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혼
규칙 안에서 벌어진 추문, 결과가 거꾸로 써 내려간 구원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히혼, 세비야와 사리아를 따라 규칙의 사각지대와 파올로 로시를 둘러싼 사후 서사를 분석한다.
이 글의 목차
1. 반칙 없는 추문
1982년 6월 25일, 스페인 북부 히혼의 엘 몰리논 경기장.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1차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전환기를 지나던 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이었다. 스페인은 일찌감치 1966년에 개최권을 따냈다. 막상 대회가 시작됐을 때는 프랑코가 죽은 지 벌써 7년, 나라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옮겨 가고 있었다. 대회 방식도 새로웠다. 사상 처음으로 참가국이 24개국으로 늘었다. 네 팀씩 여섯 조로 나누어 경기를 치르고, 각 조 상위 두 팀을 다시 세 팀씩 네 조로 묶어 4강을 가렸다. 새로운 대회 방식, 새로운 나라. 그런데 이 월드컵이 역사에 남긴 첫 번째 큰 사건은 북쪽 소도시의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이 경기의 셈법은 킥오프 전부터 훤히 드러나 있었다. 9일 전 알제리는 서독을 2대 1로 꺾었다. 월드컵 역사에서도 손꼽을 만한 이변이었다. 세 경기를 모두 마친 알제리의 승점은 4점. 더 뛸 경기는 없었고, 그 점수는 순위표에 고스란히 올라 있었다. 당시에는 한 번 이기면 승점 2점을 받았다.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한 골이나 두 골 차로 이기기만 하면, 두 팀이 나란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고 알제리는 탈락했다. 한 골 더 많아도 안 되고, 한 골 적어도 안 됐다. 1대 0이나 2대 0. 딱 그만큼이면 됐다.
누구도 입을 열 필요가 없는 계산 문제였다. 두 팀이 경기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순위표가 할 말을 다 해 놓았다. 어떤 점수가 서로에게 이로운지 명백했다. 말없이 뜻이 맞는 경기를 만들어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밀실 거래가 아니다. 정답을 먼저 걸어 놓고, 그 정답으로 둘 다 이득을 볼 사람들을 함께 시험장에 들여보내면 된다. 나머지는 인간의 본성이 알아서 한다.
경기 시작 얼마 뒤 흐루베슈가 서독의 골을 넣었다. 1대 0. 그 뒤 이 축구 경기에서 축구가 퇴장했다.
훗날 이 경기를 돌아보는 글들은 그 80분을 거듭 묘사했다. 공은 수비 진영과 미드필드 사이를 느릿느릿 오갔고, 골키퍼는 공을 안은 채 시간을 보냈다. 압박도, 태클도, 정말로 골문을 향해 내달리는 움직임도 없었다. 관중석의 감정은 의아함에서 야유로, 야유에서 분노로 번지더니, 끝내 그보다 더 아픈 무언가로 굳어졌다. 조롱이었다. 관중이 형편없는 경기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두 팀이 자신들 눈앞에서 말없이 뜻을 맞추고 경기를 하지 않는 광경이었다.
못하는 경기는 입장료를 배신하지만, 하지 않는 경기는 축구라는 이름을 배신한다. 돈을 내고 승부를 보러 왔는데, 기다리던 자리에 나타난 것은 순위표를 위한 연극, 서로 만족할 휴전이었다. 농락당했다는 그 감정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회고하는 글마다 행간에 남아 있다.
남은 거의 80분에 관해 후대의 기록들은 한결같은 장면을 전한다. 두 팀은 공을 돌리고, 산책하고, 상대 골문을 향해 제대로 된 공격을 더는 시도하지 않았다. 서독 TV 해설자 슈탄예크는 그 자리에서 수치스럽다고 했고, 오스트리아 해설자는 시청자들에게 텔레비전을 끄라고 권했다. 관중석의 스페인 사람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며 두 팀더러 입맞춤이나 하라고 함께 외쳤다. 이튿날 히혼의 한 지역 신문은 경기 기사를 범죄면에 실었다.
여기에는 보기 드문 점이 하나 있다. 이 추문에 대한 판결은 현장에서, 그것도 만장일치로 내려졌다. 역사가 정리해 주기를 기다릴 필요도, 나중에 판정을 뒤집을 필요도 없었다. 독일어 중계석도, 오스트리아 중계석도, 관중석의 스페인 사람들도, 다음 날의 신문도, 온 세계가 그날 밤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오직 하나의 판결만 빠졌다. 구축 자신이 내려야 할 판결이었다. 여론의 법정은 즉석에서 선고했지만, 규칙의 법정은 문을 열 근거조차 찾지 못했다.
가장 억울했던 것은 알제리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역사에 남을 이변을 일으켰고, 두 경기를 이겼고, 승점 4점을 모았다. 그러고는 경기장 밖에 앉아, 자신들의 월드컵이 남의 90분 속에서 규칙에 맞게 증발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고발할 반칙 하나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부정한 판정에 지는 것보다도 더 답답한 노릇이었다. 부정한 판정에는 그래도 문제 삼을 휘슬이 있다. 여기에는 휘슬조차 없었다. 누구도 흠잡을 수 없는, 말끔하기 이를 데 없는 경기 기록 한 장뿐이었다.
알제리가 항의했다. 국제축구연맹의 답변은 첫 번째 문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처벌하지 않는다. 경기가 깨끗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규칙을 아무리 뒤져도 어긴 조항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지켜본 추문이 구축의 장부에서는 규정에 맞는 경기였다.
