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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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세계 축구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 제10편 / 총 22편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늘 가득한 종이 조각, 끝내 가리지 못한 몇 블록 너머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축제와 군사독재의 강제실종을 같은 도시 안에 놓고, 진짜 우승과 정치적 오염을 구분한다.

Han Qin (秦汉)·2026
이 글의 목차

1. 종이 조각이 내려앉던 오후

1978년 6월 2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누멘탈 경기장.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가 맞붙은 월드컵 결승전은 연장 끝에 3 대 1로 끝났다. 개최국 아르헨티나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관중석에서 뿌리는 종이 조각은 그칠 줄 모르는 눈 같았다. 훗날 남은 영상 속에서 파사레야가 우승컵을 치켜드는 순간, 사방은 함성과 하늘 가득한 흰 종이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관중석에서 종이를 뿌리는 것은 아르헨티나 경기장의 오랜 풍습이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는 그 장면이 월드컵 전체를 대표하는 가장 선명한 이미지가 되었다. 종이 조각의 눈보라 속에서 탄생한 우승이었다.

분명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높은 관중석에서 흰 종잇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조명 아래서 휘날리다가 선수들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고, 잔디밭을 온통 덮었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전 세계인에게 아르헨티나는 바로 이런 나라였다. 축구에 열광하는 뜨겁고 행복한 나라. 영상에는 렌즈 앞에 있는 것만 담긴다. 그리고 렌즈가 향할 곳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종이 조각 자체에는 죄가 없다. 관중석 아래로 종이를 뿌리는 것은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의 해묵은 습관이었다. 그 기쁨은 진짜였고, 축구를 향한 팬들의 사랑도 진짜였으며, 우승의 밤에 흘린 눈물도 진짜였다. 정권이 만들어낸 것은 그 기쁨이 아니라, 기쁨을 둘러싼 액자였다. 진짜 환희를 거짓된 프레임 안에 담은 것이다. 전유가 가장 음험해지는 지점이 여기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까지 위조할 필요는 없다. 카메라가 어디를 비추고 어디를 비추지 않을지만 결정하면 된다.

그 경기장을 나서 몇 블록만 지나면,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해군기계학교의 옛 장교 숙소가 있었다. 종이 조각이 쏟아져 내리던 바로 그날들에, 그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그곳에서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곳에서 끌려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한쪽에는 도시가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함성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건물 안에서 짓눌린 침묵이 있었다. 1978년 그 겨울, 두 가지는 몇 블록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존재했다.

이 월드컵이 역사에 남긴 것은 한 경기가 아니라, 바로 이런 동시성이었다. 환호와 고문이 동시에, 축제와 실종이 동시에, 하늘 가득한 종이 조각과 굳게 잠긴 철문이 동시에 있었다. 이후의 모든 질문은 이 동시성에서 자라났다. 어떻게 한 도시가 세계 최대의 환희를 연출하면서, 동시에 제 시민들 가운데 일부를 소리도 없이 가라앉게 할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정권이 건 내기였다. 함성이 충분히 크고 충분히 오래 이어지면, 그 침묵은 완전히 묻힐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듣지 못하고, 그다음에는 아무도 묻지 않으며, 끝내는 묻던 사람마저 그런 침묵이 정말 있었는지 의심하게 되리라고. 여기서 소리는 도구가 되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에, 기계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맡기려 했다. 정권을 대신해 한 도시의 청각을 씻어내는 일이었다.

2. 몇 블록 너머

먼저 그 범죄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해두자.

1976년 3월 24일, 아르헨티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 페론 정부를 전복했다. 비델라, 마세라, 아고스티 세 사람이 이끄는 군사평의회가 나라를 장악했고, 자신들의 통치에 ‘국가재편과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몇 년 동안 정권은 자신이 적으로 지목한 사람들을 특유의 방식으로 제거했다. 체포도, 재판도, 발표도 없었다. 사람이 그냥 사라졌다. 이 수법에는 나중에 ‘강제실종’이라는 별도의 이름이 붙었다.

실종이라는 수법의 잔혹함은 죽음조차 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처형은 적어도 시신 한 구, 날짜 하나, 무덤 하나를 남긴다. 실종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가족은 죽었다는 소식을 받을 수 없으니 미련을 영영 끊을 수도 없다. 그들은 끝없는 유예 상태에 못 박힌다. 아무도 죽음을 선언하지 않으니 애도할 수 없고, 아무 소식도 없으니 희망을 품을 수도 없다. 공포는 그렇게 퍼져나간다. 특정한 누군가가 처벌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어느 밤에든 세상에서 지워질 수 있게 된다.

그 규모를 놓고는 오늘날까지도 확정할 수 있는 숫자가 없다. 군정이 무너진 뒤인 1984년, 새 정부가 설치한 국가실종자조사위원회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이라는 제목의 기록을 내놓았다. 신고 내용과 인권단체의 명단을 대조해 강제실종 상태에 있는 8,960명을 확인했다. 다만 신고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 많으므로 이것을 최종 수치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같은 기록에서 확인한 비밀구금시설은 340곳이었다. 아르헨티나 인권단체들은 오랫동안 3만 명이라는 추정치를 사용해왔다. 비델라 본인이 정권이 반대자들을 사라지게 했다고 인정한 것은 2012년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인원수는 논쟁할 수 있다면서 7천에서 8천 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것은 가해자가 말년에 내놓은 자기 진술이지, 조사를 대신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비밀구금시설 340곳. 이 숫자는 따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건물 안에서만 벌어진 만행이 아니라, 전국에 펼쳐진 그물망이었다는 뜻이다. 차고, 경찰서, 병영, 학교가 모두 그 그물의 매듭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공포는 한곳에 몰려 있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 곳곳에 흩어진 상시적 현실이었다. 이것 역시 그 전모를 기록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물은 너무 넓었고, 매듭 하나하나는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졌다.

