웸블리
승패는 판정할 수 있어도 진실은 확정할 수 없다
1966년 웸블리의 골라인 논쟁을 중심으로 기록과 진실의 틈, 북한의 돌풍과 잉글랜드의 전술을 함께 살핀다.
이 글의 목차
1. 축구의 발상지가 마침내 우승하다
1966년, 잉글랜드는 안방에서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도 잉글랜드가 거머쥔 유일한 월드컵 우승컵이다.
이 우승에는 남다른 무게가 있었다. 축구라는 경기의 규칙을 정하고 세계로 퍼뜨린 사람들이 바로 잉글랜드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발상지는 오랫동안 월드컵과 거리를 두며 도도하게 굴었다. 1930년 첫 월드컵에는 아예 참가하지도 않았다. 갓 생겨난 그 대회보다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온 세계에 공을 차 보낸 이 나라는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한때 거들떠보지도 않던 우승컵을 자기 집 앞마당에서 마침내 차지했다.
이 대비는 선명하다. 한 종목의 규칙을 정한 나라가 여기였고, 현대 축구의 원형이 자라난 곳도 이 나라의 공장과 학교였다. 그런데 바로 그 축구를 세계에 전한 나라가 월드컵이 탄생하자 한발 물러섰다. 남들이 차려 놓은 대회는 자기 격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자신을 경기장에 나서는 한 참가자가 아니라 축구의 가장쯤으로 보았던 것이다. 마침내 그 체면을 내려놓고 우승컵을 진지하게 다투기까지는 다시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니 1966년을 축구가 운명처럼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돌아온 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발상지가 마침내 경기장으로 내려와, 다른 모든 팀과 똑같이 우연이 지배하는 무대에서 승패를 겨루었고,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이겼다고 하는 편이 맞다. 잉글랜드에 다른 나라보다 우승할 당위가 더 있었던 것도, 우승이 더 확실히 예정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안방에서 누리는 여러 이점에 오늘날까지도 진상을 알 수 없는 그 골까지 더해, 우승컵을 자기 땅에 남겨 놓았을 뿐이다.
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잉글랜드의 우승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는 않는다. 잉글랜드는 정말로 이겼고, 선수들은 정말로 힘을 다했으며, 윙어 없는 그 팀에는 실제로 뛰어난 점이 있었다. 거부해야 할 것은 이 승리를 축구가 보이지 않는 운명의 이끌림에 따라 발상지로 귀환한 사건으로 포장하는 이야기뿐이다. 승리는 승리다. 그것은 90분과 연장전 30분 동안 실제로 벌어진 모든 일에서 나왔다. 누구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그 골 역시 그 안에 있다. 이 승리에 금칠을 하려고 운명의 후광까지 씌울 필요는 없다.
훗날 ‘축구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축구가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마침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다만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 말은 1966년에 나온 말이 아니다.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를 위해 만든 노래에서 나왔고, 잉글랜드가 다시 큰 대회를 개최한 그해 여름에야 본격적으로 울려 퍼졌다. 잉글랜드와 축구의 기원, 1966년 우승을 하나로 묶는 정서 자체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축구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바로 그 표현은 1966년이 아니라 1996년의 것이다.
이 두 해를 구별하는 것은 사소한 흠잡기가 아니다. 1996년 대회를 위해 만든 구호를 아무렇지 않게 1966년에 갖다 붙였다는 사실은, 발상지의 우승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완결된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준다. 사람들은 이 사건에 너무나도 그럴듯한 말을 붙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30년이나 뒤늦게 나온 노랫말마저 그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 말로 소급해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구별이 중요한 이유는 ‘축구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 안에, 입에는 착 붙지만 곱씹어 보면 버티지 못하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본래 발상지로 돌아가야 하고, 잉글랜드의 안방 우승은 운명적으로 제자리를 찾은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매끈하지 않다. 발상지가 자국에서 우승한 것은 숙명이 완성된 일이 아니다. 그저 실제로 일어난 한 번의 승리다. 더구나 그 승리가 과연 깨끗했느냐는 물음은 바로 그날부터 오늘까지 끝내 매듭짓지 못한 미제로 남았다.
2. 웸블리의 그 골
미제는 결승전에서 생겼다.
1966년 7월 30일, 웸블리. 잉글랜드와 서독의 경기는 정규시간을 2대2로 마치고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전반 12분 서독의 할러가 먼저 골을 넣었고, 18분 허스트가 동점을 만들었다. 78분에는 피터스가 잉글랜드를 앞서게 했지만, 90분 서독의 베버가 다시 동점골을 넣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결승전이었다. 서독이 먼저 앞서 나갔고, 잉글랜드가 동점을 만든 뒤 역전했으며, 서독이 다시 따라잡았다. 특히 90분에 터진 베버의 골은 거의 종료 휘슬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잉글랜드가 손에 넣기 직전이던 우승컵을 다시 빼앗아 간 셈이었다. 정규시간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2대2. 모든 긴장과 불확실성이 추가된 30분으로 넘어갔다. 웸블리를 메운 9만여 관중은 누구 하나 긴장을 풀지 못했다.
