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기적과 야만은 본래 같은 것이다
1962년 브라질의 연속 우승과 산티아고의 난투를 겹쳐 보며 축구의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유하는 뿌리를 묻는다.
이 글의 목차
1. 2연패
1962년, 브라질은 칠레에서 다시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결승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3 대 1로 꺾고 우승을 지켰다.
2연패를 이룬 브라질은 사실상 4년 전의 그 팀이었다. 1958년과 1962년 결승전 선발 명단을 나란히 놓으면 열한 명 가운데 여덟 명이 같다. 질마르, 자우마 산투스, 니우통 산투스, 지투, 가린샤, 디디, 바바, 자갈루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대회 전체를 통틀어 브라질이 기용한 선수는 열두 명뿐이었다. 거의 선발 열한 명에 후보 한 명, 아마리우두를 더한 셈이었다. 여전히 1958년의 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팀이었다.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 우승은 어느 시대에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4년 전 정상에 올랐던 팀이 4년 뒤 대체로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다시 정상에 오르려면 보기 드문 안정성이 필요하다. 브라질이 의지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짠 선수단이 아니라 거듭 실력을 입증한 핵심이었다. 1958년 결승을 뛴 여덟 선수가 1962년 결승에서도 익숙한 자리에 서 있었다. 한 팀이 4년 동안 이처럼 자신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몇몇 천재가 우연히 모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제대로 형태를 갖추고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구조가 아무리 안정되어 있어도 이번 우승은 4년 전과 달랐다. 1958년에는 절정의 기량을 지닌 천재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쳤다. 승리는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1962년에는 전력의 손실과 사나운 적의, 뜻밖의 사고를 온몸으로 버티며 올라왔다. 같은 우승컵을 한 번은 가볍게, 한 번은 무겁게 들어 올린 셈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거운 우승컵이 평소 가려져 있던 축구의 다른 얼굴들까지 함께 비추었다.
어떤 팀이 순풍을 타고 경기를 이겨갈 때 축구는 단순해 보인다. 기술이 더 나은 쪽이 상대 골문에 공을 넣는 경기다. 그러나 1962년처럼 순조롭던 흐름이 깨지고 우연과 적의, 통제 불능의 순간이 잇달아 덮치면, 평소 승리의 후광 아래 숨어 있던 얼굴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축구는 애초에 기술만 겨루는 운동이 아니었다. 운이 섞여 있고 감정이 섞여 있으며, 인간 본성의 그리 보기 좋지 않은 부분들도 섞여 있다. 그것들까지 보아야 비로소 축구의 온전한 모습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1958년과 1962년, 두 대회는 축구의 전혀 다른 모습을 비추었다. 하나는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의 밝음이었다. 천재는 마음껏 재능을 펼치고 승리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다른 하나는 역경 속의 얼룩진 모습이었다. 우연과 적의, 통제 불능의 순간이 꼬리를 물고 찾아왔고 승리는 몇 번이고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이 둘을 합쳐야 이 운동의 얼굴이 온전해진다. 같은 선수들이 4년 사이에 축구의 가장 밝은 면과 가장 복잡한 면을 모두 연기해 보였다.
이번 우승은 그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1958년의 우승은 너무 오래 기다린 나라가 한 무리의 천재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 줄기 영감에 힘입어 거머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뜻을 이룬 듯한 환한 기운이 있었다. 반면 1962년의 우승은 훨씬 무거웠고 훨씬 복잡했다. 브라질은 대회 도중 가장 눈부신 별을 잃었고, 적의가 가득한 경기장을 헤치며 싸워 올라왔다. 가장 빛났던 선수는 한 경기 안에서 전 세계가 숨죽여 바라볼 기적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거친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훗날 이 월드컵은 거의 정반대인 두 가지 일로 기억되었다. 하나는 펠레가 다친 뒤 거의 혼자 힘으로 브라질을 결승까지 짊어지고 간 가린샤의 천재성이었다. 다른 하나는 ‘산티아고의 전투’라 불린 칠레와 이탈리아의 경기,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경기 중 하나였다. 한쪽은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게 했고, 다른 쪽은 너무 추해 차마 바라보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으레 이 둘을 따로 이야기한다. 앞의 것이 축구의 본질이고 뒤의 것은 축구의 치욕이라는 듯이. 그러나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펠레의 부상
이야기의 전환점은 일찍 찾아왔다.
펠레의 출발은 더없이 좋았다. 멕시코를 2 대 0으로 꺾은 첫 경기에서 자갈루의 선제골을 도왔고, 두 번째 골은 직접 넣었다. 모든 것이 1958년 그 소년의 활약을 그대로 잇는 듯했다. 다만 이번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축구 최고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펠레는 부상을 안고 온 것이 아니라 최상의 상태로 왔다. 1962년의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1958년의 소년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였다. 브라질의 2연패를 위한 가장 확실한 패는 당연히 그였을 것이다. 아마 모든 준비도 그가 대회 처음부터 끝까지 뛴다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경기, 체코슬로바키아와 0 대 0으로 비긴 경기에서 다쳤다. FIFA 공식 기록과 로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그 경기에서 허벅지 근육이 늘어나는 부상을 입었고, 그 뒤로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훗날 전해진 이야기 중에는 사타구니 부상이었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가장 신뢰할 만한 설명은 체코슬로바키아와 치른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허벅지 근육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느 부위였든 핵심 사실은 같다. 펠레의 그 월드컵은 조별리그에서 끝났다.