숫자가 하나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은 조사에 성의를 다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 범죄가 겨냥한 것이 바로 기록 자체였기 때문이다. 시신도 남기지 않고, 명단도 남기지 않고, 문서도 남기지 않는다. 모든 장부에서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수법이었다. 기록의 말살을 수단으로 삼은 범죄는 그 자체의 희생자 수조차 영원히 온전하게 기록될 수 없는 운명을 갖는다.

그러므로 8,960명과 3만 명은 나란히 두어야 한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대신할 수 없다. 앞의 숫자는 사건별로 확인한 최소치다. 그 무게는 확실성에 있다. 숫자 하나하나마다 대조할 수 있는 신고가 있다. 뒤의 숫자는 전체 규모에 대한 역사적 추정치다. 그 무게는 경고에 있다. 확인한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경고다. 앞의 숫자만 남기면 범죄의 규모를 대신 줄여주는 셈이 된다. 뒤의 숫자만 남기면 부정하려는 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다. 숫자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이 범죄의 본래 모습이다.

해군기계학교는 이 기계에서 가장 큰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였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옛 장교 숙소는 해군의 핵심 비밀구금·고문·절멸 시설이었다. 훗날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군부가 여기서 5천 명 넘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며, 여성 수감자들이 낳은 아기를 빼앗았고, 강제노동과 성폭력도 자행했다고 명시했다. 그 건물의 주소는 리베르타도르, 곧 해방자 대로에 있었다. 모누멘탈 경기장은 몇 블록 너머였다.

황야에 감춰진 수용소가 아니었다. 수도의 대사관 밀집 지역 가까이에 서 있는 번듯한 건물이었다. 흰 벽과 기둥이 있었고, 문 앞 대로에는 차들이 끊이지 않았다. 낮이면 장교들이 그 안에서 업무를 보았고, 위층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악이 늘 흉측한 얼굴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제복을 입고 좋은 동네에 살면서 경기장과 이웃할 수도 있다.

그리고 1977년부터 대통령궁 앞 5월 광장에서 어머니들이 무리를 지어 광장을 돌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흰 스카프를 두르고 손에는 사진을 들었다. 묻는 것은 단 하나였다.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당국은 이 어머니들에게 ‘미친 여자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바꿔치기하는 그 논리가 다시 쓰인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리면 질문 자체에는 답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한 주가 지나도, 또 한 주가 지나도 계속 걸었다. 흰 스카프는 그 시대의 가장 고요하면서도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상징이 되었다. 정권에는 법도, 라디오도, 경기장도, 국가기구 전체도 있었다. 어머니들에게는 사진과 이름뿐이었다. 이후의 역사는 사진과 이름이 국가기구보다 오래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3. 법으로 정한 환희

월드컵은 바로 이런 나라에서 열렸다. 우연히 그곳에서 열렸을 뿐인 것도 아니었다. 정권은 이 대회를 어엿한 국가사업으로 추진했다.

이를 증언하는 법률이 있다. 군정은 특별히 법률 제21,349호를 통과시켜, 1978년 월드컵의 준비와 개최가 국가적 이익에 해당한다고 문서로 못 박았다. 이를 근거로 대회를 전담할 국가기관도 설치했다. 이 기관이 남긴 기록은 훗날 국가기억기록관으로 이관되었다. 직원 인사기록, 행정문서, 공사 도면, 구매 전표 등이 차지하는 서가 길이는 무려 2천 미터에 달했다. 정권 하나가 축구대회를 입법이라는 방식으로 제 사업으로 만든 것이다.

2천 미터 길이의 기록은 잠시 멈춰 그 길이를 가늠해볼 만하다. 수십만 장의 종이다. 직원 명부, 회의록, 설계도, 건건이 남겨진 구매 내역. 이 환희가 저절로 자라난 것이 아니라 사무실 하나하나, 공문 한 장 한 장을 거쳐 빈틈없이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기쁨은 행정업무가 되었고, 열광에는 예산 항목이 생겼다. 즐거움조차 사업계획에 올려야 하는 정권은 바로 그 때문에, 자발적인 것을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드러낸다.

전유의 수법은 언제나 사랑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접수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인들의 축구 열정은 이 정권이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다. 깊었고, 진실했다. 정권이 한 일은 이미 흐르던 뜨거운 물줄기를 자기 배관에 연결하는 것이었다. 팀을 향한 함성이 정권 지지로도 계산되게 하고, 하늘색과 흰색 깃발이 어느새 군복 입은 자들을 위해서도 펄럭이게 했다. 사랑은 그대로였다. 다만 그 실적이 다른 사람의 장부에 올라갔다.

이 사업을 중심으로 정권은 대대적인 공사를 벌였다. 리버 플레이트, 벨레스 사르스필드, 로사리오 센트랄의 경기장을 개보수했고, 코르도바, 마르델플라타, 멘도사에는 새 경기장을 지었다. 공항과 호텔도 새로 단장했다. 국영방송 채널 7은 이 월드컵을 위해 컬러 방송 체제로 개편했다. 8년 전, 축구는 컬러 영상 속에서 비로소 두 번째 존재를 얻었다. 8년 뒤, 한 정권은 이미 그 무게를 배워두었다. 전 세계가 컬러 화면에서 보게 될 아르헨티나를 자신이 준비한 모습으로 만들려 했다.

