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에서 전자를 빼앗다
당신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받아들이는 산소는 모두 물을 쪼개 얻은 것이다. 1941년, 연구자들이 물에 표지를 달았다. 물속 산소를 조금 더 무거운 산소로 바꾸어 어떤 녹조류에게 주었더니, 녹조류가 내놓은 산소에서도 그 표지가 나왔다.
식물과 조류, 남세균은 물 분자를 쪼개 그 안의 전자를 가져가고, 남은 산소는 폐기물로 공기 중에 내보낸다. 오늘날 광합성을 하는 생물의 산소 생산 속도는 대단하다. 약 4천 년이면 대기의 산소를 전부 한 번 갈아치울 수 있다.
하지만 지구 대기에는 아주 오랫동안 산소가 거의 없었다. 약 24억 년 전에야 산소가 처음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지질학자들은 이를 대산소화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번 글은 그 폐기물이 행성 하나를 통째로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왜 물을 쪼개야 하는지부터 보자. 광합성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빛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전자를 구하는 일이다. 광합성이 하는 일은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바꾸는 것이고, 그 과정의 핵심은 이산화탄소에 ‘전자를 더하는’ 데 있다.
이산화탄소 속 탄소는 전자가 부족한 상태이고, 당 속 탄소는 전자가 풍부한 상태다. 앞의 것을 뒤의 것으로 바꾸려면 어딘가에서 전자를 구해 넣어야 한다. 그러니 어떤 광합성이든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자를 어디서 가져올 것인가.
여기서 빛이 제공하는 것은 전자가 아니다. 어딘가에서 전자를 뽑아내는 데 필요한 힘이다. 지금 살아 있는 광합성 세균 중 산소를 내놓지 않는 것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전자를 얻는다. 황화수소, 원소 상태의 황, 수소 기체, 2가 철, 또는 어떤 유기물이다. 이들 가운데는 보라색이나 초록색을 띠는 것이 많고, 못 하나의 물을 온통 자줏빛으로 물들이는 것도 있다.
이 물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초에 자기 전자를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아서, 가져가는 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물은 다르다. 물은 자기 전자를 대단히 단단하게 붙잡는다. 여러 물질을 ‘얼마나 선뜻 전자를 내주는가’에 따라 줄 세우면, 물은 가장 내주려 하지 않는 쪽 끝에 가깝다. 황화수소와 2가 철, 수소 기체는 훨씬 쉽게 내주는 쪽에 선다.
그런데 전자를 쉽게 내주는 이 공여체들은 양이 많지 않다. 화산 분화구나 온천, 황화수소가 솟는 곳 정도에만 있다. 물에서 전자를 얻는 법을 익힌다면 그때부터는 원료 걱정이 없어진다. 물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황화수소에 의존하는 세균은 몇 군데 샘 주변을 지킬 수밖에 없지만, 남세균은 바다 전체를 떠다니며 채울 수 있다. 남세균은 예전에 남조류라고 불렀다. 여름이면 호수 표면을 번들거리는 초록빛으로 덮는 녹조도 상당수가 이들이다.
그러므로 황화수소에서 전자를 얻는 광합성 세균과 물에서 전자를 얻는 남세균이 하는 일을, 난도가 비슷한 같은 작업으로 볼 수는 없다. 남세균 몸속에서 물을 쪼개는 장치는 광계 II라고 한다. 이 장치가 찰나에 만들어 내는 전자 탈취 능력은 알려진 생물학적 시스템 가운데 최강에 속한다. 그런데 이것도 첫 번째 고비일 뿐이다.
두 번째 고비는 개수다. 물 분자 두 개에서 전자를 빼내 산소 분자 하나를 내놓으려면, 전자를 모두 네 개 빼내야 한다. 동시에 양성자 네 개도 내보내고, 산소 원자 두 개를 연결해 산소 분자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광자는 하나씩 온다. 한 번에 줄 수 있는 힘도 한 몫씩이다.
한 번에 한 곳만 들 수 있는 지렛대로, 네 귀퉁이를 동시에 들어야 하는 물건을 들어 올리는 셈이다. 그러니 먼저 모아 두어야 한다. 현대의 시스템이 쓰는 방법은 할부다. 네 차례의 광화학적 산화를 금속 클러스터 하나에 차례로 저장하고, 네 번의 몫이 다 모이면 산소를 한꺼번에 내놓는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아챈 것은 일련의 섬광 실험에서였다. 1969년 프랑스 연구자들이 광합성 재료를 어둠 속에 두었다가 아주 짧은 빛을 한 번씩 비추고, 매번 산소가 얼마나 나오는지 측정했다. 처음 두 번에는 산소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에 가장 많이 나왔고, 그다음부터는 네 번마다 봉우리가 나타났다. 일곱 번째, 열한 번째. 봉우리는 점점 낮고 평평해졌다.
이듬해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생물물리학자 코크는 이를 단계별로 축적되는 순환으로 정리했다. 물에서 산소로 한 차례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왜 연속 네 번의 광화학적 사건이 필요한지를 설명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지금도 이를 코크 회로라고 부른다.
전하를 모아 두는 그 금속 클러스터는 망간 네 개, 칼슘 한 개, 산소 다섯 개로 이루어진다. 그 모습은 여러 단계를 거쳐 드러났다. 2011년 일본 연구자들이 마침내 충분히 선명하게 찍어 냈다. 열 개의 원자가 비뚤어진 의자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는 극히 짧은 방사선 섬광으로, 방사선에 망가지기 전에 그 모습을 찍은 이들도 나왔다. 전하를 모으는 각 단계에서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본 것이다. 인공 광합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십 년째 이 장치를 흉내 내고 싶어 한다. 값싼 금속으로 상온에서 물을 쪼개는 일. 자연은 망간 네 개와 칼슘 한 개만으로 그 일을 해냈다.
이 클러스터가 어디에서 왔는지에는 단 하나로 정해진 답이 없다. 초기 광합성 세균이 먼저 물속 망간에서 전자를 얻는 법을 익혔고, 그 과정에서 단백질이 망간을 조금씩 자기편으로 편입했다는 견해가 있다. 한편 오늘날의 광계 II는 빛을 받으면 물속 망간 이온으로 이 클러스터를 스스로 조립할 수 있다는 실험도 있다. 초기에도 그랬다면, 미리 완성된 별도의 전신이 꼭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산소를 내놓는 광합성에는 광계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하는 일도 필요하다. 순서상 앞에 서서 물에서 전자를 뽑아내는 것이 오히려 광계 II다. 발견은 나중에 되었기 때문이다.
뒤에 있는 광계 I로 전달된 전자는 광자를 한 번 더 흡수한다. 두 번째로 끌어올려져 충분히 강한 ‘전자 제공 능력’을 갖추고, 마지막에는 이산화탄소에 건네진다. 한 번 끌어올려서는 부족하니 두 번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금 살아 있는 광합성 세균 중 산소를 내놓지 않는 것들은 보통 광계가 하나뿐이다. 이들의 전자 공여체에서는 원래 전자를 뽑기가 쉽다. 황화수소에서 전자를 얻을 때는 그렇게 높이 끌어올릴 필요가 없어서 한 번이면 된다. 그러니 광계가 하나냐 두 개냐는, 전자를 어디서 얻으려 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 광계가 어떻게 한데 모였는지에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조상에게 원래 두 벌이 다 있었는데, 나중에 대부분의 계통이 한 벌씩 잃었다는 설명이 하나다. 서로 다른 세균에게서 각각 가져와 이어 붙였다는 설명도 있다. 수십억 년 동안 유전자가 사라지고 주인을 바꿔 온 탓에, 오늘날의 유전자 계통수는 어느 쪽으로도 읽힌다.