우승을 지키려던 팀으로서는 대회를 시작하자마자 비장의 패를 빼앗긴 것과 다름없었다. 최고의 스타를 중심에 놓고 온 힘을 기울여 세운 계획이 두 번째 경기에서 근육 하나가 늘어나는 바람에 절반 넘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 근육을 언제 다칠지, 다치기는 할지 자체가 누구의 계획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한 팀도 하늘에서 떨어지듯 닥치는 이런 우연까지 막을 수는 없다. 우연이 덮친 뒤 자기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지, 어느 길로 더 나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2연패에 도전하는 팀이 조별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를 잃었다면 재앙이라고 해야 마땅했다. 브라질은 우선 조별리그부터 통과해야 했다. 마지막 스페인전에서는 한때 뒤지고 있었다. 펠레 대신 선발로 나선 아마리우두가 마지막 20분 사이에 두 골을 잇달아 넣어 2 대 1로 뒤집은 덕분에 비로소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그렇게 아마리우두는 공격진에서 펠레가 맡던 자리를 대신했다. 원래라면 주인공이 아니었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부상 때문에 조명 한가운데로 밀려 나왔다.
아마리우두가 그 자리를 맡는 순간, 브라질은 실은 몹시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다. 큰 대회 한복판에서 급히 자기들의 경기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다. 펠레가 빠졌으니 공격의 연결도, 움직임도, 마무리도 새로 호흡을 맞춰야 했다. 그런데 이 팀은 기어이 그 호흡을 맞추었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오히려 더 안정되었다. 비장의 패를 잃은 계획은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존 방식이 자라났다.
펠레의 부상은 대회 전체를 관통하는 숨은 줄거리를 만들어놓았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의 우승 각본이 두 번째 경기에서 우연 한 번에 반쯤 찢겼고, 팀은 그 자리에서 각본을 다시 써야 했다. 결국 2연패는 처음의 계획을 끝까지 수행한 결과가 아니었다. 계획이 흐트러진 뒤 그때그때 엮어낸 결과였다. 본래 축구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좋은 각본도 누구도 미리 써놓을 수 없는 뜻밖의 일들이 고쳐 쓰도록 내맡겨야 한다.
그 숨은 이야기에서 가장 곱씹을 만한 점은, 결국 그 일이 브라질을 무너뜨리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펠레가 다치지 않았다면 아마리우두는 대회 내내 벤치에만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린샤를 전설로 만든 두 경기의 활약도,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그 극단까지 내몰리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한 사람을 쓰러뜨린 우연이 돌아서서는 다른 사람들을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우연은 빼앗기만 하지 않는다. 주기도 한다. 다만 누구에게 주고 누구에게서 빼앗을지 정할 때 그 누구의 계획도 물어보지 않는다.
1962년 브라질의 행운은 우연을 만나지 않은 데 있지 않았다. 우연을 만나고도 받아낼 수 있었던 데 있었다. 뿌리가 얕은 팀에 똑같은 부상이 닥쳤다면 참패의 시작이 되었을 수 있다. 브라질은 아마리우두와 가린샤를 통해 그 충격을 조금씩 풀어냈다. 우연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떨어지지만, 받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팀마다 크게 다르다. 바로 그 받아내는 능력이 성숙하게 구축된 팀과 급히 모아놓은 스타 군단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다.
여기에는 뒤에서 거듭 만나게 될 뜻이 벌써 들어 있다. 팀의 가장 좋은 선수가 쓰러졌지만 팀은 함께 쓰러지지 않았다. 사람을 바꾸고 이기는 방식을 바꾸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3. 홀로 팀을 짊어진 가린샤
펠레가 빠진 뒤 이 팀을 짊어진 선수는 가린샤였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브라질은 3 대 1로 이겼고, 가린샤 혼자 두 골을 넣었다. FIFA의 회고에 따르면 그 경기는 가린샤가 가장 눈부신 기량을 발휘한, 거장의 솜씨를 보여준 경기였다. 칠레와의 준결승에서도 가린샤는 두 골을 터뜨렸고 브라질은 4 대 2로 승리했다. 토너먼트 두 경기에서 모두 네 골. 그는 그 휜 두 다리로 브라질을 한 걸음씩 결승에 데려갔다.
그 두 경기의 가린샤 앞에서는 어떤 수비진도 속수무책이었다. FIFA의 회고는 잉글랜드전을 그의 기량이 가장 눈부시게 빛난 경기로 꼽는다. 그는 오른쪽에서 몇 번이고 혼자 돌파해 들어갔다. 수비수들을 이리저리 비틀거리게 한 뒤 직접 골문을 뚫거나 가장 치명적인 곳으로 공을 보냈다. 다리의 장애 때문에 일찌감치 탈락했어야 할 사람이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가장 날카롭고 가장 막기 어려운 선수가 되었다.
