서 벌떡 일으킬 순간도 없다. 완벽한 수비는 불확실성을 죽여서 얻어 낸다. 정작 축구의 매력은 대부분 그 불확실성 속에 숨어 있다. 실패할 위험을 막으면서 멋진 장면이 나올 가능성까지 막아 버린 셈이다. 두 가지는 원래 같은 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위험을 제로로 줄인다는 말은 구축의 승리처럼 들린다. 도무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던 우연을 마침내 길들였다는 뜻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축구에서 가장 가슴 뛰는 것들도 함께 길들여져 사라졌다. 과감한 공격, 앞뒤 가리지 않고 밀고 올라가는 움직임, 모든 것을 거는 맞불 작전. 사람의 피를 끓게 하는 이런 것들은 하나같이 위험에서 나온다. 위험을 없애면 이것들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축구는 실수를 하나도 하지 않아야 만점을 받는 시험문제가 아니다. 보는 재미를 생명으로 삼는 공연이다. 그런데 축구를 시험처럼 다루고 실점 하나하나를 반드시 없애야 할 오류로 여긴다면, 가장 똑똑한 방법은 애초에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 된다. 논리로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관중에게는 재앙이다.
여기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한 팀이 매 경기 올바른 선택을 하고도 끝내 이 스포츠의 보는 재미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에는 올바름과 재미가 둘로 갈라졌다.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경기하는 팀이 가장 재미없는 팀인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재미있는 경기를 하는 팀은 실수도 위험도 감수하는, 그다지 올바르지 않은 팀이었다. 구축 앞에 날카로운 질문이 놓였다. 모든 팀이 올바름만 좇는다면 축구의 재미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답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구축이 직접 나서서 올바름을 지루함과 같게 만드는 규칙을 고치지 않는 한은 그렇다. 1990년의 팀들은 하나같이 이 논리의 신도가 되었다. 축구를 점점 더 올바르게 했고, 점점 더 따분하게 했다. 그 대회에서 올바름과 볼 만함은 서로 다른 갈림길로 들어섰고, 대부분의 팀은 올바름을 택했다. 1990년의 지루함이 증명한 것은 하나다. 축구의 재미와 축구의 위험은 같은 것의 양면이다. 한쪽만 갖고 다른 쪽을 버릴 수는 없다. 위험을 완전히 틀어막은 구축은 끝내 자기 심장박동을 틀어막는다.
4 스스로 토대를 고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인 물은 누군가 휘저어야 한다. 이번에는 구축이 직접 나섰다.
1990년이 지나자 국제축구평의회는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다. 1992년, 골키퍼가 같은 팀 선수가 의도적으로 백패스한 공을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하는 새 규칙을 통과시켰다. 이후 축구에 깊은 영향을 미칠 규칙이었다. 그 규칙의 서문에는 목표가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시간 끌기를 단호하게 막고, 최근 자주 실종되곤 했던 공격 정신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는 것이었다. 훗날 국제축구평의회는 규칙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이 변화의 계기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에 있었다고 직접 밝혔다.
백패스는 이 대회의 지루함을 압축해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당시에는 수비수가 골키퍼에게 공을 돌려주고, 골키퍼가 그것을 안아 든 채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시간을 끌며 소극적으로 경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새 규칙은 이때 쓸 수 있었던 골키퍼의 두 손을 묶어 버렸다. 돌아온 공은 발로 처리해야 했다. 발을 쓰면 위험이 생기고 실수할 수도 있으니, 더는 태평하게 시간을 죽일 수 없었다. 작은 규칙 하나가 후방에 머물던 공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다만 이번에는 방향이 거꾸로였다. 전에는 늘 잔여항이 구축을 뚫고 나왔다. 이번에는 구축이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은 끝에 되돌아서서 제 손으로 자기 토대를 고쳐야 했다. 그곳에 없었던 것, 볼 만한 축구와 공격 정신은 1990년의 잔디 위에 실재하는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없다는 사실을 통해 강렬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그 부재가 너무나 두드러졌기에 구축은 규칙을 만들어 그것을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잔여항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는 드문 경우다. 보통 잔여항은 요란하다.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불쑥 찾아와 골문을 뚫어 버리는 공처럼, 철저한 방비를 단번에 무색하게 만든다. 그런데 1990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회 전체에 깔린 지루함, 모두가 어딘가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도 딱 집어 말하기 어려웠던 빈자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특정한 골 하나나 특정한 선수 하나가 이를 대표하지 않았다. 월드컵 전체의 따분함이 그 형상이었다.