진짜 논란은 연장전에서 벌어졌다. 101분, 허스트가 페널티지역 안에서 몸을 돌리며 강하게 슛을 날렸다. 공은 크로스바 아랫부분에 맞은 뒤 골라인 부근의 땅을 세게 때리고 튀어나왔다. 공 전체가 골라인을 넘어갔는지, 스위스인 주심 디엔스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그쪽 부심 바흐라모프에게 달려가 물었다. 이 부심은 소련 사람이었지만 아제르바이잔 출신으로, 러시아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잉글랜드에서는 훗날 오랫동안 ‘그 러시아인 부심’으로 불렸다. 디엔스트는 나중에 바흐라모프의 표정과 태도를 보고 골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골이 인정되었다. 잉글랜드는 3대2로 앞섰고, 허스트는 120분에 한 골을 더 넣어 최종 스코어를 4대2로 만들었다. 주심조차 똑똑히 보지 못해 부심의 표정과 태도에 기대어 결정해야 했던 골이 한 팀의 월드컵 우승을 결정지었다.
주심 디엔스트가 서 있던 위치에서는 공이 선을 넘었는지 분명히 볼 수 없었다. 그 자신이 인정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그쪽 부심에게 판단을 맡겼다. 하지만 부심도 가까이 있지는 않았다. 그가 내놓은 것은 똑똑히 보고 내린 결론이라기보다 순간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두 사람이 얼마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손짓 하나, 표정 하나로 몇 초 만에 월드컵 우승컵의 주인을 정했다. 이 결정이 지닌 엄청난 무게와 그것을 떠받치는 근거의 빈약함은 눈이 시릴 만큼 대조적이었다.
사실 이런 대비는 축구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평소에는 이만큼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한 경기의 수많은 순간마다 심판은 순식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프사이드인가 아닌가, 핸드볼인가 아닌가, 선을 넘었는가 넘지 않았는가. 대개는 이런 판정이 대세를 바꾸지 않기에, 틀려도 그냥 넘어가고 아무도 깊이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순간이 월드컵 결승전에, 그것도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골에 걸리면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취약함이 끝없이 확대된다. 거대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떠받치는 것이 고작 몇 초 사이에 내린, 제대로 보지도 못한 판단인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 골을 끝내 마음에서 떨쳐 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취약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골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환상을 찔러 터뜨렸다. 최고 수준의 경기라면 챔피언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실력으로, 분명하게 가려져야 한다는 환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월드컵 우승조차 심판도 똑바로 보지 못한 한순간에 매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사실은 몹시 불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광의 정점조차 그렇게 불안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차라리 그 골을 두고 거듭 논쟁하기를 택한다.
그 불안정함이야말로 사실 축구의 본모습이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가려져 있을 뿐이다. 반짝이는 우승컵 하나하나의 뒤에는 이런 순간들이 숱하게 놓여 있다. 골대를 스친 공이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밖으로 튀어나온 슛, 선언되거나 선언되지 않은 오프사이드, 심판의 찰나의 생각으로 갈린 판정. 그런 순간들의 우연을 걷어 낸다면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볼 때 으레 결과만 바라본다. 그 결과에 이르는 길에 빼곡히 들어차 있던 우연은 모조리 잊어버린다.
3. 그 선을 넘었는가
그 공은 정말 골라인을 넘었을까?
오늘날까지도 이 물음에는 답이 없다. 의심이 나중에야 생겨난 것도 아니다. 당시 미국의 한 잡지는 텔레비전으로 그 장면을 다시 본 뒤에도, 그 자리에 있던 관찰자 가운데 정말 골이 맞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다시 말해 골이 인정된 바로 그 순간부터 의문은 있었다.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독일인들에게 나중에 생겨난 불만이 아니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의심이 경기가 끝난 뒤에야, 그것도 패한 쪽에서만 나왔다면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심리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골이 들어간 순간 중립적인 관찰자들조차 확답을 하지 못했다. 이는 그 골에 대한 의심이 각자의 편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자체가 그만큼 불분명했음을 뜻한다. 누가 보더라도 온전히 확신하며 답할 수 없을 만큼 모호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 골을 둘러싸고 생겨난 여러 이야기 자체가 계속해서 사건을 극적으로 꾸며 왔다. 분명 아제르바이잔인인 부심을 잉글랜드인들은 오랫동안 러시아인 부심으로 기억했다. 마치 그를 동서 진영의 대립이라는 더 큰 배경 속에 놓아야만 그 판정에도 남다른 사연이 생기는 듯했다. 사람들은 한 판정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 한순간에 내린 평범한 판단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드시 더 묵직한 의미를 덧붙이려 한다. 그 의미가 아무 근거 없이 보태진 것이라 해도 그렇다.
