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
가장 완벽했던 팀과 끝내 가둘 수 없었던 한 경기
1954년 헝가리 황금팀과 ‘베른의 기적’을 통해 최강이라는 판단과 실제 우승 사이에 남는 우연의 간극을 들여다본다.
이 글의 목차
1. 완벽에 가장 가까웠던 팀
1953년 11월 25일, 런던 웸블리. 잉글랜드는 안방에서 브리튼 제도 밖의 팀에 진 적이 없었다. 수십 년을 지켜온 기록이었다. 그날 오후, 헝가리는 6 대 3이라는 스코어로 그 기록을 산산조각 냈다. 경기 시작 약 90초 만에 히데그쿠티가 첫 골을 넣었다. 경기가 끝났을 때 그의 득점은 세 골, 푸스카스의 득점은 두 골이었다. 사실 6 대 3이라는 스코어조차 홈팀의 참상을 얼마간 가려주고 있었다. 잉글랜드가 그토록 자랑하던 축구는 이 동유럽 팀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반년 뒤 잉글랜드가 부다페스트를 찾았을 때, 헝가리는 다시 7 대 1로 이겼다. 지금까지도 잉글랜드의 역대 최다 점수 차 패배로 남아 있는 경기다. 이 두 번째 참패가 벌어질 무렵, 헝가리는 다가오는 월드컵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이미 공인받고 있었다. 두 경기가 나란히 보여준 사실은 명백했다. 축구의 발상지가 동유럽에서 온 한 팀에 전술적으로 꼬박 한 세대 뒤처져 있었다.
그 헝가리 대표팀은 훗날 황금팀으로 불렸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팀이었다. 1952년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고, 오랫동안 패배가 어떤 맛인지 거의 잊고 살았다. 널리 쓰이는 집계 방식에 따르면 1950년부터 1954년 결승전 직전까지 공식 A매치 31경기 연속 무패였다. 공식 경기로 인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는 1952년 동독전까지 넣으면 32경기가 된다. 범위를 1950년 6월부터 1956년 초까지로 넓히면 50경기에서 단 한 번 졌고 42번 이겼다. 이런 숫자들이 거의 정설이 된 평가를 떠받친다. 월드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팀 가운데, 어쩌면 역사상 가장 강했던 팀이라는 평가다.
그런 팀이 1954년 결승전에 들어섰으니, 결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패가 오래 이어지면 사람들 마음속에서 물리 법칙에 가까운 무언가로 굳어진다.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이긴 나머지 승리는 더 이상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필연처럼 보이게 된다. 상대는 그라운드를 밟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한차례 지고 들어갔고, 여론은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트로피를 건넸다. 경기장 전체를 감싸는 그 확신 자체가 이 팀이 여러 해에 걸쳐 쌓아온 전력의 일부였다. 누구도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고 모두가 믿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 이 팀의 가장 큰 자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법칙처럼 굳어진 바로 그 확신 속에 이번 이야기의 핵심적인 물음이 숨어 있다. 누구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이는 팀의 무적은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거듭된 승리를 먹고 자란 착각일까.
가장 강했지만 우승하지 못했다. 이번 이야기에서 따라가려는 것은 이 두 사실 사이에 벌어진 틈이다.
하나의 구축물은 극한까지 다듬을 수 있어도 완전히 닫아버릴 수는 없다. 황금팀은 이 명제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시험한 팀이었다. 축구라는 문제를 거의 다 풀어버린 팀, 이 체계를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다듬은 팀이 있었다면 바로 이들이었다. 상대를 철저히 연구했고, 포메이션을 혁신했으며, 승리를 본능에 가까운 습관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팀조차, 그토록 강했던 이 팀조차 ‘가장 강하다’와 ‘그 한 경기를 이긴다’ 사이의 틈을 건너지 못했다. 가장 강하다는 것은 하나의 구축물이다. 실제로 존재하며, 힘겹게 얻어냈고, 눈부시게 빛나는 구축물이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이긴다는 것은 우연의 사건이다. 그 둘 사이의 틈이야말로 아무리 완벽하게 다듬어도 메울 수 없는 잔여항이다. 달리 말하면 ‘가장 강하다’는 하나의 상태를 가리킨다. 여러 해의 노력으로 쌓아 올리고 거듭 검증할 수 있는 상태다. 반면 ‘이 경기를 이긴다’는 하나의 사건을 가리킨다. 단 한 번 일어나며, 다시 치를 수도 미리 예약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상태는 축적할 수 있지만 사건은 일어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두텁게 쌓은 상태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 속의 불확실성까지 감싸 가둘 수는 없다. 황금팀은 상태를 꼭대기까지 쌓았지만, 결승전이라는 사건은 그런 쌓기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팀은 자신의 운명으로 후대에 한 가지를 증명했다. 축구는 자신을 가장 위대하게 다룬 주인에게조차 필승 보증서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2. 그들은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바꾸었나
이 팀이 강했던 까닭은 단지 선수들의 발재간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기존 체계를 그 자리에서 작동 불능으로 만드는 구조적 혁신이 있었다. 그라운드에 가한 칼질은 정확했고 깊었다.
