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E와 스피노자의 『에티카』 · 1번째 글
첫 번째 글 ·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정의에서 말하는 것은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입니다. 주석에 돌아오면 ‘그들도 이렇게 이해할 것이다’가 됩니다.
『에티카』의 본문은 정의 하나로 시작합니다.
자기원인이란 그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달리 말해 그 본성을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기하학의 순서에 따라 증명하는 책에서, 본문의 첫 동사는 1인칭입니다. 나는 이해한다.
여덟 가지 정의
1부의 정의는 모두 여덟 개입니다. 그중 여섯 개가 같은 모양입니다. 먼저 낱말을 내놓고, 나는 그것을 무엇으로 이해하는지 말합니다. 자기원인, 실체, 속성, 양태, 신, 영원이 그렇습니다.
나머지 두 정의에는 이 ‘나’가 없습니다. 대신 ‘일컫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는 같은 본성을 지닌 다른 것에 의해 한정될 수 있는 것을 그 종류에서 유한하다고 일컫는다는 정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본성의 필연성만으로 존재하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활동하도록 결정되는 것을 자유롭다고 일컫는다는 정의입니다.
신의 정의 뒤에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 첫머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절대적 무한이지, 그 종류에서 무한하다는 뜻이 아니다.
유클리드의 『원론』을 여는 정의들에는 이런 ‘나’가 없습니다. 첫 정의는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라는 문장입니다.
그 뒤로 ‘나’는 말하지 않는다
정의 다음에 나오는 공리 일곱 개에도 ‘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다음은 명제입니다. 첫 명제는 ‘실체는 본성상 그 여러 상태에 앞선다’입니다. 증명은 단 한 문장입니다. 정의 3과 정의 5에서 명백하다.
앞에서는 1인칭으로 말한 것들이, 여기서는 번호로 불리는 근거가 됩니다. 정의 3, 정의 5. 뒤의 증명도 정의 몇 번, 공리 몇 번, 명제 몇 번을 끌어와 이어집니다. 여덟 번째 명제까지 내려가도 이 ‘나’는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돌아올 때
여덟 번째 명제 뒤에는 주석 두 개가 붙어 있습니다. 둘째 주석의 첫머리에 그 ‘나’가 돌아옵니다.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사물에 관해 혼란스럽게 판단하고 제1원인으로부터 사물을 아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곱 번째 명제의 증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일곱 번째 명제는 존재가 실체의 본성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사물의 참된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뒤섞는다고 씁니다. 나무도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은 씨앗에서뿐 아니라 돌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체의 본성에 주의를 기울이면 일곱 번째 명제가 참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그 명제는 모두에게 공리가 될 것이다. 그들도 실체를 자기 안에 있고 자기 자신을 통해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에서는 내가 이렇게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그들도 이렇게 이해할 것이라고 합니다.
같은 주석에서 참된 정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도 말합니다. 정의는 정의되는 것의 본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거나 표현하지 않습니다. 삼각형의 정의가 표현하는 것은 삼각형의 단순한 본성이지, 어떤 일정한 개수의 삼각형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을 시작하며 선생님이 말합니다. “여기서는 힘이 일정할 때의 일을 다룹니다. 내가 말하는 일이란 힘에, 그 힘의 방향으로 일어난 변위를 곱한 것입니다.”
그날 수업 내내 일은 그 정의대로 계산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매번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나’는 처음 한 번만 나왔지만, 뒤의 모든 단계가 그 말에 기대어 있습니다.
어느 대목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이 막힐 것을 짐작하고 잠깐 멈추어 다시 말합니다. “이 단계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나도 압니다.”
맺으며
이 책 첫머리의 ‘나’는 몇 가지 말을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말했습니다. 주석에서 돌아온 뒤에는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누구나 이렇게 이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명제 밑에는 증명이 붙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명제가 아닙니다. 주석 안에 적혀 있습니다.
SAE와 나란히 읽기 · 선택해서 읽는 곁글
SAE 『제1비판』도 자기 목소리에 역할을 나눕니다. 바깥의 대상을 말할 때는 객관적으로 쓰고, 자신을 심사할 때는 1인칭을 쓰며, 무엇을 떠맡고 무엇을 거두어들이는지 서명할 때는 ‘우리’를 씁니다. 스피노자는 다르게 나눕니다. 정의에서 말하는 이는 ‘나’이고, 처음 여덟 명제를 추론하는 동안 그 ‘나’는 말하지 않다가, 주석에서 돌아옵니다. 이것은 곁글이지 논증이 아닙니다.
SAE 『제1비판』 산문 읽기본문·판본·출처
이 한국어판은 Non Dubito에 공개된 중국어 산문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에티카』 전체나 전문 논문을 옮긴 번역은 아닙니다. 기존 영어판도 영어권 독자를 위해 따로 썼으며, 중국어 간체판과 번체판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바탕 원고가 인용한 공개 라틴어 본문에는 사용한 인쇄본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웹판에서는 The Latin Library의 라틴어 전사본으로 대조하고, 각 편의 판본 주와 링크에 해당 위치 및 확인 범위를 적었습니다. 이 전사본을 새로 편집한 비평판이라고 하거나, 원고가 처음 이용한 미상의 웹페이지와 같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SAE와 나란히 읽는 곁글은 선택해서 읽는 비교이며, 증명은 아닙니다.
본문과 판본에 관한 주
1부 정의 1~8, 공리 1~7, 명제 1~8, 그리고 명제 8의 둘째 주석에 해당합니다. 이 글은 문법적 인칭이 어떻게 역할을 나누는지 살핍니다. ‘나는 이해한다’고 썼다는 이유로 정의가 임의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수업의 예는 힘이 일정할 때의 일에 한정됩니다. 정의가 이후 계산을 어떻게 지탱하는지 보여 줄 뿐, 스피노자의 진리관을 증명하는 사례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