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가장 자유롭게 뛰었던 팀과 끝내 거머쥐지 못한 우승
1974년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과 서독의 우승을 통해 자유가 요구하는 규율, 기록과 기억의 서로 다른 승자를 살핀다.
이 글의 목차
1. 뮌헨으로 향한 두 갈래 길
1974년 월드컵 결승은 뮌헨에서 열렸다. 서독과 네덜란드의 대결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이 대회를 떠올릴 때면, 거의 어김없이 결승에서 진 팀부터 기억했다.
네덜란드는 결승에 오를 때까지 패배를 몰랐다. 조별리그에서는 우루과이를 2대 0으로 꺾고 스웨덴과 0대 0으로 비긴 뒤 불가리아를 4대 1로 이겼다. 2차 리그에서는 아르헨티나에 4대 0, 동독에 2대 0, 브라질에 2대 0으로 내리 세 번 이겼다. 결승에 이르기까지 여섯 경기에서 내준 골은 단 하나였다. 그들이 펼친 것은 당시 누구도 본 적 없는 축구였고, 온 세계가 순식간에 그 축구에 빠져들었다.
그저 실력이 뛰어난 팀이 아니었다. 공을 차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선언 같았다. 선수들의 위치는 끊임없이 바뀌었고, 압박은 숨 돌릴 틈 없이 밀려들었다. 팀 전체가 살아 있는 하나의 몸처럼 그라운드 위에서 숨 쉬고 출렁였다.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며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는 축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런 축구와의 첫 만남은 시야가 단번에 트이는 충격이었다. 네덜란드는 이겼다. 아름답게 이겼고, 새롭게 이겼으며, 축구가 이렇게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이겼다.
서독은 다른 길을 걸었다. 첫 경기에서 칠레에 1대 0, 다음 경기에서 호주에 3대 0으로 승리한 뒤 함부르크에서 동독에 0대 1로 졌다. 2차 리그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 2대 0, 스웨덴에 4대 2, 폴란드에 1대 0으로 이겼다. 폴란드전에서 뮐러가 후반 31분, 경기 시작 76분째에 결승골을 터뜨린 끝에야 결승 문턱을 넘어섰다.
훗날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사실을 자주 뒤섞었다. 하나는 결승까지 쌓아 온 스코어의 기세로 보면 네덜란드가 한 수 위였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서독이 요행으로 결승에 끼어든 훼방꾼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서독은 1972년 유럽 챔피언이었다. 베켄바워, 뮐러, 마이어로 이어지는 선수들은 대표팀의 척추인 동시에, 위대한 팀으로 솟아오르던 바이에른의 바탕이었다. 두 갈래 길, 두 가지 축구가 뮌헨에서 맞부딪쳤다. 그리고 온 세계가 기억하게 된 팀, 축구를 새로 쓴 팀이 졌다.
1974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하는 기이한 일이다. 한 월드컵에서 우승한 팀과 기억에 남은 팀이 달랐다.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서독은 뒤에 이어진 찬사 속에서 도리어 아름다운 팀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물러났다. 기록으로 확정된 챔피언과 사람들의 마음이 뒤늦게 인정한 승자가 서로 다른 팀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일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패한 팀이 대체 어떤 축구를 했는가에 있다.
뮌헨으로 향한 두 갈래 길은 사실 두 가지 축구관이 같은 종착지로 향한 길이기도 했다. 네덜란드가 대표한 것은 이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축구였다. 아름다움과 자유에 관한 구상을 그라운드 위에서 끝까지 실현하려 했다. 서독이 대표한 것은 땅에 발을 단단히 붙인 축구였다.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경이로움보다 모든 고리를 빈틈없이 다지고, 이겨야 할 고비에서 이기는 일을 원했다. 두 축구 사이에 본디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라는 것에 거는 기대가 서로 달랐을 뿐이다. 결승은 바로 그 두 기대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자리였다.
역사가 즐겨 치는 장난 가운데 하나는, 더 이겨야 마땅해 보이는 쪽을 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상의 높이로 보나, 경기 방식이 안기는 놀라움으로 보나, 세상 사람을 매혹한 정도로 보나 네덜란드가 앞섰다. 그러나 마지막 결과에서 이긴 쪽은 서독이었다. 그 간극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름다움의 몫이었어야 할 듯한 승리가 끝내 실리의 품으로 갔고,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잃어버린 몫을 되찾았다.
2. 고정된 자리를 없앤 축구
네덜란드의 그 축구에는 훗날 널리 울려 퍼질 이름이 붙었다. 토털 풋볼이었다.
