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 · 06
강을 건넌 다음에는
넘어온 적을 돌려보내는 것과 강 건너 사람들의 미래를 대신 정하는 것은 같은 결정이 아니다. 전쟁을 시작했다고 뒤의 모든 일에 근거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원래 국경이던 강 너머에서 포탄이 날아왔고, 뒤이어 보병이 건너왔다. 목적연합도시국은 침입자를 물리치라고 명령했다. 몇 달 뒤 잃었던 땅을 되찾고 군대가 동쪽 강가에 섰다. 새 질문이 나타났다. 계속 강을 건널 것인가.
이 역시 세 나라 사이의 가상 사례이지 현실 전쟁을 빗댄 이야기가 아니다. 서쪽 목적민주공화국의 포병 진지는 서안에서 5~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남아 갈대마을을 여전히 사정권에 두었다. 방위청 평가서는 강을 건너지 않으면 마을을 사정권에서 빼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방위군 총장은 원거리 화력으로 억제할 수 있고 지상 진격은 장기 주둔으로 이어진다며 도강에 반대하는 서면 의견을 냈다. 대외 집정관도 이웃 나라의 중재가 시작되지 못할까 우려해 반대했다.
전시 3인회의는 찬성 둘, 반대 하나로 도강을 결정했다. 다음 날 총장은 해임되었고 방위청은 통상의 인사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약 20킬로미터를 진격해 열한 마을, 약 9만 명을 포함하는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수석집정관은 전국에 설명했다. 점령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갈대마을 아이들이 잠들 수 있게 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힘이 있다. 갈대마을의 아이들은 정말 포격을 겪었다. 문제는 그들을 잠들게 하자는 말 한마디가 강을 건너는 일, 머무는 일, 검문과 구금, 나중에 학교 교과서를 바꾸는 일까지 모든 이유를 대신할 수 있느냐다.
한 걸음마다 다시 물어야 한다
국가론은 여기서 군인을 대신해 전술을 결정하지 않는다. 원거리 화력이 충분한지, 강을 건널 수밖에 없는지는 실제 군사 조건을 보아야 한다. 다만 몇 가지 결정은 나누어야 한다. 지금 국경을 넘어오는 공격을 물리치는 일, 전시라는 법적 상태를 선언하는 일, 몇 달 뒤 강을 건너 진격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앞의 결정에 근거가 생겼다고 뒤의 모든 일까지 근거를 얻는 것은 아니다.
방어를 시작할 때는 전쟁을 거치지 않는 길이 이미 막혔는지, 저항하지 않으면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생활을 이어 갈 수 없게 되는지 물어야 한다. 확대할 때도 현재를 다시 물어야 한다. 확대하지 않으면 원래 지키던 곳을 잃게 되는가. 범위와 강도, 목표, 기간, 수단 가운데 무엇을 바꾸든 ‘이미 싸우고 있으니까’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위협이 생길지 모른다는 말은 지금 일어나는 공격과 같은 이유가 아니다.
더 눈에 안 띄는 질문도 있다. 다른 선택이 없다고 누가 인정하는가. 강을 건너기로 결정한 세 사람만 그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쉽게 ‘내가 그렇게 정했다’가 된다. 필요성은 지휘하는 쪽이 독점하지 않는 절차에서 확인되어야 하고, 기한이 있으며, 그 확인도 질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계속하려면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부담이 뒤집힌다. 권력을 쥔 사람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증명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이제 필요 없다고 증명해야 하게 된다.
연합도시국 의회 양원은 전시 상태를 선언하는 표결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도강 제안이 아직 없었다. 도강 6시간 전 합동위원회가 비공개 보고를 한 번 들었는데, 기록에는 확인했다는 말도, 확인하거나 거부할 권한이 있다는 말도 없었다. 소식을 들었다는 것과 독립 판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다르다. 지금 자료로는 이번 확대가 요구 조건을 갖추었다고 인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료에 없는 항목을 모두, 없었다고 확인된 사실로 바꿀 수도 없다.
총장이 반대한 다음 해임된 일은 조사할 만하다. 그러나 순서대로 일어났다고 보복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대외 집정관은 2 대 1에서 반대표를 던졌으므로, 회의가 최종 통과시켰다고 세 사람 모두의 찬성으로 바꿔 쓸 수도 없다. 국가는 자기 이름으로 한 행위를 감당해야 하지만 기록은 직위와 사람별로 나뉘어야 한다. 누가 제안하고 반대하고 승인하고 실행했는지 각각 남겨야 한다.