출발점은 당시 최고 수준의 축구에서 널리 쓰이던 WM 포메이션이었다. 오래된 피라미드 대형에서 발전해 나온 전술로, 잉글랜드가 누구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한때 세계를 호령하는 무기로 삼았다. 황금팀의 감독 셰베시는 누구나 아는 그 모양을 훨씬 유동적인 형태로 바꾸었다. 방법은 센터포워드 히데그쿠티를 원래 서 있어야 할 전방에서 뒤로 끌어내려 뛰게 하는 것이었다.
그 한 번의 칼질이 WM의 가장 중요한 관절을 끊었다. WM 수비의 축은 중앙에서 대인 방어를 맡는 센터백이었다. 상대 센터포워드에게 바짝 붙어 놓치지 않는 것이 그의 임무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 상대 센터포워드가 그 마크를 받아야 할 위치에 없다. 미드필드 근처로 내려가버렸다. 그를 맡은 센터백은 딜레마에 빠졌다. 따라 올라가면 등 뒤에 커다란 공간이 열려 푸스카스와 코치시 같은 선수들이 그대로 파고들었다. 따라가지 않으면 히데그쿠티가 미드필드와 수비 라인 사이의 무주공산에서 여유롭게 공을 받고 마음껏 공격을 조율했다. 나가기도, 물러서기도 곤란했다. 한 선수가 뒤로 내려오는 움직임 하나로 상대의 대인 방어 논리 전체가 멈춰버렸다.
WM의 시대에는 이 대인 방어 논리가 수비의 뿌리였다. 수비수마다 한 명씩 끈질기게 맡고 각자 구역을 지켰다. 질서정연한 체계였다. 히데그쿠티의 후방 이동은 그 질서를 성립시키는 전제, 늘 정해진 위치에 서 있는 센터포워드라는 전제를 빼내버리는 일이었다. 뿌리가 뽑히자 질서는 곳곳에서 틈을 드러냈다. 어느 한 선수가 더 빨리 뛰거나 더 정확하게 슛을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체계 전체를 움직이는 축을 건드린 것이다. 축을 겨냥한 한 번의 칼질이 곁가지에 내리치는 열 번의 칼질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황금팀의 진짜 무서움은 그 축을 찾아냈고, 과감히 잘라냈다는 데 있었다.
히데그쿠티라는 역할의 묘미는 직관을 거스른다는 데에도 있었다. 센터포워드라는 이름을 단 선수가 센터포워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지 않는다. 당시에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상식대로 센터포워드에게 전담 마크를 붙이면 허탕을 쳤다. 상식대로 페널티 지역을 지키면, 정작 그 안에 있어야 할 선수가 미드필드를 온통 휘저었다. 황금팀은 거의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센터포워드는 맨 앞에 있어야 한다’는 관행이 그저 관행일 뿐, 철칙은 아니라는 것을 한발 먼저 간파했다. 철칙으로 여겨지는 관행의 정체를 알아보는 일. 모든 혁신은 흔히 거기서 시작된다.
황금팀의 축구는 한 사람의 위치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훗날 푸스카스는 팀 전체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헝가리가 공격할 때는 모두가 공격하고, 수비할 때는 바로 그 선수들이 함께 내려와 수비한다. 포지션은 못 박힌 칸이 아니라 서로 맡을 상대를 바꾸고 빈자리를 메우는 유동적인 구조가 되었다. 이 팀에서 푸스카스는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주장이었고, 왼발을 다루는 솜씨가 경지에 올라 있었다. 미드필드에 자리한 보지크는 패스의 메트로놈으로서 팀 전체의 박자를 조율했다. 히데그쿠티는 뒤로 내려오는 센터포워드로, 상대 수비수를 제자리에서 끌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코치시는 최정상급 골잡이였다. 특히 헤더는 막을 도리가 없었고, 그 월드컵에서 11골을 넣어 득점왕이 되었다. 왼쪽의 치보르는 속도와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좌우로 벌려놓았다. 후대의 축구사는 이 체계를 토털 풋볼의 전조로 본다. 헝가리 축구를 연구한 조너선 윌슨도 이 역사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 황금팀을 월드컵 추억담의 한 토막이 아니라 현대 전술 진화의 한복판에 놓았다. 포지션의 유동성과 전원 참여를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처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든 팀이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웸블리의 6 대 3은 이 혁신을 대중 앞에서 가장 선명하게 시연한 경기였다. 잉글랜드는 히데그쿠티의 후방 이동에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WM을 이해하던 자신들의 방식이 낡았음이 그 자리에서 드러났다. 경기 규칙도, 이 스포츠 자체도 만들어낸 나라의 대표팀이 안방에서 도무지 읽어낼 수 없는 축구에 호되게 한 수 배웠다. 축구 전술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 다시 한번 큰 걸음을 내디뎠다. 온 세계가 보는 앞에서 내디딘 걸음이었다.