이 축구를 이루는 핵심 원리는 분명하다. 공격할 때든 수비할 때든 고정된 포지션이 없고, 선수들은 쉼 없이 자리를 바꾼다. 압박은 대단히 거세며, 모든 움직임은 공간을 만들고 통제하는 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미헐스 감독이 선호한 기본 포메이션은 대체로 4-3-3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숫자 배열이 아니었다. 이 구조가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흐른다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그라운드에 옮겨 놓으면 아주 구체적이다. 측면 수비수가 줄곧 전진해 공격의 날끝이 될 수 있다. 공격수는 중원까지, 심지어 후방까지 내려와 경기 전개에 가담할 수 있다. 미드필더는 측면의 빈자리를 채울 수도, 최전방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포지션은 더 이상 한 선수의 신분표가 아니었다. 누구든 때에 따라 대신 들어갈 수 있는 자리들이었다. 빈자리에 가까운 사람이 가서 메우고, 메운 뒤에는 다시 바꾼다. 팀 전체는 맡은 일만 하는 열한 개의 부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열과 조합을 바꾸는 하나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너와 나를 가리지 않는 힘에도 비켜 갈 수 없는 중심이 있었다. 자리는 서로 바꿀 수 있어도 크루이프라는 사람은 바꿀 수 없었다. 미묘한 대목이다. 누구나 대체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축구가 실제로 돌아갈 때는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에게 크게 의존했다. 다른 선수들은 자리를 바꾸었고,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모순은 아니다. 전체와 흐름을 아무리 강조해도,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번뜩임은 끝내 어느 구체적인 한 사람에게 깃든다는 뜻이다. 그것을 없애 버릴 수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줄 수도 없다.
그 축구의 영혼은 크루이프였다. 명목상으로는 중앙 공격수였지만 실제로는 곳곳을 누비고 아래로 내려와 특정 지역에 수적 우위를 만들었다. 상대 수비진을 끌어당겨 모양을 흐트러뜨렸고, 동료들은 그가 비운 자리를 번갈아 채웠다. 후대의 한 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크루이프는 1974년 대회에서 36차례 기회를 만들어 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선수 가운데 단일 월드컵 최다 기회 창출 기록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영원히 기억될 동작도 나왔다.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크루이프는 속임 동작으로 스웨덴 수비수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렸다. 그 회전 동작은 훗날 크루이프 턴이라 불렸다. 다만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그와 비슷하게 공을 끌어 되돌리는 동작은 그 전에도 있었다. 1974년에 일어난 일은 그 동작이 하나의 상징이 되고, 그의 이름이 영원히 붙었다는 것이다.
크루이프는 이 체계의 두뇌이자 동력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 위험이 있었다. 그가 아래로 내려가면 상대 중앙 수비수는 곤란한 선택 앞에 섰다. 따라 나가 수비진을 벌려 놓을 것인가, 그냥 두고 그가 느긋하게 경기를 조율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그의 자유로운 이동은 상대에게 두 가지 나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끊임없이 고르게 했다. 기회 창출 36회라는 숫자는 개인 기량의 증거라기보다 이 경기 방식 전체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증거에 가깝다. 그는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한 선수라기보다 이 흐름의 철학을 작동시키는 축이었다.
크루이프 턴이라는 동작도 그 철학을 압축해 보여 준다. 핵심은 화려한 겉모양에 있지 않다. 예기치 않은 방향 전환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뒤에 남겨 두고 자신이 쓸 공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 공간을 통제한다는 일이 그 동작에서는 단 1초의 순간으로 응축된다. 온 세계가 그것을 기억하는 까닭은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다. 공간, 자유, 뜻밖의 움직임이라는 그 축구의 가장 핵심적인 추구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토털 풋볼은 크루이프 혼자 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중원을 지칠 줄 모르고 오간 네스켄스는 아무리 달려도 꺼지지 않는 엔진이었다. 측면을 파고든 렌센브링크, 공격과 수비를 오간 크롤과 한 역시 이 기계에서 빠져서는 안 될 부품이었다. 체계를 위해 기꺼이 뛰는 선수들이 두루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크루이프의 자유로운 이동도 불가능했다. 이 축구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명의 천재도 필요하고, 조연을 마다하지 않는 뛰어난 선수들도 필요했다. 어느 한쪽만 빠져도 돌아가지 않았다.
이 축구는 하나의 매혹적인 이상을 향했다. 고정된 자리를 없애고 누구든 어디에나 나타날 수 있게 하는 것. 축구를 온전히 흐르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3. 자유라는 더 무거운 속박
토털 풋볼을 보면 축구가 구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고정된 자리가 사라졌으니 모두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뒤집힘이 있다. 고정된 자리를 없애자 속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극한까지 커졌다. 아무에게도 고정된 자리가 없으려면, 누구나 모든 자리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라운드 전체의 공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누구든 비운 자리를 언제라도 메울 수 있어야 하며, 지칠 줄 모르고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자유는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대가로 얻어진다. 초인적인 체력, 초인적인 이해력, 초인적인 규율이라는 짐이다.
그라운드에서 이 사실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 드러난다.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는 축구는 한 선수에게 한정된 요구만 한다. 자신의 구역을 잘 지키면 된다. 뛰어다닐 범위도 살펴야 할 공간도 경계가 있다. 하지만 고정된 포지션을 없애는 순간, 각자가 책임져야 할 범위는 이론상 그라운드 전체가 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나타날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한다. 거의 한순간도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축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체력과 집중력의 소모는 보통 축구의 몇 배에 이른다.
