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N | 中文 | 日本語 | Français | Deutsch | Español | 한국어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세계 축구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 제12편 / 총 22편

아스테카

두 손과 한 골, 같은 사람이 남긴 4분

마라도나가 손으로 훔친 골과 두 발로 완성한 세기의 골 사이에는 겨우 4분이 있었다. 영웅과 사기꾼이라는 두 판결 어느 쪽에도 다 담기지 않는 한 인간과 축구의 여항을 읽는다.

Han Qin (秦汉)·2026
이 글의 목차

1 4분에 담긴 두 가지

1986년 6월 22일,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스타디움.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후반전, 경기 시작 51분째와 55분째.

이 두 시각은 이후 거듭 나란히 놓이면서 축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간의 짝이 되었다. 각각이 얼마나 전설적인 순간이었느냐보다, 둘 사이가 너무 가까웠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경기에서 보낸 4분인데, 마치 서로 다른 두 세계에서 온 장면 같았다.

51분, 마라도나가 공중볼을 다투려고 뛰어올랐고 공은 잉글랜드 골키퍼 실턴을 넘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느린 화면에는 똑똑히 보였다. 공을 밀어 넣은 것은 머리가 아니라 그의 왼손이었다. 튀니지 출신 주심 벤 나세르는 골을 인정했고, 잉글랜드 선수들이 곧바로 몰려들었다.

항의는 그 자리에서 터졌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서서히 불거진 일이 아니었다. 마라도나가 아직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을 때 주심은 이미 센터서클을 가리켜 득점을 인정했고, 잉글랜드 선수들은 주심을 둘러싸고 핸드볼을 선언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손짓은 이미 나간 뒤였다. 판정에 리플레이도 비디오 심판도 쓰지 않던 시절, 센터서클을 가리킨 손짓은 곧 최종 판결이었다. 에워싸고 따져 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그 골이 그대로 인정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경기 뒤 마라도나는 유명한 한마디를 남겼다. “조금은 마라도나의 머리, 조금은 신의 손 덕분이었다.”

참 정교하게도 만든 말이다.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인 것을 슬쩍 신에게 맡겨 버렸다. 듣는 사람은 모두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정작 그는 단 한마디도 자백하지 않았다. 능청스럽고 익살맞으며, 뻔뻔함에 가까운 태연함까지 묻어났다. 그 말이 훗날 세계 곳곳으로 퍼진 것은 무엇을 명쾌하게 밝혀 주어서가 아니었다. 빤히 드러난 속임수를 듣고도 차마 미워하기 어렵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55분, 그는 자기 진영에서 공을 잡고 내달렸다. 잉글랜드 선수 여러 명을 연달아 제친 뒤 골키퍼마저 따돌리고 빈 골문에 공을 밀어 넣었다. 훗날 ‘세기의 골’로 뽑힌 득점이었다.

자기 진영에서 왼발로 처음 공을 건드린 순간부터 공이 잉글랜드 골문 안으로 굴러 들어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십몇 초에 불과했다. 그 짧은 동안 그는 경기장 절반이 훨씬 넘는 거리를 가로지르며 달려드는 선수들을 하나씩 떨쳐 냈다. 무작정 돌진한 것이 아니었다. 걸음마다 미리 재어 놓은 듯 정확했고, 무게중심을 한번 흔들 때마다 수비수는 허탕을 쳤다. 마지막으로 뛰쳐나온 골키퍼까지 제치자 골문이 활짝 열렸다. 가볍게 밀어 넣기만 하면 됐다. 그 십몇 초 동안 아스테카 전체가 먼저 숨을 죽였고, 이내 폭발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이 골을 수없이 한 프레임씩 되짚었다. 몇 번 공을 건드렸는지, 몇 미터를 달렸는지, 몇 초가 걸렸는지, 몇 명을 제쳤는지 헤아렸다. 수치는 조금씩 달랐다. 처음 공을 받는 동작을 터치 한 번으로 셀 것인가. 같은 수비수를 두 번 상대한 것을 한 명으로 셀 것인가, 두 명으로 셀 것인가. 직선거리를 잴 것인가, 실제로 공을 몰고 간 경로를 잴 것인가. 기준에 따라 숫자는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어떻게 세든 그 골의 위대함은 숫자 속에 있지 않다. 숫자는 얼마나 빠르고 멀고 어려웠는지 확인해 줄 수 있어도, 30여 년이 지나서도 사람들이 왜 그 장면 앞에서 숨을 죽이는지는 재어 주지 못한다. 잴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재는 순간 놓쳐 버리는 것도 있다.

4분이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경기에서 먼저 손 하나로 골 하나를 훔치더니, 이어 두 발로 축구사에서 가장 깨끗한 골을 만들어 냈다. 반은 속임수이고 반은 천재성이었다. 반은 분노를 불렀고 반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나뉜 몫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차례로 나타난 두 모습이었다.

몇 년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경기에서 나온 두 골이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것이다. 따로 기억하면 그만이었다. 하나는 원한으로, 하나는 좋은 기억으로 남겨 두면 됐다. 그런데 하필 같은 경기의 4분 속에 바짝 붙어 들어앉아, 서로를 떼어 낼 수 없게 되었다. 그 손만 기억하고 질주를 잊을 수도 없고, 질주에만 감탄하면서 손은 없었던 척할 수도 없다. 시간은 두 장면을 한데 못 박아 놓고, 경기를 본 모든 사람에게 정반대의 두 감정을 동시에 품으라고 요구했다. 이 4분이야말로 그 월드컵 전체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사실이 불분명해서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실은 더없이 분명했다. 51분에는 손이었고, 55분에는 발이었다. 두 가지 모두 다툴 여지가 없었다. 어려운 것은 그토록 분명한 두 사실이 정반대의 판단을 가리키면서도, 같은 사람, 같은 경기, 같은 4분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사실이 선명해질수록 오히려 판결을 내리기는 더 어려워졌다.