나중에는 실제로 기술을 이용해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옥스퍼드의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두 각도에서 촬영한 옛 영상을 바탕으로 장면을 복원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공이 선 위에 떨어졌으며, 오차를 가장 불리하게 잡더라도 공 전체가 골라인을 넘으려면 적어도 3인치는 더 가야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에 이루어진 또 다른 현대적 복원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당시 골 판정이 옳았다는 것이다. 둘 다 오래된 필름으로부터 거꾸로 추론한 결과였다. 당시 현장에 설치된 골라인 판독 기술도 아니었고, 권위 있는 기관의 재심 판정도 아니었다. 결국 어느 쪽도 이 오래된 논쟁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두 복원이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같은 옛 영상을 사용했고 진실을 밝히려는 마음도 같았지만, 진지하게 계산할수록 서로 충돌하는 답이 나왔다. 어느 한쪽이 충분히 꼼꼼하게 계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영상에 담긴 정보 자체가, 단 하나의 의심할 수 없는 결론을 뒷받침하기에 모자라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밀한 자를 가져와도 애초에 흐릿한 대상을 재면, 얻는 것 역시 흐릿함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미제에서 가장 아쉬우면서도 가장 어찌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잠시 답을 찾지 못했을 뿐, 기술이 발전하고 자료가 갖추어지면 언젠가 진상이 드러날 수수께끼와는 다르다. 이것은 처음부터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는 물음이다. 모든 것을 결정한 그 순간이 기록될 때부터 이미 모호했기 때문이다. 후대 사람들이 거듭 돌려 볼 수 있는 것은 그 모호함 자체뿐이다. 모호함을 아무리 다그쳐도 확실함을 내놓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 논쟁은 영원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독일과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그 옛 영상을 다시 꺼내 볼 것이고, 저마다 다른 주장을 하면서 서로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충분히 이성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투는 대상에 애초부터 모두를 납득시킬 답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논쟁은 증거가 나타나면 가라앉는다. 그러나 이 논쟁은 영원히 미결로 남을 것이다. 그것을 끝낼 증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결될 날이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이 미제가 그토록 오랫동안 전해질 수 있는 까닭도 바로 해답이 없다는 데 있다. 결론이 난 논쟁은 얼마간 다투고 나면 열기가 식는다. 반면 끝내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은 대대로 이어질 수 있다. 어느 세대든 자신들은 뭔가 새로운 실마리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손에 닿지 않는 답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뻗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생명력은 끝낼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물음이 일찍 닫힌 답보다 오히려 오래 살아남는다.
그 부심에게는 또 하나의 널리 퍼진 전설이 따라붙었다. 말년에 당시의 판정을 설명하면서 그가 ‘스탈린그라드’라는 한 단어만 말했다는 이야기다. 독일인들이 그 도시에서 남긴 빚을 이제 갚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극적인 이야기지만 검증을 견디지는 못한다. 바흐라모프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그 자신도 부인했다고 지적한 역사가가 있다. 따라서 이 ‘스탈린그라드’ 이야기는 훗날 끼워 맞춘 전설로만 다루어야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4. 기록은 종결될 수 있어도 진실은 그렇지 않다
그 골의 공식 기록은 이미 종결되어 있다. 스코어는 4대2이고, 허스트는 해트트릭을 했으며, 잉글랜드는 챔피언이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어느 축구 기구도 이 결과를 바꾸지 않았다. 기록의 차원에서 이 일은 이미 결론이 났고, 다툴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깔끔한 기록 아래에는 영원히 매듭지을 수 없는 물음이 눌려 있다. 그 공은 정말 선을 넘었는가. 이 물음은 기록으로 해결할 수 없다. 기록은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려 주지만, 그 결과가 옳은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
평소에는 이 둘이 자주 겹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같은 것으로 여긴다. 대부분의 골은 누가 봐도 분명하게 들어간 골이고, 기록된 결과와 실제로 벌어진 일은 빈틈없이 맞아떨어진다. 이럴 때 기록은 곧 진실이며 둘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선 위에 걸린 그 공을 만나는 순간 둘은 갈라진다. 기록은 여전히 남아 있고, 분명한 결론을 내놓아야만 한다. 반면 진실은 누구도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물러나 버린다.
한 경기는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한다. 그 공은 골이거나 골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세 번째 선택지는 없으며 심판이 바로 그 자리에서 몇 초 안에 결정해야 한다. 경기는 영원히 얻지 못할 정확한 답을 기다리며 멈춰 설 수 없다. 계속되어야 하고, 스코어가 있어야 하며, 승패를 가려야 한다. 이처럼 반드시 지어야 하는 매듭 자체가 하나의 구축이다. 현실 위에 강제로 내려놓는 판정인 것이다.