속박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예전에는 각자 제자리를 지키라고 했다면, 이제는 어떤 자리든 메울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둘 가운데 어느 요구가 더 가벼운가. 당연히 앞의 것이다. 가장 자유롭게 뛰는 축구야말로 가장 가혹한 요구를 하는 축구다. 구조가 없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팀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높이까지 구조를 끌어올린 것이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 법칙에서 가장 단단한 이치가 축구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속박은 없앨 수 없다. 없앴다고 생각할 때조차 사실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몰아냈을 뿐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축구를 통해 구조의 제약에서 벗어나려 해도, 끝에 가면 그 축구 자체가 더 엄격한 구조가 되어 있다.
이는 토털 풋볼만의 운명이 아니다.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함께 짊어진 숙명이다. 제약은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덩어리 같다. 이쪽을 납작하게 누르면 저쪽에서 고개를 든다. 포지션의 제약을 없애면 체력과 이해력의 제약이 찾아온다.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관한 요구를 느슨하게 하면, 각자가 두루 갖춰야 할 능력에 관한 요구가 더 엄격해진다. 총량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진정으로 완전한 자유는 축구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을 알고 나면 토털 풋볼을 조금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웠고 새로웠으며, 축구를 전례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거기서 이루어진 것은 자유가 구조를 이긴 일이 아니라 구조의 세대교체였다. 옛 구조는 뻣뻣하고 단조로워 읽기 쉬웠다. 새 구조는 흐르고 유연하며 종잡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결국 둘 다 구조였고, 선수에게 가해지는 어떤 제약이자 요구였다. 토털 풋볼이 갈아 끼운 것은 구조의 형식이지 구조 자체가 아니다. 구조를 없앴다고 믿는 사람은 그 화려한 겉모습에 속은 것이다.
토털 풋볼을 제대로 구현한 팀이 손에 꼽힐 만큼 적은 이유도 여기 있다. 선수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지나치게 높았다. 기술과 지능이 모두 빼어난 선수들이 한 시대에 함께 나온 그 세대의 네덜란드인들만이 겨우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선수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 이 축구는 그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곧바로 무너진다. 옛 속박을 떨쳐 버리려는 축구일수록 그것을 하는 선수들에게 더 가혹한 요구를 하기 일쑤다. 자유는 한 번도 공짜였던 적이 없다. 그 청구서는 모든 선수의 두 다리와 머릿속에 적힌다.
그러므로 토털 풋볼은 축구가 족쇄를 벗어 던진 일이라기보다, 더 정교하고 더 무거운 족쇄로 갈아 찬 일이라고 해야 한다. 새 족쇄는 훨씬 보기 좋았다. 선수들은 아무 구속도 없이 어디에든 자유롭게 나타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자유의 값은 더 이상 고정된 자리 뒤에 숨어 쉬엄쉬엄 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 순간 그라운드 전체를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축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가장 고된 축구였다. 이것이 그 법칙의 역설이다. 속박을 자유의 옷자락 아래 감추되 너무도 감쪽같이 감추어서, 사람들은 자유만 보고 속박은 보지 못한다.
축구가 그렇듯 그라운드 밖의 숱한 일도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을 완전히 자유롭게 할 방안을 찾았다고 누군가 말할 때마다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법칙에 따르면, 약속하는 자유가 철저할수록 뒤에서 더해지는 속박도 무거워지기 쉽다. 다만 그 속박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곳으로 교묘하게 옮겨졌을 뿐이다. 토털 풋볼이 그라운드에서 펼쳐 보인 것은 바로 그런 우화였다.
4. 하늘에서 떨어진 축구는 없다
토털 풋볼이 1974년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미헐스 한 사람이 암스테르담에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발명했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이 축구에는 긴 계보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인 호건이 있고, 오스트리아의 분더팀이 있으며, 1950년대 헝가리의 황금팀과 아약스의 옛 감독 레이놀즈가 있다.
이 이름들을 이어 보면 수십 년의 세월과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 드러난다. 호건은 패스와 움직임을 중시하는 축구관을 유럽 대륙으로 가져갔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분더팀은 그것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경기 방식으로 풀어냈다. 1950년대 헝가리 황금팀은 다시 그것을 온 세계가 주목하는 높이까지 밀어 올렸다. 그 선은 끊어진 적이 없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다른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은 그 선이 가장 새롭고 눈부시게 솟아오른 장면이지, 그 선의 시작이 아니다.
헝가리 황금팀의 계보는 1974년을 20년 전의 대회와 조용히 이어 준다. 1954년, 온 세계가 우승을 점쳤던 바로 그 팀, 비할 데 없이 화려한 축구를 하던 헝가리는 결승에서 더 실리적인 서독에 졌다. 20년 뒤 거의 똑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었다.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헝가리에서 네덜란드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축구 혈통에는 바로 그 헝가리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축구를 하던 팀이 결승에서 실리를 좇는 서독에 가로막혔다. 서독은 20년 사이 그 일을 두 번 해냈다.
