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회고 — 여항을 전제로 삼는 구
완결을 약속하지 않는 제도는 실패를 없애는 대신 수정의 통로를 남긴다
1. 성문헌법 안에 함께 들어간 두 핵
앞의 스물다섯 편은 워싱턴의 자발적 퇴임에서 2000년 법원이 끝낸 선거까지 따라왔다. 마지막 편의 목적은 사건을 한 번 더 요약하는 데 있지 않다. 미국 사례가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에 무엇을 더했는지, 그리고 ‘사람은 목적’이라는 가느다란 선이 왜 반복해서 역사의 표면으로 올라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미국의 헌정에는 처음부터 두 핵이 함께 있었다. 권력분립, 연방주의, 선거, 수정과 공개논쟁은 어떤 의지도 전체를 완전히 닫지 못하게 했다. 동시에 노예제와 불완전한 시민권, 영토의 위계가 정치공동체의 바깥을 만들었다. 갈등을 견디는 개방성과 사람을 배제하는 폐쇄가 하나의 문서와 관행 안에서 공존했다.
그래서 이 역사는 완성을 향한 직선이 아니다. 제도가 갈등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정의 길이 남았고, 같은 이유로 부정의가 오래 유예될 수도 있었다. 대통령은 이 구(構)의 주인이 아니라 여러 기관, 운동, 전쟁과 경제 사이에서 선택이 증폭되는 자리였다. 개인의 결단이 중요했지만 결단이 역사 전체를 소유한 적은 없었다.
2. ‘닫히지 않음’을 설계의 전제로 삼다
미국의 구는 근대 성문 헌정 가운데 가장 이르고 가장 명시적인 실험 중 하나로서, 갈등과 야심을 없앨 수 없다는 판단을 제도설계의 출발점에 놓았다. 인류 최초의 헌정도, 모든 원리가 무에서 나온 유일한 창조도 아니다. 영국의 관행, 대서양의 공화주의, 식민 경험과 원주민 연합 등 여러 선행 경험 속에서 나온 조합이었다.
매디슨 세대는 통치자의 덕을 전제하지 않고 권력이 권력을 견제하도록 했다. 이것은 구가 언젠가 완전한 합의에 도달한다는 약속이 아니었다. 오히려 완전하지 않은 인간과 파벌이 공동체를 찢지 않으면서 계속 다툴 수 있도록 자리를 나눈 설계였다. 끝점을 잘 설계한 것이 아니라 끝점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인 데 의미가 있다.
그 전제가 미국을 폐쇄 충동에서 면역시킨 것은 아니다. 외국인·선동법, 적색공포, 일본계 수용, 매카시즘은 질서를 위해 이견을 없애고 싶어 하는 욕망이 반복해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닫힘을 추구하지 않는 구에서도 닫고 싶은 충동은 사라지지 않는 여항(餘項)이다. 개방성은 충동의 부재가 아니라 그 충동이 최종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는 반복적 노력이다.
3. 억압도 포용도 완결을 만들지 못한다
여항은 단순한 오류나 남은 찌꺼기가 아니다. 구가 자기 형태를 유지하려고 바깥으로 분류한 사람, 이해와 모순이다. 노예는 경제와 대표제에 필요하면서 시민권 밖에 있었고, 노동자는 산업을 지탱하면서 계약상 동등한 개인으로만 취급됐다. 영토 주민은 미국 주권 안에 있으면서 그 주권을 만드는 표에서 제외됐다.
억압은 여항을 닫지 못한다. 배제된 사람은 도주하고 조직하고 투표와 소송, 파업과 행진으로 정의를 바꾸려 한다. 더 깊은 문제는 포용도 완전한 닫힘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포용은 경계를 다시 긋는 행위이므로 새 안과 밖을 만든다. 사회보장이 일부 직업을 포함하는 순간 제외된 직업이 더 선명해졌다.
여항은 대개 두 얼굴을 한 몸에 묶는다. 정당갈등은 자유로운 차이이자 무질서의 비용이고, 영토확장은 기회와 안전이자 노예제와 원주민 박탈의 통로였다. 질서를 요구하는 닫힘의 충동도 공공안전에 대한 관심과 이견 억압을 함께 품는다. 어느 한 면만 취해 완전히 흡수하거나, 다른 면만 보고 제거할 수 없기에 구는 끝내 닫히지 않는다.
4. 미완의 보편주의는 보증이 아니라 지렛대였다
독립선언의 ‘모든 사람’, 시민권, 평등보호와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다. 그 위선은 실제였지만 문장을 무용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배제된 사람은 공동체가 인정한 언어를 지렛대로 삼아 공동체를 고발했다. 노예제 폐지, 재건 수정헌법, 여성참정권과 민권운동은 모두 약속의 소유자를 넓히는 투쟁이었다.
원칙은 자동 집행되지 않았다. 선언은 노예를 해방하지 않았고 수정헌법은 스스로 투표소를 지키지 않았다. 브라운 판결은 혼자 학교 문을 열지 못했고 투표권법도 차별의 모든 새 기술을 막지 못했다. 조직, 행정적 구제와 자원이 없으면 보편주의는 같은 폐쇄를 장식하는 문구가 될 수 있다.
포용에는 보증도 일방향의 톱니도 없다. 재건기의 권리는 정치연합과 연방보호가 약해지자 밀려났고, 뉴딜의 노동보호도 뒤의 정부에서 좁아졌다. 반대로 한번 쓰인 평등의 언어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 다음 세대가 다시 집어 들었다. 미완의 보편주의는 반드시 승리하는 주제가 아니라 없앨 수 없는 여항으로 남았다.