어느 쪽이든 제약은 같다. 전자를 어디서 얻느냐에 따라 몇 단계로 끌어올려야 하는지, 얼마나 강한 산화제가 필요한지, 무엇을 내보내게 되는지가 정해진다. 남세균이 내보내는 것은 산소다. 나중에 식물과 조류도 이 솜씨를 익힌 것은 남세균을 통째로 자기 세포 안에 들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5편에서 다룬다.
2 신호 하나가 사라졌다
수십억 년 전 대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가장 중요한 증거 하나는 황 속에 숨어 있다. 먼저 동위원소부터 이야기하자.
같은 원소에도 무게가 다른 판본이 있다. 원자핵 속 중성자 수가 다른 것이다. 화학적 성질은 거의 같고, 조금 더 무겁거나 가벼울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물리·화학적 과정에서 가벼운 쪽이 조금 더 빨리 움직이고, 조금 더 쉽게 반응한다.
그래서 어떤 과정을 거치고 나면 생성물 속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비율이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크기가 대체로 ‘얼마나 더 무거운가’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황에는 32, 33, 34, 36이라는 몇 가지 판본이 있다. 황-32에 대한 황-34의 비율이 어느 만큼 달라졌다면, 황-32에 대한 황-33의 비율은 그 절반쯤 달라져야 한다. 더해진 무게가 황-34의 절반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규칙을 질량 분별이라고 한다. 아주 믿을 만한 규칙이라, 거의 모든 평범한 과정이 이를 따른다. ‘질량 비의존 분별’은 이름만 들으면 입에 잘 붙지 않지만, 뜻은 무게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33이나 황-36이 질량에 비례해 그은 선에서 뚜렷하게 벗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규칙을 따르지 않는 분별을 실험실에서 처음 만들어 낸 것은 1983년이었다. 미국 화학자 티먼스가 방전으로 오존을 만들다가, 만들어진 오존 속 여러 산소의 비율이 질량을 따르지 않고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17년 뒤 그는 실험실 동료 두 명과 함께 오래된 암석 속 황에서 똑같은 어긋남을 찾아냈다. 실험실의 일이 지질사의 일로 넘어왔다.
그러면 어떤 과정이 규칙을 어기는 것일까. 현재의 설명은 자외선이 이산화황을 때린다는 것이다. 산소가 극히 적고 오존의 차폐도 없는 대기에서는, 단파장 자외선이 이산화황이 있는 대기층까지 그대로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황의 판본이 다른 이산화황 분자들은 빛을 흡수하는 미세한 구조가 단순히 질량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빛에 쪼개지는 비율에도 무게를 따르지 않는 차이가 생긴다.
이 생성물들은 바다의 서로 다른 황 저장고로 들어가고, 마침내 퇴적물에 보존된다. 이 작은 어긋남을 측정하려면 암석에서 황을 추출해 기체로 바꾼 뒤, 기기에 넣어 무게별로 하나씩 나누어 세어야 한다.
2000년 이 세 연구자는 약 24억 5천만 년 전보다 오래된 암석에서 이처럼 규칙을 어기는 황이 널리 나타나며, 어긋남도 매우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의 암석에서는 어긋남이 갑자기 줄어들고, 약 20억 9천만 년 전 이후에는 측정되지 않았다. 대기가 달라졌다는 가장 단단한 증거 하나다.
신호가 사라지는 데에는 서로 다른 두 고리가 있다. 첫째, 산소가 늘면 대기 속 황은 원래 어떤 것이었든 결국 모두 산화되어 황산염이라는 한 가지 형태로 떨어진다.
원래 여러 길로 갈라져 가면서 양과 음의 어긋남을 각각 지니던 황이 같은 웅덩이에 섞이면, 그 어긋남들이 서로 상쇄된다. 산소가 더 늘면 오존이 해당 파장의 자외선까지 막아 공장 자체가 멈춘다.
둘째, 대륙에서 산화적 풍화가 일어나면 바다의 황산염 총량이 늘어난다. 이상 신호를 지닌 황이 여전히 조금씩 바다에 들어오더라도, 평범한 경로를 거친 거대한 황 저장고 속에서 더 쉽게 희석된다. 기록이 옅어지는 것이다.
상쇄되든, 희석되든, 아예 더는 만들어지지 않든 암석에 남는 결과는 똑같다.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신호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렇다. 신호가 남아 있는 동안 대기에는 산소가 극히 적었다. 모형이 제시하는 상한은 오늘날의 약 10만분의 1이다. 신호가 사라지면 산소가 그 양을 넘어섰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얼마나 넘어섰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다른 증거에도 저마다의 근거와 저마다의 사각지대가 있다. 흔히 바보의 금이라고 부르는 황철석이나 우라늄을 함유한 어떤 광물 등은 산소가 있는 물을 만나면 산화되어 분해된다.
오래된 강모래에 이런 알갱이가 남아 있고, 물에 깎여 둥글어져 있다면, 물살에 씻기고 운반되는 내내 산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그 경로에 있던 물과 대기는 산화력이 아주 낮았다. 오늘날의 강에서는 이런 알갱이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산화되어 녹아 버린다. 남아프리카에는 약 28억 년 전의 옛 하상이 있는데, 이런 광물이 나오는 대표적인 곳이다. 세계에서 금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붉은 암층도 있다. 암석이 붉은 것은 대개 알갱이 표면에 녹 같은 물질이 한 겹 덮여 있기 때문이고, 녹이 슬려면 산소가 있어야 한다. 2024년 캐나다의 오래된 암층을 연구한 이들은 석영 알갱이 표면의 녹을 보고 그것이 퇴적 당시 생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비교적 확실한 초기 육상 적색층의 연대가 약 23억 1천만 년 전으로 잡혔다. 다만 녹은 한참 뒤 지하수가 가져다놓은 것일 수도 있으므로, 붉다는 사실만으로 퇴적 당시의 대기를 입증할 수는 없다.
유명한 암석이 또 있다. 붉은 층과 검은 층이 번갈아 겹쳐 층층이 쌓은 떡처럼 보이는 호상철광층이다. 세계 철광석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서호주의 해머슬리 산맥에서는 온통 이런 붉고 검은 층으로 된 절벽이 넓게 펼쳐진다. 바닷물에 대량으로 녹아 있던 철이 산화되어 가라앉은 기록이다.
하지만 철을 산화한 것이 반드시 대기의 산소인 것은 아니다. 표층 바닷물의 남세균이 그 자리에서 만든 약간의 산소일 수도 있고, 산소를 내놓지 않는 어떤 세균이 철을 직접 전자 공여체로 썼을 수도 있으며, 햇빛 속 자외선일 수도 있다. 철광층 하나가 곧 산소 있는 대기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누가 산화했든, 그 철은 오늘 우리 주변에 있다. 제강에 쓰이는 철광석의 상당 부분이 20여억 년 전 바다에서 가라앉은 바로 그 철이다.
