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 한 정권이 축구를 국가 안에 가두려 할 때
1934년 이탈리아와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을 통해 파시즘의 스포츠 포섭, 국가대표의 혼종성, 정치가 지우지 못한 개인을 다시 본다.
두체의 이름이 새겨진 시상식
1934년 6월 10일 로마에서 이탈리아가 체코슬로바키아를 꺾고 우승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직접 시상했고, 결승이 열린 경기장 이름에는 국가파시스트당이 들어가 있었다. 선수들은 경기 전에 파시스트식 경례를 했으며 준우승국에는 ‘두체컵’까지 주어졌다. 축구의 영예와 정권의 얼굴을 한 장면으로 용접한 시상식이었다.
정권은 승리를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축구의 의미를 하나로 만들려 했다. 이탈리아가 이겼으니 파시스트 국가가 강하고 질서정연하다는 증거라는 식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이유로 사랑하는 경기를 국가의 광고 문구 하나에 밀어 넣는 것, 그것이 포섭의 핵심이다.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로 보면 이는 외부 권력이 축구에 가한 착(鑿)이었다. 정권은 경기의 다의성을 잘라 내고 국가적 승리라는 구(構)를 세웠다. 그러나 너무 완전한 설명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 설명에 들어가지 않는 선수의 출신과 애매한 판정, 거부하는 개인이 모두 선명한 여항(餘項)으로 떠올랐다.
강팀과 유리한 환경은 함께 참이었다
1934년 대회에는 32개 팀이 참가를 신청했고 16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개최국 이탈리아도 예선을 치른 유일한 사례였다. 반면 전 대회 우승국 우루과이는 1930년에 유럽이 대거 불참한 데 대한 반발로 오지 않았다. ‘세계’ 대회는 두 번째에도 이전 챔피언을 담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8강에서 스페인과 거친 두 경기를 치렀고, 오스트리아와의 준결승과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에도 판정 논란이 남았다. 스웨덴 심판 이반 에클린드가 무솔리니를 만났다는 전설은 널리 퍼졌지만 확정할 문서는 없다. 확인되는 것은 홈 관중과 정치적 압력, 단판 승부가 개최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탈리아의 축구 자체를 사기로 지우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비토리오 포초는 메토도라 불린 2-3-2-3을 통해 중원을 강화했고, 장기 합숙과 선수 관리에도 앞서 있었다. 강한 팀이었다는 사실과 기울어진 환경에서 뛰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하나를 인정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없앨 필요는 없다.
순수 민족이라는 말의 균열
파시즘은 국가대표를 단일한 민족의 신체로 내세웠지만, 1934년 이탈리아의 핵심에는 남미 태생 오리운디가 있었다. 루이스 몬티, 라이문도 오르시, 엔리케 과이타 등은 이탈리아계 혈통을 따라 아르헨티나에서 건너왔다. 이들은 남미에서 배운 리듬과 기술까지 푸른 유니폼 안으로 가져왔다.
몬티는 1930년 아르헨티나 대표로 월드컵 결승을 뛰었고 네 해 뒤에는 이탈리아 대표로 결승에 나가 우승했다. 서로 다른 두 나라를 대표해 월드컵 결승에 출전한 유일한 선수다. 한 사람의 이력이 ‘순수한 국민’을 증명하려던 정권의 문장보다 훨씬 복잡했다.
국가대표는 자연이 만든 단일체가 아니라, 출생과 혈통, 거주와 선택을 둘러싼 규칙이 그때그때 그은 경계다. 오리운디는 예외가 아니라 그 경계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정권은 이들을 필요에 따라 자기 사람으로 끌어안았지만, 바로 그 포섭 때문에 자신이 내세운 순수성의 허구도 함께 드러냈다.
1938년, 국경이 팀을 삼키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은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열렸다. 개최지가 다시 유럽으로 정해지자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불참했고, 스페인은 내전으로 오지 못했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은 더 직접적이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대회에서 사라졌고 일부 선수는 독일 대표에 편입되었다.
지도에서 국경을 지웠다고 두 팀의 기억과 관계가 곧 하나가 되지는 않았다. 오스트리아의 ‘분더팀’을 강제로 합친 독일은 스위스와의 재경기 끝에 일찍 탈락했다. 정권은 선수의 국적을 배치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경쟁해 온 사람들의 마음과 축구를 명령으로 섞지는 못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8강에서 파시즘을 상징하는 검은 유니폼을 입고 경례했으며, 결승에서 헝가리를 4대2로 꺾어 연속 우승했다. 포초는 지금도 월드컵을 두 번 우승한 유일한 감독이다. 두 번째 우승의 축구적 가치와 정권이 남긴 얼룩은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지우지 못한다.
포섭되지 않은 사람들
오스트리아의 마티아스 진델라는 가벼운 몸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종이 인간’이라 불렸다. 그는 병합 뒤 독일 대표로 1938년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1939년 연인과 함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지만, 사고와 자살, 정치적 살해 가운데 무엇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영웅 서사 하나로 닫는 일도 또 다른 포섭이다.
브라질의 레오니다스는 1938년 일곱 골로 득점왕이 되었다. 폴란드전 6대5의 난타전에서 세 골을 넣었고, 진흙 속에서 벗겨진 축구화와 오버헤드킥은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그 기술의 절대적 최초였다는 말이나 경기 내내 맨발이었다는 이야기는 사실보다 크게 자란 기억에 가깝다.
정권은 대회를 조직하고 상징을 붙이며 별도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까지 새길 수 있었다. 그러나 메토도의 전술적 지혜, 이민자의 복합적인 정체성, 진델라의 침묵, 레오니다스의 발끝까지 소유하지는 못했다. 파시즘이라는 구(構)는 무너졌고 축구는 흉터를 안은 채 남았다. 그 흉터와 사람들은 포섭에 끝내 들어가지 않은 여항(餘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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