축구 전술은 단번에 완성되는 발명품이 아니라 이어달리기다. 초기의 피라미드에서 잉글랜드가 정교하게 다듬은 WM으로, 다시 헝가리의 그 후방 이동으로 이어지는 매 걸음은 앞선 걸음을 딛고 서면서 동시에 그것을 걷어찼다. 황금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이 아니었다. WM의 어깨에 올라서서 WM 자신은 보지 못하던 맹점을 알아보고, 손을 뻗어 그곳을 뚫었다. 그들이 뚫어놓은 길을 뒤이어 다른 이들이 걸어갔고, 토털 풋볼을 거쳐 현대 축구까지 나아갔다. 이 길고 긴 이어달리기에서 황금팀은 가장 결정적인 주자 가운데 하나였다.
3. 국가가 한데 모은 천재들
이 팀의 강함에는 경기장 밖의 배경도 있었다. 당시의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셰베시는 선수 배치와 전술만 짜는 감독이 아니었다. 체제 안의 체육 관료로서 대표팀의 대회 준비와 선수 소집에 이례적으로 큰 권한을 행사했다. 당시 헝가리의 체육 정책은 가장 뛰어난 국가대표 선수들을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MTK 두 구단에 집중시켰다. 대표팀 동료가 소속팀에서도 동료였다. 푸스카스, 코치시, 보지크는 혼베드에, 히데그쿠티는 MTK에 있었다. 셰베시는 합숙 훈련과 평가전을 거듭 마련하며 국가대표팀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클럽처럼 운영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축구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국가가 행정력을 동원해 인재와 훈련 여건을 한곳에 모아놓은 현실이 있었다. 대표팀이 클럽처럼 척척 맞는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그 토대를 의도적으로 한곳에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축구에서 이런 집중은 사치스러울 정도의 이점이었다. 다른 나라의 대표 선수들은 여러 구단에 흩어져 일 년 내내 몇 차례 만나기도 어려웠다. 큰 대회를 앞두고서야 급히 모였으니 손발을 맞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헝가리 선수들은 늘 함께 훈련하고 함께 경기했다. 서로 어디로 뛰는지, 언제 공을 내주는지 고개를 들고 보지 않아도 알 만큼 익숙했다. 호흡이 맞는 한 팀과 급조한 스타들의 모임을 가르는 것은 그렇게 오랜 세월 함께하며 몸에 밴 이해다. 국가는 행정의 힘으로 그 이해를 이 팀에 미리 마련해주었다.
여기서는 경계 하나를 조심스럽게 지켜야 한다. 국가가 이 팀을 빚어냈다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한 국가 사업이었고 사회주의를 과시하는 진열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축구를 정권의 체면 아래 편입시킨 다른 사례들과는 조금 달랐다. 국가의 집중이 그라운드의 창의성까지 옥죄지는 않았다. 뒤로 내려오는 센터포워드도, 전원이 공격하고 수비하는 유동성도 행정 명령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셰베시의 안목, 푸스카스를 비롯한 선수들의 재능, 한 세대의 선수들이 거듭 고민하고 다듬은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국가는 이들을 한데 모으고 최고의 여건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 발끝의 솜씨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사람을 모으는 것과 그렇게 공을 차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뒤의 일에는 행정의 손이 닿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팀에는 두 측면이 있다. 국가가 인재를 집중시킨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천재들의 모임이었다. 순전히 체제가 빚어낸 작품이라고 말하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솜씨가 지워진다. 정치와 아무 관계 없는 순수 예술이라고 말하면 국가가 그 발밑에 공들여 다져놓은 토대가 보이지 않는다. 두 측면 모두 참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삼킬 수 없다. 그리고 이 팀에 진정으로 속한 것, 온 세계를 넋 놓고 보게 만든 그 솜씨는 국가의 공적 장부가 닿지 않는 곳에 오롯이 남아 있다. 모아놓은 것은 국가였지만,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펼쳐낸 것은 끝내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훗날 그 솜씨는 이 사람들을 따라 세상 곳곳을 떠돌게 된다.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자.
4. 8 대 3이 가려놓은 것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이 팀은 거의 끝까지 상대를 압도하며 전진했다.
첫 경기에서 한국을 9 대 0으로 무너뜨렸고, 이어 바젤에서 서독을 8 대 3으로 대파했다. 하지만 그 대승에는 대가가 따랐다. 푸스카스가 그 경기에서 발목을 다쳐 다음 두 경기, 브라질과의 8강전과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에 나설 수 없었다. 주장이 빠졌는데도 헝가리는 브라질을 4 대 2로 꺾었다. 얼마나 거칠었던지 훗날 ‘베른의 전투’라고 불리게 된 경기였다. 이어 연장전 끝에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도 4 대 2로 물리쳤다. 팀의 영혼과도 같은 선수를 잃고도 브라질과 전 대회 우승 팀을 연달아 넘었다는 사실은 이 팀의 저력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보여준다. 헝가리는 대회 전체 다섯 경기에서 27골을 넣었다. 이 단일 대회 팀 최다 득점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거침없는 질주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인상만 더욱 키웠다. 9 대 0, 8 대 3, 핵심 선수가 빠지고도 브라질과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를 연달아 꺾은 성적, 다섯 경기 27골. 모든 숫자가 이미 써놓은 결말을 뒷받침했다. 모두가, 아마 헝가리 자신까지도, 결승전은 그저 대관식을 한 번 더 치르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모두가 한목소리로 확신하는 바로 그곳에, 아무도 보지 못한 허점이 숨어 있었다.