2. 먼저 벌어진 틈, 뒤늦게 댄 기움천
사실 이 틈은 히혼의 그날 처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규칙은 구축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다.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조항씩 글로 박아 놓는다. 반칙은 어떻게 벌하고, 오프사이드는 어떻게 가리며, 순위는 어떻게 매기는지 모두 명문으로 정해 둔다. 하지만 어떤 규칙이든 글로 쓰지 않은 전제 하나 위에 서 있다. 경기장 안의 두 팀은 서로를 이기려 한다는 전제다. 규칙 전체가 막으려는 것은 과열된 경쟁이다. 주먹질과 발길질, 시간 끌기, 속임수를 막는다. 정작 경쟁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막지 못한다.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두 팀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떨어져 어느 쪽도 더는 골을 넣을 필요가 없어지면, 규칙은 헛손질을 한다. 히혼의 90분 동안 아무도 반칙하지 않았고, 아무도 오프사이드에 걸리지 않았고, 아무도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축구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조문은 반칙을 다스릴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는 다스리지 못한다.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이 틈은 애초에 완전히 메울 수 없다. 규칙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행동뿐이다. 밀기, 잡아당기기, 핸드볼, 오프사이드. 이런 것은 가려내고 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기고 싶은 마음은 잴 수 없다. 양 팀은 진심으로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조항을 경기 규정에 넣을 수는 없다. 진심을 재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구축이 관할할 수 있는 곳은 행동의 경계까지다. 의지의 영토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히혼의 90분에서 잘못된 것은 바로 그 의지였다. 행동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뿌리까지 거슬러 가면, 이는 구축은 완결될 수 없다는 오래된 문제가 옷만 갈아입은 것이다. 축구장에서 벌어질 모든 잘못을 조문으로 미리 다 써 놓겠다는 욕심은, 구축 하나로 모든 잔여항을 문 안에 가두겠다는 욕심과 똑같이 불가능하다. 글에는 반드시 경계가 있다. 무엇을 적으면 적지 못한 것이 남는다. 그리고 적지 못한 그 자리에서야말로 살아 있는 사람이 조문보다 영리해진다. 규칙이 한 치를 닫으면, 사람의 계산은 아직 닫히지 않은 한 치로 옮겨 간다.
그러니 스물두 명에게 비난을 모두 쏟아부어도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선수를 욕하기는 쉽다. 그러나 시험 문제는 먼저 벽에 걸려 있었다. 그 문제를 푸는 사람을 다른 이들로 바꾸어도 답은 그대로다. 통과 기준을 먼저 알려 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한, 다음 대회에도 똑같이 행동할 사람은 나온다. 사람은 바꿀 수 있지만 틈은 남는다. 정말로 책임을 묻겠다면 절반은 그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나머지 절반은 그 선택을 최적의 해답으로 만든 구축에 물어야 한다.
그 틈을 가장 크게 벌린 것은 경기 일정이었다. 알제리가 경기를 먼저 끝내면서 통과 기준이 공개됐고,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정답을 보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낯익은 틈이었다. 4년 전 아르헨티나와 페루가 맞붙던 밤에도 같은 틈이 그들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먼저 경기한 브라질이 통과 기준을 드러내자, 뒤에 경기한 개최국은 그 기준에 맞춰 필요한 만큼 골을 넣고 이겼다. 1978년 사람들이 의심한 것은 그 기준 뒤에 거래가 있었느냐는 점이었다. 1982년에는 의심할 수고조차 덜었다. 모든 일이 전 세계 눈앞에서 규정대로 벌어졌다.
둘을 비교하면, 1982년의 일이 구축에 더 깊은 상처를 냈다. 로사리오의 그날 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러운 거래가 있었다고 의심했다. 의심이 아무리 무거워도 화살은 구축 뒤에 숨은 사람들을 향했다. 히혼의 그날 밤에는 블랙박스도 밀실도 없었다. 모든 것이 햇빛 아래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규칙의 품 안에서 추문이 아무 탈 없이 벌어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이번에 화살이 향한 것은 구축 자체였다. 앞의 사건이 누군가 규칙을 더럽혔다는 의심을 낳았다면, 뒤의 사건은 규칙이 애초에 이 운동을 지킬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다.
이 의심은 토대 자체를 훼손한다. 특정한 뒷거래에 대한 의혹이라면 하나를 밝혀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 규칙 자체를 향한 의심에는 조사할 사건도 처벌할 사람도 없다. 규칙을 고쳐 써야만 가라앉힐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1986년에 댄 기움천은 틈 하나를 막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구축이 자신을 구한 것이기도 했다. 아직 이 운동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증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히혼의 그 90분은 하나의 추문에서 서서히 구축 자신을 겨누는 판결문으로 변해 갔을 것이다.
여기서 증거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안에서는 히혼 경기에 뇌물이 오갔다는 증거도, 경기 전에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경기와는 다르다. 가장 신중하게 말한다면, 각자 합리적인 두 선택이 경기장에서 빠르게 맞물려 누구도 더 움직일 필요가 없는 안정 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두 팀이 미리 말을 맞추었는지는 지금도 결론 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구축은 더 난처해진다. 심판을 매수하는 것은 규칙을 깨는 일이다. 히혼은 규칙을 고이 모셔 둔 채, 그것이 지키려던 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게 했다.
여기서 규칙의 밑바닥 장부가 드러난다. 조문은 축구의 목적이었던 적이 없다. 조문은 축구의 울타리다. 사람들이 규칙을 만든 것은 그보다 중요한 것, 진짜로 맞붙는 승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울타리는 살아 있지 않다. 안쪽의 모양은 지킬 수 있어도, 안쪽의 심장박동은 지킬 수 없다. 조문과 그것이 지키려는 것이 갈라서는 순간, 구축은 난처한 자리에 몰린다. 자신이 쓴 문서를 저버릴 것인가, 처음의 뜻을 저버릴 것인가. 1982년 그날 오후 구축은 문서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처음의 뜻이 울타리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문으로 서 있는 것이 앞장서 조문을 깨뜨릴 수는 없으므로.
