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테카: 한 손과 한 골, 같은 사람의 4분
마라도나가 손으로 훔친 골과 두 발로 완성한 세기의 골 사이에는 겨우 4분이 있었다. 영웅과 사기꾼이라는 두 판결 어느 쪽에도 다 담기지 않는 한 인간과 축구의 여항을 읽는다.
51분과 55분
1986년 6월 22일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경기장.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후반 51분, 디에고 마라도나는 피터 실턴과 함께 떠올랐고 왼손으로 공을 건드렸다. 주심 알리 빈 나세르는 골을 선언했고, 즉시 에워싼 잉글랜드 선수들의 항의도 이미 내려진 판정을 되돌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4분 뒤 마라도나는 자기 진영에서 공을 받아 잉글랜드 수비진을 가로질렀다. 짧은 시간 동안 다섯 명의 필드 플레이어와 골키퍼를 차례로 벗겨 낸 뒤 밀어 넣은 골은 훗날 ‘세기의 골’로 불렸다. 앞의 골에는 끝없는 변론이 붙지만, 뒤의 골은 움직임 자체가 증명이었다.
한 경기 안에서 가장 불결한 골과 가장 깨끗한 골이 같은 몸을 통과했다. 둘이 몇 년 떨어져 있었다면 기억은 편한 서랍 두 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4분이라는 거리는 분류를 허락하지 않았고, 분노와 경탄을 동시에 품으라고 관중에게 요구했다.
모두가 보았지만 판정에는 닿지 못했다
텔레비전의 느린 화면은 손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다만 1986년의 경기장 안에서 효력을 가진 눈은 주심과 부심의 눈뿐이었다. 경기장 밖 수억 명이 더 정확한 장면을 가지고도 경기 안의 결론에는 아무것도 보탤 수 없었다.
여기서 구(構)는 무능해서만 실패한 것이 아니다. 경기를 끝내려면 어느 순간 판정을 최종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사후에 모든 결과를 되감기 시작하면 종결이라는 기능 자체가 사라진다. 구는 명백한 오심을 기록에 남기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마지막 휘슬의 권위를 지켰다.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의 관점에서 이 장면은 기술의 빈칸을 드러낸 착(鑿)이었다. 이어 비디오 판독이라는 새로운 구(構)가 자라났지만, 그것도 모든 질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손이 닿았다는 사실은 확인해도 한 인간 전체에 내릴 도덕적 판결까지 화면이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판결할 수 없는 사람
마라도나를 사기꾼이라고만 부르면 55분의 질주가 그 말에 저항한다. 그를 순수한 영웅이라고만 부르면 51분의 왼손이 다시 나타난다. 두 사건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각주가 아니라, 모두 극단까지 밀고 간 진실이다.
사람은 복잡한 인물을 한 단어로 봉합할 때 안도한다. 그러나 이 4분의 정직함은 봉합을 거부하는 데 있다. 여항(餘項)은 판정 밖에 남은 작은 찌꺼기가 아니라, 영웅과 악당이라는 두 틀을 함께 무너뜨리는 살아 있는 인간 그 자체였다.
신의 손과 뒤늦게 만들어진 복수
경기 뒤 마라도나는 그 골이 ‘조금은 마라도나의 머리로, 조금은 신의 손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부정도 자백도 아닌 재치 있는 문장이 평범한 사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같은 해 더 직접적인 인정에 가까운 발언이 있었고 2005년에는 공개적으로 손이었다고 말했지만, 기억은 가장 이야깃거리가 되는 문장을 골랐다.
경기에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상처가 실제 배경으로 놓여 있었다. 다만 그날의 즉흥적인 반칙을 민족적 복수의 완성된 선언으로 읽는 틀은 훗날 마라도나 자신과 반복되는 서술이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당시의 정서와 뒤늦은 의미 부여를 구별해야 역사를 전설에 빼앗기지 않는다.
뒤의 해석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전쟁과 희생, 패전의 감정은 실재했다. 다만 맥락은 맥락이고 사후의 추인은 추인이다. 둘을 한 문장으로 합치면 이야기는 매끈해지지만, 사건이 처음 지녔던 우발성과 인간적인 계산은 사라진다.
한 사람의 대회, 열한 사람의 우승
이 대회가 ‘마라도나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는 득점과 도움, 드리블과 시야로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거의 혼자 조직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서독을 상대로 골을 넣은 호세 루이스 브라운, 호르헤 발다노, 호르헤 부루차가가 없었다면 개인의 신화는 우승으로 닫히지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2대0으로 앞서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와 루디 푈러에게 연속 골을 내줬고, 끝내 부루차가의 결승골로 3대2를 만들었다. 완벽한 영웅 서사는 동료들의 발을 배경으로 밀어내지만, 실제 경기는 늘 여러 몸의 협업과 한 번의 갈림길 위에서 끝난다.
무너진 도시 위의 축제
멕시코는 콜롬비아가 개최를 포기한 뒤 1986년 대회를 넘겨받았다. 개막 8개월여 전인 1985년 9월 대지진이 멕시코시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아스테카에서는 예정대로 세계의 축제가 열렸다. 복구 중인 도시와 환호하는 경기장은 같은 시간 속에 놓여 있었다.
대회는 우승팀과 명장면을 선명하게 기록했지만, 축제의 빛 바깥에 남은 삶까지 결산하지는 못했다. 한 손과 한 골, 개인과 팀, 전쟁의 기억과 지진 뒤의 도시가 겹친 1986년은 구가 하나의 결말을 만들 때마다 다른 여항이 그 결말의 가장자리에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