5. 팽창, 견제, 반동의 리듬
권력의 측면에서 스물다섯 편을 꿰는 리듬은 팽창, 견제와 반동이다. 잭슨의 거부권, 링컨의 전시권력,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관리인 이론, 뉴딜 행정국가, 냉전 국가안보국가와 닉슨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서로 다른 위기와 정당성을 통해 행정부의 몸을 키웠다.
견제는 선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언론과 형사절차를 지키기도 했고 재건 수정헌법을 좁혀 폭력의 출구를 막기도 했다. 주는 민주주의 실험실이자 짐 크로의 요새였고, 의회는 워터게이트를 조사하면서 린치금지법을 막았다. 권력분산은 교정 지점을 늘리는 동시에 폐쇄가 숨을 지점도 늘린다.
1937년의 사법위기와 워터게이트는 제도가 한쪽의 완전한 승리보다 조정을 통해 버틴 사례다. 법원확대안은 실패했지만 행정국가의 상당 부분은 합헌성을 얻었고, 닉슨은 물러났지만 대통령직은 유지됐다. 교정은 진짜였으나 영구적이지 않았다. 눌린 행정권은 이란-콘트라에서 다시 경계를 시험했다. 반동은 과거를 원상복구하지 않고 수정된 지형 위에서 움직인다.
6. 추상적 ‘모든 사람’ 뒤의 구체적인 사람
‘사람은 목적’이라는 원리는 추상적 선언으로만 남으면 오히려 사람을 희생할 수 있다. 잭슨의 ‘인민’은 백인 남성 유권자를 넓히면서 원주민을 밀어냈고, ‘안보’는 일본계 가족을 수용소에 가뒀다. ‘질서’는 반대자를 적으로 만들었고, ‘효율’은 이의제기 힘이 약한 도시 공동체 위로 고속도로를 그었다.
정책에 비용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비용을 지는 사람이 말하고, 이의를 제기하며, 결정의 정의를 바꿀 주체로 인정되는지가 시험이다. 사람이 숫자, 위협, 장애물로만 등장하면 구는 공동의 필요와 권력자의 편의를 구분할 통로를 닫는다. 구체적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곳에서 수정이 시작된다.
이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은 모순 없는 영웅의 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위공간을 돌려준 결정이다. 워싱턴의 퇴임, 애덤스 시대의 정권교체, 노예 자신의 탈출이 만든 해방정책, 리틀록의 집행, 닉슨 녹음의 제출이 그렇다. 자기제한의 가치는 지도자의 인품을 빛내는 데 있지 않고 타인을 다시 정치의 주체로 만드는 데 있다.
7. 세 연작의 대조가 이론에 더한 것
유라시아 제왕 연작과 비교하면 미국 대통령제는 혈통승계에 덜 의존하고 반대파를 형식상 합법으로 둔다. 그래서 매번 권력이 넘어갈 때 국가 전체를 파괴할 위험이 줄었다. 그러나 전쟁, 비밀과 전국적 매체는 대통령에게 창건자가 상상하지 못한 능력을 모았다. 공화적 형식만으로 권력집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연작이 보여 준 많은 구는 먼저 닫힘을 추구하고 여항의 반격으로 불가능을 배웠다. 미국 사례는 닫히지 않음을 한계에서 설계의 전제로 뒤집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여항이 폭발할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조직되고 지속적으로 규칙을 수정하게 하는 모델이다. 이것이 착구주기율에 더해진 새로운 변형이다.
다만 ‘닫힘 충동 자체가 여항’이라는 명제는 모든 구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닫힘이 조직원리인 제국적 구에서는 그 충동이 중심이며 여항이 아니다. 무엇이 여항인지는 절대적 속성이 아니라 구의 조직원리와의 관계에서 정해진다. 반면 여항이 양면적이어서 완전한 흡수와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원리는 더 넓게 적용된다.
8.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다
2000년 선거는 이 이야기의 결론이 아니라 자른 지점이다. 테러, 금융위기, 디지털 플랫폼, 양극화, 팬데믹과 새로운 인종갈등은 다시 대통령권한을 키우고 견제를 시험하게 된다. 현재를 최종장으로 쓰는 순간 우리는 1920년대의 정상이나 1990년대의 역사종말과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착(鑿)은 모순이 보일 때마다 제도를 전부 파괴하라는 명령도 아니다. 굳어 버린 부분을 열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한 능력은 보존하는 작업이다. 때로 수정헌법이, 집행과 공개가, 조직과 사임이 필요하다. 교정의 크기와 방법은 어떤 장치가 누구의 출구를 막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두 세기의 가장 방어 가능한 유산은 도덕적 예외성이 아니라 불완전한 수정의 관행이다. 어떤 승리도 모든 사람을 대표하지 않고 어떤 견제도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 위에서만 구는 계속된다. 여항을 제거할 적이 아니라 말을 걸어오는 존재로 남겨 둘 때, 역사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충동보다 다시 쓸 수 있는 힘이 커진다. 착구의 주기는 여전히 돌고 있다.
이 결론은 미국을 모범답안으로 세우지 않는다. 수정의 통로를 가졌다는 사실과 실제로 수정한다는 사실 사이에는 언제나 행동의 간격이 있다. 그 간격에서 피해가 누적되고 때로는 반동이 이긴다. 다만 완결을 선언하지 않는 구는 실패를 인정해도 자기 존재 전체를 부정할 필요가 없고, 바로 그 점에서 다시 시작할 제도적 언어를 남긴다.
중국어 원고의 논증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독립 재구성한 글입니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