기움천은 나중에 붙었다. 1986년 대회부터 같은 조의 마지막 경기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 규정에 명시된 철칙이 됐다. 정답을 먼저 공개하고 시험을 치르게 하는 일은 더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기움질이었다. 알제리가 손해를 본 것은 1982년, 틈이 벌어진 것은 벌써 1978년이었는데, 바느질은 1986년에야 끝났다. 구축은 언제나 이렇게 자신을 수선한다. 잔여항이 먼저 가고, 조문이 뒤쫓는다. 규칙이 그 틈을 막는 법을 배웠을 때, 손해 본 사람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뒤다. 다음 틈이 어디에 생길지는 조문도 여전히 모른다.
오늘날 어떤 경기 규정을 펼쳐 보아도 거의 모든 조항 뒤에는 지난 사건 하나가 서 있다. 동시 킥오프 조항 뒤에는 히혼이 있다. 훗날 골키퍼가 백패스를 손으로 잡지 못하게 한 조항 뒤에는 졸음이 쏟아질 만큼 지루했던 어느 대회가 있다. 새로 들어간 금지 조항은 모두 옛 상처에 뒤늦게 감은 붕대다. 규칙이라는 구축은 결국 추문의 화석이다. 축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적은 것이 아니라, 축구가 어디에서 사고를 냈는지를 적어 둔 것이다.
3. 똑똑히 보고도 손이 닿지 않는다
같은 월드컵에는 손이 닿지 않는 또 다른 일이 있었다.
1982년 7월 8일 세비야, 프랑스와 서독의 준결승. 후반에 교체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프랑스의 바티스통이 공을 잡고 파고들었다. 서독 골키퍼 슈마허가 골문을 비우고 뛰쳐나와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그에게 부딪쳤다. 바티스통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들것에 실려 나갔다. 앞니 두 개가 부러지고, 갈비뼈 세 대에 금이 가고, 척추뼈 한 마디를 다쳤다.
코르버 주심의 판정은 골킥이었다. 페널티킥도, 레드카드도, 심지어 옐로카드도 없었다. 경기 뒤 추가 징계가 내려졌다는 확인 가능한 기록도 없다. 당시 슈마허의 표정에서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억한 것은 거의 무심함에 가까운 태도였다. 그 태도가 불러온 분노는 충돌 자체가 불러온 분노 못지않았다.
그리고 그 두 손은 그날 밤 끝까지 골문을 지켰다. 3대 3 뒤에는 승부차기가 기다렸고, 슈마허는 서독과 함께 결승에 올랐다. 부딪혀 망가진 사람은 병원에 누워 있었고, 들이받은 사람은 골라인 위에 서서 월드컵을 계속했다. 이 장면의 불균형은 어떤 논평보다도 눈을 찔렀다.
기록 속 그 순간은 골킥 한 번일 뿐이다. 두 글자, 말끔한 기록이다. 바티스통의 몸에는 다른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부러진 앞니 두 개, 금 간 갈비뼈 세 대, 다친 척추뼈 한 마디. 두 기록이 적은 것은 같은 1초였지만, 구축은 앞의 것만 인정했다. 사람들이 훗날 이 경기를 두고 분개한 것은 프랑스가 아쉬워서라기보다, 인정받지 못한 그 기록의 억울함을 호소해서였을 것이다. 몸이 기록한 것은 대체 왜 셈에 넣지 않는가. 오랜 세월이 지나 2014년에야 슈마허는 쓰러진 바티스통을 돌보러 가지도, 병원을 찾아가지도 않은 일을 후회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바티스통은 나중에 이미 용서했다고 말했다.
웸블리의 오래된 문제가 여기서는 더 서늘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1966년의 그 골을 분명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이 너무 빨라 사람의 눈이 따라가지 못했다. 1982년의 이 충돌은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느린 화면이 거듭 재생됐고, 온 세계가 보았다. 그런데도 구축의 손은 닿지 않았다. 판정은 이미 내려졌다. 골킥. 기록은 거기서 닫혔다. 그 충돌을 처벌해야 하는지, 얼마나 벌해야 공정한지는 영원히 매달린 논쟁이 됐다. 보인다는 것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이 몇 차례의 대회를 이어 보면, 구축의 눈과 손이 저마다 가진 경계가 드러난다. 1966년에는 눈의 능력이 모자랐다. 공이 사람의 눈보다 빨랐고, 진실을 그렇게 놓쳤다. 1978년에는 눈이 가려졌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진실을 없애는 일에 매달렸다. 1982년에는 눈이 멀쩡했다. 수억 쌍의 눈이 함께 똑똑히 보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첫째는 능력의 경계이고, 둘째는 권력의 경계다. 셋째는 가장 특이하다. 구축이 스스로 그은 경계다. 조문에 쓰이지 않은 일은 감히 벌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판정하지 않은 일은 선뜻 고치지 못한다.
선뜻 고칠 수 없다는 데에는 냉혹한 나름의 이치가 있다. 판정의 최종성은 구축을 떠받치는 내력벽이다. 현장 심판의 휘슬이 울리면 맞든 틀리든 효력이 있어야 한다. 그 벽에 틈을 내고 사후에 뒤집는 것을 허용하면 모든 경기가 재심으로 돌아갈 수 있고, 구축은 어떤 경기도 진정으로 종결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구축은 모두가 본 억울함을 짊어질지언정 그 벽에는 손대려 하지 않는다. 냉혈한이라서가 아니다. 두 가지 나쁨 가운데 자신이 보기에 더 천천히 무너질 쪽을 고른 것이다. 바티스통의 갈비뼈는 그렇게 그 벽의 대가가 됐다. 구축의 경계는 인간 시력의 한계에 그어져 있지 않다. 조문이 끝나는 곳, 집행자의 용기가 다하는 곳에 그어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구축은 스스로 다른 사실 하나를 인정했다. 3대 3, 120분으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의 운명을 승부차기에 맡겼고, 서독이 5대 4로 다음 라운드에 올랐다. 이 발명은 구축이 규정에 이런 문장을 명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경기는 더 해도 우열을 가릴 수 없으니, 페널티마크 위의 운에 맡긴다. 한때 치욕으로 여겼던 우연에게 이제 정문을 열어 주고 조문 안으로 들인 것이다. 같은 밤, 구축은 모두가 본 악행 하나를 다스리지 못하더니, 이어 경기 하나를 판가름할 수 없다고 제 입으로 인정했다.