축구의 모든 결과는 결국 이처럼 강제로 덧씌워진 구축이다. 경기는 90분이고 끝에는 반드시 스코어가 있어야 한다. 슛 한 번은 골로 인정되거나 인정되지 않으며, 그 사이에 애매하게 머무를 여지는 없다. 이 규칙은 혼돈스럽고 연속적이며 우연으로 가득한 현실을 매번 갈림길에서 둘 중 하나의 판정으로 강제로 수렴시킨다. 대부분은 이런 수렴에 문제가 없다. 현실 자체가 충분히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불확실한 것을 억지로 확실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축구는 이 억지를 피할 수 없다. 어떤 다른 일들처럼 보류하거나 의심을 남기거나 나중에 다시 보자고 할 수 없다. 휘슬이 울리면 경기는 이어져야 하고, 공이 골라인에 이르면 그 자리에서 골인지 아닌지를 판정해야 한다. 멈춰 서서 완전한 답을 기다릴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축구는 스스로 내리는 몇몇 판정이 필연적으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진상을 밝혀낼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를 계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리는 결정인 것이다.
이 ‘어쩔 수 없음’은 축구를 좀 더 여유 있는 분야들과 구별한다. 역사 속 의문스러운 사건은 풀지 않은 채 후대에 남겨 둘 수 있고, 과학의 문제는 더 나은 실험을 기다리며 잠시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기다릴 여지가 있다. 축구에는 없다. 매 경기 90분 안에 결과를 내야 하고, 논란이 생기는 판정마다 그 자리에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 시간에 쫓겨 어떻게든 판단해야 하는 처지는 한 가지 사실을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람은 때때로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판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도 일단 판단을 내린다.
이 사실을 직시한다고 해서 심판을 부정하거나 축구의 규칙을 뒤엎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자주 모호하기에, 결과를 내야 할 때 판단의 짐을 떠맡을 사람이 더 필요하다. 결정을 피하고 모든 것을 의심한 채 남겨 두는 심판은 경기를 완전히 마비시킬 뿐이다. 문제는 판정을 내려야 하느냐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내리는 이런 판정에는 애초부터 틀릴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절대 진리로 떠받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냐는 문제다. 판정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과 판정의 권위를 존중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때로 협조해 주지 않는다. 공이 분명히 선을 넘어 판정과 진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반대로 공이 그 선 위에 걸려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데도 판정은 내려야만 하는 때가 있다. 그때의 판정은 더 이상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하는 질문에, 주지 않을 수 없어 내놓은 답일 뿐이다. 그것은 기록을 종결하지만 진실까지 함께 종결하지는 못한다. 그럴 수도 없다.
그렇게 웸블리의 그 골 같은 상황이 생겨난다. 경기에 결과가 없을 수는 없으므로 판정은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그 판정이 가리키는 진실은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이때의 판정은 더 이상 사실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다. 답이 없는 물음에 억지로 답을 적어 넣는 일이다. 한번 적힌 답은 바꿀 수 없는 기록이 되고, 그 답에 대응했어야 할 진실은 영원히 문밖에 남겨진다.
일단 기록에 들어간 답에는 진실처럼 행세할 수 있는 권위가 생긴다. 후대 사람이 그 페이지를 펼치면 ‘잉글랜드 4대2’라는 또렷한 결과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그 공은 당연히 골이었어야 한다는 듯이. 기록은 그 스코어 옆에 ‘사실 이 골은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작은 글씨를 달아 놓지 않는다. 당시의 망설임과 다툼, 분명히 말할 수 없었던 부분을 모두 감추고 단호한 결과 하나만 남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골은 더욱 당연해 보인다. 처음의 의심은 그 골 자신이 만들어 낸 깨끗한 기록에 조금씩 덮여 간다.
그러므로 그 기록은 증명되어 종결된 것이 아니라, 종결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누군가 공이 선을 넘었는지 정말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경기 규칙이 종결을 요구했기 때문에 닫혔다. 판정은 단호할 수 있지만 진실은 여전히 미결로 남는다. 그 순간부터 둘은 갈라졌고 다시는 합쳐지지 못했다. 기술적 복원이든 거듭되는 논쟁이든, 진실까지 함께 못 박으려 한 모든 후대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으며, 남긴 증거는 처음부터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5. 분명하지 않은 것은 그 골만이 아니다
그 대회의 잉글랜드를 둘러싸고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골 하나만이 아니었다.