이 계보를 더듬는 것은 누구의 공을 빼앗으려는 일이 아니다. 위대한 것은 언제나 한 천재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만들어 낸다는 흔한 착각을 깨려는 일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느닷없이 나타난 듯한 새로운 것도 그 밑을 파 보면 언제나 앞선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져 있다. 선대의 어깨 위에서 자라난 것이지, 돌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토털 풋볼의 공을 한 사람에게 전부 돌리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그러나 더 참되고 더 감동적인 전승은 지워진다.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생각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 온 이야기 말이다.
1953년 히데그쿠티의 내려오는 중앙 공격수와 1974년 크루이프의 곳곳을 누비는 중앙 공격수 사이에는 20년이 넘는 세월과 두 나라의 간격이 있다. 그래도 고정된 자리에서 벗어나 흐름으로 상대를 흔들려는 힘은 한 줄기로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은 하나의 발명이라기보다, 수십 년 동안 힘을 모은 지하의 물줄기가 마침내 그 여름 누구나 볼 수 있는 거센 물결로 솟구친 일에 가깝다. 헝가리와의 연결은 특히 구체적이다. 1953년 잉글랜드와 헝가리의 경기에서 히데그쿠티는 아래로 내려오는 중앙 공격수라는 역할을 보여 주었다. 최전방에서 물러나 다른 선수들이 자신을 지나 앞으로 나가게 하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으로 경직된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다. 1974년의 완성된 체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훗날 미헐스와 크루이프로 이어진 위치 유동성의 논리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선구적 사례였다. 헝가리인들 스스로도 말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호건에게 배웠다고.
그러므로 더 정확한 설명은 미헐스가 축구의 흐름을 발명했다는 것이 아니다. 레이놀즈, 호건, 오스트리아, 헝가리까지 이어지는 긴 계보 위에서 그 축구를 체계화하고 극한까지 밀어붙여 전 세계에 퍼뜨린 사람이 미헐스였다는 것이다. 구축된 것에는 언제나 앞선 흔적이 섞여 있다. 토털 풋볼도 예외가 아니다. 무에서 생겨난 기적이 아니라, 오래된 강물이 네덜란드라는 구간에서 새로운 높이로 이끌린 것이다.
미헐스에게서 발명이라는 말을 거두어도 그의 공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역사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생각을 집대성하고 극한까지 밀어붙여, 이길 수 있고 후세에 남을 수 있는 완전한 체계로 모아 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창조다. 다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사물을 빚은 창조가 아니라, 앞선 사람들이 닦아 놓은 강바닥으로 더 큰 물길을 끌어들인 창조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화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수십 년을 이어 온 그 진정 흥미로운 계보가 가려진다.
5. 앞서고도 패하다
결승은 1974년 7월 7일 뮌헨에서 열렸다.
경기의 시작은 축구사에서 가장 확실하게 남아 있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네덜란드는 킥오프 뒤 연달아 공을 돌렸다. 기록에 따르면 열여섯 차례 패스를 주고받은 뒤에도 서독 선수는 아직 공을 한 번도 건드리지 못했다. 곧이어 크루이프가 공을 몰고 서독 페널티 지역으로 파고들었고, 회네스에게 걸려 넘어졌다. 잉글랜드 출신 주심 테일러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월드컵 결승 역사상 최초의 페널티킥이었다. 네스켄스가 이를 단번에 성공시켰다. 경기 시작 88초 만의 골로, 지금까지도 남자 월드컵 결승 역사상 가장 빠른 골이다. 네덜란드는 앞서 나갔고, 서독은 아직 공을 한 번도 건드리지 못했다.
이 시작은 거의 네덜란드만을 위해 준비된 은유 같았다. 상대에게 공을 내주지 않는 열여섯 차례의 패스는 공간 통제라는 철학을 남김없이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1분 30초도 되기 전에 잡은 리드는 운명이 이 아름다운 팀을 향해 손짓하는 듯했다. 우승은 마땅히 너희 몫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온 세계는 아마 네덜란드가 이기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축구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기리라고.
그 첫 페널티킥에는 그 자체로 분명한 무게도 있었다. 월드컵 결승 역사상 최초의 페널티킥이라는 것은 확정된 기록이지 전설이 아니다. 공간의 통제를 으뜸 원칙으로 삼는 팀이 결승 시작과 함께 상대가 공에 발도 대지 못하게 패스를 이어 가고, 끝내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 냈다. 그 축구 철학이 가장 직접적인 언어로 전 세계를 향해 첫 진술을 펼치는 듯했다. 그 순간 네덜란드는 자신들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온전히 경기로 구현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방향을 틀었다. 25분, 서독도 페널티킥을 얻었다. 테일러의 설명은 얀선이 횔첸바인을 걸어 넘어뜨렸거나 걸어 넘어뜨리려는 동작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에도 첫 페널티킥과 균형을 맞추려고 이 판정을 내렸다는 주장을 줄곧 부인했다. 브라이트너가 차 넣었다. 이어 43분, 뮐러가 결승골을 넣었다. 서독의 2대 1 리드였다. 베켄바워가 뒤에서 리베로를 맡고 뮐러가 앞에서 마무리하는, 더 실리적이고 구조가 더 단단한 팀이 가장 자유롭게 뛰는 팀을 꺾었다.