8년 전 멕시코시티의 그 여름, 축구는 처음으로 온전히 컬러 영상 안에 담겼다. 그때부터 월드컵 하나는 두 번 존재했다. 한 번은 잔디 위에서, 한 번은 화면 위에서. 화면 위의 월드컵은 더 멀리 퍼지고 더 오래 살아남았다. 군정은 이 점을 읽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군정이 차지하려 한 것은 잔디 위의 존재가 아니라 화면 위의 존재였다. 돈을 쏟아부어 방송국을 개편한 까닭은 직접 펜을 쥐고 이 나라의 두 번째 존재를 써내려가기 위해서였다.

도와줄 사람도 고용했다. 군정은 이미지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대형 홍보회사 버슨마스텔러를 기용했다. 해외에서 이 나라와 정부에 대한 신뢰와 호감을 높이는 것이 임무였다. 이 선전에서는 1979년에 또 하나의 유명한 구호가 등장했다. 옮기면 이렇다. ‘우리 아르헨티나인은 올곧고 인간적이다.’ 스페인어에서는 ‘올곧다’와 ‘권리’에 같은 단어를 쓰고, ‘인간적이다’와 ‘인간’에도 같은 단어를 쓴다. 이 둘을 합치면 바로 ‘인권’이 된다. 그러니까 정권은 자신을 고발하던 두 단어를 뜯어내어 제 구호 속으로 삼켜버린 것이다.

이 수는 단순한 부인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부인은 ‘당신들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 구호는 상대의 언어 자체를 무장해제했다. 인권을 말하고 싶은가? 그 말은 우리가 이미 대신 했다는 것이다. 고발의 언어는 광고 문구가 되어 도시 곳곳의 벽에 붙었다. 언어를 전유하는 일은 흔히 경기장이나 방송국을 전유하는 일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사람들이 입을 열어 고발할 때 쓸 수 있는 바로 그 몇 마디를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비델라는 해외의 비판을 ‘아르헨티나를 겨냥한 거짓말과 비방 운동’이라고 불렀다. 이 수의 구조를 똑똑히 볼 필요가 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을 아르헨티나에 대한 공격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다. 일정한 조건 위에 세워진 구축인 정권이 자신을 나라 그 자체라고 내세웠다. 군정을 의심하면 아르헨티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된다. 월드컵은 바로 이 사칭의 대관식이었다. 정권이 가장 원한 것은 전 세계의 함성 속에서 ‘군정’과 ‘아르헨티나’를 한 단어로 합쳐버리는 일이었다.

이 사칭은 바깥보다 안을 향할 때 더 날카로운 칼이 되었다. 정권이 곧 나라가 되는 순간, 국내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자동으로 나라의 적이 된다. 그들을 제거하는 일은 아르헨티나를 지키는 일이 된다. 실종을 만들어내는 기계의 윤활유가 바로 이 등호였다. 월드컵은 그 등호를 전 세계에 팔았다. 하늘색과 흰색의 유니폼, 경기장을 가득 채운 국기, 천지를 울리는 국가. 정권이 국가의 이름 안으로 이토록 매끄럽게 자신을 꿰매 넣을 수 있는 자리는 달리 없었다.

44년 전 무솔리니는 월드컵을 확성기로 삼아 ‘우리는 강하다’고 대신 외치게 했다. 1978년의 군정은 월드컵을 알리바이로 삼아 ‘우리는 정상이다’라고 대신 말하게 했다. 보라. 경기장은 새것이고, 텔레비전은 컬러이며, 온 도시에 웃는 얼굴과 종이 조각이 가득하다. 범죄를 저지르는 나라가 이런 모습일 수 있겠는가.

이 두 전유의 무게는 같지 않다. 확성기가 키우는 것은 정권이 하고 싶은 말이고, 알리바이가 가리는 것은 정권이 지금 하는 짓이다. 앞의 것은 과시이고 뒤의 것은 은폐다. 은폐는 언제나 과시보다 더 켕기는 것이 많고 더 다급하다. 1934년의 이탈리아는 세계가 자신을 우러러보기를 원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군정은 세계가 눈을 돌리기를 원했다. 44년 사이 월드컵은 훈장에서 치부를 가리는 천으로 바뀌었다.

한층 더 서늘한 차이도 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역시 적들을 가두었다. 하지만 1934년의 범죄는 대체로 경기장 바깥의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1978년이 특별한 것은 범죄와 축제가 같은 시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같은 도시에, 몇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권이 축구대회로 제 얼굴에 금칠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진행 중인 범죄 바로 옆에 환희를 세워놓았다. 축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이 대회에 이르러 가장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냈다.

4. 전 세계가 알았고, 전 세계가 왔다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이 월드컵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7년 말부터 파리에서는 조직적인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는 프랑스에서만 200개 넘는 지부를 세웠다. 비슷한 연대와 보이콧 움직임이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서독, 스위스, 미국, 스웨덴, 핀란드, 스페인에서도 나타났다. 국제앰네스티는 스포츠가 정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호소했다. 실종자 소식과 비밀구금에 관한 소문은 이미 그때 유럽 신문에 실리고 있었다.