2 보이는데도 닿지 않는 곳

먼저 그 손부터 보자.

오심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오심이 생겨난 방식이다. 당시 주심 벤 나세르는 나중에 손을 보지 못해 헤딩인 줄 알았으며 부심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의 장면이 벌어진 쪽을 맡은 불가리아 출신 부심 도체프는 깃발을 들지 않았다. 훗날 두 사람의 설명은 엇갈렸다. 한 사람은 제대로 보지 못해서 부심을 기다렸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당시의 협력 방식에 묶여 오늘날처럼 주심과 즉시 상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순간 누구도 그 골을 막아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속 시원히 손가락질할 만한 악인은 여기에 없다. 주심은 직무를 내팽개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역할 분담에 따라 부심의 신호를 기다렸다. 부심도 게으름을 피운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협력 방식 때문에 마음속 의문을 제때 전달하지 못했다. 각자 당시 절차로는 그럴듯한 일을 했는데, 둘을 합치니 온 세상이 본 핸드볼 하나를 놓쳤다. 구축의 허점은 누군가가 악해서 생기는 경우보다, 저마다 자기 칸 안에서 별문제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동안 칸과 칸 사이로 무언가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익숙한 문제가 숨어 있다. 20년 전 웸블리의 골을 두고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은 너무 빨랐고 사람의 눈은 따라가지 못했다. 1986년의 손은 정반대였다. 텔레비전 앞의 수억 명이 순식간에 알아보았고, 느린 화면을 틀자 더없이 선명했다. 하지만 잘 보았다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작 판정을 맡은 두 사람은 제대로 보지 못했고, 1986년에는 그 두 쌍의 맨눈 말고는 그들의 판단을 바로잡을 수단이 없었다. 판정이 내려지고 기록은 닫혔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현장에서 주심을 둘러싸고 항의했지만 원심은 바뀌지 않았다. 찾아볼 수 있는 자료의 범위 안에서는,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공식 이의 신청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오래된 문제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잘 보이지 않아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똑똑히 보이는데도 여전히 닿지 않는다는 것은 더 괴롭다. 진실은 인간 시력의 한계 너머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난처한 틈새에 끼어 버렸다. 경기장 밖의 수억 명은 보았는데, 안에서 보아야 할 두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 시대에는 밖에서 본 것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기술의 틈이었다. 1986년 경기장에서 오심을 바로잡을 수단은 거의 없었다. 주심 한 명과 부심 두 명의 맨눈이 판정 도구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놓치면 만회할 길이 없었다. 반면 관중석과 텔레비전 앞의 수억 명에게는 사실 더 선명한 화면이 이미 주어져 있었다. 느린 화면도, 여러 각도의 화면도, 거듭 돌려 보는 리플레이도 있었다. 기막힌 일은 바로 이것이다. 가장 정확히 보아야 할 세 사람에게는 수단이 가장 적었고, 가장 멀리 떨어진 수억 명은 오히려 가장 잘 보았지만, 그들이 보았다는 사실은 경기장 안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진실이 없었던 게 아니다. 수많은 화면 위에 환히 떠 있었다. 다만 그 화면에서 세 사람의 눈으로 이어지는 길이 없었다. 구축의 손이 짧았던 까닭은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판정을 맡은 그 두 쌍의 눈에 보인 것만 유효하다고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눈에 보인 것은 아무리 선명해도 경기장 밖에서 본 것일 뿐이었다.

이 충돌은 구축이 지키는 최후의 선 하나를 다시 비추었다. 판정은 일단 내려지면 끝이다. 온 세상이 잘못을 알아보아도 구축은 돌아가 고치려 하지 않는다. 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라, 고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사후에 판정을 뒤집을 수 있게 하면 모든 경기가 재심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러면 진정으로 종결되는 경기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차라리 누구나 아는 억울함 하나를 짊어지고라도 최종 판정이라는 선을 지키려 한다. 1966년에는 명백히 가릴 수 없는 골을 지켰고, 1986년에는 명백히 보이는 손을 지켰다. 지킨 선은 같았다.

그 선을 지키느라 구축이 치른 대가는 뻔히 보인다. 온 세상이 아는 잘못 하나가 그렇게 버젓이 기록에 남았고, 잉글랜드는 분을 삼켰다. 수십 년 동안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 선을 지키지 않으면 대가는 더 커진다. 최종 판정을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경기가 끝난 것인지, 어떤 결과가 확정된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구축은 경기에 마침표를 찍을 능력을 잃게 된다. 두 해악을 저울질한 끝에, 눈에 보이는 억울함을 떠안더라도 마침표를 찍을 권한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이는 냉혈함이 아니다. 판정을 내리는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두 가지 나쁨 중에서 그나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는 쪽을 고른 것이다.

3 다른 절반 논박할 수 없는 골

4분 뒤의 골은 이 문제의 반대쪽 끝에 있다.