두 번째 페널티킥을 둘러싼 논란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테일러 주심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판정이 옳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여러 해 뒤인 1997년, 포크츠는 서독에 주어진 페널티킥이 오심이었다며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미해결로 남은 오래된 사건들이 그렇듯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는 것은 확정된 사실이다. 그 판정이 정당했는지는 끝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논쟁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페널티킥을 주어야 했든 아니든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서독은 이길 자격이 있었다. 논란이 있는 판정 하나에 기대 요행으로 우승을 훔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숙한 자기 경기 방식을 갖춘 진짜 강팀이었고, 뒤진 상황에서 기어이 경기를 뒤집었다.
그처럼 꿈같은 출발을 한 네덜란드가 어째서 패배로 미끄러져 갔는지, 후대 사람들은 여러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확증이라 할 수는 없다. 너무 이른 선제골이 오히려 네덜란드의 긴장을 풀어 놓았고, 상대를 가지고 놀려다 격차를 벌리는 일을 잊었다는 설명이 있다. 서독의 대인 방어와 전술 조정이 차츰 효력을 발휘했다는 설명도 있다. 모두 얼마쯤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곧바로 검증할 수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일이 끝난 뒤 조각들을 맞춘 해석이다. 실제 경기는 셀 수 없이 많은 공방과 선택, 작은 운들이 얽혀 나온 결과였다. 그것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돌리는 일은, 그 원인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사후의 단순화다.
확실한 것은 소박한 사실 하나뿐이다. 네덜란드가 앞섰고, 동점을 허용했으며, 역전당한 끝에 졌다. 나머지는 저마다 내놓는 해석이다. 한편 서독의 승리는 당당했다. 월드컵 결승에서 시작 2분도 안 되어 뒤지는 역경을 맞고도 전열을 추슬러 동점을 만들고 다시 역전했다. 그것만으로 이미 대단한 능력이다. 토털 풋볼처럼 화려하지도, 전설로 쓰이기도 쉽지 않은 능력이지만, 분명히 실재했다. 그리고 끝내 트로피의 주인을 정한 것은 그 능력이었다.
서독에서 베켄바워가 맡은 역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는 수비진 뒤에서 리베로라고 불리는 자리를 맡았다. 특정 상대를 악착같이 따라다닐 필요 없이 상황에 맞춰 움직이며, 뒤에 처져 수비를 보호할 수도 있고 후방에서 공격을 시작할 수도 있는 역할이었다. 이것 역시 고정된 자리를 느슨하게 푸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라운드의 한쪽은 온통 흐름이고 다른 쪽은 온통 경직이었던 것이 아니다. 서독에도 유연함이 있었다. 다만 팀 전체를 흐름 속에 녹이는 대신, 더 단단한 전체 위에 유연함을 얹었다. 두 팀은 흐름과 안정성을 서로 다른 비율로 배합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어떻게 리드를 놓쳤을까. 가장 신중하게 답하자면 전술은 그 답의 일부일 뿐이다.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리드가 25분까지만 이어졌고, 전반이 끝나기도 전에 승부가 뒤집혔으며, 서독이 먼저 한 골을 내주고도 이겼다는 사실이다. 후대의 전술 분석은 포크츠의 크루이프 밀착 마크를 거듭 강조한다. 베켄바워, 회네스, 오베라트를 거치며 서독이 차츰 경기를 장악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해석이지 당시에 확보된 통계적 실증 자료가 아니다. 후대의 전술 분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다. 경기 당시부터 반박의 여지 없이 확정된 증거처럼 다루면 지나치다.
6. 우승하지 못했지만 승자로 기억되다
우승 트로피는 서독이 가져갔다. 그러나 전설은 네덜란드의 몫으로 남았다.