암층 속에 묻힌 옛 토양, 곧 고토양은 또 다른 차이를 이용한다. 산소 없이 풍화가 일어나면 철은 물에 쉽게 실려 나간다. 산소가 있는 상태에서 풍화가 일어나면 철이 녹으로 바뀌어 흙에 남는다. 오늘날 중국 남부의 벽돌빛 붉은 흙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고토양 단면에서 철이 빠져나갔는지 남았는지를 보면 당시 대기를 짐작할 수 있다. 약 24억 4천만 년 전보다 오래된 고토양에서는 대체로 철이 빠져나갔다. 이를 환산하면 당시 대기의 산소는 대략 오늘날의 0.24퍼센트보다 적었던 셈이다. 이 수치는 모형으로 환산해야 하므로, 당시의 강수량과 배수, 온도, 토양이 형성되는 데 걸린 시간을 가정해야 한다.
크롬, 몰리브데넘, 우라늄, 셀레늄 같은 금속도 있다. 이들은 산화의 서로 다른 측면에 민감하다. 어떤 것은 육지의 풍화를, 어떤 것은 산소 없는 해저의 면적을, 어떤 것은 국지적 산화를 보여 준다. 이들의 결과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상할 것 없다. 애초에 같은 것을 재는 지표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에 한 지표에서는 신호가 나오고 다른 지표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면, 실제로 장소마다 달랐다는 뜻일 수 있다. 어느 한 지표가 반드시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3 산소는 어떻게 문턱을 넘었나
24억 년 전 지구에는 미생물만 있었다. 육지는 벌거벗었고, 바다에는 동물이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이 역사의 윤곽을 맞추어 낸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미국 지질학자 클라우드다. 1960~70년대에 그는 호상철광층은 대체로 20억 년 전보다 오래되었고, 육상의 적색층은 대체로 그보다 젊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대기가 한때 무산소 상태에서 산소가 있는 상태로 바뀌었다고 제안했다.
산소가 대기로 들어온 것은 하루 만의 일도, 단 한 번의 일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맞출 수 있는 경과를 시간순으로 풀면 대략 이렇다.
먼저 남세균이 물을 쪼개는 법을 익혔다. 이 단계가 언제 일어났는지부터 논쟁 중이다. 유전자로 추산해 30억 년 전, 심지어 그보다 더 일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이들은 남세균과 가장 가까운 일부 친척 가운데 지금껏 광합성을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중 한 갈래는 2013년 사람의 장과 지하수에서 발견되었다. 물을 쪼개는 능력은 나중에야 필요한 부품이 다 모인 것일 수 있다.
암석에는 실제로 대산소화보다 앞선 산소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서호주에 약 25억 년 전의 검은 셰일층이 있다. 2004년 미국 항공우주국이 지원한 사업에서 그곳에 시추공을 뚫고 신선한 암석 코어를 꺼냈다. 2007년에는 그 안에서 몰리브데넘과 레늄이 농축되어 있다는 측정 결과가 나왔다.
이 두 금속은 먼저 산소가 육지의 암석에서 ‘씻어 내야’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 몇 년 뒤 같은 암층에서 셀레늄의 이상 신호도 측정되었다. 다만 그 연구 역시 산소가 육지의 일부 지역에서만 생겼을 수도 있으며, 꼭 지구 전체의 대기에 들어가 있었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더 이른 후보로는 약 26억 6천만 년 전의 지층도 있다.
이런 ‘산소의 기척’ 자체도 논쟁거리다. 2022년 더 정밀한 미세 영역 분석으로 그 셰일층을 다시 조사한 연구자들은 몰리브데넘이 화산재에서 왔을 수 있고, 해당 신호들도 암석이 깊이 묻혀 가열되었을 때나 훨씬 뒤에 산화되었을 때 생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 연구의 저자들은 그런 후대의 작용으로는 모든 신호를 설명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남세균이 일찍부터 산소를 만들었다고 해도 대기에 곧바로 산소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밑바닥에 구멍이 난 양동이에 물을 붓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화산이 내뿜는 환원성 기체, 바다에 녹아 있는 철, 암석 속 황화물이 새로 만들어진 산소를 끊임없이 먹어 치운다.
산소를 만드는 속도가 이 구멍으로 새어 나가는 속도를 오랫동안 웃돌아야 비로소 산소가 쌓일 수 있다. 남세균이 빽빽한 얕은 물에서는 산소가 이미 군데군데 솟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이런 곳을 산소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아시스 밖은 여전히 산소 없는 세계였다.
쌓이는 방식도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 2006년의 한 대기 모형은 산소가 오늘날의 약 10만분의 1보다 적을 때, 대기가 낮은 산소 상태에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늘면 오존이 조금 만들어진다. 오존은 자외선을 막고, 자외선에 힘입어 산소로 메탄을 태우던 대기 반응들은 느려진다. 산소의 수명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대기 전체가 산소가 많은 쪽으로 넘어간다. 산소 생산량은 한참 동안 늘어도 대기는 꼼짝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뒤집힐 수 있다.
나중에 그 구멍들이 왜 작아졌는지에는 여러 설명이 있다. 하나는 화산에 주목한다. 초기에는 해저에서 분출하는 화산이 더 많았고, 그 기체는 환원성이 더 강했다. 나중에 육상 화산이 많아지면서 산소를 먹는 기체가 줄었다는 것이다.
니켈에 주목하는 설명도 있다. 맨틀이 서서히 식으면서 니켈이 풍부한 마그마의 분출이 줄었고, 바닷속 니켈도 함께 줄었다. 메탄 생성 고세균이 메탄을 만드는 데 쓰는 효소에는 니켈이 꼭 필요하다. 니켈이 줄자 산소를 크게 소비하던 메탄도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영양 원소가 산소 생산 속도를 붙들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 설명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쟁점은 어느 것이 뒤집히는 시점을 결정했느냐다.
실제로 뒤집힌 것은 약 24억~23억 년 전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같은 시기의 지층을 뚫은 시추공 세 곳의 코어는 그 황 신호가 사라진 시점을 약 23억 3천만 년 전으로 잡았다.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도 짧아서, 100만~1천만 년에 불과했을 수 있다.
다른 연구들은 첫 변화가 더 이른 약 24억 3천만 년 전 무렵에 있었다고 본다. 1억 년이나 벌어진 연대에는 각 연구가 이 사건의 서로 다른 단계를 측정했을 가능성이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지역별 암층의 연대를 어떻게 정하고 서로 어떻게 대비할지를 놓고 아직 견해가 엇갈리는 것도 한몫한다.
이런 연대는 어떻게 알아낼까. 암층 사이에는 종종 얇은 화산재층이 끼어 있고, 그 안에는 지르콘이라는 작은 결정이 있다. 지르콘은 결정이 될 때 우라늄을 조금 받아들이지만 납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라늄은 일정한 속도로 납으로 바뀐다. 결정 속 납과 우라늄의 비율을 재면 결정이 생긴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다. 잘 측정하면 오차는 100만~200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
문턱을 넘었다고 곧바로 자리를 굳힌 것도 아니었다. 2021년 영국 리즈 대학교의 폴턴 등은 대기가 약 24억 년 전 처음 문턱을 넘은 뒤에도 몇 차례 저산소 상태로 돌아갔다고 보고했다. 약 2억 년 동안 오락가락하다가, 약 22억 2천만 년 전에야 영구히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다.
이 기간에 지구는 여러 차례 빙기도 겪었다. 캐나다 휴런호 북쪽 기슭의 오래된 암층에는 빙하가 남긴 자갈층이 적어도 세 겹 보존되어 있다.