이것은 기관과 직위의 책임이지 온 국민에게 내리는 도덕 명령이 아니다. 국가가 전쟁을 선언했다고 모든 군인과 민간인이 각자 받아들여야 할 이유까지 써 놓은 것은 아니다. 제도는 실행자에게 길을 남겨야 한다. 이의를 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심사 가능한 절차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복종하거나 홀로 결과를 감당하는 두 길만 남아서는 안 된다.
대합실에 남는 또 하나의 문제
강을 건넌 뒤 밀벌 완충지대에는 검문소 네 곳이 설치되었다. 열여섯 살부터 예순 살까지의 남자는 드나들 때 신원 등을 심사받아야 했다. 약 1,900명이 하룻밤 이상 억류되었고 230명은 연합도시국 안의 구금시설로 보내졌다. 기소 없이 가장 길게는 11개월 동안 갇혔다. 현지에는 야간 통행금지와 곡물 징발, 정전도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서쪽 이웃 국적이어서 연합도시국에 투표할 수 없었다.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35킬로미터 가면 군용열차와 여객열차가 함께 다니는 분기마을이 있었다. 승인된 공격이 오전 7시 40분 철도 분기점과 역 대합실을 맞혔다. 서쪽 이웃은 사망 63명 중 민간인 41명이라고 발표했고, 연합도시국이 발표한 민간인 사망자는 22명이었다. 이 글은 두 수치를 통일해 검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표적 메모의 한 문장은 분명했다. ‘여객열차 시간 미확인.’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은 의도한 표적이 아니었지만 공격은 그들에게 떨어졌다. 완충지대 주민은 자국민이 아니지만 검문소와 구금시설을 만들고 곡물 징발 영수증을 낸 것은 자국 군대였다. 주민들은 싫다고 말해서 피할 수 없고, 다른 국경을 건넌다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앨 수도 없다. 이 행위들에 대해서는 자국이 그들에게 답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자국민으로 만들지는 않고, 점령자에게 그들의 나머지 생활을 관리할 자격을 주지도 않는다.
무기를 내려놓았거나 포로가 되었거나 부상과 질병으로 싸우고 있지 않은 적 전투원도 보호 밖에 둘 수 없다. 자국이 붙잡고 가두고 치료한다면 그 행위들에 답해야 한다. 그들과 현지 민간인에게는 독립적이고 실제로 닿을 수 있으며 사용해도 보복받지 않는 진정의 길이 필요하다. 여전히 싸우는 전투원에게 무력을 어떻게 쓸지는 다른 문제다. 현재의 강압 능력을 제거하되 전후에 생활을 다시 시작할 조건까지 부수지 말아야 한다는 수단의 제약이 있다. 구분 없이 모든 무력행사를 같다고 읽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섞으면 안 되는 두 가지를 특히 나누어야 한다. 하나는 그 군사행동이 당시에 정말 필요했는가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엇을 했는가다. 군사적으로 실제 피할 수 없는 행위였어도 민간인에게 준 피해는 그 사람에 대한 침해로 남는다. ‘대가’로 이름을 바꾸고 끝낼 수 없다. 거꾸로 그 피해를 인정한다고 당시 그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되었다는 결론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두 질문에는 각각 근거가 필요하다. 하나로 다른 하나의 답을 미리 끝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대합실의 피해를 적는다고 침략에 맞서는 것과 침략을 시작하는 일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전쟁을 시작하고 넓힌 이유, 매 걸음이 위협을 제거하는 경계를 넘었는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방어의 이유를 허가증으로 바꿔, 각 피해자가 자신은 올바른 행동의 부작용으로 셈해졌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날 대합실이 우연히 비어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여객열차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직무상 잘못은 남는다. 운은 피해가 일어났는지를 바꿀 수 있다. 메모를 쓰고 공격을 승인한 자리들이 하지 않은 일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실제 피해와 직무상 잘못은 각각 조사해야 한다.
전쟁 확대에는 사전에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전 중 검문 하나, 공격 하나마다 회의를 기다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미리 공개된 규칙에 따라 행동하고, 나중에 지휘하는 쪽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심사해야 하며, 그 시기도 밝혀야 한다. 갇힌 사람이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입을 열게 되어서는 안 된다. 민원이 같은 방위청으로 돌아갔다면 조사할 단서다. 그렇다고 같은 청이라는 이름만으로 독립 여부를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질문받는 쪽이 혼자 접수와 종결, 조사 계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도움이 언제 대신 결정하는 일이 되는가
완충지대에는 나중에 임시관리소가 생겼다. 관리소는 현지인 열한 명을 골라 자치위원회를 만들고, 학교의 기존 ‘국가 목적’ 수업을 연합도시국 하구시에서 만든 ‘시민’ 수업으로 바꾸었다. 새 수업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교사 37명은 해직되었다.