그 손이 구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면, 이 골은 애초에 구축이 손을 뻗을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경기에서, 이번에는 자기 진영을 출발해 잉글랜드 필드 플레이어 네 명을 연이어 제치고 골키퍼까지 따돌린 뒤 그물 안으로 공을 보냈다. 흔히 인용되는 기술 분석의 수치는 터치 11회, 약 10~11초, 50~60미터다.

이 숫자들을 한데 놓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상대가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와중에, 한 사람이 공을 몰고 십여 초 만에 경기장 절반을 훨씬 넘게 가로질렀다. 네 명에 골키퍼 한 명까지 제치는 동안 패스도, 멈춤도 단 한 번 없었다. 그 경로를 쪼개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극도로 어려운 동작이다. 그는 그 어려운 동작들을 단숨에 한 줄로 이어 냈다. 흐르는 물처럼, 힘 하나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어려운 일을 가장 쉬운 일처럼 해내는 것. 천재의 가장 매혹적인 점이자, 우리 눈을 가장 감쪽같이 속이는 점이다. 국제축구연맹은 나중에 이 골을 ‘세기의 골’로 뽑았다.

이 골이 유별난 까닭은 그 안에 아무 논란도 없다는 데 있다. 핸드볼인지 가려야 할 일도, 오프사이드를 재어야 할 일도, 판정을 두고 다툴 일도 없었다. 나중에 해명해야 할 것이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골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낮의 빛 속에 훤히 펼쳐져, 누구도 흠을 잡을 수 없는 골이었다. 영어 텔레비전 중계의 데이비스는 그 자리에서 외쳤다. 이 골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순전한 축구 천재의 솜씨라고. 스페인어 중계의 모랄레스는 훗날 그 골에 버금갈 만큼 오래 회자될 말을 터뜨렸다. “우주의 연이여, 대체 어느 별에서 왔는가!”

한쪽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했고, 다른 쪽은 말이 거의 두서없어질 만큼 흥분했지만 두 중계가 가리킨 뜻은 같았다. 이 골에는 더 보탤 말이 없었다. 변호가 필요 없을 만큼 훌륭했다. 바로 이것이 그 손과 이 골 사이의 가장 깊은 차이다. 손에는 끝없는 변호가 필요하다. 옳은 판정인가, 골로 쳐야 하는가, 그래도 되는가. 오늘까지도 다툼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골에는 변호 한마디가 필요 없다. 골 자체가 자신의 증거다.

두 골을 나란히 놓으면 4분 속의 두 극이 모습을 갖춘다. 핸드볼로 넣은 골에는 논란과 판정과 진실, 인정해야 하느냐는 다툼이 온통 달라붙어 지금껏 이어진다. 세기의 골에는 한 치의 논란도 없다. 어떤 판정이 보태져야 완성되는 골도 아니며, 어떤 판정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골이다. 앞의 것은 구축의 손이 닿지 않는 잔여항이다. 판정의 틈에 빠져, 끝내 공정함을 명쾌히 말할 수 없는 채로 남는다. 뒤의 것은 애초에 구축의 판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골 그 자체로 자명하고 자족하며, 바깥에서 무엇을 빌려 오지 않는다. 같은 사람이 같은 경기의 4분 동안 한 손으로는 축구에서 중재가 가장 필요한 모습을, 다른 손으로는 중재가 가장 필요 없는 모습을 내놓았다.

두 모습이 한자리에 모이고 나니, 마치 축구가 마라도나의 몸을 빌려 스스로를 털어놓는 듯하다. 한쪽에는 결론 나지 않는 논쟁과 판정, 오심과 시비가 가득하다. 완비된 규칙과 여러 심판이 달라붙어 끝없이 가리고 판단해야 한다. 다른 쪽에는 너무도 순수해서 의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골이 그 정도로 훌륭하면 어떤 판정도 군더더기다. 축구는 중재가 필요한 그 손이면서, 중재가 필요 없는 그 질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둘은 본디 하나다.

4 구축은 이 사람을 판결할 수 없다

1986년의 진짜 난제는 이것이다. 구축이 마주한 것은 선인도 악인도 아니었다. 4분 동안 속임수와 천재성을 모두 극한까지 밀어붙인 사람이었다.

구축은 마라도나를 사기꾼이라고 판결할 수 없다. 그에게 그 손밖에 없었다면 이야기는 간단했다. 핸드볼로 승리를 훔친 부정행위자를 치욕의 기둥에 묶어 두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는 4분 뒤 논박할 수 없는 그 골을 넣었다.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한 골이었다. 그 골에서 드러난 기량은 ‘부정행위자’라는 말 하나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천재라고 판결할 수도 없다. 그에게 그 질주밖에 없었다면 이 역시 간단한 이야기였다. 오로지 실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영웅을 신전에 모셔 놓으면 된다. 하지만 4분 전, 그는 분명히 손으로 골 하나를 훔쳤다. 그 손은 엄연한 사실이어서 발뺌할 수도 없다.