판가름할 수 없다는 인정은 사실 구축이 드물게 정직해진 순간이었다. 그전에는 재경기나 추첨 같은 방법으로 억지로라도 결과를 짜내야 했다. 모든 경기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척한 것이다. 승부차기는 말을 분명히 했다. 어떤 경기는 120분으로 실력을 판가름할 수 없다. 그렇다면 페널티마크에, 누구도 계산할 수 없는 그 몇 걸음의 우연에 맡긴다. 한때 치욕이던 것이 이제 법이 보장하는 자리를 얻었다. 우연을 조문 안에 불러들인 것은 구축이 우연을 굴복시켜서가 아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인정해서다.
이 정문은 덤으로 승패의 문법까지 바꾸었다. 그때부터 세상에는 승부차기 석패라는 패배가 하나 더 생겼다. 진 사람도 고개를 들고 우리는 축구에서 진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승패는 판정했지만 승복까지 판정하지는 못했다. 구축은 교착 하나를 풀고, 또 하나의 미결을 만들었다. 사건은 끝낼 수 있어도, 그 사건이 사람들 마음에 남긴 울림까지 끝낼 수는 없었다.
4. 유령
이제 로시 이야기다.
1980년 이탈리아에서 토토네로라 불리는 불법 도박·승부 조작 사건이 터졌고, 로시도 연루됐다. 처음에는 출전 정지 3년을 받았다가 항소 뒤 2년으로 줄었다. 여기에는 세 층위가 있다. 하나씩 따로 놓아야 한다. 첫째, 스포츠 차원의 징계는 실제로 내려졌다. 그는 정말로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둘째, 형사상 유죄 판결은 뒤따르지 않았다. 훗날 사건을 정리한 기록들은 대체로 관련 피고인들의 사기 혐의가 형사법정에서 성립하는 죄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적는다. 당시 이탈리아 법은 경기 조작이라는 일을 다루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셋째, 로시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인했다. 생이 끝날 때까지 자신에게 속죄할 것은 없다는 입장을 지켰다. 징계, 유죄 판결, 자신의 인정. 세 층위는 저마다 별개이며,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을 대신하지 못한다.
이 세 층위를 하나로 합칠 수 없는 까닭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법정은 업계 규칙에 따라 출전을 정지시켜야 하는지를 묻는다. 형사법정은 국가의 법에 따라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한 사람이 지키는 주장은 어떤 자신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다. 세 질문, 세 가지 증거 기준, 세 가지 답은 원래 서로 어긋나지 않고 나란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의 기억이 세 층위가 미결인 채 놓여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억은 단번에 답을 원한다. 유죄인가, 무고한가. 그래서 늘 세 층위를 하나로 짓누르려는 힘이 작용한다.
출전 정지가 끝났을 때는 이미 1982년 봄이었다. 5월 5일에야 유벤투스에서 복귀 후 첫 골을 넣었다. 월드컵 개막까지는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
공식 경기를 2년 동안 뛰지 않는 것이 공격수에게 무슨 뜻인지는 어렵지 않게 셈할 수 있다. 골잡이는 리듬과 감각으로 먹고산다. 리듬과 감각은 경기를 뛰어야만 기를 수 있다. 조별리그에서 그가 부진했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에 가까웠다. 수수께끼가 아니라 산수였다. 하지만 당시의 이야기는 산수를 원하지 않았다. 죄인을 원했다. 나중의 이야기 역시 산수를 원하지 않았다. 기적을 원했다. 똑같은 부진을 처음에는 타락의 증거로, 나중에는 전설을 위한 복선으로 읽었다. 정작 있는 그대로 보지는 않았다. 2년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사람에게 당연히 슬었을 녹이었다.
녹의 다른 면도 산수이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최고의 골잡이였던 사람에게 사격술은 몸에 배어 있다. 녹슨 것은 조준점일 뿐, 리듬이 돌아오면 총은 여전히 그 총이다. 몇 주 뒤에 벌어진 일은 기적이라기보다, 신체 기능이 돌아오는 시점과 대회 후반부가 마침 맞아떨어진 일에 가깝다. 기적은 이야기가 즐겨 쓰는 말이다. 몸은 그 말을 모른다. 몸은 회복의 곡선만 안다. 이탈리아는 어쨌든 그를 스페인에 데려갔다. 그리고 처음 그가 돌려준 것은 재난이었다. 1차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는 폴란드와 0대 0, 페루와 1대 1, 카메룬과 1대 1로 비겼다. 세 경기 연속 무승부 끝에 비틀거리며 2차 조별리그로 올라갔다. 로시는 세 경기 내내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기자 브레라가 당시 내린 평은 지독하기로 유명했다. 로시가 자기 자신의 유령처럼 뛴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멈추어 놓고 보면 얻는 것이 있다. 그때의 이야기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승부 조작 사건에서 돌아온 사람. 출전 정지가 공에 대한 감각을 망가뜨린 사람. 데려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탈리아라는 팀에서 그보다 그럴듯한 병소는 없었다.
이런 원인 찾기는 너무 손쉽다. 바로 그래서 의심스럽다. 세 번의 무승부에는 백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몸 상태, 호흡, 상대, 운. 그런데 출전 정지를 마치고 돌아온 로시가 준비된 답처럼 거기 서 있었다. 그를 가리키면 모든 것이 설명됐다. 원인 지목이 증거보다 앞섰다. 어떤 증거가 그를 지목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가 가장 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5. 몇 주가 2년을 거꾸로 쓰다
그러고 나서 사리아가 왔다.