빙하의 증거는 알아보기 쉽다. 고운 진흙층 한가운데 커다란 돌 하나가 불쑥 박혀 있다. 가장 흔한 설명은 물 위에 떠 있던 얼음이 녹으면서 돌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 빙하 퇴적층들의 연대는 약 24억 5천만~22억 2천만 년 전 사이다.
남아프리카에서 한 차례 빙하 퇴적이 일어났던 곳은 당시 적도에서 멀지 않았을 수 있다. 얼음이 적도까지 밀려갈 수 있었다면, 행성 전체가 거의 눈덩이처럼 얼었다는 이야기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눈덩이 지구라고 부른다.
일찍이 2000년 무렵부터 이 사건들을 하나의 사슬로 엮은 사람들이 있었다. 초기 대기에는 메탄이 많았고, 분자 하나씩 놓고 비교하면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하게 열을 붙잡는다.
남세균이 만든 산소가 메탄을 파괴하고, 온실효과가 약해지자 지구가 식었다는 것이다. 2005년에는 이를 끝까지 밀어붙인 주장도 나왔다. 남세균이 바로 그때 처음으로 산소를 만드는 법을 익혔고, 산소 생산을 시작하자마자 지구를 눈덩이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다. 다만 24억 년 전 메탄을 직접 측정할 얼음 코어는 없다. 메탄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전적으로 모형으로 추산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사건의 선후 관계도 수정되었다. 2020년 한 연구는 믿을 만한 산화 신호가 결정적인 그 빙기보다 먼저 나타났다고 보았다. 이 사슬의 시간 순서는 들어맞게 된 셈이다. 하지만 앞뒤가 맞는다고 인과관계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자리를 굳힌 뒤 산소는 한 차례 지나치게 치솟기도 했다. 약 22억 2천만~20억 6천만 년 전, 전 세계 탄산염암 속 탄소가 ‘무거워졌다’. 지질사에서 이런 종류의 변화 가운데 폭이 가장 크고 지속 시간도 가장 길었다.
한 가지 설명은 이렇다. 막대한 유기물이 땅속에 묻히면서 가벼운 탄소도 함께 빠져나가고, 무거운 탄소는 바다에 남았다. 동시에 여분의 산소도 남았다. 그래서 그 기간에는 산소량이 나중보다 한때 훨씬 높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다음에는 다시 내려갔다. 묻혔던 유기물이 나중에 다시 드러나 산화되면서, 여분의 산소를 도로 먹어 치웠다. 2019년의 한 연구는 약 20억 1천8백만 년 전의 황산염 광물을 바탕으로, 그 과도한 상승이 끝난 뒤 전 지구의 광합성 생산이 80퍼센트 넘게 줄었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후 10여억 년 동안 산소는 줄곧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크롬 동위원소를 근거로 당시 대기의 산소가 오늘날의 1천분의 1에도 못 미쳤을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00분의 1 안팎이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기간 지구에는 놀라울 만큼 변화가 적었다. 지질학자들은 아예 ‘지루한 10억 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말 지루했는지는 7편에서 따로 이야기한다. 5편에서 다룰 진핵세포가 자리를 잡은 것도 이 시기다.
4 산소에는 왜 독성이 있을까
산소는 당시 생물들에게 무슨 일을 했을까. 먼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일부터 보자. 상처에 과산화수소수를 부으면 하얀 거품이 인다. 상처 속 어떤 효소가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빠르게 쪼개는 것이다. 과산화수소수에 들어 있는 과산화수소는 물보다 산소가 하나 더 많다. 우리 몸이 이 효소를 갖추고 있는 까닭은 과산화수소가 산소의 부산물이며, 그대로 두면 세포를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산소 자체는 사실 유기 분자와 곧장 반응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는 산소에 전자가 하나씩 더해질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물질이다. 초과산화물, 과산화수소, 하이드록실 라디칼. 이들을 통틀어 활성산소라고 한다.
호흡 사슬과 여러 효소에서는 전자가 새어 나올 때 앞의 두 물질이 끊임없이 생긴다. 방사선이 사람을 다치게 하는 과정의 상당 부분도, 먼저 세포 속 물을 때려 이런 물질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 파괴력은 공격하는 부위까지 구체적으로 짚을 수 있다. 초과산화물은 특히 효소 안에서 철과 황으로 이루어진 작은 부품들을 공격한다. 효소가 망가지면 그 안의 철이 풀려 나온다.
과산화수소가 유리된 철을 만나면 반응성이 몹시 강한 하이드록실 라디칼이 생긴다. 이것은 거의 생겨난 바로 그 자리 근처에서 DNA와 단백질, 세포막을 공격한다. 그러니 방어는 피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가로막는 수밖에 없다. 초과산화물과 과산화수소를 제때 없애, 더 사나운 하이드록실 라디칼의 생성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오늘날 세포에는 이를 가로막는 수단이 한 벌 갖추어져 있다. 어떤 효소는 초과산화물을 과산화수소로 바꾸고, 다른 효소는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쪼갠다. 상처에서 거품을 일으키는 바로 그 효소다. DNA를 고치고 철을 거두어 보관하는 여러 장치도 있다. 사람의 피 속 철은 거의 모두 단백질이 단단히 껴안고 있어, 혼자 풀려 돌아다니는 일이 드물다.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과산화물을 과산화수소로 바꾸는 그 효소에는 적어도 세 개의 서로 무관한 계열이 있다. 철을 지닌 것과 망간을 지닌 것이 한 계열, 구리와 아연을 지닌 것이 한 계열, 니켈을 지닌 것이 또 한 계열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계통이 제각기 방법을 찾아냈다. 생물마다 산소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도 이런 장치들과 막의 조성이 달라 크게 차이 난다.
흥미롭게도 이 살림살이 일부는 산소가 많아지기 전부터 있었다. 2021년의 한 분석은 남세균의 이런 효소 대부분이 대산소화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보았다. 반면 과산화수소를 쪼개는 다른 두 효소와 니켈을 지닌 효소는 약 25억~23억 년 전에 나타났다고 했다. 이해가 가는 일이다. 대산소화 전에도 국지적으로는 남세균이 만든 산소가 있었고, 햇빛의 자외선도 대기와 물속에서 소량의 과산화수소를 만들 수 있었다. 무산소 대사 자체도 산화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다.
독은 나중에 연료도 되었다. 일부 미생물은 거꾸로 그것을 이용하는 법을 익혔다. 먹이에서 꺼낸 전자를 마지막에 산소로 넘기는 것이다. 산소는 전자를 빼앗는 능력이 아주 강해서, 전자가 떨어지는 낙차도 유난히 크다. 그러니 모아 둘 수 있는 에너지도 유난히 많다.
이것이 유산소 호흡이다. 오늘날 산소로 호흡하는 효소에는 커다란 계열 하나가 있다. 그 분포를 보고 최초의 구성원은 대산소화보다 먼저 생겼으며, 이미 산소 오아시스에서 쓰이고 있었을 수 있다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산소가 우리에게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1940~50년대 병원에서는 조산아의 인큐베이터에 고농도 산소를 공급한 적이 있다. 뒤늦게 이것이 많은 아이들을 실명하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수부가 고농도 산소를 가지고 너무 깊이 내려가면 산소 자체 때문에 경련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생물은 산소를 아예 견디지 못한다. 1861년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부티르산 발효를 연구하다가, 그 일을 하는 미생물이 공기를 넣자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한 버터에서 나는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부티르산에서 온다. 2년 뒤 그는 이런 삶에 말 그대로 ‘공기 없는 생명’이라는 뜻의 단어를 붙였다. 혐기성이라는 말은 이렇게 생겼다.