스포츠가 정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은 1978년에는 하나의 견해라고 부를 것조차 못 되었다. 눈앞의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정치가 이 스포츠 행사를 법으로 정하고, 국가적 이익으로 규정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기관을 세웠다. 이 월드컵을 순수한 스포츠로만 보라는 요구야말로 그 정치사업의 일부였다.

하지만 결국 초청받은 외국 대표팀 15개국 가운데 한 팀도 참가를 철회하지 않았다. 보이콧을 외치는 목소리는 분명 있었지만, 보이콧 자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왔고, 기자들이 왔고, 카메라가 왔다. 전 세계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대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알고 있는 것과 하던 대로 계속하는 것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었다. 1978년이 남긴 또 하나의 차가운 기록이다.

이 기록이 차가운 까닭은 우리가 으레 기대는 위안 하나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만행이 계속되는 것은 세상이 몰라서이며, 진실이 드러나기만 하면 문명세계가 저절로 막아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1978년의 답은 훨씬 난감했다. 진실은 신문 지면에 펼쳐져 있었고, 위원회는 회의를 열었으며, 파리 거리에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그러고는 개막식이 예정대로 열렸다. 구축의 관성, 경기 일정, 계약, 중계, 입장 수입. 4년에 한 번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가 이미 알고 있던 모든 사실 위로 굴러갔다.

여기서는 딱 한 명의 악인을 지목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구축의 무서움이다. 선수는 4년에 한 번 오는 최고의 무대를 놓치고 싶지 않고, 축구협회는 이미 체결한 계약을 짊어지고 있으며, 방송사는 팔아놓은 광고가 걸려 있다. 관료들은 저마다 주판을 튕긴다. 각자는 자기의 작은 칸 안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일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합쳐놓으면 기계 전체가 평소대로 돌아간다. 거대한 구축은 모두를 설득해야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멈출 책임이 자기에게는 없다고 각자가 생각하게 하면 충분하다.

오지 않은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이름은 크라위프였다. 4년 전 네덜란드 대표팀의 영혼이었던 그가 이번에는 팀과 함께 오지 않았다. 당시부터 그 후 여러 해 동안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은 그가 군정 치하의 아르헨티나에 가기를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정치적 거부라는 이야기였다. 다른 설명은 네덜란드축구협회와의 상업적 분쟁에서 이유를 찾았다. 사람들은 분명 첫 번째 이야기를 더 믿고 싶어 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불참으로 독재에 맞선다. 너무도 그럴듯한 이야기였기에,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8년에야 크라위프 본인이 입을 열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세 번째 설명이었다. 진짜 이유는 앞서 바르셀로나 자택에서 자신과 가족이 납치 미수 사건을 겪었고, 그 일 때문에 월드컵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항의라는 설명은 30년 동안 떠돌았지만 그가 한 말은 아니었다. 그 자신이 확인한 것은 가족의 안전에 관한 사건이었다. 한 사람의 부재가 그렇게 30년 동안 시대에 전유되었다. 사람들은 거부의 영웅이 필요했고, 그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 역할을 씌웠다. 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서사에 포섭된다. 이 월드컵을 보여주는 작은 우화나 다름없다.

이 우화의 교훈은 크라위프가 아니라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가 너무 필요해서, 당사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할 말을 대신 끝내버렸을 뿐이다. 30년 동안 이 이야기는 수많은 글에 인용되고 양심의 본보기로 칭송되었다. 주인공이 직접 나서서 바로잡을 때까지 그랬다. 역사에서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것은 흔히 사건이 아니라 서사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가장 바라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5. 6 대 0, 끝내 결론 나지 않는 그 밤

아르헨티나는 경기장에서 줄곧 상대를 압도한 것이 아니었다. 1차 조별리그에서 헝가리를 2 대 1, 프랑스를 2 대 1로 이겼지만 이탈리아에는 0 대 1로 졌다. 세 경기에서 네 골을 넣는 데 그쳤고 조 2위로 다음 단계에 올랐다. 운명을 가른 것은 2차 조별리그였다. 폴란드를 2 대 0으로 이기고, 브라질과 0 대 0으로 비겼다. 그리고 마지막 페루전이 남았다.

그 밤의 계산은 이 대회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 가운데 하나다. 1978년 6월 21일, 먼저 경기를 치른 브라질은 폴란드를 3 대 1로 이겨 승점 5점, 골득실 +5로 일정을 마쳤다. 아르헨티나는 그때 승점 3점, 골득실 +2였다. 당시에는 승리하면 승점 2점을 받았다. 브라질을 제치고 결승에 가려면 아르헨티나는 골득실을 최소 +6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즉 페루를 적어도 네 골 차로 이겨야 했다. 이것은 소문이 아니라 당일 경기 일정과 순위표에서 바로 계산할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브라질이 먼저 경기했다는 것은 아르헨티나 눈앞에 통과 기준을 또렷하게 놓아준 셈이었다.

이 일정도 훗날 의혹의 일부가 되었다. 같은 결승 진출권 한 장이 걸린 두 경기가 동시에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경기한 팀은 결과를 공개하고, 나중에 경기하는 팀은 넘어야 할 기준을 보면서 공을 찼다. 이런 편성은 그 자체로 손을 쓸 틈을 만들고, 의심이 자랄 토양을 만든다. 훗날 월드컵에서 같은 조의 최종전을 동시에 시작하도록 바꾼 데는 이 틈을 막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제도의 이 보수 작업은 그 밤을 향한 말 없는 논평과 같았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 대 0으로 이기고 결승에 올랐다.