2차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는 먼저 아르헨티나를 2대 1로 돌려보냈다. 1982년 7월 5일, 바르셀로나 사리아 경기장에서는 브라질을 만났다. 로시 혼자 세 골을 넣었다. 3대 2. 폴란드와의 준결승에서도 두 골 모두 그의 몫이었다. 2대 0. 7월 11일 마드리드 베르나베우, 서독과의 결승에서도 선제골은 그가 넣었다. 타르델리와 알토벨리가 잇달아 득점했고, 브라이트너가 한 골을 만회했다. 3대 1, 이탈리아가 세 번째로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마흔 살의 주장 겸 골키퍼 조프가 트로피를 들었다. 그는 지금도 월드컵 최고령 우승 선수다.
이탈리아가 걸어온 길 전체도 결과에 의해 거꾸로 쓰였다. 우승 전 세 번의 무승부는 추문이었고, 평범함이었고,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증거였다. 우승 뒤 똑같은 세 경기는 차츰 힘을 비축한 시간, 노련함, 뒤늦게 큰 결실을 볼 징조로 이야기됐다. 경기도 점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 경기들이 이야기 안에서 받은 배역이었다. 결과는 종착점에서 거꾸로 비추는 등불 같다. 빛이 닿는 곳마다 그림자의 방향이 바뀐다.
로시의 결말은 그 거꾸로 비추는 등불에 기름을 넉넉히 부어 주었다. 우승, 골든부트, 골든볼. 셋이 한 사람에게 모두 돌아갔다. 대회 골든볼이 생긴 이래 두 번째로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없었다. 결과가 완벽할수록 거꾸로 쓰는 힘도 세진다. 두 골만 넣었다면 이야기에 논쟁할 틈이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섯 골에 3관왕이 더해지자 틈은 모두 막혔다. 이야기는 거침없이 1980년까지 거슬러 흘러갔다. 완벽한 결과는 과거를 거꾸로 쓰는 서사의 가장 좋은 연료다.
로시는 여섯 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대회 최우수 선수로도 뽑혔다. 훗날 국제축구연맹 박물관은 분명히 적었다. 1982년 대회 골든볼이 제정된 이래, 한 대회에서 우승과 골든부트, 골든볼을 모두 차지한 선수는 로시뿐이라고.
몇 주. 자기 자신의 유령 같은 선수에서 3관왕의 구세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주였다. 그런데 이야기의 손은 몇 주보다 훨씬 멀리 뻗었다. 1980년까지 줄곧 거슬러 갔다. 우승 뒤 로시에게는 한 단어가 단단히 달라붙기 시작했다. 구원. 사리아에서 넣은 세 골과 베르나베우에서 넣은 한 골이 경기만 이긴 것이 아니라, 2년 전 사건까지 함께 마무리한 것처럼.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골을 증거에 더할 수는 없고, 트로피로 사건 기록을 고칠 수는 없다. 1980년 사건의 세 층위, 스포츠 징계는 있었고 형사상 유죄 판결은 없었으며 본인은 끝까지 부인했다는 사실은 1982년 7월 11일 뒤에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이야기뿐이었다. 가장 단순한 대조를 해 보자.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로시가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면, 똑같은 사건 기록과 똑같은 부인을 오늘날 어떻게 이야기할까. 십중팔구는 타락한 자의 최후일 것이다. 출전 정지가 그를 망가뜨렸고, 그것은 자업자득이었다고. 사건 기록은 두 벌이 아닌데 이야기는 두 벌이다. 어느 쪽을 쓸지는 전적으로 공이 골문에 들어갔느냐에 달려 있다. 이른바 구원이란 결과의 말투이지, 사건 기록의 결론이 아니다. 경기장의 점수판은 법정의 사건을 판결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잣대를 양쪽에 똑같이 대야 한다는 점이다. 여섯 골을 더해도 무죄 판결이 되지 않는다면, 거꾸로 로시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쓸쓸히 돌아갔더라도 그 실패를 더해 유죄 판결을 만들 수는 없다. 트로피가 그의 죄를 씻었다는 사람과 어쨌든 그는 승부 조작범이었다는 사람은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경기장 안의 결과로 경기장 밖의 증거를 대신하려 한다. 사건은 1980년에 매달려 있다. 미결인 것은 미결인 채다. 그 빈자리는 골을 쌓아도, 오명을 채워 넣어도 메워지지 않는다.
구원이라는 말에는 알아채기 어려운 횡포가 한 겹 더 있다. 종교의 냄새를 품은 이 말은 죄를 전제한다. 씻을 죄가 있어야 구원도 말할 수 있다. 평생 유죄를 부인한 사람에게 이 말을 붙이는 것은, 그가 한 번도 인정하지 않은 죄를 대신 먼저 인정해 버리는 일이다. 그가 한평생 지켜 낸 부인의 말은 따스한 얼굴을 한 이 단어 안에 남김없이 흡수됐다. 이야기는 때로 칼 없이 사람을 죽인다. 단어 하나만 고르면 된다.
그 단어가 골라잡은 사람에게는 그 말을 막을 방법이 없다. 로시는 온 세계가 자신의 1982년을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사건 기록에 최종 판결 한 장이 더해지는 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듯이. 사람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 앞에서 거부권조차 없었다. 그가 지킬 수 있는 것은 평생 되풀이한 자신의 말 한마디뿐이었다.
6. 사리아와 출처 불명의 명언
사리아의 나머지 절반은 브라질의 것이다.
1982년의 브라질. 지쿠, 소크라치스, 파우캉, 세레주, 주니오르, 레안드루, 에데르. 산타나 감독은 그들에게 직관으로 축구하라고 했다. 풀백에게는 전진을, 미드필더에게는 상대 공격을 끊는 데 그치지 말고 공을 다룰 줄 알 것을 요구했다. 자유도 듬뿍 주었다. 첫 네 경기에서 13골을 넣고 3골만 내줬다. 소련,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꺾으며, 얼핏 무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유분방함으로 온 세계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 무심함이야말로 설계된 것이었다. 산타나는 자유를 규율로 배치했다. 직관으로 뛰는 것도, 풀백이 올라가는 것도 그의 요구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축구는 한 팀이 설계도에 따라 훈련해 만들어 낸 모습이었다. 8년 전 네덜란드와 같은 역설이다. 가장 힘 안 들여 하는 것처럼 보이는 축구 뒤에 가장 힘겨운 준비가 있다. 즉흥이란 애초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공부한 흔적이 보이지 않을 만큼 했다는 뜻이다. 국제축구연맹은 훗날 이 팀을 두고 트로피는 얻지 못했지만 그 월드컵을 눈부시게 빛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와의 그 경기는 또 다른 각주를 남겼다. 스물한 살 마라도나의 첫 월드컵. 다섯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고, 마지막에는 브라질에 패한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했다. 누구도 그 붉은 카드에서 4년 뒤의 일을 읽어 낼 수는 없었다.