그래서 1990년은 앞뒤의 여러 대회 사이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해의 잔여항은 구체적이었다. 판정을 놓고 말이 엇갈렸던 웸블리의 그 골, 마라도나의 손,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던 그 공이었다. 언제나 어느 한순간을 가리키며 ‘저기, 바로 저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의 잔여항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가 없다. 얼굴이 없고, 52경기 전체의 지루함 속에 퍼져 있다. 그럴수록 오히려 어디에나 있다. 어느 한순간에 벌어진 뜻밖의 사건이 아니라 분위기 전체에 무언가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형태가 있는 잔여항이라면 구축도 어떻게든 둘러싸고 막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형태도 없이 널리 퍼진 결핍 앞에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돌아서서 자신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침묵하는 존재는 어떤 골보다 강력했다. 축구의 규칙을 만드는 기구 전체를 앉혀 놓고 제 규칙을 다시 살피게 했다. 잔여항은 언제나 요란하게 문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저 비어 있는 자리다. 모두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가리킬 수 없는 빈자리다. 결국 구축은 그 빈자리의 대가를 직접 치러야 한다.
규칙으로 공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는 있어도 공격할 의지까지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이 점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골키퍼의 손을 못 쓰게 할 수는 있지만, 한 팀에게 진심으로 공격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그러니 백패스 규칙은 증상을 다스렸을 뿐 근본을 고치지는 못했다. 소극적으로 경기하기를 더 까다롭게 만들었지만,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는 계산을 뿌리 뽑지는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구축은 자기 토대를 고쳤지만 사람들 마음속의 영리한 계산까지 고칠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소극적인 태도의 비용을 조금 높여, 지지 않으려는 축구가 전처럼 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이미 구축이 제 몸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술이었다.
한층 깊이 들여다보면 구축은 영원히 완전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구축이 원하는 것은 볼 만한 축구다. 그런데 볼 만한 축구는 선수들이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은 규칙이 손댈 수 없는 곳이다. 구축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바깥의 규칙뿐이다. 공을 어떻게 주고받을지, 손으로 만져도 되는지, 시간은 어떻게 셀지 같은 것들이다. 선수가 공을 차면서 속으로 무슨 셈을 하는지는 바꿀 수 없다. 소극적으로 나설 때 치러야 할 대가를 높일 수는 있어도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욕구를 조문에 써 넣을 수는 없다. 모든 규칙에 공통된 숙명이다. 행동을 규율할 수는 있지만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고, 게으름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있지만 사랑으로 가는 길을 깔아 줄 수는 없다.
기억할 것은 구축이 이번에 자신을 바꾼 이유가 변덕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조차 더는 보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루해진 스포츠라면 이미 병이 깊다. 백패스 규칙은 잘 돌아가는 것에 장점을 하나 더 얹은 개선이라기보다,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응급조치였다. 관중이 하품하다 하나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자기 토대에 손을 대겠다는 선택이었다. 달리 어찌할 수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지루함이 축구의 근본을 위협할 만큼 심각해졌음을 말해 준다.
5 우승을 결정한 페널티킥
1990년 7월 8일, 로마 올림픽 스타디움. 결승전에서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만났다.