축구의 발상지가 안방에서 거둔 우승이 과연 깨끗했느냐는 의심은 처음부터 일었다. 특히 남미에서 그랬다. 영국의 외교 문서에는 당시의 기록이 적잖이 남아 있다. 남미의 일부 항의자들은 잉글랜드가 서독과 짜고 대회 전체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심판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영국 대사관은 욕설 전화가 수백 통이나 걸려 왔으며 이 일로 양국 관계가 부당하게 손상되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 문서들이 분명히 입증하는 것은 있다. 그런 비난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입증되는 것은 비난의 규모일 뿐, 그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아니다. 다시 말해 문서는 잉글랜드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음을 알려 줄 수는 있어도, 잉글랜드가 실제로 부정을 저질렀는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 이 또한 판정을 내릴 수 없는 물음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를 유난히 조심해서 구별해야 한다. 문서가 입증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한때 잉글랜드의 부정을 강하게 믿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었는지에 관한 이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잉글랜드가 정말로 서독과 공모해 대회를 조작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믿는 사람이 아무리 많고 그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그 일이 참이라는 뜻은 아니다. 둘을 뒤섞으면 잉글랜드에 억울한 누명을 씌우거나, 실제로 있었던 불공정을 면죄해 주게 된다. 정작 확증할 수 있는 것은 비난이 거셌다는 데까지다. 그 안으로 더 들어가면 무엇 하나 확정할 수 없는 안개가 펼쳐진다.
개최국의 이점도 그 안개 속에 있다. 안방에서 뛰는 팀에게는 익숙한 잔디가 있고, 우레 같은 응원이 있으며, 때로는 애매한 상황에서 심판이 무의식적으로 홈팀 쪽으로 조금 기우는 경향도 있다. 이런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 골의 판정과 그 대회의 흐름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는 수치로 나타낼 수도, 확증할 수도 없다. 잉글랜드의 우승을 전부 그것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아무 영향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것은 그렇게 희미한 상태로 허공에 남아 있다.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낀 남미의 팀과 팬들에게는 이 모호함 자체가 고통이었다. 잉글랜드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결정적 증거는 내놓을 수 없었지만, 그 대회의 여러 일이 자신들에게 불공평했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길이 없는 처지는 글로 명확히 적힌 판결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 뚜렷한 불공정이라면 적어도 맞서 싸우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도무지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의혹 앞에서는 맞서야 할 상대조차 분명히 찾을 수 없다. 그 답답함을 수백 통의 욕설 전화로 쏟아 내거나,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그 우승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잉글랜드 쪽도 아마 진정으로 마음이 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논란을 안은 채 얻은 우승에는 영광 속에도 한 줄기 그늘이 남기 마련이다. 세월이 흐른 뒤 1966년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우승컵만이 아니다. 그 골도 반드시 따라 나온다. 승리도 기억되었지만 의심도 기억되었다. 둘은 한데 묶여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떼어 낼 수 없다. 이런 승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승리는 분명히 실적으로 남았지만, 모두에게서 아무 유보 없는 인정을 얻지는 못한다.
그런 의심에는 실제 계기가 있었다. 그 대회의 판정은 정말로 끊임없이 논란을 낳았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주장 라틴은 35분에 퇴장당했다. 당시에는 아직 레드카드와 옐로카드가 없어 심판이 말과 손짓만으로 퇴장을 전달해야 했다. 그런데 서독인 주심은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고 라틴은 독일어를 하지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몇 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라틴은 주장 완장을 내보이며 통역을 불러 달라고 요구했다. 설명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 경기장을 떠났다. 가장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하는 순간, 한 선수는 상대가 자기 말을 알아듣게 하는 것조차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 장면 역시 훗날 그 대회를 상징하게 되었다. 계속 뛸 자격을 빼앗기는 선수가 자신을 위해 몇 마디 해명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의 운명을 쥔 사람과 아예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정은 내려져야 하는데 언어가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완장을 내보이며 헛되이 통역을 요구하는 일뿐이었다. 규칙의 집행은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벽에 부딪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뜻조차 전달되지 않는다는 벽이었다.
현장에서 분명히 매듭짓지도 못하고 다툼도 끝나지 않는 이런 장면들이 훗날 레드카드와 옐로카드의 탄생을 재촉했다. ‘산티아고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1966년의 이런 분쟁도 켄 애스턴이 카드 제도를 고안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제도가 정식으로 쓰인 것은 1970년이었다. 규칙은 자신이 가두지 못하던 혼란을 깎아내어 다시 한번 새로운 한 조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카드가 해결한 것은 경고와 퇴장을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하는 문제뿐이었다. 라틴이 그 순간 실제로 맞닥뜨린 곤경, 곧 언어의 장벽과 판정에 대한 논란, 자격을 빼앗기는 선수가 해명할 길이 없다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심판의 뜻은 더 명확히 전달하게 했지만 심판의 판단까지 더 정확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표현의 틈은 메웠어도 판단 자체의 틈은 메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판단 자체에 난 그 틈은 사실 골라인 위의 그 공이 드러낸 틈과 같다.
6. 한 도시가 품은 북한 대표팀
그 대회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그 미제의 다른 한 면을 비추어 주는 이야기다.