그 밤을 둘러싸고 훗날 산더미 같은 의혹이 쌓였다. 그중에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기록이 뒷받침해, 대체로 실제 일어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하나 있다. 경기 전 비델라가 방문 중이던 키신저와 함께 페루 대표팀 라커룸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독재자가 전직 미국 국무장관을 데리고 경기 직전 상대 팀 라커룸에 나타났다. 이 일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뜻했는지, 위협이었는지 의례적인 인사였는지 그 밖의 무엇이었는지까지 기록이 밝혀주지는 않는다. 사건과 그 의미는 나누어 놓아야 한다.

이 구분이야말로 그 밤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선이다. 한쪽으로 한 발 넘어가 라커룸 방문을 곧바로 부정행위 지시라고 쓰면 추측을 증거로 바꾸는 것이다. 반대쪽으로 한 발 넘어가 평범한 인사 방문쯤으로 가볍게 넘기면 그 무게를 못 본 척하는 것이다. 공포로 통치하는 장군이 사활이 걸린 경기 직전에 직접 상대 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을 했든 그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무게였다. 그 무게는 사실이다. 그 무게가 어디에 작용했는지는 추측이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혐의 제기의 영역이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2012년, 페루의 한 전직 상원의원은 두 독재정권 사이에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페루가 이 경기를 내주는 대가로, 국경을 넘나드는 탄압 공조에서 아르헨티나의 보답을 받았다는 것이다. 뒤늦게 나온 구술 주장이다. 그보다 더 오래되었고 더 뒤섞인 것은 돈과 물자에 관한 여러 이야기다. 뇌물, 곡물, 부채, 정치범 교환을 둘러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나같이 설명력이 강했고 널리 퍼졌다. 하지만 대회 기록, 공식 기억기록관의 문서, 조사 기록, 기밀 해제 자료 가운데 어느 것도 사건의 결론을 내릴 수준의 증거를 이루지는 못한다. 이런 주장들과 함께 분명한 부인도 존재한다. 페루 주장 춤피타스는 아무런 사전 합의도 없었으며 체력 저하와 경기 일정의 누적 피로 때문에 대패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이 부인의 목소리는 의심의 급류에 휩쓸려 사라져서는 안 된다. 페루 선수들은 이후 평생 그 경기의 그늘 속에서 살았다. 결백은 본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백을 입증할 증거를 내놓을 수도 없었고,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그 이야기를 피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 밤이 정말 깨끗했다면, 이들은 이 미해결 사건에서 가장 말없이 고통받은 피해자다. 경기 한 번을 졌는데 평생을 형벌처럼 살았다. 의심에 결론을 낼 수 없게 되면 상처받는 것은 의심의 대상인 정권만이 아니다.

따라서 가장 신중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6 대 0은 확인된 사실이다. 경기 전 이례적인 정치적 접촉이 있었다는 데에는 신뢰할 만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경기가 조작되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거래했는지는 어떤 권위 있는 자료에서도 최종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곡물 몇 톤이 오갔는지, 정치범 몇 명이 교환되었는지, 누가 돈을 받았는지, 어느 선수가 고의로 제 기량을 내지 않았는지와 같은 특정 이야기를 곧바로 확정된 결론으로 쓰는 것은 전설을 역사로 바꾸는 일이다.

이야기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공중에 매달린 물음표는 서사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답을 채워 넣을 수 있다. 군정을 혐오하는 사람은 거래가 분명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범죄의 그림이 더 완전해진다. 우승을 옹호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결백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영광이 더 깨끗해진다. 40년이 넘도록 혐의 제기와 부인은 저마다 더 단단해졌고, 어느 쪽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했다. 물음표는 이제 이 우승의 일부로 자라났다.

승패는 판정할 수 있지만 진실은 확정할 수 없다. 12년 전 웸블리의 오래된 문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다시 나타났다. 다만 이번에는 더 어두웠다. 웸블리의 그 골을 분명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공이 너무 빨라 사람의 눈도 기계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밤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진상을 아는 양쪽이 모두 진실을 사라지게 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없애며 통치하던 자들이 자기 혐의를 벗을 가능성까지 함께 없애버렸다. 이 우승에는 그때부터 영원히 떼어낼 수 없는 물음표가 붙었다. 무엇이 입증되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어서였다. 우승으로 의심을 덮으려던 정권이 도리어 그 우승에 지워지지 않을 의심을 찍어놓았다.

영원히 결론 낼 수 없다는 것은 이 문제를 영원히 다 풀 수 없다는 뜻이다. 입증된 추문은 오히려 끝이 있다. 인정하고, 벌을 받고, 그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입증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의혹에는 넘어갈 다음 장이 없다. 주요 기념 연도가 돌아올 때마다, 회고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마다, 누군가 1978년을 다시 꺼낼 때마다 이 6 대 0 경기는 다시 심판대에 오른다. 그때마다 결론은 같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권은 월드컵으로 깨끗하다는 증명서 한 장을 사려 했지만, 마지막에 손에 쥔 것은 영원히 휴정하지 않는 재판이었다.

6. 결승전, 그리고 골대를 때린 그 공

결승전은 모누멘탈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상대는 또 네덜란드였다. 크라위프 없이도 끝내 결승까지 올라온 네덜란드였다.