대회 내내 그랬듯 경기는 지루했고, 팽팽하게 막혀 있었으며, 볼거리도 없었다. 65분, 교체로 들어온 아르헨티나의 몬손이 반칙으로 퇴장당했다. 월드컵 결승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85분에는 멕시코인 주심 코데살이 서독에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센시니가 페널티 지역 안에서 푈러를 넘어뜨렸다는 판정이었다. 브레메가 넣었다. 1 대 0. 그 페널티킥 하나가 우승 트로피의 주인을 정했다.
90분 가까이 답답하게 이어지던 결승이 끝내 그런 페널티킥으로 갈렸다는 사실은 이 대회를 잔혹할 만큼 잘 보여 준다. 두 팀 모두 제대로 공격해서 이길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럴 용기가 없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자 승패는 페널티 지역 안의 접촉 한 번과 심판의 순간적인 판단에 맡겨졌다. 팀들이 스스로 그라운드에서 자기 발로 우열을 가리기를 포기하면 결정권은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그 페널티킥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것을 너무 빈틈없이 따진 나머지 결승에서도 마음 놓고 뛰지 못한 경기 방식이 스스로 불러온 결말이었다. 경기가 끝나기 전 아르헨티나의 데소티마저 퇴장당했고, 아르헨티나는 아홉 명으로 결승을 마쳤다.
앞선 글들에서 살핀 논란의 판정들처럼 이 페널티킥도 세 층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첫째, 판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주심은 센시니의 반칙을 선언했고 브레메는 페널티킥을 넣었다. 이것은 기록이다. 둘째, 논란은 당시부터 있었다. 당일 보도에도 페널티킥 판정이 가혹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센시니가 푈러를 걸어 넘어뜨린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 대회에서 더 심한 접촉이 있었다고 매번 페널티킥을 주지는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셋째는 훗날의 재해석이다. 독일의 일부 논평은 그 전에 놓친 어떤 반칙에 대한 보상 판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것은 해석이지 심판이 스스로 밝힌 동기가 아니다.
세 층위를 분리하면 오래된 문제가 다시 드러난다. 판정은 내려졌다. 기록으로 남았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그 판정이 공정했는지는 끝내 결론 나지 않는 논쟁거리가 된다. 월드컵 우승이 공정한지 아닌지 분명히 말할 수 없는 페널티킥 하나에 매달렸다. 웸블리의 그 골을 두고 독일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항의했듯, 아르헨티나의 항의 역시 논쟁을 끝낼 답을 얻지 못할 운명이었다. 구축은 승패를 판결했지만 그 뒤에 있는 공정함까지 판결하지는 못했다. 웸블리에서 베르나베우를 거쳐 그날 밤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 틈은 줄곧 벌어져 있었다. 이 지루했던 월드컵에 이보다 더 씁쓸한 마무리가 있었을까. 우승팀마저 야유 속에서 논란의 판정 하나로 정해졌다.
수비와 지루함으로 이름난 월드컵이 이런 결승으로 막을 내렸다는 것은 운명처럼 들어맞는 결말이었다. 두 팀은 결승전을 생기 없이 치르다가 끝내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페널티킥 하나로 승부를 냈고, 거기에 레드카드 두 장까지 보탰다. 가슴을 뒤흔드는 마지막 장면도, 세계 정상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순간도 없었다. 남은 것은 논란의 페널티킥, 항의의 함성, 아홉 명으로 초라하게 경기를 마친 아르헨티나뿐이었다. 대회 전체가 자기 자신에게 찍은 도장 같은 결말이었다.
아르헨티나가 걸어온 길도 그 계산법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였다. 대회에서 다섯 골밖에 넣지 못했지만 끈질긴 수비와 두 차례 승부차기를 바탕으로 결승까지 갔다.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는 논리를 거의 끝까지 밀어붙인 셈이다. 적게 넣어도 괜찮다. 더 적게 지기만 하면 된다. 이런 팀이 마지막 경기까지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흐름이 드러난다. 1990년에는 다섯 골을 넣은 팀이 화끈하게 경기한 팀들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그 영리한 계산에 이보다 강한 증언은 없었다.