오늘날에도 이들은 멀리 있지 않다. 파상풍균도 혐기성 세균이다. 그 포자는 흙 속에 섞여 있다가, 깊고 좁거나 괴사한 조직이 있는 상처에서 가장 쉽게 번식한다.
못에 깊이 찔린 상처는 신속히 진료를 받아야 한다. 백신이나 면역글로불린이 필요한지는 상처 상태와 예방접종 이력에 따라 달라진다. 녹 자체가 원인은 아니다. 오염과 상처 깊은 곳의 산소 부족이 이런 상처를 특히 주의해야 할 이유다. 보툴리누스균도 산소를 싫어한다. 문제가 생기는 곳은 대개 집에서 만든 통조림이나 절임, 발효 식품이다. 밀봉이 잘되어 속에 산소가 없고, 가열이나 절임도 충분하지 않으면 포자가 살아남는다. 실험실에서 이런 세균을 기르려면 전용 혐기성 배양 챔버가 필요하다. 안에는 질소와 약간의 수소를 채우고, 사람은 챔버에 달린 고무장갑 한 쌍에 손을 넣어 작업한다.
이런 절대 혐기성 생물에게 지표와 얕은 물에 산소가 생겼다는 것은 집 앞에 독이 하나 더 놓였다는 뜻이다. 이들의 터전은 필연적으로 줄었고, 일부 계통은 그때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얼마나 사라졌는지는 계산할 수 없다. 흔히 ‘산소 대재앙’이라고 부르며, 생명의 90몇 퍼센트가 그 때문에 멸종했다고까지 말한다. 이 이야기의 일부는 아주 유명한 과학 교양서에서 왔다. 1986년 마굴리스와 아들 세이건이 함께 쓴 책에는 ‘산소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장이 있다.
그런 숫자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다. 멸종률에는 분모가 필요하다. 원래 종이 몇 개였는지부터 세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미생물 화석은 작은 공 모양인 경우가 많아, 한 종인지 열 종인지 알 수 없다. 1편에서 이야기한 30여억 년 전의 미화석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가 무엇인지조차 정할 수 없다면, 그 비율은 정확히 못 재는 것이 아니라 정의 자체가 없는 것이다.
3절에서 본 광합성 생산의 80퍼센트 감소도 종의 80퍼센트가 멸종했다는 말로 곧장 바꿀 수는 없다. 숲에서 잎이 80퍼센트 덜 자랐다고 나무의 80퍼센트가 죽은 것은 아니다. 나무 종의 80퍼센트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5 혐기성 생물권은 어디에 있을까
대산소화 이전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이 산소 없는 세계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날의 혐기성 미생물들은 지금도 조상들의 삶을 살고 있다.
혐기성 생물권은 사라지지 않았다. ‘산소가 들어오는 속도가 소비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발밑에 있다. 바닷가나 연못의 진흙을 파 보면 흔히 표면은 갈색인데, 몇 센티미터만 내려가도 검어지고 악취가 난다. 그 층이 혐기성 미생물의 영토다.
퇴적물에서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확산해 들어오는 산소를 빠르게 써 버린다. 더 내려가면 질산염, 금속, 황산염으로 ‘호흡하는’ 미생물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맨 아래에는 메탄 생성 고세균이 있다. 메탄을 만들어 먹고사는 것은 생명계통수 전체에서 고세균뿐인데, 그 몸속 효소들은 산소를 만나면 망가진다. 다른 생물들도 부수적으로 메탄을 조금 내놓기는 하지만 양이 훨씬 적다.
썩은 달걀 냄새는 황산염으로 호흡하는 세균들이 내놓은 황화수소다. 진흙이 검어지는 것은 황화수소가 철과 결합해 검은 황화철을 만들기 때문이다.
대륙 깊은 지하의 암석 틈, 대수층, 퇴적분지의 공극도 또 하나의 거대한 무산소 서식지다. 2018년 전 세계의 지열과 온도, 암석의 성질, 실제로 측정한 세포 농도로 추산한 연구에 따르면, 대륙 지하 약 5킬로미터 이내에는 약 (2~6) × 10²⁹개의 세포가 살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한 금광 지하 약 2,800미터 깊이에 있는 틈새 물에서는 2008년, 거의 한 종류의 세균만 살면서 완전한 생태계 하나를 홀로 지탱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암석 속 방사성 물질이 물을 분해해 만든 수소로 살아가므로 햇빛도, 다른 생물도 필요 없다.
연구자들은 베른의 소설에 나오는 라틴어 한 구절을 빌려 이름을 지어 주었다. ‘대담한 여행자’라는 뜻이다. 지하의 세포들은 대부분 아주 느리게 산다. 어떤 추산으로는 그곳의 세포 하나가 한 번 분열하는 데 수백 년, 심지어 천 년 이상이 걸린다. 해저 수백 미터 아래 진흙에는 수백만 년 전에 가라앉은 유기물이 남아 있다. 그곳 세포들은 이 오래된 양식을 조금씩 먹고 산다.
동물의 소화관도 산소가 계속 부족한 환경이다. 소와 양의 반추위와 여러 동물의 결장에서는 미생물 활동이 들어오는 산소를 소모하고, 절대 혐기성 세균과 메탄 생성 고세균이 가득 살고 있다. 반추위는 소의 네 위 가운데 가장 큰 위다.
소의 트림에 들어 있는 메탄은 이들이 만든 것이다. 소 한 마리가 1년 동안 트림으로 내놓는 양은 거의 100킬로그램에 이른다. 사람의 대장에서도 세균은 대부분 혐기성균이고, 그 수는 사람 몸을 이루는 세포 수와 비슷하다.
영구적으로 층이 나뉜 수역에는 산소 없는 물이 넓게 남아 있을 수 있다. 흑해는 세계 최대의 무산소 수역이다. 100~200미터 아래 물에는 산소가 없고 황화수소가 가득하다.
2017년 한 고고학 조사팀이 원격조종 잠수정을 이용해 그 바닥에서 약 2,4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상선을 발견하고, 이듬해 발표했다. 돛대도 키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배는 2천 미터가 넘는 깊이의 해저에 누워 있다.
여기서는 대기의 산소가 아예 도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물이 층을 이루고 있어서, 유기물이 분해되며 소비하는 양만큼 산소가 보충되지 못하는 것이다. 호수도 같다. 여름철 녹조가 죽고 분해될 때 물속 산소를 다 써 버리면, 호수에서는 악취가 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 산소를 만드는 생물도 호수 하나를 산소 부족의 물로 채울 수 있다.
열수계도 전부 한결같이 유산소이거나 무산소인 것은 아니다. 고온의 환원성 열수가 바닷물과 서로 다른 비율로 섞이면서 가파른 구배를 만든다. 그중 산소가 적은 구역에는 메탄을 만들거나 황산염을 환원하는 미생물, 수소로 살아가는 미생물이 산다. 열수구에서 채집한 메탄 생성 고세균 한 종은 섭씨 122도에서도 번식한다. 알려진 생명 가운데 열을 가장 잘 견디는 축에 든다.