대체할 수 없다고 여겼던 그 사람이 없어도, 이 팀은 조별리그를 뚫고 다시 결승까지 왔다. 4년 사이 두 번째로 대회 마지막 경기의 무대에 섰다. 이 네덜란드의 저력은 어느 한 이름에 매인 것이 아니었다. 다만 결승전에 선 그들이 맞서야 할 것은 상대 선수 열한 명뿐이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기장 전체, 그리고 이 한 경기에 국운을 건 정권도 맞은편에 있었다.

38분, 켐페스가 선제골을 넣었다. 메노티의 4-3-3에서 공격의 핵심을 맡은 선수였다. 대회 전체에서 여섯 골을 터뜨려 득점왕이 되었고,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욱 폭발적인 힘을 보였다.

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미리 설정해놓은 기계가 아니었다. 1차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네 골밖에 넣지 못했고 이탈리아에도 졌다. 비틀거리면서 조 2위로 다음 단계에 올랐다. 메노티가 켐페스를 중심으로 짠 전술이 경기를 치를수록 맞아들어갔기에 2차 조별리그에서 경기력이 급격히 올라간 것이다. 다시 말해 개최국이었고 국가기구 전체가 뒤를 받쳤다고 해도, 경기장 안에서 우승이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우승 역시 우연 속에서 한 걸음씩 힘겹게 얻어냈다.

이것이 중요하다. 개최국이라는 지위와 국가사업 전체를 더하면 곧 우승이 되는 것이었다면, 이 월드컵은 차라리 단순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공연이었을 테니까. 경기장에서 결과가 불확실했고, 패하기도 했고,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기에, 골대를 때린 그 공을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에, 이 우승은 진짜 우승이다. 더럽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진짜뿐이다. 가짜에는 깨끗하고 더럽고를 따질 까닭이 없다.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훗날 아르헨티나인들이 이 우승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정권이 연출한 연극에 불과했다면, 진작 정권과 함께 쓰레기 더미로 쓸려갔어야 했다. 하지만 온갖 준비와 연출 바깥에서 경기장에는 실제 축구가 있었고, 실제 골이 있었고, 실제 골대가 있었고, 실제 연장전이 있었다. 그 때문에 우승의 한 부분은 줄곧 공을 찬 사람들과 공을 지켜본 사람들의 것이었고, 되찾을 것도 남아 있었다. 82분, 교체 투입된 나닝아가 헤딩 동점골을 넣었다. 1 대 1. 그리고 정규시간 마지막 순간, 네덜란드의 렌센브링크가 골문 앞에서 발을 뻗어 공을 찔렀다. 골키퍼를 넘어간 공은 아르헨티나의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불과 몇 센티미터였다. 몇 센티미터만 달랐다면 이 경기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졌을 것이다. 법으로 정한 국가사업, 컬러 화면에 올린 이미지 사업, 진실을 알 수 없는 그 밤의 6 대 0, 준비해둔 모든 것이 자기 안방에서 전 세계가 보는 앞에 우연한 한 번의 슛에 무너졌을 것이다. 골대를 때린 그 공은 한 가지 사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법을 만들 수는 있고, 선전할 수도 있으며, 대회 전체를 국가사업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래도 결승전 하나를 뜻대로 만들 수는 없다. 구축을 하늘 높이 쌓아 올려도 골대를 맞고 제멋대로 튀는 공 하나를 가둘 수는 없다.

이 한순간에 조금 더 머물러볼 만하다. 공이 안쪽으로 몇 센티미터만 갔다면, 정규시간 마지막에 네덜란드가 2 대 1로 앞섰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는 남은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랬다면 정권이 공들여 쌓은 모든 것이 바로 자기 경기장에서, 자신이 불러 모은 전 세계의 카메라 앞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어떤 법률도, 어떤 홍보회사도, 어떤 라커룸의 대화도 그 공에까지 손을 뻗을 수는 없었다. 28년 전 마라카낭에서도, 24년 전 베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거대한 구축도 공 하나가 떨어질 자리를 붙들어둘 수는 없다. 1978년, 같은 사실이 골대 위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방식으로 다시 펼쳐졌다.

공은 튀어나왔다. 연장전에서 경기 시간 105분에 켐페스가 다시 골을 넣었고, 115분에는 베르토니가 승리를 굳혔다. 3 대 1. 네덜란드는 두 대회 연속으로 결승에서 개최국에 졌다. 4년 사이 두 번 마지막까지 가서 두 번 모두 홈팀 앞에 쓰러졌다. 무슨 운명이라도 있는 듯 느끼기 쉽다. 하지만 두 경기는 서로 독립된 경기였고, 아무 관계 없는 두 우연이 마침 나란히 놓였을 뿐이다. 이를 숙명으로 읽으면 또다시 일이 끝난 뒤 필연을 짜 맞추는 그 오래된 기술에 빠져든다.