6 높이 들어 올려졌다가 다시 내려온 사람
답답한 바탕 위에도 몇 군데 빛나는 점은 있었다. 그중 가장 환하게 빛난 사람은 스킬라치였다.
수비와 지루함으로 이름난 월드컵에 골을 쏟아 넣는 공격수가 나타났다는 데는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축구계 전체가 누가 덜 먹는지를 겨루는 동안 스킬라치는 유독 누가 더 넣는지를 겨뤘고, 정말 여섯 골을 넣었다. 그 답답함 속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끼어든 사람 같았다. 그는 거의 천진한 방식으로 축구가 본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상기시켰다. 공은 발밑에서 꼼짝 못 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골망 안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 성인 대표팀에서 처음 뛴 것도 1990년 3월 말이었다. 이탈리아의 월드컵 첫 경기인 오스트리아전에서도 그는 교체 명단에 있었다. 75분에 들어가 결승골을 넣었다. 대표팀에서 치른 겨우 두 번째 경기였다. 그런 다음 이 무명에 가까운 선수는 멈출 줄을 몰랐다. 대회 통산 여섯 골을 넣고 골든부트를 받았다.
스킬라치를 8년 전의 로시와 나란히 놓으면 우연의 두 얼굴이 보인다. 로시 역시 결과가 비추는 빛에 갑자기 환해진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의 유령 같던 선수에서 3관왕의 영웅이 되기까지 불과 몇 주가 걸렸다. 하지만 로시에게 비친 빛 뒤에는 묵직한 우승 트로피가 있었다. 그 영광은 이후의 세월에도 눌리지 않을 만큼 무거웠고, 로시가 평생 그 빛 속에 살게 해 주었다. 스킬라치의 빛에는 붙들어 줄 우승이 없었다. 이탈리아는 그 대회에서 끝내 우승하지 못했다. 여섯 골은 눈부셨지만 두고두고 기릴 기념비로 굳어지지는 못했다. 빛이 흩어지자 그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둘 다 우연의 선택을 받았지만, 로시는 빛 속에 남았고 스킬라치는 한여름 동안만 불려 나왔을 뿐이었다.
이런 시작은 거의 현실 같지 않다. 대표팀 경력이 초라할 만큼 짧은 선수가 팀의 월드컵 첫 경기에 교체로 들어가 결승골을 넣더니, 그대로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달려 나갔다.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보상받는 감동담이 아니다. 너무 갑작스럽고 아무런 예고도 없어서, 운명이 무심코 이름 하나를 불러 본 것에 더 가깝다. 이유도 논리도 없다. 그저 그렇게 일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축구의 변두리에서 이름 없이 지냈을 사람을 단숨에 세계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이야기의 나머지 절반은 더 멍해지게 한다. 스킬라치는 이 월드컵 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골을 넣은 적이 없었다. 이 월드컵 이후에도 대표팀 생활을 통틀어 한 골을 더 넣었을 뿐이다. 대표팀 통산 일곱 골 가운데 여섯 골이 1990년의 그 여름에 몰려 있다. 아무런 전조 없이 한 줄기 빛이 그를 비추어 몇 주 동안 이탈리아 전체의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역시 아무런 전조 없이 꺼진 것 같다. 그를 원래의 이름 없는 자리로 돌려보내면서.