칠레와의 준결승에서 가린샤는 적의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도 또 두 골을 넣었다. 그 압박을 견디면서 토너먼트 두 경기 연속으로 혼자 두 골씩 넣고, 디펜딩 챔피언을 어깨에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가는 활약은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힌다. 훗날 사람들이 그를 두고 혼자 힘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뤘다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말에 담긴 경탄은 진짜였다. 다만 그 말은 결국 다른 이들의 똑같이 결정적인 공헌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공을 돌려준다고 해서 가린샤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한 팀에 빛을 내는 곳이 여럿일 수는 있어도 가장 밝은 그 빛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는 없다. 바바와 지투가 얼마간 빈자리를 채울 수는 있지만, 오른쪽에서 수비진 전체를 무력하게 만드는 가린샤의 그 무엇까지 채워줄 수는 없었다. 어떤 전술로도 계산할 수 없고 훈련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것, 그 휜 다리를 가진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었다. 펠레가 빠져도 버틸 수 있는 팀이라 해도 가린샤 같은 선수마저 하나도 없었다면 아마 결승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은 대체할 수 없고 체계가 모든 것을 해줄 수도 없다. 둘 다 있어야 한다.
이 대목은 개인과 체계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체계에는 개인이 필요하다. 체계만으로는 가장 빛나는 그 영감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도 체계가 필요하다. 아무리 밝은 영감도 누군가 호응하고 누군가 빈자리를 메워주어야 쓸모없는 독무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삼켜버릴 수 없다. 진정으로 강한 팀은 둘 중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팀이 아니라 둘을 알맞게 갖춘 팀이다.
1962년의 브라질에는 마침 둘 다 있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린샤의 영감이 있었고, 펠레를 잃은 뒤에도 빠르게 재편할 수 있는 구조가 있었다. 어느 한쪽만 빠졌어도 아마 우승컵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을 가린샤 한 사람의 공으로만 돌리거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체계의 공으로만 돌려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 이유다. 진짜 답은 언제나 둘 사이에 있다. 데이터베이스마다 정확한 득점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디지털 기록이 없던 시대에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점수와 득점자, 그리고 가린샤가 경기를 지배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바로 그 두 경기의 활약에서 널리 퍼진 말이 나왔다. 그 대회의 우승은 가린샤 혼자 이뤄냈다는 말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지나치다. 그 말이 포착한 진실도 있다. 펠레가 다친 뒤 가린샤는 분명 가장 돋보인 선수였고, 결승으로 가는 토너먼트 경기들에서 네 골을 넣었다. 그러나 브라질의 우승이 그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조별리그 스페인전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을 통과시킨 것은 아마리우두였다. 잉글랜드전과 칠레전, 체코슬로바키아전에서 모두 득점한 선수는 바바였다. 결승에서 승부를 뒤집는 중요한 골을 넣은 선수는 지투였다. 그 낭만적인 표현은 가린샤가 중심이었다는 점은 잡아냈다. 하지만 승패를 실제로 결정한 공헌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있었다는 점까지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것을 분명히 보려는 까닭은 가린샤를 낮추려는 데 있지 않다. 이 팀의 진짜 강점을 정확히 짚으려는 것이다. 브라질이 강했던 것은 가린샤 한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 빠져도 나설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펠레가 쓰러지면 아마리우두가 있었다. 가린샤가 철저히 봉쇄되면 바바가 있었고 지투가 있었다. 한 사람만 빛나는 팀은 약하다. 그 빛이 꺼지면 온 팀이 어두워진다. 1962년의 브라질은 여러 곳에서 빛이 나는 팀이었다. 펠레를 잃고도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이야기는 4년 전의 그 뜻과 이어진다. 한 팀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펠레든 가린샤든,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가린샤가 아무리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인다 해도 그의 크로스를 골로 바꾸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가 꼼짝 못 하게 묶였을 때 대신 나설 사람도 있어야 한다. 개인은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팀이 어느 한 사람의 일인극이었던 적도 없다. 이 팀은 펠레를 잃고도 버틸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린샤 한 사람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되는 팀이기도 했다.
4. 한 사람의 두 얼굴
그런데 바로 그 가린샤, 브라질을 결승까지 짊어지고 간 그 사람이 칠레와의 준결승에서 또 다른 장면을 남겼다.
먼저 두 골을 넣었다. 천재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갈 무렵, 대략 83분에 퇴장을 당했다. 널리 알려진 설명으로는 상대에게 거듭 반칙을 당한 끝에 칠레 선수 엘라디오 로하스를 무릎으로 들이받았다고 한다. 보복 행동이었다. 조금 전까지 드리블로 경기장 전체를 감탄하게 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거친 행동 하나로 스스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같은 경기, 같은 사람, 두 얼굴. 조금 전까지는 기적이었고 그다음에는 야만이었다.