당시의 마라도나는 천문학적인 몸값에 비해 명성이 과했던, 좌절한 선수였다. 다섯 경기, 두 골, 레드카드 한 장. 큰 기대를 받았으나 허무하게 끝난 월드컵이었다. 역사가 이 성적표를 따라 직선을 쭉 뻗는다면, 그 뒤에 천지를 뒤흔들 일은 없어야 했다. 최고 무대에서 벽에 부딪힌 젊은이가 그대로 사라진 전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역사는 직선으로 예측되지 않고, 사람도 곡선이 아니다. 스물한 살에 겪은 좌절이 훗날의 추락을 보증하지도, 신의 반열에 오를 미래를 선불로 약속하지도 않는다.
1982년은 1982년만 책임진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할 최소한의 공정함이다. 스물한 살의 마라도나에게도, 스물다섯 살의 로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7월 5일 사리아. 로시의 세 골, 3대 2, 브라질의 탈락. 28년 사이 같은 대본이 세 번째 상연됐다. 1954년 헝가리, 1974년 네덜란드, 1982년 브라질. 가장 아름답게 뛰던 강력한 우승 후보가 더 실리를 따지는 상대에게 거듭 무너졌다. 운율이 너무 잘 맞아떨어져 하늘의 뜻으로 읽기 쉬웠다. 아름다움은 실리에 지도록 정해져 있다고. 그러나 따로 펼쳐 보면 서로 독립된 세 경기다. 비슷한 구조가 비슷한 결과를 거듭 낳았을 뿐이다. 공격에 전부를 거는 방식은 애초에 우연에게 급소를 더 많이 내준다. 결과를 낳기 쉽다는 것과 정해져 있다는 것은 다르다.
게다가 이 운율에 끼기를 거부하는 반례도 있다. 1970년 브라질도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고, 말로 다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러고도 확실하게 트로피를 가져갔다. 똑같이 걸었는데 1970년에는 이기고 1982년에는 졌다. 이것이 우연의 본모습이다. 아름다움이 실리에 지도록 정해져 있다면 1970년을 설명할 수 없다. 아름다움이 실리를 이기도록 정해져 있다면 1982년을 설명할 수 없다. 진실은 훨씬 소박하다. 공격에 판돈을 거는 사람은 그날의 운에 급소를 더 많이 내맡긴다. 운은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다.
브라질은 졌다. 그런데 훗날 기억에 남은 것은 또다시 패한 이 팀이었다. 해가 갈수록 역대 최고의 브라질 대표팀, 우승하지 못한 가장 위대한 팀들의 명단에 올라갔다. 이 기억의 사슬은 몇 년이 지날 때마다 더 단단해졌다.
8년 전 네덜란드와 나란히 놓으면 성인으로 추대하는 데에도 규칙 하나가 보인다. 네덜란드는 그래도 결승까지 갔다. 한 걸음만 남겨 두었다. 이 브라질은 4강 문턱에도 닿지 못하고 2차 조별리그에서 막혔다. 어느 라운드까지 갔느냐로 따지면 실패는 더 빨랐고 더 철저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바치는 향은 네덜란드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기억의 전당에서 서열을 매길 때 보는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닌 모양이다. 그 팀의 아름다움과 추락의 폭을 곱한 값이다. 그 전당에 모셔진 것은 하나같이 이기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이 규칙은 어렵지 않게 풀린다. 이긴 아름다움은 우승에 편입된다. 1970년 브라질을 말할 때 사람들은 먼저 우승 팀이라고 하고, 그다음 아름다웠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우승을 꾸미는 말이 된다. 진 아름다움은 편입시켜 줄 우승이 없다. 아름다움은 오로지 제 것인 채 외롭게 서 있다가, 오히려 기념비가 된다. 우승은 소유권이다. 이긴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주인 없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아쉬워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누구나 찾아와 향 한 대를 올릴 수 있다.
향이 아무리 많이 피어올라도 본래 그들의 모습을 잊지는 말자. 그때 사리아에 들어선 열한 명은 이기러 간 것이지 순교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트로피를 원했다. 어떤 실리적인 팀 못지않게 진심으로 원했다. 그들을 아름다움의 순교자로 기억하고, 이야기에 필요한 제물로 모시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을 또 한 번 기호 속에 눌러 넣는 일이다. 그들은 이기고 싶었던 경기에서 졌다. 이 소박한 사실이 어떤 향 한 대보다도 그들에게 어울린다. 기억의 사슬 자체는 실재한다. 그러나 후대가 고리 하나씩 주조해 보탠 사슬이다. 1982년 7월 5일 밤부터 거기 걸려 있던 것이 아니다.
그 사슬에서 가장 빛나는 고리는 한 문장의 명언이다. “축구는 사리아에서 죽었다.” 오늘날 널리 퍼진 말이지만, 정작 출처는 붙잡을 수 없다. 어떤 판본은 지쿠의 말이라고 하고, 어떤 판본은 소크라치스가 라커룸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인 가능한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1982년 당일의 보도 한 편, 당시 녹음 한 대목으로 이 말을 특정인의 입에 확실히 묶어 둘 수 없다. 후대의 이야기가 커다란 아쉬움 한 덩어리를 응축해 만든 꼬리표에 더 가깝다. 이 꼬리표가 하는 일은 경기 한 번의 패배를 한 시대의 장례식으로 추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죽은 것은 축구가 아니었다. 한 팀의 한 차례 월드컵이었다. 축구는 다음 날도 평소처럼 킥오프했고, 4년 뒤에도 평소처럼 돌아왔다. 패배 한 번을 시대의 단절로 이야기하면 그 패배에 깊은 의미가 생길 뿐이다. 역사 자체가 시대를 끊는 것이 아니다. 시대를 끊는 것은 언제나 이야기다.