8 대 3이라는 그 사실은 사람을 더없이 쉽게 오도했다.
문제는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 8 대 3으로 진 서독이 결승전에 나온 서독과 전혀 같은 팀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서독의 헤르베르거 감독은 그 조별리그 경기에 최정예를 내보내지 않았다. 2진을 기용했다. 더 강한 해석도 있다. 조 2위로 올라가면 더 수월한 대진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차라리 그 경기에서 지는 편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재구성된 설명이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조심스럽게 보는 사람도 있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헤르베르거가 그 경기에서 대폭 로테이션을 했고, 패배를 감수하면서 주전들의 체력을 튀르키예와의 조별리그 플레이오프와 그 뒤 토너먼트에 남겨두었다는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모험이면서 치밀한 계산이기도 했다. 스스로 한 경기를 내준다는 것은 ‘무적’이라는 후광을 제 손으로 상대에게 건네고 자신은 얕잡아 보이는 처지에 놓인다는 점에서 모험이었다. 한편 진출 여부를 좌우하지 않는 조별리그 한 경기를 체력 보존과 상대 탐색에 활용하는 것이 허울뿐인 명성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헤르베르거가 건 도박은 이것이었다. 우승을 결정하는 것은 조별리그 한 경기의 체면이 아니라 토너먼트와 결승전에서 챙기는 실속이다. 먼저 체면을 잃더라도 실속은 움켜쥐겠다는 것이었다.
그 로테이션은 덤으로 서독의 진짜 전력도 감추었다. 헝가리가 조별리그에서 본 것은 힘을 빼고 나온 서독이었지, 가장 날카로운 서독이 아니었다. 결승전에서 마주한 상대는 체력을 비축했고, 어쩌면 헝가리가 그 전모를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팀이었다. 따라서 ‘헝가리는 이미 독일을 8 대 3으로 이긴 적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불완전한 사실이다. 독일은 첫 경기로 어느 정도 위장에 성공했다. 바로 이 위장이 ‘원래 헝가리가 이기게 되어 있었다’는 모든 결정론이 맨 먼저 걸려 넘어질 지점이다. 한 팀은 상대를 다 파악했다고 믿었지만, 정작 파악한 것은 상대가 일부러 내밀어 보여준 면이었다. 결정론은 ‘벌써 이겨본 상대’라는 식으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벌써’가 때로는 상대가 깔아놓은 함정이라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이 대목은 과거의 전적으로 미래의 결과를 미리 받아낼 수 있다는 유난히 질긴 착각을 깨뜨린다. 8 대 3은 과거형이고 결승전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그 사이에는 거의 완전히 달라진 독일 팀이 있었고, 전혀 새로운 오후가 있었다. 지나간 승리를 앞으로의 승리 보증서로 여기는 것은 결정론이 가장 자주 헛디디는 곳이다. 황금팀이 맞은 그 비 오는 밤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요란하게 넘어진 순간이었다. 한 번 이겼다고 반드시 다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첫 경기를 당신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가림막으로 삼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5. 베른의 그 경기
결승전은 1954년 7월 4일 베른에서 열렸다. 시작부터 끝까지 굵은 비가 그라운드에 쏟아졌다.
출발은 모두의 예상 그대로였다. 헝가리는 첫 8분 안에 2 대 0으로 앞섰다. 푸스카스가 선제골을 넣었고, 치보르가 독일 수비의 혼란을 틈타 한 골을 더했다.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남은 80여 분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될 듯했다. 그러나 독일은 거의 곧바로 응수했다. 18분에는 란이 스코어를 2 대 2로 만들었다. 두 골 차 리드가 불과 10분 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갈 무렵 란이 다시 골을 넣었다. 3 대 2. 헝가리에도 동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료 직전 푸스카스가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득점이 취소되었다.
경기의 흐름 자체가 확실성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극이었다. 시작 8분 만의 2 대 0은 모두가 써놓은 각본을 거의 실현했다. 그 순간 확신은 절정에 달했다. 그다음 이야기는 그 절정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과정이었다. 먼저 순식간에 동점을 허용하자 확신에 첫 금이 갔다. 역전당하자 금은 큰 틈으로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취소된 동점골은 마치 운명이 손을 내밀어 판을 다시 뒤집을 마지막 희망마저 눌러버리는 듯했다. 90분 동안 무적이라 공인받은 팀은 자신의 무적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취소된 그 골은 이 결승전을 둘러싼 가장 끈질긴 논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당시 헝가리 사람들의 분노는 분명 실재했다. 하지만 나중에 영상을 살펴보아도 사실관계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중계 화면은 어느 쪽에도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신중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동점골은 오프사이드로 무효 처리되었고, 그 자리에서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으며, 남은 영상만으로는 지금까지도 결론을 확정할 수 없다. 이 경기가 남긴 끝내 닫히지 않는 균열이다. 그것만으로 헝가리가 억울하게 당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반대로 판정이 틀림없이 옳았다고 할 수도 없다.