역사가 운율을 맞춘다고 해서 운명에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의 결승, 두 개최국, 두 번의 패배. 예언 한 줄처럼 들리지만 뜯어보면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었을 뿐이다. 원정에 나선 기술 축구가 온 힘을 모은 홈 무대와 맞서면 원래 더 어렵다. 비슷한 구조는 비슷한 결과를 불러오기 쉽다. 그러나 결과를 부추기는 것과 미리 정해놓는 것은 다르다. 운율을 판결로 읽는 것은 이야기꾼의 손이 성급한 것이지, 역사가 그렇게 써놓은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에 이 두 번째 은메달은 4년 전 얻은 ‘아름다운 패자’라는 이름에 한층 더 쓴맛을 보탰다. 이번에는 경기장 안의 상대에게만 진 것이 아니었다. 정권이 국운을 걸어놓은 경기장에서, 그와 같은 밤의 모든 무게에도 졌다. 두 번의 결승, 두 번 다 한 걸음 앞에서 멈췄다. 이 팀과 우승컵의 인연은 그렇게, 영원히 닿을 듯 닿지 않는 자리에 머물렀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종이 조각의 눈이 하늘을 뒤덮으며 내려왔다. 주장 파사레야는 비델라의 손에서 금빛 우승컵을 받았다. 장군은 시상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우승의 영광과 정권의 이미지는 카메라 안에서 한 장의 그림이 되었다. 그런데 훗날 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에는 이런 말도 있다. 그 무렵 해군기계학교 수감실에서도 경기장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고.

이 몇 마디 증언의 무게는 두 세계를 한곳에 못 박아놓는 데 있다. 함성은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경기장과 수감실은 같은 밤하늘 아래, 남반구의 겨울바람을 함께 맞고 있었다. 은폐란 두 대상을 산과 바다 저편으로 멀리 떼어놓는 일이 아니다. 보는 사람이 고개를 몇 도만 돌리게 하면 된다. 하지만 소리는 그 몇 도를 알지 못했다. 담을 넘어가, 그 소리가 들려서는 안 될 사람들의 귀에 내려앉았다.

몇 블록의 거리는 소리가 건널 수 있었다. 환호는 건너갔다. 침묵은 건너오지 못했다.

비델라가 우승컵을 건네는 사진은 당시 이 사업의 절정이었다. 장군과 우승자가 한 프레임에 들어왔고, 정권과 국가가 마침내 한몸처럼 사진에 담겼다. 하지만 사진을 비롯한 시각적 기록에는 제 나름의 수명과 성질이 있다. 그 순간을 충실하게 보존하는 만큼, 그 순간의 모든 것을 충실하게 보존한다. 촬영자가 남길 생각이 없었던 것까지 포함해서다. 오늘 그 사진을 다시 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영광을 두른 국가원수를 보지 않는다. 두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 제 것이 아닌 우승컵으로 손을 뻗는 모습을 본다. 사진은 변하지 않았다. 사진을 보는 세계가 달라졌다. 정권은 이미지를 전유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이미지가 거꾸로 정권에 불리한 법정 증거가 되었다.

7. 정권은 정권이고 선수는 선수다

여기에는 똑바로 그어야 할 선이 있다.

정권 쪽의 사실은 분명하다. 법을 만들고, 기관을 세우고, 경기장을 고치고, 컬러 방송을 마련하고, 홍보회사를 고용하고, 구호를 외치고, 우승컵을 수여했다. 대회 전체를 철저한 국가사업으로 만들었고 우승한 뒤에는 막대한 주목을 거두어갔다. 이 모든 것은 법률 문서, 실제로 남은 기록, 공개 활동이 증언한다. 이쪽에 대해서는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다. 축제를 여는 동시에 사람을 사라지게 한 정권이 월드컵을 이용한 방식은, 치밀하게 계산한 전유였다.

선수 쪽에 관해 확실하게 쓸 수 있는 범위는 훨씬 좁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경기를 했고, 우승했으며, 축하 행사에 참석했고, 그 승리가 국가 선전에 흡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있었다고 해서 탄압에 가담한 것은 아니다. 어느 선수 한 명이나 팀 전체를 탄압 기계의 공범이라고 쓰려면, 공개된 장면보다 훨씬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그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모두를 이용당한 무고한 사람으로 써놓는 것 역시 그들을 대신해 결론을 내려버리는 일이다. 각자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인정했는지는 후세 사람이 사진 몇 장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훗날의 서사는 이 선수들에게 두 가지 역할을 배정했다. 암흑의 시대에 민족에게 빛을 가져다준 영웅이거나, 학살자에게 힘을 보탠 공범이었다. 두 이야기는 방향이 반대지만 수법은 같다. 구체적인 사람 하나하나를 납작하게 눌러 하나의 상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중에는 당시 너무 어려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 있었고, 훗날 고통과 갈등을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이 있었으며, 평생 침묵한 사람도 있었다. 열한 사람, 열한 가지 처지, 열한 개의 마음. 그 어느 서사도 이들 모두를 대신해 서명할 자격은 없다.

역사가 그들에게 빚진 것은 일괄적인 대관식도 일괄적인 단죄도 아니다. 한 사람씩 보는 일이다. 느려야 하고, 우직해야 하며, 말끔하게 정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쾌감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람에게 공정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우승은 두 얼굴을 갖는다. 한쪽 얼굴은 진짜다. 켐페스의 여섯 골도 진짜고, 피욜의 선방, 아르딜레스의 질주, 결승 연장전의 두 골도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실제로 따낸 것이다. 다른 얼굴은 더럽혀져 있다. 정권의 알리바이로 쓰였고, 그 결승 진출권에는 영원히 결론 낼 수 없는 물음표가 매달려 있으며, 우승이 태어나던 함성은 몇 블록 너머 수감실까지 흘러들어갔다. 진짜인 것과 더럽혀진 것은 같은 우승컵이다. 무턱대고 떠받들면 정권의 장물을 처분해주는 꼴이 된다. 무턱대고 부숴버리면 선수들과 그들이 한 축구를 범죄와 함께 묻어버리게 된다. 두 얼굴 그대로 놓아둘 수밖에 없다. 어느 얼굴도 다른 얼굴을 지울 수 없다.