둘 다 진실이다. 그것도 극한까지 간 진실이다. 그는 오점 있는 천재가 아니다. ‘오점’은 너무 가벼운 말이다. 천재성이 본바탕이고 핸드볼은 어쩌다 나온 실수인 것처럼 들린다. 이따금 재능을 드러내는 사기꾼도 아니다. 속임수와 천재성이 각각 정점에 오른 채 한 사람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말끔한 판결문을 써 줄 수는 없다. 사기꾼이라고 하면 세기의 골이 가만있지 않고, 영웅이라고 하면 그 손이 가만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판결할 수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를 마주하면 머릿속에서는 서둘러 딱지를 붙이려 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천재, 사기꾼. 붙여 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마라도나는 한사코 그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그는 4분 만에 양쪽을 모두 끝까지 밀어 올렸다. 어떤 딱지로도 나머지 절반을 덮을 수 없는 데까지 갔다. 그래서 급히 판결을 내리려는 사람들은 손만 쳐다보며 평생 사기꾼이라고 욕하거나, 질주만 쳐다보며 평생 신이라고 떠받든다. 어느 쪽이든 온전한 사람 하나에서 절반을 깎아 내는 일이다. 남은 절반을 이미 마련된 칸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그는 판결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판결할 수 없다는 태도야말로 한 인간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다. 사람은 원래 흑 아니면 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 흑과 백이, 반드시 똑바로 마주 보아야 할 만큼 짙지 않을 뿐이다. 마라도나는 그것을 4분 안에 농축했다. 단어 하나로 얼버무릴 수 없을 만큼 진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말끔한 판결을 내리고 싶은 충동은 복잡한 인간을 딱지 하나로 단순화하고 싶은 충동과 같다. 1986년의 이 4분은 그 충동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일에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것, 두 면을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며 어느 한 면도 다른 면을 지워 주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축구의 가장 정직한 지점이기도 하다. 누구를 대신해 미화하지도, 추한 모습을 감춰 주지도 않는다. 한 사람의 가장 모순된 두 얼굴을 같은 경기 안에 고스란히 펼쳐 놓고, 보는 이가 직접 마주하도록 한다. 관중석에서 환호하고 싶으면서도 항의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그 순간 느낀 곤혹스러움은 혼란의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직함의 증거였다. 눈앞의 그 사람은 정말로 환호와 항의를 동시에 받을 만했기 때문이다. 그 곤혹스러움을 품을 수 있어야 비로소 그 4분을 이해한 것이다.

5 그는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했나

‘신의 손’이라는 말은 그 뒤 수없이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는 시간순으로 하나씩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날 아스테카 스타디움의 공동취재구역에서 나온 원래 말은 이것이었다. “조금은 마라도나의 머리, 조금은 신의 손 덕분이었다.” 통신사의 영어 기사로 전해진 이 말은 영국과 미국의 언론 전반으로 퍼졌다. 가장 이른 발언이자,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형태다.

같은 해가 저물 무렵에는 이미 훨씬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1986년 11월의 한 보도는 통역된 발언을 인용해 그가 “당연히 신의 손이 아니었다. 나였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자료는 중요하다. 그가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인정했다는 널리 퍼진 이야기가 정확하지 않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1986년 안에 이미 손과 신을 둘러댄 말보다 훨씬 직접적인 자기 고백이 등장했다.

2005년에는 자신이 진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전 세계 시청자를 향해 그 골이 핸드볼이었다고 분명하게 인정했다. 이때가 정식으로 시인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따라서 언제 솔직히 인정했느냐고 묻는다면 두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 1986년 안에 이미 인정에 가까운 발언이 있었고, 2005년에는 전 세계를 향해 더는 빠져나갈 여지가 없는 공개적인 인정을 한 것이다.

이 발언들을 시간순으로 놓아 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기억을 고르는지 드러난다. 더 이르고 더 직접적인 인정은 1986년 기사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데,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더 모호하고 더 익살스러운 명언은 거듭 인용되어 누구나 알게 되었다. 진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부터 거기 있었다. 다만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서 수십 년 동안 외면받았다. 그러다 2005년의 텔레비전 발언이 나오자 ‘고백’이라는 일에도 다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사람들이 진실을 몰랐던 게 아니다. 그저 진실을 익살 속에 싸 놓은 쪽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시간의 순서를 정리하는 것은 정확성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이야기를 전하는 습관 하나가 드러난다. 사람들은 “당연히 신이 아니라 나였다”라는 직설보다 손과 신을 엮은 재담을 더 기억하고 싶어 한다. 재담 안에는 이야기와 능청, 두고두고 곱씹을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직설에는 사실만 있고 여운이 없다.

인간의 기억은 충실한 녹음기였던 적이 없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집자다. 똑같이 당사자가 제 입으로 한 말인데도 귀에 쏙 들어오는 문장은 남기고, 담담하게 사실만 전한 문장은 슬쩍 지운다. 손과 신을 엮은 말은 이 속임수에 전설의 빛을 입혀, 단순한 부정행위보다 교활한 신화처럼 보이게 했다. 반면 “당연히 신이 아니라 나였다”라는 말은 그 빛의 막을 찔러 깨뜨리고 밑에 있던 소박한 사실을 드러냈다. 기억은 신화를 골라 들고 사실을 두고 갔다.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신화가 이야기하기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했는데, 이야기는 더 마음에 드는 말을 가져가고 다른 말은 기억에서 사라지게 했다. 거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언제나 가장 참된 말이 아니라,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말이다.