훗날 거듭 거론된 우연들도 모두 실제로 있었다. 다만 어느 하나만으로 결말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쏟아진 비는 ‘프리츠 발터 날씨’라는 이야기를 낳았다. 축축하고 서늘한 날씨가 독일 주장 프리츠 발터의 취향에 꼭 맞았고, 그가 그런 날 가장 잘 뛰었다는 것이다. 아디 다슬러는 서독 선수들에게 더 가벼운 축구화를 제공했다. 스터드를 돌려 빼고 갈아 끼울 수 있는 신발로, 진흙탕 그라운드에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도 나중에 바로잡힌 내용이 있다. 독일 특허상표청은 다슬러가 이 결승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나사식 교체 스터드를 발명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 기술이 그 경기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결승전이 그 브랜드의 명성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정정은 축구화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신발이 승리에서 차지한 남다른 비중이 이야기 속에서 부풀려졌다는 뜻이다.
이 우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나고 나서 보면 하나하나가 결말의 원인처럼 보이지만, 일어나기 전에는 어느 것도 결말을 보장하지 않았다. 비가 온다고 반드시 독일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 축구화는 누구라도 신을 수 있다. 감춰둔 전력도 실제로 그라운드에서 발휘해야 비로소 전력이 된다. 이들은 어떤 가능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조건이었을 뿐, 가능성을 필연으로 잠가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조건들을 줄줄이 이어 ‘그래서 독일이 이겼다’는 인과 사슬로 만드는 것은 결말을 알고 난 뒤에야 세울 수 있는 환상이다. 그날 헝가리가 이겼다면 이 조건들은 아마 언급조차 되지 않거나, 반대로 대수롭지 않은 곁가지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그 조건들이 중요해 보이는 것은 독일이 이겼기 때문이다. 독일이 그 조건들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다.
비도, 축구화도, 날씨도 그날 오후에 실제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 모두를 더해도 ‘독일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었다’는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6. 가장 완벽한 구축물도 한 경기의 결말을 잠글 수 없다
이 결승전을 끝까지 들여다보면 이번 이야기에서 정말 말하려는 것과 마주친다.
가장 손쉬운 설명은 헝가리가 우승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오프사이드 판정, 쏟아진 비, 축구화, 전력을 감춘 서독을 한데 모으면 완벽한 팀이 부당한 일을 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말하면 속은 시원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 승리를 순전한 기적이나 하늘의 뜻으로 돌리는 독일의 신화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다. 양쪽 모두 이 경기를 깔끔하고 흑백이 분명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 한다. 천재가 억울하게 당했거나, 기적이 강림했거나.
그러나 진실은 어느 쪽에도 다 담기지 않는다. 헝가리가 더 강한 팀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서독이 이 경기를 이겼다는 것도 사실이며, 그 승리는 진짜였다. 실제 진흙탕에서 두 골 차로 뒤진 상황을 조금씩 따라잡은 실제 역전이었다. 그날 오후 헝가리 자신도 허점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 한 팀에 내리 세 골을 내주었다. 주장은 다 낫지 않은 발목으로 무리하게 출전했다. 조별리그에서 보았던 상대는 눈앞의 이 팀과 전혀 달랐다. 그저 빼앗겼다고만 말하면 서독이 실제로 만들어낸 역전이 지워진다. 서독의 승리가 오로지 하늘의 뜻이었다고 말하면, 최강자의 대관식이 될 수도 있었던 오후가 구체적인 현실의 요소들에 의해 어떻게 조금씩 다시 쓰였는지가 지워진다. 진정 더 강한 팀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오후에 그 한 경기를 졌다. 이 사실에는 속 시원한 판결이 없다.
이 외줄을 걸으려면 자칫 풀어놓기 쉬운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눌러두어야 한다. 하나는 최강자 대신 억울해하고 싶은 충동이다. 이렇게 좋은 팀이 우승하지 못하다니 도저히 옳지 않다고 여기며, 서둘러 그들을 해친 누군가를 찾아내고 싶어 한다. 다른 하나는 승자의 신화에 몸을 맡기는 게으름이다. 이겼으니 하늘의 뜻이고, 모든 덕을 갖춘 결과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하늘의 도리를 따지지도, 덕행에 상을 주지도 않는다. 그 구체적인 오후, 구체적인 스물두 사람에게 구체적인 비를 맞으며 90분 동안 공을 차게 하고, 그 구체적인 스코어를 받아들일 뿐이다. 그 오후를 추상화해 억울한 사건이나 기적으로 만드는 것은 본래 의미라는 것과 무관한 일에 억지로 의미를 밀어 넣는 행위다.