그 생물권은 얼마나 클까. 이 질문의 답은 20년 동안 여러 번 고쳐졌다. 1998년 미국 미생물학자 휘트먼 등은 고전이 된 추산을 내놓았다. 전 세계 원핵세포는 약 (4~6) × 10³⁰개이며, 그중 해저 아래에 사는 수가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지하 미생물의 무게가 지상 식물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와 여러 해 널리 퍼졌다.
2012년에는 심해 시추 지점 50여 곳의 실측 자료를 모아 다시 추산한 결과, 해저 아래의 몫이 90퍼센트 넘게 줄어들었다. 새로운 기기 덕분이 아니었다. 육지에서 아주 멀고 세포가 극히 적은 대양 한가운데까지 표본에 넣은 덕분이었다.
2018년의 그 대륙 지하 연구는 전 세계 원핵생물의 양도 함께 다시 계산했다. 탄소로 약 230억~310억 톤뿐이었다. 이전 추정치의 4분의 1~10분의 1이자, 8절에 나올 수치의 30~40퍼센트에 불과하다. 전 세계 세균과 고세균의 대부분은 지하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항목의 오차도 가장 크다. 가장 표본을 얻기 어려운 환경이 공교롭게도 부피가 가장 큰 환경인 것이다.
절대 혐기성 대사는 오늘도 전 지구 규모로 작동하고 있다.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기체 가운데 메탄의 영향은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크다. 오늘날 해마다 대기로 들어가는 메탄은 약 6억 톤이 넘는다.
천연 습지에서 약 1억 6천만 톤, 소와 양 같은 반추동물과 그 분뇨에서 약 1억 1천여만 톤, 논에서 약 3천여만 톤이 나온다. 논에 물을 가득 대면 흙 속 산소가 부족해지고, 메탄 생성 고세균은 벼 뿌리 둘레에서 바쁘게 일한다. 흔히 쓰이는 추정에 따르면 이 메탄의 약 70퍼센트가 미생물의 손에서 나오며, 주역은 메탄 생성 고세균이다.
해저의 불타는 얼음 속 메탄도 대부분 진흙 속 고세균이 만든 것이다. 반대로 바닷속에는 메탄을 전문으로 먹는 고세균도 있다. 세균과 짝을 이루어 산소 없는 진흙 속에서 위로 올라오는 메탄 대부분을 붙잡고, 대기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6 폐기물 한 몫과 광물 목록 하나
산소는 이 행성에 무슨 일을 했을까. 그 사건에서 지표 전체가 한 차례 녹슬었다고 해도 좋다. 가장 뜻밖인 답 하나가 광물 속에 있다.
선명한 빛깔의 구리 광석, 공작석의 초록과 남동석의 파랑은 모두 구리가 산화된 뒤에야 생겨난다. 공기 중 산소가 없다면 지구에는 이 광물들도 없을 것이다. 중국 회화의 석청과 석록은 이 두 광석을 갈아 만든 안료다. 둔황 벽화의 파란색 가운데 상당 부분은 석청에서 왔고, 초록색에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아타카마이트라는 염화구리 광물이다. 이 역시 구리가 산화된 뒤에 생겨난다.
자유의 여신상은 구리 판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세웠을 때는 구리색이었지만, 뉴욕의 공기 속에서 20여 년 만에 초록색이 되었다. 그 초록 층은 주로 구리가 산소와 물, 공기 중의 황, 바닷바람이 실어 온 염소와 함께 만든 새로운 광물이다.
2008년 미국 광물학자 헤이즌의 연구팀은 이 이야기를 행성 전체의 규모로 넓혀 ‘광물 진화’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얼핏 들으면 농담 같다. 광물은 번식도 못 하는데 어떻게 진화한다는 것일까.
그들의 뜻은 지구의 역사가 흐르면서 광물의 종류가 차츰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지구가 막 만들어졌을 때 생겨날 수 있는 광물은 지금보다 종류가 훨씬 적었다. 생명이 지표를 산화한 뒤에야 철과 구리, 우라늄, 망간 같은 원소가 대량으로 더 높은 산화수 상태에 들어가 다른 원소들과 새로운 결정을 이루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생물이 직접 결정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조개껍데기와 뼈, 이빨의 이야기다. 생명이 환경을 바꾸어 광물이 저절로 생기게 했다는 뜻이다. 헤이즌 등의 추산에 따르면 달처럼 건조한 천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광물은 많아야 350종 안팎이다. 지구에서 알려진 것은 6천 종이 넘는다. 그 큰 차이는 물과도, 판 운동과도 관련이 있고, 생명과도 관련이 있다.
그들은 당시 알려진 광물의 3분의 2 이상이 생명이 지표를 바꾼 직접적 또는 간접적 결과이며, 그중 가장 큰 고리가 이번 산화라고 추산했다. 헤이즌은 2010년 대중을 위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20여억 년 전의 산화가 새로운 광물 2,500여 종을 화학적으로 가능하게 했으며, 그중 많은 것은 암석이 풍화된 뒤 생긴 산물이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그들 스스로 계산을 더 잘게 나누었다. 데이터베이스가 커지자 각 광물에 알려진 형성 경로를 모두 표시했다. 결과는 이랬다. 약 2,700종, 곧 절반가량의 광물이 생명과 관련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 없으면 결코 생길 수 없는 것은 약 1,900종으로, 전체의 3분의 1 정도였다.
별도로 약 80퍼센트의 광물은 형성 과정에 물이 관여했다. 같은 연구팀이 십수 년에 걸쳐 대담한 주장 하나를 더 정확하게 묻는 세 가지 질문으로 나눈 것이다. 광물 명부 자체도 계속 길어지고 있다. 2008년에는 약 4,300종, 2022년에는 약 5,800여 종이었고, 지금은 6천 종을 넘었다.
산화는 대륙이 바다로 보내는 물질도 바꾸었다. 암석 속 황화물이 산화되어 황산염으로 바뀐 뒤 바다로 흘러들었고, 바닷속 황산염은 점점 더 많이 쌓였다.
점점 커진 이 황산염 저장고가 거꾸로 2절에서 본 ‘규칙을 어기는’ 황 신호를 희석했다. 신호가 사라지는 두 번째 고리는 이렇게 생겼다. 산소가 자기 손으로 자신이 들어온 증거를 지워 버린 것이다. 대산소화가 남긴 것 때문에 정작 ‘대산소화는 언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이 어려워졌다.
우라늄과 크롬 같은 금속도 산화수가 달라지면서 물에 녹을 수 있게 되었고, 강에 실려 나갔다. 이 일은 놀라운 결과를 하나 남겼다. 1972년 프랑스 연구자들은 아프리카 가봉의 오클로 우라늄 광산에서 핵분열을 할 수 있는 우라늄의 비율이 유난히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추적해 보니 약 20억 년 전 이 광상에서 저절로 지하 핵분열이 일어나 수십만 년 동안 간헐적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불이 붙을 수 있었던 전제 가운데 하나는 우라늄이 먼저 산소 있는 물에 녹아 운반되고, 다시 한곳에 모였다는 점이다. 대산소화가 없었다면 이 천연 원자로도 없었다. 지금껏 알려진 곳으로는 여기가 유일하다.
산소가 바다에 무언가를 보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생긴 녹은 인을 강하게 흡착해 다시 붙잡는다. 인은 유전물질과 에너지 화폐를 만드는 데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원소다. 바다의 인이 줄면 광합성에도 제동이 걸린다.
