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E와 스피노자의 『에티카』 · 6번째 글
여섯 번째 글 · 마흔여덟 항목, 세 가지 감정
이름은 일상에서 빌립니다. 그 이름의 쓰임을 안다고, 본성이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3부 마지막 주석에서 그는 감정에 관한 논의를 돌아봅니다. 욕망·기쁨·슬픔이라는 세 가지 기본 감정이 결합해 생기는 주요 감정과 마음의 동요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것은 주요한 것들일 뿐, 가능한 마음의 갈등 전부는 아니라고도 합니다. 앞의 설명만 보아도 감정들이 서로 결합하는 방식이 얼마나 많고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변형이 생기는지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수를 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의도에는 주요한 것들을 열거하면 충분하며, 생략한 나머지는 유용성보다는 호기심에 더 관계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석 끝에서 그는 감정의 정의에 관해 주의할 것이 더 있으므로, 여기서 차례대로 다시 말하되 필요한 설명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겠다고 합니다.
마흔여덟 항목
첫째는 욕망, 둘째는 기쁨, 셋째는 슬픔입니다. 기쁨은 사람이 더 작은 완전성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며, 슬픔은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흔여덟 번째까지 이어지고, 여러 항목에 설명이 붙습니다. 셋째 항목의 설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이행이라고 한 까닭은, 기쁨이 완전성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는 놀라움입니다. 그런데 설명에서는 놀라움을 감정에 포함하지 않으며, 포함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놀라움을 여기서 다룬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세 기본 감정에서 파생된 어떤 감정이 우리가 놀라는 대상을 향할 때 관습상 별도의 이름을 갖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경시의 정의도 더했다고 말합니다. 다섯째가 바로 경시입니다. 이어서 숭경과 멸시는 여기서 정의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한 그것들에서 이름을 얻은 감정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스무 번째 항목 뒤에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이 이름들이 일상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목적은 말의 뜻이 아니라 사물의 본성을 설명하는 데 있다. 평소 뜻이 내가 쓰려는 뜻과 아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 말을 가져와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점은 한 번 밝혀 두면 충분하다. 서른한 번째에서는 다시 한마디 보탭니다. 감정의 이름은 그 본성보다는 쓰임을 따른다고 이미 주의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큰아버지와 외삼촌
같은 남자를 두고도, 남동생의 아이는 큰아버지라고 부르고, 여동생의 아이는 외삼촌이라고 부르며, 자기 아이는 아빠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같은 한 명입니다.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누가 부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말고는
마흔여덟 번째 설명의 끝에서 그는 시샘과 다른 마음의 동요는 아예 정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이미 정의한 감정들이 합쳐져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대강 알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이것이 보여 준다고 합니다.
곧바로 이렇게 이어집니다. 앞에서 설명한 감정의 정의를 보면 그것들이 모두 욕망이나 기쁨이나 슬픔에서 나온다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 이 세 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각각이 보통 여러 이름을 가지는 까닭은 관계가 다르고, 외부에서 붙이는 호칭이 다르기 때문이다.
맺으며
그 뒤 그는 정신의 수동이라고 부르는 감정에 대한 일반 정의를 내립니다. 세 가지를 한 문장에 담습니다. 이어지는 해설에서 표현 하나하나를 짚다가 그 정의 문장의 뒷부분을 설명하면서 3부가 끝납니다.
내가 문장의 이 뒷부분을 덧붙인 것은 기쁨과 슬픔뿐 아니라 욕망의 본성도 나타내기 위해서다.
SAE와 나란히 읽기 · 선택해서 읽는 곁글
SAE 『제1비판』은 책을 열며 몇 가지 글쓰기 원칙을 정합니다. 넷째는 비유가 정의를 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용어는 먼저 엄밀한 말로 정의하고, 비유는 이미 정의된 것에 설명을 보탤 뿐입니다. 여기서 스피노자가 다루는 것은 이름입니다. 본성을 설명하는 것은 정의이며, 이름은 일상의 쓰임에서 빌려 와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알려 줍니다. 이것은 곁글이지 논증이 아닙니다.
SAE 『제1비판』 산문 읽기본문·판본·출처
이 한국어판은 Non Dubito에 공개된 중국어 산문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에티카』 전체나 전문 논문을 옮긴 번역은 아닙니다. 기존 영어판도 영어권 독자를 위해 따로 썼으며, 중국어 간체판과 번체판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바탕 원고가 인용한 공개 라틴어 본문에는 사용한 인쇄본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웹판에서는 The Latin Library의 라틴어 전사본으로 대조하고, 각 편의 판본 주와 링크에 해당 위치 및 확인 범위를 적었습니다. 이 전사본을 새로 편집한 비평판이라고 하거나, 원고가 처음 이용한 미상의 웹페이지와 같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SAE와 나란히 읽는 곁글은 선택해서 읽는 비교이며, 증명은 아닙니다.
본문과 판본에 관한 주
3부 명제 59의 주석 끝, 감정의 정의 3~5·20·31·48, 마지막 감정의 일반 정의에 해당합니다. 마흔여덟은 번호가 붙은 항목의 수이지,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모두 셌다는 뜻이 아닙니다.
큰아버지·외삼촌·아빠의 예는 이 연작의 비유입니다. 설명 문단의 정확한 총수는 이름과 정의를 구분하는 논의를 좌우하지 않으므로 논거로 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