서쪽 이웃도 앞서 갈대마을을 점령했을 때 교과서를 바꾸었고 의사 두 명을 데려갔다. 의사들의 행방은 그 뒤에도 알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연합도시국이 교과서를 바꿀 자격이 생기지도 않는다. 상대가 경계를 넘었다는 것은 방어할 일이 있다는 뜻이지, 이제 자국이 강 건너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될지 정해 줘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판단은 세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 조치가 현재 제거할 위협을 직접 겨냥하는가. 이미 위협 제거를 넘어 남의 내부 일을 관리하고 재편의 방향을 정하기 시작했는가. 그 통제에 기한과 물러날 길을 밝힐 수 있는가. 학교를 복구하는 일이 다른 나라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곧 대신 결정하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교재를 정하며 가르치지 않는 교사를 누가 해직하는지는 그 관리가 무엇을 하는지 이미 보여 준다.
휴전 뒤 공격한 쪽은 강 서쪽으로 물러났고 교전이 끝났다. 이 공격에 저항한다는 원래의 근거도 그 지점에서 끝났다. 상대가 나중에 다시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 이 전쟁을 무한히 늘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계속 주둔하는 것은 새로운 확대다. 여전히 전쟁 중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때 세 제안이 나왔다. 하나는 철도 시설과 학교 복구에 돈을 대되, 현지에 ‘연합도시국 기준을 만족하는 선출기관’이 생길 때까지 관리소를 남기는 안이다. 하나는 완충지대를 장기 신탁통치로 바꾸는 안이고, 다른 하나는 90일 안에 철수하는 안이다. 앞의 두 안은 통제를 끝낼 열쇠를 점령자에게 남긴다. 선출기관이라는 이름이 기준을 외부에서 정한다는 사실을 바꾸지 않는다. 미래 질서를 좋게 만들고 싶다는 뜻만으로 결정권이 현지인에게 실제로 돌아간 것도 아니다. 제안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실행한다면 어디를 넘을지 판단할 수 있지만 이미 일어난 범죄로 쓸 수는 없다.
현지에는 연합도시국이 남기를 바라는 주민도 있고 집회를 열어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다. 양쪽 모두 실제 사람이며 들어야 할 목소리다. 어느 한쪽의 찬성이 점령자가 이전에 모두를 대신해 방향을 정한 일을 소급 승인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철군하고 옛 수업이 돌아왔다고, 처음부터 계속 남을 권리가 있었다고 거꾸로 입증할 수도 없다. 재건을 돌려주는 일에는 남들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재건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들어 있다.
철군 뒤 위원 아홉 명은 군을 따라 떠나 비호를 받았고, 남은 두 명은 서쪽 이웃에게 기소되었다. 이들의 처지는 연합도시국이 그들을 골랐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관리에서 물러난다고 자신도 참여해 만든 결과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일에 관한 설명과 질문에 답할 책임은 남는다.
양국 철군협정은 두 언덕에 각각 30명씩의 감시초소를 3년간 두고, 북쪽 이웃의 감시원도 함께 머물게 했다. 새 위협을 감시할 능력과 남의 땅에 거점을 두는 일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후자에는 여전히 어떤 승인으로 어떻게 들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물러날지를 설명해야 한다. 조약과 기한은 관련 근거이지만 모든 권한이 정당하다는 자동 증명은 아니다. 반대로 주둔군이라는 말만 듣고 반드시 식민화라고 미리 단정할 수도 없다.
처음에는 갈대마을 아이들이 잠들 수 있게 하자는 말이 있었다. 이쪽 강가에 온 것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강을 건넌 뒤 만나는 아이들도 구호 뒤의 배경은 아니다. 그렇다고 방어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무엇을 막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남의 생활을 대신 짜기 시작했는지 매번 나누어 보아야 한다. 전쟁이 보호하는 것은 계속 살아갈 사람이지, 국가 목표 뒤로 물러나 모든 것이 끝난 다음에야 계산될 사람이 아니다.
원논문과 읽기 안내
기존 중국어 교양 산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문장과 호흡에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바탕이 된 연구는 SAE 국가론의 여덟 논문이며, 각 글에서 해당 논문으로 이어진다. 사례 속 국가·지명·사건은 원논문이 설정한 허구다. 이 글은 철학적 요구와 제안하는 제도, 개별 상황에서의 판단을 구별하며 현행법을 설명하거나 현실의 특정 국가를 판정하지 않는다. 기술적 논증을 모두 옮긴 것도, 모든 사례의 결론을 내렸다는 뜻도 아니다. 개념의 엄밀한 정의와 상세한 한정, 정치철학과의 대화는 논문에 남겨 두고, 여기서는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따라 질문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