1974년 네덜란드는 축구사에서 우승하지 못하고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부류의 팀이 되었다. 크루이프가 훗날 한 말의 요지는 이랬다. 온 세계가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자신들의 팀이니, 어쩌면 진짜 승자는 자신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기억에 관한 사실을 말한다. 어떤 객관적인 의미에서 그들이 정말 더 우월했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뒤섞이는 두 가지지만, 그 무게는 크게 다르다. 기억은 편을 든다. 보기 즐거운 축구를 한 팀은 지더라도 더 쉽게 기억되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며, 거듭 이야기된다. 반면 안정적으로 뛰어 이겼지만 덜 화려한 팀은 그 그리움에 밀려 구석으로 물러나기 쉽다. 그렇게 어긋남이 생긴다. 가장 또렷이 기억되는 쪽이 반드시 이긴 쪽은 아니고, 가장 널리 칭송받는 쪽이 반드시 정상에 오른 쪽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기억되고 널리 이야기된다고 해서 이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네덜란드가 그토록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유의 일부는 바로 패배에 있다. 아름다운 팀이 당연한 수순처럼 우승했다면, 그 아름다움은 우승의 완결성 안으로 흡수되었을 것이다. 이야기해 봐야 강자가 정상에 올랐다는 또 하나의 서사일 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팀이 지면 그 아름다움에 비극의 바탕색이 깔린다. 바라면서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서글픔이 생겨 더 마음을 끌고 더 오래 잊히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손에 넣지 못한 우승을 대가로 불멸을 얻었다. 잔인하게 들리지만 기억은 실제로 그렇게 작동한다. 원만한 완결보다 아쉬움을 더 편애한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구별이 있다. 기록은 기록이고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이다. 기록은 차갑다. 장부에 적힌 2대 1만 인정하고, 세계 챔피언이라는 칭호가 서독에 돌아갔다는 사실만 인정한다. 마음은 뜨겁다. 기록을 우회해 자신이 더 아끼는 쪽에 조용히 월계관을 다시 씌운다. 두 판단 방식에는 저마다의 이치가 있고 저마다의 사각지대도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마음의 편애를 기록의 정정으로 오해한다는 데 있다. 네덜란드가 더 뚜렷이 기억된다는 사실이, 마땅히 네덜란드가 우승했어야 한다는 증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기억의 편애로 경기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깊은 그리움도 스코어보드에 남은 한 골의 차이를 메우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도 패하고서 이렇게 오랜 그리움을 얻은 것은 네덜란드가 이룬 대단한 일이다. 사람들은 축구를 볼 때 결코 결과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팀이 펼쳐 보인 것, 그 기질과 상상력, 축구라는 것에 대한 이해는 때로 트로피 하나보다 깊이 마음을 움직이며 세월의 흐름도 더 잘 견딘다. 우승은 서독의 것이다. 그 점은 틀림없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이 축구를 상상하는 방식을 실제로 바꾼 팀이 누구였느냐고 묻는다면, 그 공은 아마 네덜란드에 돌려야 할 것이다. 하나는 경기장의 승패이고 하나는 역사에 미친 영향이다. 둘은 원래 같은 것일 필요가 없다.
그렇게 1974년은 선명한 대비를 남겼다. 두 팀은 서로 다른 하나씩을 가져갔다. 서독은 묵직한 우승 트로피와 명백하게 기록된 챔피언의 지위를 가져갔다. 네덜란드는 트로피 없이도 트로피보다 오래가는 전설을 가져갔다.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아마 영원히 정답이 없을 질문이다. 어떤 자로 재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의 자로 재면 서독이 이겼다. 사람의 마음과 역사의 자로 재면 네덜란드도 이겼다. 두 개의 자가 서로 다른 두 승자를 가리킨다. 바로 그것이 1974년의 가장 특별한 점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이겼어야 했다, 가장 강했다는 말은 평가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말이 기록이다. 네덜란드는 실제로 결승에 오르기까지 패하지 않았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호되게 꺾었으며, 서독이 공을 건드리기도 전에 앞서 나갔다. 이겼어야 한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이다. 동시에 서독은 당시 유럽 챔피언이었고, 절정의 베켄바워와 뮐러를 보유했으며, 실제 그라운드에서 2대 1로 이겼다. 가장 강하다는 것은 판단이고, 세계 챔피언은 확정된 결과다.
그 안에는 더 깊은 뒤집힘이 숨어 있다. 네덜란드가 불멸이 된 것은 바로 졌기 때문이다. 이겼다면 다른 챔피언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세계 챔피언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패배가 그들을 영원한 낭만의 상징으로 빚었다. 온 세계가 찬미한 아름다움은 그들이 이기지 못한 결승 위에 세워졌다. 기록이 빼앗아 간 것이 도리어 신화를 자라게 하는 양분이 되었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한다. 아름다운 패자라는 표현에는 당대의 진짜 감탄이 담겨 있다. 그러나 완성된 형태의 그 관념은 대체로 훗날 조금씩 구축된 것이다.
이를 인정하자는 것은 네덜란드 팬들의 흥을 깨려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진실을 각자의 자리에 놓자는 것이다. 그 팀이 얼마나 아름다운 축구를 했는지, 세상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진실이다. 그날 오후 서독이 분명히 이겼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진실이다. 앞의 진실을 부풀려 네덜란드가 우승했어야 한다고 하면 그 경계를 넘어선다. 뒤의 진실을 서독이 요행으로 이겼을 뿐이라고 줄여 버리는 것 역시 부당하다. 아름다움은 네덜란드의 것이고 우승은 서독의 것이다. 두 사실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누가 진짜 승자인지 기어이 가릴 필요는 없다.
7. 흐르던 축구도 끝내 정형이 되었다
토털 풋볼에는 뜻깊은 결말이 하나 더 있다.