이 두 얼굴이 한 사람에게서, 한 경기 안에서 드러났다는 사실은 불편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둘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손쉬운 설명은 둘을 갈라놓는 것이다. 기적을 만들어낸 쪽이 진짜 가린샤이고, 퇴장을 당한 쪽은 잠시 정신을 놓아 평소와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나눌 수 없는 까닭은 두 얼굴이 같은 밑천을 쓰기 때문이다. 상대의 추격과 포위, 길목을 막는 수비를 뚫고 가린샤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힘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담력과 혈기였다. 거듭 걷어차여 쓰러지다가 마침내 무릎으로 되갚게 한 힘 역시 바로 그 담력과 혈기였다. 무언가를 창조할 때는 천재성이 되고 통제를 잃을 때는 야만이 되지만, 처음부터 같은 힘이다. 막다른 곳에서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는 가린샤를 원하면서 동시에 언제나 온순하고 결코 화내지 않는 가린샤까지 바라기는 어렵다. 이 둘은 본래 한 사람이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가린샤의 그 무릎 공격을 감싸는 것은 아니다. 반칙은 반칙이고, 벌을 받을 일은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해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반으로 갈라 한쪽은 모셔놓고 한쪽은 욕하는 대신, 그 사람 전체를 보는 일이다. 가린샤는 아름다움만 만들어내는 신도 아니었고, 말썽만 일으키는 무모한 사내도 아니었다. 엄청난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보통 사람의 성미와 약점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를 그렇게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편이 완벽한 전설로 떠받드는 것보다 훨씬 진실에 가깝다. 그를 더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 온전함을, 훗날 천재를 다룬 많은 이야기는 좀처럼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천재를 흠 없는 우상으로 빚고 싶어 한다. 성미와 약점, 통제를 잃은 순간은 모조리 지우고 빛나는 면만 남기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지워지는 것들이야말로 천재를 조각상이 아니라 바로 그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 경우가 많다. 가린샤의 위대함에는 애초부터 불완전함이 들어 있었다. 둘은 떼어낼 수 없다.
이 점을 끝까지 생각하고 나면 경기장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모습을 볼 때도 조금은 더 헤아리게 된다. 격렬한 대결과 통제를 잃는 순간에는 분명 추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과 같은 흙에서 자라났다. 아름다운 꽃만 피고 잡초는 한 포기도 나지 않는 땅은 없다.
사람들은 가린샤를 이야기할 때 늘 앞의 얼굴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곳을 누비듯 공을 몰던 천재, 기형인 다리로 가장 자유로운 축구를 하던 사람. 그 모습은 진짜다. 하지만 다른 모습도 똑같이 진짜다. 상대에게 거듭 걷어차이다가 화가 나서 무릎으로 갚아주고 퇴장을 당한 사람. 그를 순수한 예술가로만 이야기하면 절반을 놓친다. 거친 선수로만 이야기해도 나머지 절반을 놓친다. 그는 감탄을 자아내는 영감과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불같은 성미를 함께 지닌 온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별개의 방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토록 기적 같은 플레이를 하게 한 것과 그토록 거친 행동을 하게 한 것은 같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경기장에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격렬함이다. 승패에 무심하고 몸이 부딪쳐도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가린샤의 드리블도 가린샤의 반칙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힘이 좋은 쪽으로 가면 천재성이 되고 나쁜 쪽으로 가면 야만이 된다. 뿌리는 하나다.
5. 산티아고의 전투
같은 일을 한 경기 전체로 확대해 보여준 것이 산티아고의 전투다.
1962년 6월 2일,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에서 칠레와 이탈리아가 맞붙었다. 훗날 한 영국 텔레비전 해설자는 자신이 본 축구 경기 중 가장 어리석고 끔찍하며, 가장 역겹고 수치스러운 경기였다고 평했다. 주심은 잉글랜드의 켄 애스턴이었다.
시작부터 일촉즉발이었다. 칠레는 얼마 전 대지진을 겪었고, 온 나라의 힘을 모아 이 월드컵을 열고 있었다. 세계를 향해 자신을 입증할 기회로 여겼다. 이탈리아는 강한 팀과 오만함을 함께 가져왔다. 이 두 감정이 경기장에서 부딪치자 이성은 곧 주먹에 자리를 내주었다.
경기장에서 벌어진 일들은 분명하다. 관중은 침 뱉기와 두 발을 함께 뻗는 태클, 주먹질과 난투, 경찰의 진입을 보았다. 이탈리아의 페리니는 퇴장 명령을 받고도 나가기를 거부해 결국 경찰이 붙들고 끌어냈다. 칠레의 레오넬 산체스는 주먹으로 이탈리아 선수 마스키오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그러나 주심도 부심도 그 주먹을 보지 못했다. 뒤이어 이탈리아의 마리오 다비드가 산체스를 걷어차 퇴장을 당했다. 칠레는 결국 2 대 0으로 이겼다.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무질서했던 경기 중 하나였다.