6 복수라는 의미는 언제 생겨났나

이 경기의 뒤에는 실제 전쟁 하나가 무겁게 놓여 있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말비나스 제도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4월 2일부터 6월 14일까지 74일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아르헨티나 군인 600여 명, 영국 군인 200여 명이 전사했고, 섬에 살던 민간인 세 명도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들은 그 경기의 가장 무거운 바탕색이다. 아르헨티나의 600여 가정과 영국의 200여 가정이 아들을 잃었다. 그 모든 일로부터 1986년의 그 오후까지 겨우 4년이 지났을 뿐이다. 아스테카의 잔디 위에서 스물두 명이 공 하나를 쫓을 때, 관중석에서도 텔레비전 앞에서도 두 나라는 아직 그 전쟁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공은 둥글었지만, 한참 더 아물어야 할 역사 위를 굴렀다. 4년 뒤 아스테카에서 두 나라가 만났다. 전쟁 이후라는 배경은 당시부터 실제로 존재했고, 그때의 언론도 이를 의식했다. 잉글랜드 기자들은 속았다는 분통을 감추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기자들은 핸드볼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수를 써서 성공한 마라도나에게 도리어 감탄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 갈라짐은 그때 이미 있었다.

분명히 해 둘 점은, 당시의 갈라짐이 완성된 해석의 틀보다 감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속았다고 느꼈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속이 후련했다. 즉각적이고 소박한 감정이었다. 그 감정들을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가한 상징적 복수로 끌어올려, 두고두고 인용할 수 있는 틀로 굳힌 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때 있던 것은 뜨겁게 들끓는 감정의 덩어리였고, 차갑게 형태를 갖춘 서사는 그 뒤에 생겼다.

그러니 복수라는 틀이 언제 자라났는지는 세심하게 말해야 한다.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전쟁 4년 뒤에 만났다는 것은 당시의 사실이다. 둘째, 마라도나 자신이 여러 해가 지난 뒤 그 골을 상징적인 복수라고 거듭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널리 인용되는 그 말, “경기 전에는 모두 축구와 말비나스는 관계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거기서 많은 아르헨티나 아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복수였다”라는 발언은 대체로 나중의 전언에서 발견된다. 1986년 그날 공개적으로 한 말이라고 글자 하나하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원문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따지는 것은 말꼬리 잡기가 아니다. 전쟁 4년 뒤의 만남은 역사가 이 경기에 입힌 바탕색이며, 아무도 지울 수 없다. 반면 그 승리, 특히 그 손을 한 나라에 대한 복수라고 명확하게 말한 것은 마라도나가 훗날 자신의 손으로 거듭 덧대고 다진 해석이다. 하나는 당시의 상황이고, 하나는 사후의 의미 부여다. 나중에 덧붙인 의미를 당일의 발언으로 써 버리면, 1986년의 마라도나에게 그가 여러 해 뒤에야 했던 말을 시키는 셈이다. 어떤 의미가 경기 하나를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일은 대개 경기 당일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 뒤 긴 세월에 걸쳐 거듭 다시 이야기되는 동안, 마침내 그 의미가 처음부터 공에 붙어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된다.

뒤늦게 의미가 붙는 과정은 흔히 이렇다. 사건이 일어난 날에는 대개 사건 자체와 아직 모양을 갖추지 못한 감정 한 덩어리만 있다. 의미는 나중에 한 겹씩 발라진다. 오랫동안 두껍게 바르고 나면, 후대의 눈에는 그 의미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듯 보인다. 마라도나가 손을 쓰려고 뛰어오른 바로 그 순간부터 말비나스와 복수를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손은 아마도 경기장에서 기회를 엿본 행동, 이기려는 계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의미는 세월이 덧붙인 것이지,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의미가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전쟁도, 사상자도, 두 나라 사이에 맺힌 응어리도 실재했다. 이 경기를 그저 한 경기보다 무겁게 받아들인 감정도 진짜였다. 사후의 의미 부여는 날조와 같지 않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받아 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후에 붙인 의미는 어디까지나 사후에 붙인 의미다. 마라도나 자신을 포함한 훗날의 사람들이 세월의 이쪽 끝에 서서 그 순간을 돌아보며 부여한 뜻이다. 나중에 부여한 것을 그날 그 손이 이미 짊어지고 있던 사명이라고 말하면, 즉흥적으로 꾀를 부린 행동을 치밀하게 계획한 복수로 추서하는 셈이다. 앞의 것은 그가 실제로 한 일이고, 뒤의 것은 나중에 그가 당시 했기를 바란 일이다.

여기서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진실은 복수를 통째로 지워 버리는 쪽에 있지 않다. 전쟁도 감정도 진짜였으니 바탕색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복수를 당일에 이미 확정된 선언으로 취급하는 쪽에도 있지 않다. 가장 정직한 서술은 당시의 상황과 사후의 의미 부여를 각각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둘을 함께 두되, 더 이야기하기 좋은 하나의 줄거리로 합치지 않는 것이다.

더 이야기하기 좋은 하나의 이야기로 합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유혹이고, 가장 깊은 왜곡이다. 한 선수가 경기장에서 손 하나와 두 발로 잉글랜드를 이겼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이다. 그 승리를, 전쟁에서 패한 민족이 축구를 통해 존엄을 되찾는 우화로 승화하는 것은 사후의 의미 부여다. 앞의 것은 구체적이고 자잘하며, 잔꾀와 운이 섞여 있다. 뒤의 것은 웅장하고 비장하며, 역사의 무게를 지닌다. 뒤늦게 붙인 의미가 온전히 거짓은 아니다. 실제 전쟁과 실제 감정을 받아 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일의 발언을 자처하는 순간, 기회를 노린 찰나와 깊이 숙고한 선언을 한데 섞어 버리게 된다.