이런 절제는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양쪽에 똑같이 책임을 나누는 절충이 아니다. 한 경기의 진실에는 때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헝가리가 더 강했다. 사실이다. 독일이 이겼다. 이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참인 이 두 사실을 합쳐도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억울하고 누가 운이 좋았는지를 깔끔하게 가르는 판결은 나오지 않는다. 굳이 판결을 내리려면 양면 모두가 참인 진실에서 한쪽을 억지로 잘라내야 한다. 그 경기에 가장 충실한 이야기는 양쪽을 함께 들고 있는 것이다. 통쾌한 결론 하나를 내리는 것보다 훨씬 덜 시원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황금팀이 후대에 남긴 가장 깊은 가르침이다.
황금팀은 축구라는 체계를 거의 완벽하게 다듬었다. 수많은 경기에서 지지 않았고, 축구의 발상지를 체면도 못 차리게 두들겼으며, 전술을 새로운 시대로 밀어 올렸다. 세상에 정말 자신의 결말을 잠가둘 만큼 강한 구축물이 있다면 마땅히 이 팀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 팀도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완벽한 체계도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뿐, 반드시 이기는 쪽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와 ‘반드시 그렇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가로놓여 있다. 골이 적게 나는 축구의 구조와 단판으로 생사를 가르는 대회 방식이 그 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황금팀이 완벽하면 할수록, 완벽함 자체로도 그 한 경기의 결말을 잠글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또렷해진다.
구축은 완전히 닫힐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순수하게 모습을 드러낸 경우다. 다른 곳에서 구축물이 닫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직 충분히 다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시간을 더 들이면 그 틈도 메울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하지만 황금팀은 다듬을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다듬었다. 그 구축물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자체였다. 그런데 그 한계조차 틈을 메우지 못했다. 여기서 더 가혹한 결론이 나온다. 구축물이 닫히지 않는 까닭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축물도 닫힐 수 없기 때문이다. 잔여항은 완벽에 가까워진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완벽한 곳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게 드러난다.
완벽을 맹신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가 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언가를 충분히 잘하면, 극한까지 잘해내면, 확정된 결과를 얻고 운이 끼어들 여지마저 없앨 수 있다고 믿곤 한다. 황금팀은 바로 그 극한까지 가서 모두에게 말했다. 아니, 그 여지는 결코 닫히지 않는다고. 아무리 완벽한 준비도 승산을 높일 뿐이며, 승산이 아무리 높아도 승리가 손안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그 얇은 여지 속에는 누구도 쫓아낼 수 없는 손님이 언제나 산다. 우연이다.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운명에 체념하는 일이 아니다. 이 스포츠, 나아가 수많은 일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는 일이다. ‘완벽하게 하면 틀림없다’는 믿음에 희망을 전부 건 사람은 언젠가 자신만의 베른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속까지 차갑게 젖게 될 것이다.
최강팀이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법칙의 예외가 아니다. 이 법칙이 가장 우렁차게 울린 선언이다.
7. “우리도 다시 어깨를 펴게 됐다”: 신화의 탄생
진 쪽은 상처 하나를 짊어졌고, 이긴 쪽은 신화 하나를 얻었다.
베른의 승리는 전후 서독에서 거대한 집단 기억의 상징이 되었다. 훗날 “우리도 다시 어깨를 펴게 됐다”는 말이 그 결과가 당시 지녔던 감정의 무게를 응축했다. 라디오 중계자가 외친 “끝났습니다! 독일이 세계 챔피언입니다!”도 그 감정적 재출발의 일부가 되었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베른을 독일연방공화국이 진정으로 탄생한 순간이라 부르는 일이 흔해졌다. 전쟁의 폐허와 치욕에서 겨우 기어 나온 나라가 축구 한 경기의 승리로 다시 조금이나마 허리를 펴고 걸을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다. 당시의 시대 속에 놓고 보면 그 마음은 진실했고 뭉클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절제가 필요하다. 이 승리가 당시에 실제로 큰 감정적 파문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 효과가 얼마나 즉각적이었고 얼마나 컸는지를 두고는 역사가들의 견해가 갈린다. 이 신화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연구한 저술은 당시 사람들에게 실제 충격이 있었지만 그 영향은 후대의 신화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짧았고 훨씬 간접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베른을 독일연방공화국의 탄생일로 보는 것은 사후에 한 층씩 덧쌓아 올린 해석이다. 그 해석이 높아진 때도 주로 1954년의 바로 그날이 아니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세대마다 이어진 기념과 이야기, 영화와 텔레비전을 통해 조금씩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신화는 종료 휘슬과 함께 완성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벽돌을 한 장씩 쌓아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태어난 듯한 감정이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패전국 국민이 국제무대에서 한번 어깨를 폈을 때의 감격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감격하는 일과 한 경기의 감격을 국가의 정치적 재탄생이 시작된 지점으로 소급해 인정하는 일은 다르다. 앞의 것은 당시 실제로 느낀 감정이고, 뒤의 것은 나중에 덧붙인 해석이다. 덧붙인 해석은 언제나 당시의 감정보다 멀리 나아가고 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날의 승리는 한 번의 승리였을 뿐이다. 수십 년 뒤에는 한 나라의 성인식으로 이야기되었다. 그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채운 것이 신화다.