이 꼬리표에는 또 하나의 억울한 당사자가 있다. 이탈리아다. 축구가 사리아에서 죽었다면 누가 죽였는가. 문장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도 답은 빤하다. 로시와 동료들은 그날 깨끗하게 이겼다. 세 골 모두 정면으로 맞붙어 얻어 낸 골이었다. 그런데 이 명언의 문법 속에서 그들에게는 영원히 살인자 배역이 주어진다. 그들의 우승에는 그때부터 스타일의 죄가 따라붙는다. 상대의 아름다움을 승자의 죄로 기록하는 것. 꼬리표의 또 다른 폭정이다. 한 경기에는 패자가 있어도 된다. 죄인까지 있을 필요는 없다.
훗날에는 사리아의 패배가 브라질의 축구 방식 자체를 바꾸었고, 그때부터 아름다운 축구가 실리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말도 흔히 나왔다. 수십 년을 가로지르는 인과를 이렇게 단언할 때, 증거는 언제나 말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한 나라의 축구가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에는 여러 세대의 선수와 여러 감독, 축구계 전체의 물결이 얽혀 있다. 그 모두를 어느 날 오후의 한 경기에 묶어 버리는 것은 역사를 스위치가 하나뿐인 기계로 여기는 일이다. 그날 오후는 분명 아팠다. 아프다고 전환점인 것은 아니다. 전환점은 후대의 이야기가 소급해 인정한 이름이다.
7. 친왕이 경기장에 들어오다
이 대회에는 구축의 또 다른 경계를 온 세계 앞에 보여 준 장면도 있었다.
1982년 6월 21일 바야돌리드, 프랑스와 쿠웨이트의 경기. 프랑스는 경기가 잘 풀렸다. 잇달아 득점한 뒤 또 한 번 공을 골망에 넣었다. 그런데 쿠웨이트 선수들은 이미 멈춰 서 있었다. 휘슬 소리가 들려 심판이 분 줄 알고 수비를 멈췄다는 것이었다. 관중석에서 쿠웨이트 선수단 단장이자 축구협회장이던 파하드 친왕이 일어나 내려왔다. 곧장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면전에서 항의했다. 그러자 스투파르 주심은 축구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을 했다. 이미 유효하다고 판정한 골을 그 자리에서 취소했다. 몇 분 뒤 보시스가 다시 골을 넣어 최종 점수는 4대 1이 됐다.
4대 1, 프랑스가 이겼고 다음 라운드 진출에도 영향이 없었다. 아마 이 때문에 사태가 더 큰 폭풍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무사했다고 해서 벌어진 일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내려진 판정이 관중석에서 걸어 내려온 사람 하나에 의해 현장에서 바뀌었다. 번복의 근거는 규칙 조항도, 부심의 깃발도 아니었다. 그 사람의 신분이었다. 구축은 자기 경기장에서, 관중이 가득 지켜보는 가운데 한 번 허리를 굽혔다.
쿠웨이트 선수들은 휘슬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 대목은 분명히 가리기 어렵고, 누구를 대신해 결론 내줄 필요도 없다. 실제로 관중석에서 휘슬 소리가 경기장으로 흘러들었다. 선수들이 정말로 속았든, 기회를 타고 편승했든, 영원히 매달려 있을 작은 사건이다. 진짜 큰 사건은 거기에 있지 않다. 판정을 바꿀 이유는 규칙 안에서만 나와야 한다. 부심의 깃발에서, 주심 자신의 눈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구축이 서 있는 토대다. 그날 이유는 관중석에서 걸어 내려온 하나의 신분에서 나왔다. 신분을 향해 문을 열어 주고 나면, 단 한 번이었다 해도 구축의 모든 판정에는 그림자가 하나 더 드리운다.
그렇다고 그날 구축이 전면적으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골은 취소됐어도 최종 점수까지 취소되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여전히 4대 1로 이겼고, 여전히 다음 라운드에 올랐다. 친왕은 1분을 고쳐 썼지만 90분을 고쳐 쓰지는 못했다. 구축은 허리를 굽혔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다. 아마 이것이 이 장면에 남은 마지막 한계선일 것이다. 권력은 경기장 안에 한 발을 들여놓을 수는 있어도 경기 전체를 밟아 없애지는 못한다. 판정 하나는 지울 수 있어도 점수판의 마지막 숫자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사후 조치 가운데 동시대 자료로 확정할 수 있는 목록은 이렇다. 쿠웨이트 축구협회에는 경고와 2만 5천 스위스프랑의 벌금이 내려졌다. 파하드 친왕은 스포츠 정신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4대 1의 점수는 유효한 것으로 유지됐고, 경기장 질서 관리도 지적받았다. 스투파르 주심은 다음 심판위원회 회의 때까지 직무가 정지됐다. 훗날 적지 않은 글이 그의 결말을 국제경기 심판 자격의 영구 박탈로 썼다. 하지만 그것은 이차 서술이 보탠 형량이다. 동시대 자료에서 확인되는 것은 심의를 기다리는 동안의 직무 정지다. 구축은 따귀를 맞고 벌금 통지서 한 장으로 응수했다.