여기서 ‘가장 폭력적인 경기’라고 하지 않고 ‘가장 폭력적인 경기 중 하나’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 경기가 정말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었는지 정확하게 비교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몇몇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겁다. 절대적인 단정을 더해 부풀릴 필요가 없다. 코뼈를 부러뜨린 훅 한 방, 두 번의 퇴장, 경찰이 붙들어 끌어내야 했던 선수 한 명, 거듭 경기장에 들어와야 했던 경찰들. 이것만 놓고 보아도 그 경기가 얼마나 무질서했는지 훤히 드러난다.
그 야만이 느닷없이 솟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 뒤에는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있었다. 경기 전 이탈리아 언론은 날 선 글로 칠레를 모욕하며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조차 없는 나라가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칠레 언론 역시 민족주의적이고 가차 없는 말로 맞받아쳤다. 공을 차기도 전에 양국 신문이 불을 붙여, 스포츠 경기를 국가의 존엄이 걸린 대결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스물두 명이 실제로 그라운드에 섰을 때 그들의 발밑에 놓인 것은 더 이상 공 하나가 아니었다. 언론이 두 나라 사이에 부추겨놓은 적의 전부가 거기에 실려 있었다.
그러므로 그 경기의 야만을 어느 한쪽 선수들이 원래 거친 탓이라고 간단히 설명해서는 안 된다. 경기장 밖의 민족 감정이 거듭 기름을 부어 마침내 경기장 안에서 타오른 큰불이었다. 축구 한 경기를 국가의 존엄이라는 그릇에 담으면 그것은 더 이상 축구 한 경기로만 남지 않는다. 나라의 자부심과 치욕을 얼마나 담았느냐에 따라, 경기장 안에서 그만큼의 사나운 적의가 타오를 수 있다.
그것이 축구 한 경기를 국가의 존엄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치르는 대가다. 경기 자체는 스물두 명이 공 하나를 다투는 일일 뿐, 그토록 큰 증오를 품고 있지 않다. 증오는 밖에서 쏟아부어진다. 언론이 기사 하나하나로 쌓아 올리고, 두 나라가 서로에게 쌓아둔 감정이 그곳에서 출구를 찾는다. 그 모든 무게가 90분에 얹히면 경기장은 불붙은 화약통이 된다. 선수들은 그보다 큰 대결을 대신해 그라운드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전투를 야만인들의 난동이라고 욕하는 것만으로는 핵심을 보지 못한다. 그 폭력에는 물론 현장에서 통제를 잃은 선수들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불을 붙인 도화선은 경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바깥의 사람들이 깔아놓았다. 언론은 한 경기를 민족의 존엄이 걸린 전쟁으로 부풀렸고, 팬들은 한 나라 전체의 감정을 스물두 명에게 얹었다. 그 모든 것이 그라운드에서 터져 나오자 사람들은 정작 주먹을 휘두른 몇몇 선수만 바라보았다. 정말 보아야 할 것은 경기장 밖에서 안으로 타들어 온 그 도화선이다.
그 도화선은 축구의 역사에서 몇 번이고 다시 불이 붙었다. 축구 한 경기를 나라와 나라의 대결로 격상하는 일은 이 운동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위험한 유혹이다. 한 경기에 스포츠를 훨씬 넘어서는 무게를 싣고 수억 명의 마음을 애태우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게는 언제든 그라운드의 폭력으로, 관중석의 충돌로 바뀔 수 있다. 산티아고의 전투는 그 유혹이 낳은 유난히 쓰라린 결과 하나였다. 축구가 다른 무언가를 대신하게 되면 더 이상 축구가 아니게 될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답답한 점은 축구를 국가 간 전쟁으로 끌어올리려는 이 충동을 거의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있고 국가 사이의 겨룸이 있는 한, 월드컵 같은 무대에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실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축구 한 경기를 그저 한 경기로 보지 못한다. 경기에서 자기 나라를 보고, 존엄을 보고, 승패 뒤에 있는 더 큰 것들을 보려 한다. 이 덧붙은 무게가 월드컵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이면서, 자칫하면 사나운 적의를 불태우게 되는 근원이기도 하다.
6. 아름다움과 폭력은 한 뿌리에서 나온다
가린샤의 그 경기와 산티아고의 그 경기는 사실 같은 일의 두 면을 말해준다.
축구는 늘 스스로를 아름다운 예술, 순수한 즐거움으로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포르투갈어에는 ‘아름다운 축구’라는 말이 있다. 바로 이런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을 담은 말이다. 산티아고의 전투는 그 동경의 반대편이었다. 축구의 추하고 폭력적이며 차마 보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축구의 본질로, 폭력을 축구의 타락으로 여긴다. 폭력은 애초에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우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본능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은 순수하다고 믿고 싶다. 추한 모습은 우연히 묻은 얼룩일 뿐이니 닦아내면 된다고 믿고 싶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처럼 말끔하지 않다.
이 두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다.
축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과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그 안에 쏟아붓는 격렬함이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 불붙은 열정, 빠른 속도로 몸이 충돌하는 긴장, 놀이 하나를 무엇보다 중하게 여기는 진지함. 바로 그것들이 가린샤의 기적을 떠받쳤고, 바로 그것들이 산티아고의 난투를 불러왔다. 아름다움과 폭력은 그 격렬함이 두 방향으로 뻗어나간 결과다. 서로 다른 두 일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의 두 면이다.