우연이 한 사람에게 작용하는 모습을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기도 어렵다. 우연은 이치를 따지지도 경력을 묻지도 않는다. 스킬라치를 골라 그렇게 높은 곳에 올려놓더니 몇 주 뒤에는 다시 내려놓았다. 8년 전 사리아에서 로시도 결과가 비추는 빛 속에 섰다. 다만 로시의 빛은 우승과 이어져 오랫동안 그에게 머물렀고, 스킬라치의 빛은 한 번 환히 빛난 뒤 흩어졌다. 똑같이 우연의 선택을 받고도 어떤 사람은 영원히 빛 속에 남고 어떤 사람은 여름 한 철만 환해진다. 스킬라치의 여섯 골은 그 여름에 분명히 존재했다. 그 뒤의 침묵도 똑같이 분명한 현실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월드컵 한 번이 그토록 밝게 비추었다가 그토록 빨리 돌려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스킬라치의 이야기가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바로 그 짧음에 있다. 그는 꾸준히 타오르는 별이 아니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이었다. 놀랄 만큼 밝았고 놀랄 만큼 짧았다. 여섯 골도, 골든부트도, 한여름 동안 이탈리아 전체가 보낸 환호도 모두 실제였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이후의 선수 생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연은 그에게 여름 하나를 주고 남은 세월은 평범함에 돌려주었다. 그의 삶은 그 여름이 중간을 잠깐 비추고 지나간 것 같다. 앞뒤는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가운데 그 한 토막만은 영원히 1990년의 이탈리아에 남았다.
7 그 눈물 한 방울과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이 대회는 유명한 눈물 한 방울도 남겼다.
1990년 7월 4일, 잉글랜드와 서독의 준결승. 가스코인은 반칙으로 옐로카드를 받았다. 앞서 벨기에전에서 이미 경고를 받은 터라, 잉글랜드가 결승에 올라가더라도 그는 출전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카메라는 곧바로 눈물이 고인 그의 얼굴을 잡았다. 이 장면은 훗날 영국에서 이 월드컵을 돌아볼 때 가장 자주 되풀이해 방송한 화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눈물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리하게 계산하는 법을 배우고 감정을 꼭꼭 숨기던 시대에, 한 젊은이가 온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아쉬운 일을 두고 숨김없이 울었다. 패배해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그때 아직 지지 않았다. 그가 울었던 것은 예감 때문이었다. 결승에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서러움 때문이었다. 어디에나 계산이 배어 있던 그 대회의 답답함 속에서, 그렇게 맨얼굴로 드러난 진심은 유난히 눈에 띄었고 유난히 귀했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기억하는 것도 영리함 일색인 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순수함 때문인지 모른다.
훗날 이 눈물에는 대단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바로 그 눈물이 잉글랜드 축구의 중산층화와 상업화에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말을 흔히 한다. 하지만 인과관계는 좀 더 세심하게 말해야 한다. 그것은 사후에 나온 해석이지 단 하나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신중한 서술이다. 실제로는 여러 조건이 나란히 움직이면서 서로를 강화했다. 1990년 잉글랜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가스코인의 눈물은 축구 스타의 매력을 널리 전했다. 영국 대중에게 축구를 소비하려는 수요가 훨씬 더 폭넓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동시에 영국은 1990년 방송 규제를 완화했고, 새로운 유료방송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흐름이 합쳐져 훗날 프리미어리그와 유료방송 시대가 열리는 배경을 이루었다.
그 모든 일을 눈물 한 방울 덕으로 돌리는 것은 이야기가 또 한 번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눈물 한 방울은 기억하기 쉬운 상징이고, 얼마든지 다시 틀 수 있는 화면이다. 그래서 그것이 앞에 나서 복잡한 상업적·기술적 변화 전체를 대신해 공을 차지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감동적인 순간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본과 기술, 정책과 대중의 취향이 함께 꼬여 만들어진 굵은 줄이다. 그 눈물은 진짜였고 감동적이었으며, 그 줄을 이루는 실 한 가닥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다만 이후의 모든 일을 그것 혼자 일으킨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여기서는 어디까지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눈물이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분명 마음을 움직였고, 본래 축구를 보지 않던 수천만 명에게 축구 때문에 우는 얼굴을 기억하게 했으며, 축구를 더 섬세한 어떤 감정과 이어 주었다. 역사를 함께 움직인 힘 가운데 실제로 존재했던 하나였다. 그러나 하나의 힘이었다고 인정하는 것과 유일한 동력으로 받드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이고 후자는 좋은 이야기의 유혹에 굴복하는 태도다. 역사는 눈물 한 방울이 움직인 것으로 기억될 때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방송법 개정이나 유료방송의 진입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훨씬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상징 하나를 한 시대의 역사 전체를 움직인 동력으로 삼는 것은 기억이 또 한 번 수고를 생략하는 일이다.