북한 대표팀은 그때 처음 월드컵에 나왔다. 영국 정부는 처음부터 이들의 방문을 불편하게 여겼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국은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결국 거부하지 않은 것은 FIFA가 단호하게 못 박았기 때문이다. 출전 자격을 얻은 팀을 막는다면 대회 개최지를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얼마간의 부조리가 있다. 정치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나라의 팀이 이국의 작은 도시에서는 평범한 주민들에게 차츰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았다. 관중석의 사람들은 국가끼리 서로를 승인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본 것은 온 힘을 다하면서 생기 있게 축구를 하는 팀이었다. 그해 여름 정치적 계산과 경기장 곁의 소박한 애정은 서로 갈라진 길을 걸었다. 북한 팀이 막상 미들즈브러에 도착하자, 현지 팬들은 점점 그들을 자기네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특히 그 엄청난 이변을 일으킨 뒤에는 더욱 그랬다.
7월 19일, 북한은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무너뜨렸다. 당시 신문들은 1950년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은 이래 월드컵 최대의 이변이라고 불렀다. 그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35분에 선수 한 명이 충돌로 다쳐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 대회는 선수 교체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이탈리아는 한 명이 모자란 채 뛰어야 했다. 7분 뒤 박두익이 결승골을 넣었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는 북한이 한때 더 놀라운 경기를 펼쳤다. 시작한 지 25분 만에 3대0으로 앞섰다. 하지만 그 뒤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가 혼자 네 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5대3 역전을 이끌었다. 기적을 일으킨 팀이 세 골이나 앞서고도 상대가 일으킨 더 큰 기적에 집어삼켜진 것이다.
세 골을 앞서다 끝내 5대3으로 졌다는 전개는 단순한 이변보다 더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기적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연은 북한을 그렇게 높이 들어 올렸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을 바꾸어 바닥으로 내던진 것만 같다. 한 팀은 25분 동안 평생 최고의 축구를 펼칠 수 있고, 이어지는 한 시간 동안 그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지워지는 광경을 지켜볼 수도 있다.
북한의 이야기와 골라인의 미제를 나란히 놓을 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각각이 얼마나 분명한가 하는 점이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포르투갈에 진 스코어는 하나하나 명확하다. 어느 하나 다툴 필요가 없다. 그 이야기의 극적인 힘은 오롯이 우연 자체의 변덕에 있으며, 판정에 대한 의심에는 없다. 반대로 결승전의 그 골이 극적인 것은 전적으로 한 판정의 불분명함 때문이다. 둘 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지만, 하나는 운명의 무상함에 탄식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에 마음을 붙잡아 둔다. 잊히지 않는 까닭이 전혀 다른 두 이야기다.
북한의 이야기에는 유난히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도 있다. 먼 동방에서 온 선수들, 상대국이 자신들의 나라조차 인정하지 않는 선수들이 이국의 관중석 앞에서 본래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던 박수를 받았다. 정치는 그들의 나라를 문밖으로 밀어냈지만 축구는 그때 그곳에서 그들과 한 도시의 낯선 사람들을 이어 주었다. 그 연결이 아주 깊었다고는 할 수 없다. 대회가 끝나자 그 관계도 끝났다. 그러나 분명히 실제로 일어났다. 축구는 때로 정치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단절되어 있어야 했을 두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경기를 통해 잠깐이나마 한편에 서게 하는 일이다.
물론 이 따뜻함을 과장해서도 안 된다. 북한은 결국 졌고, 대회도 결국 끝났으며, 장벽을 넘은 그 연결 역시 짧고 표면적인 것이었다. 축구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단단한 것들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는 있어도 그것들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축구가 주는 것은 잠깐의 막간이지, 해답이 아니다. 지나치게 아름답게 말하면 오히려 그 한계를 놓친다. 그래도 그저 하나의 막간에 불과할지언정, 그해 여름 미들즈브러에서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이 이야기는 골라인의 미제와 정확히 대비된다. 북한의 이변도, 3대0 이후의 붕괴도 판정이 불분명한 대목은 하나도 없다. 스코어는 뚜렷하고 누구도 다투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한 우연이다. 우연이 이탈리아를 쓰러뜨렸고, 또 우연이 유리하던 경기를 허무하게 날려 버렸다. 우연이라는 칼은 언제나 양쪽을 모두 벤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기적을 이루어 줄 수도 있지만, 돌아서서 그 기적을 뿌리째 잘라 버릴 수도 있다.
7. 램지는 윙어를 뺐다
잉글랜드의 그 대회 우승은 전술적으로도 흔히 하나의 깔끔한 이름 아래 정리된다. ‘윙어 없는 전술’이다.