이렇게 쌓아 올리는 방식은 패배한 나라가 자신에게 열등감 어린 이름을 붙이는 방식과 결국 같은 것을 만든다. 한쪽은 승리를 쌓아 민족의 재탄생으로 만들고, 다른 쪽은 패배를 쌓아 민족의 열등감으로 만든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수법은 같다. 축구 한 경기를 한 나라의 운명에 관한 우화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 우화에 덮이는 것은 경기의 본래 모습이다. 팽팽하게 맞선 두 팀의 승부를 비와 우연, 갖가지 구체적인 현실의 요소가 결정한 축구 경기 말이다. 승자의 신화와 패자의 콤플렉스는 우연에 거창한 의미를 붙이려는 똑같은 깎아내기다. 다만 동전의 서로 다른 면에 새겨질 뿐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한 경기를 그저 한 경기로 놔두지 않는다. 이겨도 무언가를 증명하게 하고, 져도 무언가를 증명하게 한다. 그 증명이 거듭될수록 축구의 진짜 모습은 더 깊이 묻힌다.
8. 끝내 밝혀지지 않은 몇 차례의 주사
기적으로 쌓아 올린 그 승리 밑에는 아직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하나 더 묻혀 있다.
이 역사를 통틀어 가장 민감한 대목이므로 각별히 조심해서 말해야 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은 독일 선수들이 그 대회 기간에 주사를 맞았다는 것이다. 여러 해 뒤 팀 주치의 로겐은 회복을 돕기 위해 비타민 C와 포도당을 주사했다고 말했다. 2004년에도 로겐은 공개적으로 그 설명을 옹호했다. 당시 국가대표 선수들도 이 우승을 흥분제 덕분에 얻었다는 주장을 분노하며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에서 논란은 다시 날카로워졌다. 2010년 한 연구 프로젝트는 당시 일부 독일 선수에게 주사한 것이 단순한 비타민이 아니라 페르비틴(Pervitin)이라는 메스암페타민계 흥분제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혹을 더한 것은 주사가 당시에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대회 뒤 몇몇 선수에게 황달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이후에도 비타민 C라는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페르비틴을 의심한 역사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또 하나를 분명히 했다. 1954년에는 도핑 검사 자체가 없었으며, 이 의혹은 한 번도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 이 승리를 신화와 역사적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한 연구는, 그런 금지약물이 실제로 쓰였음을 확정할 수 있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가장 공정하게 말하려면 다음 문장들을 나란히 놓을 수밖에 없다. 주사가 있었다. 황달이 발생했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페르비틴을 비롯한 흥분제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팀 주치의와 당시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를 부인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를 증거가 명백한 도핑 스캔들로 말하면 증거가 허용하는 선을 넘는다. 반대로 없었던 일에 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 몇 차례의 주사와 황달이 실제로 남긴 의문을 지우게 된다. 입증할 수 있는 것과 입증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이 사건은 그대로 걸려 있다. 누구도 대신 매듭지을 수 없다.
이 불분명함이야말로 정직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한쪽에는 어렵게 얻은 우승을 지키려는 독일 사람들의 마음과 부정행위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옛 국가대표들의 억울함이 있다. 함부로 지워서는 안 된다. 다른 쪽에는 비밀리에 이루어진 주사와 석연치 않은 황달이 있다. 그 의문들 또한 한마디의 변호로 덮어서는 안 된다. 가장 정직한 태도는 두 쪽을 모두 그대로 드러내놓는 것이다. 혐의를 제기하는 쪽이 내놓지 못한 증거를 대신 확정해주지도 않고, 해명하는 쪽이 가리지 못한 의혹을 대신 지워주지도 않는 것이다. 역사에도 답을 내놓지 못한 일이 있다. 억지로 답을 대신 내리려 한다면 유죄든 무죄든 또 다른 부정직이 된다.
분명히 설명되지 않은 그 주사들이야말로 말끔한 신화가 아무리 정리해도 치울 수 없는 잔여항이다. 기적이라는 서사가 원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티 없이 깨끗한 승리다. 하지만 역사의 구석에는 하필 이런 물음표가 남아 있다. 그 우승을 뒤집을 만큼 크지도 않고, 완전히 지워버릴 만큼 작지도 않다. 그저 거기에 매달린 채 사람들에게 일깨운다. 아무리 매끈한 신화라도 그 아래에는 끝내 빈틈없이 감싸지 못하는 것이 한둘씩 숨어 있다는 것을. 말끔하게 이야기되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말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곳이 몇 군데 남는다.
9. 황금팀이 흩어지다
헝가리에게 이 이야기의 진정한 끝은 베른의 종료 휘슬이 아니라 1956년의 정치적 격변이었다.