높은 하늘의 오존도 이때부터 생겼다. 오늘날의 오존층을 지표의 기압으로 압축하면 두께는 약 3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이 층이 막아 주는 것은 자외선 가운데 DNA를 가장 심하게 해치는 파장대다. 오존은 햇빛 아래에서 산소가 변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소량의 산소로도 소량의 오존을 만들 수 있고, 그것만으로 대기의 화학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자외선을 충분히 막아 육지 표면에서 생명이 햇볕을 쬐며 살 수 있으려면, 산소가 약 1천 배 더 많아야 한다. 오늘날의 약 1퍼센트다. 2022년에 나온 새로운 모형은 산소가 적을 때의 오존층이 옛 모형의 계산보다 더 얇았을 수 있다고도 보았다.
대기에 산소가 생겼어도 심해는 좀처럼 따라오지 못했다. 이후 십수억 년 동안 바다는 층층이 쌓은 떡 같았다. 표면에는 산소가 있고 그 아래에는 없었다. 1998년 한 연구자는 당시 심해의 넓은 구역에서 악취가 났고 황화수소가 가득했다고 제안했다. 근거 가운데 하나는 호상철광층의 퇴적이 약 18억 5천만 년 전 무렵 거의 멈췄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가 바다의 철을 갑자기 거두어 간 것 같았고, 황화수소는 마침 철을 침전시킬 수 있었다.
뒤이은 연구들은 실제로는 더 넓은 심층수가 용존 철을 풍부하게 품고 있었으며, 주로 생산력이 높은 연안과 주변해에서 악취가 났다는 것을 밝혀냈다. 대기에는 이미 산소가 있지만 심해에는 여전히 없다는 두 사실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존재했다. 오늘날의 흑해는 그런 바다를 작게 보여 주는 표본이다.
7 강도가 다른 세 단계의 주장
아주 널리 퍼진 말이 있다. 산소가 복잡한 생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이다. 사실 이 한 문장에는 강도가 다른 세 가지 주장이 눌려 들어 있다.
먼저 에너지 수치를 보자. 발효는 외부 전자 수용체 없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다. 전형적인 해당과정에 젖산 발효나 알코올 발효가 이어지면, 포도당 한 분자에서 얻는 순이익은 에너지 화폐 두 분자다.
완전한 유산소 산화의 수치는 현대 교과서에서 흔히 약 30~32개로 제시한다. 많은 사람이 중고등학교 때 외웠던 36~38개는 좀 더 이상화된 옛 계산이다.
따라서 포도당 한 분자를 기준으로 하면 유산소 호흡의 수익은 발효의 약 15배다. 100미터를 전력 질주할 때 근육은 산소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에너지의 일부를 발효로 급히 댄다. 빨리 얻을 수는 있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다만 이 배수는 발효와 비교한 값일 뿐이다. 무산소 호흡에도 전자전달계가 있다. 질산염과 황산염, 3가 철을 최종 전자 수용체로 쓸 수 있고, 많은 경우 발효보다 에너지 수익이 높다. 에너지 차이의 근원은 산소가 무언가를 ‘싣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산소는 전자를 빼앗는 능력이 강해서 유기물과 사이에 큰 낙차가 생긴다. 호흡 사슬은 그 일부를 막 안팎의 양성자 낙차로 저장하고, 이어서 3편에서 이야기한 회전 장치가 에너지 화폐를 만든다.
이제 세 단계를 보자. 첫 번째는 산소가 특정한 대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증거가 가장 강한 단계다. 산소는 효율 높은 최종 전자 수용체로서, 에너지 수익이 큰 유산소 호흡을 가능하게 한다. 많은 효소 반응도 산소를 직접 사용한다.
완전히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이런 구체적인 반응들이 같은 경로로 진행될 수 없다. 화학과 현대 생리학이 직접 뒷받침한다. 우리 몸에서 콜레스테롤을 합성할 때만 해도 여러 단계에서 분자 산소를 직접 써야 한다.
두 번째는 산소가 특정한 구조나 생활방식에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증거의 강도는 중간 정도이며, 무엇을 대상으로 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2005년 행성과학자 캐틀링 등은 이 주장의 강한 판본을 내놓았다. 지구에서 몸집이 크고, 계속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에너지 흐름이 큰 복잡한 생명은 거의 모두 유산소 대사에 의존한다. 따라서 충분한 산소는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복잡한 생명의 필수 조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계산에 쓴 방법 가운데 하나가 확산이었다. 몸집이 몇 밀리미터 이상이고 산소 공급을 표면에서 스며드는 것에만 의존한다면, 바깥의 산소 농도가 충분히 높아야 한다.
이 논증의 강점은 생리적 에너지 수지에 있다. 대사율이 높은 현대의 여러 조직은 실제로 완전한 무산소 상태에서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사람의 뇌는 체중의 약 5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몸 전체가 쓰는 산소의 약 5분의 1을 소비한다. 산소가 몇 분만 끊겨도 손상된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강하게 입증되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사와 조직 기능은 산소를 요구한다’는 명제다. 에너지 수치만으로 ‘형태적 복잡성’이라는 추상적인 속성에 반드시 하나의 공통 문턱이 있다고 입증한 것은 아니다.
2014년의 한 실험은 ‘현대에 가까운 산소 수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본의 설득력을 직접 약화시켰다. 덴마크 연구팀이 흔한 해면 한 종을 산소가 극히 적은 물에 넣었다. 해면은 근육도 신경도 없고, 몸을 통과하는 물의 흐름으로 먹이를 걸러 먹는 가장 단순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실험 결과 오늘날 대기 산소 수준의 0.5~4퍼센트에 해당하는 조건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았다. 해면은 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갈라져 나온 무리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결과가 특히 무게를 지닌다.
이 결과는 두 방향으로 아주 분명하다. ‘단순한 다세포 동물에게 현대에 가까운 산소 수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박한다. 동시에 ‘그 해면에게도 0보다 많은 산소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박하지 않는다. 다른 해면 종을 대상으로 한 후속 실험에서는 노출 수준을 현대의 약 0.25퍼센트까지 낮추었는데, 비교적 제한된 변화만 관찰되었다.
이 실험들에도 한계는 있다. 현대의 해면은 고대 생물의 생리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다. 실험 기간도 유한하다. 몸의 형태와 유체의 움직임, 먹이 공급, 미생물과의 공생은 모두 확산의 한계를 바꿀 수 있다.
세 번째는 산소가 복잡한 구조 자체의 필수 조건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모든 ‘복잡성’을 뜻한다면, 증거는 가장 약하다.
복잡성에는 하나로 정해진 대사적 정의가 없고, 어떤 구조에 필요한 산소량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2020년에는 연어에 기생하는 미세한 동물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체까지 모두 잃었으며, 산소에 의존해 호흡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파리의 먼 친척인데, 평생을 다른 동물의 몸에서 보낼 뿐이다.
200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고생물학자 버터필드는 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현대 산소 수준에 견주어 몇 퍼센트에 불과한 양으로도 기본적인 다세포 동물의 대사를 충족할 수 있다면, 지질 기록에서 ‘산소는 일찍 있었지만 복잡한 형태는 늦게 나타났다’는 두 사실 사이의 긴 시간차 자체가 산소만으로 출현 시점을 결정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는 생물의 활동이 바다의 산소 공급과 유기물 수송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따라서 ‘산소가 생태 구조를 움직인다’는 인과의 화살표에는 반대 방향의 되먹임도 있을 수 있다. 헤엄치고, 굴을 파고, 물을 거르는 동물들은 표면의 유기물을 깊은 곳으로 더 빨리 보내 바닷물의 산소 분포를 바꿀 수 있다. 동물은 산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산소를 바꾸기도 한다.