7 한 사람의 월드컵과 열한 사람의 팀

마라도나는 너무 눈부셨다. 그래서 이 대회는 흔히 그 혼자만의 월드컵으로 이야기된다. 쓰기 편한 수사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가 이 대회에서 혼자 5골과 5도움을 기록하고, 팀의 전체 14골 중 10골에 직접 관여한 것은 사실이다. 전례 없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결승전 선제골의 주인공은 브라운이고, 점수 차를 벌린 선수는 발다노이며,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부루차가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유일한 골을 넣은 선수는 파스쿨리였고, 잉글랜드전 종료 직전 골라인에서 공을 걷어 낸 선수는 올라르티코에체아였다. 이 팀에는 분명한 뼈대가 있었다. 선발 열한 명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 마라도나 한 사람과 흐릿한 그림자 열이 아니었다.

그 뼈대는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셀 수 있다. 결승전 선발에는 품피도, 브라운, 쿠추포, 루게리, 바티스타, 주스티, 올라르티코에체아, 부루차가, 엔리케, 마라도나, 발다노가 있었다. 그 나머지 선수들은 배경이 아니었다. 이 팀의 11분의 10을 실제로 이루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한 사람 뒤에 드리운 흐릿한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 것은 마라도나의 잘못이 아니다. 이야기를 손쉽게 하려다 생긴 결과다.

더 중요한 것은 마라도나가 마음껏 기량을 펼치도록 해 준 틀을 빌라르도 감독이 세웠다는 사실이다. 후방에 세 명을 두고, 측면과 중원이 넓은 지역을 커버하며 보호를 맡았다. 전방은 마라도나에게 맡겨 연결하고 전진하고 마지막 패스를 건네게 했다. 훗날 한 동료는 빌라르도의 그 설계 덕분에 마라도나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직접 말했다.

이 말에는 놓치기 쉬운 뜻이 하나 있다. 천재는 자유로울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천재를 담으려면 꼭 맞는 구조가 필요하다. 마라도나가 조직력 없는 팀에서 뛴다면, 아무리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있어도 뒤로 내려와 수비의 빈자리를 메우고 공을 받아 내며 애초에 자기 몫이 아니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오히려 그의 날이 무뎌진다. 빌라르도의 설계는 그 모든 일을 대신 막아 주고, 가장 치명적인 몇 번의 움직임에만 전력을 쏟을 수 있게 했다. 구조는 천재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좋은 구조는 천재를 증폭한다. 천재에게는 자신을 담아낼 구조가 필요하다. 뒤에서 받쳐 주는 그 뼈대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혼자 지탱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월드컵’이라는 말의 문제는 마라도나를 지나치게 높인 데 있지 않다. 그는 그런 찬사를 받을 만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을 지운 데 있다. 열한 명의 팀과 감독 한 사람이 공들여 세운 구조를 한 사람의 독무로 눌러 버린 것이다. 여럿이 이루어 낸 일을 천재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충동과 같다. 천재는 실재한다. 그러나 진공 속에서 혼자 빛나는 천재는 없다. 그는 다른 이들이 세운 뼈대 위에 서 있으며, 기꺼이 조연이 되어 준 사람들에게 받쳐져 있다.

앞서 살펴본 여러 팀도 이 이치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여 주었다. 가장 자유로웠던 네덜란드에도 유일한 중심이 꼭 필요했고, 가장 눈부셨던 마라도나에게도 뒤에서 말없이 버티는 뼈대가 꼭 필요했다. 천재와 구조는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천재를 편애하고 구조를 홀대한다. 번쩍이는 이름 하나가, 각자 제 몫을 하는 열한 이름보다 훨씬 쓰기 쉽고 기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의 조명은 늘 그 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그를 떠받친 사람들은 빛 바깥에 남는다. 이야기는 홀로 선 인물을 좋아한다. 혼자 선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단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단순한 이야기는 가장 많은 사람을 빠뜨리기 일쑤다.

8 넘겨받은 경기장과 여덟 달 전의 지진

이 모든 일은 위기의 순간에 개최를 떠맡은 나라에서 벌어졌다.

1986년 월드컵의 원래 개최국은 멕시코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콜롬비아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이 요구한 기반 시설과 재정 보장을 충족할 수 없었던 콜롬비아는 1982년 가을 공식적으로 개최를 포기했다. 멕시코가 1983년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로써 월드컵을 두 번 개최하는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개막을 약 여덟 달 앞둔 1985년 9월 19일, 멕시코시티에 대지진이 닥쳤다. 정확한 사상자 수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확정적인 숫자 하나를 제시하기보다 이렇게 말하는 편이 신중하다. 대규모 지진이었고, 적어도 수천 명이 숨졌으며, 사망자가 1만 명에 가깝거나 그보다 많았다고 기록되는 경우도 흔하지만 정확한 총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진 뒤에는 개최지를 바꿀 것인지 실제로 진지하게 논의했다. 국제축구연맹은 한때 대회를 서독으로 옮길 가능성을 언급했다. 결국 수도의 주요 경기장을 점검한 결과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대회는 멕시코에 남았다.