그 이름이 포착하는 실제 모습은 분명히 있다. 램지 감독의 잉글랜드는 토너먼트 단계에서 실제로 전통적인 윙어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았다. 결승전 선발진에서 스타일스는 뒤에 처진 미드필더였고, 보비 찰턴은 그보다 앞에서 경기를 풀어 가는 중원의 중심이었다. 볼과 피터스는 양 측면에서 안으로 좁혀 들어왔다.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 신발에 석회 가루를 묻히는 정통 윙어는 아니었다. 반면 헌트와 허스트는 최전방의 두 공격수였다. 측면의 폭은 두 풀백 코언과 윌슨이 전진해 일부를 제공했다. 이 전술은 윙어가 끊임없이 크로스를 올리는 방식을 좇지 않고, 중앙을 장악하며 수비 대형을 촘촘히 하는 쪽으로 향했다. 훗날 사람들은 폭이 좁은 4-4-2라고도 하고 4-1-3-2라고도 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나중에 어떤 숫자를 붙이느냐가 아니다. 전통적인 윙어를 빼 버렸다는 사실이다.
뺄셈으로 이기는 전술이었다. 핵심은 새로운 무언가를 보탠 데 있지 않고,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것 하나를 없앤 데 있었다. 바로 윙어였다. 그 시대에는 측면의 선수가 터치라인을 따라 공을 몰고 올라가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거의 공격의 기본이었다. 램지는 하필 그 기본을 없앴다. 대신 중앙에서 더 촘촘한 지배력을 얻고, 수비할 때 더 정돈된 대형을 갖추었다. 그의 승리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자르지 못하던 부품을 잘라 낸 데서 나왔다.
무언가를 빼서 이긴다는 사고방식은 축구사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후대가 혁신으로 떠받드는 많은 전술의 핵심도 더한 데 있지 않고 덜어 낸 데 있다. 모두가 필수라고 여기는 어떤 것이 사실은 버려도 되는 것임을 알아보고, 그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다른 공간을 열어 주는 것이다. 하나의 구축이 발전하는 방식은 흔히 점점 더 많이 쌓아 넣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 한 조각을 누군가 과감히 떼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램지의 성공을 전부 윙어 없는 전형이라는 한 수의 묘책으로 돌리는 것 역시 사후의 정리다. 실제 1966년의 잉글랜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전술만 쓴 것은 아니다. 경기를 치르며 시험하고 조정한 끝에, 토너먼트 단계에 이르러서야 후대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안정되었다. 망설임과 조정으로 가득했던 과정을 한 감독이 처음부터 자신 있게 준비한 비책 하나로 승부를 끝낸 이야기로 만들면 듣기에는 좋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기록이 매끈하게 다듬어 버린 그 골처럼, 실제 과정은 언제나 나중에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훨씬 거칠다.
그렇게 그 대회의 잉글랜드 이야기에는, 불분명한 골에서 깔끔한 ‘윙어 없는 전형’이라는 이름에 이르기까지 같은 힘이 곳곳에서 작용한다. 거친 현실을 매끈한 서사로 빗어 넘기는 힘이다. 이 힘은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기억하기도, 전하기도 쉽게 만든다. 하지만 그만큼 가지런하지 않은 실제 모습을 끊임없이, 소리 없이 잘라 낸다.
그러나 ‘윙어 없는 전형’이라는 깨끗한 이름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던 과정도 덮어 버린다. 훗날의 많은 글은 마치 잉글랜드가 대회 내내 조금도 바뀌지 않는 하나의 포메이션으로 뛰었던 것처럼 쓴다. 그러나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기록의 범위는 훨씬 좁다. 램지는 대회 전에도, 대회 중에도 계속 시험하고 조정했다. 후대에 윙어 없는 팀으로 불릴 모습이 정말 굳어진 것은 토너먼트 단계의 잉글랜드였다. 여러 차례 다듬고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것이 나중에는 간결한 이름 하나에 묶였다. 처음부터 자신 있게 내놓은 묘수였던 것처럼 이야기된 것이다. 이것은 기록이 매끈하게 다듬어 버린 그 골과 사실 같은 일이다. 실제 과정은 언제나 거친데, 사후의 이야기는 늘 그것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한다.
거친 과정을 간결한 이름 하나로 정리하려는 충동은, 불분명한 그 골을 딱 떨어지는 스코어로 기록하려는 충동과 사실 같다. 사람에게는 명확함을 향한 거의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숱한 시행착오와 우회를 거친 준비 과정도 ‘윙어 없는 전형’이라는 말로 압축하면 훨씬 기억하기 쉬워진다. 선 위에 걸려 누구도 확답하지 못하는 순간도 골이라고 판정하면 훨씬 깔끔해진다. 그러나 이 명확함은 나중에 강제로 덧씌운 것이다. 그것이 지워 버리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의 불분명한 주름들, 그리고 종종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주름들이다.
8. 마무리
이 모든 이야기를 한데 모아 보자.
1966년, 축구의 발상지는 안방에서 자신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컵을 차지했다. 후대는 이를 하나의 완성, 축구가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리를 찾은 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완결성은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 발상지의 우승은 숙명이 아니었다. 그 우승은 이루어진 순간부터 끝내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물음을 끌고 다녔다. 선을 넘었는지 알 수 없는 그 공, 대회를 조작했다는 의혹,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개최국의 이점이 그것이다.