무엇이 축구 경기를 볼 만하게 만드는지 생각해보자. 죽을힘을 다한 질주, 상대에게 한 치도 내어주지 않으려는 집요함, 승패를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몰입이다. 온몸과 온 마음을 거는 그 격렬함이 있기에 소름 돋는 순간들도 생긴다. 그러나 바로 그 격렬함이 통제를 잃고 선을 넘으면 흉포한 태클이 되고, 내뻗는 주먹이 되고, 산티아고 같은 난투가 된다. 아름다움과 폭력은 같은 우물의 물을 마신다.
그러므로 축구의 폭력은 이 운동에서 영원히 말끔히 지워지지 않을 잔여항이다. 비난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으며, 온갖 수단을 써서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축구를 감동적으로 만드는 그 격렬함을 그대로 두면서 폭력만 뿌리째 뽑을 수는 없다. 그 격렬함이 아름다움의 원천인 동시에 폭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앞의 것을 원한다면 뒤의 것이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완전히 길들여져 더 이상 사나운 기운이 조금도 타오르지 않는 운동은, 아마 사람의 마음에도 불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이 있다. 우리가 축구에서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 격렬함, 앞뒤를 재지 않는 모습,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승부욕을 풀어놓는 순간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축구가 언제나 깨끗하고, 언제나 문명적이며, 결코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두 바람에는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불의 빛과 온기는 원하면서 그 불이 누구에게도 화상을 입히지 않기를 바란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불 주위에 화덕을 둘러 다치는 사람을 줄이는 것뿐이다. 불 자체를 꺼버릴 수는 없고, 꺼서도 안 된다.
축구가 백 년 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것은 그 문명성 때문이 아니라 그 진실함 때문이었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승부욕과 가장 원초적인 열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펼쳐놓는다. 이기면 미친 듯 기뻐하고, 지면 통곡하며, 격해지면 손이 나가기도 한다. 꾸밈없는 그 진실함 덕분에 축구는 훨씬 점잖은 많은 것들보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이 진실함과 이따금 드러내는 야만은 같은 것의 양 끝이다. 그 진실함을 원한다면 그만큼의 야만이 나타날 위험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면 축구 폭력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조금 더 복잡하게 다가온다. 비난할 일은 당연히 비난해야 한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사람을 때리는 일이고,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다. 동시에 이 운동에 그 감동적인 격렬함이 남아 있는 한 이런 통제 상실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규탄은 그 일을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애지는 못한다. 폭력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를 맑은 눈으로 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맑게 보아야 축구를 향한 사랑도 일방적인 소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빛나는 면만 사랑하는 일이 아니다. 그림자와 위험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다. 축구의 아름다움과 폭력은 본래 한 몸이다. 축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 온전한 한 몸이지, 보기 싫은 부분을 모조리 지워내고 미화한 모습이 아니다.
준결승에서 드러난 가린샤의 두 얼굴이 이 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같은 힘으로 두 골을 넣었고, 그 무릎 공격도 같은 힘에서 나왔다. 앞의 것만 남기고 뒤의 것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한 뿌리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폭력을 불러올 수 있는 격렬함을 남김없이 빼낸 축구라면, 아마 감동적인 플레이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폭력은 아름다움이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다. 둘은 함께 오며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운동이 끝내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잔여항이다. 축구의 아름다움을 하늘 높이 떠받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같은 뿌리에서 난 폭력만 말끔하게 도려낼 수는 없다. 그 폭력은 바깥에서 섞여 들어온 더러운 이물질이 아니다. 그 격렬함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이다.
7. 규칙이 끝내 따라잡지 못하는 것
떨쳐낼 수 없는 이 폭력 앞에서 축구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1962년의 경기장은 바로 그 규칙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지를 드러냈다. 산체스의 주먹을 심판이 보지 못했기에 아무 처벌도 없었다. 남의 코뼈를 부러뜨리고도 그는 무사히 그라운드에 남았다. 페리니는 퇴장 명령을 받고도 버티며 나가지 않아 경찰이 끌어내야 했다. 가린샤는 준결승에서 분명 퇴장을 당했는데도 결국 결승전에 뛰었다.
가린샤가 왜 결승에 출전할 수 있었는지를 놓고 훗날의 설명들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FIFA의 회고는 칠레 안에서 정치적 색채를 띤 공개적인 지지 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칠레 대통령 알레산드리까지 나서서 그가 뛰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다른 설명으로는 이 사안이 FIFA 징계위원회에 넘겨졌고, 당시 주심이 반칙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부심의 말을 듣고 판정했다는 점이 가린샤가 징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할 역사적 사실도 있다. 1962년에는 퇴장이 곧 자동으로 한 경기 출전 정지를 뜻하지 않았다. 징계 절차를 거쳐 결정해야 했다. 결과는 분명하다. 그는 결승에 뛰었다. 하지만 그를 결승에 나서게 한 절차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뒤에 전해진 설명마다 다르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경로를 거쳤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퇴장을 당한 선수를 다시 결승 무대에 세운 것은 축구 규칙 자체의 논리가 아니라 규칙 바깥의 힘이었다. 한 나라 대통령의 뜻, 대중의 지지, 사정을 헤아리고 조정할 여지가 있는 절차였다. 여기서는 경기장 밖의 손이 규칙을 슬쩍 움직였다.