그 영혼은 흐름에 있었고, 고정된 모든 것에 반대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훗날 토털 풋볼 자신이 고정되어 떠받들리는 것이 되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 철학, 교과서에 실린 이름표, 하나의 기념비가 되었다. 고정된 자리를 없앤 축구가 스스로 고정된 기념비가 된 것이다. 구조를 해체하던 그 부정의 한 동작은 마침내 새로운 구조로 굳어졌다.
거의 반어적이라 할 결말이다. 고정된 것을 깨는 데 모든 뜻을 두었던 축구가 끝내 새로운 고정이 되는 운명을 맞았다. 후대 감독들은 토털 풋볼을 올려다보고 배워서 재현해야 할 고전으로 이야기했다. 하나의 동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살아 있는 부정이 하나의 명사, 그 자리에 떠받들어진 죽은 기념비로 변했다. 옛 구조를 부정한 그것이 새로운 구조로 추앙받으며, 다음 사람들이 다시 부정해 주기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 법칙은 토털 풋볼 안에서 온전한 한 바퀴를 돌았다. 토털 풋볼은 그 자체로 이전의 고정된 포메이션을 깎아내는 한 번의 타격이었고, 힘찬 부정이었다. 그러나 그 타격이 내려앉은 뒤에도 부정의 상태로 머무르지는 않았다. 빠르게 새로운 구축물로 굳어졌고, 새로이 떠받들리는 정통이 되었다. 어떤 구축물이든 처음에 아무리 이단적이었어도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다음 깎아내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후의 축구는 바로 토털 풋볼을 연구하고 모방하고 넘어서는 일을 디딤돌 삼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 점을 똑바로 보면 축구의 진화를 다르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어떤 궁극의 완전을 향해 줄곧 올라가는 직선이 아니다. 깎아내기와 구축, 부정과 재부정이 거듭 돌아오는 과정이다. 각 세대는 자신들이 최고의 경기 방식을 찾았다고 믿으며 온 힘을 들여 그것을 하나의 봉우리로 쌓아 올린다. 다음 세대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떻게든 그 봉우리를 깎아 열고 넘어가, 저편에 새 봉우리를 쌓는 것이다. 토털 풋볼은 그 가운데 유난히 눈부신 봉우리다. 그러나 다른 봉우리와 마찬가지로 끝내 넘어가야 할 곳이지, 한 번 도달하면 영원히 머물 곳은 아니다.
어떤 경기 방식이든 축구의 최종 형태로 떠받드는 일이 반드시 어긋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찬란하던 시절의 토털 풋볼은 축구 진화의 종착점처럼 보였다. 이후의 축구는 그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계속 가기만 하면 될 듯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토털 풋볼은 흡수되고 변형되었으며, 뒤이어 온 여러 세대가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깎아 나갔다. 종착점은 한 번도 진정으로 도래한 적이 없다. 애초에 종착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가장 앞선 축구였던 이 방식도 어김없이 집중 공략을 당하고 해법이 찾아졌으며, 결승에서 졌다. 후대의 축구는 토털 풋볼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연구하고 제어하는 법을 익힌 뒤, 다시 그 너머로 나아갔다. 궁극의 체계를 만든다고 이 순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 궁극의 체계는 순식간에 다음으로 넘어서야 할 구축물이 된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 법칙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다. 토털 풋볼이 고정된 자리를 부정한 한 번의 깎아내기는 완결되는 순간 하나의 구축물이 되었다. 후대가 다시 깎아 열고 넘어서야 하는 기념비가 되었다. 고정에서 가장 벗어나고자 했던 축구가 스스로 고정되었다. 누구도 영원히 낡지 않을 축구를 할 수는 없다. 다시 깎일 일 없는 구축물을 깎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궁극의 경기 방식이 나타나기를 늘 바라는 사람에게는 듣기 거북한 말이다. 한동안 지나면 축구장에는 혁명이라 떠받들리는 새 방식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승리의 최종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털 풋볼의 운명은 그런 최종 해답이 없음을 보여 준다. 아무리 앞선 체계도 형태가 굳어지는 순간 상대에게 연구하고 공략할 표적을 내준다. 고전으로 떠받들리는 순간 후대의 상상력을 가두는 틀이 된다. 오늘의 혁명이 내일 혁명으로 뒤엎을 대상이다. 이것은 축구의 결함이 아니다. 축구가 영원히 끝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볼거리를 내놓는 까닭이다.
8. 이야기를 거두며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보자.
1974년 축구는 가장 야심 찬 시도 가운데 하나에 나섰다. 토털 풋볼로 고정된 자리의 제약을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펼쳐 보이려 했다. 아름다운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 법칙이 세운 몇 개의 벽에 부딪쳤다.