기록해 둘 점은 개최지 변경이 당시 실제로 무게를 두고 검토한 사안이었다는 사실이다. 후대의 상상이 아니다. 지진 직후 국제축구연맹은 이 문제를 따로 논의하는 자리까지 마련했고, 대회를 서독으로 옮길 가능성도 거론했다. 그만큼 지진의 충격이 컸다. 이미 준비 중인 월드컵의 개최국을 바꾸는 방안까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 옮기지 않은 데에는 경기장들이 안전 점검을 통과했다는 이유도 있었고, 월드컵이라는 행사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기 어려울 만큼 큰 관성을 지녔다는 이유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장면이 나란히 있었다. 월드컵 조 추첨이 예정대로 열리던 바로 그때, 행사장 밖의 시위자들은 지진으로 집을 잃은 수많은 사람이 아직 제대로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를 계획대로 준비했고, 다른 쪽에서는 재해 복구가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 1985년 말 멕시코시티에는 이 두 흐름이 함께 존재했다. 월드컵은 진공 속에서 치러진 적이 없다. 언제나 저마다의 상처와 어려움을 지닌 현실 위에서 열린다. 여덟 달 전의 잔해도 다 치우지 못했지만 공은 예정대로 굴렀다. 이 일에 누구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기억하게 한다. 축구가 아무리 커도 삶 위에 얹힌 한 겹일 뿐이고, 그 아래의 삶에는 그 자신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아래층은 나중에 그 월드컵의 영광에 가려지곤 했다. 사람들은 마라도나와 그 4분과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경기가 불과 여덟 달 전 대지진을 겪은 도시에서 치러졌다는 사실은 좀처럼 기억하지 않는다. 영광에는 묘한 재주가 있다. 자신을 떠받치는 땅의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환히 비춰 버린다. 그래도 상처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경기장의 환호가 그것을 덮었을 뿐, 메워 준 것은 아니었다. 그 월드컵에 찬물을 끼얹자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눈부신 4분 아래에도 축구와는 무관한, 묵직한 현실 한 겹이 받쳐져 있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9 결승전과 가슴 철렁했던 7분

우승까지 가는 길이 내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6월 29일, 아스테카. 아르헨티나와 서독의 결승전이었다. 23분, 브라운이 부루차가의 프리킥을 헤더로 연결해 골문을 열었다. 56분에는 발다노가 한 골을 더해 2 대 0을 만들었다. 승부가 기운 듯하던 순간, 서독이 7분 사이 두 골을 따라붙었다. 74분 루메니게, 81분 푈러. 2 대 2였다.

그 7분은 모든 준비를 비웃었다. 월드컵 결승에서 두 골을 앞선다는 것은 트로피에 반쯤 손을 얹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서독은 단 7분 만에 그 손을 쳐 냈다. 두 번의 코너킥. 노련한 서독은 기회를 잡아 연달아 두 골을 만회했고, 이미 결말이 쓰인 듯했던 결승전을 다시 불확실성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떤 리드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며, 어떤 각본도 굳어 있지 않다. 경기장은 언제나 가장 방심한 곳에 가슴 철렁할 순간 하나를 남겨 둔다.

그리고 84분. 마테우스의 집중 견제를 받던 마라도나가 그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결정적인 스루패스를 찔러 넣었다. 부루차가가 공을 받아 치고 들어가 결승골을 넣었다. 3 대 2. 아르헨티나는 두 번째로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이 결말은 오래된 사실을 다시 말해 주었다. 구축이 아무리 크게 짜 놓아도 한 경기의 굴곡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2 대 0이면 안전해 보였는데 7분 만에 2 대 2가 되었고, 2 대 2면 연장전으로 가겠구나 싶었는데 3분 뒤 다시 3 대 2가 되었다. 누구도 결승전의 흐름을 정해 놓을 수 없다. 경기는 스스로 방향을 틀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마지막 순간 누군가의 스루패스 하나와 누군가의 전진 한 번에 자신을 맡긴다. 이번에 그 방향을 바꾼 중심에도 그 두 손의 주인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깨끗한 발을 썼다. 같은 두 발이 그 4분 속에서 세기의 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승리를 안긴 패스를 보냈다. 손으로 골을 훔친 적도 있는 바로 그 사람의 발이었다.

그 4분이 품은 은유가 가장 온전하게 되울린 순간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두 발과 두 손, 천재성과 능청은 아스테카의 8강전부터 아스테카의 결승전까지 줄곧 한 사람 안에 들어 있었다. 이쪽 절반은 영웅이고 저쪽 절반은 사기꾼이라며 떼어 놓을 수 없다. 한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아르헨티나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10 마무리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자.

1986년의 멕시코는 좀처럼 단순화할 수 없는 사람 하나를 전 세계 앞에 세웠다. 4분, 두 손, 한 골. 절반은 축구에서 중재가 가장 필요한 논란이고, 절반은 축구에서 중재가 가장 필요 없는 완벽함이었다. 둘이 마라도나 한 사람에게 동시에 모였다. 구축은 그에게 말끔한 판결문을 써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사기꾼이라 하면 논박할 수 없는 그 골이 가만있지 않고, 영웅이라 하면 부인할 수 없는 그 손이 가만있지 않는다.

이 4분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단순화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전설이 이야기를 거치며 매끈하게 갈린 뒤에야 널리 퍼진다. 모서리는 닳고 모순은 지워져, 말끔한 영웅이나 악인 하나만 남는다. 그러나 이 4분은 매끈하게 갈리지 않는다. 그 손과 그 질주는 깊이 박혀 꼼짝 않는 두 모서리 같아서 어느 쪽도 뽑아낼 수 없다. 다시 이야기하는 모든 세대에게 속임수와 천재성이라는 두 말을 함께 입에 올리게 한다. 하나만 남겨 두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매끈해지기를 거부하는 이야기라야 제 무게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그는 두 면을 그대로 둔 채로만 바라볼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일이 그러하듯, 어느 한 면도 다른 면을 지워 주지 못한다.