이것은 규칙이 아무 쓸모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규칙이 없었다면 경기장은 진작에 순전한 검투장이 되었을 것이다. 규칙이 대부분의 무질서를 막아낸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규칙의 공이다. 문제는 규칙이 결코 완전히 빈틈없는 체계일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실행은 사람이 해야 하고 사람은 놓치는 것이 있다. 판정은 절차에 의지해야 하고 절차는 압력에 흔들릴 수 있다. 종이 위에서는 중립적이고 명료하다. 그러나 열정과 이해관계가 뒤섞인 현실에 내려서는 순간, 경기장 밖의 힘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어김없이 몇 군데 드러난다.
여기에는 규칙의 근본적인 어려움이 숨어 있다. 규칙은 중립적이고 명료하며 한번 정하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 들면 틈새로 바람이 샌다. 주먹 한 방을 놓치기도 하고,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을 막지 못하기도 한다. 정치와 여론의 압력에 밀려 이미 내려진 퇴장 판정에 뒤따를 결과마저 없애버리기도 한다. 경기장의 질서는 애초에 자족적이고 빈틈없는 체계가 아니다. 언제나 틈이 있다. 경기장 밖의 힘과 민족 감정, 정치적 의지가 바로 그 틈으로 스며든다.
1962년과 같은 혼란 속에서 규칙은 자신에게 새로운 한 조각을 덧대려 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의 전투를 맡았던 켄 애스턴은 훗날 이런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경기들에서 차츰 하나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1962년의 그 경기, 그리고 1966년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 등이 그 바탕이었다.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로 경고와 퇴장을 명확히 알리자는 생각이었다. 카드 제도는 규칙이 그 혼란 속에서 깎아내어 만들어낸 새로운 조각이었다.
다만 카드 제도의 발명을 산티아고의 그 한 경기 덕으로 모두 돌리는 것은 과장이다. 애스턴이 폭력적이고 판정하기 어려운 여러 경기에서 쌓은 경험이 함께 그 발상을 낳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1962년의 경기는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지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드 제도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끝내 무엇을 가두지 못하느냐다. 카드 덕분에 퇴장과 경고는 명확해졌다. 그렇다고 카드 두 장이 생겼다는 이유로 경기장의 반칙과 사나운 적의, 눈을 속이는 잔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습만 바꾸어 계속 남아 있을 뿐이다. 규칙도 계속 뒤쫓을 수밖에 없다. 카드 뒤에는 더 세밀한 조항을, 더 새로운 수단을 덧붙인다. 한 차례의 구축으로 옛 틈을 메우면 새로운 틈을 만나고, 그것이 다음 구축을 부른다. 이 추격에는 끝이 없다.
끝없는 추격은 사실 규칙이라는 것의 숙명이다. 모든 규칙은 앞선 규칙이 막지 못한 틈을 막으려고 세워진다. 그리고 새로 세운 모든 규칙은 옛 틈을 막는 동시에 새 틈을 남긴다. 한 부분을 깎아내고 새 조각을 덧댄다. 덧댄 조각에 다시 금이 가면 또 깎아내고 또 메운다. 처음의 몇 조항에서 오늘날 두꺼운 책 한 권에 이르기까지, 축구의 규칙은 이 끝없는 길을 걸어왔다. 갈수록 촘촘해지지만 가장 근본적인 틈만은 끝내 닫지 못한다. 그 틈이 축구의 생명줄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규칙이 축구를 완전히 말끔하게 통제하리라 기대하기보다는, 이 깎아내기와 메우기의 순환은 본래 멈추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덜 영리해서 멈추지 않는 것도 아니고 조항이 덜 세밀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규칙이 상대해야 하는 것, 아름다움과 폭력을 함께 낳는 그 격렬함이 애초에 규칙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칙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상대하며 파괴력을 가능한 한 작게 억제하는 것이다. 완전히 뿌리 뽑는 일은 영원히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 덧댄 조각 역시 완전히 닫히지 않는 또 하나의 구축일 뿐이다. 카드는 경고와 퇴장을 조금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축구장의 폭력을 정말로 가두지는 못했고, 영원히 그럴 수도 없다. 그 폭력은 축구가 살아가는 힘인 격렬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 격렬함을 규칙으로 없앨 수는 없다. 없애면 축구 자체도 없어진다. 그래서 규칙은 몇 번이고 뒤쫓을 수밖에 없다. 새 조각을 깎아 만들고, 아직 새는 곳이 있음을 발견하면, 더 새로운 조각을 또 깎아 만든다. 규칙은 그것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그것은 이 운동의 생명줄이 드리우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8. 맺으며
이제 이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아보자.
1962년 브라질은 2연패를 이루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구축된 팀의 회복력을 알 수 있다. 가장 좋은 선수를 잃고도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이기는 방식으로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어느 한 사람에게도 팀 전체가 묶여 있지 않다는 증거다.