황금팀은 그 결승전에서 진 직후에 흩어진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팀을 해체한 것은 1956년이었다. 1956년의 정치적 위기 동안 혼베드는 유럽 대회에 출전하러 해외로 나갔다. 이 팀을 가능하게 했던 공동의 토대가 거기서 끊어졌다. 푸스카스는 결국 귀국하지 않았고, 훗날 스페인에 자리를 잡아 1958년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코치시와 치보르도 훗날 스페인에 자리를 잡아 차례로 바르셀로나 선수가 되었다. 당장 귀국하지 않기로 한 그 위대한 혼베드는 그렇게 핵심 선수들을 하나씩 타국에 흩어놓았다.
그러므로 황금팀에 관한 가장 중요한 맺음말은 1954년 결승전에서 졌다는 것이 아니다. 1956년의 정치적 위기가 그 팀을 가능하게 했던 사람들을 흩어버렸다는 것이다. 국가가 공들여 한데 모은 팀을 마지막에는 국가의 격변이 제 손으로 해체했다. 사람을 모은 것도 정치였고, 흩어놓은 것도 정치였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것은 그저 공을 차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장 빛나는 시절, 함께 더 멀리 걸어갈 수도 있었던 길을 경기장 밖의 역사가 그렇게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월드컵 트로피를 얻지 못한 데 이어, 끝내 그 팀 자체도 지키지 못했다.
이들이 타국으로 흩어진 뒤에도 그 솜씨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푸스카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새로운 전설을 썼고, 코치시와 치보르도 바르셀로나에 이름을 남겼다. 부다페스트에서 갈고닦은 축구, 공간과 움직임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렇게 망명자들을 따라 서유럽 축구의 혈관으로 흘러들었고, 이후 오랫동안 조용히 영향을 미쳤다. 국가는 이들을 모을 수도 흩어놓을 수도 있었지만, 발끝의 솜씨가 이들과 함께 떠나 다른 곳에서 다시 뿌리내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것이 어쩌면 이 서글픈 이야기에서 마지막까지 패배를 거부하는 잔여항일 것이다.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사람들이 지닌 솜씨까지 흩어져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보자. 거의 완벽한 팀이 축구라는 체계를 극한까지 다듬고도, 온 세계가 기억하는 단 한 번의 그 결승전을 이기지 못했다. 그 팀이 증명한 것은 자신이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축물도 그 한 경기의 결말을 잠글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다’와 ‘반드시 이긴다’ 사이에는 언제나 우연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승자는 그 우연을 쌓아 민족 재탄생의 신화로 만들었다. 패자는 무언가를 쌓을 겨를도 없이 격변에 휩쓸려 흩어졌다. 이 모든 신화와 논쟁과 해산의 밑바닥에는 어디에도 다 담기지 않는 두 가지가 남아 있다. 하나는 우연이다. 가장 완벽한 구축물에도 보증서 한 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다. 한데 모였다가 흩어진 그 선수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전술 한 벌이나 진열장 하나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다. 저마다의 재능과 상처, 역사에 의해 다시 쓰인 삶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황금팀의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우연과 사람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밀어냈다. 우연이 두드러지는 것은 마땅히 이겼어야 할 만큼 강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 패배는 ‘아무리 강해도 승리를 보장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유난히 뼈아프게 드러낸다. 평범한 팀이 졌다면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이 팀이 졌기에 잔여항은 숨을 곳이 없어졌다. 사람이 두드러지는 것은 국가의 손에 한데 모였다가 국가의 격변에 흩어진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운명은 ‘사람은 결국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유난히 분명하게 드러낸다. 한 팀이 먼저 우연에 졌고, 다음에는 역사에 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상대에게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역사상 가장 강했을지도 모르지만 끝내 월드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그 팀은, 마지막에 진정한 의미의 어떤 상대에게도 지지 않았다. 한차례의 비와 한 번의 오프사이드 판정, 누구도 미리 써놓을 수 없는 오후에 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역사에 떠밀려 뿔뿔이 흩어졌다.
이 팀의 이야기가 우승 트로피 하나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겼다면 완결된 전설, 실력이 끝내 보상받는 흡족한 이야기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금팀은 이기지 못했다. 그들이 남긴 것은 틈이 있는 이야기였고, 바로 그 틈 안에 이 스포츠의 가장 진실한 것이 담겨 있다. 아무리 뛰어난 팀도 결말을 써놓을 수 없는 오후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경기장 밖에서 뻗어 들어오는 역사의 손을 막을 수는 없다. 완전한 이야기는 부러움을 부르지만, 틈이 있는 이야기는 더 깊은 이해를 준다.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놓은 사람은 없다. 바로 이 누구도 써놓을 수 없고 계산해낼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에, 경기가 거듭되어도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다시 공을 차고 다시 지켜볼 이유를 얻는다. 가장 완벽한 팀도 그 한 경기의 결말을 잠글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축구라는 이 오래된 놀이가 끝없이 보아도 질리지 않게 하는 까닭이다.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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