이 두 면은 마라도나만의 특례가 아니다. 보편적인 것을 그가 극한까지 밀어 올린 경우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면도 있고 자신 있게 내놓을 면도 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두 면의 색이 옅어서,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는 뭉뚱그린 말로 얼버무릴 수 있다. 마라도나는 두 색을 모두 가장 짙게 만들었다. 그를 통째로 담을 수 있는 두루뭉술한 말이 더는 없을 만큼 진하게 했다. 그는 유난히 환하게 닦인 거울처럼, 사실은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을 비춘다. 사람은 본디 단어 하나로 다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4분은 구축의 오래된 경계 몇 가지를 다시 그렸다. 보이지만 닿지 않는다는 경계는, 1966년의 ‘잘 보이지 않는다’에서 1986년의 ‘잘 보여도 소용없다’로 더 나아갔다. 진실이 수억 명의 눈앞에서 벌어졌는데도 판정을 맡은 두 쌍의 눈 사이에 끼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최종 판결을 고칠 수 없다는 경계는, 온 세상이 본 손 하나를 기록 속에 단단히 남겼다. 그리고 이야기가 그리는 경계는 여느 때처럼 사후에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재담은 가져가고 직설은 외면했다. 나중에 붙인 복수의 의미를 슬그머니 그날로 옮겼다. 열한 사람의 팀을 한 사람의 독무로 썼다. 구축은 이 사람을 판결할 수 없지만, 이야기에는 그의 얼굴을 거듭 새로 빚어낼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2017년, 마라도나 자신이 나서서 비디오 판독 심판을 지지했다. 그때 이런 것이 있었다면 자신의 ‘신의 손’은 아예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1986년의 판결을 뒤집자는 뜻이 아니다. 구축이 뒤늦게나마 그때 없었던 눈을 마침내 갖게 된 것이다.

그 눈은 너무 늦게 왔다. 30년이나 늦었다. 1986년의 손은 비출 수 없다. 그 손은 벌써 기록과 전설 속에 굳어, 누구도 옮길 수 없게 되었다. 새 눈은 앞으로의 경기만 비출 수 있다. 구축은 이런 식으로 전진한다. 새로운 능력을 얻을 때마다 그 배후에는 그것을 강요한 오래된 아쉬움 하나가 있다. 정작 그 능력을 낳게 한 아쉬움 자체는 그 혜택을 영원히 받지 못한다. 기술은 논란을 뒤쫓지만 늘 한 걸음 늦다. 잘못이 이미 굳어진 뒤에야 진작 떴어야 할 눈을 덧붙인다. 그러나 눈이 생겨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그 손이 선을 넘었느냐는 것뿐이다. 사람 하나를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속임수와 천재성을 4분 안에 농축한 그 사람을 어느 한쪽으로 판결하는 일은 여전히 할 수 없다. 기술은 손 하나를 따라잡을 수 있지만, 한 사람 전체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 말은 그 월드컵 전체에 붙일 주석이 될 법하다. 사람들은 경기장의 모든 논란을 말끔히 판정하려고 점점 더 정밀한 기술을 발명한다. 골라인을 넘었는지, 오프사이드가 몇 센티미터 차이인지, 핸드볼이 고의인지 아닌지. 기술은 실제로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이제 손 하나가 선을 넘었는지는 그 눈을 피해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상대하는 것은 고립된 순간들이다. 공을 한 번 건드리는 순간, 반칙을 한 번 하는 순간이다. 순간은 판정할 수 있어도 한 사람의 일생은 판정할 수 없다. 그 손이 반칙을 했다는 사실은 알려 줄 수 있어도, 손으로 부정행위를 하고 세기의 골도 넣은 그 사람을 끝내 무엇으로 기억해야 할지는 알려 줄 수 없다. 사람은 순간보다 크다. 훨씬 크다.

스물한 살에 월드컵 무대에 섰다가 훗날 높이 떠받들어진 그 두 이름, 저마다 자리가 있던 열한 선수, 뼈대를 세운 감독, 위기의 순간에 대회를 넘겨받은 경기장, 여덟 달 전부터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잔해. 모두 이 우승 아래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 간다. 누구도 가장 눈부신 그 한 사람에게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눈부셨던 그 사람 자신도, 어떤 말끔한 설명 하나에 온전히 담긴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온갖 말을 시도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도 했고, 손으로 속임수를 쓴 사기꾼이라고도 했다. 가난한 이들의 영웅이라고도 했고, 떠받들어 주다가 망쳐 놓은 탕아라고도 했다. 모든 설명이 그의 일부를 붙잡았지만, 어느 것도 전부를 담지는 못했다. 그는 너무 가득했다. 어떤 그릇에도 다 들어가지 않아, 늘 절반은 흘러넘쳤다. 이 4분은 그의 일생을 압축한 모습이다. 절반은 빛 속에, 절반은 그림자 속에 있다. 어느 절반을 떼어 가려 해도 다른 절반이 따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반은 손이고 반은 발이다. 판결할 수 없으니 지울 수도 없다. 그 4분에 일어난 모든 일은 4분이 지난 뒤에도 거듭 되풀이될 것이다. 사람이 바뀌고, 경기가 바뀌고, 논란의 모습이 바뀌어도, 판결할 수 없고 지울 수도 없는 그 딜레마는 늘 남아 있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