8 나폴리 사람들의 곤혹스러움
준결승에서는 또 하나의 복잡한 사연이 얽혔다. 무대는 나폴리였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준결승은 나폴리의 산파올로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마라도나는 바로 그 나폴리 구단의 우상이었다. 경기 전 그는 언론을 향해 말을 꺼냈다. 핵심은 단순히 나폴리 사람들에게 아르헨티나를 응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을 겨눴다. 이탈리아의 권력자들은 나머지 364일 동안 나폴리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이제 하루만 이탈리아인이 되라고 한다는 말이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은 나폴리 사람들에 대한 존중일 뿐이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폴리 사람들도 이탈리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 경기를, 이탈리아 안에서 나폴리가 오랫동안 멸시받아 온 맥락 속에 놓았다.
이 말의 무게는 어느 편을 들었느냐보다 평소 조심스럽게 덮어 두었던 사실을 드러냈다는 데 있었다. 이탈리아 남북 사이에 있던 멸시는 평소에는 은근했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라도나는 온 나라의 시선이 모인 바로 그때 그것을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물은 셈이다. 평소 나폴리를 어떻게 대해 놓고, 이제 와서 무조건 당신들 편에 서라고 요구하는가. 이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나폴리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쌓인 서러움은 더 이상 감춰 둘 수 없었다. 그가 균열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있던 균열을 비추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산파올로의 분위기에 관해서는 믿을 만한 기록들이 한결같이 한쪽으로 쏠린 응원보다 갈라진 마음을 전한다. 나폴리의 현지 팬들은 대표팀을 응원할 것인지 구단의 우상을 응원할 것인지 사이에서 난처했다. 관중석의 한 현수막에는 ‘디에고는 우리 마음속에, 이탈리아는 우리 노래 속에’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현수막에는 ‘마라도나, 나폴리는 당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홈 관중 가운데 일부가 아르헨티나를 응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분위기는 뒤섞이고 갈라져 있었다. 산파올로 전체가 아르헨티나 편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그 현수막들은 갈라진 마음을 또렷하게 써 놓았다. ‘디에고는 우리 마음속에, 이탈리아는 우리 노래 속에.’ 마음 하나를 둘로 나누어 절반은 영웅에게, 절반은 나라에 준 셈이다. ‘나폴리는 당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이다.’ 사랑도 진심이고 조국도 진짜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 다 지킬 수가 없다. 대충 내건 구호가 아니었다. 어느 쪽인지 밝히라는 요구를 받은 도시 하나가 서툴지만 정직하게 털어놓은 속마음이었다.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은 나폴리 사람들 스스로도 마음속에 명쾌한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곤혹스러움 앞에서는 잠시 멈춰 볼 필요가 있다. 나폴리 사람들은 잔인한 자리에 놓였다. 두 가지 소속 가운데 하나를 그 자리에서 골라야 했다. 한쪽에는 자기 나라가, 다른 쪽에는 자기 영웅이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해야 할 선택이 아니었다.
더 깊이 보면 나폴리 사람들의 난처함은 소속에 관한 보편적인 난제를 드러낸다. 사람은 여러 곳에 동시에 속할 수 있다. 자기 나라에도 속하고 자기 도시에도 속한다. 평소에는 이런 여러 소속이 아무 탈 없이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그것들이 억지로 대립하는 자리에 놓이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요구가 들이닥친다. 그날 밤 산파올로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잔인한 것은 나폴리 사람들이 어느 쪽을 택해도 자기 일부를 배신해야 했다는 점이다. 나라를 택하면 숱한 영광을 안겨 준 영웅을 배신하고, 영웅을 택하면 자신도 마음을 함께하는 국기를 배신하게 된다. 자기 일부를 배신하도록 강요받는 것. 그것이 그 곤혹스러움의 진짜 무게다. 마라도나의 말이 아프게 파고든 것은 실제 상처를 찔렀기 때문이다. 중심부는 어떤 지역을 오랫동안 깔보다가 충성이 필요해진 순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충성하라고 요구했다. 그날 산파올로 관중석의 분열은 나폴리 사람들이 변덕스러워서 생긴 일이 아니다. 원래 있어서는 안 될 틈 사이에 그들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난처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난처함을 만든 사람은 그들 자신이 아니었다.