이쪽 입장이 산소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두 가지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생리적으로 필요한 최소량은 아주 적을 수 있다. 한편 환경에서 실제로 산소가 전달되는 양은 경계층, 확산 거리, 순환, 몸의 형태와 행동의 지배를 받는다. 지구 전체 대기의 산소 비율과 특정 생물의 세포가 실제로 받는 산소 유량은 같은 변수가 아니다.
주장은 한 단계씩 강해지는데 증거는 한 단계씩 약해진다. 문헌 속 논쟁의 상당 부분은 이 세 단계의 명제를 같은 한 문장에 뒤섞는 데서 나온다.
8 누가 더 많을까
마지막으로 오늘을 보자. 2018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한 연구팀이 전 세계 자료를 모아, 물기를 포함한 무게 대신 탄소의 질량으로 모든 생물을 같은 저울에 올렸다. 결과는 이랬다. 오늘날 지구의 모든 생물을 합치면 탄소로 약 5,500억 톤이다.
그중 식물이 약 4,500억 톤으로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그 절반 이상은 나무줄기 속 목재다. 세균은 약 700억 톤으로 두 번째 큰 몫이다. 그 대부분은 지하에 산다.
균류는 약 120억 톤, 고세균은 약 70억 톤, 원생생물은 약 40억 톤이다. 동물은 약 20억 톤에 불과해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세균의 탄소량은 동물의 30배가 넘는다.
동물 가운데 절반 정도는 절지동물이다. 큰 몫은 바다에 사는 요각류와 크릴 같은 무리가 차지한다. 요각류는 쌀알보다도 작은 갑각류다. 곤충이 주를 이루는 육상 절지동물은 약 2억 톤에 불과하다. 어류가 다시 3분의 1 안팎을 차지한다.
몇 가지 수치를 더 내려다보자. 모든 사람을 합치면 탄소로 약 6천만 톤이다. 세균의 약 1천분의 1, 모든 생물의 약 1만분의 1이다. 사람이 기르는 가축은 약 1억 톤으로, 야생 포유류 전체의 십수 배에 이른다. 야생 조류는 약 200만 톤이고, 가금류는 그 두 배가 넘는다.
세포 수로 보면 미생물의 우세는 더 크다. 전 세계 세균과 고세균을 합친 수는 추정에 따라 (1~3) × 10³⁰개 사이다. 오히려 모든 생물의 ‘개체 수’는 셀 수가 없다. 미국 유타주에 있는 어느 미국사시나무 숲에는 4만 개가 넘는 줄기 아래로 하나의 뿌리계가 이어져 있다. 하나로 셀지, 4만으로 셀지는 정의하기 나름이다.
바다의 사정은 또 다르다. 바다에서 광합성을 하는 생물은 모두 합쳐도 탄소로 약 10억 톤뿐인데, 이들에게 기대어 사는 생물은 약 50억 톤이다. 생물량 피라미드가 거꾸로 서 있다. 그러므로 ‘지구의 생물량은 식물이 차지한다’는 결과는 주로 육지의 거대한 목재 탄소 저장고 때문에 생긴다. 그 결과로부터 대부분의 생태계에서 다세포 생물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바다에서 수가 가장 많은 광합성 생물은 프로클로로코쿠스라는 남세균이다. 바닷물 1밀리리터에 약 10만 개가 있을 수 있다. 산소를 내놓는 이 일가는 지금도 바다의 주인 노릇을 한다.
이제 이번 글의 구축된 틀로 돌아가자. 이 시리즈에서 말하는 구축은 사람이 만든 판별 기준만을 뜻하지 않는다. 경계를 긋고 무엇이 남을 수 있으며 무엇이 남을 수 없는지를 정하는 것이라면 모두 해당한다. 이번 글에서는 행성 규모의 화학적 환경이 그 틀이다. 대기의 산화·환원 상태, 바다의 층상 구조, 대륙의 풍화가 내보내는 원소 목록, 그리고 광물 명부 하나다.
그 틀을 바꾼 것은 한 몫의 대사 폐기물이었다. 산소를 만드는 세포들에게는 의도도 계획도 없었다. 물에서 전자를 빼앗는다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전자 공여체를 손에 넣었다는 뜻이었다. 산소는 그 과정에서 버려진 나머지 절반이다. 목적도 아니고 생산물도 아니다. 부산물이다. 밖으로 내보낸 것이 나중에 올 모든 것의 원료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부산물로 외계 생명을 찾기도 한다. 천문학자들은 외계행성의 대기를 들여다본다. 어떤 행성에 많은 산소가 오랫동안 존재한다면, 그곳에 무언가가 끊임없이 산소를 만들고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생명 없이 산소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단서 하나일 뿐이다.
이 일은 ‘생물이 환경을 바꾸었다’는 말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어떤 대사가 무언가를 폐기물로 내보내고, 그것이 행성 표층의 화학을 바꾸어 나중에 전혀 다른 과정들을 가능하게 했다. 대기의 자외선 광화학을 바꾸고,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광물을 바꾸고, 강이 바다에 보내는 원소를 바꾸고, 바다의 층상 구조를 바꾸었다. 어쩌면 전 지구적인 빙기까지 촉발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건축 자재를 만든 쪽은 정작 스스로 그 혜택을 누리지 않는다. 산소를 만드는 세포 자체에도 산소는 짐이다. 활성산소가 생기므로 전용 효소로 없애야 한다.
남세균 자신도 이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질소를 고정하는 데 쓰는 효소는 산소만 만나면 망가진다. 그래서 어떤 남세균은 길게 이어진 세포들 가운데 일부를 벽이 두꺼운 세포로 따로 만들고, 그 안에서는 산소 생산을 꺼 둔 채 질소 고정에만 전념한다. 자기가 내놓은 폐기물을 자기가 피해야 한다.
구축된 틀이 담아내지 못하면서 없애지도 못하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바뀐 것들 속에 있지 않고, 바뀌지 않은 것들 속에 있다. 이번 글의 잔여항은 혐기성 생물권이다.
그것은 소멸하지 않았다. 다만 ‘산소가 들어갈 수 없는’ 곳들로 압축되었다. 퇴적물 몇 센티미터 아래, 깊은 지하의 암석 틈, 동물의 뱃속, 층을 이룬 수역의 깊은 곳이다. 산소는 혐기성 생물을 지구 밖으로 몰아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몰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곳들을 모두 합치면 지표보다 훨씬 크다.
당신에게서도 멀지 않다. 사람의 30~50퍼센트는 내쉬는 숨에서 메탄이 검출된다. 장 깊숙한 곳의 메탄 생성 고세균이 만든 것이다. 당신은 숨을 쉴 때마다 광합성 생물이 내놓은 폐기물을 쓰고, 몸 안에는 대산소화보다 오래된 세계의 작은 조각이 아직 살고 있다.
그 세계가 오늘 얼마나 큰지를 묻는다면, 가장 큰 오차는 공교롭게도 부피가 가장 크고 표본을 얻기도 가장 어려운 환경에 걸려 있다.