첫 번째 벽은 속박을 없애려 해도 속박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에 나타날 뿐이라는 사실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축구는 가장 가혹한 요구를 하는 축구다. 자유의 이면에는 각자에게 지워지는 더 무거운 짐이 있다. 두 번째 벽은 가장 진취적인 이 축구도 결승 한 경기를 승리로 매듭짓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나갔고, 더 아름답게 뛰었으며, 온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졌다. 가장 앞선 체계도 공략당하고 추월당할 또 하나의 구축물일 뿐이다. 세 번째 벽은 흐름을 영혼으로 삼은 축구가 끝내 고정된 기념비로 굳어져, 도리어 후대 사람들이 깎아 열어야 할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 벽은 함께 같은 이야기를 한다. 구조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구조를 새로운 높이로 끌어올릴 수도 있고, 전혀 새롭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할 수도 있으며, 전에 없던 아름다움을 펼치는 데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를 없애거나 그 바깥으로 뛰쳐나갈 수는 없다. 토털 풋볼은 이 이치를 극한까지 보여 주었다. 구조에서 벗어나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도였기에, 그 실패가 가장 설득력 있다. 그것조차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이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 모든 이치 아래에는 여전히 구체적인 사람들이 서 있다. 그 네덜란드 대표팀은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 기호가 아니었다. 저마다 이름이 있고, 지치고, 실수하고, 패한 뒤에는 슬퍼하는 열한 명의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온 세계는 그들을 영원한 낭만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그 두터운 사랑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외면도 숨어 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정제해 낸 아름다움의 이상이다. 실제로 뮌헨의 잔디 위에 섰고, 실제로 우승하고 싶었으며, 마지막에는 실제로 패했던 이들 각자의 상실감은 도리어 그 후광 아래 부드럽게 덮였다. 사실은 패한 사람들에게 승자로 기억된다는 일이 꼭 위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74년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같은 월드컵 안에 포개 놓았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 경기 방식이 하필 가장 무거운 속박을 짊어졌다. 가장 아름답게 뛰는 팀이 하필 우승하지 못했다. 고정에 가장 반대하던 이념이 하필 가장 높이 떠받들리는 고정이 되었다. 분명히 패한 사람들이 하필 승자로 기억되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뒤집힘들은 속으로 같은 것을 말한다.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 해도, 그 순환은 언제나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바로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토털 풋볼이라는 가장 장엄한 탈출 시도는 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패가 그 위대함을 조금도 덜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토록 힘껏 시도하고 그토록 높이 날았기에 부딪친 벽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토털 풋볼은 자신의 운명으로 그 법칙을 보여 주며 축구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훈을 남겼다.
그리고 패한 팀은 진짜 승자로 기억되었다. 기억이 베푼 두터운 사랑이지만, 조용히 지운 것도 있다. 누구나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다고 내세운 그 축구는 실은 언제나 바꿀 수 없는 단 한 사람, 크루이프 없이는 성립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빚어진 선수들도 저마다 진정 이기고 싶었고, 진정으로 패했던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화는 그들을 높이 들어 올리면서도, 살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구체적인 상실감까지 함께 덮어 버렸다. 하나의 판단이 패자에게 뒤늦게 우승의 지위를 돌려주었지만, 트로피를 가져간 것은 결국 다른 팀이었다.
결국 1974년 뮌헨의 그 경기장이 품었던 것은 축구의 영원한 딜레마였다. 한쪽에는 아름다움과 자유를 끝까지 좇으려는 충동이 있고, 다른 쪽에는 승부라는 일을 성실하게 해내야 한다는 본분이 있다. 둘은 함께 얻기 어려울 때가 많다. 네덜란드는 앞의 것을 골랐고, 후세가 반세기 동안 이야기할 축구를 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의 리드를 지키지는 못했다. 서독은 뒤의 것을 골랐다. 덜 눈부시게 뛰었지만 트로피를 확실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선택이 더 옳았을까.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애초에 옳고 그름이 아니라, 축구에서 대체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묻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순간의 승리를 원하고, 누군가는 영원히 빛바래지 않을 아름다움을 원한다. 축구의 넓이는 바로 이 두 부류를 함께 품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이 월드컵은 유난히 오래 기억 속에 서 있다. 간단명료한 답을 내놓는 대신 더 깊은 질문을, 그 안의 팽팽한 긴장까지 고스란히 남겼다. 가장 강한 팀이 반드시 우승하지는 않고, 우승한 팀이 반드시 기억되지는 않는다. 가장 벗어나려던 쪽이 가장 단단히 묶이고, 가장 자유로운 쪽이 가장 무거운 값을 치른다. 입에 쉽게 붙지 않는 이 뒤집힘은 역사의 실수가 아니라 역사 본래의 모습이다. 1974년을 이해하면 축구가 정답이 있는 산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거울에 가깝다. 완전을 향한 사람의 열망과, 그 열망으로도 영원히 메울 수 없는 아주 작은 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궁극의 경기 방식으로 순환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여전히 순환 안에 있다. 가장 자유로운 축구는 결승 한 경기를 승리로 매듭짓지 못했고, 가장 유동적인 축구는 끝내 스스로 정형이 되었다. 손에 넣지 못한 그 우승은 도리어 실제로 거머쥔 숱한 우승보다 오래 기억된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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