군정이 무너진 뒤, 이 우승의 소유권은 조용하고도 오랜 이전 과정을 거쳤다. 아르헨티나는 유니폼에서 그 별을 떼어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서히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법을 배웠다. 경기장 안의 축구는 선수와 팬들에게 돌려주고, 경기장 밖의 범죄는 정권과 장군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이 이전은 오늘날까지도 완결되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완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 그림자는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해가 갈수록 이 우승은 정권의 전리품에서, 더럽혀지기는 했어도 선수들이 실제로 따낸 월드컵으로 돌아가고 있다.

8. 마무리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보자.

1978년, 한 정권이 월드컵을 자기만의 구축으로 만들었다. 법을 만들고, 경기장을 세우고, 컬러 방송으로 전환하고, 홍보회사를 고용했다. 진행 중인 범죄 둘레에 축구대회의 환희를 겹겹이 둘렀다. 전 세계가 종이 조각이 내려오는 모습만 보느라 몇 블록 너머의 건물에 관해서는 묻는 것조차 잊게 하려 했다.

하지만 이 구축 역시 자신의 잔여항을 가두지 못했다. 모든 것을 뜻대로 만들려 했지만 골대를 때린 우연한 슛 한 번이 일깨워주었다. 결승전은 뜻대로 할 수 없다고. 정상임을 증명하려 했지만 6 대 0의 그 경기는 거꾸로 우승에 영원한 물음표를 용접해 붙였다. 사람을 사라지게 하려 했지만 광장의 어머니들은 사진을 들고 한 바퀴 또 한 바퀴 걸으며 이름을 하나씩 다시 들어 올렸다. 심지어 스페인어로 인권을 이루는 두 단어까지 자기 구호 속으로 삼키려 했지만, 그 두 단어는 구호보다 오래 살았다.

오늘날 해방자 대로의 그 건물은 새 이름에 ‘기억과 인권’을 또렷하게 새기고 있다. 한때 뜯겨나가 말장난에 쓰였던 두 단어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누구의 광고 문구가 아니라 기록과 이름들을 품은 건물의 문패가 되었다. 언어는 전유당한 적이 있지만, 전유한 자들보다 오래 살았다. 1978년이 남긴 숱한 장부 가운데 아마 이것이 가장 말끔하게 결산된 한 항목일 것이다.

구축과 잔여항은 이후 서로 다른 운명을 맞았다. 정권은 1983년에 무너졌다. 1984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은 8,960명의 이름을 종이에 못 박듯 남기면서 그것이 전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명시했다. 해군기계학교는 철거되지 않았다. 기억박물관이 되었고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늘날 해방자 대로의 그 건물은 누구에게나 문을 열고, 당시 그토록 감추려 했던 일을 이야기한다. 덮는 데 쓰였던 구축은 무너졌고, 덮여 있던 것은 영구적인 비석이 되었다. 이제 전 세계 어디서든 1978년 월드컵을 이야기할 때 실종자들을 피해 갈 수 없다. 치부를 가리던 천 자체가 현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었다.

2천 미터 길이의 기록마저 방향을 바꾸었다. 정권이 당시 그것을 한 장 한 장 만들어낸 것은 이 환희를 빈틈없이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정권이 무너진 뒤 기록은 기억기록관으로 옮겨져 연구자들의 손에 들린 가장 단단한 증거가 되었다. 구매 전표 한 장, 회의록 한 부가 모두 역사를 증언한다. 이 환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한다. 구축이 자신을 위해 쌓은 벽돌 하나하나는 훗날 자신을 고발하는 법정의 물증이 되었다.

이것은 하늘이 끝내 응보를 내린다는 신화가 아니다. 구축과 잔여항의 수명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구축은 유지보수에 기대어 산다. 인력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며, 거듭거듭 재확인이 필요하다. 돌보는 사람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썩는다. 반면 잔여항에는 유지보수가 필요하지 않다. 기억하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더 깊이 짓눌린 것일수록 기억하는 사람은 더 꽉 움켜쥔다. 시간은 은폐의 편에 서지 않는다. 가리는 것은 한때의 기술이고, 기억하는 것은 긴 세월의 본능이다.

축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두 얼굴을 드러냈다. 법으로 규정되고 전유당하며, 정권의 알리바이로 빌려 쓰일 수 있다. 이것이 축구의 나약함이다. 하지만 누구도 뜻대로 만들 수 없었던, 골대를 때린 그 우연도 남겼다. 어떤 정권도 진정으로 제 것으로 삼지 못한 우승도 남겼다. 이것이 축구의 길들여지지 않음이다. 켐페스의 골은 여전히 켐페스의 것이고, 종이 조각은 여전히 팬들의 것이다. 다만 그 위에는 몇 블록 너머의 침묵이 영원히 묻어 있다.

지금도 모누멘탈 경기장에서는 경기가 열린다. 몇 블록 너머 그 건물에서는 여전히 이름들을 이야기한다. 두 곳은 여전히 몇 블록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어느 쪽도 다른 쪽을 가리지 않는다. 환희는 침묵을 덮지 못하고, 구축은 잔여항을 덮지 못한다. 잠깐 가릴 수 있다고 해서 이후에도 해마다 끝없이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중·영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