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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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세계 축구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 제10편 / 총 22편

부에노스아이레스: 흩날리는 종이와 끝내 가리지 못한 몇 블록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축제와 군사독재의 강제실종을 같은 도시 안에 놓고, 진짜 우승과 정치적 오염을 구분한다.

Han Qin (秦汉)·2026

종이 눈이 내리던 밤

1978년 6월 25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모누멘탈 경기장에서 아르헨티나는 연장 끝에 네덜란드를 3대1로 이기고 처음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다니엘 파사레야가 트로피를 들 때 하얀 종잇조각이 눈처럼 쏟아졌다. 축구를 사랑한 관중의 환희는 실제였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해군기계학교에서는 같은 시간 사람들이 감금되고 고문당했다. 어떤 수감자는 경기장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기억했다. 도시 최대의 환호와 강제로 눌린 침묵이 같은 밤공기를 공유했다.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의 눈으로 보면 군사정권은 카메라가 볼 국가를 따로 깎아 냈다. 축제와 질서만을 보여 주는 구(構)로 폭력을 덮으려 했다. 하지만 사라진 사람의 이름과 가족의 기억은 화면 밖의 여항(餘項)으로 남아, 결국 그 장면의 의미를 뒤집었다.

기록을 없애는 범죄

1976년 쿠데타로 호르헤 비델라를 중심으로 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국가재편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반대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재판도 공식 체포도 없이 사라졌다. 강제실종은 죽음의 날짜와 시신, 무덤마저 빼앗아 가족을 끝없는 기다림에 가두는 통치 방식이었다.

민주화 뒤 조사위원회의 보고서 ‘눈카 마스’는 8,960명의 강제실종 사례와 340곳의 비밀구금시설을 확인하면서, 신고되지 않은 피해가 많아 최종 수가 아니라고 밝혔다. 인권단체가 사용하는 3만 명 추정치와 확인된 하한은 함께 놓여야 한다. 숫자의 불일치는 범죄가 기록 자체를 공격한 흔적이다.

해군기계학교에서는 5천 명 이상이 납치와 고문, 살해를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감 중 태어난 아이를 빼앗고 강제노동과 성폭력을 가했다. 한편 1977년부터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흰 머릿수건과 자녀 사진을 들고 ‘내 아이는 어디 있는가’라고 물었다. 정권이 지우려 한 이름을 몸으로 기록했다.

국가사업이 된 환희

군사정권은 법률로 월드컵을 국가적 이익으로 규정하고 별도 기구를 만들었다. 경기장을 고치고 호텔과 공항을 정비했으며 국영방송을 컬러로 바꾸었다. 행정 문서는 수 킬로미터에 이를 만큼 방대했다. 자연스러운 열광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설계된 전시 무대였다.

정권이 축구 사랑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이미 뜨거웠던 아르헨티나인의 열정을 자기 관으로 돌려, 대표팀을 향한 함성이 곧 정부에 대한 지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해외 비판은 ‘반아르헨티나 캠페인’으로 불렀다. 정부와 국가를 같은 것으로 만드는 위험한 등식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보이콧 운동이 있었고 국제앰네스티도 스포츠가 정치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외국 대표팀은 모두 참가했다. 진실을 몰라서만 행사가 계속된 것이 아니다. 선수의 기회, 협회의 약속, 방송 계약과 일정이 각자의 합리성을 만들며 거대한 구(構)를 그대로 움직였다.

6대0에 붙은 끝나지 않는 물음표

두 번째 조별리그 마지막 날 브라질이 먼저 경기를 마쳐,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네 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결승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을 알고 들어갔다. 경기는 6대0으로 끝났다. 연관된 두 경기를 동시에 치르지 않은 일정이 의심이 자랄 틈을 만들었다.

비델라가 헨리 키신저와 함께 경기 전 페루 라커룸을 방문했다는 기록은 있다. 그러나 그 방문의 뜻과 구체적인 거래, 금품이나 정치범 교환에 관한 여러 주장은 권위 있는 자료로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 6대0과 비정상적인 정치 접촉은 사실이며, 승부조작의 구체적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의혹을 확정된 범죄처럼 쓰면 페루 선수들에게 또 다른 형을 선고한다. 반대로 아무 문제 없었다고 말하면 권력이 만든 무게를 외면한다. 눈으로 본 공의 위치를 알 수 없었던 1966년과 달리, 1978년의 진실은 기록을 없애는 정권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판정은 끝났지만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우승컵을 정권에서 되찾는 법

결승에서 마리오 켐페스가 선제골을 넣고 네덜란드가 동점골을 만들었다. 정규시간 막판 롭 렌센브링크의 슛은 골대를 맞았다. 몇 센티미터만 달랐다면 군사정권이 쌓은 국가사업은 홈 결승 패배로 끝날 수 있었다. 법과 선전은 공의 튀는 방향을 명령하지 못했다.

연장에서 켐페스와 다니엘 베르토니가 골을 넣었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렌센브링크의 슛을 막아 낸 골대, 실제 득점은 정권이 연출한 가짜가 아니었다. 동시에 비델라가 트로피를 건넨 장면과 몇 블록 밖 고문실의 침묵도 지울 수 없다. 우승은 진짜였고, 그 우승은 범죄 정권에 의해 오염되었다.

민주화 뒤 해군기계학교는 기억과 인권을 위한 박물관이 되었고, 정권의 월드컵 문서는 그 기획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었다. 선수와 관중의 기쁨은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착취와 범죄의 책임은 군사정권에 돌려주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흔적을 깨끗이 씻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잇조각과 그 몇 블록의 침묵은 앞으로도 같은 역사 안에 남아야 한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