그 통지서의 장부는 꼼꼼히 들여다보면 버티지 못한다. 2만 5천 스위스프랑이 사 간 것은 대중 앞에서 한 번 굽힌 허리다. 경고 두 장은 축구협회와 친왕의 이름 아래 적혔다. 하지만 정말로 손상된 것, 판정은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은 누구의 계좌에도 들어 있지 않다. 배상할 수도, 복구할 수도 없다. 구축은 발행할 수 있는 벌금 통지서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손실을 메우려 했다. 그 계산이 어떤지는 자신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장면은 축소판 우화 같다. 4년 전 아르헨티나에서는 한 정권이 대회 전체를 자기 사업으로 만들었다. 1982년 바야돌리드에서는 친왕 한 사람이 경기장에 걸어 들어왔을 뿐인데 판정이 그 자리에서 방향을 틀었다. 구축의 경계는 권력 앞에서 빈틈없이 막힌 적이 없다. 차이는 권력이 경기장 전체를 사들이느냐, 공 한 번을 도로 밟아 밀어내느냐에 있을 뿐이다. 여기서도 기록과 사실은 다시 갈라졌다. 웸블리에서는 들어갔는지 분명하지 않은 공을 골로 적었고, 바야돌리드에서는 이미 골로 인정한 공을 지웠다. 장부에는 없지만 수만 쌍의 눈이 그것을 보았다.
후대의 이차 서술에서 스투파르의 결말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심의 전까지의 직무 정지가 끝내 영구 심판 자격 박탈로 불어났다. 이렇게 형량을 보태는 손과 로시에게 구원을 붙여 주는 손은 같은 손이다. 기억은 기록이 너무 가볍게 판결했다고 여겨 직접 형을 더한다. 이야기 속 정의를 기록 속 정의보다 조금 더 가지런하게 맞추려는 것이다. 하지만 기록은 기록이다. 동시대 자료로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직무 정지뿐이다. 이야기는 앞뒤가 맞기를 바라지만, 역사는 앞뒤가 맞는지 아닌지에 개의치 않는다.
8. 매듭
이제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자.
1982년 스페인, 전환기를 지나던 나라의 월드컵은 다섯 도시를 통해 구축의 네 경계를 하나씩 드러냈다. 히혼이 드러낸 것은 조문의 경계다. 규칙은 경쟁을 전제하는데, 경쟁 자체가 사라지자 규칙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면서도 지키려던 것을 지키지 못했다. 반칙 없는 추문 하나가 장부에서는 규정에 맞게 종결됐다. 세비야가 드러낸 것은 집행의 경계다. 온 세계가 똑똑히 본 악행이 현장에서 판정받지 않았고, 사후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보이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같은 밤, 구축은 월드컵 사상 첫 승부차기를 통해 어떤 경기는 자신이 판가름할 수 없다고 제 입으로 인정했다. 바야돌리드가 드러낸 것은 권력의 경계다. 친왕 하나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이미 인정된 골이 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구축은 허리를 굽혔다가 벌금 통지서 한 장으로 다시 허리를 폈다. 사리아와 마드리드가 드러낸 것은 이야기의 경계다. 결과가 정해지는 순간 이야기는 모든 것을 거꾸로 쓰기 시작했다. 유령은 몇 주 만에 구세주가 됐고, 최종 판결 없는 사건에 여섯 골이 그 사건이 한 번도 받지 못한 무죄를 선고했다. 패배 한 번은 출처도 모르는 명언 하나에 의해 한 시대의 장례식으로 추대됐다.
그 뒤 군데군데 기움천이 붙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의 동시 킥오프가 규정에 들어갔고, 승부차기는 늘 열려 있는 출구가 됐다. 하지만 바늘땀은 언제나 틈이 벌어진 뒤에야 놓인다. 손해 본 알제리 사람들은 이미 집에 돌아갔고, 바티스통의 부러진 이는 기록 속에서 다시 자라지 않는다. 구축은 이런 식으로 앞으로 간다. 손실을 한 번씩 겪으며 다음 조항을 배운다. 그러는 사이 다음 틈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구축의 치욕이 아니라 본성이다. 조문으로 모든 잘못을 미리 다 써 두기를 바라는 것과, 구축 하나로 모든 잔여항을 가두기를 바라는 것은 같은 헛된 욕심이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빈틈없는 규칙이 아니다. 틈이 벌어진 뒤에도 기꺼이 기움천을 댈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추문 없는 축구가 아니다. 추문 뒤에도 그것이 추문이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히혼의 그날 밤 가장 안심이 되는 것은 오히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야유였다. 규칙은 고장 났지만 관중은 고장 나지 않았다.
결국 조문은 헛손질하고, 판정은 잘못 보고, 기록은 몸에 새겨진 기록을 빠뜨리고, 이야기는 모든 것을 거꾸로 쓴다. 그해 여름 이 네 가지가 하나씩 잘못됐다. 그래도 축구는 히혼에서 죽지 않았고, 사리아에서도 죽지 않았다. 축구가 이 구멍들에서 번번이 살아 돌아오게 한 것은 경기장 안팎에서 못 본 척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야유, 항의, 흰 손수건, 여러 해 뒤의 사과 한마디와 용서 한마디. 이런 것은 규정에 적히지 않는다. 하지만 구축을 정말로 깁는 것은 언제나 이 사람들이다.
사람은 자신에 관한 기록보다 조금씩 더 크다. 로시는 끝내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은 사건을 짊어진 채 축구를 마쳤고, 생을 마쳤다. 골도 그 사건을 종결하지 못했고, 오명도 그러지 못했다. 바티스통의 몸은 그 충돌을 기억하지만 기록에는 골킥 하나만 남았다. 브라질의 열한 명은 불멸의 자리에 올라갔지만, 불멸은 후대의 작업이다. 그들이 몸소 안고 돌아간 것은 실제로 패한 경기 하나였다. 조문은 축구를 다 쓸 수 없고, 기록은 사람을 다 쓸 수 없으며, 이야기는 늘 그 둘보다 먼저 달려 나간다. 축구는 이 셈이 모두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4년 뒤에도 휘슬은 어김없이 울릴 것이다. 새로운 틈이 벌어지고, 새로운 기움천은 늦게 도착하고, 새로운 이야기는 출발 신호보다 먼저 뛰어나갈 것이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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