이 대회가 남긴 가장 깊은 것은 웸블리의 그 골이 가르쳐 준 사실이다. 경기는 반드시 승패를 가려야 하고, 공 하나는 골로 인정할지 말지 판정해야 한다. 이것은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는 규칙의 철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때로 하필 모호하다. 공은 그 선 위에 걸려 있다. 그런 때도 판정은 내려야 하고 기록은 종결되어야 한다. 잉글랜드는 결국 챔피언이 되었다. 기록의 층위에서는 깔끔하게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 아래의 진실, 공이 선을 넘었는가 하는 물음은 영원히 미결로 남았다. 승패는 판정할 수 있어도 진실은 확정할 수 없다. 그 순간부터 둘은 다시는 한곳에서 만나지 못했다.
사실 이것은 모든 기록의 숙명이다. 우리가 과거에 관해 남기는 모든 기록은, 경기의 스코어든 한 시대의 역사적 정설이든,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했던 어느 순간에 강제로 내린 판정이다. 기록은 깔끔하고 확실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밑에는 흔히 기록보다 훨씬 흐릿한 실제 모습이 눌려 있다. 기록의 명확함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존재한 모호함을 한 획으로 지워 버린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고 나면 기록과 전설이 함께 빚어낸 사람들을 조금 더 헤아리게 된다. 라틴은 억지를 부리다 퇴장당한 아르헨티나의 난폭한 선수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순간의 그는 다급하게 자신을 변호하고 싶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바흐라모프는 잉글랜드를 편든 러시아인 부심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제르바이잔인 한 사람이, 자신도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을지 모르는 판단을 순간적으로 내렸을 뿐이다. 기록과 전설은 살아 있는 사람을 하나의 기호로 납작하게 누른다. 기호가 자리 잡고 나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은 그 뒤에 가려진다.
그러므로 1966년 대회가 후대에 남긴 것은 발상지의 우승컵만이 아니다. 기록과 진실에 관한 하나의 난제도 남겼다. 기록은 사람이 일을 매듭짓기 위해 강제로 내린 판정이며, 진실은 그 판정 아래에 있어 흔히 손이 닿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둘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 따로 구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웸블리의 그 골처럼, 두 사이의 틈을 선명하게 벌려 보여 주는 순간이 늘 있다. 그럴 때에야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를 기억하는 데 기대어 온 그 깨끗한 기록 아래,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주름이 이렇게나 많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 난제는 축구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의지하는 과거에 관한 앎은 거의 모두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고 판정된 기록이다. 어느 기록 아래에, 당시에도 분명히 보지 못했고 나중에는 더더욱 따져 볼 수 없게 된 모호함이 눌려 있지 않겠는가. 축구는 규칙이 유난히 단호하고, 순간들이 유난히 촘촘하며, 논란이 유난히 눈에 띄기 때문에 이 난제를 모두의 눈앞에 확대해 놓을 뿐이다. 누구나 맞닥뜨리지만 좀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는 난제다. 웸블리의 그 골은 축구의 오래된 논쟁거리라기보다, 모든 기록이 함께 지닌 한계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은 어떤 구체적인 미제 하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 한계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 모든 기록이 겉으로 보이는 만큼 든든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끝내 그것을 미결인 채로 놓아두지 못했다. 그래서 기술을 동원한 복원이 나왔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으며, 당사자마저 부인한 스탈린그라드의 전설이 생겨났다. 이런 노력은 영원히 답이 없는 물음을 사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보여 준다. 그러나 잡으려 할수록 손은 닿지 않는다.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남은 영상은 처음부터 모호했다. 누구도 그 모호함을 다그쳐 단호하고 확실한 진실을 끌어낼 수는 없다.
이 미제에 휘말린 두 사람은 또 어떤가. 언어의 벽 앞에서 완장을 내보이며 통역을 요구했지만 얻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주장, 몇 초 만에 내린 판단 하나와 자신은 입 밖에 낸 적도 없는 말 한마디로 그 뒤 반평생 넘게 규정된 부심. 이들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만 모두 이 오래된 논쟁 속 기호 하나로 눌려 버렸다. 기록은 종결되고 전설은 퍼져 나간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을 실제로 살고, 판단하고, 다투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 깨끗한 기록과 떠들썩한 전설에 함께 가려지기 가장 쉽다.
그 공이 정말 선을 넘었는지는 이제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바로 이 불분명함, 판정은 내릴 수 있지만 진실은 확정할 수 없다는 딜레마 때문에 60년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은 이 경기를 두고 다툰다. 그 영상을 다시 꺼내 들며 시작하는 논쟁은 매번 같은 사실을 재확인할 뿐이다. 어떤 일은 기록으로 못 박을 수 있어도 진실은 영원히 확정할 수 없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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