9 디펜딩 챔피언과 서른여덟 살의 교체 선수
이 지루한 대회는 뜻밖의 승리로 문을 열었다.
개막전에서 카메룬은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 만났다. 모두가 한쪽으로 기운 첫 경기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카메룬의 1 대 0 승리였다. 지난 대회 트로피를 들고 온 아르헨티나를 쓰러뜨린 것이다. 이 아프리카 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8강까지 올라 당시 아프리카 팀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는 심지어 정규시간 한때 2 대 1로 역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2 대 3으로 아쉽게 지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직전에 멈췄다.
이 팀에서 가장 빛난 이름은 로제 미라였다. 그는 네 골을 넣었고, 그 네 골은 모두 교체로 들어가서 넣은 골이었다.
벤치에서 일어난 노장이 번번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장면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는 젊음의 체력으로 마구 밀어붙이지 않았다. 노련한 감각으로 가장 알맞은 때에 가장 알맞은 자리에 나타났다. 카메룬에 골이 필요할 때마다 감독은 벤치의 그를 불러냈고, 그는 번번이 기대에 답했다. 젊음과 속도를 갈수록 맹신하는 스포츠에서도 경험과 지혜에는 여전히 대신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의 나이를 두고는 나중까지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나이는 공식 기록보다 많다는 이야기였다. 공식 기록에는 1952년생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에 따르면 1990년에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더 나이가 많았다는 말은 널리 퍼졌지만 공식 생년월일을 뒤집을 만한 원본 증명서나 등록 문서는 찾을 수 없다. 신중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공식적으로는 1952년생이고, 실제로는 더 나이가 많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확증할 만한 원자료는 없다. 서른여덟 살 선수가 벤치에서 일어나 번번이 경기를 바꿨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움직인다. 확인되지 않은 더 큰 숫자로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꾸밀 필요는 없다.
카메룬의 여정은 그 지루한 월드컵에서 보기 드물게 앞뒤 재지 않고 솟아오른 활기였다. 유럽과 남미의 강팀들이 자기 진영에 웅크려 손익을 꼼꼼히 따지는 동안, 이 아프리카 팀은 자유분방하고 과감하게, 결과를 겁내지 않고 뛰었다. 세상에 가장 큰 놀라움을 안겼지만 수비의 허점 때문에 몇 번이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카메룬의 존재 자체가 그 대회의 주류를 향한 조용한 반박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수비와 보수적인 운영이 승리로 가는 바른길임을 입증하려 할 때, 이 아프리카 팀은 정반대 방식으로 8강에 올랐고 가는 곳마다 놀라움을 만들었다.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는 계산은 유일한 계산법도, 반드시 맞는 계산법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 것이다. 자유분방한 공격과 앞뒤 가리지 않는 돌파로도 멀리 갈 수 있고, 온 세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우승은 못 했지만 더 높은 곳까지 간 숱한 팀보다 많은 것을 남겼다. 모두가 계산에 밝아 지루해진 대회에서 가장 오래 기억된 쪽은 하필 계산에 가장 서툰 팀이었다.
그 생생함은 대회의 주된 흐름과 눈부실 만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강팀들이 저마다 빈틈없는 요새로 무장할 때 카메룬은 문을 열어 둔 채 경기했다. 너무 높이 올라갔다가 역습을 허용했고 수비의 허점으로 골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덕분에 이 대회에서 가장 피를 끓게 한 경기들 가운데 몇몇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가장 영리한 팀이 아니었다. 계산으로 따지면 노련한 유럽 강팀들에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그 서툰 계산과 무모함이야말로, 지루함 일색인 대회에서 그들을 가장 선명한 색으로 만들었다. 때로는 덜 영리한 쪽이 축구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깝다. 가장 영리하지는 않았어도 가장 생생했다. 바로 그 생생함 때문에 사람들은 답답한 경기들 사이에서 그들을 기억했다.