이런 회복력은 성숙한 구축에서만 나온다. 급히 짜 맞춘 팀은 핵심 선수를 잃으면 흔히 와해된다. 반면 제대로 형태를 갖춘 구조는 그런 충격을 흡수하고 스스로 재편해 계속 작동할 수 있다. 1962년 브라질이 보여준 것은 바로 뒤의 모습이었다. 브라질은 펠레를 잃고도 버틸 수 있었다. 이미 펠레 한 사람을 넘어선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복력에도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 구축된 팀은 선수 한 사람의 이탈은 견딜 수 있어도, 축구를 때로는 고양하고 때로는 통제 불능으로 몰아가는 격렬함까지 감당하지는 못한다. 펠레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는 있다. 하지만 가린샤의 기적을 원하면서 가린샤의 불같은 성미는 거부할 수 없다. 갈수록 세밀한 규칙을 세울 수는 있어도 아름다움과 한 뿌리인 폭력을 완전히 가둘 수는 없다. 회복력은 사람의 교체는 감당한다. 이 운동의 속 깊은 곳에 있는, 끝내 아물지 않는 틈까지 다스리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1962년 대회는 두 가지를 뚜렷이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성숙하게 구축된 팀의 회복력이다. 우연을 버티고 전력 손실을 견디며 비장의 패를 잃고도 우승할 수 있는 힘이다. 다른 하나는 그 회복력으로도 받아내지 못하는 잔여항이다. 축구를 때로 아름답게, 때로 폭력적으로 만드는 격렬함이며, 규칙이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는 틈이다. 앞의 것은 구조가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뒤의 것은 아무리 강한 구조에도 끝내 가두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둘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온전한 축구가 아니다. 회복력만 있고 닫히지 않는 틈이 없다면 축구는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차가운 기계가 된다. 볼 만한 것도 사라진다. 틈이 낳는 혼란만 있고 그것을 받아줄 회복력이 없다면 축구는 수습할 수 없는 조각들로 산산이 흩어진다. 이 둘이 서로를 받쳐주기에 이 운동은 중심을 지키면서도 언제나 뜻밖의 일이 일어날 여지를 남긴다. 그렇다고 이 우승을 가볍게 얻은 것은 아니었다. 민족 감정이 불붙인 적의 속에서, 기적 같은 플레이를 펼치기도 하고 퇴장을 당하기도 하는 천재에게 기대어 힘겹게 따낸 우승이었다.
이 대회가 가장 깊이 남긴 것은 우승컵이 아니다. 축구의 두 얼굴을 모든 사람 앞에 동시에 펼쳐놓았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가린샤의 드리블, 아름다움이다. 다른 쪽은 산티아고의 난투, 폭력이다. 사람들은 늘 앞의 것만 원하고 뒤의 것은 없앨 수 있는 우발적 사고로 여기려 한다. 그러나 두 얼굴은 같은 격렬함이 향하는 두 방향이며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떠날 수 없다. 아름다움만 있고 폭력은 없는 축구를 만들 수는 없다. 천재성만 있고 불같은 성미는 없는 가린샤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 앞의 것을 원하면 뒤의 것도 받아야 하고, 뒤의 것도 앞의 것과 이어져 있다. 이 거래는 축구가 태어난 날부터 취소 불가였다.
규칙은 그 폭력을 가두려 한다. 그래서 카드가 생겼고, 갈수록 세밀한 조항이 하나씩 더해졌다. 분명 효과는 있다. 그러나 규칙은 그것을 끝내 완전히 가두지 못한다. 가두려면 먼저 축구를 축구답게 만드는 격렬함을 모조리 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규칙이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규칙은 영원히 뒤쫓고 영원히 깎아내며, 마지막 한 걸음을 영원히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 끝내 남는 그 한 걸음은 규칙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축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가린샤를 두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대개 드리블과 기적, 휜 두 다리로 펼친 자유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 무릎 공격도 했고 퇴장도 당했다. 가장 밝은 영감과 통제를 잃을 수 있는 불같은 성미를 함께 지닌 온전한 사람이었다. 이후의 삶에도 숱한 굴곡이 있었지만 그것은 뒷이야기다. 여기서는 1962년 브라질을 결승까지 짊어지고 가면서 같은 경기장에서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 그를 기억하면 된다. 살아 숨 쉬며, 어느 한 면으로도 단순화되기를 거부하는 한 사람을.
그 격렬함이 반드시 아름다움으로 향한다고 정해놓은 사람은 없다. 반드시 폭력으로 향한다고 정해놓은 사람도 없다. 그것이 드러나기도 전에 어느 한쪽으로만 가도록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격렬함은 흔히 두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 기적과 야만이 때로는 한 사람에게서, 한 경기에서, 같은 힘으로 나온다. 바로 이 알 수 없음, 아름다움과 폭력이 언제나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딜레마 때문에 우리는 경기마다 마음을 졸이면서도 축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규칙은 거듭 깎아내고 격렬함은 거듭 솟구친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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