10 마무리
이제 이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보자.
1990년의 이탈리아는 구축이 맞닥뜨린 새로운 곤경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앞선 대회들에서 구축은 늘 가두지 못해서 졌다. 경기 하나, 사람 하나, 우연한 사건 하나. 언제나 무언가가 가장 치밀한 계산에서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가 구축을 뚫은 것이 아니었다. 구축이 스스로 숨을 막았다. 모든 팀이 합리적으로 실점을 막는 데 온 힘을 쏟고, 위험을 제로로 줄이는 것이 공통의 최적해가 되자, 구축은 제 계산을 따라 물샐틈없지만 생기도 전혀 없는 막다른 길로 들어섰다. 완벽함의 또 다른 얼굴이다. 베른의 완벽함은 가두지 못했고 로마의 완벽함은 너무 꼭 가뒀다. 공을 꼼짝 못 하게 가두면서 축구의 심장박동까지 함께 가뒀다.
그리고 잔여항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골문을 뚫고 들어가는 공이 아니라, 비어 있는 자리였다. 모두가 느낀 답답함, 철통 수비에 밀려난 공격 정신이었다. 그 부재가 너무도 두드러졌기에 구축은 제 손으로 자기 토대를 고쳐야 했다. 1992년 새 규칙을 세워 그곳에 없는 것을 다시 불러오려 했다. 하지만 구축이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골키퍼의 손을 묶어 공이 다시 흐르게 할 수는 있어도 한 팀에 진심으로 공격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었다. 소극적인 경기의 비용을 높일 수는 있어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골을 넣는 것보다 먹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는 계산을 지워 버릴 수는 없었다. 구축은 제 몸에 수술을 했다. 증상은 다스렸지만 근본은 고치지 못했다.
구체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모든 설명보다 더 생생하다. 스킬라치는 한여름의 빛에 높이 들어 올려졌다가 그 빛이 꺼지면서 조용히 내려왔다. 그의 여섯 골과 그 뒤의 침묵은 똑같이 사실이었다. 나폴리 사람들은 나라와 영웅 사이에 끼어 애초에 자신들이 할 필요가 없었던 선택을 그 자리에서 해야 했다. 그 난처함은 변덕이 아니라 갈라진 틈에 끼인 데서 나왔다. 서른여덟 살의 교체 선수는 몇 번이고 벤치에서 일어나 경기를 다시 썼다. 확인되지 않은 어떤 숫자도 그의 이야기를 꾸며 줄 필요가 없었다. 구축은 위험을 모조리 계산할 수 있고, 규칙으로 소극적인 경기를 금지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극한까지 최적화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사람들에게 있는, 계산되기를 거부하는 것들만큼은 최적화해서 없앨 수 없다. 위험을 제로로 줄인 월드컵도 끝내 자신을 완벽하게 밀봉하지는 못했다. 공격은 가뒀지만 카메룬의 자유분방함은 가두지 못했다. 스킬라치의 느닷없는 등장도 가두지 못했다. 그 빈자리가 축구를 대신해 외친, 볼 만한 경기에 대한 갈망도 가두지 못했다. 구축이 모든 것을 계산하려 들수록, 다 계산했다고 여긴 끝에서 반드시 무언가 빠뜨린 것과 마주친다. 이 스포츠 그 자체의 심장박동이다. 그 박동을 억누르면 지루함이라는 방식으로 항의가 터져 나와 구축의 손을 풀게 한다. 손이 풀리면 축구는 다시 힘차게 흐른다. 다음번에 누군가 다시 모든 것을 계산하려 들 때까지.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